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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비상구 없나?] 얽힌 실타래, 묘수는 없다

[뉴타운 비상구 없나?] 얽힌 실타래, 묘수는 없다

뉴타운 정책 실패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6월 초 열린 대통합국민연대 발기인대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0년간 뉴타운 사업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자산가치를 늘리는 매력적 수단의 하나로 주목 받았다. 우리나라 뉴타운 사업은 ‘합리적 도시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신도시 건설정책’으로 불리는 영국의 ‘뉴타운 정책’을 모델로 삼았다. 용어도 그대로 빌려왔다.

국내에서 ‘뉴타운 사업’은 공식적 법률 용어는 아니다. 재개발, 재건축, 도시환경정비, 재정비촉진사업 등을 통틀어 뉴타운 사업으로 부른다. 국내에서 뉴타운을 정의한 건 ‘서울시 지역균형발전 지원에 관한 조례’에서 ‘동일 생활권의 도시기능을 종합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해 시행하는 제반사업’으로 규정한 게 유일하다.

이런 실정은 입법적 정비와 제도적 지원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시가 2002년 10월 기존 정비사업과 차별되는 광역적이고 복합적 성격의 뉴타운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시행을 서둔 것과 무관치 않다. 척박한 제도적 환경에서도 뉴타운 사업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지방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여기에는 일부 주민이나 투자자가 재산 증식 수단으로 나름 성과를 거둔 ‘무용담’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뉴타운 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서울시청 앞에서 한 시민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뉴타운 사업의 장밋빛 꿈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 경기침체 등을 계기로 된서리를 맞았다. 더욱이 최근 부동산 경기의 전반적 침체로 뉴타운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구매력을 갖춘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 은퇴와 인구증가율의 감소 추세, 주택 소유에 대한 인식 변화, 전국 평균 주택보급률 100% 상회 등 시장 안팎의 주택 관련 소비패턴 변화도 뉴타운 사업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뉴타운 사업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뉴타운 사업은 늪에 빠져 있다. 부동산 경기도 문제지만 주민이 부담해야 할 돈이 늘고 재산권 행사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지구 지정으로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의 본질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무엇보다 합리적 도시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낙후 지역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해 ‘도시재생’을 모색한다는 본래 지향점이 퇴색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뉴타운 사업 도입 취지는 서울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강북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에서 단골 공약이 되고 부동산시장의 활황 속에 자산을 늘리는 손쉬운 수단으로 탈바꿈하면서 본래 의미는 퇴색됐다. 단순히 도심지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기 위한 제도로 변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산가치 상승 같은 눈앞의 열매에만 집착하다 보니 사업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많은 문제점을 이른바 ‘폭탄 돌리기’ 식으로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다.

사업 추진과정의 구조적 한계, 즉 뉴타운 사업에 대한 체계적 제도 정비 미진과 구체적 마스터플랜(종합계획)의 부재도 뉴타운을 늪으로 빠뜨린 원인 중 하나다. 장기적 도시발전 측면보다 단기적 시각에서 주로 접근했던 것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뉴타운 사업의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심리만 높아진 가운데 자신의 지역구 주민 입장만을 고려한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은 뉴타운 정책을 심하게 왜곡시켰다. 물론 뉴타운 사업이 손쉬운 ‘대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부 주민의 그릇된 인식도 원인 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뉴타운은 ‘보물단지’가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도시재생이란 본래 취지 살려야사면초가에 직면한 뉴타운 사업의 출구전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시장상황이나 지자체의 지원 가능성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예정돼 있다. 정치권 풍향계가 민심을 명분으로 근본적 해법이 아닌 눈앞의 문제 해결에 쏠릴 우려가 있다.

이미 뉴타운 사업은 민원의 단골 메뉴가 됐다. 물론 정책당국의 대책 마련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서울시는 올 4월 기존 뉴타운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되 전면 철거가 아닌 역세권 중심의 고밀·복합형으로 개발한다는 내용을 담은 ‘신주거정비 5대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정치권에서도 뉴타운 사업의 일부 경비 지원과 용적률 상향, 뉴타운 지정 해제요건 명문화 등을 포함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을 여러 건 발의했다.

그러나 대부분 기존 주민의 부담을 국민 혹은 해당 지자체 전체 주민에게 전가한 것과 다름없다. 발의된 법안 역시 기존 메뉴에 양념만 살짝 바꾼 것이 많고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이 많다.

제대로 된 뉴타운 사업의 해법은 사실 뻔하다. 당장은 조금 불편하고 부담이 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낙후 지역 주거환경 개선, 기반시설 확충 및 도시기능 회복을 위한 계획을 광역적으로 수립해 체계적·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반시설 확충을 선행 또는 병행토록 하고 주민의 비용부담 부분은 공공의 보증과 금융권의 협조가 가능한 사업구조가 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일반분양에 의존하는 현재와 같은 사업구조로는 성공적 결과를 기약할 수 없다.

뉴타운 사업은 공공성도 적지 않으므로 정비사업의 공공관리제 적용과 과도한 개발이익의 적절한 환수도 당연히 연계할 필요가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지구지정 해제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정 해제에 따른 주민 손실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접근하되, 정책적 책임과 지원도 일부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뉴타운 사업의 해법은 당연히 주민이 주체가 돼 마련해야 한다. 주민이 선택권을 갖는 대신 책임과 경제적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지자체가 주거환경 개선 및 장기적 도시발전의 궁극적 책임 주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판만 벌여 놓고 ‘민민 갈등’을 방치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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