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 신드롬이 생긴 네가지 이유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2030세대, 걱정 없고 고민 없던 시절로 타임슬립
‘띠부띠부씰’의 랜덤박스 같은 도박성 게임 요소
유행에 동조해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도
대한적십자사가 심각하게 부족한 혈액 난을 해결하기 위해 포켓몬 빵에 도움을 구했다. 심각한 혈액 난 해결을 위해 빵 만드는 기업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 얼핏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네티즌이 적십자사가 코로나 발 혈액 부족을 겪는다는 말을 듣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포켓몬 빵’ 제조 기업인 SPC 삼립식품에 포켓몬 빵을 헌혈 후 간식용으로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 ‘오픈런’ 현상을 만들고 10시간씩 대형마트 앞에서 텐트 노숙을 하며 기다리는 열풍을 긍정적 사회현상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실제로 적십자사와 SPC 삼립식품에 의해 내부적으로 논의되었으나 현실화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물량 부족을 이유로 실제적인 검토는 어려웠지만 절묘한 아이디어였다. 적십자사로서는 포켓몬 빵을 헌혈 후 조혈을 위한 영양식으로 무료 제공하면 젊은 층의 헌혈이 크게 늘 것이고, SPC는 오너 3세의 마약 투약 혐의 등으로 인한 오너리스크, 일감 몰아주기, 노조탄압 등 최근에 만들어진 부정적 브랜드 이미지를 희석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본질은 웩더독(Wag the Dog) 마케팅
실현이 되지 않았음에도 이 아이디어가 언론과 SNS에서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포켓몬 빵’에 대한 일종의 사회현상 때문이다. 출시된 지 불과 40일 만에 1000만개가 팔린 포켓몬 빵에 얽힌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BTS의 리더 RM의 부모님이 편의점을 전전하며 그가 원하는 포켓몬 빵을 사러 다니는가 하면, 이를 보다 못해 RM이 직접 SNS를 통해 ‘더 많이 팔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어떤 편의점주는 포켓몬 빵 불매운동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없으면 없다고 고객에게 욕먹고, 하루에 두 개 들여와서 (없다고) 또 욕먹느니 차라리 안 팔고 말겠다’라는 것이 불매 선언의 이유다. 1천500원짜리 빵을 사면 제공되는 ‘띠부띠부씰’을 30배가 넘는 5만 원의 웃돈을 지급하고 샀다는 중고마켓의 거래도 화제다. ‘품절 대란’을 넘어서 ‘신드롬’이 일고 있다.
그런데 포켓몬 빵 열풍은 세상에 없었던 빵 맛 때문도 아니고 가성비가 좋아서도 아니다. 빵을 사면 제공하는 사은품 격인 ‘띠부띠부 씰’(떼었다 부쳤다 하는 씰의 줄임말)때문이다. ‘띠부씰’은 빵과 함께 무작위로 제공되는 일종의 스티커로 포켓몬에 등장하는 캐릭터 159종을 소재로 만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모든 씰을 모으는 것은 일종의 게임이자 컬렉션 아이템이 되었고, 이 씰을 구하기 위해 빵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드는 이른바 ‘웩더독’(Wag the Dog) 마케팅인 것이다. 16년 전 처음으로 포켓몬 빵이 나왔을 당시에도 띠부띠부씰의 인기는 굉장했다. 당시는 151종이었던 이 씰을 모두 모으기 위해 빵을 구매한 뒤 씰만 빼고 남은 빵은 전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은 기억을 돌려보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씰 뿐만 아니라 빵 자체도 귀해서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 등에서 빵이 활발히 거래돼, 버려지는 빵은 거의 없다. 1개에 불과 1500원인 빵을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스티커를 구하기 위해 편의점 배송 차량이 오는 시간인 밤 10시에 편의점 앞에 기다리다가, 그래도 순서가 오지 않으면, 살 수 있는 편의점이 나올 때까지 배송 차량을 따라가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희소 ‘씰 아이템’의 경우 중고 시장에서 빵값의 30배를 주고 스티커만을 구매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 ‘웩더독’ 마케팅은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들이 이미 쏠쏠한 재미를 봤던 전략이다. 맥도널드는 1979년부터 수십 년간 지속해서 이런 웩더독 마케팅을 전개해 왔다. 해피밀 메뉴를 주문한 어린이 고객들을 위해 당시에 유행하던 캐릭터 굿즈를 무료로 제공하는 마케팅을 시즌별로 아이템을 바꿔가며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국에서도 슈퍼마리오 피규어가 맥도널드 점포 앞에 어린이는 물론 어른아이(키덜트)들을 줄 세웠던 기록이 있다.
스타벅스는 매년 여름 휴가 시즌과 연말에 굿즈를 구매 마일리지에 따라 제공해 왔다. 그 중 매 17잔마다 주는 여름 휴가백을 구하기 위해 한사람이 무려 374잔을 주문하고 자신은 한잔 만 마신 후 모두 두고 나온 일화는 2020년 여름 내내 논란이 되었다.
이마트24 편의점도 지난해 도시락을 사면 삼성전자, 네이버, 현대차 등 10개의 상장사 주식을 증정하는 주식 도시락으로 주식 열풍에 빠진 MZ세대들을 저격해, 하루 만에 모든 도시락이 동이 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시락 가격은 4900원이었고 증정 주식 중 가장 비싼 주식인 네이버가 40만원 가치가 있었으니 운만 좋으면 8000%넘는 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대박’ 도시락이었다.
OTT ‘왓챠’가 이마트 24와 콜라보 한 ‘왓챠 팝콘’ 역시 ‘웩더독’의 사례로 손꼽히는 경우다. 개당 2000원에 세 가지 맛의 팝콘과 함께 왓챠 서비스를 최소 2주, 최대 3개월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이용권을 ‘꽝’ 없이 100% 담은 마케팅으로 한 달 만에 모든 재고를 소진했다고 한다.
팍팍한 현실 속 어린 시절로의 타임슬립
‘포켓몬 빵 신드롬’의 원인은 우선 불황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레트로(복고) 심리를 저격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빵의 주 고객인 2030에게 ‘진로 이즈백’이나 ‘곰표’의 레트로는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막연한 과거로부터의 복고 감성이지만, 포켓몬은 자신이 경험했던 구체적 과거 속의 특별한 복고 감성이다. 어린 시절 포켓몬 애니메이션에 빠졌던 이들은 ‘포켓몬고’를 통해 게임으로 포켓몬의 기억을 소환했던 대학 시절을 지나, 이제는 당당한 소비의 주체로 성장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갑갑하고, 불황으로 인해 녹록치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1500원만 주면 살 수 있는 포켓몬 빵은 본인을 고민 없고, 걱정 없던 어릴 적 시절로 타임슬립(시간여행) 시켜주며 잠시나마 안정감과 포근함을 느끼게 한 것이다.
두 번째는 단순한 컬렉션을 넘어 띠부띠부씰이 가지고 있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요소를 들 수 있다. 운에 따라 어떤 캐릭터 씰을득템 하는가는 같은 가격에 구매하더라도 각각의 ‘포켓몬빵’은 다른 현실 가치로 환원된다. 중고 시장에서의 리세일 벨류가 그렇게 잠정가치를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구매하는 포켓몬 빵은 일종의 대박심리를 자극하는 장치로서 ‘랜덤박스’의 역할 한다. 이러한 장치는 마치 복권의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장의 복권을 사는 심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제품의 본원적 가치와는 별개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제품을 구매하게 한다. ‘안 산 사람은 있어도 한 개만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세 번째는 일종의 밴드웨건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갑자기 20·30세대들의 관심이 몰리면서 유행에 동조해 동질감의 확인과 충족을 통해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동한 측면이 있다.
네 번째는 포켓몬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다. 하나하나의 캐릭터 디자인은 몬스터지만 스티커로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의 귀여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귀엽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현실 속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2030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본원적 가치 없는 제품은 지속 불가능
그런데 포켓몬 빵의 경우, 구매의 주된 이유가 빵이라는 제품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띠부띠부씰’이라는 일종의 사은품에 더 큰 비중이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 사은품에 대한 고객 반응이 식더라도 제품의 본질적 가치와 브랜드 가치에 의해 지속성을 가진다.
그러나 포켓몬 빵의 경우, ‘띠부띠부씰’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수집과 소장의 열기가 식으면 낮아질 수밖에없다. (적어도 포켓몬에서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지속해서 나와 세계관과 에피소드의 다양성이 더 넓어지기 전까지는말이다) 제품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부가적 가치로 제품과 브랜드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된다.
몸통 없이 꼬리만 존재하는 개는 없기 때문이다 SPC 삼립이 이런 품절대란에도 생산설비를 쉽게 늘리지 못하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단기간은 품절로 인한 소비자의 오픈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끝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한신대 IT 영상콘텐츠학과 교수다. 광고회사와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브랜딩에 관심을 가졌고 공기업 경험으로 공기업 브랜딩,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2023년 서울에서 열리는 ADASIA 사무총장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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