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은행 문 30분 늦게 열면?…'직원 웃고 고객은 불편' 사실일까
- [은행 창구의 재편]①
내년 4월부터 오전 9시30분 개점…대면 영업 30분 단축
조기 출근 개선 취지지만 업무 재설계 없으면 ‘반쪽짜리’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은행 문을 30분 늦게 연다고 업무 강도가 크게 줄어들까요. 오히려 은행원에 대한 인식만 나빠질까 우려됩니다.”
시중은행 직원 A씨는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은행 영업시간 변경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은행 영업점의 문을 여는 시각은 오전 9시에서 오전 9시30분으로 늦춰지지만, 하루 업무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조기 출근 관행을 줄이겠다는 노사 합의가 직원의 업무 부담은 그대로 둔 채 금융소비자의 창구 이용 불편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주목된다.
은행 문 30분 늦게 연다…18년 만에 영업시간 바껴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6일 2026년도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내년 4월부터 은행 점포의 영업 시작 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전 9시30분으로 변경된다. 폐점 시간은 오후 4시로 유지된다. 고객이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7시간에서 6시간30분으로 줄어든다.
은행 정규 영업시간이 바뀌는 것은 코로나19 당시 한시적 단축을 제외하면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은행권은 영업시간을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에서 오전 9시~오후 4시로 30분씩 앞당겼다. 반면 이번에는 폐점 시간을 오후 4시로 유지한 채 개점만 늦춰, 하루 대면 영업시간 자체를 30분 줄이는 첫 사례다.
금융노사는 디지털 금융 확산과 고객 이용행태 변화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영업 시작 전 충분한 업무 준비 시간을 확보해 고객 서비스 질을 높이고 금융소비자 보호에도 더 충실하겠다는 취지다.
조용병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회장은 “이번 합의는 임금 인상뿐 아니라 고용 확대와 사회공헌 등 금융산업의 사회적 역할 강화에도 노사가 함께 뜻을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30분 늦춘다고 은행원 업무 줄어들까
은행 영업점의 업무는 고객이 들어오는 오전 9시보다 먼저 시작된다. 직원들은 현금과 서류를 점검하고 전산 시스템을 확인한다. 당일 상담·대출 실행 일정을 살피고, 전날 처리하지 못한 민원과 사고 예방 관련 업무도 확인해야 한다. 개점 직전에는 창구를 열기 위한 각종 준비가 집중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오전 9시 개점에 맞추려면 정시보다 일찍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번 합의는 이러한 관행을 공식적으로 바로잡는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이 준비 시간을 근무시간 안에서 보장받는다면, 업무의 질을 높이고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업시간 단축은 금융노조가 추진해 온 ‘주 4.5일제’ 도입과도 맞닿아있다. 노조는 과거 금융권이 ‘주 5일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할 당시에도 국민 불편과 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후 주 5일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였다는 입장이다. 이번 노동시간 단축도 금융권을 시작으로 다른 산업까지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개점 시각만 늦추고 인력과 업무 절차를 그대로 둔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고객이 방문하는 시간대가 오전 9시30분 이후로 몰리면 창구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대출 심사와 기업금융, 내부 보고, 민원 처리처럼 고객 영업시간과 무관하게 해야 하는 업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은행별·점포별 사정도 다르다. 기업 고객 거래가 많은 지점, 외국환이나 수출입 업무 비중이 큰 영업점, 대출 상담 수요가 몰리는 지역은 준비·마감 업무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본점 부서와 영업점 간 보고·결재 체계가 기존처럼 유지된다면 영업시간 단축의 효과가 일부 직원에게만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오전 30분의 공백…고객 불편은 숙제
금융 소비자에게도 오전 30분의 변화는 작지 않다. 출근 전 창구를 찾던 직장인이나 현금·수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자영업자는 은행 방문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법인 통장 거래와 각종 증빙서류 제출, 대면 확인이 필요한 금융 업무는 앱으로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영업시간 변경이 시행되기 전 은행별로 오전 시간대 창구 이용 수요와 업무별 대기시간을 면밀히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은행원들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담을 금융 소비자의 몫으로 돌리는게 맞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도 창구 의존도가 높아 불편이 커질 수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은행을 이용하기도 어려운데 개점까지 늦추는 것은 소비자 편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영업시간 단축이 ‘은행원만 편해지는 제도’라는 인식으로 굳어지면 이번 합의의 취지도 퇴색될 수 있다. 은행권은 줄어든 30분이 직원들의 준비 시간과 휴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업무 처리와 신속한 고객 응대로 돌아간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내년 4월 새 영업시간의 성적표는 직원의 조기 출근과 불필요한 초과근무가 얼마나 줄었는지, 동시에 고객의 대기시간과 불편은 얼마나 늘었는지가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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