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자도 안 나오는데…” 한은, 13년만에 金 매입 결정 이유는?
- 저점 매수 기회·지정학적 리스크 대응 등 다각도 포석
외환보유액 달러 쏠림 완화…원화 가치 방어·국가 신인도 제고 목적도
국내 생산 물량만 원화로 매입…달러 유출 차단 효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금을 사들이기로 결정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를 비롯해 개인 투자자들의 이목까지 쏠리고 있다.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금리 상승기에는 금에 투자하기보다 고금리 예적금 상품이나 채권 등 안전하면서도 높은 이자율이 보장된 투자처를 먼저 주목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지난해 출간한 책 ‘워런 버핏 바이블’에서 “금은 용도가 많지 않고 산출물도 나오지 않는다”며 “아무런 생산적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중앙은행과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앙은행은 개인투자자와 달리 보유하고 있는 외화의 가치·환율·국가 신인도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 투자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고점 대비 20% 하락… 지정학적 리스크 속 안전자산 재조명
한은의 금 매입 신호에 가장 먼저 이슈가 된 것은 최근 급락한 금 가격이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지난 1월 29일 기준 온스당 5586.2달러로 최고치를 찍은 뒤 내리막을 걸었다. 최근 4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가 소폭 반등해 6일 기준 4299.6달러로 거래됐다. 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한 가격이다. 국내 금 가격도 비슷하게 하락한 점을 고려할 때 저점 매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달러 강세 현상이 지속되고 국제 시장에서 달러가 갖는 지위도 여전하지만,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자산 다변화를 위해 금을 사들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중앙은행 보유 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미국 국채 비중(22%)을 넘어섰다.
외환이 달러에만 집중될 경우 커질 수 있는 변동성 위험에 대비하려는 이유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에 달러화 가치나 미 국채 금리가 크게 출렁이는데 달러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국가 자산의 평가 손익도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 정책 영향권 밖에 있는 금을 일정 비율로 보유하면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
최근 한은이 우려하는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효과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화폐의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반면, 금은 공급량이 한정된 실물 자산으로 물가가 오를 때 금 가격도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금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고물가 국면에서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위험 회피 수단이 된다.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되는 물량만 매입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결정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그동안 국제 금 시장에서 실물 금을 사들여 영국은행(BOE)에 보관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LS MnM이 구리 제련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해 수출하는 금을 국제 시세에 맞춰 장외에서 매입한다. 아울러 국내 수출 업체들이 한은에 금 매입을 요청할 때만 매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외환 유출 차단 및 대외 신인도 확보… 단기 투자는 신중해야
금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달러의 국외 유출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고 금을 확보해 원화 가치까지 방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희섭 한은 외자운용원장은 “국내에서 생산한 금이라는 새로운 매입 채널을 확보해 금 매입 경로를 다변화하고 영국은행에 집중된 보관 장소를 분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은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재정 건전성과 위기 관리 능력을 인정받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국제 금 시세가 약 4200달러 수준일 무렵 이탈리아가 주목받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2452t의 금을 보유한 나라로 미국·독일에 이어 금 보유량 기준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4t으로 외환보유액의 약 1.1%다.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39위 수준이다.
당시 이탈리아가 보유한 금 가치는 약 3000억달러로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13%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는 1970년대 오일쇼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가 요동칠 때도 금을 매각하지 않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은이 금을 매입하기로 한 것은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변화, 국제 금융 시장에 대한 대응 등 여러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결정”이라면서도 “이는 초장기 투자가 가능한 중앙은행의 계산에 따른 것으로 단기 수익을 염두에 둔 개인이라면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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