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volution] 새로운 ‘리비아’를 건설하라 - 이코노미스트

Home > 부동산 > 건설

print

[world revolution] 새로운 ‘리비아’를 건설하라

[world revolution] 새로운 ‘리비아’를 건설하라



DIRK VANDEWALLE 기자몇 주 전 벵가지에서 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평생 리비아에서 살았고, 그녀의 아버지는 반란이 일어나기 이전 무아마르 카다피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녀에게 반란이 시작된 이후 제일 좋아진 점이 뭐냐고 물었다. 난 그녀가 “새로 찾은 자유”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생전 처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말할 수 있게 된 기쁨을 이야기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카다피의 연설을 매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리비아 국민이 카다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마디로 요약하는 의미 있는 대답이었다.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카다피 치하에서 겪은 어려움 중 사소한 듯 보이는 한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혁명의) 길잡이’ 또는 ‘왕중왕’으로도 불렸다]는 목소리만 들어도 숨이 막힐 듯한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카다피 정권의 최후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42년 동안 독재의 칼날을 휘둘러온 정권이 리비아 서부에 근거지를 둔 반군의 손에 힘없이 무너졌다. 좀 뜻밖이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는 측면도 있다. 물론 지난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리비아 내전에 개입한 이후 카다피 정권의 자원에 지속적으로 손실을 입혔다는 사실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동부의 반군과 달리 서부의 반군은 조직력을 갖췄고, 트리폴리를 공격하기 수주일 전부터 뛰어난 결속력을 보였다. 게다가 반군은 프랑스와 카타르의 지원으로 군사 보급품이 풍족했고, NATO의 정보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었다.

현재 반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했다. 많은 관측통이 우려했던 갑작스러운 정권 붕괴였다. 내전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국가과도위원회(NTC: 반란의 선봉에 섰던 벵가지의 반군 정부)의 진정한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리비아의 새 지도자들은 군사적 승리를 앞으로 펼쳐질 더 큰 싸움에서의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그 싸움은 지난 42년 동안 리비아를 이끌어온 것과는 정반대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원칙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리비아는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국가 건설이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시민 제도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카다피의 무모한 무국가주의(자마히리야: 인민대중국) 추구는 리비아의 국가 건설을 방해했다. 정치 세력이 국가 기관의 개입 없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는 균형 잡힌 국가 체제가 아니었다. 국가는 석유 수입을 국민에게 배분하는 일 외에(그리고 국민을 억압하는 일 외에) 거의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내전이 종결된 지금 국가 건설이 원점부터 시작돼야 한다.

둘째는 리비아를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된 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이는 단지 새로운 국가 기관의 설립을 뛰어넘어 모든 리비아인의 충성을 이끌어낼 만한 국가의 건설을 의미한다. 지도자들은 일부 집단이 국가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려면 통일된 시민적 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 리비아는 1951년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온 국민이 공유할 만한 시민 정신을 형성하지 못했다. 카다피와 그의 전임자 이드리스 국왕은 국민에게 국가를 뛰어넘거나(범아랍주의 또는 이슬람주의) 거기에 못 미치는(종족주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NTC는 국가 건설을 향해 믿음직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위원회는 투명한 국가 기관을 기반으로 카다피 이후 리비아 건설을 계획했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족한 자원에 의존해 해낸 일이다. 세계 각지의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팀들이 두바이에 기반을 둔 70인 대표단의 도움을 받아 국가 안정화 계획을 세웠다. 이 위원회는 또 자체 회의와 외부의 자문을 토대로 몇 가지 버전의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리비아의 안정화와 공공질서 확립을 위한 장·단기 계획도 세웠다. 내전 기간 동안 SA-7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포함해 상당량의 무기가 약탈된 상황을 고려할 때 공공질서의 확립은 꽤 어려운 문제가 될 듯하다. NTC는 또 선거와 구정권의 응징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계획도 세웠다.

고무적인 일이다. NTC의 계획들은 카다피 정권이 내세웠던 어떤 계획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의미 있다. 또 NTC의 목표는 현실성이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지난 7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리비아 연락그룹(LCG) 회의에서 이 그룹에 속한 24개국이 NTC를 리비아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 것은 적절한 행동이었다.

▎카다피의 캐리커처 이미지.

▎카다피의 캐리커처 이미지.

NTC의 조직력과 외교력은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많다. 지난달 반군 사령관 압델 파타 유네스가 살해됐을 때 드러난 NTC의 분열상은 이 조직의 단결성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를 입증했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은 당초 한 기자회견에서 카다피의 측근이 유네스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벵가지에 있는 40개 반군 민병대 조직(미스라타에는 이런 조직이 120개나 더 있다) 중 하나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잘릴은 그 기자회견 당시 유네스가 속했던 오베이디 종족의 구성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NTC 위원은 보복을 우려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리비아 사회의 오랜 특징 중 하나이면서도 카다피 치하에서는 정치적으로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던 종족 문제가 유네스의 죽음으로 전면에 부상하게 됐다. 또 다른 측면에서도 분열이 예상된다. 반란에 적극 참여해 보상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벵가지에 남아 있었던 젊은이들. 리비아 국내에서 반란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국외에 머물렀던 사람들. 갈수록 조직화 돼가는 이슬람주의자들과 정교분리를 신봉하는 사람들. 이런 분열은 반군의 트리폴리 공격과 함락, 그리고 그에 따른 환호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NTC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추진력이 생긴다 해도 국가 건설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가 될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카다피 이후 리비아의 최대 문제는 해외원조와 자산동결 해제, 투자자들이 촉발할 일종의 ‘골드 러시(새로 발견된 금광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다. 국가의 규제력이 워낙 약한 데다 독재의 종식으로 비롯된 국민의 행복감이 가라앉고 나면 리더십의 부재가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라 우려는 한층 더 커진다. NTC가 내전 기간 동안 해놓은 기초 작업이 도움되겠지만 그것으로 충분치는 않을 듯하다. 또 리비아 현대 역사에서 늘 그래 왔듯 석유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카다피 치하에서 석유는 나라를 망친 주범이었다. 42년에 걸친 카다피의 독재 시절 내내 지속된 정실주의(지지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등 사사로운 관계에 이끌리는 일)의 근원도 석유 수입이었다. 석유를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하려면 권력층이 정치적 목적에 석유 수입을 이용하는 손쉬운 선택을 피하려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전 기간 동안 합의제에 의존했던 NTC에 이런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리비아에는 정치적 논쟁을 뛰어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부족하다. 새 정부가 새로운 국가의 면모를 갖추는 데 성공한다 해도 리비아인들에게 그 국가가 국민적 합의를 대표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있다. 서방 국가들은 리비아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기꺼이 제공하는 한편 상황의 진전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듯하다.



번역 정경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