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노후준비, 확 저질러라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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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노후준비, 확 저질러라

[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노후준비, 확 저질러라

사후 가정 사고와 ‘물총새’…장기적으로 하지 않은 행동 더 후회



고독을 좋아하는 물총새는 언제나 물가에서만 살아가는 새다. 물총새는 강둑이나 바닷가의 절벽 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버릇이 있다. 물총새 한마리가 둥지를 틀기 위한 장소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물총새가 바닷가에 둥지를 틀려고 한 이유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알을 낳을 때가 된 물총새가 둥지를 틀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참이나 돌아다닌 후에 물총새는 바다 위로 삐죽 솟아오른 바위를 발견했다. “여기라면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할 거야.” 물총새는 그곳에다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들을 부하시켰다. 물총새는 바닷가의 바위 위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총새는 마음놓고 먹이를 찾아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커다란 파도는 둥지를 덮쳤고 물총새 새끼들은 모두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나중에 둥지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물총새를 이렇게 울부짖었다. “땅 위에 생길지 모르는 여러 위험을 피하기 위해 바닷가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믿었던 바다 때문에 내 새끼들을 모두 잃다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선택은 늘 어렵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우화에서 땅 대신 바닷가를 택해 새끼들의 죽음을 초래한 책임은 물총새에 있다. 물총새는 둥지를 땅 위에 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바닷가가 아닌 땅 위에 둥지를 틀었더라면 새끼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선 이를 ‘사후 가정 사고’라는 단어로 풀이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도 있던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대개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사후 가정 사고는 실제 상황을 더 나은 상황과 비교하는 ‘상향적 사후 가정 사고’와 더 나쁜 상황과 비교하는 ‘하향적 사후 가정 사고’로 나뉜다. 상향적 사후 가정 사고는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을 비판적으로 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며, 하향적 사후 가정 사고는 더 나쁜 상황과의 비교로 현재를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물총새 우화는 상향적 사후 가정 사고에 해당한다. 물총새는 앞으로 새끼를 낳을 경우 둥지를 바닷가가 아닌 땅 위에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 땅 위라는 것도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말이다.
 부정적 일 처리에 도움되는 사후 가정 사고
흔히 사고가 터지면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 대비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뉴스에 나온다. 이런 현상은 사후 가정 사고를 잘 설명한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아무도 사고가 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지만, 사고가 난 후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사후 가정 사고는 문법적으로 ‘만약 …했다면’에 해당하는 조건 부분과 ‘…했을 텐데’ 또는 ‘…할 뻔했다’는 결과 부분으로 구성되는 조건문의 형태를 띤다. 모든 사후 가정 사고는 기본적으로 각 조건 부분과 결과 부분에서 이미 일어난 사건을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 변화시키는 시도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것은 부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코넬대학의 빅토리아 메드백 교수와 톨레도대학 스콧 메디는 올림픽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어두운 표정을 사후 가정 사고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198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의 일부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의 표정을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해 분석했다. 동메달리스트의 표정이 은메달리스트보다 밝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를 보면서 “내가 저기 서 있을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하는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자칫하면 시상대에 오르지 못할 뻔했다”는 안도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경기 직후 시상대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은메달리스트나 동메달리스트나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던 사건을 음미하며 사후 가정 사고에 빠진 것이다. 은메달리스트의 경우는 상향식이고, 동메달리스트는 하향식이라 것이 차이다. 사후 가정 사고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개념이다. 사후 가정 사고는 비교 대상과의 차이가 아슬아슬할수록 활발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사후 가정 사고의 유형 중 하향적 사후 가정보다 상향적 사후 가정을 하는 성향이 많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후 가정 사고는 후회와 밀접한 연관이 생긴다. 어떤 일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것이 보통이다. 같은 직장 동료인 A와 B는 노후준비 차원에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둘은 거래하는 증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증권사로 옮길까 고민했다. A는 그냥 거래를 계속하기로 했고, B는 다른 증권사로 옮겼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지 않았다. A나 B나 투자 수익률이 저조해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A와 B중 누가 자신의 선택을 더 후회할까. 처음에는 B가 후회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A가 더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노후준비 같은 장기적인 이슈에 대해선 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하는 경향을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한 행동 후회
한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기적인 후회와 장기적인 후회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단기적인 후회의 측면에서 조사 대상자들에게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이 한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을 놓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53%가 전자에 대해, 47%는 후자에 대해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대상으로 물었을 때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가 84%로, 한 행동에 대한 후회(16%)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의 시사점은 분명하다.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이 낫다. 당장은 후회할 수 있어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행동하지 않아 생긴 후회의 후유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노후준비를 위한 주식투자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식투자 대신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뒀을 때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20년, 30년 후에 나타날 수익률 격차를 생각하면 평생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일찌감치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이 더 나음을 깨닫게 된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사실을 더 좋은 결과와 비교하는 상향적 사후 가정 사고는 잘못된 선택이나 행동에 대해 분석하고 반성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향적 사후 가정 사고도 더 나쁜 상황과의 비교를 통해 지금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사후 가정 사고는 위험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건의 발생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기상 예보가 대표적인 예다. 눈 오는 시기를 잘못 예측해 이런저런 사고가 났을 경우의 조치는 대부분 책임자 처벌이다. 그러나 책임자를 바꾼다고 미래의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사고 방지는 전체 예방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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