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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부동산 대책 약발 먹힐까] 1000조원 부동자금의 향배에 주목

[12·16 부동산 대책 약발 먹힐까] 1000조원 부동자금의 향배에 주목

단기적으로 상승세 꺾여도 수요 많아… 매물 품귀, 초양극화 우려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원칙으로 투기수요 근절, 맞춤형 대책, 실수요자 보호의 세 가지를 내세운다. 12·16 대책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억제하고 보유세를 강화하는 이유로 투기수요 차단 및 실수요 중심의 시장 유도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실수요는 9억원 미만 주택에 한정된다. 고가 주택에 거주하거나 2주택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이른바 ‘적폐’에 해당하고, 그만큼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부 고위층의 속내다.

실제로 지난 12월 16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수도권 내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 공직자는 이른 시일 안에 1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고 권고하자 다음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주택 한 채를 매각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호응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월 18일 “청와대의 원칙을 강요할 순 없지만, 정부 고위 공직자로 확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8개 부처 현직 장·차관 40명 중 다주택자는 11명(27.5%)이고, 행정부 1급 이상 공직자 695명 중 다주택자는 205명(29.5%)이다.
 서울시민 71% “다주택 중과세 동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토지공개념에 근거를 둔 ‘공유’를 부동산 문제의 해법으로 내세웠다. 박 시장은 “현재의 퇴행적 부동산 현상은 ‘이명박근혜’ 시절 정부가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긴 결과”라며 “투기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종부세를 지금의 3배로 올리는 등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지론은 부동산 불로소득과 개발이익을 철저히 환수해 미래 세대와 국민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집을 사고(취득세·등록세), 살고(재산세·종부세), 팔 때(양도소득세)마다 세금을 물려 부동산공유기금(가칭)을 만들고 이 기금으로 국가가 건물을 매입해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박 시장은 12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관련 토론회에서 공시지가 현실화를 놓고 “강북 빌라 주인들 재산세가 오르지 않고, 은퇴한 어르신 건보료가 인상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거둘 대상을 명확히 한 셈이다. 건설교통부는 현재 시가의 60% 수준인 아파트의 공시지가 현실화 목표는 80~90%지만 단독주택은 55%다. 12·16 대책이 나오기 직전 서울시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 서울시민의 71.7%는 1가구 2주택 보유자의 과세 강화에 동의했다. 고가 주택과 다주택 소유자 중과세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전국의 아파트 1077만 가구 가운데 종부세 부과 대상 아파트는 22만채에 불과하다. 서울만 따지면 166만 가구 가운데 20만 가구로 12%에 불과하다. 국회 토론회에서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센터 연구위원은 “2016년 부동산 불로소득은 매매차익과 순임대소득을 합쳐 374조6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9%에 달한다”며 “천문학적 규모의 불로소득이 사유화되다 보니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아파트값 급등세가 꺾일 것으로 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양도세 중과 완화로 공급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시장이 조정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양지영 R&D부동산 연구소장은 “이번 대책으로 대출을 이용해 9억원 이상 아파트를 매입하거나 전세를 끼고 초고가 아파트를 사려는 갭투자자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아파트값이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급등의 배경으로 1000조원에 달하는 풍부한 유동자금과 실질적으로 청약이 불가능해진 30대가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선 것을 꼽는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 1889건 가운데 30대의 비율은 25%(479건)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월 거래량이 4배로 증가하면서 30대의 비중이 커졌다. 지난 8월 30대 비중이 30%를 넘어선 이후 9월 32%(2273건), 10월 31%(2581건)를 기록했다. 부동산 업계에서 30대의 특징을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역세권 소형, 지하 주차장(엘리베이터가 연결된 지하주차장)으로 꼽는다.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 청약이 100% 가점제로 바뀌면서 이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매매에 나선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아파트는 당분간 공급 예정이 없다. 김은진 부동산114 팀장은김 팀장은 “현재 단기적으로 가격이 계속 오른 지역은 가수요나 투기수요만 있는게 아니라 실수요의 몫도 적지 않다”며 “원하는 지역에 얼마나 공급이 될 것인가에 대한 실수요자들의 조바심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양 소장은 “내년 6월 이후 양도세 중과 배제가 끝난 이후 매물 품귀로 집값 상승의 악순환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소장은 “대출 규제는 현금 부자들만 서울 집을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이라며 “중산층은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서울 부동산 시장이 초양극화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이다. 정부에서는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1791조원으로 1년새 100조원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계의 금융자산은 3732조원으로 부채를 제외한 순금융자산만 1940조원이다.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6785조원)을 포함하면 가계의 순자산은 8726조원에 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에 풀린 부동자금 규모는 6월말 현재 989조원에 달한다. 부동자금은 현금·요구불예금·머니마켓펀드(MMF)·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의미한다.
 미국 리츠·국채 등 투자 다양화 필요
이번 대책으로 부동자금이 당장 강남 아파트로 몰릴 가능성은 작아졌다. 문제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기준금리가 1.25%로 내리고 증시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가계의 풍부한 자금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요 국가의 가게자산 구성은 미국이 부동산 35%, 금융 65%고, 일본은 45%대 55%인 반면 한국은 부동산에 80%가 몰려있다. 그나마 금융자산도 예금(40%)과 보험(30%)에 몰려있고 주식·펀드는 5%에 불과하다. 미국이 퇴직계좌(44%)와 주식·펀드(9%)에 주로 투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투자 다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한국에 집을 갖고 있다면 이미 원화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라며 “달러 등 외화예금에서 시작해 해외 주식·채권, 리츠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변동성을 헤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택가격이 너무 상승해 자산 축적을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젊은 세대일수록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대표는 “미국 금리가 하향 안정되는 상황에서 수익률이 좋은 미국 부동산과 국채 등을 사놓았다가 2∼5년 뒤 한국 부동산 시장 추이를 지켜보면서 경매 등 투자에 나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김창우·김홍준 중앙일보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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