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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은 지금 ‘공간 혁신’ 중

글로벌 기업은 지금 ‘공간 혁신’ 중

삼성전자, 텐센트 등의 신사옥 설계 총괄하는 로버트 맨킨 NBBJ 공동대표 “한국 기업은 창의력보다 생산성 높이는 환경 중시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에 위치한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 미주총괄 신사옥. 다른 지역의 현지법인 사옥과는 다르게 임원 전용 집무실이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사무공간 혁신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사무공간은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이 녹아 있는 장소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지난 9월 22일 뉴스위크 한국판과 만난 로버트 맨킨 NBBJ 공동대표는 “사옥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고 말했다. 맨킨 대표는 구글·텐센트·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사무공간 설계(workplace design)를 총괄 지휘했다. 삼성전자와 네이버도 NBBJ의 고객이다. 그는 “기업이 혁신을 하고 싶다면 사무공간도 혁신적이어야 한다”며 “특히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마존, 구글, 빌앤맬린다게이츠재단 건물을 설계한 건축회사 NBBJ가 텐센트와 함께 세우는 신사옥은 이른바 ‘실리콘밸리 룰’을 충실히 따른다. 거의 모든 칸막이를 없애고 천장은 최대한 높였다. 일반적으로 건물 아래층에 두는 체육관은 직원들이 상호 교류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빌딩 곳곳에 조성했다. 텐센트의 수석건축가인 이반 완은 내년 선전시에 완공될 신사옥의 콘셉트를 “거대한 IT 실험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사옥은 홀로그램으로 건물을 안내하고,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자동으로 회의실 온도가 조절되는 등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곳곳에 도입한다. 건물에 있는 모든 사람의 위치 추적이 가능하고, 문은 안면 인식으로 열리며, 텐센트의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통해 주차와 엘리베이터 안내까지 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콘셉트가 숨어 있다. 맨킨 대표는 “20~30대 젊은 엔지니어가 많은 텐센트의 조직 특성을 고려해 IT 실험실처럼 꾸몄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떨어져 있는 이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IT 놀이터’를 곳곳에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텐센트가 우리에게 공간 설계를 맡기면서 “20~30대 젊은 직원들이 창의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IT 놀이터는 쌍둥이 건물로 된 남·북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들이다. 통로는 거대한 벨트를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다야오다이(大腰帶·커다란 벨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1층과 21층, 34층에서 두 건물이 이어진다. 이 공간에는 탕비실, 강당, 회의실, 전시센터와 300m짜리 달리기 트랙도 있다. 옥상에서는 수영, 암벽등반 등 레저활동도 즐길 수 있다.
 공간 공유만으론 혁신 일어나지 않아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의 업무공간 설계를 맡은 로버트 맨킨 NBBJ 공동대표.
물론 이런 시도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건물 내에 만남의 장소, 교류 공간 등을 만드는 게 한때 유행이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인위적인 공간에 적응하지 못했다. ‘열린 공간(개방성)’을 지향하며 칸막이를 뜯어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개인 공간을 그리워하게 됐다. 중앙 정원, 책상 순환 배치, 서서 일하는 책상, 러닝머신 책상, 책상 없는 사무실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다시 칸막이 사무실로 돌아간 곳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공유하는 공간이 어떻게 협업과 혁신으로 이어지는가’에 있다는 얘기다.

직원 간 협업을 유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끝에 꽤 만족스런 성과를 얻는 기업은 구글이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사옥은 ‘직원 간 대화 늘리기’를 목표로 삼고 우연한 만남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됐다. 설계를 맡았던 NBBJ에 따르면 이곳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은 2분 30초 안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 직원들이 활발한 대화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동지애’도 키우겠다는 의도였다. 서로 마주칠 수밖에 없도록 휴게실과 사무 공간을 좁혔다. ????바닥 설계도 일반 회사보다 훨씬 좁게 만들어???? 여러 팀이 서로 시야에 들어온다.

물론 인테리어와 공간 구조만 바꾼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구글 내에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팀이 있다. 팀명은 ‘피플 애널리스틱스’(People Analystics)’다. 직원들의 연봉이나 식사 종류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연구한다. ‘구글 가이스트(Googlegeist)’라는 설문조사 시스템으로 직원들의 친밀도와 행복감을 파악하고 회사 운영 방침에 반영한다.

미국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닷컴은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사옥에 직원들의 소통을 돕는 여러 가지 기구를 설치했다. ‘런치 버튼 터치스크린’은 공통 관심사를 가진 직원들의 점심 자리를 즉석에서 주선해준다. ‘대화 포털’이라는 이름의 긴 커피 테이블도 있다. 쌍방 화상 통화 시스템을 갖춘 테이블이다. 전 세계 지점에 있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식사할 수 있다. ‘대화 밸런스 테이블’도 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대화를 독식하면 탁자 위에 있는 꽃 장식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주의를 준다.
구글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신사옥 조감도. 내부는 변형과 이동이 가능한 벽을 활용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사무실 위치와 면적을 조정할 수 있다(왼쪽). 아마존이 미국 시애틀 시내에 짓고 있는 유리온실에는 직원을 위한 인공 숲이 조성될 예정이다.
큰돈 안 들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도 있다. 굳이 사옥 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직원들이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회사 전반의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 보스턴에 있는 마케팅 회사 CTP는 여름마다 직원들이 서로 책상·사무실을 바꾸도록 한다. 서로 가까이에 앉을 일이 없는 부서끼리 접촉할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다. 기업들의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는 픽사 CEO로 재직할 당시 화장실을 단 두 개만 설치해 직원의 대화를 유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맨킨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튼 삼성전자 신사옥도 혁신을 이끄는 사옥의 좋은 예”라고 말한다. 지난해 7월 완공한 삼성전자 새너제이 연구센터는 삼성전자가 미국 내 연구개발(R&D) 거점으로 삼은 미주 총괄 신사옥이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전략혁신센터(SSIC), 오픈이노베이션센터(OIC) 등 17개 연구소와 R&D 팀을 한 데 모으기 위해 약 10만2000㎡(약 3만 평) 부지에 10층짜리 건물 2개 동을 세웠다. 건물 두 동을 연결하고 층간 정원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공용 공간으로 직원들이 모이게끔 조성했다.
내년 중국 선전시에 들어설 텐센트 신사옥 조감도. 건물의 40%가 직원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실외가 개방된 복도에서는 머리를 식힐 겸 가벼운 운동을 하는 직원도 있다. 맨킨 대표는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확보했다”고 말했다. NBBJ에 따르면 하루 기준 직원 1명이 마주치는 평균 직원수를 약 188.5명. 미국 미시간대학 사회학과 오웬 스미스 교수는 “동료를 더 자주 보고, 서로 더 부딪히면 갑자기 대화를 나누게 될 확률이 커진다”고 말한다. 스미스 교수는 직장에서 동료와 동선이 30㎝ 겹칠 때마다 협업은 최대 20%까지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협업 효과가 좋아지려면 정보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 맨킨 대표는 “단지 자주 마주친다고 협업이 이뤄지지는 않는다”며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편하고 즐겁게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맨킨 대표는 한국 기업이 이런 공유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옥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화려한 외관이나 다양한 복지 시설은 그 이후의 일이다. 한국 기업은 대체로 ‘효율성’을 주문한다. 창의력보다는 생산성을 높이는 환경을 중시하는 편이다. 아마존, 텐센트 등 글로벌 IT 기업은 카페테리아 등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공간을 늘려가는 추세다. 소통을 위해서다. 반면 한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공유 공간 비중은 훨씬 작다.”

- 임 채 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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