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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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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와 부재(no와 ~less)의 시대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기술에는 작아지려는 성향이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같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는 줄어들고 또 작아진다. 많은 공산품은 그 사용자 체험을 해치지 않는 크기까지 가능하면 작아지려 하는 것만 같다. 지난 12월 초 프린스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연구진들은 소금 알갱이 크기의 카메라 모듈을 선보였다. 50만 배 더 큰 카메라 렌즈와 동급의 화질을 뽑아내는 이 모듈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일도 해낼 것이다. 작아진 기술은 다양한 일용품에 통합되어 일상에 흡수된다. 카메라의 크기가 작아져 전화 안에 들어 온 것처럼, 소금 알갱이 카메라는 다른 무엇 안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가능성을 펼칠 것이다. 기술이 축소 지향이 되는 이유는 설계자와 이용자의 취향이 작용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 작게 만드는 일에는 이점이 있다. 크기가 작을수록 열과 에너지 소비 면에서 득이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경우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따라서 단위 면적 당 더 많은 회로가 들어가고 있다. 몇 나노미터의 미세 공정을 향해 도전하는 이유는 더 작은 세계를 정해진 공간 안에 욱여넣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작아지기만 해도 그 효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칩 생산이 삼성의 5나노 공정 대신 4나노 공정으로 옮겨가면 전력 소모는 16%나 줄어든다. 거대한 건 값비싼 일이다. 영화에서는 빌딩만큼 거대한 로봇이나 괴수가 등장하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키가 10배 커진다면 그 몸을 감싸기 위한 면적은 그 제곱으로 커질 텐데, 부피는 세제곱으로 커지니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10배 큰 키의 무게는 1,000배나 되지만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구조는 그렇게 급격히 커질 수 없는 일이라서다. 어려서 상상했던 미래에는 거대한 과학기술이 있었지만, 현실이 된 21세기에는 모두 작게 만드는 기술에 매진하고 있다. ━ 네트워크는 규모의 경제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규모가 커질수록 유리한 경우가 있다. 바로 네트워크다. 생물의 몸도 신진대사의 네트워크가 모인 집약체다. 같은 포유류라고 치면 몸의 크기가 크든 작든 대동소이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쥐의 신경, 소화, 호흡 기관은 코끼리의 그것과 본질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그 네트워크의 구조가 같더라도 크기가 커진다면 그 네트워크를 한 바퀴 돌리기 위해 걸리는 시간도 더 걸린다. 그래서 쥐는 분당 수백 번이나 맥박이 뛰지만, 코끼리는 30번밖에 뛰지 않고 고래는 20번 아래로 내려간다. 크기가 커질수록 각 개체에 주어진 삶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하지만 같은 구조의 네트워크가 더 많은 공간을 채우며 서비스하고 있는 셈이기에 속도는 비록 느리지만 일을 덜 한다. 부하가 천천히 걸리니 세포가 혹사당하지 않는다. 그 덕에 코끼리는 70년도 넘게 살지만 쥐는 2년 남짓 살다가 간다. 이들의 심장 박동 수는 평생 약 15억 회로 비슷하다.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가동되는 셈인데, 실제로 무게가 2배 늘어나도 필요 에너지양은 2배가 아닌 75%면 되기에 커질수록 점점 유리해진다. 클라이버의 법칙이라는 이 수학적 규칙성의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다른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도시 크기가 2배 늘어나도 필요 인프라는 수치만 약간 달라 85%만 늘어나면 된다. 15%의 보너스가 있는 셈인데, 도시의 부나 임금 등도 15%씩 늘어났다. ━ 규모가 만들어주는 새로운 클라우드 컴퓨터도 서로 이어지며 공통의 네트워크,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생체나 도시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뭉칠수록 유리했는데, 클라우드는 그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특히 통신 기술이 모세혈관처럼 세상 구석구석을 이어갈 수 있게 되면서, 쥐와 같은 네트워크를 스스로 관리하는 번잡함보다는 코끼리처럼 큰 네트워크에 묻어가는 일이 합리적이었다. 이달 클라우드 업계의 최대 사업자 아마존 웹서비스는 데이터웨어하우스의 ‘서버리스' 버전을 공개했다. 서버리스(server·less)라고 하면 말 그대로 서버가 없다는 뜻이다. 정말 서버라는 기계가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그 서비스에 있어서 만큼은 서버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가 쓰는 서비스는 거대한 서버 (또는 작은 서버들이 서로 엮여 거대하게 보이는 서버) 안에서 가상화(기계 안에서 또 다른 기계를 꿈꾸듯 흉내 내는 일)되어 돌고 있는 실체 없는 가상서버 안에서 또다시 추상화된 형태로 구동되는 컨테이너(코드와 그 코드가 도는데 필요한 라이브러리 등 필요한 항목을 함께 패키징한 표준적 구조) 안에서 돌고 있을 터다.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겹겹의 껍질을 벗기고 나와야 진짜 서버를 만날 수 있기에 정말 서버란 없다고 느껴도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전통적으로 서버란 것은 전산실을 구축하거나 임대한 데이터센터의 상면(床面) 위에 직접 사서 설치해 왔다. 클라우드의 등장과 함께 서버를 육안으로 볼 일 없이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서버의 존재조차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트렌드를 FaaS(Function as a service), 그러니까 '서비스로서의 기능(함수)’이라고 하는데, 그간 서비스로서의 플랫폼, 인프라, 소프트웨어(각각 PaaS, IaaS, SaaS)를 팔던 클라우드는 어느새 규모의 경제를 이룩 후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변하고 있었다. 데이터웨어하우스라고 하면 데이터의 창고니까 기업마다 마련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마치 쿠팡의 거대 물류창고에 다 밀어 넣어 두듯 기업 데이터도 규모의 경제하에 통합해 온디맨드화하는 일이 벌어져 버린다. 서버리스는 서버를 빌린 적이 없으니 기능을 쓸 때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만 돈을 내면 과금 구조다. 데이터뿐만 아니라 코드의 경우에도 규모의 경제가 이야기된다. 세상 어딘가에서 한 번쯤 짜였던 코드라면 그 코드는 재활용될 수 있다. 노 코드(No Code)라는 트렌드는 그렇게 코드를 직접 짜지 않고도, 드래그 앤 드롭으로 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온 세상의 오픈소스 코드를 학습한 기계 학습 인공 지능인 깃헙 코파일럿은 프로그래머가 타이핑을 칠 때 옆에서 막 나대면서 새로운 코드를 제안하기도 한다. 모두 거대한 네트워크의 말단에 연결된 세포가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진화의 새로운 국면으로 모두 넘어가고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칼럼니스트

2021.12.12 11:00

5분 소요
페이스북은 왜 메타가 되었나…페이스북의 초초함 대변하는 선언

전문가 칼럼

빅테크 플랫폼 기업이 되려면 자격이 하나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도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는 기업들은 있지만, 자격이 떨어진다. 아무리 자국 플랫폼에 의해 소비와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이 지배되고 있더라도 그 산업이 그들의 디지털 기술과 자재와 도구에 의존하고 있지 않아서다. GAFAM(Google·Apple·Facebook·Amazon·Microsoft) 5개 기업이 쏟아내고 있는 생산 기술은 그 기업들의 가공할 생산성을 모방할 수 있는 생산방식과 생산수단, 그리고 생산공간을 제공한다. 모든 기업은 새로운 혁신을 꾀하고자 할 때 그들의 기술을 공부한다. 심지어 네이버나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의 기술 블로그에는 어떻게 구글의 최신 기술을 활용해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지를 태연하고 담담하게 자랑한다. 그렇게 첨단 기업들조차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생산 기술, 여기에 바로 빅테크 플랫폼의 본질이 있다. 그 기술들이란 각각의 성공에 수여된 상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구글은 세상의 모든 웹페이지를 정리함으로써 웹을 재정의했다. 그들의 브라우저는 오늘날 웹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크롬은 아예 운영체제가 되어 윈도와 경합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열면서 ‘앱’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웹의 대안으로서 앱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 집요한 고집을 부릴 수 있다. 크롬의 경쟁 기술 웹킷도 리드하고 있기에 웹과 앱의 경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마존은 클라우드 시장을 사실상 만들어냄으로써 무엇이 클라우드의 표준인지를 정립해 갈 힘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로부터 이어져 온 응용프로그램, 그러니까 앱 이외의 애플리케이션의 역사 그 자체다. 그 역사는 이제 클라우드로 뻗어나가 아마존 및 구글과 경쟁 중이다. 이렇게 이들은 모두 서로 견제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천하를 나누고 있다. 타인의 기술을 공부하는 일이란 그들에게 내 인생의 시간을 나눠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그 기술과 일체가 된 순간 일종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우군이 된다. 한때는 IBM의 기술이나 오라클의 기술이 그러한 역할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술에는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생산하는 이의 마음에 대한 가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장의 수익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GAFAM이 오픈소스로 기술을 공개하는 이유는 자신의 기술을 공부해 주는 것, 그렇게 의존해 주는 것,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것이 지닌 가치를 알고 있어서다. ━ 메타 선언…새로운 판 만들고 싶다는 초조함 보여줘 이처럼 플랫폼이 지닌 여러 기능 중 소비도 소통도 언론도 아닌 그 생산에 사람들을 의존하게 할 수 있을 때 강력하면서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페이스북도 이 점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가장 사랑받는 웹 프레임워크 중 하나인 리액트를 만들어 키워왔고,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앱을 동시에 개발할 수 있는 리액트 네이티브로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의존하게 만들었다. 파이토치라는 머신러닝 인공지능 개발도구는 본격적인 연구자들에게는 구글의 텐서플로를 뛰어넘는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게는 웹의 구글, 앱의 애플, 클라우드의 아마존, 응용프로그램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기술적 상징이 없다. 그들의 기술적 공헌에 페이스북은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무리 리액트를 잘 만들어도 애플이 선도해온 웹킷과 구글이 거의 다 만들고 있는 크로미움처럼 웹브라우저 기반 기술을 소유하지 못한 페이스북은 영향력의 한계를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서히 브라우저를 업그레이드해 가며 웹 표준인 웹 컴포넌·트 기반으로 경쟁작을 만들어 가고 있는 구글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진다. 시간은 이처럼 기술적 상징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편이다.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왓츠앱도 대성공했으니 SNS를 장악하지 않았느냐고 자위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의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생산이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변덕스럽고 그렇기에 휘발성이 강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철의 유행처럼 스러져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불철주야 의존했던 나날도 잊고 싶은 과거와 함께 털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프리챌도 버디버디도 싸이월드도 순식간에 사라져 갔음을 알고 있듯이, 페이스북도 그러한 전례에 대해 신경질적이다. 생산에 의존하지 않는 플랫폼의 허망함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도 기술적 리더쉽을 잡기 위해 열중해 왔다. 플랫폼 기업의 존속 가능성은 그 기술에 있었다. 메타. 새로운 판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페이스북의 초조함이 드러나는 단어다. 혹자는 최근 정치적 구설수와 스캔들에 휘청거리는 페이스북에 바지사장을 앉히기 위한 전략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주장처럼 이미 6개월 전부터 계획된 브랜드 쇄신일 것이다. 그들은 타자의 앱과 웹 플랫폼 위에서 사업하는 일의 리스크와 덧없음을 규모가 커질수록 처절히 느껴왔다. 애플의 iOS 업그레이드로 자신들의 광고 비즈니스가 직격탄을 맞는 식이다. 페이스북이 그간 리브라 암호화폐로 블록체인을 기웃거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하드웨어를 내놓는 등 실험을 지속해 온 건 타자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타자를 의존하게 만들고 싶어서다. 웹도 앱도 아닌 제3의 초월적(메타적) 생산공간, 생산 도구, 생산 자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그들은 그곳에 군림할 수 있다. 구글이 아마존이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과연 그들이 말하는 메타버스라는 왕국을 그들은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곳이 미래가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구글은 웹을 발명하지 않았고, 애플은 수많은 PDA와 스마트폰의 무덤 위에서 아이폰을 발표했으며, 아마존 이전에도 서버와 네트워크 컴퓨터는 늘 있었다. 다 때가 있는 법, 아직 그 미래는 시작되지도 않았고 그 미래가 정말 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메타의 호들갑에 비해 다른 플랫폼 패권자들은 메타버스라는 미래 선언에 조용하다. 그들 모두 자신의 왕국이 있고 시간은 그들의 편이라서다. 다만 앱과 웹과 클라우드에 왕국을 뺏겨 본 과거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정도만이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트렌드를 기웃거려보는 정도다. 단 PC와 웹과 앱과 클라우드가 그랬듯 새로운 생산기술의 새로운 시대는 또 찾아올 터다. 그것이 메타버스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 준비된 기술을 들고 있던 이들이 지금의 빅테크들이다. 그 역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실은 페이스북뿐만이 아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11.27 14:00

4분 소요
KT와 페이스북의 장애에서 배운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10월은 기술과 10월의 합성어인 텍토버(Techtober)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신제품 발표가 이어지는 황금기다. 그런데 지난 10월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기술에 과의존하고 있는지 깨닫게 한 시기였다. 10월 말 1시간 반가량 KT가 먹통이 되면서 원격 근무에 의존 중인 많은 기업 업무가 마비된 것은 물론, 식당에서는 당장 결제조차 되지 않아 점심 장사를 망치기도 했다. 학교 수업도 중단되고, 112나 119 등마저 영향을 받았다. 10월 초에는 페이스북과 그 산하 서비스(인스타그램, 왓츠앱 등)가 무려 5시간 이상 다운된 적도 있었다. 한국 시각으로는 야밤에 벌어진 일이라서 잠잠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페이스북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광고 마케팅에서 각종 로그온, 메신저까지 그리고 심지어 개발도상국에서는 페이스북은 무료 통신사의 역할도 했으니 혼돈은 꽤 컸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쌍둥이 사건이라고 봐도 불릴 만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둘 다 ‘라우팅 경로’라는 것의 관리 실패로 벌어진 일이었다. 즉 내비게이션 지도가 갑자기 엉터리가 돼 길거리가 혼란의 도가니가 된 것 같은 일이 인터넷에서 벌어진 셈인데, 이 두 회사는 너무나도 많은 인터넷상의 도로망을 관리하고 있어서 사태가 커졌다. ━ 라우팅 경로? 인터넷은 어떻게 움직이나 인터넷이라는 단어. 익숙해졌지만 인터넷도 신조어였던 시절이 있었다. 네트워크를 뜻하는 넷(net), 그리고 서로 다른 것들 사이를 뜻하는 접두사 인터(inter-)의 합성어다. 네트워크 사이를 서로 잇는 네트워크. 그러니까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가 바로 인터넷이었고 그 정의는 지금도 변함없다.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도 네트워크는 있었지만, 대학마다 연구소마다 기업마다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기관들이 서로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온라인 세상이 지구 위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인터넷을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 기술의 주인공은 패킷, 즉 정보가 들어 있는 캡슐의 알갱이들이다. 우리가 주고받는 정보들은 이 작은 입자들이 모여서 구성된 것, 스트리밍조차 마치 폭포수 속 H2O의 분자들처럼 작은 입자로 그 흐름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알갱이들은 클라우드 위 서버와 우리들의 스마트폰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앱을 띄워 영상을 고르는 명령도 알갱이고, 그 결과 쏟아져 내려오는 정보들도 패킷이다. 그런데 이 입자들은 어떻게 우리 집의 와이파이에서 저 지구 반대편에서 운영 중인 서비스까지 여행할 수 있을까? 길을 잃지는 않을까? 그 길(route)을 찾도록 도와주는 기기들이 바로 라우터(router, 루터라고 부르는 편이 맞는 일일 터이지만)다. 라우터는 여러분 집에도 있다. 통신사 설치 기사가 설치해 주고 간 공유기도 모두 라우터, 알갱이를 상류의 라우터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들 라우터는 길을 찾아 주기 위해 라우팅 정보를 교환한다. 어엿한 컴퓨터들이다. 그런데 우리의 패킷은 아주 먼 길을 가야 한다. 네트워크끼리 데이터 패킷을 전달하는 방법을 관리하며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 주는 얼개가 필요하다. 예컨대 여러분이 KT의 인터넷을 쓰고 있다면, 여러분의 디바이스들은 KT라는 네트워크의 구성원이 된다. 그리고 KT가 나누어주는 IP 어드레스를 할당받는다. 이제 그 주소에서 지구 반대편의 예컨대 페이스북의 IP 어드레스까지 찾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법이 필요하다. 하나는 facebook.com이라는 친숙한 주소를 숫자로 이루어진 IP 어드레스, 즉 기계에게 필요한 주소로 바꾸는 일이다. 이를 DNS(Domain Name System), 즉 도메인 네임을 해석하는 시스템이라 하는데, 주소는 종종 바뀌므로 최신 주소를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건 주소를 할당하고 있는 그 영토의 책임이다. 그렇게 최종 목적지의 주소를 알아냈다면 이제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각 땅의 지도를 이어 붙여 봐야 한다. 이 지도를 잇는 일에서 두 번째 기법이 필요한데 이번에 유명해 진 BGP(Border Gateway Protocol)가 그중 하나다. 그럴듯하게 번역해 보자면 ‘국경 관문 협정’. 기관마다 기업마다 그리고 통신사마다 덩어리져 있는 네트워크의 군집들을 다른 네트워크와 이어지기 위해서 하는 약속이다. 최신 상황을 평가하고 반영해 최선의 경로를 찾을 수 있도록 내 영토의 경로 정보를 교환한다. 각각의 영토 관할 하의 각 집집마다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그 주소와 경로를 수시로 서로 업데이트하면서 최적화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의 비결이었다. 이를 ‘라우팅 경로를 갱신’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최종 목적지의 주소와 그 경로를 계산해 낸 알갱이들은 이제 내달리게 된다.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 도는 빛의 속도, 그리고 적어도 1초에 수백, 수천만 회의 계산을 수행하는 라우터 속 반도체 덕에 수증기처럼 쏟아지는 알갱이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제 갈 길을 찾아간다. ━ 안일한 리스크 대비가 만들어낸 재난 그런데 만약 이 두 기능 중 하나가 망가진다면 (놀랍게도 대개의 인터넷 장애는 이 둘 중 하나가 고장 나서 벌어지는데) 주소를 찾을 수 없거나 국경 관문에서 엉뚱한 길을 안내받게 된다. (KT의 경우 외부 관문도 아니라 내부 관문에서인 듯하지만) KT도 페이스북도 모두 이 상황에 빠졌고, KT와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상의 거대한 영토가 주소와 경로를 잃고 인터넷의 내비 지도 위에서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KT와 페이스북 장애의 진짜 공통점은 따로 있었다. 두 사건 모두 라우팅 정보가 잘못 갱신되고 또 이것이 파급되어 지도가 엉켜 버린 일이었지만, 그 갱신 작업이 초래할 리스크에 대해 안일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KT는 협력업체의 실수 탓으로 돌렸다. 협력업체라는 말, 참 서글픈 단어다. 어째 우리 사회에서는 중차대하건만 귀찮고 위험한 일은 늘 하청이 다 하고 있을까. 페이스북은 이런 인간의 실태(失態)를 방지하기 위해 아예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했었는데, 그 자동화 장치 안에 버그, 다시 인간의 실수가 있었다. 인프라 사고는 대개 현장에서 풀려 버린 나사 하나가 원인이다. 그러한 일은 대개 조직이 현장의 소중함을 잊거나 초심을 잃고 관심이 엉뚱한 데로 가 있을 때 벌어진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11.14 10:30

4분 소요
빅테크가 반도체마저 삼키나…맥북 프로에 사용된 CPU, 세상 놀래키다 [김국현 IT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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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지난 10월 18일 맥북 프로 신모델을 발표했다. 으레 반복되는 연례 발표회지만 아이폰 발표회와 달리 반향이 컸다. 이 노트북의 두뇌 M1 프로, M1 맥스가 보통이 아니어서다. 애플은 그간 아이폰에서 성공적으로 숙성시켜 온 자사의 메인 프로세서 A 시리즈 기술을 작년부터 스마트폰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 실체인 M 시리즈의 첫 제품 M1은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애플 컴퓨터와 태블릿에서 골고루 보여줬다. 인텔과 AMD에 의존하던 PC 산업 전체를 당혹하게 할 정도였다. M1의 위력을 이미 실감했고, 그 대형 버전의 도래 또한 예견된 일이었어도 역시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달랐다. 기술 자체는 이 M1과 대동소이. 대신 반도체 크기만 두 배 늘린 M1 프로, 다시 두 배 더 늘린 M1 맥스였지만 기대는 부풀어 올랐다. M1 맥스보다 빠른 CPU, M1 맥스보다 빠른 GPU는 시장에도 있다. 하지만 속도란 늘 전력 소비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함수였다. 주입되는 전기는 열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강력한 칩일수록 육중한 방열판과 부담스러운 선풍기를 달고 있었고, 그조차 여의치 않다며 수냉식 냉각이 동원되기도 했다. 속도를 향한 군비경쟁의 풍경은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처럼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칩의 속도를 나타내는 GHz. 지금쯤은 당연히 10, 20GHz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5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열이라는 벽 앞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한계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매년 여전히 컴퓨터는 더 빨라지고 있다. 비결은 무얼까? 첫 번째 비법은 프로세서의 코어를 늘리는 일, 즉 더 빨라질 수 없다면 동시에 일을 함께 시키는 전략을 취한 데 있었다. 열이라는 벽 앞에서 더는 빨라지지 못한다면, 하나 더 얹어 드리기로 한 것. 지금은 마트에서 파는 저가형 컴퓨터도 멀티 코어가 당연한 시대.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하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질수록 쾌적한 성능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연산 능력에 대한 요청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게임은 물론, 기계학습에서 가상현실까지 더 빠른 처리 속도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두 번째 비결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며 더 한 번의 성능 향상을 꾀하는 길, 바로 극한의 공정 미세화였다. 30나노 프로세스로 칩을 생산하던 2010년만 해도 10년 뒤에는 더 이상의 미세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텔이 여전히 14나노에서 방황하는 동안 애플의 칩을 하청받아 생산하는 대만 TSMC는 5나노 공정까지 치고 내려와 양산 중이다(인텔의 공정 계산법은 약간 달라서 수치만큼의 차이는 아니지만). 14나노보다는 5나노에서 전자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니 열이 덜 발생한다. 그만큼 소비전력은 줄고 성능을 더 높일 수 있었다. ━ 반도체마저 빅테크의 깃발 아래 인텔의 주가가 최근 영 지지부진한 이유는 이처럼 공정의 진보에서 주춤한 점 탓이다. 그러나 이는 걱정거리가 아니다. 설비 강화는 마진에 상처를 줄지언정 투자로 극복이 가능한 일이라서다. 문제는 M1과 같은 괴물 칩의 등장은 업계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라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의 IT는 분업화의 신사협정이 유지되고 있었다. CPU는 인텔이 만들고, GPU는 엔비디아가 만들며,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드는 식이었다. CPU와 GPU에서 AMD가 경쟁자 역할을 해주면서 균형을 잡아 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균형이란 것은 PC와 같은 컴퓨터에서였을 뿐,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처럼 새로운 질서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전임자의 기득권에 불과해진다. 폰이면 폰, 클라우드면 클라우드, 성장 궤도에 오른 빅 테크 기업은 자신의 효율성을 무기로 점점 시장에 대한 제어를 원하게 된다. 말이 분업이지 통제권을 나눠 가졌다가는 타자의 로드맵이 나의 제약 조건이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천하를 잡은 플랫폼은 어떠한 분할도 꺼린다. 규모도 시가총액도 충분히 부풀어 오른 플랫폼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인수합병을 통해 관련 인재를 흡수해버릴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는 물론, 아예 반도체까지 완전한 수직 통합을 해버리자는 생각도 드는데, 그 이유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무어의 법칙을 극복하는 세 번째 방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처럼 알고리즘으로 칩을 ‘짜는’ 것이었다. 마트 계산대에 병목이 생기니 아예 대량의 자율 계산대를 마련하는 것처럼, 전달된 순서에 따라 명령을 처리하지 않기도 하고, 순서를 건너뛰며 도 아니면 모 식으로 투기적으로 실행하는 일은 모던 CPU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M1은 이 부분의 설계에서 유난히 탁월했다. 그리고 칩을 소프트웨어 문화 속에서 만들다 보니 모든 것을 칩 안에서 하드웨어적으로 해결하려고 들지 않고 소프트웨어적으로 함께 푸는 일을 고안하기도 한다. 자신의 칩에서 도는 최적의 코드를 만들도록 컴파일러를 최적화하기만 해도 성능은 크게 개선된다. 또 그렇게 ‘짠’ 칩을 실체화해 줄 하청 업체가 동아시아에 주둔 중이었다. 구글도 자신들의 주력 스마트폰 픽셀 6에 자사 설계의 ‘텐서’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애플의 발표회 다음 날의 발표 내용이었다. 애플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이 분명한 듯 삼성의 5나노 공정이 하청받아 생산 중이다. 구글도 애플처럼 이 칩을 잘 키워 크롬북 등 본격적인 컴퓨터에도 심을 예정이다. 이번에도 확실한 원청 하청 구조다. 텐서 칩을 만들 때 삼성의 칩 엑시노스의 경험이 도움되었을 것 같지만 입을 싹 씻는다. 플랫폼은 이처럼 위계적으로 전체 시장을 통합하려 든다. 기술의 주인이 될수록 통합은 효과적이다. 애플의 M1도 구글의 텐서도 SoC(시스템 온 칩)다. 컴퓨터 속 마더보드에 꽂혀 있던 CPU, GPU 등 분업화된 많은 기능이 칩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경험한 통합의 성공 체험은 이렇게 모든 IT로 확산 중이다. 모든 것을 소프트웨어가 다 삼키는 세상이 찾아온 뒤, 실리콘 밸리는 진짜 실리콘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10.30 15:00

4분 소요
코로나19가 던진 화두…에듀테크의 역할 고민해야 할 때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팬데믹 탓에 많은 디지털 분야가 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분야가 있었다. 바로 교육이다. 국내에서는 이 분야를 두고 에듀테크(edutech, education+technology)라고 많이 부르고, 에드테크(edtech)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많다(편집자 - 편의상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에듀테크라는 단어를 본문에서 사용한다). 코로나19로 공교육이 기능 부전에 빠지자, 그 틈을 디지털을 활용하는 사교육이 메꿔주기 시작한 것. 세상으로의 접점이 닫혔어도 향학열만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자녀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집중해 주고 싶은 부모들의 욕망은 흘러넘쳤다. 이 향상심과 갈망이야말로 어떠한 불황에서도 마르지 않는 수요다. ━ 개발도상국 에듀테크 관심 뜨거워 이 추세라면 2025년경까지(홀론IQ의 조사 수치) 글로벌 추산 400조원 규모로 커질 예정이었다. 가장 강력한 성장 시장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이러닝, 인강, 스마트러닝 등 교육의 디지털화는 유행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및 VR/AR 등 첨단 기술과 접목해 다른 결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수포자’라는 유행어처럼 학습은 좌절을 유발하곤 하는데, 적절한 코칭이 없다면 지치면 포기하는 것이 사람의 의지다. 헬스장의 개인PT처럼 옆에서 자세도 잡아주고 힘내라 격려도 해주면 확실히 효과는 달라진다. 하지만 모든 공부에 있어 누구나 그러한 사치를 부릴 수는 없다. 그런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만 있다면, 문제 풀이 과정을 인공지능으로 개별 분석해 개별 학습 상황에 맞춰 적합한 교재를 재구성해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공지능이 내 실력을 살펴본 후 내 지식의 취약 부문만 집중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하니 혹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출제 경향을 분석해서 족집게처럼 미래 문제를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에듀테크는 특히 개발도상 중인 지역에서 뜨겁다. 교육이 신분상승의 확실한 열쇠가 되는 시기라서다. 인도와 중국은 대표적인 에듀테크 최전선이었다. 인도는 저커버그도 투자한 바이주스(Byju’s), 토퍼(Toppr) 등으로 뜨겁고, 중국도 작년만 해도 위안푸다오, 주오예방 등 에듀테크의 기린아가 100억 달러 이상의 가치 평가로 신규자금을 조성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의 참전이 가시화되며 중국만 100조원 시장이라고 칭송되던 차였다. 방글라데시처럼 인구가 많은 후발국도 중국과 인도를 본떠 시코(Shikho) 등이 등장하며 이 흐름을 바로 뒤따랐다. 인도나 방글라데시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반적인 교육 수준을 높이고 싶은 곳, 특히 대도시에 사교육이 집중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에듀테크가 적절했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4억 중산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득 수준도 삶의 질도 선진화되었지만, 여전히 수억의 서민층이 하단부를 받쳐주고 있는 나라다. 에듀테크가 만든 교육 체험과 교재가 정말로 차별적이라면, 이를 누릴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격차가 점점 벌어질 일이다. 여전히 빈부격차로 디지털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인민이 가득한 마당에 적나라한 교육 민영화는 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특히 교육과 의료에서만큼은 평등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사회주의일수록 이 부분에 있어 억울함이 두렵다. 인민의 억울함이야말로 체제 유지에 가장 위험한 일임을 알고 있는 중국일수록 그렇다. 중국 당국은 “과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며 본격적인 에듀테크 규제에 나섰다. 교육업은 비영리가 되어야 하며 상장도 못 하고 외자도 유치할 수 없고 심지어 외국인 교사나 교재를 채용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화된 교육이 사회주의적 가치를 위태롭게 한다는 암시다. 여기에 더불어 게임을 일주일에 딱 3시간 주말만 허락한 게임 규제까지 등장한다. 아이는 나라가 키울 테니 믿고 따르라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이 중국발 뉴스에 대해 부모로서 중국에 부러움을 보내는 아이러니한 시선이 국내에도 적지 않다. ━ 에듀테크 규제, 일시적 불만 잠재우는 수단 될 수도… 사회에 20대 80으로 격차가 생겨 벌어지면 이는 눈에 보인다. 득을 보는 일부의 규모가 상당하니 상대적 박탈감도 부풀어 오른다. 사교육이 융성해 주목을 받을수록 소외감을 느끼는 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런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과외 금지나 평준화는 사회적 불만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대증요법이 된다. 그런데 민중은 20대 80에 신경 쓴 나머지 1% 미만의 초격차층에 의한 지배는 시야에서 놓친다. 과외 금지의 시대에도 비밀과외라는 단어가 있었다. 서민들은 마주칠 리 없는 1% 미만의 특권층은 알아서들 하고 있었다. 아니 굳이 과외선생을 돈 내고 데려다 놓지 않더라도 그 가족 집단 및 인적 네트워크 내에는 충분한 지적 자극 및 동기 부여를 제공할 수 있는 얼개가 있었다. 자산이 문화자산을 만들고 이 두 자산이 소위 말하는 인적자산, 즉 개인의 능력을 완성하는 전통적 구조다. 능력주의란 이처럼 자산에 종속적이지만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근래 한국의 수시 입시란 그 총동원과 같은 일이었다. 결국은 부모가 지닌 문화자산의 위력을 긁어모아 발휘하는 것이 입시가 되니 사회적 갈등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배우고 싶다는 욕구는 억누르기 힘들고, 사회 계층의 어디에 있든 배운 만큼 깨어날 수 있다. 디지털은 그런 면에서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도구다. 디지털은 생애 학습, 학교에 다녀야 할 때와 장소를 놓친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다시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나눠서 타인에게 스승이 되는 경험을 주는 플랫폼도 있다. 연결만 된다면 공평하게 배움을 얻을 기회가 있고 희망이 싹튼다. 작년 미국에서는 집에 인터넷이 없어 동네 마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공부하던 학생의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미국 통신사 티모바일은 도움이 필요한 학생 가정에 무료 인터넷 핫스팟을 제공해 주는 프로젝트 텐밀리언을 시작했다. 교육 복지의 힌트는 여전히 디지털에 있다. 만약 디지털을 금지할 수 없다면, 교육격차를 해소해줄 방편으로 삼을 궁리를 할 때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10.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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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수난시대…소셜 미디어가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페이스북은 수난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자신들이 끼치는 해악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여러 증거가 내부 고발과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언론의 탐사 보도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십대 소녀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느낄 때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의 한 서비스)이 이를 악화시킨다고 말했다는 연구를 보고받았으면서도 덮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정신 건강상 위험을 다루는 연구 결과는 사실 비밀도 아니다. 이미 지난 2019년 12세에서 16세 사이의 캐나다 청소년 4000여 명을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가 참고할만하다. 흔히 스크린 타임이 신체 활동을 줄여 청소년기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한 증거는 없었다. 비디오 게임과도 상관관계가 없었다. 대신 사회적으로 비교하게끔 하는 서비스가 자존감 감소와 관련해 우울증 증가를 설명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즉 청소년기의 소셜 미디어는 우울증과 연관성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 유독 소셜 미디어가 문제였던 셈이었다. ━ 페이스북 이용자 정신 건강 위험성 경고 잇따라 어른도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행해지기도 한다. 무뎌진 어른은 그걸 바로 느끼지는 못한다. 약발은 뒤늦게 찾아온다. 술이 처음엔 달고 마실 땐 즐겁지만, 주정을 부리고, 숙취와 후회가 뒤따르는 식이다. 페이스북(및 그들의 서비스)이 이러한 일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린이용 인스타그램마저 만들고 있었다. 현재 13세 이하는 아예 계정을 만들 수 없어 인스타그램을 쓸 수 없지만, 어차피 나이를 속여 쓰고 있으니 양지로 끌어내 부모의 관리하에 쓰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왜 굳이 그래야만 하나? 물론 소셜 미디어는 신세계였다. 무명의 10대 벨라 포치(BellaPoarch)는 단 10초 내외의 틱톡 영상 “M to the B”로 세계적 스타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듯했다. 하지만 이는 대다수의 평범한 재능을 지닌 이들에게는 환각일 뿐이다. 누구나 매력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매혹적인 콘텐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벼락스타가 되는 것은 언제나 소수다. 소셜 미디어가 없었어도 낭중지추처럼 솟아 나왔을 사례는 착시를 불러오지만, 개인의 성장 스토리는 소셜 미디어의 훌륭한 홍보 수단이 된다. 누구나 그 맛을 잠깐은 본다. 말 한마디만 잘해도 꽤 많은 좋아요와 하트가 쏟아져 내리는 체험, 이는 마치 잭팟이 터지는 일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 도파민 듬뿍 담긴 호르몬 칵테일 세례. 한번 맛보면 누구라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글 하나 올리고도 반응이 기다려진다. 금방이라도 곧 ‘인싸’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인스타그램에 어울릴 법한’ 순간을 찾아 헤맨다. 그런 뜻의 ‘Instagrammable’이라는 신조어는 이미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다. 하지만 이에 집착할수록 썰렁한 반응. 빈약한 인간관계를 자각하고 허무해지는 순간이 온다. ━ 찰나의 행복감 주는 소셜 미디어 폐해 하지만 어른들은 세상이 그런 줄 알기에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세상에 인정받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소셜 미디어를 기웃거린다. 조직에서의 만족감이란 것도 많은 부분 인정받는 일에서 온다. 동료나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않으면 출세는 할 수 없다. 평판을 관리하는 일은 힘들고도 피곤하다. 주위의 눈치를 봐야 하고 각자의 지위에서 분수를 지켜 두드러지지 않아야 하는 치사한 게임이기도 하다. 조직 내에서의 평가에 실망할 때 조직 밖 시장에서 내 그대로의 모습을 승인받을 수는 없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다. 끊임없이 타자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우리, 헤겔이 한때 말했던 인정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승리했는지에 따라 주인이 되고 노예가 된다는 말은,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와 친구가 늘 때 우쭐해지는 느낌에 취해 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투쟁에서 승리한 것 같지만 실은 좋아요를 눌러줄 다수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승리이니 결국 우리는 이 인정 투쟁 플랫폼에 예속된 노예일 뿐이다. 아무리 재화가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욕망이 완성되지 않나 보다. 알만한 사람이 ‘관종’이 되어 페이스북에서 승인을 갈망하는 모습은 남이 인정해줬을 때, 좋아요를 꾹 눌러줬을 때 얻어지는 행복감이란 것이 분명히 있음을 알려 준다. 소셜 미디어는 이 행복감을 되찾도록 찰나적 반응을 끌어내 준다. 인류 역사상 말 한마디에도 이렇게 쉽게 즉각 반응을 해주는 장은 존재한 적이 없다. 사회적인 승인 욕구의 자판기, 이 감정의 슬롯머신에 중독되는 일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어른들이 이러한 욕망과 기호(嗜好)에 탐닉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이 문제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기호품을 전달해도 좋은지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스마트폰엔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능이 가득하다. 시청각 교재로도 훌륭하다. 문제는 이 요물이 사람과 사람을 언제나 이어지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데 있다. 이어짐이라고 하면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굳이 이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 순간에, 이어져서 위험한 대상과 이어지는 일처럼 위험한 일도 없다. 물리적인 위해가 되지 않더라도 이 이어짐 속에서 아이들조차 인정투쟁의 굴레에 빠져버린다. 서로 비교하다가 무리하게 되고, 금세 좌절하게 된다. 이어짐은 곧 곤욕이 된다. 이어짐이란 상대적이다. 그리고 상실감도 대개 상대적이다. 행복감이란 남들과의 비교 우위에서 생긴다. 유튜브 키즈에는 댓글이 없다. 그저 철저히 콘텐트 소비만 시킬 뿐이다. 바보 상자가 되기로 한 듯하다. 차라리 바보 상자의 그 시절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더우인(抖音)이라고 불리는 틱톡은 6억명의 일간 사용자를 자랑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가장 인기 있는 카테고리에 놀랍게도 교육이 들어 있다. 화학 컨텐트가 1억3000만 뷰를 획득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틱톡을 14세 미만의 경우 일일 40분으로 규제해버렸다. 이어지는 일은 위험해서다. 구글과 애플은 14세 미만 어린이들에게는 계정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계정이 필요하면 보호자에 속한 자녀계정을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할 뿐이다. 어린이에게는 위험한 물건임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10.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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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현장 전문가가 말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성공 전략

북 리뷰

“스타벅스처럼 테크 기업과는 멀다고 여겨졌던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자를 채용하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도하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필드 매뉴얼 중) DT/DX(Digital Transformation)은 이제 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로 등장했다. 스타트업이든, 제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한국의 기업은 이 숙제를 풀어야만 지속 성장할 수 있다. ━ DT에 성공한 스타벅스, 테크 기업으로 평가받아 글로벌 커피 체인점으로만 여겨졌던 스타벅스는 이제 금융권과 경쟁을 하는 금융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 피자 기업 도미노 피자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과감하게 하면서 주가 상승률이 아마존과 애플을 추월할 정도다. 과거는 과거일 뿐, 빠르게 변해가는 기업의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해야만 살아남는 시대다. 대다수의 기업은 변화를 위해 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도전한다고 사내 전산실을 확대하고, 개발자를 늘리고, 업무 플로우를 디지털화한다. 예산과 사람을 투입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 그럴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CEO와 현장 실무자를 위한 책이 나왔다. 2020년 AI 기반 교육기업 라이브데이터를 설립한 에듀테크 업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실천가 박수정 씨와 IT 평론가 김국현 씨가 공동저자로 나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필드 매뉴얼’이다. 두 저자는 이 책에서 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실패하는 이유를 밝히고,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노하우를 알려준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한 두 저자는 DT에 성공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해답은 ‘DT=(GEEK + DATA) X BUSINESS’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인재인 기크(GEEK)를 영입하고, 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기업 문화에 전반적으로 스며든 후에야 비로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단순히 기술을 바꾼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 디지털 문화에 젖어들 때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신사업의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의미를 다루고, 2장에서는 기업이 생존하는 데 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3장부터 6장까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인 기크, 데이터, 데이터 드리븐 경영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7장에서 두 저자는 문화와 의식의 변화를 통해 디지털 기업으로 도약하라고 조언한다. 기업의 성공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노하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김국현 IT 평론가는 본지에 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2021.09.06 13:15

2분 소요
애플의 아동성학대물 대책… 머리와 가슴이 찬반 갈리는 이유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무슨 수가 있더라도 꼭 지켜내야 한다는 점에 있어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어린이가 대표적이다. 종을 존속시키려는 본능의 발로일지도 모르지만,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어져 나가야 할 미래를 나타낸다. 어린이의 안녕은 과하리만큼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어린이는 건드리면 안 된다. ━ 팬데믹 이후 온라인에서 아동성학대물 급증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허락하는 창작의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이를 존중하려 한다.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도 할리우드 영화나 대작 게임에서 아이들이 죽는 장면은 보기 힘들다. 그 상상만으로도 역겹기도 하려니와 그 촬영 과정에서 아역이 받을 충격도 용납할 수 없어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속담이 있듯, 각국의 법 질서는 아동에 대해서는 특별히 보호하려 애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청소년보호법 이외에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별도로 존재하여, 아동청소년성착취물에 대해서는 소지만으로도 범죄가 된다. 그럼에도 CSAM(child sexual abuse material)이라 불리는 아동성학대물 문제로 전세계는 골치를 앓고 있다. 사회가 인터넷에 점점 더 의존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자의든 타의든 연결되는 일도 점점 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테크 기업들은 온라인 아동 성학대 콘텐츠가 50%나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연방 지정 기관 NGO인 국립 실종 및 착취 아동 센터(NCMEC, National Center for Missing and Exploited Children)가 법 집행 기관 및 민간 기업과 협력하여 근절에 힘쓰고 있기에 이러한 실태 보고에 적극적이다. 거의 7천만 건의 이미지와 비디오가 이 센터에 보고되었는데, 흔히 쓰는 클라우드 저장소인 드롭박스만 해도 2019년에 25만 장 이상을 발견했다. 페이스북은 특히 적극적이었는데 6천만 건을 리포트했고, 놀랍게도 80% 이상이 메신저에 의한 것이었다. 아이들도 흔히 쓰는 카톡 등과 같은 메신저는 현실의 길거리나 마찬가지. 대로변도 뒷골목도 있을 수 있기에 어떤 위험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다. 모르는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청할 리 없으니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교육만큼이나 온라인상에서 다가오는 낯선 어른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궁리가 필요한 시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로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스마트폰 보유율은 무려 87.7%에 이른다. 소득 수준 하위권일수록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졌다. 스마트폰이 육아를 하고 있었다. CSAM에 대한 2019년 보고 수치도 이미 놀라운데, 이 수치는 팬데믹 이후 또다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악이 된 어른들은 파일을 돌려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선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테크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페이스북은 자사가 식별하는 데 사용하는 알고리즘을 오픈 소스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미온적이었던 아마존 클라우드는 미국 학부모 단체로부터 규탄과 청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더러운 범죄가 곰팡이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 애플의 CSAM 대책 그러한 와중에 이달 애플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아이폰과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을 스캔하여 CSAM 이미지를 확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뉴럴매치(Neural Match)’라는 도구인데 단말상의 불법 이미지를 탐지한다. 의심이 들면 검토팀에게 검증받은 후 법 집행 기관에 연락을 취하는 구조다. 이미 신고된 CSAM을 학습한 코드가 폰에 상주하면서 문제가 될법한 사진들에 깃발을 꽂는다. 사진을 변형해도 찾아낸다. 어린이들도 내장 메시지로 사진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데, 이 경우에도 문제 있는 이미지를 받았을 때 바로 보여주지 않고 판단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와 그 위험성을 알려준다. 그래도 보겠다고 하면 보호자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다시 경고한다. 학부모로서는 고마운 기능일 듯싶다. 이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기술인데 클라우드나 서버에 올라온 자료를 스캔하는 것이 아니다. 검사하는 코드가 폰 위에서 돌며 폰 안의 자료를 체크한다. 명확히는 고윳값만을 비교하는 일이기에 제삼자가 자료를 실제로 본다고 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결국은 이제 내 손에 쥐어진 폰까지 스캔하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당연히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다. 그동안 프라이버시를 노래 부르더니 결국 백도어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대부분이었다. 애플은 전혀 굴하지 않고 두 차례나 연속적으로 문건을 발행하며 자신들의 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의 권리 수호자를 자처하는 NGO인 전자프론티어재단(EFF) 등이 적나라하게 반대 성명을 내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선의로부터 시작했더라도 모든 백도어는 악용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헌법적 권리로 삼았다는 의견이다.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요청으로부터 사기업이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의심은 아무리 애플이 오랜 기간 프라이버시의 옹호자 역할을 해왔어도 떨쳐내기 힘들다. 서버가 아닌 단말에서 완결되는 검사라는 점은 내 폰에 백도어가 뚫린다는 기분을 준다. 내 돈 주고 산 물건이 제삼자를 위해 임의로 일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그런데 왜 애플은 그래야만 했을까? 프라이버시가 사시(社是)인 애플은 그간 법집행부와 반복되는 옥신각신에 지쳤다. 애플은 클라우드를 완전히 암호화하여 그 누구도 그곳에 올라간 어떠한 데이터도 스캔할 수 없게 하고 싶다. 지금도 이미 아이메시지 등은 종단간 암호화가 되어 있기에 단말을 압수해서 열어보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다. 카톡처럼 서버 압수 수색하는 일이 애초에 무의미하다. 프라이버시를 자신의 더 강한 존재 의미로 삼아야 하는 애플의 갈 길이다. 하지만 CSAM에 대한 사회적 요청도 심각한 상황. 방법은 단말을 스캔해 주는 방법밖에 없는 아이러니. 어린이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결국은 발 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뒤따르는 것도 이러한 사정 탓이다. 한국은 모르긴 몰라도 조주빈 일당들의 행태 등으로 미루어 짐작하기에 결코 해외보다 사정이 나아 보이지 않는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에도 명시적인 역할을 요구해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기술이나 플랫폼이 챙겨주지 않는 지금은 주위의 어른이 대신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애플이 무리수를 둔다 싶어도, 가슴은 애플의 편을 들게 되는 미묘한 사안이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08.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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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의 성공에 숨어있는 두 가지 힌트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지난 5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 구독경제 추진 방안과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판매와 물류 플랫폼용 바우처 방식으로 지원하는 등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려는 시도다. 구독경제란 최신 트렌드로 취급되고 있지만, 정기 구독이란 말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다. 장사에서는 기존 고객의 반복 구매, 즉 단골의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신규 고객 발굴이나 시장 개척이 쉽지 않거나 고비용인 분야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따라서 단품 판매보다 정기 배송을 할 수만 있다면야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좋은 줄 알지만 하고 싶어도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구독경제가 하나의 흐름이 된 데에는 계기가 있다.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등 디지털 재화 쪽에서 단품 구매에 뒤따르게 되는 심리적 허들을 치워 버려 성공한 사례가 속출한 것. 재화 하나하나를 선별하여 구매할 때 인지적 리소스가 소진되니 스트레스가 된다. 하지만 수긍 가능한 가격에 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소비자는 움직인다. 어차피 영화 보고 음악 듣는 생활이라면 개별 품목이 마음에 들지 말지 생각할 필요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다. ‘아니면 말고’의 자유는 디지털 재화가 아닌 실물 재화에서는 좀처럼 흉내 내기 힘들다. 영화나 음악이야 잠깐 보다가 넘길 수 있지만, 이미 배송된 실물의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고객에게는 쓰레기이고 공급자에겐 손실일 뿐이다. 무형재화에서의 성공 모델을 유형재화에서 재연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그 한계비용, 즉 생산물 한 단위 추가 생산에 드는 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가 작금의 대세가 된 배경에는 대규모 설비투자(CAPEX) 대신 유연한 운영비(OPEX) 지출이 합리적이라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다. 서버를 잘 못 사거나 사놓고 쓰지 않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클라우드란 구독할만하다. 유형재화를 무형재화로 성공적으로 변환하여 새로운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셈이다. 즉 디지털에서 구독경제가 뜨게 된 이유는 이처럼 소비자에게 자유를 줬다는 점이 크다. 문제는 다시 우리 경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물 재화의 경제다. 구독경제의 성공 사례만 주목받고 있지만 시도해 보고 조용히 접은 서비스들은 수도 없다. 정기배송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좀처럼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서다. 실물재화의 경우 구독경제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기배송이나 리스·렌탈과 사실상 동일한 방식으로 추진되곤 한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재화에서 볼 수 있는 소비자 입장의 스트레스 없는 자유 대신 공급자 입장의 구속 욕구가 두드러진다. 기간 동안 마음껏 빌려 쓰시라고 해도, 중간 유통이 사라져서 더 싸게 계속 받으실 수 있다고 해도 소비자는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소비자가 나눗셈 계산을 해보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다. 가격이 결정적 차별화가 되는 사업 양식은 지속 가능할 리 없다. 판촉에 잠시 속을 수는 있지만 결국 소비자는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머지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구독 모델에서 실패한 기업은 대개 이 덫에 걸린다. 오히려 ‘약간 비싼 것 같지만, 다소 부담되지만, 그래도 구독하는 편이 여러모로 득이 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느낌 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를 덜어 주는 자유였다. 잘못 골라도 괜찮을 자유, 다양하게 겪어볼 수 있는 자유. 그 자유에는 웃돈이 붙을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결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선망이다. ━ 선망이 만드는 충성도 높은 고객 접점을 디지털 재화에서도 구독경제의 성공사례는 모두 충성도가 높은 경우였다. 어도비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구독 모델 이행 성공이 이에 속한다. 포토샵도 오피스도 이미 자신의 커리어와 일체가 되어 버린 경우라면, 혹은 기업 운영에 필수 재화가 된 경우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전에는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선뜻 살 수 없었던 이들도 이제 한 달만 써볼 수 있다. 포토샵이나 오피스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면, 구독경제 덕에 문턱이 훨씬 낮아진다. 구독경제의 성공 사례인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충성도를 위해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화제가 되는 기분, 다른 데서는 못 보는 가입자만의 특전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넷플릭스 보는 사람’끼리만의 이야깃거리를 양산한다. 선망이 소유하기가 아니라 체험하기와 함께하기에서 나오는 시대답다. 정기 구독의 약어가 되어 쓰이고 있지만, 구독(購讀)은 사전적으로는 ‘사 읽음’으로 순화될 수 있는 단어다. 한편 영어의 ‘subscription’은 정기 구독이라는 용례 이외에도 ‘subscribe to an opinion, a campaign,’처럼 기부, 후원하거나 찬동한다는 의미가 명시적으로 쓰이는데, 여기에 힌트가 있다. 기여와 응원의 대상이 될 수만 있다면 구독경제는 궤도에 오른다. 선망이 우월감을 부르고, 더 나아가 소속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구독경제는 완성된다. 하지만 선망도 충성심도 갑자기 생길 리 없다. 가상재화를 다루는 후발주자들은 방법을 찾았다. 프리(Free) 티어를 두고 프리미엄(FREE-mium) 모델로 공략하는 방법을 쓴다. 일단 써보게 하고 그 매력에 반하게 하는 것이다. 줌과 같은 스타트업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이미 있었음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다. 무료 플랜이 가능하다는 점은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디지털의 특성 탓이다. 실물재화에게도 방법은 있다. 오히려 실물이 더 강한 고객 접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드웨어를 팔고 소프트웨어를 구독하게끔 하는 식이다. 피트니스계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펠로톤은 운동 기구를 팔고 콘텐츠를 유료 송출한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회원들은 공동체에 속했다는 소속감마 그 서비스를 통해 맛봤고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는 테슬라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게임 콘솔식 사업 방식이다. 구독 경제의 핵심은 이처럼 강렬한 선망에 기반을 둔 끈끈한 고객 접점을 형성하는 데 있다. 중요한 건 팬을 만드는 일이다. 이미 네이버·카카오 및 이동통신 3사처럼 고객 접점을 장악 중인 거대 플랫폼이 모두 구독 경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자유를 주고 그 과정에서 팬이 되는 구독경제의 얼개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구독경제 플랫폼에 입점하는 방식으로는 유통망만 바뀔 뿐이다. 오히려 재주만 부리는 곰이 되어 대형 플랫폼의 팬만 늘려주고 말 수도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08.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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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통' 백신 예약시스템, 정부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김국현 IT 사회학]

전문가 칼럼

백신 예약시스템이 또 먹통이 됐다. 다급한 마음에 한꺼번에 몰려든다.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뉴스는 흘러들고, 잔여 백신의 인기도 목격한 마당. 내게 모처럼 돌아온 접종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접수 개시와 동시에 접속이 집중된다. 고육지책인지 대기자 수를 표시하고 기다리라는 마치 은행 대기표를 방불케 하는 시스템을 앞에 세워놨는데, 이는 현대적 상용 웹사이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사이트가 열리는데 3초 이상 걸린다면 50% 이상의 방문자가 포기해 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배짱을 부릴 수 있다. ━ 백신 예약시스템 문제, 클라우스 필요성 알리는 효과 국내에서만 유독 이러한 시대착오적 솔루션들이 특히 정부 기관에 납품되고 있는데, 클라우드를 쓰면 이 접수창구를 순간적으로 얼마든지 늘려줄 수 있다.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일반 기업에서도 클라우드가 대세가 돼가고 있는 시대에 이해하기 힘든 구성이다. 게다가 애초에 대기자 수라도 표시할 수 있는 대역폭이 있다면 그냥 접수해 버리면 그만일 텐데. 시스템 뒤쪽에 사정이 있나 보다. 이번 소동도 대기표 발급 같은 구시대적 시스템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뒷구멍을 발견해 발급 시스템을 우회해 새치기할 수도 있었으며, 비행기 모드를 껐다 켜는 방식으로 번호표 발급 시스템을 속일 수도 있었다. 요령 있는 이들은 알음알음 일을 끝내는 동안, 뭘 잘 모르는 일반인들만 답답함에 온 집안 폰과 PC를 총동원해 몇 시간씩이나 대기한다. 그 와중에 불과 몇 명을 남겨 두고 리셋이 되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IT 강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며 참모들을 질책하고 강력한 대응책을 요구했다. 범정부적 대응이 펼쳐졌고 네이버·카카오 및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긴급회의를 하게 된다. 장애는 당사자에게는 속이 타들어 가는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이제 아마도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적절히 도와주면서 홍보 효과를 볼 터이고, 운이 좋으면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이미 전국민이 과도 의존 중인 서비스들은 접점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QR 방역으로 인해 네이버와 카카오 앱을 띄우지 않고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 마케팅 효과와 락인 효과, 즉 발목 잡는 효과는 엄청나다. QR 코드를 띄우는 행동에 익숙해진 김에 자사의 다른 여러 사업을 경험해 보도록 이미 유도해 가고 있다. 정부는 네이버와 카카오에게 더 없는 발판이 돼 준 셈이다. 정부의 IT는 또 실패하고 민간에 손을 내민다. 비슷한 일이 온라인 개학에서도 있었다. 그 사건 후 아예 민간에 맡기자라는 분위기조차 형성 중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것일까? 바로 IT를 조달할 수 있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데 있다. IT를 토목이나 건설과 동일시한 정부 조달은 한계가 있다. 최소 1년 단위로 차세대 IT 시스 템을 조달하던 전통 기업들이 스마트 시대의 경쟁 속도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건물에 빗대는 관습은 사라져야 할 구태다. 대개 1년은 걸려야 하는 건축물과 달리 소프트웨어는 그 골조가 차곡차곡 매일매일 올라가지도 않는다. 시멘트가 굳는 것을 기다리듯 꼭 정해진 기한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력의 맨먼스(소프트웨어 개발 등에서 사업의 대가를 계산하는 방식의 하나)도 큰 의미가 없다. 누가 와서 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제로에서 무한대까지 벌어지니 소프트웨어란 마치 경영과도 같다. 경영은 하청이 될 수 없다. 하청은 애초 계약에서 하기로 한 과업을 정해진 날짜에 끝내고 하루라도 빨리 원대 복귀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해서 괜히 일을 키우는 일은 프로젝트를 복잡하게만 한다. 계약에 없는 혁신도 자발적 개선도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이번 시스템을 구축한 중소기업의 실명까지 거론해 희생양 삼으며 대기업에 발주할 수 없었던 규제를 거론하고 있다. SI 대기업은 다시 공공 시장을 탐내고 있으나 그들의 참여가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하청의 본질에 있다. 부가가치세를 신고한다거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처럼 법 개정의 속도에 따라 연간 단위로 기획할 수 있는 일이라면, RFP를 공고하고 관변 조달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 후 기계적 공정함에 따라 선정해도 어찌어찌 시스템은 완성될 수 있다. 시간은 정부의 편이라서다. 적시에 시스템이 기능해주지 않더라도, 경쟁사에 기회를 잃는 일도 없다. 그 시스템의 제공자가 정부밖에 될 수 없는 일이라면, 아무리 한참 뒤라도 이탈자 없이 동수의 사용자가 찾아올 것이다. 비록 투덜댈 수는 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이해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정부의 시간이란 결국 제도가 결정한 시간. 늘어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실행력이 기대되는 상황에서는 갑자기 당황한다. 실패의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 시스템의 실패가 민원인의 답답함에서 끝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방역, 더 나아가는 전시와 같이 예측 불가능의 사태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은 기업의 일상. 기업은 주어진 상황과 현재의 제약 조건, 그리고 꼭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두고 의사결정을 해나간다. 그리고 한 팀으로 일하는 개발팀원과 함께 바로 ‘2주간의 스프린트(단기간에 반복적으로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이를 개선하는 활동)’를 가동하고 새로운 릴리스를 낸다. 소위 말하는 애자일(Agile) 문화다. 그렇게 시스템은 탄탄해지고, 그런 곳만 살아남는다. ━ 공공인력에 디지털 인재 내재화 고민할 때 기술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획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술적 한계를 알고 있었다면 공지를 통해 조금 더 촘촘하게 예약 시간을 분배할 수도 있었다. PO(프로덕트 오너)의 역할이지만, 그런 책임과 권한을 지닌 이들은 현장에 없다. 마치 조달청이 있듯이, 개발청을 신설해 범정부적 시스템 수요를 처리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 최근에는 개발자들이 실무 현장으로 흩어져 나간다는 뜻의 ‘개발자 디아스포라’가 트렌드다. 그래서 개발자가 금값이다. 얼마 전 ‘코딩하는 공익’이 현장의 부조리를 하루 만에 코드로 해결해 버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익이나 돼야 강제로 정부의 현장까지 흩어져 파견될 수 있는 것이 개발자다. 현재의 공공 인력에 어떻게 디지털 인재를 내재화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도 이미 각종 연구소나 진흥원 등 산하기관의 준공무원은 적지 않은 상태다. 예방접종시스템 구축에는 총 41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한다. 돈도 일자리도 없지는 않건만, 꼭 해야 했을 일에 할 줄 아는 사람은 좀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 ,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2021.07.3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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