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에코프로·맥쿼리도 베팅한 K뷰티..제조생태계에 몰리는 자금줄 [K뷰티공장에 뭉칫돈 몰린다]①
- ‘무슨 브랜드가 뜰까’에서 ‘누가 만들까’로
브랜드의 유행보다 수주에 베팅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K-뷰티 제조 생태계에 글로벌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국내외 사모펀드(PEF)와 전략적 투자자(SI)가 화장품 브랜드 대신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패키징 업체에 잇따라 자금줄을 대고 있어서다.
최근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한국에 있는 화장품 생산 기반 자체가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브랜드 하나의 흥행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해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성장성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제조 기반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K브랜드 대신 K공장 산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유럽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글로벌 PEF 운용사 어펄마캐피탈은 화성코스메틱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맥쿼리프라이빗에쿼티(맥쿼리PE)를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어펄마캐피탈이 특수목적법인(SPC) 아스테리온홀딩스를 통해 보유한 화성코스메틱 지분 약 70%와 기초화장품 ODM 업체 나우코스 지분 전량이다. 거래 규모는 3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화성코스메틱은 에스티로더그룹 등을 고객사로 둔 색조 화장품 ODM 업체다. 씨앤씨인터내셔널과 함께 국내 색조 ODM 시장을 이끌며 글로벌 브랜드를 고객사로 확보해왔다. 지난해 매출 1107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235억원을 기록했다. 맥쿼리PE가 나우코스까지 품으면 색조와 기초를 아우르는 ODM 생산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된다. 맥쿼리PE는 지난해 결성한 1조1200억원 규모의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펀드 6호’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기회다. 이번 화성코스메틱 인수전에는 배터리 소재 기업 에코프로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와 함께 뛰어들었다. 배터리 업황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K-뷰티 제조업을 새로운 투자처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
비단 화성코스메틱만의 일은 아니다. 인수·합병(M&A) 자문사 삼일PwC에 따르면 최근 국내 화장품 제조 분야에서는 ODM·OEM 업체뿐 아니라 용기·부자재 제조사에 대한 재무적 투자자의 인수가 이어지고 있다. 전략적 투자자들도 사업 다각화를 위해 제조업체를 인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지난해 미국계 PEF 텍사스퍼시픽그룹(TPG)로부터 국내 화장품 용기 제조사 삼화 지분 100%를 약 7330억원에 인수했다. 삼화는 300개 이상의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에 패키징을 공급하며 ▲로레알 ▲에스티로더 ▲샤넬 ▲LVMH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에어리스 펌프와 쿠션 용기 등 고기능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R&D 역량도 갖췄다.
싱가포르 비즈니스타임스는 지난해 9월 KKR과 블랙스톤의 투자를 계기로 한국 뷰티·퍼스널케어 분야의 PE 거래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2025년 관련 거래 규모가 14억1000만달러(약 1조9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KKR의 삼화 인수와 블랙스톤의 한국 프리미엄 헤어케어 체인 JUNO 투자를 기점으로 글로벌 자금이 한국 뷰티산업의 브랜드뿐 아니라 제조·서비스 인프라에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 뷰티업계 관계자는 “KKR이 산 것은 특정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가 계속 제품을 내놓는 한 반복적으로 주문이 발생하는 공급망”이라며 “고객사가 바뀌더라도 주문을 이어갈 수 있는 기술력과 영업망, 생산 기반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왜 K뷰티 생태계에 꽂혔나
그동안 글로벌 뷰티 시장은 유망 브랜드를 인수한 뒤 자본과 연구·개발(R&D), 글로벌 유통망을 더해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3CE ▲닥터지 ▲닥터자르트 ▲AHC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근래들어 K-뷰티의 성장 방식이 변화 중이다. 해외에서 팔리는 한국 브랜드가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과 유럽의 인디 브랜드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들이 한국 ODM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국 제조사가 특정 브랜드의 흥망과 관계없이 여러 브랜드의 성장에 올라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출 규모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23년 84억6000만달러(약 11조9000억원)에서 2024년 102억달러(약 14조3700억)로 처음 1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114억3000만달러(약 16조1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 대상 국가도 2025년 202개국으로 확대됐다. 특히 미국 수출은 21억9000만달러(약 3조850억원)로 중국을 제치고 최대 시장으로 올라섰다.
시장이 넓어지면서 제조사의 고객 기반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국콜마·코스맥스·코스메카코리아·씨앤씨인터내셔널 등 주요 ODM 4개사의 지난해 합산 매출은 6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인디 브랜드의 성장과 수출 확대가 생산 주문 증가로 이어지면서 이들 업체는 생산능력 확대와 R&D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해외에서도 한국 제조사의 경쟁력을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는 지난해 8월 한국 화장품 산업을 조명하면서 “한국 ODM사는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는 동시에 기록적인 속도로 혁신을 내놓을 수 있는 연구개발팀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뷰티 트렌드와 혁신을 분석하는 아시아 코스메랩의 플로랑스 베르나르댕 대표는 “한국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새로운 제형과 재미있는 패키징을 선보이는 데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한국 ODM사의 역할이 단순한 하청관계를 넘어서 생산에서 제품 개발로 넓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제형을 개발하고, 패키징을 설계하고, 국가별 규제에 맞춰 제품을 조정하는 등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 출시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뷰티 공장’이 브랜드 뒤에서 제품을 만드는 생산시설을 넘어 글로벌 뷰티 시장의 공급망이 된 셈이다.
글로벌 뷰티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로레알과 에스티로더 등 내로라하는 그룹의 임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간판 ODM사 대표와 별도 미팅을 가질 정도로 K-뷰티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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