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0만 보호법인가, 골목상권 청구서인가]②
‘일하는 사람 기본법’ 도입 시 연 505만원 독박 우려
“현실에 맞는 진짜 사장 기준 소득으로 재정립해야”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노동 약자 보호라는 취지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그 명분과 방향성에 반대할 대한민국 사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과 법적 책임을 감당할 여력있는 영세 소상공인은 몇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의 목소리에는 현장의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최근 정치권에서 강행 조짐을 보이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는 가뜩이나 코로나19 시기보다 악화한 골목상권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일성이자 단호한 진단이다.
송 회장은 노동 취약계층을 보호하겠다는 선의가 현장의 영세 사업주를 범법자로 내몰고 생업을 파탄 내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지난 7월 8일 [이코노미스트]는 송 회장을 만나 소상공인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우려와 소상공인연합회가 요구하는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대안을 깊이있게 들어봤다.
생색은 국가가, 비용은 사장이 내라
송 회장은 인터뷰의 시작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안’에 대해 소상공인들이 무조건적인 반대만 일삼는 집단으로 비춰지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발생하는 모든 행정적·재정적 비용을 영세 업주가 독박을 써야 하는 비대칭적 구조에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정책에 소상공인들의 ‘지불 능력’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결여돼 있다는 얘기다.
송 회장이 제시한 현장의 체감 경기는 참혹했다. 최근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현상’에 극심한 내수 침체와 소비심리 악화가 겹치며 소상공인의 연체율과 폐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4월 발표한 ‘자영업과 자영업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자영업자의 75%가 연 2000만원 이하 소득에 머물고 있다. 또한 영업이익이 0원 미만인 사업체 비중은 12.8%로 2007년(1.3%)의 약 10배에 달한다. 국세청 통계에서도 2024년 폐업 신고를 한 개인·법인 사업자는 100만8282명으로, 1995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이처럼 사장 스스로가 한 명의 근로자보다 못한 소득을 올리는 극한의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전면 도입되면 현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송 회장은 “한달에 83만원을 버는 사장님이 절반 이상이다”며 “그런데 매월 42만원을 근로자 1명에게 더 주라는 건데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협회가 법안 도입 시 4대 보험료 및 퇴직금 등 예상 추가 부담액을 자체 추산한 결과, 사장 한 명당 연간 약 505만원에 달하는 과중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부터 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장기요양보험에 퇴직금 충당까지 매월 42만1039원 비용이 추가된다.
현장의 비명은 비단 재정적 부담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다수 소상공인은 1인에서 3인 사이의 소규모 직원을 두고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영세 업주들이다. 실상은 이런데 거대 대기업에나 적용될 법한 복잡한 노동법 체계를 완벽히 숙지하고 준수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특히 프리랜서나 도급 계약 형식으로 유연하게 운영되던 골목상권의 고용 관행에 ‘근로자 추정제’가 결합하면 현장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미용실 디자이너·학원 강사·피트니스 트레이너 등 비율제 계약을 맺고 동업자 관계로 일하던 이들이 사장을 상대로 “나는 근로자였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적인 입증 책임이 고스란히 사업주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지금도 많은 사장님이 노무 관리나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것 자체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직원 쓰느니 차라리 키오스크를 두는 게 낫다고 한다. 만약 억울한 소송이나 고발이 들어왔을 때 대기업처럼 대형 로펌이나 전문 노무사를 고용해 대응할 수 있는 소상공인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노동과 프리랜서 보호를 논의할 때 업종별 특성과 계약의 실질을 면밀히 따져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의 플랫폼노동지침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근로자 추정을 적용하며 획일적인 적용을 지양하고 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프리랜서를 광범위하게 근로자로 인정하는 ‘AB5’(Assembly Bill 5) 법안 시행 이후 다양한 업종에서 계약 위축과 고용 감소 논란이 발생했고, 결국 플랫폼 운송 분야는 주민투표를 거쳐 별도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까지 겪었다.
송 회장은 “근로자 추정제가 확대되면 소상공인에게는 ‘사람을 고용하는 순간 법적 리스크를 떠안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며 “이로 인해 건전한 고용이 위축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짜 ‘사장’의 기준은 소득으로 따져야”
그렇다면 소상공인들이 불합리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정부와 법률이 규정하는 ‘진짜 사장’의 기준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송 회장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가져왔던 고정관념을 깨고 매우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제는 임금 지급 주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사장’(사용자)으로 묶어 규제하는 이분법적 분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짜 사장의 기준은 실질적인 ‘소득’을 기준으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현재 노동계가 매년 임금 인상과 권리 보장이라는 ‘근로자의 소득’만 주장하고 있지만 영세 소상공인들의 사업 소득은 이미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을 짚었다. 따라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나 최저임금의 의무를 고스란히 져야 하는 ‘진짜 사장’을 규정할 때는 “업종별·규모별 특성뿐만 아니라 ‘영세·취약사업장 고용주의 실질적 지불 능력’(소득 수준)을 계량화해 명확한 하한선을 두고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세 사업자까지 대기업이나 자본가와 동일한 선상에 두고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모순이고, 소득과 지불 능력이 검증된 이에 한해 법적 의무를 지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송 회장은 “배달 플랫폼과 골목 치킨집도,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와 동네 가맹점주도, 시장 지배력과 협상력·자본력·법률 대응 능력이 완전히 다르다”며 “같은 규제를 적용하면 결국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지게 된다. 이를 규제의 역진성이라고 하는데 좋은 의도로 만든 규제가 오히려 가장 취약한 경제 주체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전국적 규모의 집회를 준비 중이다. 각 광역시를 돌며 소상공인단체의 이야기를 듣고 요구하는 바를 계속해서 정부에 전하겠다는 의지다. 앞서 6월 9일 협회와 소상공인 단체들이 모인 서울 집회는 불안한 목소리가 모인 첫 호소였다. 이날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추진 중단과 최저임금 구분 적용 등 고용정책 전환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다만 아직 정부의 반응은 없다고 했다.
송 회장은 “현장이 감당할 수 있어야 비로소 좋은 정책”이라며 “노동자를 보호하는 일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일은 결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소상공인이 살아야 노동자의 일자리도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현재 소상공인을 위협하는 또 다른 축으로, 최저임금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저임금 제도가 지닌 가장 가혹한 점으로 소상공인의 업종별·규모별 특수성과 '지불 능력'이 반영되지 못하는 '일방통행식 구조'라고 했다.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지 38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최저임금이 동결 혹은 인하했던 적이 없는 사실 자체가 시장의 논리와 상식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해석이다.
그는 “경기가 유례없이 악화했거나 자영업자들의 지불 능력이 바닥을 쳤을 때는 임금도 동결되거나 때로는 낮아질 수 있어야 상식적이고 유연한 제도 아니냐”며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가 매년 큰 폭의 인상안을 던지면 소상공인들이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조금이라도 깎아보려고 애쓰는 구조로 굳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최저임금위원회의 불공정한 인적 구성과 소상공인의 목소리 배제에도 있다.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 삼자 체제에서 정작 임금 인상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삶의 기로에 서는 소상공인연합회 측 위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다 보니 결과는 늘 상향 조정으로 끝나는,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하나 마나 한 게임을 수십년째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나 경총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다 보니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든 골목상권 영세 사장들의 특수한 사정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들러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뼈아픈 토로다.
송 회장의 인터뷰 끝은 ’소통 없는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앉아서 굶어 죽기 딱 좋은 형국”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전하면서도 “정부와 국회는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존 시간과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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