외환위기 구조조정 다룬 자전소설, 홈플러스 사태로 다시 주목
소설은 ‘책임 있는 금융’ 강조했지만…현실에선 대주주 책임론 확산
점포 매각·회생절차·고용불안 논란 속 사모펀드 사회적 책임 도마에
[이코노미스트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2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자전적 장편소설 ‘오퍼링스(Offerings)’가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설 속에서 강조된 ‘책임 있는 금융’과 ‘리더의 역할’이 현실의 홈플러스 사태와 대비되면서다.
◇ 김병주 자전소설 홈플러스 사태 이후 재조명
‘오퍼링스’는 한국계 미국인 투자은행가 대준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구조조정 업무에 참여하며 자본시장과 기업, 노동자, 이해관계자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마주한다.
김 회장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간 집필한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출간 당시부터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김 회장의 금융철학과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로 받아들여졌다.
김 회장은 소설에서 구조조정을 단순한 재무적 판단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는다.
기업의 존폐는 주주 수익률뿐 아니라 임직원의 고용, 협력업체의 경영 안정,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금융인을 자본을 배분하는 기술자에 그치지 않고, 위기 기업을 다루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피해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책임 있는 주체로 그린다.
그러나 홈플러스 사태 이후 김 회장의 금융철학과 MBK의 현실 경영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홈플러스는 점포 매각과 자산유동화 등을 이어왔다. 이후 업황 악화와 재무 부담이 겹치면서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고, 회생절차 폐지 결정까지 나오면서 임직원 고용 불안, 협력업체 납품대금 문제, 채권 투자자 손실 우려가 동시에 불거졌다.
소설 속 ‘책임 있는 금융’이 현실 경영에서 충분히 구현됐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배경이다.
◇ 김병주 주주 연례서한서 홈플러스 “작은 잡음” 논란
특히 논란을 키운 것은 김 회장이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이다. 김 회장은 서한에서 홈플러스 기업회생과 관련해 언론에서 “다소 잡음(some noise)”이 일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MBK 측은 이 표현이 홈플러스 사태 자체를 가볍게 본 것이 아니라 비판적 언론보도를 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협력업체와 노동자, 투자자 피해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이 표현은 책임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서한에는 홈플러스와 관련한 이해관계자 중 일부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MBK가 투자자들에게 상당 규모의 분배금을 지급했고, 홈플러스가 포함된 펀드의 수익률도 양호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홈플러스 현장에서는 고용불안과 거래대금 미지급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투자자에게는 성과를 설명하는 모습이 대비되서다.
◇ 홈플러스 사태, ‘대주주 책임론’ 논쟁으로 비화
홈플러스 사태는 한 유통기업의 회생절차 문제를 넘어 MBK의 투자 방식과 대주주 책임론으로 확산하고 있다.
쟁점은 △대형 유통기업을 보유한 사모펀드의 책임 범위,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주와 채권자·근로자·협력업체 사이의 손실 분담, △경영권을 행사해 온 대주주의 역할 등으로 압축된다.
사모펀드는 투자자 수익을 목적으로 운용된다. 다만 홈플러스처럼 고용 규모가 크고 협력업체 거래망이 넓은 기업의 경우,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간 경영권을 보유해 온 대주주라면 기업 가치 하락과 회생절차 진입 과정에서의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MBK 측은 홈플러스 회생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재 출연과 자금 지원 등 필요한 조치를 해왔다는 입장이다. 또 홈플러스 회생 신청은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유동성 위기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정치권, 채권시장에서는 MBK와 김 회장이 대주주로서 보다 구체적인 책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오퍼링스’가 글로벌 금융인의 성장담으로 읽혔다면 지금은 김병주 회장의 금융철학과 실제 경영이 일치했는지를 따져보는 텍스트가 됐다”며 “홈플러스 사태는 사모펀드의 사회적 책임과 대주주의 책임경영 기준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1천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지난 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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