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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아파트 도심의 주택난 해법일까

초소형 아파트 도심의 주택난 해법일까

일본과 소련 등지의 혁신적 실험은 전부 실패로 끝났지만 최근 다시 붐 일어
영국 런던 중심부에 세워질 브릴 플레이스 타워는 마이크로 아파트의 새로운 실험이다. 침실 하나짜리 중 가장 작은 유니트의 면적이 55㎡다.
영국 런던 중심부의 세인트 팬크래스역 북쪽에 있는 소머스 타운에선 머지않아 브릴 플레이스 타워가 하늘로 치솟을 것이다. 물론 반대자들의 막바지 반발이 있다면 착공이 지연될지 모른다. 그 25층짜리 빌딩은 연필처럼 가느다란 쌍둥이 건물로 지어질 계획이다. 젊고 창의적인 건축가로 구성된 회사 dRMM이 ‘마이크로타워’라고 부르는 빌딩으로 면적 350㎡(약 106평) 위에 세워진다. 런던의 신임 시장 사디크 칸이 지원하는 10억 파운드짜리 재건축 계획의 일환으로 지난여름 승인이 떨어졌다.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문화유산 보존단체 ‘역사적인 잉글랜드’가 그 타워 건설에 반대한다. 깡마른 패션 모델이 결혼식 케이크를 짓밟는 것처럼 그 건물이 리전트파크를 둘러싼 하얀 치장벽토 테라스의 신고전주의 스카이라인을 망쳐 놓는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건축 취향이 어떻든 브릴 플레이스 타워는 현 시대를 상징한다. 교묘하게 배치된 침실 하나 또는 두 개짜리 아파트(설계자들이 ‘유니트’라고 부른다) 54채가 그 타워를 채울 것이다. 전적으로 상업적인 개발 사업이다. dRMM에 따르면 침실 하나짜리 중 가장 작은 유니트의 면적이 55㎡(16.5평, 발코니가 포함된 면적인지는 밝히지 않았다)에 불과하지만 가격은 절대 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도 몇몇 다른 곳의 마이크로 아파트와 비교하면 상당히 넓은 편이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킵스베이에선 최근 뉴욕 최초의 마이크로 아파트 카멜 플레이스가 완공돼 입주가 시작됐다(월세가 최하 2650달러다). 회색 벽돌 외관에 강철과 콘트리트로 만든 9층짜리 조립식 스튜디오 유니트 건물이다. n아키텍츠가 설계한 그 건물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의 새로운 주택시장 계획에서 맺은 첫 결실이다. 그 계획은 2004년 시작됐으며 중·저소득 뉴요커를 위한 저렴한 아파트 16만 5000채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다. 카멜 플레이스에는 임대 유니트가 55개다. 대부분 면적이 24㎡(7.3평)에 불과하다.건물의 평면도는 상당히 기발하다. 제한된 면적에 소파 침대, 작은 테이블, 샤워실 위의 좁은 수납 공간, 부엌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최대한 많이 끼어넣는다. 그러나 옛날 시내에서 볼 수 있었던 기차칸식 아파트(한 줄로 이어진 각 방이 다음 방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싸구려 아파트)의 축소판처럼 방이 아니라 마치 복도처럼 보인다. 카멜 플레이스엔 체육관, 공동 옥상 테라스, 라운지, 정원, 자전거 보관실이 있으며 빈 냉장고를 채워주는 ‘버틀러 서비스’도 제공된다. 그러나 이런 도심의 공동식 주거시설은 사실 젊고 독신인 사람에게만 적합하다. 아무리 돈독한 사이라도 그처럼 좁은 공간에서 복작거리며 살려는 가족은 없을 것이다.

일본 도쿄 중심부에 1970년대 세워진 나카긴 캡슐타워는 8.7㎡ 캡슐 140개가 2개의 중앙 콘크리트 기둥에 부착된 형태였다. 오른쪽은 캡슐 내부.
카멜 플레이스가 중요한 것은 세부적인 설계와 조립식 건축이라는 점보다는 맨해튼에서 아파트 건축 면적에서 혁명을 일으켰다는 사실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뉴욕시 의회는 그런 작은 아파트 건설에 반대했다. 반면 시애틀에선 부동산개발업자들이 18.4㎡(약 5.6평) 짜리 마이크로 아파트도 건설해왔다.

이런 극단적인 초소형 주거시설의 철학 또는 판촉 메시지는 뭘까? 술집이나 카페, 젊음의 문화를 제공하는 도시 자체가 젊은이에게 필요하고 원하는 다른 모든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젊은이, 서비스업 근로자, 집 규모를 줄이려는 은퇴자, 도심의 작은 아파트를 찾는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새집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마이크로 아파트 타워가 설계자와 부동산개발업자, 건축가, 부동산을 소유하려는 일반인의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초소형 거주 시설에 대한 실험은 지난 90년 동안 여러 차례 있었다. 대부분 처음엔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결과적으로는 결코 고무적이지 않았다.1960년대 말 일본 도쿄가 급성장했을 때 젊은이들과 큰돈이 없는 샐러리맨 가족은 새로 뻗어나가는 교외 지역으로 나가 저렴한 집을 구한 뒤 초만원으로 악명 높은 전철을 타고 도심으로 출퇴근했다. 당시 급진적인 발상을 가진 30대 건축가였던 고(故) 구로카와 기쇼는 도쿄 시내에서 젊은이들의 대규모 탈출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답을 갖고 있었다. 바로 ‘나카긴 캡슐타워’였다. 도쿄의 번화가 심바시에 세워진 쌍둥이 건물로 1972년이 돼서야 완성됐다. 조립식 강철 캡슐 140개가 2개의 중앙 콘크리트 기둥에 부착된 형태였다. 8.7㎡(약 2.6평)인 캡슐에는 침대, 주방, 화장실, 최신 오디오가 갖춰졌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나르콤핀 공동주택은 사회주의 공동생활 실험이었지만 지금은 흉물이 됐다(왼쪽). 미국 교수 출신인 제프 윌슨은 3㎡(약 0.9평)짜리 덤프스터(쓰레기 수집용기)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으로 개조해 실제 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니카와 미니스커트가 유행했고 기술의 발전은 무조건 좋다는 믿음의 시대에 탄생한 나카긴 캡슐타워는 처음엔 인기 명소로 각광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심바시의 나머지 부분이 번쩍이는 비싼 사무실로 가득한 가운데 그 타워만 흉물스럽게 서 있다. 몇 년 동안 온수도 나오지 않았다. 세련된 미래형 마이크로 아파트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대다수 캡슐이 사용할 수 없도록 폐쇄됐거나 저장 공간 또는 임시 사무실로만 사용되는 실정이다(일부 캡슐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임대할 수 있다).

도쿄 주민은 구로카와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은 공간을 원했다. 원래 25년마다 캡슐을 교체하기로 돼 있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캡슐을 교체하는 번거로운 작업보다 타워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계산이 나왔다. 대량 생산된 도시 주거시설의 일본식 모델은 신기한 작품으로 아직도 건축가들의 사랑을 받지만 주택 시장으로부턴 외면당한다.러시아 모스크바의 나르콤핀 공동주택은 나카긴 캡슐 타워보다 더 보기 흉하다. 모이세이 긴즈부르크와 이그나티 밀리니스의 설계로 1932년 완공됐다. 긴즈부르크의 미니멀한 F자형 아파트에 프랑크푸르트 스타일의 혁신적인 주방을 더했다. 각 아파트엔 붙박이 가구를 설치했고 옥상에는 일광욕실과 정원 등 공동 편의 공간도 마련했다. 총 6층의 본관 옆에 붙어 있는 2층짜리 부속 건물은 레스토랑, 공동 부엌, 피트니스 센터, 도서관, 탁아소까지 갖췄다. 입지와 주변의 공원만으로도 1920년대 구성주의 운동의 목적을 실증하는 유토피아 비전을 실현하려는 시도로 부족함이 없었다.

긴즈부르크는 이런 새로운 ‘비도시주의’ 풍경을 소련 전역에 조성함으로써 사회주의 생활방식의 모델로서 도시와 시골의 경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여성 평등 사상도 엿보였다. 블라디미르 레닌 소련 공산당 초대 서기장은 에세이 모음집 ‘위대한 시작’에 이렇게 썼다. ‘집안의 허드렛일은 자본주의 시대의 주부를 으스러뜨리고 목 조르고 모멸하며 부엌에 가둔다. 여성의 진정한 해방과 진정한 공산주의는 이런 집안일을 없애는 전면적인 투쟁이 시작되는 시기와 장소에서만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레닌의 후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그런 모델을 ‘트로츠키파’의 일탈이라고 부르며 중단시켰다. 첫 입주자들이 들어오자마자 나르콤핀 공동생활 실험은 비판받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아파트가 텅 비었고 일부만 화실 등으로 사용되며, 빛나는 새로운 아파트의 그늘에 우중충하게 서 있을 뿐이다. 2004년 당시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즈코프는 거대한 노빈스키 상가 개장식에서 낡은 나르콤핀 공동주택을 가리키며 “저런 고물단지가 아니라 이처럼 멋진 새 쇼핑센터가 우리 시에 들어서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이런 모델이 실패했음에도 이상주의를 꿈꾸는 도시계획 전문가와 건축가들은 초소형 주거시설의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휴스턴-틸롯슨대학의 부교수 출신인 제프 윌슨은 도쿄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그는 3㎡(약 0.9평)짜리 덤프스터(쓰레기 수집용기)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으로 개조해 실제 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최신 프로젝트는 거기에다 이동성을 더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카멜 플레이스는 완전 조립식으로 지어졌으며(왼쪽) 유니트 면적이 24㎡(7.3평)에 불과하다.
스페인어로 ‘작은 집’이라는 뜻의 ‘카시타’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면적 30㎡(9평)의 조립식 강철 스튜디오로 구성된다. 와인 보관대에 병을 넣듯이 강철 틀에 이런 스튜디오를 끼어넣을 수 있다. 거주자가 이사를 원하면 이 마이크로 아파트를 틀에서 들어내 옮기면 된다.

살고 있는 집 자체를 옮긴다는 발상은 흥미진진하다(물론 미국의 대다수 은퇴자들처럼 그보다는 캠핑카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머스 타운이든 맨해튼이든 시애틀이든 텍사스든 마이크로 주거 프로젝트든 단점이 있다. 작은 공간이 젊은 독신자에겐 매력적일지 몰라도 그들이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룰 경우엔 어떻게 될까?

가정을 이루면 마이크로 아파트를 떠나 좀 더 큰 공간을 찾으려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살 것이다. 그런 일시적인 거주는 항구적인 공동체 건설에 큰 장애물이다. 마이크로 아파트와 캡슐타워가 많을수록 도심은 더욱 불안정해지게 마련이다.

최근의 마이크로 아파트 열풍이 나르콤핀 공동주택의 운명을 맞아 미래의 도시 빈민가가 만들어질까? 마이크로 타워가 시대의 상징일지 몰라도 시대는 계속 바뀌게 마련이다. 우리 대다수는 24㎡(7평)짜리 집에선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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