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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소스 시대 대응 방법 모색에 바빠진 기업들

구글과 오라클 소송 결과 곱씹어봐
알리바바 '탈IOE' 전략 주목받아

 
 
오픈소스 하드웨어인 라즈베리 파이에 5인치 스크린, 터치패드, 키보드 등을 장착한 모습. [중앙포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발흥, 그리고 클라우드와 IoT의 대유행까지 이 모든 것이 벌어진 지난 10년은 IT 산업에도 하나의 전환기였다. 이 시기를 일컬어 업계는 ‘3세대', 혹은 '서드 플랫폼'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1세대가 주전산기 시절 메인프레임이라면 2세대는 PC와 웹의 시대였다. 그리고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절을 기술적으로 구현해낸 납품 ‘업자’들이 있었다.  
 
1세대의 주인공이 IBM이었다면, 2세대는 오라클이나 윈텔, 즉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등이었다.  
 
3세대의 사업 양식은 이들과는 다르다. 요즈음 앱이든 서비스든 새롭게 디지털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이들은 납품을 받지 않는다.  
 
스타트업은 데이터베이스를 사서 쓰지 않는다. 서버도 구매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의 테크 자이언트에서 흘러나오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쓰고 기계를 사는 대신 클라우드 등 그들의 서비스를 구독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덕분에 오픈소스 활성화

 
3세대 업자들은 일반 소비자가 주고객인 플랫폼 기업. 자신들의 사업에서 부산물로 쏟아져 나오는 혁신을 오픈소스화해서 뿌릴 뿐, 자신들이 납품 업자라는 자각도 별로 없다. 기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커뮤니티에 기여한다. 사회 공헌하는 기분이다. 대신 개발자들의 관심을 얻어간다.
 
2세대만 하더라도 공짜라고 기업 업무에 오픈소스를 쓰는 일은 위험했다. 문제가 생기면 쓰기로 한 사람이 결국 뒤집어써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픈소스 뒤에 구글과 페이스북 등 더 큰 기업이 버티고 있어서 오히려 상용 제품보다도 문서화나 커뮤니티 지원이 더 충실한 경우가 많다.  
 
공짜인데도, 외려 공짜다 보니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쓰며 개선할 수 있어서다. 거대 기업 입장에서도 널리 베풀고 꼼꼼히 관리하여 커뮤니티와 아군을 키우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대를 성공적으로 뛰어넘은 기업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정도뿐이다. 문화와 체질을 바꾸는 일은 첨단 기업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라클-구글 자바 소송, 구글의 승리로

 
세대 간 갈등도 발생하는데, 상징적인 사건이 이달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바로 10년을 끌어온 '오라클-구글 자바 소송'이다. 잘나가던 데이터베이스 업체 오라클은 임박한 세대 변화에 늘 불안한 상태였다. 기술 기업은 개발자와 친해야 그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오라클은 2009년 자바의 개발사 썬을 인수한다. 그 힘으로 세대를 뛰어넘고 싶어서였을 터다.
 
구글과 10년 동안 자바 소송을 벌인 끝에 진 오라클.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개발자들의 환심을 사는 일보다 급한 일인지 바로 구글에 소송을 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내부적으로 자바의 API(앱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흉내 내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안에 사실상 자바는 없었지만, 자바 개발자라면 누구나 새롭게 피어나는 모바일 위에서 앱을 만들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성공한 비결이었다.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열린 혁신 사이클이지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올라탈 수 있으니 일반 기업으로서는 애가 타는 일이다.  
 
이렇게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내부는 자기 마음대로 바꿔 버리는 일을 오라클은 저작권 위반이라고 고소했다. 구글은 서로 다른 시스템들이 함께 구동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존중하는 문화의 일종이라고 주장했다. 구글의 오픈소스에 신세를 져온 대개의 개발자는 구글 편을 들었다. 코딩이란 원래 다른 시스템의 API를 익히고 이들을 품고 호출하며 조작하는 행위. 그것까지 소유하겠다고 하는 오라클의 주장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라클에 그리고 2세대의 많은 업자에게 이 소송은 중요했다. 이 소송에서 진다면, API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알맹이만 바꿔버리는 더 세련된 3세대 호환품이 대거 등장할 수 있어서다. 유복한 3세대 업자들은 이미 그 흘러넘치는 부와 매력으로 능력 있는 기술 인력을 죄다 흡수하고 있던 차였다.  
 
10년 넘게 엎치락뒤치락하던 소송은 대법원판결 6대 2로 구글 손을 들었다. API 부분은 전체 자바 코드의 0.4%에 지나지 않고, 이 API가 '공정 이용'된 덕에 모바일이라는 “전환(transformative)”이 일어났다고 판결했다.  
 
오라클은 “구글 플랫폼은 이제 더 큰 규모와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되고, 장벽은 더 높아졌고 시장의 경쟁은 줄어들었다”고 한탄했다. 한시름 돌린 구글은 법원의 판결은 "소비자와 상호운용성, 컴퓨터 과학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컴퓨터 과학의 승리라는 말은 호들갑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API 덕에 타인의 혁신을 흡수하고 그 위에 올라타며 성장한다. 또 API를 선의로 공개하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덕에 발목 잡히지 않고 더 좋은 소프트웨어로 갈아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습성이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오픈소스 엔지니어 유무에 따라 활용도 달라져

 
다만 문제는 그 소프트웨어를 아무나 지배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3세대 혁신을 활용하고 싶어도 오픈소스이다 보니 결국 기업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신세대 기술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이에 익숙한 개발자가 필수. 기업 내부에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신기술을 ‘내재화'해 소화해낼 수 있는 기업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최첨단 혁신을 테크 자이언트급으로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고가 상용 제품에 마진을 얹어 추천하는 ’협력‘ 업체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2019년 11월 11일 알리바바그룹은 ''광군제(光棍節)' 행사를 시작한 지 63분 59초만에 매출이 1000억위안(약 16조 5770억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이래서는 디지털에 의한 비약적 성장이 힘들다고 깨달은 기업이 있다. 첫 광군제를 기획했던 2009년의 알리바바였다. 오라클이 구글에 소송을 고민하던 그 시기, 알리바바는 '탈IOE(去IOE化)'라는 전략을 천명하며 3세대로 진군을 시작했다. IOE란 IBM, 오라클, EMC(스토리지)라는 2세대 업자들을 뜻하는 말, 알리바바는 5년 만에 3세대 오픈소스 기술을 흡수했고, 그 성과를 다시 오픈소스로 되돌렸다. 직접 클라우드 사업자도 되었다.  

 
이러한 ‘내재화' 성공 체험은 중국 정부도 자극해 ‘탈IOE'는 국가시책이 되었다. 오라클은 중국 사업 자체가 위태로워지고 2019년에만 900명의 중국 내 기술직을 해고한다. 한때 고객이었던 알리바바 덕이다.
 
기술 내재화에 자신감을 얻은 알리바바는 2017년 달마원(達摩院, DAMO 아카데미)을 설립한다. 무협지에 나오는 무술 연구소의 이름 그대로 발음 그대로다. 인공지능에서 RISC-V(ARM의 대안으로 떠오른 오픈소스 명령체제) 기반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의 혁신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모든 기업에 있어 생산성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클라우드 위에 데이터를 쌓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지한 개발자들의 SNS인 깃헙 위에서 페이스북의 기술로 코딩하고 애플과 구글의 앱 마켓에 출시한다.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열린 혁신 사이클이지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올라탈 수 있으니 일반 기업으로서는 애가 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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