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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주유소 직원은 어떻게 90억원을 벌었을까?

[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주유소 직원은 어떻게 90억원을 벌었을까?

5인치 두께 주식증서가 재산의 비밀… 배당금으로 재투자 복리효과 얻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 사진:연합뉴스
2014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한 노인이 한 명 있다. 그는 무려 800만 달러(약 88억4000만원)의 재산을 남겼다. 의붓아들과 주위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검소하고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자산을 남겼으리라고 꿈에서조차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복권에 당첨된 적도 없었고 높은 급여의 직장을 다닌 적도 없다. 대학 문턱을 밟지도 못했고 형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25년 동안 일했으며, 은퇴 후에는 17년 동안 소매 업체 JC페니에서 잡부로 일했다. 더 놀라운 것은 80만 달러 재산 중 60만 달러를 평생을 보낸 고향에 있는 병원(브래틀보로 메모리얼)과 도서관(브룩스 메모리얼)에 기부했다는 점이다. 이 금액은 두 기관이 설립된 이후 최대 기부금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로널드 리드(Ronald Read)로, 지역신문이 그의 기부 소식을 기사화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블루칩에 장기 투자한 블루칼라
주유소와 소매업체에서 박봉으로 평생을 일해 온 사람이 어떻게 90억원에 가까운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주위 사람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도 않았고, 금융이나 경제학을 배운 적도 없는, 주유소에서 기름 넣어주고 차를 고쳐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돈을 벌다니! 그렇다고 사업을 해서 대박을 터뜨린 적도 없다. 그는 평생 박봉의 급여생활자였다.

그의 재산은 5000 달러 가치의 2007년식 도요타 야리스, 작은 집 그리고 은행 금고에 있던 5인치 두께의 주식 증서였다. 놀랍게도 주식 증서를 실물로 보관하고 있었고, 바로 이 실물 주식증서가 재산의 대부분이었다. 그는 주식투자로 그 많은 돈을 벌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주식을 샀기에 많은 돈을 벌었을까?

그가 마지막까지 보유했던 종목은 95개였다. 기사화된 종목 리스트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도 알 수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 존슨앤존슨, P&G, 제너럴일렉트릭(GE), JP모건 체이스, 다우케미컬, CVS헬스 등이었다. 이런 평범한(?) 종목으로 큰 부를 일군 방법이 무엇일까.

먼저 그는 배당 재투자와 계속 투자로 복리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는 자신이 잘 모르는 테크 기업이나 테마 주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꾸준히 배당금을 지급해 온 역사를 가진 우량주에 투자했고, 그 배당금은 무조건 재투자했다. 미국에서는 50년 이상 배당금을 증액해 온 회사를 두고 ‘배당 왕’이라는 표현을 쓴다. 리드씨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존슨앤존슨, P&G가 대표적인 배당왕 종목들이다.

배당의 재투자뿐만 아니라 근검절약하는 삶과 투자를 계속한 것도 중요한 성공 포인트다. 리드씨는 마켓 타이밍 투자자가 아니라 수집가형 투자자다. 우량주를 사서 모아나가는 방식으로 투자를 했던 것. 수집가형 투자의 극단을 보여 주는 것이 주식 증서를 실물로 보관한 것이다. 만일 그가 주식을 팔려면, 은행금고에 가서 주식을 찾아서 다시 증권계좌에 넣고, 매도 주문을 넣어야 한다. 이는 매우 번거로운 과정이다. 그는 주식 거래자가 아닌 주식 보유자라는 관점으로 주식을 골랐고 장기 보유했으며, 근검절약한 돈으로 계속 주식을 사들였다. 이렇게 재투자와 계속 투자가 시간과 만나면서 복리효과라는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리드씨의 포트폴리오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 같지만 중간 중간 부침을 겪기도 했다. 대표적인 때가 2008년 금융위기였다.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금융 위기의 시발점이 된 리만 브라더스가 담겨 있었다. 당연히 이 주식으로 손실을 봤다.

하지만 리드씨는 시장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분산투자였다. 그의 포트폴리오는 제조업, 유틸리티, 소비재 기업 등 여러 업종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었다. 리만 브라더스발 금융위기로 대혼란을 겪던 시기에도 그의 포트폴리오는 분산투자 덕분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건재할 수 있었다.

리드씨의 종목 선택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종목은 투자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기술주가 거의 없었다. 자신의 능력범위(The circle of competence)에 머무를 수 있는 규율을 지니고 있었다. 워렌 버핏의 파트너이자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찰리 멍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능력 범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지닌 능력범위를 아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이다. 인생과 사업에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인식하는 것이 똑똑한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
 투자는 삶의 일부이자 기쁨이다
필자가 리드씨의 얘기를 주식 투자하는 후배 몇 몇에게 했더니 반응이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한쪽은 정말 감동스런 휴먼 스토리이자 장기투자의 위대한(?) 승리라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은 돈 써보지 못하고 죽는 게 무슨 의미이냐는 것이다. 양쪽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가치 평가가 아니라 리드씨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보았느냐다. 즉 자신의 정체성,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는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규정했느냐가 중요하다.

리드씨의 의붓아들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월스트리트저널을 읽는 것과 나무 자르기였다”고 말했다. 리드씨의 변호사도 “투자는 그가 가장 기뻐하는 일이자 취미였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를 인생의 한 과정(process)으로 즐겼던 것. 조용한 구두쇠로 살면서 매일 월스트리트저널을 읽고 주식을 사는 과정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겼던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과연 리드씨처럼 한국에서 투자했다면, 그 정도의 성과가 나왔을까. 이 질문에 후배들은 모두 아닐 것 같다고 답했다. 필자의 생각도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고,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와 글로벌 혁신기업들이 계속 태어날 수 있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보유한 나라는 아마 미국이 유일할 것이다. 흙수저라도 자본시장을 통해 아껴 쓰고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과 증거가 미국만큼 많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국내에도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글로벌 분산투자 수단이 발달해서 해외의 좋은 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제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돌이키기 어려울 것 같다. 희망의 사다리를 주식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주식에 오래 투자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주식 관련 세금도 장기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해 장기 복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었으면 한다. 한국에서도 리드씨와 같은 흙수저 투자 성공 신화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필자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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