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회사채보다 은행 문 두드리는 기업들…자금조달 85%가 ‘대출’
- 중견·중소기업 금융부채 90% 이상 대출 의존
“증권사·자본시장 등 기업금융 통로 넓혀야”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국내 기업들이 필요한 돈을 조달할 때 회사채 등 자본시장보다 대출에 더욱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보유한 여유자금 역시 은행 단기예금에 집중돼 있어 ‘돈을 빌리는 곳’과 ‘남는 돈을 맡기는 곳’ 모두 은행 중심이라는 분석이다.
25일 자본시장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기업 금융자산·부채의 구조적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국내 기업의 전체 대출부채 비중은 2025년 말 84.7%로 집계됐다. 2010년과 비교하면 6.7%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다.
반대편에서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줄었다. 회사채 등을 통한 시장부채 비중은 같은 기간 6.7%포인트 감소해 15.3%에 그쳤다. 지난 15년 동안 기업 자금조달 구조가 시장성 자금보다 대출 쪽으로 한층 기울어진 것이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강하다. 대기업은 금융부채 가운데 약 절반을 대출로 조달하는 반면 중견·중소기업의 대출 비중은 90%를 넘어선다. 회사채 발행이나 다른 시장성 조달수단에 접근하기 어려운 기업일수록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보다 여전히 높은 의존도
대출 공급 주체만 놓고 보면 과거보다 변화는 나타났다. 전체 대출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82.6%에서 2025년 73.9%로 8.7%포인트 하락했다.
그럼에도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국내 기업금융에서 은행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는 평가다.
미국은 기업 금융부채의 60% 이상이 시장부채로 구성돼 있고 대출 비중은 40%를 밑돈다. 은행 대출 비중 역시 지난해 말 기준 최대 48% 수준으로 분석됐다. 기업이 회사채 등 자본시장을 활용해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구조가 한국보다 발달해 있다는 의미다.
독일은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전체 기업부채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95%로 한국보다 높지만 은행 대출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대신 비금융회사에서 빌리는 자금의 비중이 35.5%에 달한다. 대출 중심이라는 점은 같아도 실제 돈을 공급하는 주체가 은행에 집중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시스템이 은행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자금 공급 경로가 충분히 다양해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기업 간 자금거래가 상대적으로 활성화하지 않은 점도 은행 의존도를 높인 요인으로 꼽았다.
기업 자금운용까지 ‘은행 중심’
기업이 조달한 자금뿐 아니라 보유자금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기업 예금자산 가운데 저축성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5.8%로, 상당 부분이 은행 단기예금 형태로 운용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여유자금을 다양한 금융상품에 분산하기보다 은행 예금에 보관하고, 다시 필요한 자금은 은행 대출을 통해 마련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기업에 가장 효율적인 자금 운용·조달 방식인지 여부다. 은행 중심 금융도 자금 중개가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장점이 있지만 기업대출에서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 여전하고 기업의 여유자금 역시 단기예금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 대출 외에도 회사채 등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금융을 확대하고, 기업의 여유자금 운용 과정에서는 증권사 등 다양한 금융회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금융 공급 구조 자체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이 증권사 등을 통해서도 여유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본시장 등 다양한 자금조달 채널을 통해 부족 자금을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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