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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닮아가는 실리콘밸리

디트로이트 닮아가는 실리콘밸리

과거 미국 혁신의 상징이던 자동차 업계는 일본 차에 당했는데 현재의 IT 업계도 중국 기업들에 점령될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미국 본사 사무실과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자동차 공장. / 사진 : (좌)KIM KULISH/GETTY IMAGES , (우)PINTEREST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미국 본사 사무실과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자동차 공장. / 사진 : (좌)KIM KULISH/GETTY IMAGES , (우)PINTEREST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대가 실리콘밸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불길한 전조는 과거 미국 혁신의 상징이었던 디트로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1908년 헨리 포드가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모델 T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기술이었다. 발명가들이 속속 몰려들면서 도시 안팎에 자동차 산업이 형성됐다. 캐딜락 오토모빌, 닷지 브라더스, 듀란트 모터스, 머큐리 사이클카 등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몇몇 글로벌 거대기업이 등장하고 합병했다. 그 뒤 40년 동안 포드·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와 도시의 자동차 제조 생태계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물론 미국 경제의 모든 측면을 지배했다. GM 사장 출신으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찰스 윌슨은 “GM에 좋으면 미국에도 좋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말이 디트로이트의 정점이었다. 1970년대 초, 중동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이 원유 생산제한조치를 내렸을 때 미국의 불확실한 경제·외교 정책이 재앙을 초래했다. 휘발유가 귀하고 비싸지는 상황에 디트로이트는 엉뚱한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크고 화려하지만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차였다. 일본의 소형차 제조사들이 미국 시장에 비집고 들어설 틈이 생겼다. 퓰리처상을 받은 자동차 역사가 조셉 화이트는 상황을 악화시킨 두 가지 운명적인 실수를 지적했다. 첫째, “디트로이트가 경쟁 상대를 과소평가했다”. 도요타와 혼다 같은 업체는 업계 경영자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둘째, 미국 기업은 “성공보다 실패에 더 재능을 보였다”. 수십 년에 걸친 호경기가 오만·낭비 그리고 악습을 낳아 디트로이트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장 선두자리를 빼앗기고 감원하고 공장을 폐쇄하고 절망의 나락에 빠진 도시가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디트로이트는 포드·캐딜락·뷰익·플리머스 등을 쏟아내며 100년 가까이 자동차 업계를 지배했다. / 사진 : XINHUA-CHEN GANG-NEWSIS

▎디트로이트는 포드·캐딜락·뷰익·플리머스 등을 쏟아내며 100년 가까이 자동차 업계를 지배했다. / 사진 : XINHUA-CHEN GANG-NEWSIS

실리콘밸리는 그렇게까지 망가질 리 없다고? 1970년대 디트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도 성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듯하다.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의 난맥상이나 구글의 심장부를 갈라놓는 문화 전쟁이 그 증거다. 비공개 기업들의 터무니없이 높은 시장평가액은 위험천만한 다단계 금융사기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높은 물가와 갈수록 악화되는 교통혼잡으로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은 슈퍼리치가 아니면 거의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변해간다. 한편 미국 IT 업계는 대부분 경쟁상대 특히 중국과 유럽연합(EU)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정부는 실리콘밸리의 뒷다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이민·투자 정책은 경쟁국가들이 실리콘밸리 글로벌 리더십의 중요한 몫을 빼앗아가고 인재를 빼돌리고 떠오르는 다른 IT 중심지로 자본이 빠져나갈 틈새를 열어주고 있다.

실리콘밸리 IT 업계가 어느 순간 붕괴돼 증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업계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디트로이트의 세계 패권에 마침표가 찍힌 명확한 분기점은 있었다. 그처럼 어느 한순간에 밀려나는 일은 없으리라고 실리콘밸리의 CEO·창업자·전문가들이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내가 스테판 파치코프를 만난 건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였다. 그가 창업한 패러그래프는 붕괴되던 옛 소련에서 최초의 비공개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하나였다. 패러그래프는 컴퓨터가 손글씨를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당시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플이 실패로 끝난 휴대형 PDA 뉴턴 용으로 그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를 따냈다. 1991년 이전에는 옛 소련 국민의 실리콘밸리 취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파치코프가 “나와 세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옛 소련”이라고 내게 말한 적도 있었다. 소련 당국이 더는 국민의 탈출을 막을 수 없게 되자 파치코프는 지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술 중심지로 향했다. 회사와 가족까지 모두 이끌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으로 이주했다. 1997년 그는 회사를 5000만 달러에 실리콘 그래픽스로 팔아 넘겼다.
▎실리콘밸리는 데이터를 쏟아내고 전 세계에서 스테판 파치코프 같은 인재를 끌어 모으며 정상에 올라섰다. / 사진 : ANN E. YOWDYSON/GETTY IMAGES

▎실리콘밸리는 데이터를 쏟아내고 전 세계에서 스테판 파치코프 같은 인재를 끌어 모으며 정상에 올라섰다. / 사진 : ANN E. YOWDYSON/GETTY IMAGES

파치코프는 몇 년 뒤 문자인식 소프트웨어 지식을 토대로 누구나 알 만한 기업 에버노트를 창업했다.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의 심장부 레드우드 시티에 기반한 에버노트는 생산성 향상 앱을 만들며 약 40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유명 벤처투자사 세쿼이아 캐피털을 포함해 15개 투자자들로부터 10회 자본을 조달했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전성기 때 이야기다. 뛰어난 혁신가들을 끌어들여 자본을 대주고 현지에 풍부한 최고의 엔지니어·개발자·MBA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스타트업이 세계를 몇 걸음 더 앞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시계추를 20년 앞으로 돌려보자. 파치코프가 미국으로 데려온 가족 중 하나인 아들 알렉스가 이제 37세가 됐다. 알렉스는 최근 선플라워 랩스를 창업했다. 인공지능(AI)과 무인기를 묶어 새로운 주택방범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다. 그러나 그가 보는 IT 업계는 아버지 시대와 다르다. 지금은 전 세계에 분산돼 있다. 그는 “우리 R&D 센터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다”고 말했다. “산업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PR은 샌프란시스코에, 투자자·고문 중 한 명은 도쿄에 있다. 공장은 중국과 대만에 세울 예정이다. 모두 다른 시간대 조정이 우리 숙제다.”

파치코프 부자의 스토리는 한때 IT 우주의 중심이었던 실리콘밸리가 지금은 많은 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말해준다. 알렉스 파치코프 같은 창업 스토리가 갈수록 흔해지고 있다. IT 투자자 안드레스 바레토는 실리콘밸리의 창업보육기관 Y 콤비네이터 내에서 6개 회사를 키우는 중이라며 “하지만 이들의 엔지니어링 팀이 모두 중남미에 있거나 그곳에서 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실리콘밸리의 IT 업체 구인 목록에 잘 나타난다. 구직·구인 사이트 인디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구인 공고가 5.9% 감소했다. 이 같은 트렌드는 창업 회사들의 숫자와 종류에서도 나타난다.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창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올해 2분기 실리콘밸리에서 회사 창업 전후에 체결된 투자 계약은 약 900건으로 전년 대비 200건 감소했다.
▎파치코프는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가족과 회사를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파치코프는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가족과 회사를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저명한 IT 분석가 메리 미커에 따르면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미국 IT 기업 중 60%는 1세대 또는 2세대 이민자가 창업했다. 미국 내 시가총액 4대 업체 애플·알파벳·아마존·페이스북을 포함하는 이들 기업의 고용인원은 150만 명이다. 미국 이민 희망자가 자국에 눌러앉아 회사를 창업하는 일이 많아질 경우, 다시 말해 파치코프 같은 사람이 미국 이민을 택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라. 미국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다. 미국은 IT 수출을 통해 문화와 가치를 설파한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페이스북에서 활동하고 아이폰을 이용하며 구글에 의존한다.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개발된 차세대 기술은 모양새와 느낌이 다를지 모른다.

실리콘밸리의 지배력이 약화된다면 그 원인은 일정 부분 실리콘밸리 내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있다. 지난해 IT 유니콘(unicorn,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신생 벤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며 호들갑을 떨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런 추세의 이면에 도사린 금융의 덫이 실리콘밸리의 창업 모델을 위협한다.

미국 정부의 규제와 IT 업계의 태도 변화로 인해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계속 비상장 기업으로 남는다. 과거 신흥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본을 조달했다. 그러나 투자 스타트업 ‘어전트 인터내셔널’(이하 어전트)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의 IPO 성사 건수는 18건에 그쳤으며 조달액은 5000만 달러에 못 미쳤다. 1996년의 557건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다시 말해 20년 사이에 실리콘밸리의 급성장하는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성장에 이르는 중요한 통로가 막힌 셈이다. 대신 기업들은 수차례의 사모 자본조달에 의존한다. 이는 기업가치를 부풀리거나 모호하게 만들어 유니콘 같지 않은 유니콘을 양산한다. 어전트는 실리콘밸리의 IPO 문제를 이용할 계획이다. 세계 각지의 다른 증시에 미국 기업을 상장시키는 방안을 제시한다. 어전트의 제프 스튜어트는 “미국 IT 업계의 왜곡된 현 상황이 우리 펀드에는 커다란 기회”라고 내게 말했다.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전 CEO(사진)로 상징되는 실리콘밸리의 남성 중심주의 문화, 그리고 경제 흐름을 거스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석탄 사랑은 중국 IT 기업들이 파고들 공간을 내줬다. / 사진 : TOP: XINHUA-YUE YUEWEI-NEWSIS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전 CEO(사진)로 상징되는 실리콘밸리의 남성 중심주의 문화, 그리고 경제 흐름을 거스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석탄 사랑은 중국 IT 기업들이 파고들 공간을 내줬다. / 사진 : TOP: XINHUA-YUE YUEWEI-NEWSIS

실리콘밸리의 자본조달 난맥상은 우버 사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CEO 자리에선 쫓겨났지만 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은 우버의 IPO를 고려하지 않는다. 한편 잇따른 거액의 사모 조달을 통해 기업가치 평가액을 700억 달러까지 끌어올렸다. 포드나 GM보다 많은 액수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업가치를 더 높여 주려는 ‘더 큰 바보’ 투자자들이 뚝 끊어지면서 우버의 자본조달은 한계에 이르게 된다. 우버의 다라 코스로 샤히 신임 CEO는 2020년께 IPO 가능성을 내비치지만 공개 시장에선 우버의 가치가 비공개 시장에서보다 낮게 평가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버의 사모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본다.

우버의 주요 투자자 중 하나인 벤처투자사 벤치마크 캐피털이 회사 경영권을 두고 칼라닉 창업자를 고소한 이유의 핵심에 IPO를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굴지의 성공적인 IT 벤처투자 업체가 유수한 기업 창업자를 고소하는 충격적인 시나리오를 낳았다. 브루투스가 시저를 배신하는 실리콘밸리판 대하극 ‘줄리어스 시저’다. 실제로 우버 투자자이자 칼라닉 지지자인 셔빈 피시바는 지난 8월 벤치마크 캐피털을 향해 셰익스피어 유의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우리의 정당한 대의명분으로 이들 성인군자연하는 위선자들의 수치스런 기만행위를 사람들이 흉내 내지 못하도록 하자.” 기업계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동시에 성차별을 비롯한 각종 차별 문제는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땅이라는 실리콘밸리의 자화상에 먹칠하고 있다. 구글에선 하급 엔지니어 제임스 다모어가 반다양성 선언문을 발표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순다르 피차이 CEO의 리더십에 도전했다. 대형 벤처캐피털 업체 클라이너 퍼킨스를 성차별로 고소해 유명해진 엘런 파오의 저서도 최근 출간돼 이 같은 차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실리콘밸리 서커스의 또 다른 링에선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CEO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AI가 인류에 위험하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한다고 저커버그가 머스크를 비난하자 머스크도 그의 AI 지식에 “한계가 있다”고 조롱했다. 어떻게 보면 아옹다옹하는 고양이와 개를 보듯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AI를 묶어둬야 하느냐 아니면 풀어놓아야 하느냐를 둘러싼 IT 업계의 확대되는 때로는 적대적인 분열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중국 IT 기업들 / 사진 : WIKIMEDIA COMMONS

▎중국 IT 기업들 / 사진 : WIKIMEDIA COMMONS

무엇보다도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가장 큰 피해를 초래하는 듯하다. 실행하거나 제안하는 정책마다 번번이 IT 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들이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 근로자 대상의 H-1B 비자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IT 업체들이 인재유치를 위해 의존하는 수단이다. 최근 들어 트럼프 정부는 외국 창업자가 설립한 스타트업의 미국 이전을 수월하게 만드는 ‘국제창업가규정(International Entrepreneur Rule)’을 연기했으며 나중에 폐기할지도 모른다. 미국 벤처캐피털 협회의 보비 프랭클린 회장은 “세계 각국이 인재를 유치하고 잡아두면서 혁신기업을 세우고 키워나가도록 안간힘을 쓰는 시점에 트럼프 정부는 역주행 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DACA)’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온 불법체류 이민자의 체류를 허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이젠 추방될지도 모른다. 일부는 IT 기업의 귀중한 인력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DACA의 종료로 추방 대상이 되는 모든 직원의 소송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미국 전체의 큰 퇴보”라고 불렀으며 업계에선 미국을 찾는 외국인 인재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른 나라들은 해질 무렵 파도타기를 하는 서퍼 주위를 배회하는 상어들처럼 외국 인재를 뒤쫓기 시작했다. 중국 IT 대기업 바이두의 로빈 리 CEO는 “나로선 이들 엔지니어 중 중국으로 건너와 우리 회사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내브딥 베인스 혁신부 장관은 “우리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인력 조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가 “IT 인재에게 제2의 조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두 가지 결정도 미국 IT 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그리고 아시아와 무역을 강화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다.
▎트럼프 대통령 / 사진 : TECHNODE

▎트럼프 대통령 / 사진 : TECHNODE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청정 에너지 기술과 혁신은 향후 20년간의 최대 사업 기회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에너지 혁신 기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 또다시 외국 경쟁업체들에 길을 터주면서 국내 시장에서 미국 업체가 에너지 솔루션을 개발할 기회를 제한했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은 남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석탄만 계속 캐내게 될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미국이 TPP에서 빠지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시아의 IT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입지가 줄면서 대신 갈수록 막강해지는 중국 IT 업계에 기회를 넘겨주게 된다. 미국은 애플·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같은 거대기업을 길러냈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에서 건너온 도요타·혼다·닛산에 디트로이트가 한방을 먹었듯이 중국의 3대 IT 기업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도 실리콘밸리를 뒤쫓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시가총액에서 인텔이나 IBM의 2배를 웃돈다.

수십 년 동안 내수 시장은 미국 내에서 창업하는 IT 기업들에 최대 이점 중 하나였다.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이 인터넷에 연결된 단일 시장은 지구 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현재 7억5000만 명에 육박한다. 미국 전체 인구의 2배를 넘는다. 인구 13억 명의 인도는 인터넷 인구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현재 인터넷 이용자가 약 3억 명이지만 아직 전체 인구의 3분의 1도 안 된다. 따라서 제품 출시 면에서 실리콘밸리가 누리는 대규모 내수 시장의 이점은 사라진 셈이다.

과학연구와 첨단기술 측면의 우위는 어떨까? 그것도 위태로워 보인다. 중국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AI 계획을 추진하며 연구와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한다. 지난해 10월 오바마 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에선 중국이 2013년의 어느 시점에 딥러닝(deep learning,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하도록 하는 신경망 기반 기계학습법) 연구 면에서 미국을 추월해 논문 발표 세계 1위 국가로 올라섰다. 그리고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 중국의 류리화 산업정보화부 부부장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이 출원한 AI 특허는 1만5745건이다. 미국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보고서에서 2030년에는 AI 관련 산업의 성장으로 세계 경제생산이 16조 달러 증가하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서 나온다고 예측한다.

가장 좋은 AI 개발의 열쇠는 이용자의 지속적인 행동에서 얻어지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입력하는 능력이다. AI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속 성능을 개선해 나간다. 이 분야에선 최고의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대체로 승자가 된다. 이젠 중국이 국내 시장에서만 이용자가 2~3배에 달해 큰 차이로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갖게 된다.

싱가포르의 IT 전문매체 테크인아시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IT 기업이 유치한 공개 투자액은 사상 최대 규모인 56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판 우버인 베이징의 승차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지난해 약 100억 달러를 조달해 우버의 중국 사업부를 인수했다. 우버가 중국에선 경쟁이 안 된다고 판단한 뒤였다.

급성장하는 중국 스타트업 업계가 적어도 잠자던 실리콘밸리를 깨웠을지 모른다.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IT 컨퍼런스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에선 중국의 정상급 IT 업체들과의 인터뷰가 주 무대를 장식했다. 자전거 공유 업체 오포, 교육 스타트업 VIP키드, 투자업체 젠펀드 등이다.
▎실리콘밸리는 오랫동안 IT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지만 많은 나라가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IT 산업을 키우며 미국의 기술패권에 도전한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실리콘밸리는 오랫동안 IT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지만 많은 나라가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IT 산업을 키우며 미국의 기술패권에 도전한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섬뜩한 역사적인 울림을 가진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2020년 시판 중일 것으로 예상되는 순수 전기차 103종 중 중국 업체 제품이 49종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중국이 실리콘밸리의 최대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밖에도 수십 개국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여러 해 전부터 다른 나라들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모방하려 애써 왔다. 영국 런던의 실리콘 라운드어바웃(Silicon Roundabout)처럼 일부는 이름까지 비슷하게 지었다. 그랬던 나라들이 지금은 미국의 역기능적인 정치환경과 실리콘밸리의 높은 회사 운영비를 지적하면서 갈수록 자기 문화·시장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창업가와 과학자를 프랑스로 끌어들여 혁신과 스타트업의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미국 CNBC 방송에 말했다. 그는 2040년부터 휘발유 차들의 판매를 금지하기로 하는 등 미국과 대조를 이루는 대담한 입장을 보였다.

핀란드는 현재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컨퍼런스 슬러시(Slush)를 주최한다. 아무도 헬싱키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 12월에 2만 명을 그 도시로 끌어들인다. 올해 AI 기업 육성에 1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한 캐나다에선 AI 커뮤니티가 쑥쑥 커나가고 있다. 또한 난이도가 높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잠재력을 지닌 양자컴퓨팅 기술을 개발 중인 유명 스타트업 D웨이브도 캐나다에 있다. 이스라엘은 연간 1000개의 스타트업을 배출하며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혁신 측면에서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IT 업체가 세계 각지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은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전에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시애틀·보스턴 그리고 텍사스 주 오스틴 같은 미국의 자매 도시들이 언제나 우위를 점하고 그들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지구 구석구석으로 전파했다. 지금은 그런 압도적인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대세전환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문화적 역풍이 거세지면서 차별이 근절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에 관한 입장을 바꿔 세계의 인재들이 캘리포니아 주 애서턴의 개방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는 날을 다시 꿈꾸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금융시장 침체로 IT 업계의 비즈니스 관행이 초기화되고 미국이 제정신을 되찾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너무 늦기 전에 실현돼 실리콘밸리가 다시 원상을 회복할지도 모른다.

‘직업의 지리학(New Geography of Jobs)’의 저자인 엔리코 모레티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교수는 “낙관적으로 본다”며 “현 정부의 정책이 아무리 부적절하더라도 적어도 향후 5~10년 동안은 IT 일자리와 기업이 집중된 실리콘밸리에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IT 산업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는 신시대를 맞게 될 가능성은 있다고 모레티 교수는 덧붙인다.

1960년대 후반 디트로이트의 앞날에 어려움이 닥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동차 조사업체 워드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1965년 미국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90%가 GM·포드·크라이슬러 제품이었다. 지금은 그 비율이 약 40%로 떨어졌다. 따라서 앞으로 캔자스시티나 피닉스 또는 볼티모어에 있을 때 텐센트의 앱을 이용하면서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의 차량에 탑승한다 해도 놀라선 안 된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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