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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앞둔 베테랑 판사가 디지털 혁신 선구자 된 이유

[인터뷰]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바쁜 실무 소화하면서도 코딩 기술 익힌 디지털 애호가
“법과 규제의 간극은 필연적인 일, 글로벌 동향 살펴야”

 
 
강민구 부장판사는 “법과 규제는 일정한 거리를 둔 가운데 법이 수세적으로 쫓아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최영재 기자]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 내 디지털 혁신을 주창하는 디지털 전문가로 유명하다. 강 부장판사 스스로가 코딩 언어를 학습한 전문가이기도 하고,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시스템 구축에도 기여했다. 그가 미국 사법시스템을 학습한 결과를 토대로 발간한 단행본 ‘함께하는 법정’은 한국 전자법정과 전자소송의 주춧돌이 됐다. 사법정보화 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최근엔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첨단 기술의 효용과 디지털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기업들은 분주히 디지털 혁신을 꾀하고 있지만, 필요한지 모르는 대중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익숙지 않거나 이를 다뤄본 적 없는 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도 심각하다.  
 
그는 ‘QR 코드 활용 비법’ ‘구글 어시스턴트 활용법’ ‘구글 알리미 활용법’ ‘에버노트 왕초보 탈출법’ 등 작지만 일상의 질을 끌어올릴 만한 활용법을 전파하는 중이다. 이중 디지털 음영지대를 시급하게 해소하자는 내용의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란 강연 콘텐트는 유튜브에서 조회수 135만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정년퇴직을 앞둔 베테랑 판사가 첨단기술을 애용하는 건 유별난 일이다. 기술혁신과 법의 관계는 종종 불편한 관계로 그려질 때가 많다. 기술을 다루는 회사들은 법이 기술의 진보를 방해하는 훼방꾼 역할을 한다고 토로한다.  
 
그런데도 강민구 부장판사가 디지털 혁신을 주창하는 건 기술의 효용을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일상에서 듣고 말하는 말을 혁신기술을 활용해 문서로 정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러 권의 전자책을 발행하기도 했다. 판결문 작성에도 구술 입력을 이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강민구 부장판사를 서초동 서울법원청사에서 만났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인터뷰에 앞서 “앱 몇 개면 녹취 정리도 간단히 할 수 있다”면서 “노트북과 노트, 펜은 일절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USB 마이크를 꺼내 스마트폰과 연결한 뒤,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기록하는 네이버 클로바노트를 실행했다.  
 
실무에도 다양한 혁신 기술을 활용한다고 들었다.  
타자 치던 손가락을 완전히 해방했다. 말로 풀어낸 걸 문서로 정리하기 위해 네이버 클로바노트, 구글렌즈, 에버노트 등을 수시로 쓴다. 각종 최신 정보를 취득하는 데는 구글알리미를 쓰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즐겨찾기 기능으로 세계 20여 개국 외신뉴스를 한글로 자동 번역해서 단박에 정보를 습득한다.
 
정년을 앞둔 판사가 각종 기술에 능한 점이 이채롭다.  
누구나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쉽진 않은데, 그 장벽을 뛰어넘는 걸 좋아한다. 호기심이 많고, 욕심도 많다. 새로운 기술을 보면 탐구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성격이다. 스마트폰이 나왔을 땐 뛸 듯이 기뻤다. 신기술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퇴임 이후 디지털 교육에 힘쓸 계획이다. [최영재 기자]
 
강연을 통해 공조직의 디지털 혁신을 전파하고 있다.  
기업은 알아서 디지털 혁신을 꾀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경쟁 요소가 적은 공공은 그렇지 않다. 당장 사법부만 해도 정보화 수준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지만, 일하는 방식까지 바꾸진 못했다.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데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그걸 다루는 리더와 조직원의 태도가 아직 더디다. 재판으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디지털 강연을 하는 이유다.
 
신기술 도입이 장밋빛인 건 아니다. 가령 기술을 어떻게 규제하느냐를 두고 사회적인 갈등이 상당하다. 법을 다루면서도 혁신 기술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이런 갈등을 줄일 해법은 무엇이 있을까.  
기술과 법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인 일이다. 기술을 법이 따라갈 수도 없고, 성급히 선제적 법을 제정해도 안 된다. 일정한 거리를 둔 가운데 기술의 글로벌 동향과 법 규제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법이 수세적으로 따라가는 게 좋다. 특히 규제 일변도의 기술 발목 잡기는 정말 피해야 한다.
 
균형을 맞추는 게 관건일 것 같다.
법 만능주의도 위험하지만, 기술 만능주의도 우려해야 한다. 많은 법조인이 기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광범위하게 학습했으면 좋겠다. 기술 동향에 까막눈이 되면 이런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난 부를 일부 IT 기업이 독점하는 부작용도 있다.
IT 업계의 기술개발, 발전은 사회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그렇다고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사용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함부로 제약하고, 일종의 검열권과 유사한 사적 권한을 남용하는 건 엄격한 사법 통제를 통해 제재해야 마땅하다.
 

디지털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 확립해야

일부에선 AI가 수많은 직업을 대체할 거라고도 전망한다. 판사 역시 그런 직종 중 하나인데.
2045년이면 AI가 인간을 추월하는 기술적 특이점이 온다는 데 전문가 견해가 일치한다. 그때쯤이면 판사를 포함한 법조인 절반의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교육 패러다임을 디지털 중심으로 속히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 청소년들은 첨단 기술을 능숙하게 다룬다. 오히려 스마트폰에 과몰입해 청소년의 사고력 확장을 방해할 거란 우려가 만만찮다. 스마트폰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술 활용 방법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지혜를 늘리는 ‘생각근육’을 튼튼하게 하라고 강조한다. 생각근육은 끊임없는 독서, 글쓰기, 꾸준한 명상과 사고실험, 각계 전문가와의 대화로 끌어올릴 수 있다. 어른 세대는 학생 세대에게 종이책을 읽게 유도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무작정 못 쓰게 하는 건 시대의 흐름에 어긋난다. 독서를 통해 디지털 독소를 해소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도 독서광이지 않나.
 
2024년 1월이 정년이다. 퇴임 후의 비전은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노년세대가 100만원을 웃도는 슈퍼 PC인 스마트폰을 마치 1만원짜리 전자기기처럼 쓴다. 이런 디지털 문맹을 깨부수는 데 지금보다 더 힘을 쏟을 것 같다. 일단 ‘디지털 상록수 교실’을 차릴 계획이다. 재능기부 식으로 디지털로부터 소외된 분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니는 게 목표다. 스마트한 디지털 생활을 하면 노년이 더 행복해질 거다. 기술 진입장벽을 무섭게 느끼는 이들에게도 적합한 눈높이로 전파할 수 있다. 개인적인 버킷리스트도 있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상을 즉각 텍스트로 정리하고, 영상 콘텐트로도 공유하고 싶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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