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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엇갈리는 증권맨 - 몸값 치솟던 애널리스트 찬밥, 자산관리 인력은 그나마 안도

희비 엇갈리는 증권맨 - 몸값 치솟던 애널리스트 찬밥, 자산관리 인력은 그나마 안도

대규모 구조조정 거친 펀드매니저는 삭풍 피해 … 업황 나빠 영업전선에 내몰리기도



여의도 증권가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그치질 않는다. 몇 년째 증시가 부진에 허덕이자 천수답식으로 영업한 증권사마다 신‘ 속하게 더 많이’ 인력과 지점을 줄이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따라 25~30% 감축 목표를 세우고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곳도 있다. 지난해 말 이미 구조조정을 마친 곳도 있지만 인력감축 바람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몇 년 전만 해도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와 연차가 높은 브로커리지 영업직이 구조조정 0순위다. 최근 돈벌이가 거의 안 되는 국내 법인부서는 팀 전체가 정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KDB대우증권은 정규직이던 영업직원을 전원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매각 전 구조조정에 대한 사전작업 차원이다. 지점 축소를 예상한 증권사가 영업 직원 수를 감축하기 편하도록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애널리스트를 비롯한 연구직에서는 인력 유출이 심각하다. 한 때 증권사의 얼굴로 불리던 이들의 이직이 잦다. 특히 RA(연구보조원)급 주니어 중에 회사를 갈아타는 이들이 많다. 입사하자마자 상사인 ‘사수’가 잘릴 걱정만 하고 있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나 RA는 평소 친분이 있는 다른 기업 IR 부서나 연구원 자리를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삼성자산운용이 리서치 부문을 키우면서 여러 증권사 연구원들이 몰리기도 했다. 각 기업에서도 회사채 발행이나 기업 공개(IPO) 경험이 많은 애널리스트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영입할 기회로 보고 있다.



끊이지 않는 구조조정 칼바람사정이 이렇게 나빠진 건 증권사 연구직의 근무환경이 열악해지면서다. 증권업계가 불황에 시달리면서 ‘돈이 안 되는 부서’에 대한 지원을 줄인 때문이다.

한 증권사 RA는 “회사 사정이 나빠지자마자 회사에서 RA 인건비 감축 이야기부터 꺼냈다”며 “요즘은 이직한 사람들이 3개월도 안 돼 다시 이직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 RA 평균 연봉은 3년 전 6000만~80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3000만~4000만원으로 떨어졌다. 바로 쓸 수 있는 인력도 아닌데 굳이 좋은 대우를 해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RA 인원이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 2~3년 전에는 증권사당 20명 이상의 RA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20명을 채우는 증권사는 흔치 않다. 한 중형사의 RA는 10명도 되지 않는다. 여러 RA가 한 명의 애널리스트를 돕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하지만 요즘은 RA 한 명이 2~3명의 애널리스트를 보조한다.

RA는 대개 5년 내외의 경험을 쌓아 애널리스트가 된다. RA 수가 줄어든다는 건 앞으로 애널리스트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에 연구직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와 RA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 명의 RA가 2~3명의 애널리스트를 보조하기도 하는데 한 개의 섹터도 맡기 힘든 상황에서 여러 섹터를 맡다 보니 그만두는 RA가 많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꽃이라던 애널리스트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애널리스트에게 영업지원 업무를 맡기는 증권사도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3~4년 전 이미 한 차례 대규모 이직전쟁을 치러 인원이 넉넉하지 않다. 그럼에도 연구직은 당장 돈이 되지 않으니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한 은행 계열 증권사 임원은 “애널리스트가 전망이나 기업분석 같은 전통적인 역할도 해야 하지만 회사 수익에 기여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애널리스트 연봉을 대략 20~30% 깎고 있다”며 “당분간 예전처럼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봉은 줄었는데 일은 늘면서 애널리스트의 이직도 흔해졌다. 최근 신한금융투자에서 아이엠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이선일 연구원은 “중소형사보다 대형사의 조건이 낫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형사에서는 기본 업무에다가 마케팅이나 영업까지 해야 한다”며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업무량과 비교한다면 연봉 수준이 높은 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애널리스트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0~12시간 내외라고 한다.

최근에는 주말에도 나와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평일 오전 본사 리서치센터에 앉아 자료를 들춰보고 리포트만 내면 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이에 더해 ‘아는 사장들 만나서 영업해오라’ ‘기업 탐방을 자주 가서 투자금을 유치해오라’는 지시까지 받는다고 한다.

매물로 나온 우리투자증권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투자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고용 보장이 이뤄진다 해도 추후 구조조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수익도 내지 못하는 입장에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직을 하고 싶어도 뽑는 곳도 없고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으로 이직하기도 쉽지 않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대학에 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대학에서 애널리스트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학문보다 돈을 먼저 선택했다’는 주홍글씨를 새기기 때문이다. 연구직 축소는 국내 증권사 전반적인 흐름이다. 한화증권은 애널리스트 대부분을 내보냈다. NH농협증권은 최근 업계에서 잘나간다는 애널리스트마저 내보냈다.



연봉 깎이더라도 자리 지키기 안간힘연구직뿐만 아니라 증권사의 일반 직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인원 감축뿐 아니라 임금도 줄이고 있어서다. 한 증권사는 얼마전 연봉 재계약 때 대부분의 직원 연봉을 40%씩 일괄 삭감했다. 이 외에도 대부분의 증권사가 연봉 삭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황 불안, 실적 부진 등이 이유다.

실제 수익이 잘나지 않았고 영업이 힘들어 앞으로도 실적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현장의 증권맨들은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자리를 보전하는 대신 연봉 삭감을 감수하자는 분위기다. 매물로 나온 4대 대형증권사 직원들의 처지는 더 어렵다. 회사가 불안하지만 지금 환경에서 나가도 마땅히 갈 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스카우트 되는 인재를 빼고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브로커리지 → 자산관리로 영업 중심 이동그나마 자산운용이나 인수·합병(M&A)처럼 지금까지 큰 인기를 누리지 않은 직군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증권사 펀드매니저들은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다. 최근에도 여건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원래 인건비가 높지 않았고 최소 인원만으로 운영돼왔다. 인력에 거품이 끼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조정 바람을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펀드매니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는 별로 없다. 하지만 최근 자산운용 쪽에서 롱숏펀드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좀 생긴 편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브로커리지 영업은 거의 포기하고 고액자산가들의 자산관리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뿐아니라 대부분 증권사들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많은 증권사들이 브로커리지에서 자산관리로 영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고객 자산관리 부문을 확대하고 있다. 증권업 불황에다 거래량까지 줄면서 브로커리지 부문 수익이 크게 줄어든 때문이다. 대신 자산관리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보고 있다.

덩달아 애널리스트도 자산관리나 채권·종목 등을 지원하는 펀드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늘었다. M&A 쪽 사정도 괜찮은 편이다. 정부 지원과 함께 M&A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기업의 상장보다 비슷한 기업의 합종연횡이 활성화돼 일거리가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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