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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나라를 다스리는 9가지 도리

[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나라를 다스리는 9가지 도리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1801년, 순조는 다음과 같은 교서를 발표했다. ‘[중용]에는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도리(九經)가 담겨있다. 그 여섯 번째 항목에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주자는 이를 해석하기를 ‘백성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여 보살핀다는 뜻으로…(중략)…어버이가 그 자식을 양육할 때 병에 걸리면 반드시 구원하는 법이니, 임금도 이와 같이 백성을 간곡히 어루만져주고 구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순조는 전격적으로 공노비 해방을 선언한다. ‘왕이 백성을 대할 때는 신분의 귀천이나 내외를 가리지 않고 고루 균등하게 자식처럼 여겨야 한다. 노비라 하여 따로 구분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동포로 여기고, 똑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에 과인은 왕실에 소속된 노비 3만6974명과 각 관청에 소속된 노비 2만9093명을 모두 해방하여 양민으로 삼을 것이다. 승정원은 노비문서를 거두어 들여 돈화문 앞에서 불태우도록 하라.’(순조1.1.28). 부모가 자식이 고통 받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 것처럼, 노비라 하여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더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순조는 9경 인용해 ‘공노비 해방’
여기서 순조가 언급한 ‘구경(九經)’은 중용 제20장에 나오는 개념으로, 유교정치사상에서 매우 중요시된다. 노나라의 임금 애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큰 나라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아홉 가지 도리가 있으니 ①자신의 몸을 수양하고 ②어진 이를 존경하며 ③가까운 이를 살피고 ④대신을 공경하며 ⑤뭇 신하들을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고 ⑥백성을 자식처럼 생각하며 ⑦온갖 기술자들이 몰려들게 하고 ⑧이민자들을 부드럽게 포용하며 ⑨제후들을 회유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애공이 다시 왜 그래야 하는지를 질문하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임금이 수신을 해야 나라의 도가 바로 서고, 어진 이를 존경해야 미혹됨이 없으며, 가까운 이를 잘 살펴야 원망을 사지 않고, 대신을 공경해야 간신들에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신하를 내 몸처럼 여겨야 그들이 나라를 위해 보답을 하고, 백성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백성들이 근면할 것입니다. 온갖 기술자들을 모으면 나라의 재정이 풍족해질 것이요, 이민자들을 부드럽게 포용하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후들을 회유한다면 천하는 모두 노나라를 경외할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이 구경에 관한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우선 임금이 수신(修身)을 해야 ‘밝게 보고 공정하게 들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성종24.8.22). “수신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구별하고 쓸 만하고 버릴 만한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은 없다.”(성종2.윤9.27). “수신을 통해 무궁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힘도 갖출 수 있게 된다.”(연산3.8.1). 수신은 마음의 중심을 확립하고, 선입관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도덕성을 확보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권위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존현(尊賢)은 인재 등용과 관련된 부분이다. 무릇 나라는 임금 혼자서 다스릴 수 없다. 각 직임에 걸맞은 최고의 인재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나라가 번영하고 정치와 학문이 흥하게 되는 여부는 모두 존현에 달려 있으니,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퇴출시키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숙종14.12.2) 임금이 어진 이를 존경하고 우대하면 너도 나도 자신의 포부와 능력을 펼치고자 조정에 출사할 것이다. 반대로 임금이 어진 이를 홀대하고 간신을 선호하면, 인재들은 조정에 실망하고 낙향하여 숨어버리게 된다.

친친(親親)은 친인척 관리와 관련된 부분이다. “살피고 돌보아주되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성종18.6.10). 임금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전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경대신(敬大臣)은 원로 대신들의 경륜과 지혜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세종은 즉위 후 아버지 태종의 신하인 황희와 허조, 맹사성을 모두 중용했다. 세조도 자주 세자를 불러 재상들과 인사시키며 대신들을 공경하라고 당부한다(세조13.8.3). 왕이 국정을 맡아 처리하는 데 있어 대신들의 경험과 전문적인 조언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체군신(體群臣)은 군신 간의 신뢰 문제이다. 신하가 탐탁지 않으면 애초에 그 직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이왕 직임을 맡겼다면 임금은 신하를 자기 몸처럼 믿고 아껴야 한다. 다른 일을 걱정하지 않고 생활에 부족함이 없이 오로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임금이 나를 정말 위해준다고 생각해야 신하도 임금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중종23.3.7).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라는 자서민(子庶民)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식을 보살피듯 임금은 백성들의 고통과 어려운 점을 살피고 헤아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백성도 임금을 믿고 복종하며, 임금이 이끄는 대로 따라오게 된다.
 도를 미리 준비하면 곤궁하지 않아
이 밖에 내백공(來百工)은 기술자를 우대하라는 뜻이다. “공인(工人)은 자기의 몸을 수고롭게 하여 천하가 편리하도록 만들어 주는 자로 그 공이 크니, 대우를 알맞게 하고 노고를 보상하여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중종18.윤4.18). 유원인(柔遠人)은 이 나라를 찾아오는 자들을 잘 대해줌으로써 국가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넓히라는 가르침이다. 이민자를 융합하여 발휘되는 다양성의 힘은 국가의 인적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다. 끝으로 회제후(懷諸候)는 이웃국가와 화합하는 것이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리스크를 줄이고, 국가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9가지 도리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염두에 두고 꾸준히 노력하며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구경’ 바로 뒤에 이어지는 중용의 구절이 경계하는 바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이룰 수 있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지게 된다. 말할 바를 미리 준비하면 차질이 없고, 일할 것을 미리 준비하면 어려움이 없고, 행할 것을 미리 준비하면 결함이 없고, 도를 미리 준비하면 곤궁하지 않을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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