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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REPORT - ‘사회악’ 보험 구상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

SEOUL REPORT - ‘사회악’ 보험 구상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돈으로 보상하는 단기적인 장치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한국 성인의 음주 문제 발생률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2014년 3월 한국 2위 손보사인 현대해상화재가 사회문제 피해에 대비한 보험상품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표면상으로는 바람직한 움직임이지만 그런 보험을 추진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어떤 사회적인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최대 사회문제는 자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3배였다. 자살은 한국 젊은이들의 첫째 사망원인이며 고령자 그룹에서도 계속 증가세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자살하거나 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영향으로 10조4000억 원에 가까운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새 ‘사회악’ 보험 구상에선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병은 물론 자살까지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의 미래 사회보험 구상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또 다른 사회 문제는 알코올 중독이다.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독주(hard liquor) 소비량이 가장 많다. 한국 성인의 음주 문제 발생률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의 알코올 남용과 의존 비율이 세계 평균의 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보고서에서 알코올 관련 폭력과 범죄 등 알코올 관련 피해의 총 비용이 32조2000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따라서 학교폭력(왕따), 불량식품, 가정폭력, 성폭력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도록 한다는 구상은 분명 올바른 방향으로의 바람직한 한 걸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큰 손실을 초래할 뿐 아니라 가장 만연한 사회 문제 중 최소 두 가지를 간과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누가 돈을 내느냐”는 점이다. 현재의 구상에서는 이들 ‘사회악’ 보험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을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시 당국이 시민을 위해 보험을 들고, 학교 당국이 학생들을 위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험료 납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보험료는 한 달 1만~2만 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가 학생을 보험에 가입할 경우 두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가정이 납부하는 보험료는 연간 50만 원에 육박할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총 600만 원이다.

그 비용을 납부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금융위원회는 밝혔다. 그러나 그 기금은 어디서 끌어오는가? 기업에서 조달한다면 제품가격 상승을 통해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위험이 있다. 세금으로 충당한다면 이들 보험은 속 보이는 준조세와 다르지 않다.

이들 보험금을 누가 납부하느냐는 문제 외에도 누가 그 혜택을 보느냐는 문제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초기 보고서에서 합당하다고 인정되는 피해자들에 대해 신체상해, 상담료, 약값 충당에 보험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시사했다. 비용을 상쇄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 자금은 피해자들 대신 의사와 병원, 카운슬러, 약국과 제약회사 같은 제3자에게 직접 지급될 듯하다. 심리적 손해보상 청구에 대한 보험금 한도를 100만 원으로 정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100만 원이 충분한 액수일까?

이들 보험 구상은 한국에 가장 널리 퍼진 사회악 중 최소 두 가지를 외면하고 국민의 자금부담을 가중시키며, 국민보다 기업체들에게 더 혜택을 준다. 그뿐 아니라 사회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에 굴복한다.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인정한 다음 피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에게 보상해 주는 방법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금전적 보상은 실질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수단에 더 가깝다. 그보다는 문제인식, 교육, 결과에 대한 책임, 사회개혁이 훨씬 더 중요하고 장기적인 해결책이다.

- 필자 월터 포어맨(캐나다)은 고려대 커뮤니케이션·프로토콜 매니저이며 TBS 교통방송에서 eFM 프로그램 ‘인사이드 아웃’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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