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공장만 지으면 끝?”…800조 메가특구, 진짜 난관은 따로 있다
- 3대 메가프로젝트 진행…소부장 생태계 동반 구축이 관건
정부는 '지역서 사람 키우겠다'지만...당장 인력 확보 시급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정부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지방 거점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협력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지방에서 이뤄지더라도 이들과 생산 현장을 공유하는 수많은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소부장의 동반 성장을 메가프로젝트 성공의 핵심 조건으로 보고 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지난 8월 6일 “반도체·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소부장 생태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미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산설비와 인력을 구축한 소부장 기업들이 새로운 지방 거점까지 얼마나 원활하게 따라갈 수 있느냐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책이 실제 기업의 투자 결정으로 이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부장 기업, 정상 안착 가능할까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국에 새로운 첨단산업 거점을 만드는 게 골자다. 반도체의 경우 서남권에 총 800조원 규모의 제2 생산거점을 조성하고 충청권에는 첨단 패키징, 동남·대경권에는 소부장 혁신 거점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대기업의 투자 효과가 협력업체로 이어지도록 지원책도 마련했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개발부터 실증·양산까지 함께하는 ‘함께성장 프로젝트’를 향후 10년간 1조원 규모로 추진하고, 소부장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5조원 규모의 상생무역금융도 공급하기로 했다.
앵커기업도 움직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서남권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앵커기업에게 소부장 협력사와의 적기 협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협력사들의 동반 입주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반도체는 수많은 장비·소재·부품업체가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연결된 산업이다. 장비 이상이나 소재 문제가 발생하면 수율과 직결되는 만큼 협력업체의 신속한 현장 대응이 중요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장비 설치와 유지보수, 부품 교체, 공정 대응이 수시로 필요하기 때문에 소부장 업체가 생산기업과 가까이 있을수록 대응과 공동 기술개발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비용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반도체 소재기업 대표는 “이미 수도권을 중심으로 설비를 마련한 상황이어서 지방에 진출한다면 기존 설비를 옮기기보다 추가 설비를 만들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요 납품기업과 협의도 필요한 만큼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돈이 문제”라며 “정부 지원으로 설비투자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면 확보된 여력을 현지 인력 채용이나 기존 기술인력의 지방 이동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돈만의 문제도 아니다”…사람까지 움직여야
소부장 기업들은 우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들의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떤 공정을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가동할지가 정해져야 협력사도 예상 물량과 필요한 설비 규모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1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우리 같은 1차 협력사는 납품기업의 결정에 따라 생산과 투자계획 등 많은 것이 달라진다”며 “일단 대기업의 구체적인 투자계획과 진행 상황을 확인한 뒤 지방에서 어떤 투자가 필요한지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비투자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는 사람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필요한 인력을 해당 지역에서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 대학들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일할 생산·실무인력과 R&D 인재를 현지에서 양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는 지역 기업과 대학을 반도체 공동훈련센터로 추가 지정해 협력사 재직자와 채용예정자까지 교육할 계획이다. 지역 대학들도 반도체 관련 학과 신설·확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당장 핵심 기술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 선과제다. 기존 수도권 사업장에서 R&D와 공정을 담당해온 숙련 엔지니어를 지방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실제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도권 인력이 지방근무를 꺼리거나 지방으로 내려갔다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이른바 ‘취업 남방한계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주여건을 인력 확보의 중요한 변수로 꼽는다.
이차전지 소재 1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기존 기술인력은 현재 사업장에서도 필요한 핵심인력인데 지방으로 보내면 기존 조직에 공백이 생긴다”며 “단순 업무 인력은 현지에서 채용할 수 있겠지만 숙련 기술인력 확보는 별도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적 자원은 정부가 강제하거나 단순히 지원한다고 움직이는 문제는 아니다”며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업에 충분한 지원을 하고 기업이 이를 활용해 정주여건을 개선하거나 임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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