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승민 기자의 위헌한 경제(8) 출퇴근길 산재 인정] 통근버스 타야 산재보험 받는 것은 불공평?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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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위헌한 경제(8) 출퇴근길 산재 인정] 통근버스 타야 산재보험 받는 것은 불공평?

[함승민 기자의 위헌한 경제(8) 출퇴근길 산재 인정] 통근버스 타야 산재보험 받는 것은 불공평?

3년 만에 ‘합헌→헌법불합치’...올해부터 출퇴근 사고도 산재 인정



‘경제정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원초적 기준은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법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아니, 단순히 합법적인 경제는 정의로운 경제일까. 또는 법에 어긋난 경제활동은 모두 불공정한 행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법률의 근간이자 잣대가 되는 헌법으로 경제를 짚어봤다. 실제 헌법소원 판례를 통해 개인과 국가가 경제와 법을 의심하고 행동하며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위헌(違憲)’한 한국 경제의 모습을 살펴본다.

집중 호우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2011년 7월 27일. 이날 자신의 승용차로 출근하던 방송국 직원 양모씨는 무너져 내리는 토사에 차가 매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사지마비의 부상을 입었다. 양 모씨는 산업재해(산재)보험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이것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씨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공단은 산재보험법 제37조를 근거로 반박했다. 법률상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차로 이동하다 난 사고는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양씨는 이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사건은 헌법재판소로 향하게 됐다.
 산재 인정 범위 갈수록 넓어져
우리 헌법은 제34조에서 국가의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 증진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장애·질병 등으로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에 위협을 받는 국민에게는 적극적으로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산재보험은 그 일환으로 1964년 도입됐다. 근로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보험이다.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해 그 기금으로 사업주를 대신해 산재근로자에게 보상을 해준다.

산재의 적용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건설 현장과 위험한 기계·기구를 설치·사용하는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했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현대화·고도화·정보화 등으로 재해 발생 원인도 다양해지고 있다. 신종 직업병과 과로, 스트레스 등에 기인한 재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업무의 범위’를 점점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양씨의 사건도 그런 과정 중 하나다. 일반적인 출퇴근 길을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는 업무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법적으로는 앞에서 보았듯이 산재보험법 제 37조에 따라 출퇴근 길의 산재 인정 범위가 제한되고 있었다. 통근버스와 같은 회사 소유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만 사고 때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4년 제121호 ‘업무상 상해 급부 협약’에서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권고했지만, 국내에선 논의만 있었을 뿐 정작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이를 문제 삼은 양씨는 헌법재판관들에게 이렇게 주장했다. “출퇴근과 업무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상식적인 경로로 출퇴근한 것은 산재 보호 범위에서 제외시킬 수 없습니다. 출장에서 난 사고는 산재로 인정하면서 출퇴근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안 맞습니다. 통근버스만 산재를 인정해주는 건 통근버스조차 없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에겐 부당한 차별입니다.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은 별도로 출퇴근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제한 없이 재해로 인정해주면서 일반 근로자는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평등원칙에 어긋납니다.”
 위헌 의견 많았지만 ‘합헌’으로 선고
이를 두고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2013년 9월 결정의 순간이 됐을 땐 양씨의 의견을 받아들인 재판관이 한 명 더 많았다. 9명의 재판관 가운데 5명의 재판관이 산재보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그러나 선고는 ‘합헌’이었다. 위헌 의견이 다수지만, 위헌 선고를 위해 필요한 정족수(6명)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로 출퇴근길 사고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당시 재판부는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며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않는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시했다. 이 조항이 통근차량 이용 근로자나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과의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에서 출퇴근 재해의 범위를 탄력적으로 해석해 권리를 구제하고 있다”며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이를 정할 입법형성권이 있다는 점을 들어 현실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합헌 결정문에서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산재보험의 재정상황, 사업주와 근로자의 사회적 합의, 전체적인 사회보장의 수준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입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개별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고용노동부가 출퇴근 때 대중교통 사고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국회에도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자동차보험과의 중복성이 있는 데다 회사 측의 산재 요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처리되지 못했다. 결국 산재보험법은 다시 헌재로 가게 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던 김모씨는 2011년 11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넘어지면서 버스 뒷바퀴에 왼손이 깔려 손가락 두 개가 부러졌다. 이후 그는 양씨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산재보험을 받으려 했지만 공단에서 불승인처분을 내렸고, 이를 두고 소송을 진행했다. 소송 중이던 2014년 6월 산재보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김씨가 청구한 사건의 결정은 2016년 9월에 내려졌다. 양씨의 사건이 마무리된 지 불과 3년 만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정이 뒤집혔다. 헌재는 산재보험법 37조에 대해 헌법불합치(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공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하는 공무원에 비하여 일반 근로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라며 “사업주로부터 차량 지원 등을 받지 못하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를 오히려 보호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출퇴근도 사실상 사업주의 지시로 결정”

헌법불합치 결정의 근거가 된 의견은 사실 이전 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의 전 단계로서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사실상 사업주가 정한 출퇴근 시각 및 근무지에 따라 결정된다. 또 통근차량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의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경우 산재보험의 재정상황이 악화되거나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구상하는 방법, 합리적 경로와 방법에 따른 출퇴근만 보상 대상으로 제한하는 방법, 근로자에게도 해당 보험료의 일정 부분을 부담 시키는 방법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 결정과 마찬가지로 재판관 사이에 반대 의견도 있었다. 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불과 3년 전에 낸 법정 의견의 이유는 그대로 타당하고, 그 판단을 변경할 만한 사정 변경이나 필요성이 없다”며 “위헌 여부를 다시 끌어와 이전보다 엄격히 판단[지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합리적 이유가 있어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의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사회보장제도와 관련 심사 강도 강화 등 기본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내려진 헌재의 결정으로 논란이 지속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는 시한부가 됐다. 헌재가 “만약 이 조항을 단순 위헌으로 선언하는 경우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마저도 상실되는 부당한 법적 공백상태와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입법부가 늦어도 2017년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을 할 것을 주문했다.
 올해 예상 출퇴근 산재보험 4570억원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고 1년 후인 지난해 9월 2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산재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대중교통·자가용·자전거·도보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다 사고가 날 경우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개인택시처럼 출퇴근 경로와 방법이 일정하지 않은 교통수단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개정된 법은 올해 1월 1일부터 적용됐다.

대신 ‘통상적 출퇴근 경로’라는 단서가 달렸다. 통상적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나 발생한 사고는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퇴근 후 저녁 약속을 위해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사고가 났을 땐 보상받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다만 사유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일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로 했다. 일용품 구매, 직무 관련 교육·훈련 수강, 선거권 행사, 아동·장애인 등·하교 또는 위탁, 치료, 가족 병간호 등이나 공사·시위·집회 및 카풀을 위해 우회하는 경로도 포함됐다.

고용부는 올해 출퇴근 재해로 9만3000여명 근로자가 산재 신청을 하면 4570억원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엔 6711억원, 2020년은 7232억원으로 추산했다. 산재보험금 지급을 위해 고용부는 올해 산재보험(회사가 전액 부담)의 요율을 월급의 1.7%(전 업종 평균)에서 1.8%로 올렸다. 그러나 출퇴근 사고의 산재 신청이 급증하면 산재보험기금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산재보험 기금 적립금이 17조원에 달해 내년에는 보험료율을 낮추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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