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1조6천억 기술 유출도 6년4개월, 특별법은 무기징역까지 [산업스파이, 대한민국을 훔치다]④
- 외국 정부 개입한 기술 탈취 ‘경제간첩죄’로 규율
해외 민간기업 위한 기술 유출도 최소 징역 7년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공정 기술’을 중국 반도체 기업 CXMT로 유출한 전직 임원에게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징역 6년4개월이다. 국내 기술 해외 유출 사건 가운데 역대 최고 형량이다.
삼성전자가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비용은 약 1조6000억원이다. CXMT는 유출된 기술을 바탕으로 D램 양산에 성공했다. 피해 규모는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유출자에게 선고된 형량은 7년을 넘지 않았다.
SK하이닉스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국적 전직 직원은 화웨이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A4용지 4000여장 분량의 반도체 공정 관련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징역 5년과 벌금 3000만원으로 형량을 높였다.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 예정인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 시행된 뒤 같은 범죄가 발생한다면 처벌은 어떻게 달라질까. 핵심은 기술 유출의 배후와 목적에 따라 범죄를 구분하고 징역형의 하한과 벌금, 법인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다.
삼성·SK 사건, 경제이적죄 적용 가능
특별법은 국가핵심산업정보 유출을 ‘경제간첩죄·경제이적죄·일반 경제이적죄’로 구분한다. 외국 정부 등을 이롭게 할 목적이면 경제간첩죄, 해외 민간기업을 위한 범행이면 경제이적죄를 적용한다. 정보가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유출했지만 구체적인 배후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에는 일반 경제이적죄로 처벌한다.
현재 확인된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건에는 경제이적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기술을 취득하거나 누설·반출했다는 점이 입증되는 경우다.
경제이적죄 가운데 국가핵심산업정보를 직접 취득·사용·누설하거나 국외로 반출한 행위는 7년 이상의 징역과 8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상 유기징역의 상한이 30년인 만큼, 같은 범죄가 특별법 시행 이후 발생하면 최대 징역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삼성전자 사건의 징역 6년4개월과 SK하이닉스 사건의 징역 5년보다 법정형의 하한이 높아지는 셈이다.
다만 실제 선고형이 반드시 7년 이상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범행 가담 정도와 피해 회복, 자수 등 양형 사유를 고려해 법률상 감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법은 형량을 결정하는 출발점인 법정형의 하한을 높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외국 정부나 정보·군사기관의 개입이 확인되면 경제간첩죄가 적용된다.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과 100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다만 중국 기업에 기술을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해당 기업이 외국 정부의 지배·통제를 받았거나 범행이 외국 정부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구체적인 배후를 확인하지 못해도 기술이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고 빼돌렸다면 일반 경제이적죄로 처벌할 수 있다. 법정형은 5년 이상의 징역과 65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기존 법체계에서 놓칠 수 있던 유출 행위까지 단계별로 규율하려는 취지다.
형량 넘어 법인·범죄수익까지 겨냥
특별법은 기술을 직접 빼돌린 개인뿐 아니라 범행에 관여한 법인도 처벌한다. 법인의 업무와 관련해 경제간첩죄가 발생하면 법인에 최대 200억원, 경제이적죄에는 최대 1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유출 대가로 받은 이직 보너스와 고액 연봉 등 범죄수익과 이를 통해 불린 파생재산은 몰수한다. 직접 몰수가 어려우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징한다. 기술을 팔아 얻은 경제적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처벌 범위도 국경 밖까지 확대된다. 외국인이 해외에서 국내 기업의 국가핵심산업정보를 탈취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경제안보를 침해했다면 특별법을 적용할 수 있다. 경제간첩죄의 공소시효는 25년으로 정하고 미수뿐 아니라 예비·음모도 처벌한다.
피해기업의 수사·재판 참여도 확대한다. 피해기업은 압수된 디지털 증거를 선별·분석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낼 수 있고 구속 심사와 재판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증거 열람·복사 과정에서 핵심기술이 다시 노출되지 않도록 비밀유지명령을 내릴 근거도 마련했다.
기술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 보안 관리가 허술한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핵심 정보가 다시 노출될 수 있다. 피해기업이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다. 특별법은 국가와 법무부 장관에게 피해기업 보호·지원 책무를 부여하고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신고 포상금과 증인 보호 근거도 마련했다. 처벌 강화뿐 아니라 기업이 안심하고 범죄를 신고해 초기 수사에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특별법이 시행돼도 기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건의 형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 당시보다 무거워진 형벌을 소급해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 시행 이후 발생한 범죄부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다.
모든 기술 유출 사건의 처벌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유출된 자료가 법에서 정한 국가핵심산업정보인지 ▲피의자가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았는지 ▲외국 정부나 기업을 이롭게 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한다.
실제로 SK하이닉스 사건 중 일부 혐의는 해당 자료가 산업통상부 고시상 보호 대상인 첨단기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보호 대상의 범위가 불명확하면 특별법이 생겨도 입증 문제는 반복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며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이 한국의 첨단 핵심기술을 노리고 있고, 상당수 산업에서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거나 추월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자국 기술 보호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현행 양형 기준은 지나치게 낮다”며 “과거와 달리 해외의 기술 탈취 위협이 커진 만큼 이제는 한국의 국력과 기술 수준에 맞춰 핵심기술을 보호할 법적 장치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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