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8조원 뚫린 바이낸스 쇼크…아날로그식 ‘콜드월렛’ 중요성 커졌다
- 금융위, 법정 의무 비율 80% 상향카드 만지작
5대 거래소, 증권사급 정보보호 투자에도 해킹 위협 커져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최근 글로벌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발생한 8조원 규모의 대형 해킹 사고로 ‘콜드월렛’(Cold Wallet)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자산 보호를 위해 아날로그식 대안이 더 주목받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거래소들의 보안·사고 대응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나섰다. 당국은 인터넷과 완전히 격리된 물리적 보관 창고인 콜드월렛 의무 보관 비중을 현행 기준보다 대폭 높이는 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콜드월렛이란 인터넷과 완전히 차단된 오프라인 상태에서 가상자산의 소유권이자 암호화 열쇠인 개인키를 보관하는 지갑을 말한다. 온라인에 연결되어 상시 거래가 가능한 지갑을 ‘핫월렛’(Hot Wallet)이라 부르는데 이에 반대되는 용어다. 코인을 전송할 때마다 기기를 연결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네트워크 침투나 원격 해킹 공격 경로를 차단해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소 등 사업자가 고객 예치 자산의 80%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투자자 자산의 상당 부분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낸스 사태처럼 핫월렛을 겨냥한 침해 사고가 조 단위 피해로 이어지자 금융당국은 최소 기준을 더 높이는 카드를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외부 공격 노출 자산의 규모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5대 원화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디지털엑스·스트리미)의 콜드월렛 보관 비율은 80%를 웃돈다. 거래소별로는 ▲업비트 99.17% ▲빗썸 94.76% ▲코인원 85.0% ▲디지털엑스(옛 코빗) 82.79% ▲스트리미(고팍스) 80.54% 순이다.
이들은 정보보호 투자도 매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정보보호 공시 포털에 따르면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지난해 정보보호 부문 투자액은 243억4152만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147억7875만원)보다 약 100억원 늘려잡았다. 같은 기간 빗썸은 106억원에서 123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는 국내 대형 증권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187억원, 신한투자증권은 171억원 수준이었다. NH투자증권과 KB증권, 하나증권도 100억원 이상을 책정했다.
금융당국, 타 거래소 사고 시 출금 제한 허용도 검토
금융당국이 콜드월렛 보관 비중 상향을 강조하는 것은 해커가 노릴 수 있는 핫월렛 파이를 줄이는 것이 추가적인 대형 해킹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콜드월렛 비율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핫월렛에 일정 부분의 자산을 남길 수밖에 없고, 이 자금은 해커들의 표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부 승인 권한이나 통제 시스템이 무너지면 언제든 대형 유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콜드월렛 비율 상향 외에도 비상 상황에 대비한 가상자산 사업자의 내부 체계 정비를 강도 높게 주문했다. ▲핫월렛 출고 승인 및 서명 체계에 대한 전수점검 ▲입출고 상시 모니터링 강화를 위한 전문 인력 추가 확보 ▲이상 접근 시도 발생 시 당국 및 업계 간 신속 보고·공유 체계 구축 ▲유사시 이용자 피해 보상을 위한 준비금 추가 적립 등이 핵심 내용이다.
금융위는 업계가 지속적으로 건의해 온 ‘타 거래소 해킹 시 출금 제한 허용’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에 나섰다.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상 입출금 차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자사 해킹 시 출금 금지는 정당 사유에 해당하지만 해외나 타 거래소에서 해킹이 발생했을 때 입출금을 차단하는 것은 법적인 한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자칫 이용자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시 감시 이상이나 타사 해킹 사건 발생 시 출금 제한을 허용하는 정당한 사유로 명시하는 유권해석을 내릴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이번과 같은 해외 대형 사고 발생 시에도 가상자산 거래소가 즉각 대응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출금 지연·인력 비용 부담…일부 거래소, 콜드월렛 비중 일괄 확대에 우려
일부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콜드월렛 확대 방침이 일괄적으로 이뤄질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콜드월렛에 보관된 자산을 핫월렛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는 담당 관리자의 승인과 물리적인 보안 해제 등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출금 처리가 지연될 경우 변동성이 극심한 시장에서 이용자들이 제때 매매를 하지 못하면 손실 배상 책임이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빗썸은 올해 2월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 발생 직후 콜드월렛 보관 비중을 90% 이상으로 높였는데, 이용자들의 인출 요청이 몰리며 출금 지연 현상이 발생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이용자의 출금 요청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려면 핫월렛에 일정 수준 이상의 가상자산 유동성을 상시 배치해 두거나 콜드월렛 관리자를 대규모로 채용해야 한다”며 “서비스를 즉각 제공하지 못하면 출금 지연 사태가 생길 수 있고, 많은 인력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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