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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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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속에 웬 벽돌이?”…일산 아파트 기둥 파열, ‘부실시공’ 추정

부동산 일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기둥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고양시와 소방 당국이 긴급 안전점검에 나선 결과 부실시공이 추정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18일 고양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5시 10분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기둥이 파열되며 철근이 노출됐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고양시는 아파트 붕괴 등의 우려는 없다고 판단해 입주민을 대피시키지는 않았다.사고가 발생한 아파트는 1994년 준공한 건물이다. 기둥이 무너진 곳의 상부는 지상주차장으로 건물과 직접 연결된 기둥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고양시와 소방 당국은 기둥 주변에 보강기둥 12개를 설치해 긴급 보강 작업을 실시했다. 또 지표투과레이더(GPR)탐사를 실시해 지반침하 여부를 조사했다.안전점검자문단 조사 결과 기둥 파열의 원인으로는 불량 콘크리트로 추정된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자갈, 모래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어야 기준 강도가 발현되지만, 부서진 기둥 안에는 경화된 콘크리트와 벽돌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고양시 안전점검자문단 위원인 장호면 세명대 교수는 현장점검 후 “이번 기둥 파열 원인은 부실공사로 추정된다”며 “콘크리트 타설 부분에 벽돌, 경화된 콘크리트 덩어리를 집어넣어 철근과 콘크리트 부착력, 인장압축강도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콘크리트 보의 주근을 둘러 감는 보강철근인 늑근의 간격을 15cm 간격으로 해야 하는데 30cm로 간격이 맞지 않는다”면서도 “지반침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국토교통부와 고양시는 다른 지하주차장 기둥을 대상으로 콘크리트 강도를 측정하는 등 정밀 안전 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다.

2023.11.18 11:39

2분 소요
우주에선 우리 몸에 어떤 변화 올까

산업 일반

1년의 우주 비행에서 발생하는 근육 손실은 40년에 걸친 노화 과정과 맞먹을 수 있어 50년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프로그램으로 사람이 달에 착륙한 이래 미국의 상상력은 대중을 위한 우주여행의 꿈에 사로잡혔다. 최근 미국 상원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논란 많은 해군 비행사 출신 짐 브라이든스타인 공화당 하원의원을 새로운 NASA 국장으로 인준했다. 하지만 그는 우주 관광과 화성 탐사를 적극 주창한다. 따라서 미국 대중이 지구에 얽매이는 여행 대신 우주를 탐험할 전망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해질지 모른다.하지만 인간의 몸은 ‘암스트롱 한계(Armstrong Limit)’를 넘어서면 견디기 힘들다. 여압된 환경이 아니거나 보호 장치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해발 18~19㎞ 구역을 가리킨다. 대기권 밖의 우주 공간에 도달하기 전인데도 그 구역에선 우주복 없이는 몸이 부풀고 체액이 끓어오르며 폐가 파열되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면서 약 2분만에 죽음에 이른다.비교적 잘 보호된 국제우주정거장(ISS) 내부도 방사선과 미소중력, 가족·친구와 단절된 외로움, 냉동건조 음식 등으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 엑서터대학 생명·환경과학과의 콜린 딘 박사는 “우주는 극단환경으로 인체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우주 비행이 초래하는 변화 중 일부, 예를 들면 근육 손실 같은 것은 1년의 우주 비행으로도 40년에 걸친 노화 과정과 맞먹을 수 있다.”NASA 인간연구 프로그램은 10년에 걸쳐 우주 여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지난 1월 NASA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주 비행사 1명이 ISS에 약 1년 동안 머물렀고 그의 일란성 쌍둥이 형은 지구에 남아 있었다. 1년 뒤의 두 사람을 비교해 본 결과 체질량이 줄었고 장내세균이 달라져 있었다. 우주에서 보낸 시간으로 생긴 이런 변화는 지구에 돌아온 뒤 몇 달 또는 그 이상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는 우주 비행사가 약 3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 왕복 여행을 안전히 마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우주 여행이 인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은퇴한 NASA 우주비행사 데이비드 울프 박사는 미국 안과학회 연차대회 기조연설에서 많은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돌아온 뒤 겪는 시력 손상을 지적했다. 그런 현상은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그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영국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 천체물리학연구소의 앤드리어 폰트 박사는 “우주에선 체액이 이동해 몸통과 머리 등 몸의 상부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며 “그중 특히 뇌의 구조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폰트 박사는 “이런 문제는 척수액이 뇌에 몰려 일어나는 두개내 압력 증가와 관련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주에 오래 머문 비행사의 몸을 MRI로 촬영하면 안와에 뇌척수액이 증가한 것을 보여준다. 눈이 이런 압력을 방출하는 밸브 역할을 하는 듯하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개발한 고무 진공 바지는 체액을 다리 쪽으로 빨아올린다. 따라서 그런 장치가 우주비행사의 시각 문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폰트 박사는 말했다. 과거 우주비행사의 눈을 보호하기 위한 자외선 방사 차단제가 선글라스의 개발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고 딘 박사는 말했다. “그 외에도 NASA가 개발한 여러 혁신 기술이 지구에서의 삶에도 혜택을 준다.”혈액 지구에선 심혈관계가 체내 혈액을 운반하기 위해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그러나 미소중력 또는 무중력 환경에선 심장의 좌우 심실 크기가 줄어든다. 심박과 혈압, 심장의 분당 분출 혈액량도 감소한다. ISS 우주비행사들을 테스트한 결과에 따르면 그들이 서 있을 때의 심박수가 지구에서 누웠을 때의 심박수와 비슷했다.면역체계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우리의 면역 반응이 우주에선 달라지는 것을 보여줬다. 스트레스, 방사선, 미소중력, 수면 패턴 변화, 외로움 등의 요인이 합쳐져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우주비행사가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지난해 NASA의 연구 결과가 시사하듯이 우주 환경에선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듯하다.근골격계 최근 학술지 생리학저널에 21일 간의 우주 비행에서 저중력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한 결과가 실렸다. 이 논문은 우주 환경이 우리 근육에 제기하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딘 박사는 “현재의 우주비행이나 화성 탐사 같은 미션에서 우리가 부닥치는 중대한 건강 문제 두 가지는 뼈와 근육의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주복이 우리의 골격과 근육에 주어지는 스트레스를 막아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미소중력 때문에 우리의 뼈와 근육은 지구에서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테스트 결과는 골밀도가 우주 비행시 1개월에 약 1% 낮아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ISS 우주비행사 37명의 등속 운동력을 조사한 결과 우주 비행 후 평균 8~17%의 감소를 보였다.지구에선 중력이 척주(척추와 그 사이의 원반이 모여 기둥을 이룬 상태)를 내려 누르지만 우주에선 중력이 거의 없어 키도 커질 수 있다. 지난 1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가나이 노리시게는 최근 트윗을 통해 3주 동안 ISS에 체류한 뒤 키가 커졌다고 말했다(처음엔 약 9㎝ 커졌다고 말했지만 곧 이어 계측에 문제가 있었다며 실제 키는 2㎝ 정도 자랐다고 밝혔다).- 캐슈미라 갠더 뉴스위크 기자

2018.05.28 11:13

4분 소요
제2 롯데월드, 과연 안전한가 - 여기는 ‘공~포월드’

산업 일반

창업주의 숙원이 시민의 안전에 앞설 수는 없다. 롯데그룹은 생각이 다른 듯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 사업이라는 제2 롯데월드의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와중에 롯데그룹은 저층부(쇼핑·문화시설) 임시 사용 승인을 내달라고 서울시를 재촉하고 있다. 과연 그래도 될까.롯데그룹이 서울시에 저층부 임시 사용 승인을 요청한 날 전후에도 공사 현장에는 부실 시공, 누수, 고압변전소 소방설비 오작동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석촌호수 물 빠짐 현상, 싱크홀(지반 침하) 논란, 교통 대란 우려 등 123층 제2 롯데월드를 둘러싼 공포와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현장 시공 부적합 사항 조치의 건’ ‘롯데월드타워 시공 오류 개선 조치 요청’ ‘제3차 시공오류 현황 및 각 동 누수현황 조속 조치 지시’ ‘롯데월드몰 시공오류 개선 조치 요청’…. 롯데그룹이 서울 신천동에 짓고 있는 제2 롯데월드 공사현장에 내려진 작업지시서 제목이다. 시행사인 롯데물산이 5~6월에 공사 현장에 지시한 것이다. 롯데그룹이 제2 롯데월드 저층부를 빨리 열게 해달라며 서울시에 임시 사용 승인 신청서를 낸 6월 9일 전후 일이다.작업지시서는 시행·감리 회사 등이 공사 현장에 지시할 내용을 기록한 서식이다. 지난해 2월 큰 논란이 됐던 제2롯데월드 메가 기둥 균열 발생 문제 역시 감리회사인 한미글로벌이 2012년 10월 말에 작업지시서를 통해 시공사인 롯데건설에 전달한 내용이었다. 롯데건설은 이를 쉬쉬하다 12월에야 외부 구조물 진단업체에서 균열로 인한 안전성 위험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 ‘늑장대응’ 논란이 일었다.본지 취재 결과 롯데물산은 올 5월 28일 롯데월드몰(저층부) 시공오류를 개선하라는 작업지시서를 현장에 보냈다. 제2 롯데월드 저층부 승인 신청을 한 열흘 후인 6월 19일에도 ‘조속히 반영하라’며 ‘롯데월드몰 시공오류 개선조치 요청의 건’을 전달했다.앞서 6월 2일에는 명품관이 들어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현장 점검 결과 문제점과 개선사항이 접수됐다며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보완공사 요청 건’을 하달했다. 6월 12일에는 ‘제3차 시공오류 현황 및 각 동 누수현황 조속 조치 지시’라는 작업지시서가 현장에 전달됐다. 제2 롯데월드 공사 현장에 누수 현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현장 관계자는 “겨울에는 동파 사고, 최근에는 배관 누수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고 말했다.석촌변전소, 분진과 먼지로 소방설비 오작동공사 시공 오류 등은 공사판에 자주 있는 일이라고 치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5월 28일 롯데물산이 보낸 작업지시서 제목은 ‘C2 현장 154kv 석촌변전소 소방설비 정상화 조치 요청의 건’이다. 석촌변전소 주변 공사로 인해 변전소 내 소방설비 오작동이 있으니 대책 수립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지난 3월 말에도 ‘석촌변전소 소방설비 정상화 조치 요청에 따른 보완 사항’에 대한 작업 지시서가 현장에 전달됐었다. ‘C2’는 제2 롯데월드 구역을 가리킨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2 롯데월드 지하 3~5층에는 송파구 일대에 전기를 보내는 석촌변전소가 있다. 문제는 15만4000볼트급 고압변전소 바로 위 지하 1~2층에 초대형 아쿠아리움(수족관)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변전소 위 수족관’은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제2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완공을 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이와 관련, 변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전력 관계자는 “변전소는 민감한 시설이어서 분진이나 먼지로 인해 소방설비가 고장 날 수 있다”며 “현재는 석촌변전소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전소 소방설비 조치 관련 작업지시서 전해진 날(5월 28일) 현장에는 ‘변전소 누수 및 소방설비 오작동 사례’를 담은 문서도 함께 전달됐다. 앞선 5월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2 롯데월드를 현장 점검할 때 남문현 송파소방서장은 “소방 쪽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제2 롯데월드 내 석촌변전소 관련 공사는 롯데건설이 맡고, 한국전력 남서울지역본부가 관리·감독을 한다. 국내외 유례 없는 ‘변전소 바로 위 수족관’그렇다면 국가 중요 보안시설로 지정된 고압변전소 바로 위에 어떻게 초대형 수족관이 들어설 수 있을까. 지하변전소는 침수가 되거나 화재가 날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사업법 전기설비기준 21조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발전소·변전소·개폐소 또는 이에 준하는 곳은 침수의 우려가 없도록 방호장치 등 적절한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어야 한다.’, ‘발전소·변전소·개폐소 또는 이에 준하는 곳에 시설하는 전기설비는 자중, 적재하중, 적설 또는 풍압 및 지진 그 밖의 진동과 충격에 대하여 안전한 구조이어야 한다.’제2 롯데월드는 지하 6층으로 지어진다. 공사 기간 내내 엄청난 진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석촌변전소 바로 위 아쿠아리움은 수량 5300t급이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조직이 개편되고 담당자가 바뀌어 당시 변전소 관련 협의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하지만 한전의 다른 관계자는 “당시 한전 내부에서도 규정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롯데 측이 방수·방호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겠다고 제안해 협의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석촌변전소는 롯데 소유 부지를 한국전력이 임차해 쓰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변전소 소방설비나 안전 문제가 있다면 조사를 하고, 규정 위반 여부와 협의 과정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제2롯데월드는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동(고층부)과 저층부인 에비뉴엘동·캐주얼동·엔터테인먼트동으로 이뤄진다. 저층부는 99% 완공됐고, 123층 고층부는 70% 정도 지어졌다. 이 중 전체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저층부에는 명품관·쇼핑센터·영화관 등 집객 시설이 들어서는데, 이를 조기 개장하겠다는 것이다.본지가 7월 7~9일 현장을 둘러봤더니, 저층부 내부는 사실상 공사가 끝났고 일부 구역은 내·외부 마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제2 롯데월드는 인허가를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롯데그룹은 1987년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매입해 1990년대 중반부터 제2 롯데월드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태우~김대중 정부에선 정부와 공군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지 5.5km 인근에 전시 전략적 요충지인 공군 성남비행장(서울공항)이 있어 비행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였다.하지만 롯데그룹에 구세주(?)가 나타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이 2002년 7월 서울시장에 취임한 한 달 후, 롯데는 기존 36층(143m)에서 112층(524m)으로 바꾼 설계 변경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국방부와 공군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결국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임기 마지막 해에 변경안이 통과됐다.이후 국방부는 국무총리실에 행정협의조정위원회 협의조정을 신청했고, 2007년 7월 정부는 비행안전 문제로 112층 건축 불허를 결정했다. 하지만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상황이 다시 급반전한다. 이 대통령 당선 전후로 롯데그룹은 잇따라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에게 건축 허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는 일사천리. 이례적으로 다시 열린 정부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서울공항의 활주로를 3도 변경하는 안을 마련한다.15년 간 결사 반대했던 공군도 활주로 변경과 비행 안전시설 비용을 롯데그룹이 부담한다는 조건을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은 경질됐다. 결국, 조정위는 9일만에 작성된 비행안전 용역 보고서를 명분으로 2009년 3월 31일 112층 건축 허가를 승인했다. 그 해 말 롯데그룹은 112층을 123층(555m)로 설계 변경한 후 2011년 6월 착공했다. 제2 롯데월드가 ‘MB의 선물’로 불리는 이유다.건물 올라가며 사고…사고…또 사고제2 롯데월드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갔지만 온갖 사건·사고로 시끄러웠다. 2012년 중순엔 10층까지 올라간 건물 주기둥에서 100여 개의 균열이 발견돼 안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듬해 6월에는 공사장 붕괴사고로 6명이 사상했다. 지난해 11월 초에는 제2 롯데월드에 불량 내화충전재가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공사장 바로 옆 석촌호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그 즈음이다. 당시 롯데 측은 “수위 저하는 공사 현장과 무관하고 자연증발량이 훨씬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부랴부랴 한강물을 끌어다 석촌호수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 돈의 절반은 송파구청이 냈다.하지만, 11월 16일 민간헬기가 고층 아파트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석촌호수 논란은 수면으로 가라앉고 ‘비행안전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정치권과 사정당국, 서울시 관계자는 본지 인터뷰에서 “제2 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가타부타 얘기가 없다.또한 제2 롯데월드 층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됐지만 서울시가 “롯데가 소송을 걸면 시가 100% 진다”며 발을 뺐고,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이 “데이터 상으로는 비행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서면서 비행 안전 논란은 흐지부지됐다.탄력을 받은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저층부 조기 개장 방침을 언론에 흘렸다. 신격호 회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올해 제2 롯데월드 저층부가 오픈을 앞두고 있다”고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롯데그룹 관계자는 “1월 말 제2 롯데월드 건립을 주도했던 박창규 롯데건설 사장이 경질되고, 김치현 실장(정책본부 운영실장)이 사장에 선임되면서 공사 현장이 총력전, 속도전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 관계자 역시 “공기 단축 압박이 심해지면서 현장이 뭔가 체계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털어놨다. 석촌호수·싱크홀 공포 확산이윽고, 2월 중순 공사 현장 46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서울시는 즉각 47층 철골공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서울시는 직접 안전 점검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4월 8일 폭발사고가 나면서 근로자 1명이 사망했다. 이런 와중에도 롯데그룹은 3월 6일 송파구청과 함께 ‘롯데월드몰 채용박람회’를 열어 빈축을 샀다. 조기 개장을 염두에 둔 롯데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역풍을 맞았다.서울시는 채용박람회 일주일 뒤 ‘서울시와 공식적으로 사전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5월에 저층부 조기개장이 기정사실로 된 것처럼 보도되는 상황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론이 악화하자,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올 5월 11일 공사 현장을 방문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사고가 없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이튿날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장을 찾아 “시민 안전을 위협하면 (조기 개장을) 용납 안 할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이때를 전후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제2 롯데월드 저층부 개관 D-데이가 7월 11일’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리고 6월 9일 롯데는 서울시에 저층부 임시 사용 승인 신청서를 냈다. 롯데 측은 이후 ‘제2 롯데월드 저층부가 친환경 건축물 최우수 등급 인증을 받았다’며 여론전을 폈다. 하지만 사단법인에서 받은 친환경 인증은 안전과는 무관한 내용이다. 6월 23일에는 초고층도시건축학회를 포함한 4개 단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제2롯데월드 종합안전점검을 해 187개 지적사항을 모두 적정 조치했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하지만 이 점검은 3~5월에 월드타워동(고층부)을 점검한 것이고 저층부와는 상관이 없었다.그러자 서울시는 2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시민자문단을 꾸려 7월 1일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때부터 석촌호수 물 빠짐 의혹과 싱크홀(지반 침하) 발생 논란, 교통 대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본지가 확인한 자문단 의견서에 따르면, 석촌호수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한 시점은 제2 롯데월드 굴착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2012년 6월엔 정상 수위보다 50㎝, 지난해 11월에는 70㎝ 낮아졌다. 이에 대해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롯데월드가 지하 6층(37m)까지 굴착공사를 하면서 지하수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악에는 석촌호수가 말라버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그룹 측은 ‘공사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롯데는 하루에 한강물 450여t을 끌어와 석촌호수를 채우고 있다. 본지가 7월 7~8일 석촌호수를 찾았을 때도 호수 가장 자리 관로에서는 끊임없이 한강물이 급수되고 있었다. 원래는 수질 관리를 위해 성내천 물을 받던 관로였다. 관로 주변은 부하물과 쓰레기가 둥둥 떠 있었다. 롯데그룹이 걸어놓은 ‘석촌호수를 깨끗이 만들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무색했다.제2 롯데월드가 조기 개장하면 상습 정체구역인 잠실역 교통 체증이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시민자문단 교통분과위원장인 심익섭 동국대 교수는 “잠실역 사거리는 기존에도 교통혼잡이 극심한 곳인데 롯데 측은 현재 교통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안 없이 저층부를 조기개장하면 차량이 갑자기 몰리면서 교통 체증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롯데그룹이 교통 정체를 방지하겠다며 서울시와 약속한 협의도 상당 부문 이행되지 않고 있다.논란이 커지면서 인근 주민·시민이 느끼는 공포는 생각보다 깊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제2 롯데월드 인근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견되고, 도로가 주저앉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 싱크홀은 포트홀(눈이나 비가 온 뒤 도로에 생기는 얕은 구멍)과 달리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도로가 밑으로 꺼지는 지반 침하 현상이다. 송파구 일대 주민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롯데월드 굴착공사로 인한 지하수 유출이 원인이라고 의심한다.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3곳의 싱크홀은 하수관 파열과 상수도 누출이 원인이라고 서울시와 송파구청은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향후 9개월간 전면조사에 나서 석촌호수 수위 저하와 싱크홀 발생이 제2 롯데월드 공사와 관련이 있는지를 밝힐 예정이다. 7월 8일 낮 석촌호수에서 만난 50대 주부는 “우리 애들이 여기(제2 롯데월드)를 공포월드라고 부른다”며 “설마 하면서도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7~8일 잠실역 인근에서 만난 상인·주민·시민 반응도 비슷했다.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제2롯데월드 공사와 관련해 시민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알 수 있는 예는 또 있다. 지난 5월 중순, 제2롯데월드 도로 건너편에 있는 롯데캐슬 지하 1층의 문구점 칸막이 유리창이 갑자기 깨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 목격자는 “충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펑’하는 소리와 함게 박살이 났다”며 “손님들이 놀라 밖으로 뛰쳐 나가고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해당 문구점 관계자는 “단순한 시공 문제일 뿐 공사 때문은 아닌 것 같다”며 “롯데 캐슬에서 바로 교체를 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를 목격한 많은 상인은 “당시 사고를 본 사람들이 롯데월드 공사 때문 아니냐며 불안해했다”고 전했다.도로에 구멍이 조금 나고, 유리창 하나만 깨져도 불안해하는 시민들. 이것이 현장이 느끼는 공포다. 그럼에도 롯데그룹은 곳곳에서 제기되는 안전 문제가 제2 롯데월드와는 무관하다며 공사를 강행하고 서둘러 명품관·쇼핑몰을 열려고 한다. 일각에선 “고령(93세)인 신격호 회장의 숙원사업을 생전에 완성하려는 충정”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잠실역 일대는 흔히 롯데 왕국으로 불린다. 롯데그룹이 잠실역 일대 롯데월드·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에서 한 해 버는 돈은 2조원이 넘고, 제2 롯데월드가 완공하면 연 1조원을 더 벌 수 있다고 한다.부근 롯데캐슬 지하 문구점 유리창 깨지는 사고도롯데그룹의 심벌인 ‘3L’은 자유(Liberty)·사랑(Love)·삶(Life)을 상징한다. 임종원 서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가 쓴 에는 ‘롯데의 3L은 다중의 행복 추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말이 나온다. 헛말인가. 이 책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고객을 모셔 놓고 고객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안 된다. 고객을 섬긴다는 것은 고객에 대한 안전을 최우선 하는 것, 이것이 서비스의 첫째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설(제2 롯데월드)을 조국에 남기려는 뜻밖에 없습니다.” 신격호 회장이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은 공사를 철저히 재점검해야할 것이다.

2014.07.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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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PERSONS OF INTEREST - 뉴스위크 화제의 인물

산업 일반

재점화된 다이애나 암살 음모론 - 영국 왕세자비가 영국 특수부대에 암살됐다는 주장 제기됐지만 신빙성 없는 듯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영국군에 암살됐을까? 8월 17일 전 영국 특수부대 SAS 대원의 가족이 그런 음모를 시사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국 경찰은 그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97년 8월 31일 새벽 프랑스 파리의 알마 터널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운전기사 앙리 폴이 몰고 다이애나와 당시 남자친구였던 도디 알-파예드가 탄 벤츠는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오던 파파라치를 따돌리려고 하다가 터널 기둥과 충돌했다.1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고의 원인에 여전히 의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도디 알-파예드의 부친 무함마드 알-파예드를 비롯한 여러 음모론자들은 영국군이나 영국 왕실이 그 사고의 배후라고 주장해왔다.영국 경찰은 다이애나 사망의 공식 수사를 끝낸 뒤 얼마 전까지는 음모론 주장을 조사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최근의 주장은 영국 정예 특수부대 SAS 대원이 포함된 재판에 등장한 주요 증인의 가족에게서 나왔다. ‘병사 N’으로만 알려진 한 남자의 전처 가족은 그 전직 특수부대원이 전처와 이야기하면서 SAS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의 배후”라고 떠벌렸다는 주장을 담은 편지를 썼다.런던 시경의 대변인은 그 편지의 사본을 입수했다고 확인했다. 법정 심리에선 민감한 내용이 편집됐지만 그 군인이 전처에게 SAS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제거를 계획했으며 그 후 “은폐됐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 시경 대변인은 그 주장을 영국 경찰 전문가들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런던 시경은 그 죽음과 관련해 최근 입수된 정보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그 신빙성을 분석 중이다.”영국 신문 선데이 피플이 열람한 그 편지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포함돼 있지 않다. 고위 군 간부는 뉴스위크에 그 주장의 출처와 관련해 중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그 주장은 전직 SAS 대원이 이혼 후 제기된 것으로 그냥 해본 이야기에 근거한 듯하다. 그 이야기를 진짜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 사건은 수많은 음모론에 휘말렸다. 이게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최초의 음모론은 1997년 8월 사고 직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등장했다. 당시 36세였던 다이애나의 충격적인 죽음은 당시 새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전례 없는 애도와 비탄을 촉발시켰다.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지 1년 뒤였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공포와 분노로 많은 사람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국민의 왕세자비’가 어떻게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알-파예드는 자신의 아들과 다이애나의 결혼을 막으려는 왕실의 지시에 따라 영국군이 그들을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이애나가 자기 아들의 아기를 가졌고 영국 왕실은 무슬림 가족과의 결혼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논리였다. 해로즈 백화점의 전 소유주인 알-파예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공이 영국 해외정보국 MI6에 암살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필립공이 지시를 내렸다. 그는 아주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다. 그는 독일 혈통이다. 그가 나치 동조자라고 난 확신한다.”다이애나 자신도 왕실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두려워했던 듯하다. 찰스 왕세자가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다이애나가 개인 집사 폴 버렐에게 보냈다는 사실이 그녀 사후 10년 뒤 밝혀졌다.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고 그녀는 1993년 편지에서 썼다. “남편이 내 차에 ‘사고’를 내려고 일을 꾸미고 있다. 브레이크 파열로 심한 머리 부상을 입게 하려고 한다.”영국 사교계 명사로 다이애나 전기를 쓴 콜린 캠벨은 다이애나가 그런 두려움을 절친한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수는 있지만 그녀가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애나가 한 모든 말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녀는 부풀린 말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데 뛰어났다.”캠벨은 다이애나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 사고의 목격자 여러 명을 인터뷰했다. 그녀는 사악한 음모가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동기가 없다. 다이애나는 이미 사교계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왕실에서 그녀를 없앨 필요가 없었다. 필립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다이애나를 제거하려고 애썼다는 발상이 터무니없다고 말할 것이다.”2004년 영국 경찰은 다이애나, 도디, 운전기사 앙리 폴의 죽음을 수사했다. 2년 뒤에 종결된 그 수사에서 암살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다이애나는 임신하지 않았고, 당시 도디와 약혼한 사이도 아니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뒤 2008년 조사는 운전기사 앙리 폴과 그 뒤를 추격하는 차량의 “지나치게 부주의 한 운전”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다이애나와 도디가 숨졌다고 발표했다.런던 시경의 왕실 경호 책임자를 지낸 다이 데이비스는 별도로 진행된 3건의 수사 결과 그들의 죽음은 사고였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그 판단은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사고였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암살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경찰은 최근의 주장을 조사하고는 있지만 다이애나 왕세자 사망 사건의 수사를 재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물론 프랑스와 영국에서 실시된 사인 조사에서 내려진 결론대로 다이애나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들이 탄 차를 파파라치들이 뒤쫓았고, 운전기사는 음주 상태에서 차를 너무 빨리 몰다가 통제력을 잃어 사고 다발지점으로 악명 높은 터널 내부의 기둥을 들이받았다는 결론이다.운전기사였던 앙리 폴은 일상 업무가 끝난 지 3시간 뒤인 저녁 10시에 리츠 호텔에서 예기치 않게 호출 받았다. 그는 호텔 바에서 파스티스를 마시는 모습이 포착됐다. 파스티스는 프랑스에서 식전에 마시는 술로 뿌연 과일주스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훨씬 높다.음모론자들은 앙리 폴이 의심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폴은 프랑스 정보기관들과 거래를 한 듯했고, 은행계좌가 여러 개였으며, 소득도 들쭉날쭉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호텔 경비원들이 주로 손대는 은밀한 거래에 그가 연루됐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암살보다는 특정 인사(저명인사나 VIP)가 체크인했을 때 정보원들에게 알려주고 뒷돈을 받는 거래를 말한다. 술을 좋아하고 조심성도 별로 없어 보이는 폴 같은 남자는 영국군이 20세기의 가장 대담한 범죄 중 하나를 수행하기 위해 이용할 인물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알-파예드는 더는 황당한 음모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대변인은 알-파예드가 가장 최근에 제기된 암살 음모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 철저한 조사를 기대한다.”-NICO HINES “내 인생의 한 단계일 뿐이다” - 브래들리 매닝, 위키리크스에 미국 기밀정보를 제공한 죄로 35년 징역형 선고 받았지만 기죽지 않아미국 군사법원은 8월 21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수십만 건의 군사·외교 기밀 자료를 넘긴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미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25)에게 징역 35년형을 선고했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포트미드 군사법원 데니스 린드 판사(대령)는 군사법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매닝의 형량을 이같이 결정하고 불명예제대, 일병에서 이병으로의 계급 강등, 봉급 일부 몰수 등도 함께 판결했다.2010년 6월 체포돼 감금된 매닝은 앞으로 32년간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하며 형량을 최소 3분의 1 이상 복역하기 전에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다. 린드 판사는 2분가량의 짧은 시간에 판결문을 낭독했으며 구체적인 형량 산정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그런 무거운 형량에도 매닝은 놀랍도록 “쾌활하다”고 그의 변호사 데이비드 쿰스가 전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당신이 최대한 노력했다는 걸 잘 알아요. 울지 말고 기뻐하세요. 문제없어요. 이건 내 인생의 한 단계일 뿐이죠. 난 계속 전진해서 이 곤경을 극복할 겁니다.’”하지만 매닝의 변호를 맡은 쿰스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선고 내용이 믿어지지 않았다”고 쿰스가 말했다. “도덕적으로 올바르며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일을 한 착한 젊은이가 살인자가 받는 형량을 선고 받았다.”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이 선고 내용을 듣고 황망해하는 동안에도 매닝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매닝이 우리 모두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고 쿰스는 말했다. 사실 매닝의 기밀정보 폭로는 그 규모와 범위에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위키리크스와 매닝을 상대로 최대 규모의 형사 수사가 진행됐다.재판에서 검사측은 매닝을 군인들의 안전과 미국의 국가안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중요한 기밀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줄리언 아산지와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반역자로 몰아붙였다. “그는 미국을 배신했기 때문에 여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며 원래 60년을 구형했었다.쿰스에게 매닝의 기밀정보 유출이 끼친 가장 심한 피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큰 피해는 내 고객이 선고 받은 형량이다. 폭로된 정보의 관점에서 볼 때 피해라면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뿐이다.”선고가 내려진 후 기자회견에서 매닝의 변호사 쿰스는 매닝이 직접 작성한 성명서를 대독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려면 때로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Sometimes you have to pay a heavy price to live in a free society)”고 매닝은 썼다.또 매닝은 선고가 내려진 뒤 NBC 투데이쇼에 보낸 성명서에서 성전환 의사를 밝혔다. “난 첼시 매닝이다. 난 여자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느낌이 그렇다. 하루빨리 성전환 호르몬 요법을 받고 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도소 측은 호르몬 요법을 처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ALEXA O’BRIEN 절묘한 미소의 수수께끼 풀릴까 - 고고학자들이 유골 발굴과 DNA 검사로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을 확인하려고 노력 중이다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토르솔라 수녀원 폐허 아래 깊숙한 지점에서 흰색 작업복을 입은 발굴대원들이 5세기 이상 된 여성 8명의 유골을 덮고 있던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그중 한 유골은 리자 게라르디니 델 조콘도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유명한 ‘모나리자’의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다.그러나 이탈리아 국립문화유산위원회의 실바노 빈세티 위원장이 이끄는 발굴팀은 어느 유골이 그녀의 것인지 정확히 확인하기가 보통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중 가장 한 유골은 탄소연대측정법으로 1500년대에 매장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 기록에 따르면 리자 게라르디니는 그 시점에 매장됐다.가장 가능성 큰 유골이 확인됐지만 고고학자들은 아직도 그 유골이 다 빈치의 가장 유명한 모델의 것인지 완벽하게 확신하진 못했다. 그러나 최근 그들은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데 한 발 더 다가섰다. 게라르디니의 친족 유골을 발굴한 것이다.게라르디니의 남편이 수녀원 지하 묘지에 묻혔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의 DNA를 이용해 그들의 아들 피에로의 유골을 확인하는 중이다. 아들의 유골도 그와 함께 가족 묘지에 묻혔다. 확인되면 피에로의 DNA가 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DNA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리자 게라르디니의 아들 DNA로 어머니 리자의 유골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진짜 어려운 문제가 시작된다고 빈세티는 말했다. 그는 유골을 바탕으로 모나리자의 얼굴을 컴퓨터로 복원할 계획이다. “그녀가 진짜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기에 충분하며, 더 중요하게는 그 유명한 미소가 진짜 그녀의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그림의 모나리자와 다르다면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미술 역사가들은 다 빈치 그림의 모나리자가 왜 그런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에 관해 많은 가설을 제시했다. 빈세티는 컴퓨터를 이용한 안면 복원을 통해 그녀가 흉한 치아를 숨기려고 했는지, 안면 장애가 있었는지, 아니면 원래 입모양이 그렇게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미소가 실제 그림을 그린 지 수년 뒤에 덧칠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다 빈치의 자화상이 그 그림 안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안면 복원이 이 수수께끼의 걸작을 둘러싼 모든 의문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빈세티는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리자 게라르디니가 모나리자와 닮았는지 완전히 다른지는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닮았다고 하더라도 왜 그런 미소를 지었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BARBIE LATZA NADEAU

2013.08.26 17:13

8분 소요
[조주청의 원더풀! 실버 라이프 17] 지구촌 구석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비경

산업 일반

▶ 앙헬 폭포 앞에 서면 천상에서 긴 비단폭이 지상으로 펼쳐진 것 같다. 분초를 다투는 CEO가 잠시라도 여유를 갖긴 쉽지 않다. 호젓한 해외 여행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지만, 보고 느낄 것도 많다. 세계 110여 개국을 둘러본 여행 작가 조주청 씨가 숨은 비경을 지닌 10곳을 소개한다. 베네수엘라 앙헬(Angel) 폭포 오리노코강의 발원지인 고원지대, 그랑사바나(Gran sabana)는 브라질 상단의 국경과 맞닿은 베네수엘라 서남쪽, 울울창창한 정글에 덮여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이곳은 페몬 인디오만이 조상 대대로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살아갈 뿐 문명세계와는 동떨어진 전인미답의 오지였다. 1937년 어느 날 바람 · 새 · 비 소리만 들리던 이 적막 강산에 멀리서 엔진의 파열음이 가느다랗게 들려온다. 적막을 깨며 4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 한 대가 나타나 그랑사바나 고원 위를 배회하더니 거대한 아우얀 테푸이의 테이블처럼 평평한 산 꼭대기에 착륙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네 사람이 비행기에서 내린다. ▶ (좌) 페즈의 수많은 공방 중 한 곳에서는 무두질이 한창이다. (우) 프로세시온이 지나가는 길바닥에는 컬러 톱밥으로 꽃길을 만들어 놓았다. 미국인 지미 에인절(Jimmie Angel)과 그의 부인, 그리고 에인절의 친구 두 사람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엘도라도를 찾으러 온 것이다. 엘도라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뜬 구름이란 것이라고 판명된 지 수세기가 흘렀건만 이 위대한(?) 몽상가들은 어딘가에 엘도라도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그들은 드넓은 아우얀 테푸이를 샅샅이 뒤져 봤지만 황금 부스러기 하나 찾지 못했다. 끝자락에서 망원경을 들고 사방 천지를 내려다 봐도 황금빛을 찾을 수가 없었다. ▶ 1 페트라 최고의 장밋빛 신전 알 카즈네 앞에 서면 숨이 막힌다. 2 히바의 미나렛은 뽀족한 탑에 불을 밝혀 사막의 등대가 된다. 3 도곤족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풍부한 미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설상가상 착륙할 때 망가진 비행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아우얀 테푸이에서 내려가는 길도 없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비상 식량을 챙기고, 밧줄로 네 사람의 허리를 묶고 함께 성호를 그었다. 그들은 절벽을 타고 내려오다가 얼어붙는다. 수직낙하 807m의 폭포! 나이애가라의 16배 높이 정도되는 폭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바위에 매달린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들은 천신만고 11일 만에 아우얀 테푸이를 내려와 문명세계로 돌아온다. 인류 역사는 몽상가들이 만든다고 했던가. 에인절 일행은 엘도라도를 찾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폭포를 발견하고 폭포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에인절 폭포라 했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이곳에서는 앙헬 폭포라 부른다. 항공 : 미국 · 캐나다 혹은 멕시코 경유 왕복 요금 : 인천~카라카스(446만원 · 세금 제외) 과테말라 안티구아(Antigua) 과테말라는 적도 바로 위 열대지방에 자리 잡은 나라다. 그러나 이 나라 서북쪽은 해발 1,500m가 넘는 드넓은 고원지대로 사시사철 시원한 가을 날씨가 이어진다. 스페인은 중남미 신대륙을 식민지로 만들고 이곳에서 수도를 찾았다. 시우다드 비에하가 적지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1541년, 언제나 수도를 내려다보며 축복을 내려주던 볼칸아구아 산이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울더니 마침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이 휴화산은 분화구에 물을 가득 담고 있다가 화산이 터지며 물을 한꺼번에 쏟아내 바위와 진흙탕 물이 스페인 식민지 수도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스페인 통치자들은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다가 2년 후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6.5km 떨어진 지점에 다시 수도를 세웠다. 스페인 왕의 명령으로 스페인의 일류 건축가들이 대서양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화산이 폭발해도 진흙탕 홍수가 미치지 않을 곳에 터를 잡고 아무리 큰 지진에도 끄떡없는 석조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대성당이 하늘로 치솟고 위압적인 총독부 건물, 아름다운 극장, 시장, 수도원, 광장, 대학, 성채…. 길바닥은 돌 벽돌로 수놓아졌다. 세상이 불바다가 돼도 끄떡없는 계획도시 안티구아는 이렇게 태어났다. 233년 동안 안티구아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773년 7월 29일, 상상도 못할 대지진이 이 철옹성 도시를 뒤흔들었다. 수차례의 지진은 이 도시를 거의 파괴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3년 후, 식민지 수도는 다시 과테말라 시티(현재 과테말라의 수도)로 옮겨졌다. 무너진 석조건물 틈으로 잡초가 돋고 황량한 바람만 부는 안티구아는 방치돼 버림받은 유령도시가 됐다.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인 길을 다듬고 무너진 성당을 일으켜 세웠다. 현재 안티구아는 옛 상처를 씻고 3만 명이 살아가는 깨끗한 고도(古都)가 됐다. 3월 마지막 일요일은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 부활절을 기리는 성주간)가 시작되는 날이다. “하느님, 이 도시를 보호해 주소서.” 세계 최대의 세마나 산타 행사가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막을 올린다. 16세기부터 이어져 온 이 행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장관이다. 항공 : 미국 · 캐나다 혹은 멕시코 경유 왕복 요금 : 인천~과테말라(529만원 · 세금 제외) ▶ (좌) 타나섬의 야켈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다. 큰 반얀 트리 한 그루는 마을 회관이 된다. (우) 문명의 원천이자 나일강의 원류인 빅토리아 호수는 내륙해다. 어부가 나일퍼치를 잡아 올렸다. 모로코 페즈(Fez) 타임머신을 타고 14세기 초엽의 중세로 돌아가 보자. 서북아프리카, 아틀라스 산맥이 그 우렁찬 용트림을 한숨 죽인 리스산 남쪽 기슭, 거친 들판에 한줄기 흙바람이 지나고 난 후 안개처럼 자욱했던 황사가 서서히 가라앉자 아침 안개에 쌓인 밀레의 그림처럼 희끄무레한 토성이 윤곽을 드러낸다. 페즈. 토성에 둘러싸인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인 이곳은 그 전성기의 꽃을 활짝 피웠다. 토성에 들어서면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갈기갈기 찢어지고, 갈라지고, 합쳐지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은 멀리서 온 상인들로 북적거린다. 골목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공방(工房)들이 저마다 가득히 화려한 상품을 쌓아 놓고 상인들과 흥정을 벌인다. 벌집 같은 수많은 웅덩이 속에는 빨강, 파랑, 노랑, 자색 등의 물감이 담겨 있다. 이곳에서 양과 소 가죽을 염색하고, 아라비아 카펫이 철컥철컥 베틀 위에서 한 치 한 치 이어져 가고, 어린 소녀들이 비단 천에 정교한 자수를 놓는다. 일일이 망치를 두드려 음각하는 황동 접시의 문양은 눈이 부시다. 정교한 은 세공품이 손님들의 발목을 잡고 비단과 금 · 은 실로 짠 보석 같은 구두는 술탄의 애첩을 위해 만든 것일까? 700여 년이 흐른 지금, 페즈는 어떻게 변했을까. 7세기 동안 이곳은 변함이 없다. 중세의 그 모습 그대로 페즈는 살아서 맥박이 뛰고 있다. 컴퓨터가 제어하는 정교한 자동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요즘 세상에서 페즈의 수많은 공방들은 어떻게 아직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 이 대답도 간단하다. 페즈의 수공예품은 아직도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 : 유럽 대도시 경유 왕복 요금 : 인천~라바트(318만원 · 세금 제외) 요르단 페트라(Petra) “사우디 모래 속의 검은 황금을 다 준다 해도 페트라와 바꿀 수는 없다.” 요르단이 자랑하는 페트라는 영화 로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페트라에 첫발을 디디면 엄청난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에 얼어붙는다. 불과 4~5m밖에 안 되는 틈새를 두고 100여m나 되는 암벽이 마주보고 섰다. 꼬불꼬불 이어진 협곡은 2km나 이어졌다. 대자연이 만든 이 경이로운 협곡에 인간이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기원전 나바틴 왕국은 이 협곡을 수도로 정하고 맞은편 절벽에 사원 · 보물창고 · 왕릉 · 목욕탕 등 온갖 건물들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건물은 나무를 자르고, 돌을 다듬어서, 벽돌을 구워 쌓아올려 짓는다. 하지만 이곳 페트라의 그 웅장한, 아름다운, 섬세한, 수많은 건축물들은 놀랍게도 모두 거대한 통바위를 깎아(carving) 만들었다는 것이다. 로마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 이곳은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들이 이곳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어 나바틴 왕국은 통행세를 받고 중계무역을 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 협곡에 햇살이 들어오면 바위는 붉은 장밋빛으로 변해 페트라는 장미의 도시로 불린다. 대상들의 길목으로 번창하던 페트라는 로마의 끝없는 공격에 손을 들고 이번엔 정복자 로마의 명을 받아 나바틴 사람들은 원형극장을 만든다. 이 역시 거대한 돌판을 깎아 만들었다는 사실에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다. 몇 세기가 흐른 후 비잔틴 제국이 이곳을 지배하며 이번엔 비잔틴 건축을 꽃 피웠다. 항공 : 유럽 대도시 혹은 이집트 경유 왕복 요금 : 인천~암만(350만원 · 세금 제외) 우즈베키스탄 히바(Khiva) 실크로드의 중심, 유라시아 대륙의 배꼽은 바로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온 나라가 사막이지만 톈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 기름진 평야와 쾌적한 오아시스들을 만들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가장 오래된 오아시스는 이 나라 서쪽 변경에 자리 잡은 히바다. 티무르제국이 시들고 코레즘 왕국이 16세기 말 이곳을 수도로 정하자 히바는 카스피해와 러시아로 가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크게 번창한다. 사막의 외딴 왕국 수도 히바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오아시스로도 악명을 떨쳤다. 노예사냥꾼들이 대상을 습격하고 물건을 뺏고 상인들을 히바의 노예시장에 팔았다. 19세기가 거의 저물어 갈 때도 500여 명의 러시아인 노예들이 히바성 안에 갇혀 있다가 1만3,000명의 러시아 군대가 침입함으로써 베일에 쌓였던 공포의 오아시스는 그 실체를 드러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나간 지금 잔인한 군주와 노예시장은 사라졌지만, 히바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 앞에 나타난다. 히바의 밤은 원한에 사무친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들 말한다. 히바의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귀신은 울어도 미나렛(이슬람 사원의 첨탑)은 높이 솟아올랐다. 사막을 오가는 대상들은 없지만 오늘도 불을 밝혔다. 히바성은 크지 않다. 성벽을 따라 걸어도 한바퀴 도는 데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벽 속엔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번성했던 코레즘 왕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왕궁 · 모스크 · 미나렛 · 메드레사 · 아크…. 성안의 민가들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항공 : 러시아나 중국 경유 왕복 요금 : 인천~타슈켄트(206만원 · 세금 제외) ▶ 1‘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타클라마칸 사막. 2 허텐의 비단 공장(?)은 1,600년 전 모습 그대로다. 3 바타드 이푸가오족들의 고상 가옥이 불을 밝혔다. 말리 젠네(Djenne) 모스크와 도곤(Dogon) 컨트리 사하라 사막 아래쪽, 준사막을 사헬(Sahel)이라 부른다. 인간이 살아가기엔 가혹한 건조하고 척박한 이곳에서 코란의 독경 소리는 삶의 고통을 덜어준다. 이곳의 모든 집들이 흙집이듯 모스크도 흙으로 지어졌다. 모스크는 아랍 건축 양식의 꽃이다. 띄엄띄엄 흩어진 마을마다 한복판엔 흙 모스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우뚝 솟아올랐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니제르강의 지류인 반니강의 섬 젠네에 있는 모스크다. 14세기부터 사하라를 종단한 대상들과 서부 아프리카 상인들의 교역 장소였던 젠네는 돈이 들끓어 웅장한 모스크를 지었다. 지구상에서 흙으로 지은 최대 건축물 중 젠네 모스크가 세계 건축계에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그 규모에 아름다움이 가미됐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은 젠네의 장날이다. 사하라 사막 언저리 사헬에서는 가장 큰 장으로 바로 이 젠네 모스크 앞마당이 장터가 된다. 기온이 섭씨 50도로 치솟아 대지는 펄펄 끓는데 붉은 모스크는 병풍처럼 왁자지껄하며 난장을 벌이는 인간을 감싼다. 젠네에서 차로 두 시간쯤 동북쪽으로 가다보면 사하라 사막 언저리, 그 옛날 지각 변동으로 150km나 뻗은 거대한 단층이 형성된 곳인 도곤 컨트리가 나온다. 절벽 아래위에 옹기종기 흙집을 짓고 모여 사는 수많은 도곤족들의 마을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바오밥 나무와 흙집, 끝이 뾰족한 반추형 초가 곡식 창고, 조각 작품 같은 마을의 모스크…. 영화 나 에서나 나옴직한 동화 같은 마을들이다. 도곤족들이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외경스러움마저 느껴진다. 항공 : 유럽 대도시와 세네갈 다카 경유 왕복 요금 : 인천~다카(520만원 · 세금 제외). 다카~말리(요금 미정). 남태평양 바누아투 타나(Tanna) 섬 남태평양의 뉴헤브리디즈 군도가 1980년에 바누아투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80여 개의 올망졸망한 섬들로 이뤄진 이 나라의 인구는 불과 15만 명. 이 나라 수도가 있는 에타페섬이 가운데에 있고 그 아래쪽에 타나섬이 있다. 타나섬은 울울창창한 정글로 뒤덮인 화산섬이다. 인구라야 2만5,000명밖에 안 되지만 30여 개 부족이 30여 개의 각각 다른 말을 사용하며 100여 개의 마을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박혀 있다. 그 중 야켈 마을은 첩첩산중 정글 속에 숨어 있다. 이 마을의 추장 존슨 고야는 절대 권력자다. 그는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생활방식을 고수한다. 남자들이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페니스 케이스뿐이요, 여자들은 나무 속껍질로 만든 치마가 전부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배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자고, 사랑을 하고 싶으면 남녀가 손을 잡고 숲 속으로 들어간다. 비만 간신히 피할 수 있는 움막집에 살림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겐 소유란 개념 자체가 없다(부인만 빼고). 비료나 농약 한번 뿌리지 않아도 집 뒤뜰에서 자라는 얌?타로겙慈만?밭도 옆집과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젊은이들은 타나 섬을 벗어나 아스팔트 위로 차가 다니고 디스코 바에서는 쿵작쿵작 록 음악이 귀를 찢는 포트빌라로 나간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다시 야켈 마을로 돌아와 페니스 케이스를 찬다며 동네 어른들은 껄껄 웃는다. 항공 : 호주나 뉴질랜드 경유 왕복 항공요금 : 인천~빌라(354만원 · 세금 제외)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Lake Victoria) 서구 문명의 원류 이집트, 이집트의 근원 나일강. 나일강의 원천은 어디일까. 나일의 원천을 찾으려는 서구인의 열망 속엔 문명의 뿌리와 함께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수수께끼도 숨어 있다. 나일은 그들 종교의 창시자 모세가 바구니에 담겨 떠내려 온 강이 아닌가. 그러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나일강의 수원에 대한 끊임없는 탁상공론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실증이 절실히 요구됐지만 어느 누구도 이집트 남부 아스완 상류에 있는 여섯 개의 폭포를 지나 늪지로 들어가는 강줄기를 따라올라 갈 수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 끝에 영국 왕립 지리학회가 파견한 스펙이 1858년 8월 3일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내륙해(內陸海)의 장관에 감격했다. 현지인이 냔자호라고 부르던 우리 남한보다 조금 작은 아프리카 최대의 호수를, 스펙은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호라고 불렀다. 스펙은 직감으로 나일강의 원류가 빅토리아호임을 알아차렸다. 영국으로 돌아온 스펙은 왕립지리학회에 이 사실을 보고해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동료에서 철천지 원수가 된 버턴이 빅토리아호는 나일강의 수원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논쟁은 치열해진다. 리빙스턴은 버턴의 편을 드는 오류를 범했다. 화가 치민 스펙은 빅토리아호로 되돌아가 1862년 7월 28일 마침내 빅토리아 북단, 지금의 우간다 호반에서 호숫물이 북쪽으로 흘러나가는 나일의 접점을 찾아낸다.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항공 : 이집트나 케냐에서 캄팔라 왕복 요금 : 인천~나이로비~캄팔라(594만원 · 세금 제외)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허텐(和田) 투르크어로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이란 뜻의 타원형으로 길게 누워 있는 거대한 사막 타클라마칸은 북쪽으로는 톈산(天山) 산맥, 남쪽으로는 쿤륜(崑崙)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톈산산맥 언저리에 있는 오아시스를 따라 이어진 길이 서역 북도, 쿤륜산맥 언저리를 따라가는 길은 서역 남도가 된다. 서역 남도 최대의 오아시스는 허텐이다. 기원전부터 중국의 서역 경영은 창과 칼이 맡았다. 그러나 수많은 오아시스 소왕국을 다스리는 데 무력은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의 왕들은 후궁들로부터 얻은 공주들을 오아시스 왕국의 왕에게 시집보내 혈연을 맺는 유화책을 병행했다. 5세기, 중국의 공주는 두 번 다시 못 볼 왕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머나먼 허텐 왕국으로 떠났다. 한 달 후 간쑤(甘肅)성 변방의 둔황(敦煌)에 도착해 며칠 동안 여독을 풀고 낙타 가마에 갈아타고 사신들과 함께 쿤륜산맥을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이어진 서역 남도를 따라가며 공주는 펑펑 눈물을 뿌렸다. 둔황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중국에서는 우전국(優塡國)이라 불리는 허텐에 닿았다. 공주는 허텐 왕이 호화롭게 마련해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문을 잠그고 눈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높이 말아 올린 머리를 풀었다. 머릿속에서 뽕나무 씨와 누에고치가 나왔던 것이다. 그 당시 대상들의 낙타 등에 실려 실크로드를 따라 로마로 가던 실크는 중국의 전유물이었다. 중국 뽕나무와 누에, 그리고 비단의 제조 비법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공주의 말아 올린 머리에서 중국의 비단 독점 생산이 무너졌던 것이다. 허텐의 비단을 만드는 곳은 시간이 멈췄다. 가마솥에 고치를 삶아내 1,500년 전 중국의 공주가 설계했음직한 물레로 실을 뽑고 실을 나무 베틀에 걸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북이 오간다. 나무 물레는 손때가 묻어 까맣게 반들거리고 베틀은 삭아서 삐거덕거리고 천년을 두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방법대로 비단을 짠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비단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기계 비단 천 필이 쏟아져 나올 동안 허텐의 비단은 채 한 필도 마감하지 못하지만 노인네들의 주름진 얼굴엔 실망의 빛이 없다. 항공 : 중국 대도시 경유 왕복 요금 : 인천~우루무치(128만원 · 세금 제외) 필리핀 바타드(Batad) 2,000여 년 전 말레이시아계인 이푸가오족들이 바다를 떠돌다 필리핀 루손섬에 상륙했다. 그들은 다른 부족에게 쫓겨 다니며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창과 칼을 든 인간의 텃세에서는 벗어났지만 목숨을 이어가기에 매우 혹독한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벼농사뿐이었다. 코가 바로 닿을 듯 깎아지른 산비탈에 계단식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평의 논을 만들기 위해 세 평의 돌 축대를 쌓아 올렸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쌓고 또 쌓았다. 마닐라가 있는 필리핀에서 가장 큰 루손섬. 이 섬의 척추, 코르디렐라산맥은 남북으로 길게 누웠다. 이 산맥 북쪽 깊숙이 해발 1,500m 첩첩산중에 30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바타드 마을이 있다. 병풍을 두른 듯 깎아지른 산이 바타드 마을을 감싼다. 구름이 산허리를 두른 가파른 산들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온통 논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바타드의 집은 아직도 대부분이 전통적인 이푸가오식 고상(高床) 가옥이다. 네 기둥 위에 우리 한옥의 대청마루보다 정교하게 마루를 깔고 높은 초가 지붕과 천장 사이의 넓은 다락은 나락단 창고가 된다. 나락단을 꺼내 손으로 훑어 절구에 찧고 키질을 해 쌀을 얻어 가느다란 호롱불 아래서 식구들이 저녁밥을 먹는다. 이푸가오 초가집에 깜박거리는 호롱불이 켜지면 빼꼼히 뚫어진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또 다른 별들이 동네 지붕 위로 이푸가오 계단식 논 위를 날아다닌다. 바로 반딧불이인 것이다. 숲은 수많은 반딧불이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 반짝거린다. 논에 오글거리는 다슬기는 바로 반딧불이의 중간 숙주다. 항공 : 마닐라 경유 왕복 요금 : 인천~마닐라(102만원겮선?제외) ※ 왕복 항공요금은 성수기 기준임.

2007.07.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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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이나 운동으로 90% 극복 가능…‘남자의 병’ 요통은 빠르게 걷기 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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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걷기는 요통과 디스크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 중 하나다. 고종관 중앙일보 기자. 남자들이 겪는 명절 증후군 중 대표적인 질환이 요통이다. 올해도 추석 이후 예년처럼 척추 전문병원에 환자가 몰리고 있다. 남성 환자는 허리를 삐끗한 척추염좌가 가장 많다. 고정된 자세로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나서 차에서 선물 꾸러미를 꺼내다, 또는 가사를 돕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들다 허리를 다치는 것이다. 평소 운동 부족으로 척추를 지지해 주는 근육이 부실해진 탓이다. 척추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과 온몸으로 분포되는 신경 다발을 보호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척추는 25개의 마디 뼈가 블록처럼 쌓여 있다. 이 각각의 뼈 사이에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쿠션(디스크)이 들어 있고, 힘줄(건)과 인대·근육이 마디 뼈를 묶어 척추를 형성한다. 허리를 삔다는 것은 힘줄과 인대가 늘어나 염증과 부종이 생기는 현상. 심한 경우 디스크를 다치거나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 급성 척추염좌가 생기면 통증뿐 아니라 주변 근육이 딱딱해져 누르면 심하게 아프다. 디스크가 손상됐을 경우 신경 다발을 누르면 다리 쪽으로 방사통이 생기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일반인은 허리가 아프면 디스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병원을 찾는 요통 환자 중 10%만이 수술 대상이다. 대부분 재활이나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 요통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우선 허리와 목뼈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예컨대 누워있을 때 허리에 걸리는 부하량은 25㎏이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는 140㎏, 앞으로 허리를 굽히면 185㎏으로 부하가 늘어나고, 이 자세에서 물건을 들 때는 275㎏의 중량이 허리에 걸린다. 다음은 운동이다. 목과 허리 운동의 목적은 뼈를 지지해 주는 근육과 인대를 강화해 디스크의 역할을 분담하는 데 있다. 운동을 하면 이러한 보조 시스템이 강화될 뿐 아니라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조직의 노화를 늦춘다. 요통 환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운동은 언덕을 걷는 것이다. 몸의 무게와 중력이 척추에 걸리면서 척추 뼈의 밀도를 증가시켜 주고 척추 주변의 근육과 허벅지·무릎 관절 근육을 강화시켜 준다. 척추 수술을 받았거나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빠르게 걷는 것을 권한다. 1분에 100m 걷는 정도의 걸음으로 하루 30분 정도 걷는다. 허리의 유연성, 허리를 지지하는 근육 상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체조나 스트레칭으로는 몸을 뒤로 젖히는 신전운동이 바람직하다. 허리를 돌리거나 앞으로 숙이면 디스크의 압력이 올라가 신경 압박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바닥에 무릎을 대고 엎드려 한발씩 뒤로 들거나 등을 아래위로 구부렸다 펴는 운동을 반복한다. 자전거 타기도 권장할 만하다. 허리 근육을 강화하고 척추신경 구멍을 넓혀준다. 허리를 숙이고 페달을 밟는 사이클링이나 허리를 편 상태로 타는 제자리 자전거 모두 좋다. 처음에는 통증을 느낄 수 있지만 이는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데 따른 근육의 저항 때문이다. 체중을 줄이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배가 나오면 허리를 아치형으로 만들어 척추에 과도한 부하를 걸기 때문이다. 수술은 마지막 단계다. 최근에는 무통주입기, 최소 절개술의 등장으로 수술 후 회복 기간도 단축되고, 통증에 따른 부담도 크게 덜고 있다. 도움말:경희대병원 제일정형외과 신규철 원장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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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내 인생 최고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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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부서진기둥',1944,캔버스에 유채 40x30.7cm,돌로레스 올메도 컬렉션,멕시코시티 칼로,'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자화상' 1943,압착 목판에 유채, 76x61cm,프란시스코와 로시 곤잘레스 바스케스 컬렉션, 멕시코시티 칼로,'두사람의 프리다',1939,캔버스에 유채,173.5x173cm, 멕시코시티 근대 미술관 자화상이 발달하기 시작한 16세기 이래 자화상을 시도해 보지 않은 서양 화가는 별로 없다. 특히 습작기에 모델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는 자화상은 미술학도들에게 좋은 훈련 수단이 됐다. 이렇듯 화가라면 누구나 그려보는 것이 자화상이지만, 자화상을 평생의 주제로 삼아 그리는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자화상만으로 예술적 열정을 다 달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팔기가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렘브란트나 반 고흐처럼 다른 주제의 작품을 하는 틈틈이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수시로 질문을 던진 경우가 가끔 있는 정도이다. 이런 흐름에 비춰 멕시코 출신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1907∼54)는 평생의 예술적 주제가 자기 자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자화상을 남긴 독특한 화가이다. 물론 칼로 역시 주변 사람을 비롯해 자신의 모습 이외의 주제를 틈틈이 그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자화상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칼로는 평생 자신을 그리는 데 온 열과 성을 바쳤고, 스스로를 모델로 끊임없이 관찰하기를 즐겨했다. 자신이 자신에게 뮤즈가 되는, 그래서 영감의 원천이 되는, 그런 특별한 예술가-모델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왜 이렇게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을까?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도 자주 외롭고 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이다. ” 프리다 칼로는 진정 외로운 예술가였다. 아마 그는 역사상 가장 외로운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남과 다른 사람으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여섯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불구가 되면서부터였다. 다른 꼬마들로부터 “나무다리 프리다”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란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소외된 상(像)에 눈을 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신체적 장애는 총명한 그에게 아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다 심각한 사고는 그가 열여덟살 무렵 명문 국립예비학교 학생일 때 닥쳐왔다.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해 중태에 빠졌던 것이다. 그의 대퇴골과 갈비뼈가 부러졌고, 골반은 세 군데, 왼쪽 다리는 열한 군데가 골절됐다. 오른쪽 발은 아예 으스러졌는가 하면, 왼쪽 어깨는 탈구됐다.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사조차 고개를 흔들 정도로 처절한 상황에서 살아난 프리다 칼로. 그는 이후 47세로 요절하기까지 계속적인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두 번의 유산 경험도 이 사고의 후유증과 관련이 있는데, 심지어 사고 당시 버스 난간 창살이 배를 뚫고 들어와 질을 통해 빠져나갔다고 한다. 치료를 받는 중에 그녀는 한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프리다 칼로에게 고통은 이처럼 정신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육체적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늘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몸과 마음을 부식시키는 것이었다. 그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칼로는 자신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44년작 ‘부서진 기둥’은 그가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황량한 땅과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프리다 칼로. 갈라지고 패인 대지의 모습이 그의 형편과 유사하다. 여신상처럼 서 있는 칼로는 지금 척추 대신 옛 그리스의 신전 기둥을 지지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기둥 또한 이미 금이 가고 쪼개져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인은 쇠띠로 몸을 동여맸다. 이 무렵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칼로는 몸을 부지하기 위해 강철 코르셋을 입고 다녀야 했다고 하는데, 그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이미지라 하겠다. 살 이곳저곳에는 못이 촘촘히 박혀 있어 그의 몸 어느 한 구석 편안한 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은 그만큼 한스러운 삶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보는 관객도 칼로 자신도 이 눈물을 씻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이런 신체적 질고만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자화상에 에너지를 쏟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열정적인 멕시코인 가운데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뜨겁고 강인한 인간이었다. 칼로는 무엇보다 사랑의 화신이었고, 예술의 수호자였다. 멕시코가 낳은 최고의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칼로는 글자 그대로 자기 자신보다 남편을 더 사랑했다. 디에고는 그에게 연인일 뿐 아니라 아들이자 어머니였으며, 영원한 우상이었다. 그런 남편이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고 심지어 자신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애정행각을 벌여 그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은 적이 있지만, 그에 대한 칼로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다. 파열음처럼 터져 나온 디에고와의 이혼과 곧 있은 재혼(재혼시 칼로의 요구에 따라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기로 계약을 했는데, 이는 디에고가 그 어떤 여자하고 육체적 관계를 가져도 칼로가 개의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도 그저 심연 같은 사랑 위에 찰랑이는 잔 파도였을 뿐이다. 지구가 자신의 피조물들을 사랑하듯 디에고를 사랑한 칼로는 이 사랑을 세상에 토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모습을 그려야 했다. ‘내 마음 속의 디에고’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자화상’(1943)은 디에고에 대한 칼로의 집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칼로는 자신의 이마에 디에고를 그려 넣었다. 이는 그가 그녀의 생각 속에서 한시라도 지워져 본 적이 없음을 뜻한다. 이 그림을 통해 칼로는 디에고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분신 같은 존재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머리에 쓴 화관으로부터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뿌리는 마치 거미줄 같아 한번 걸리면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는데, 그녀는 그렇게 디에고를 사로잡았다. 아니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그녀가 사로잡힌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테후아나 여인의 복장을 한 것은 인디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디에고가 멕시코의 전통과 인디언 문화를 지극히 사랑했다는 점에서 그것 역시 디에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 어떤 힘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사랑을 그리기 위해 칼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그렸다. 심지어 글로도 그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디에고, 탄생/디에고, 건설가/디에고, 나의 아이/디에고, 나의 약혼자/디에고, 화가/디에고, 나의 연인/디에고, 나의 남편/디에고, 나의 친구/디에고, 나의 어머니/디에고, 나의 아버지/디에고, 나의 아들/디에고, 나/디에고, 우주/통일 속의 다양함/그런데 왜 나는 ‘나의 디에고’라고 말하는가?/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닌데, 그는 오직 그 자신의 것일 뿐인데.” 칼로는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독일 혈통의 사진사 곤잘로 기예르모 칼로와 멕시코인 어머니 마틸드 칼데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21살 때 그보다 꼭 그만큼 나이가 많은 디에고와 결혼했는데, 초기에는 워낙 유명한 남편의 명성에 묻혀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세상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칼로의 예술에 갈수록 깊이 매료됐고, 심지어 루브르 박물관이 최초로 작품을 구입한 멕시코 화가가 되는 등 곧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서구 페미니즘 운동이 성장한 1970년대 이후에는 페미니즘 미술의 중요한 선구자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일기에 칼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적어 넣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마지막 외출이 행복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더 이상 자화상을 그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비로소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우주의 아름다움만을 화폭에 담고 있지 않을까.

2002.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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