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디자인'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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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2021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디자이너 협업 리빙 제품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5점을 선보였다. 이번 루이비통리빙 제품 신작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페르난도&움베르토 캄파냐 형제,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 로우에지스, 프랭크 추 등이 참여해 각각의 개성을 담은 제품을 완성했다. 작품은 의자 3개와 테이블 1개, 조명 1개로 구성됐다. 먼저 캄파냐 형제는 빨강,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상을 지녀 생동감을 나타내고 둥글고 주름진 모양으로 멋을 더한 의자 ‘머랭 푸프’를 선보였고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는 활짝 핀 꽃을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의 의자 ‘페탈체어’를 내놨다. 중국 디자이너 프랭크 추는 1인 의자부터 여럿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다인용 의자 ‘시그니처 소파&의자’를 만들었다. 제품 디자인은 물 흐르듯 제품의 모든 선이 둥글게 이어지는 아치 형태로 디자인됐다. 이 디자인은 중국 원난성의 계단식 논과 미국 애리조나의 안텔로프 밸리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됐다. 이는 루이비통이 내놓은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중 첫 실외용 가구다. 디자이너 로우에지스는 둥글고 비스듬한 유리 상판이 특징인 테이블 ‘코스믹 테이블’을 선보였다. 조명은 스튜디오 루이비통이 내놨다. 스튜디오 루이비통이 공개한 제품 ‘토템 조명’은 이탈리아 무라노 지역 유리 공예 장인들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유리 모양을 만드는 수작업 형식인 블로잉 방식으로 완성됐다. 제품은 여러 구체가 위로 쌓아 올린 형태로 디자인됐다. 한편 루이비통은 가방과 패션 제품을 넘어서 지난 2012년부터는 공예기술을 결합한 장식제품, 가구 등을 ‘오브제 노마드’ 라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 유명 산업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제품이 만들어지고, 제품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2021.12.08 10:41
2분 소요
가격을 따져가며 가구를 구입했던 과거와 달리 기능성과 디자인을 우선 고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랜서 가구 디자이너로 유명한 알베르토 메다가 디자인한 의자가 각광받는 이유다.300만~500만 원. 가격만 들으면 고가의 전자제품을 쉽게 떠올리겠지만 의자 한 개의 가격이다. 이렇게 비싼 의자가 팔릴까 싶지만 ‘알베르토 메다의 의자’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믿고 산다. 기계공학과 출신인 메다의 디자인과 소재는 특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메다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1987년 선보인 ‘라이트라이트’ 의자다. “비행기나 경주용 자동차에 쓰이는 복합재료를 가정용 제품에 쓸 수 없을까 고민하다 만든 제품이다.” 값은 비싸지만 매우 가볍고 튼튼해 실제 비행기 내부 벽을 만들 때 쓰이는 노멕스 하니콤과 탄소섬유를 사용해 무게가 1㎏도 안되는 의자다. ‘의자는 가벼워야 한다’는 철학 때문에 도전한 일이다. 1990년대 후반 선보인 그물망 구조로 된 메시 소재를 의자 등판에 활용한 ‘메다체어’ 역시 가벼움에 집중하는 메다의 디자인이 반영됐다.메다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라는 것. 그는 비트라, 루체플란, 치넬리, 알레시, 르그랑, 올리베티, 만다리나덕, 필립스 등과 손잡고 일한다. 하지만 가구 회사에 소속돼 있지는 않다. 메다는 “다른 디자이너와 의견을 교환하거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디자인 구성부터 제품 완성까지 오롯이 내가 결정한다”고 했다.메다는 비트라와 손잡고 테이블, 의자 등 서재용 가구를 출시한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지난 9월에 그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 ‘피직스’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20세기 가구디자인의 거장 찰스 임스의 바퀴 달린 알루미늄 사무용 의자를 본떠서 만들었다. 인체공학적 설계로 가벼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메다가 가벼움에 집중한다고해서 편안함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르는 기능적인 디자인으로 안락하고 심플하다. 메다의 고집이 피직스에서도 드러난 것.메다가 독특한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기계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다.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날까’ 늘 궁금했다.”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지만, 그는 비행기를 직접 디자인하고 싶었다.대학을 졸업하고 기술 관리자로 일하던 그에게 가구 디자이너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건축가 파올로 리차토가 혁신적인 제품을 디자인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각도와 높낮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서재용 스탠드를 만들었다. 메다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한국을 찾은 메다는 VIP고객 및 디자인·건축 전공 관련 학생을 위한 강의도 준비했다.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무조건 만들고 보자고 의욕만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토대로 디자인 안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는 조언했다.
2014.10.29 13:30
2분 소요
가구 디자이너 배세화(33) 씨를 만나기로 한 날은 올해 더위가 최고점에 올랐던 8월 초순이었다. 일산에 있다는 그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또 십여 분을 더 걸어야 했다.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땀에 흠뻑 젖은 여정이 상상을 부추겼기 때문이었을까? 젊고 유망한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잔디가 깔린 앞마당에서 개가 뛰어 노는, 그런 한적한 풍경 속의 그림 같은 곳이리라 지레 짐작했다.그러나 작업실은 컨테이너와 가건물들이 밀집한 공장지대 한 켠의 거대 컨테이너였다. 안을 들여다보니 목재가 겹겹이 쌓여 있고 공구와 기계들이 즐비했다. 그 안에서 뛰어 놀던 애완견 한 마리만이 내 상상과 맞아 떨어졌다. 갤러리서미 전속 디자이너인 배세화 씨는 한국 가구 디자인계의 샛별이다.2007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가구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8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디자이너부문 인기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 일본의 ‘아사히카와 국제가구 디자인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으며 해외 무대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세계적인 디자인 전시회 ‘디자인 마이애미 2010’에도 출품한 데 이어 지난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바젤 디자인 페어’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한 점당 수천 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큰 인기다. 만드는 족족 팔려 국내 전시가 힘들 정도다. 미국의 문화예술 전문지 ‘아이즈인(Eyes In)’의 편집장 비비안 반 다이크는 배 씨의 가구를 소개하며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기능적”이라고 평했다.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공장단지 내에 작업실을 둔 이유는 뭘까? 배 씨는 “목재를 가공할 때 시끄럽기 때문에 주택가 인근에서는 작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목재를 가공하다니? 디자이너들은 본래 디자인만 하지 않나? “최근 젊은 작가들 중 제작까지 손수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갤러리서미의 정승진 실장은 말했다. 하지만 “손으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게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배 씨는 수작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제가 디자인한 제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게 이 일의 매력이죠.” 그는 심지어 작업을 돕는 어시스트조차 고용하지 않는다. “몇 번 고용한 적이 있지만 결국 다 내보냈어요. 남이 한건 결국 제가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작품 물량이 적더라도 혼자 해야 더 편해요.” 그가 수작업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디자인 철학이다. “가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이 가구를 보면서 작가가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따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단지 제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이 생각에 잠기고 명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공장에서 제작된 가구로는 이루기 어려운 목표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스팀 벤딩’ 기법은 손이 많이 간다. 나무를 얇 게 켜서 3~4시간 스팀을 쬔 뒤 구부려서 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구부러진 나무들을 수백 겹붙여 하나의 가구를 완성하는 데는 하루 13시간씩 6~7주가 걸린다. 대량생산을 하지 못해 디자인 하나 당 6개만 한정 제작한다. 지난해 호두나무로 제작한 ‘스팀20’는 이미 5개가 팔리고 하나만 남았다.그는 직접 가구를 만들면서 그 속에 이야기를 담는다. 중간이 부풀어 오른 형상인 벤치 ‘스팀1’은 “태아와 어머니”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래서 뭔가를 소중하게 안는다는 느낌을 담았다. 스팀시리즈의 10번째 연작인 ‘스팀10’에서는 태어난 아기를 눕힐 수 있도록 가운데가 폭 꺼진 포근한 자리를 만들었다. 가장 최근작인 ‘스팀20’은 2인용 벤치인데 각 자리의 높낮이가 다르다. “초등학생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앉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배 씨는 말했다.이쯤 되니 그의 작품이 가구인지 조각예술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분명 가구다. 그는 디자인 단계부터 기능적인 면을 먼저 생각한다. 제작할 때는 등판이 어디쯤 위치해야 더 편한지, 높낮이는 어느 정도로 해야 좋은지를 미리 생각하면서 디자인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낼 때마다 개량을 거듭해 기능성을 높인다.그가 가구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게감’이다. 기능성과 조형미를 다 갖췄으면서도 거추장스럽지 않고 단순화됐을 때 그는 “무게감이 있다”고 말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색을 드러내는 디자인이죠. 비유하자면 말수는 적어도 뭔가가 우러나오는 사람처럼요.” 가벼운 가구는 금방 질리는 데 반해 무게감이 있는 가구는 일년 내내 쳐다봐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고 그는 말했다.‘무게감 있는 가구’에는 배 씨의 성격이 많이 반영됐다. 그를 옆에서 지켜본 정승진 실장은 “다른 작가들은 작품이 많이 팔리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 좋아하는데 세화 씨는 그렇지 않다”며 인기 디자이너답지 않게 수수하고 소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배 씨는 “행사나 전시회 등 외부 노출을 즐기는 작가들의 작품은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지만 나 같이 숨어 있기 좋아하고 조용한 사람은 작품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고 말했다.가구 디자이너인 그의 집엔 가구가 전혀 없단다. “본업이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가구를 사려고 인터넷을 보다 보면 점점 욕심이 생겨요. 처음에는 저렴한 가구를 보다가도 점점 더 좋은 가구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끝도 없이 가격이 올라가죠. 차라리 내가 디자인해서 외부에 제작을 맡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그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만들지도, 사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냥 가구가 없는 집에 익숙해졌죠.”그에게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야망은 없다. “그냥 항상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제가 재미있고 즐거워야 결과물에 그 즐거운 마음이 들어가서 만족스럽게 나와요. 힘들고 지겨우면 당연히 그게 작품에서 표현이 되죠.” 그래서 바쁘더라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작업실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며 기분전환을 한다. “사람들이 소소하게 저를 알아주고 좋아해주는 걸로 충분해요. 언젠가는 시골에 목공소를 하나 차릴 거예요. 동네 사람들 가구고쳐주고 밥 한 그릇 얻어 먹으면서 서로 나눠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가능하면 1년에 작품 한두 개씩 쉬엄쉬엄 만들면서요.”
2012.11.01 16:28
4분 소요1980년대만 해도 일반 사무실 책상은 철재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철제 책상은 보기에도 투박하고, 무겁고, 낡으면 녹이 슬어 보기가 흉했다. 이런 철제 책상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획일적인 사무실에 ‘백색 혁명’을 이룬 기업이 바로 사무용 가구 전문기업 ‘퍼시스’다. 퍼시스가 등장한 후 어디서나 산뜻한 원목 책상과 인간 체형에 맞춘 곡선 책상, 등받이 의자, 작업공간에 맞게 짜인 맞춤형 사무가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퍼시스는 85년 국내 최초의 시스템 사무가구 ‘DR시리즈’를 출시해 주목받았다. 이 제품은 책상 상판의 양끝을 라운드로 처리하고 측면을 두꺼운 PVC로 마감해 내구성을 높이고 부드러운 느낌의 외관을 갖춰 눈길을 끌었다. 86년 잇따라 출시한 ‘유로테크 시리즈’도 관심을 모았다. 기능성과 경제성이 조화된 이 제품은 모던한 유러피안 스타일로 조립이 가능해 다양한 형태의 사무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가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동남아에서는 복제품이 유행했고 제품 수준에 놀란 바이어들이 한국을 방문해 확인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부터 ‘퍼시스가 만들면 트렌드가 된다’는 말이 업계에서 유행처럼 떠돌았다. 1조원 규모의 사무가구 시장은 군소업체 시장점유율이 69%, 나머지 31%가 브랜드 업체다. 이 중 퍼시스는 국내 사무가구 시장점유율 16%, 사무가구 브랜드 시장점유율 52%를 차지하며 동종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뒤를 이어 코아스웰(20%), 리바트(16%), 보루네오(12%)가 경쟁하고 있다. 종업원 207명을 거느리고 올 매출액 2000억원 달성을 바라보는 퍼시스가 사무용 가구를 사업화하기 시작한 건 지난 83년부터다. 손동창(58) 회장을 주축으로 서울 성수동에서 초기 자본금 2억원, 인원 30명으로 출발했다. 출범 당시 회사 이름은 ㈜한샘공업이었다. 이후 87년 한샘퍼시스로, 95년 지금의 퍼시스로 상호가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한샘의 브랜드를 혼용해 썼지만 한샘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퍼시스 관계자는 “현 한샘 회장인 조창걸 회장이 퍼시스 지분 11.6%를 보유하고 있지만 업무적으로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퍼시스는 창업 초기엔 스테인리스 싱크대를 주로 제조했다. 84년 김영철 퍼시스 명예회장이 대표로 있던 한샘건축연구소와 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테리어와 조화된 시스템 사무가구로 전환했다. “퍼시스가 만들면 트렌드 된다” 손 회장과 함께 퍼시스 창업 멤버였던 양영일 사장은 한샘건축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상업공간 및 가구 전반에 걸쳐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84년 한샘건축연구소가 합병되면서 퍼시스로 자리를 옮긴 양 사장은 갈고 닦은 디자인 역량을 발휘해 사무용 가구를 규격화하는 데 기여했다. 양 대표는 “다양한 가구를 디자인하면서 사무용 가구도 전체 공간과의 조화, 시스템을 고려한 맞춤형 가구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PC가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해 PC 환경에 맞는 맞춤형 사무용 가구의 수요 증가를 예측한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을 당장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고품질 원칙을 고수하며 고급 원자재와 디자인 개발에 투자한 퍼시스 제품이 기존 가구보다 두 배 이상 비쌌기 때문이다. 가격보다는 품질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래서 일반 고객보다는 외국계 회사나 디자인 계통 일을 하는 사람의 사무실을 공략해 퍼시스 제품의 우수성을 알려 나갔다. 처음엔 가격 때문에 멈칫하던 고객들도 퍼시스만의 독특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다. 퍼시스는 디자인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연구개발(R&D)을 핵심부문으로 여겨 89년 국내 최초로 과학기술처 인증 기업부설 가구디자인연구소를 설립했고, 현재는 50여 명이 디자인은 물론 신기술·신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중 절반은 디자인 전공자, 나머지 절반은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들이다. 양 대표는 “인체 공학에 맞는 의자, 작업 동선을 고려한 책상 구조 등은 디자인 출신과 엔지니어들의 합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열악한 교육환경을 바꾸기 위해 교육용 가구 ‘팀스’를 개발했다. 팀스의 매출은 2004년 94억원에서 2005년 166억원을 기록, 무려 76.6% 성장을 이뤘다. 신흥증권 이주병 애널리스트는 “팀스 사업은 매년 기록적인 성장으로 퍼시스의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며 “연구개발로 탄생한 전자칠판이나 전자교탁 등에 따른 매출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퍼시스의 디자인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99년 독일 하노버의 iF(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 중 하나)가 주최하는 ‘iF 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프레고 의자로 ‘우수디자인상’과 ‘에콜로지 디자인상’을 받았다. 에콜로지 디자인상은 환경친화적인 디자인 제품에 주는 상이다. 디자인 개발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낳은 결과였다. 외환위기 때 오히려 사업 확장 이 회사는 구조조정이 단 한 번도 없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97년 외환위기로 가구업계가 줄줄이 도산할 때도 퍼시스는 오히려 회사를 확장했다. 가정용 가구 ‘일룸’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을 시도한 것. 일룸은 짧은 시간에 급속히 시장을 넓혀 나갔다. 이에 따라 양 대표는 디자인과 제작을 함께하되, 유통은 따로 하는 ㈜일룸을 설립했다. 규모를 키워 일거리를 더 확보하겠다는 뜻이었다. 퍼시스는 창업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양 대표는 직원들에게 항상 “시장에서 팔리는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 재무와 수익구조가 건강해야 회사가 산다”고 강조했다. 퍼시스가 초창기 싱크대 제조에서 사무용·가정용·교육용 가구를 잇따라 출시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도 시장의 트렌드를 바로 읽은 덕분이다. 퍼시스가 무적자 운영을 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100% 대리점 영업을 한다는 점이다. 퍼시스는 무운송차량·무창고·무납품·무재고 등 대리점 ‘4무(無) 정책’을 펴고 있다. 다른 동종 업계가 대리점 영업과 본사 특판 영업을 동시에 하는 것과 달리 본사는 지원만, 대리점은 영업만 하는 분업체제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양 대표는 “이런 점이 지금도 튼튼한 유통망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이 체제는 본사에 큰 이익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본사와 대리점 간 판매권 분쟁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가구업계에서 유통이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할 수 없다”며 “본사와 대리점의 신뢰관계가 퍼시스의 튼튼한 재무구조를 받쳐주는 힘”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황정하 애널리스트는 “2005년 이후 경쟁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 속에서도 퍼시스가 50% 이상의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리점 경쟁력”이라고 분석했다. 퍼시스 대리점은 84년 1호점을 연 이후 현재 전국에 133개가 생겼다. 발로 뛴 영업 덕분에 이제 고객군도 넓어졌다. 일반 회사부터 정부·학교·도서관·기숙사·가정 등 어디서나 퍼시스 제품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KTX 역사 등 주요 공공시설에도 퍼시스 제품 일색이다. 이 회사는 99년부터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현재 순 현금자산만 1000억원, 현금 유보율은 1149%에 이른다. 이 같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국에 사옥을 설립하고 전시장과 물류센터를 만드는 등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퍼시스는 2008년 완공을 목표로 250억원을 투자해 지하 4층, 지상 10층, 연면적 3446평 규모의 신사옥을 지을 예정이다. 대전과 광주에도 각각 2206평, 1203평 규모의 사옥을 지어 전시장과 물류센터를 갖출 계획이다. 현금 자산만 1000억원 보유 양 대표는 전국에 물류센터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구 물류 시스템은 단순하지 않다. 소비자에게 운반해주고, 끌어올려 주고, 조립해주는 일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물류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면 수익을 못 맞추게 된다.” 중동과 동남아를 주무대로 수출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04년엔 147억원, 2005년엔 165억원을 달성해 12.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향후 미국 시장도 노리고 있다. 요즘 가구업계는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저가 상품은 중국이, 고가 상품은 유럽 제품이 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 ‘극중월구(克中越歐)’를 모토로 세계 유수 가구 디자인 벤치마킹과 새 모델 개발 등으로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가구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지난 상반기 퍼시스는 관계사인 일룸을 통해 상장 가구업체인 리바트(5.02%), 에넥스(6.42%), 하츠(12.24%)의 지분을 각각 취득했다. 리바트는 가정용 종합가구업체, 에넥스는 종합가구업체다. 업계에선 퍼시스가 종합가구업체로 가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퍼시스는 ‘단순투자’라고 공시했다.
2006.11.27 15:40
6분 소요정연석 회장. 김영세. 케빈 리. 몇 달 전 한국의 대표적 산업 디자이너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은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경제주간지에 실린 짤막한 기사 한 줄을 읽었다. 가구 등 생활용품 디자인 업체인 엠포리아에서 강남 도산대로변에 디자인 테마빌딩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은 김 사장은 귀국하자마자 엠포리아 정연석 회장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다. 디자인에 인생을 건 두 남자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 회장에게 빌딩의 컨셉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 사장은 그 자리에서 빌딩 12, 13층 두 개층을 매입해 이노디자인 본사를 그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같은 서울대 미대 출신인 두 사람(김영세 사장이 3년 선배)은 그 전까지 일면식도 없었지만 ‘디자인’을 매개로 ‘선수’들끼리 마음이 통한 것이다. 김영세 사장이 한국의 산업디자인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린 인물이라면 정 회장은 백화점 인테리어와 가구디자인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78년 디자이너로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한 이후 주로 삼성전자의 해외전시관을 기획하다 5년 만에 독립해 현대·신세계·애경·한신코아 등 백화점 인테리어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강남 부유층 사이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수입가구회사 디오리지날 회장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김영세 사장을 만나기 전에 이미 또 한 명의 세계적 인물과 만나 의기투합했다. 바로 파티플래너이자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케빈 리(Kevin Lee)와의 만남이다. 재미동포인 케빈 리는 오스카나 에미상 수상식장의 행사 준비를 책임졌던 인물이며, 톰 크루즈 등 미국의 유명 연예인과도 친분이 깊어 그들의 파티를 수도 없이 주관했었다. 지인을 통해 정 회장과 만난 케빈 리는 이 빌딩 지하에 호텔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차별화된 최고의 파티 행사장을 만들기로 했다. 대체 정 회장이 만들고 있는 강남 빌딩이 어떤 곳이기에 디자인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정 회장과 손을 잡은 것일까.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마법이 있습니다. 빌딩 하나만 제대로 디자인해도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비싼 땅에 세운 빌딩 전체 공간의 10%를 푸른 수목으로 채우려 합니다.”(정 회장) 착공한 지 3년이 지난 이 빌딩에는 정 회장의 마음이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빌딩을 수공예품처럼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다 보니 12월 초로 예정된 완공 날짜도 제대로 못 지킬 것 같아 요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한다. 정 회장은 건물 이름을 ‘디자인 돔(design-dom, design+kingdom의 합성어)’으로 정하고 건물이 완공되는 대로 입주자들을 다양한 업종의 디자인 관련 회사들로 구성할 예정이다. 유리 모양도 제각각 디자인 돔은 외관부터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명품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선 건물 외벽 사방을 투명유리로 뒤덮어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했다. 다분히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일반 건축물 개념을 뒤엎은 발상이다. 이처럼 ‘누드빌딩’으로 설계한 배경은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이게 해 건물 전체가 마치 살아 꿈틀대는 유기체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다. 누드빌딩은 빌딩 디자인의 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선보이는 것은 디자인 돔이 처음이다. 또 외벽 창문의 격자 사이즈도 제각각이다. 건물 설계자인 시 건축의 한철수 소장은 “창문들을 세 가지 모드로 적절히 배치해 각자의 크기가 전부 다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창문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짜맞춘 듯한 분위기를 내 건물을 하나의 수공예품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층마다 높이를 달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창문 아랫부분이 햇빛을 받아 반사광선을 발하도록 함으로써 해가 뜨고 질 때엔 건물이 발광체처럼 반짝이는 광경을 연출하도록 했다. 홍콩서 꺾인 에스컬레이터 찾아내 각 층 화장실을 가장 전망이 좋은 건물 정면 오른쪽에 배치한 것도 상식을 깬 차별화 포인트다. 특히 조경부문에 많은 배려를 하는 등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인근 건물과의 사이에 벽을 헐어내고 값비싼 자작나무와 왕대나무를 심고, 건물 내부 곳곳에도 왕대나무 정원을 조성해 입주자나 방문객들에게 숲 속의 ‘쉼터’에 와 있는 듯한 안락함을 제공하고 있다. 벽을 허물고 나무를 심는 모든 비용도 정 회장이 대기로 했다. 이 빌딩의 탄생엔 전 세계의 성공 모델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건물을 짓는 동안 시장조사 팀이 미국·일본·중국·홍콩 등지로 수시로 달려가 최고급 건축자재를 들여오고, 건물 콘텐츠를 벤치마킹했다. 미식가이기도 한 정 회장은 이 빌딩 안에 최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본과 중국을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얼마 전 도쿄 출장 때엔 맛있는 요리를 찾기 위해 2박3일 동안 70가지 이상의 메뉴를 직접 맛볼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정 회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은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우리 빌딩에 오면 비싸지 않으면서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얼마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다녀가 화제가 됐던 도쿄의 이자카야(선술집) ‘곤바치’를 벤치마킹하고 돌아왔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최고 수준의 음악밴드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직접 남미 콜롬비아로 날아가기까지 했다. 주위에선 “빌딩 하나 짓는 데 뭐 그리 요란을 피우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음식 운반 전용 엘리베이터 운행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도입에 얽힌 에피소드도 디자인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생각을 말해 준다. 그는 당초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고민하면서 “왜 이놈의 기계는 직선이어야만 하고 넓은 공간을 차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어느 날 홍콩 출장 길에 한 건물에서 중간쯤에 직각으로 꺾인 에스컬레이터를 보고는 무릎을 쳤다. “바로 저것이다.” 그는 귀국 즉시 진행되고 있던 1층 내장설계를 바꿔 버렸다. 이렇게 해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꺾인 에스컬레이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정 회장은 엠포리아 빌딩의 기능에 대해 “디자이너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고품격 선진 생활문화를 보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엠포리아는 고급 생활문화의 ‘원스톱 솔루션’을 구현하는 복합 상업 건축물이다. 15개 층 전체를 상호 보완적 업종으로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엠포리아는 일반적인 건물 분양방식 대신 입주자를 엄선해 직영 또는 공동사업 형태로 빌딩을 운영할 방침이다. “디자인은 가치를 창출합니다. 건축도 돈만 많이 들인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죠. 디자인 돔을 짓는데 150억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다들 놀래요.” 정 회장은 대지면적 260평에 건물 총 면적이 1610평에 달하는 지하 2층, 지상 15층(주차장 별도)의 이 건물을 값으로 평가하는 데 대해선 거부감을 느낀다.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하 1·2층과 14·15층은 웨딩파티·콘서트·이벤트홀·댄싱룸·스카이라운지로 꾸며지며, 2~4층은 일본식 레스토랑 ‘마루’와 중국문화원에서 후원하는 패션몰과 광둥식 딤섬 레스토랑 등 ‘차이나 룸’이 자리를 잡는다. 주한 중국 대사관에선 “중국 문화에 이렇게 후한 대접을 해 줘 너무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오기까지 했다. ‘마루’는 신라호텔 조리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의 고급 일식전문점 ‘에도긴’을 운영하고 있는 이병환씨를 영입해 맡기기로 했다. 5·6층에는 명품 수입가구인 ‘디오리지노날’의 갤러리가 들어선다. 지하층과 4층 사이에 음식 운반 전용 엘리베이터가 운행돼 레스토랑들과 파티 홀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준다. 정 회장은 이 빌딩 안에 직영 또는 조인트벤처 형태의 사업체만 들여놓을 계획이다. ‘엠포리아 포럼’이란 협의체를 구성해 건물 운영과 신규사업 개발 등에 관해 협의하게 된다. 케빈 리의 경우 엠포리아와 합작사를 설립해 선진 파티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엠포리아는 사옥이 완공되는 시점에 발맞춰 여러 신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엠포리아 빌딩을 전초기지로 한 ‘공간문화사업’. 공간문화사업은 고급 소비층을 대상으로 실내를 세련되고 우아하게 꾸미고, 행사 모임 등의 이벤트화를 대행해 주는 신종 비즈니스다. 역시 이 사업의 핵심 요소는 디자인. 이 사업을 위해 엠포리아는 국내 또는 외국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해서 공간문화사업 분야의 ‘나이키’가 되겠다는 게 엠포리아의 꿈이다. 첫 번째 타깃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엠포리아는 이들 시장에서 우리나라 대중문화처럼 디자인의 ‘한류’ 열풍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엠포리아는 최근 중국 건설부 산하 국영회사인 베이징천단주식유한회사와 합작의향서를 체결, 중국을 포함한 세계 디자인 시장의 공동 개발을 전담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정연석 회장 1953년 대구 출생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삼성그룹 해외마케팅 & 프로모션 팀장 밀라노 롬바르디아 디자인포럼 멤버 1994년 디오리지날 리빙 창업 2002년 엠포리아 회장 취임
2005.10.31 00:00
6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