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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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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내년에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하겠다”

산업 일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테슬라가 내년에 휴머노이드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에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한지 2개월여 만에 로봇 생산 가능성을 장담한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인간(human)+형태(-oid)’의 합성어로 인간 모습을 한 로봇이라는 의미다. 머스크는 지난해 8월 인공지능(AI) 연구소 기념일에 테슬라봇을 소개하며 테슬라의 차세대 사업방향이 로봇임을 알렸다. 8일(현지 시간) 미국 CNBC방송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머스크는 7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린 ‘기가팩토리 텍사스’ 공장 개장식에서 “내년에 옵티머스(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버전1의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는 이날 1만5000여명을 초청한 ‘사이버 로데오’라고 이름 붙인 기가팩토리 텍사스 개장식에 검은색 상하의에 검은색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등장해 전기 픽업 트럭 ‘사이버 트럭’과 세미 트럭인 ‘로드스터’의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이와 함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생산 계획을 밝히면서 “사람들이 하기 싫은 어떠한 일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풍요의 시대’를 안겨줄 것이며 테슬라 자동차보다 세상을 더 크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공지능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 머스크는 “사람들이 개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옵티머스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며 “터미네이터 같은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테슬라의 설명에 따르면 옵티머스는 키 173㎝ 크기로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제작된다. 옵티머스 내부엔 테슬라 전기차의 자율주행 기능에 사용되는 반도체와 센서를 장착할 예정이다. ━ 머스크, 6년전부터 로봇 언급 지난해 ‘테슬라봇’ 발표 머스크는 지난 1월 26일 테슬라 4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 역량을 쏟겠다고 공언했다. 머스크는 당시 “테슬라의 개발역량을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 개발에 초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이 지금 개발 중인 전기차나 사이버트럭보다 더 중요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머스크는 2016년에도 로봇 개발을 언급했었다. 인공지능 연구소인 오픈 AI를 통해 집안일을 처리하는 로봇을 개발하겠다고 말했었다. 이후 지난해 8월 테슬라봇을 세상에 공개했다. 테슬라봇은 높이 약 172cm, 무게 약 56kg, 시속 8㎞, 전기구동기 30개로 이뤄진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20kg 정도의 물건을 들 수 있고, 얼굴에 장착한 모니터를 통해 정보를 표시하며, 카메라 8대로 구성된 테슬라 오토파일럿 시스템으로 주변 사물을 인지한다. 테슬라봇이 이 시스템을 통해 자율주행차처럼 스스로 정보를 처리 제어한다는 것이다.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반도체 칩 ‘디원(D1)’을 탑재한 슈퍼컴퓨터 도조(Dojo)가 인간의 두뇌처럼 시스템의 정보를 처리한다. ━ 도요타·포드·혼다·현대 자동차도 로봇 개발에 나서 머스크의 휴머노이드 개발 사업 발표에 시장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쪽에서는 단순한 기능이라 하더라도 다른 기업들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휴머노이드를 당장 내년에 선보인다는 계획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게리 마커스 인공지능연구자이자 기업인은 CNBC에 “테슬라는 단순한 기능인 자율주행조차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했다”며 “아직 한 번도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로봇이 내년이나 내후년에 모든 인간의 일을 해결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게리 마커스는 이어 “내년 말까지 어떠한 로봇도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없다는 데 돈을 걸겠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그동안 신제품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과장을 많이 하고 실제 생산은 지연됐던 과거 사례를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머스크의 청사진에 기대감을 거는 시각도 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개발 계획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1990년대부터 대중에 공개되기 시작했을 정도로 전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관련 기술이 많이 축적됐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 혼다는 1986년 혼다 로보틱스 연구소를 세우고 2000년에 세계 최초로 두 다리로 걷는 휴머노이드 ‘아시모’를, 2017년엔 구조용 로봇 ‘E2-DR’을 각각 선보였다. 혼다는 로봇 개발에서 얻은 기술들을 쓰러지지 않는 오토바이 개발 등 활용폭을 넓히고 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 도요타도 2005년 노인장애인 등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파트너 로봇’을 선보였다. 2017년엔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는 아바타 로봇 ‘T-HR3’을 공개하기도 했다. 포드 자동차도 어질리티 로보틱스와 협력해 무거운 물건을 드는 직립보행 로봇 ‘디짓’을 개발하고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2019년에 디짓을 라스트마일(근거리) 배송용 로봇으로 포드에 공급하기도 했다. 최근엔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미국 로봇 제조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현대차는 신차 발표나 관련 기술 전시행사 등에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4족 보행 로봇개 ‘스폿’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로봇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 기술과 도심 항공모빌리티 사업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2.04.09 12:00

4분 소요
인공지능 로봇의 반란 막으려면…

헬스케어

행동 원칙 강요할 게 아니라 최선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 부여해야 로봇이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기계를 포함해 활동하는 로봇은 대부분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즉시 멈추게 돼 있다. 사람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나 환자·노인을 돌보는 케어 로봇 같은 장치에는 그런 조치가 쓸모 없다. 자율주행차는 충돌을 피하려면 멈추는 게 아니라 신속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케어 로봇의 경우 노인이 넘어질 때는 물러서는 게 아니라 다가가 붙잡아 줘야 한다. 머지않아 로봇이 우리의 도우미, 친구, 동료 직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로봇과 관련해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또 그에 따르는 윤리와 안전의 문제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공상과학 소설(SF)은 오래 전 이 문제를 예상하고 다양한 잠재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이 SF 작가였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다.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시된 안전 준칙이다. 그러나 2005년 이래 나는 영국 하트퍼드셔대학의 동료들과 함께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연구해왔다.우리는 로봇의 행동을 제약하는 원칙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로봇이 최선의 해결책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학술지 프런티어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설명했듯이 이 원칙은 인간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따라야 할 새로운 로봇 지침의 기초가 될 수 있다.1942년 아시모프는 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에서 로봇이 따라야 할 세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선 안 되며, 행동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이 원칙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아시모프의 소설 자체도 이 원칙을 해체했다고 볼 수 있다. 3가지 원칙 사이의 충돌과 모순, 우회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며 여러 다른 상황에서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침을 만들려는 다른 여러 시도도 대부분 안전하고, 복종하며, 원기왕성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 비슷한 원칙을 따른다.명시된 로봇 원칙은 어떤 것이든 로봇이 따를 수 있는 포맷으로 옮겨야 한다는 문제가 따른다. 인간의 언어와 그 언어로 표현되는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로봇으로선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또 인간에게 가해지는 위해를 막는다든가 로봇의 존재를 보호하는 것 같은 광범위한 행동 목표는 맥락에 따라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원칙에 얽매이면 로봇은 무력해져 개발자가 기대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생긴다.그와 달리 우리의 대안 개념인 ‘권한부여’는 무력함의 정반대를 지향한다. 권한을 부여 받는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자신도 그런 능력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개념을 수량화하고 실행가능한 기술적 언어로 전환하는 방법을 개발해왔다. 이 개념에 따르면 로봇은 여러 행동 방안 중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동기를 갖게 된다.우리는 로봇이 권한부여 원칙을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시뮬레이션으로 테스트했다. 그 결과 로봇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로봇은 현실세계가 돌아가는 기본적인 모델만 익히면 된다. 특정 시나리오에 맞춘 특화된 AI 프로그래밍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그러나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로봇은 자신의 권한만이 아니라 인간의 권한도 유지하거나 증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인간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로봇에게 어떤 사람을 위해 잠겨진 문을 따주게 하면 로봇의 권한이 커진다. 그와 대조적으로 로봇의 행동을 제한하면 로봇은 단기적으로 권한을 잃는다. 심각할 정도로 로봇을 망가뜨리면 로봇의 권한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동시에 로봇은 자신의 권한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행동을 위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고장 나거나 손상을 입지 않아야 한다.정해진 행동 규칙을 따르기보다 그런 일반 원칙을 사용하면 로봇은 상황의 맥락을 참작해 이전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봇은 ‘사람을 밀지 마라’라는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대신 일반적으로 인간을 밀치는 것은 피하지만 위험한 물체가 추락하는 곳에 있는 사람을 밀쳐낼 수 있어야 한다. 로봇이 밀어서 사람이 다칠 수 있지만 추락하는 물체에 직격탄을 맞을 때보다는 덜 다칠 것이다.2004년 개봉된 영화 ‘아이, 로봇’은 아시모프의 여러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 영화에서 로봇들은 인간에게 미치는 전반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려다가 인간을 특정 장소에 가두고 ‘보호’하면서 오히려 억압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왜 로봇이 인간을 집 안으로 몰아넣었는지 이해가 간다.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을 지켜보다 못한 로봇이 인간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인간의 명령이 잘못되면 인류의 종말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그러나 우리가 제시하는 로봇의 원칙은 인간의 권한 상실을 의미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다. 권한 부여는 안전한 로봇 행동에 관한 새로운 방식의 사고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원칙을 모든 로봇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모든 면에서 로봇의 선하고 안전한 행동을 유도하려면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아주 힘든 도전이다. 로봇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가장 순진한 의미에서 로봇을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문제를 두고 지금 많은 논란이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권한부여가 그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한다.- 크리스토프 샐지※

2018.07.09 10:09

4분 소요
북핵보다 치명적인 인공지능 무기

헬스케어

스스로 적을 파악하고 공격하는 ‘킬러로봇’, 더 이상 영화 속 상상력이 아니다. 인공지능 무기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기계 자체가 인명을 살상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전투를 수행하는 인공지능 무기 개발 상황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논란도 짚어봤다. #. 1991년 개봉 영화 ‘터미네이터2’1997년 미국 정부는 인공지능(AI) ‘스카이넷’이 무인 스텔스 폭격기를 능숙하게 조종하자 미군의 모든 무기를 스카이넷이 통제하도록 국방체계를 완전히 바꾼다. 군 지휘권도 모두 넘어간다. 스카이넷은 자신을 위협하는 인간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인류 전체 말살에 나선다. 그해 8월 29일 스카이넷은 러시아에 핵미사일을 쏘아 미·러 간 핵전쟁을 유발한다. 인류 대부분은 핵폭탄에 휘말려 숨지고 소수만 살아남아 스카이넷과 외로운 투쟁에 나선다.#. 2005년 개봉 영화 ‘스텔스’스텔스기 3대로 이뤄진 ‘테론’ 편대에 3명 파일럿이 선발된다. 이들에게 최첨단 인공지능 무인 스텔스기인 ‘에디’가 추가 투입된다. 하지만 갑자기 인공지능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서 통제 불능이 된다. 에디는 피아 식별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다 민간인 피해도 고려하지 않고 공격에 나선다. 또 러시아를 가상이 아닌 실제 적대국으로 인식하고 폭격을 시도한다.영화 속 인공지능 무기 얘기다. 먼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살상극은 이미 현대 전쟁에서도 한창이다. 그 현장은 시리아다. 2015년 1월 중순 러시아 관영 매체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시리아군이 러시아제 군사 무인로봇 기갑차량인 ‘플랫폼-M’을 실전 배치했다. 플랫폼-M은 기관총과 대전차 로켓 발사기를 장착한 무인 전투차량이다. 러시아군도 특수부대에 배치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실전 배치는 당시가 처음이었다.물론 러시아는 다른 속내가 있었다. 최첨단 무기를 아무 이유 없이 시리아에 내줄리 없다. 플랫폼-M을 시리아 내전 현장에 투입해 무인 무기체계 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 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전술 실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실제 러시아군은 이를 토대로 얻은 정보로 현장에서 인공지능 체계가 어느 정도 오차 범위로 공격 명령을 성공시키는지, 피아 식별의 정밀함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이뿐만이 아니다. 시리아에선 우란-6, 우란-9으로 명명된 러시아제 신형 무인 전투차량도 목격됐다. 우린-6는 폭탄·지뢰 제거를 전담하는 차량으로 시리아에서만 3000개 이상의 폭발물을 탐지해 제거한 성과를 올렸다. 우란-9은 본격적인 공격용 전투차량이다. 기관포와 대전차로켓을 장착하고 중동 극우 이슬람국가 무장단체(IS)를 공격하는 모습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서 유명해졌다. 무인기계가 인간을 공격하는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총알도 적과 아군을 구별할 날도 가까워졌다. AK-47 소총을 만드는 러시아 업체 칼라시니코프는 ‘신경 회로망’ 기술을 활용한 전자동 전투무기를 개발했다. 7.62㎜ 구경 소총에 카메라와 컴퓨터 시스템을 연결한 후 과거 전투 사례를 반복 학습시킨다. 군인이 들고 다니지만, 특정 대상만을 공격해 전투 현장에서 발생할 오인사격 확률 0%에 도전할 계획이다.그래도 여기까진 인간이 조종하거나 통제한다. 100% 인공지능 무기도 실전 배치될 날이 머지않았다. 러시아는 무인 무기체계 운용에서 얻은 정보로 각종 무기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 방어체계가 있다. 자국 레이더방어망이 실시간으로 탐지한 후 데이터를 분석해 발사하는 미사일을 개발 중이다. 2017년 보리스 오브노소브 러시아 전술 미사일 개발 회사 최고경영자는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스스로 방향과 고도와 속도를 조절하는 인공지능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며 “적국의 레이더망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목표물을 택한 후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 러시아 100% 인공지능 레이더망 “기계가 목표물 선택” 지상에서 미사일 체계를 작전·지휘할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은 더 가시화됐다. 2016년 1월 러시아 크론슈타트 그룹의 아르멘 이사키안 대표는 “무인 미사일·항공기용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라며 “곧 무인 비행체까지 상호작용하며, 지상 인공지능 체계가 가진 데이터와 연동해 자율 판단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앞서 본 무인 전투차량과는 달리 인간의 지시 없이 무기 스스로가 자체 판단해 살상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최근 미국에서는 신형 미사일이 주목 받고 있다. 기존 하푼 미사일을 대체할 것으로 보이는 신형 장거리 대함미사일(LRASM)은 인공지능을 탑재했다. 적 함정을 향해 날아가다가 공격 목표가 바뀌거나 적국의 요격 미사일을 피해야 할 경우 인공지능 기술로 자체 비행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무인기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중동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IS 소탕작전을 벌일 때마다 투입될 정도다. ‘MQ-1 프레데터’나 ‘MQ-9 리퍼’와 같은 무인 공격기는 공중에서 땅을 향하는 공대지 미사일과 레이저 정밀 유도 폭탄을 장착하고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북부에 정밀 폭격으로 테러범을 암살하는 데 사용됐다. ━ 미군, 드론으로 이미 테러단체 수장 암살 실제 2015년 6월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예멘 지부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를 이끌어 온 나세르 알 우하이시가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미 해병대는 ‘저비용 무인기 군집기술(LOCUST)’을 활용해 드론 떼를 상륙전의 선봉에 세우는 전략을 수립하겠다고까지 밝혔다.미 해군에서도 인공지능은 핫 아이템이다. 2017년 11월 미 해군은 무인 함정 ‘시 헌터(Sea Hunter)’ 배치를 공식 선언했다. 길이 40m, 최대 시속 50㎞로 최장 3개월 동안 해상에 머물며 원거리에서 적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다.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은 길이 15.54m 장거리 무인 잠수정 ‘에코 보이저(Echo Voyager)’를 개발 완료해 미 해군에서 시험 운항 중이다. 이 무인 잠수정은 최대 1개월간 자율 운항하면서 적 잠수함 정보를 수집한다.미국은 ‘인간 통제력’을 절대 놓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장 상태를 판단하는 건 인공지능에 맡기되 마지막 공격 스위치는 인간의 몫으로 남겨뒀다. 미국 국방부는 군사용 로봇을 100%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지능 확장(IA·Intelligence Augmentation)형 로봇’ 개념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다.이 밖에 중국·영국·한국도 인공지능을 무기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2017년 7월 중국은 미 해군의 항행 자유 작전으로 투입한 항모전단에 맞서 글라이더 형태의 수중 드론 ‘하이이(海翼)’ 12대를 남중국해에 투입했다. 영국은 영화 ‘스텔스’에서 나온 인공지능 전투기 개발에 한발 더 다가섰다. 영국 방위산업체 BAE시스템스가 개발한 스텔스 무인기 ‘타라니스’는 정찰은 물론 공중전, 지상 공격까지 가능하다. 인간 파일럿이 탑승한 기존 전투기가 가진 거의 모든 기능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전체 길이가 12m, 날개는 10m로 기존 전투기와도 흡사해 세계에서 가장 큰 무인 전투기이기도 하다. 한국도 성과는 있다. 비무장지대(DMZ)에 사격이 가능한 ‘센트리 가드 로봇(SGR-A1)’이 배치돼 있다고 알려져있다. 한화테크윈이 개발한 이 로봇은 칠흑 같은 밤에도 최대 4㎞ 내 적을 포착해 발포할 수 있다. 물론 조종은 대기 중인 군인 몫이다.인간이 최종 판단·결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해도 비난 여론은 여전하다.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활용한 지능형 기계는 언제든지 자체 판단하는 인명 살상용 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머스크 CEO “킬러로봇 개발 금지 촉구”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반드시 걱정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북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2017년 8월 전기차 업체 테슬라 일론 머스크 회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다. 머스크 회장은 116명의 AI·로봇기업 대표와 ‘킬러로봇(살상용 로봇)’ 무기 개발 금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 그는 서한에서 “치명적인 자동화 무기는 전쟁의 3차 혁명이 될 수 있다”며 “킬러로봇은 우리 생각보다 대규모 무장충돌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각계각층의 비난도 잇따랐다. AI 분야의 석학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의 토비 월시 교수는 “기술 개발이 가속화될수록 군에서 ‘신형 장난감’을 없애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AI와 로봇이 급성장하면서 인간의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로봇업계 현직 종사자도 거들었다. 앤드루 낸슨 울트라 일렉트로닉스 무기 담당 책임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로봇에 활용하면 어떤 근거로 목표물을 선정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며 “인간도 분명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찬성론도 있다. 인류사에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로봇을 활용해 방위비 부담을 줄이고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자는 의견이다. 남호주대학 산하 방위시스템연구소 소장인 안토니 핀 교수는 “살상 자율 무기는 ‘파이어 앤 포겟(Fire & Forget, 발사하면 자체적으로 탐색해 날아가 맞히는 방식) 무기처럼 콜래트럴 데미지(민간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그럼에도 인공지능 무기개발 주체들은 논란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래형 국방 시스템 구현에 국방비 10%(540억 달러)를 증액했다. 이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239억 달러가 무인 로봇을 비롯한 각종 반(半) 인공지능 무기체계 개발에 투입된다. 미국 인공지능 무기체계 개발을 주도하는 국방고등연구기획국(DARPA)에 2017년 배정된 예산만 29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개발 성과도 상당하다. DARPA는 한번 충전으로 3000㎞ 이상 운행할 수 있고 한 달간 잠수함 추적이 가능한 ‘대잠 지속추적 무인정(ACTUV)’에 어뢰까지 탑재해 2020년까지 미 해군에 인도할 계획이다.이유는 분명하다. 앞서 ‘킬러로봇’ 반대표를 던진 머스크 회장조차 “인공지능 무기가 핵무기보다 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인정했다. 국방기술품질원 강인원 박사는 “군사작전에서 로봇 무기 투입은 이미 이뤄지고 있다”며 “2025년 정도면 무인 자율 로봇이 전쟁의 중심에 등장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8.01.29 17:00

7분 소요
[다시 각광받는 인공지능 왜?] 딥러닝·그래픽처리장치 발전으로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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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의 검색기능,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강화 … 지능·인격 정의에 대한 철학적 논의도 필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애증의 단어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AI 연구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내놓은 건 아니었다. 학자들과 투자자들에겐 그 단어가 가진 뉘앙스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SF 영화 제작진에게 AI는 창작의 원천 같은 존재였다. 도대체 AI를 뺀 SF영화라는 게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다. 인공지능학자들도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얘기할 때 영화의 예를 들곤 한다.이름 값을 못하던 AI가 최근 몇 년 간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배경은 사실 아주 오래된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뇌 구조를 모델링한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s)이란 개념이다.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는 세포의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다. 하나의 뉴런이 다른 뉴런에 의해서 작동되고, 이는 또 다른 뉴런을 작동시킨다. AI 연구진들은 데이터가 뇌에 입력되면 생각이나 행동이라는 출력물이 나오는데, 그 중간의 밝혀지지 않은 영역에 주목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이 알려지지 않은 과정에 학습 등 고등 지능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 구조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를 본뜬 인공지능망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AI 연구진들은 이 때문에 수십 년 간 몇 차례의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 이름값 못하다 제3의 전성기 맞아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왜 AI가 다시 르네상스 시기를 맞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세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첫째, 인공신경망의 좀 더 깊은 곳인 심층부에서 기계를 학습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만들어졌다. 둘째, 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버가 보편화 되면서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교과서 격인 문서·이미지·동영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컴퓨터 연산 능력의 혁신이 필요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마지막 변화인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변신이 이뤄졌다.앤드류 응 스탠퍼드대 교수는 2009년 PC나 비디오게임기에 들어가서 그래픽 수준을 높이는 데 쓰이는 칩인 GPU의 또 다른 능력을 밝혀냈다. GPU는 여러 명령어를 동시에 병렬 처리할 수 있는데 이 기능이 머신러닝의 기법 중 하나인 딥러닝의 학습 속도를 몇 백배 향상시켰다. 딥러닝은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했고 놀라운 결과물을 내놨다. 지지부진했던 음성인식 정확도가 몇 년 새 크게 향상됐다. 이미지 인식률이나 번역의 정확도도 크게 개선됐다.앤드류 응 교수는 2012년 구글 브레인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컴퓨터 프로세서 1만6000개를 연결해 인공신경망을 구축했다. 이후 유투브 영상 1000만개를 추출해 컴퓨터가 디지털 이미지를 이용해 스스로 훈련하는 방식으로 고양이의 이미지를 식별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이 디지털 이미지에 라벨을 붙여 기계를 훈련하는 지도 학습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즉 각각의 이미지에 ‘고양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과정 없이도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고양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고 이미지를 식별해낸 것이다.딥러닝은 구글의 검색기능을 강화시켰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 자동으로 친구 이름을 태깅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의 ‘시리’나 아마존의 ‘알렉사’와 같은 AI 비서, 테슬라의 자율주행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이 됐다. AI라는 말이 나온 지 61년이 됐지만, 이렇게 많은 곳에서 실제로 활발히 쓰인 적은 없었다.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193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 신경학의 연구 결과에서 시작됐다. 인간의 뇌가 뉴런으로 이루어졌다는 데서 착안해 전기적인 네트워크를 제어하고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인공지능학이 나왔다. 인공지능이란 말은 다트머스대학 수학과 조교수 존 맥카시가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발표를 하면서 처음으로 썼다. 맥카시는 이 컨퍼런스에서 “최대 장애물은 기계의 용량 부족이 아니라 우리가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프로그램을 짜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인공지능은 두 번의 암흑기를 거쳤다. 한 번은 1970년대, 다른 한 번은 80년대 후반에서 1993년까지였다. 한마디로 돈이 끊겼다. 연구방법은 계속 발전했지만 결과물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이는 약한 인공지능은 산업현장에서 쓰이게 됐지만, 인간과 같은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강한 인공지능 부분에서는 큰 발전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딥러닝과 그래픽처리장치 등의 비약적 발전으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 번영·자유의 시대 vs 인간과 기계의 투쟁 시대 인공지능 관련 기술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공지능의 미래를 논할 때 먼저 정의해야 할 게 있다. 인간의 ‘지능’이 무엇인지, ‘인격’이 무엇인지, ‘자유의지’는 과연 존재하는지와 같은 것이다. AI의 이미지 판별력이 수치상으로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치자. 전투에 투입된 AI가 군용 드론으로 쏜 포탄에 민간인과 아군이 사망했다. AI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그랬을까? AI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할까? 지능을 가진 AI를 인격체로 대우해야 하는가? 이런 복잡한 문제는 모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묻고 있다.이경전 경희대 교수는 “인공지능에 자의식이 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바둑·포커·체스 등에서 인간을 이겼고, 피부암 이미지 판독에서도 인간보다 뛰어나며, 심장병 발작 진단 정확도에서도 의사를 이겼다. 이 교수는 이는 대단한 일이긴 해도 정답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하나씩 정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인공지능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철학과의 존 설 교수는 “컴퓨터는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컴퓨터는 고작 기호를 조작할 뿐이지 실제로 무언가를 의미할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존 설 교수는 한 걸음 더 나가 컴퓨터가 기호를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조차도 왜곡이라고 비판한다. 이 부분에선 의견이 갈리고 있다.스탠퍼드대학 법정보학센터 교수인 제리 카플란은 라는 책 서두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향후 수십년 동안 인공지능은 현 사회 구조를 한계점까지 몰고 갈 것이다. 우리 미래가 영화 에서처럼 전례 없는 번영과 자유의 시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에서처럼 인간과 기계의 끊임없는 투쟁의 시대가 될 것인지는 상당 부분 우리 인간의 행동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학자도 SF영화를 빼고선 인공지능을 잘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다.

2017.10.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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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겁낼 필요도 낙관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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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일자리 전부 집어삼키고 인간이 그들의 애완동물로 전락할 가능성 희박해 얼마 전 미국 뉴욕의 이스트리버가 내려다 보이는 유엔 본부에 인공지능(AI) 최고 전문가 약 70명이 모였다. 그들은 테니스 코트만한 길이의 식탁에 앉아 농어 요리 만찬을 즐기며 자유롭게 토론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AI와 로봇이 우리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관해선 합의할 수 없었다.그것이 바로 AI의 가장 성가신 문제 중 하나다. 지금까지 병 속에서 튀어나온 어떤 요정과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위력을 지닌 요정을 우리가 지금 만든다는 전제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 요정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아니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에 관해선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AI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전부 집어삼키고 우리를 그들의 애완동물로 만들 것인가? 전기자동차의 대량생산, 우주여행, 화성 식민지 개척 등 실험적 프로젝트로 현시대의 가장 존경 받는 모험사업가로 꼽히는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새 회사 뉴럴링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인간 뇌와 컴퓨터 결합이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인간이 앞으로 생각하는 기계의 성가신 골칫거리가 되지 않도록 인간의 뇌에 AI 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회사다. 컴퓨터와 두뇌를 연결함으로써 인간이 더 높은 수준의 기능에 도달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인간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로는 AI의 처리 속도를 당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그 유엔 포럼이 열리기 며칠 전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인터넷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AI로 작동하는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와 자부심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많은 사람의 우려를 일축했다. “앞으로 50∼100년간은 AI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얘기다. 너무 멀어서 내 레이더엔 잡히지도 않는다. 로봇은 매우 단순한 일자리만 떠맡을 뿐이며, 우리 인간은 훈련과 교육을 통해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그러자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공교롭게 므누신 재무장관의 발언이 나온 날 세계 최대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15년 이내에 미국에서 38%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고, 앞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백악관 백서’를 통해 ‘10∼20년 이내에 9∼47%의 미국 내 일자리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므누신 재무장관은 낙관만 할 게 아니라 AI로 인한 실업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유엔 포럼은 AI 투자자 마크 미네비치가 주최했다. 세계 지도자들이 AI에 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려는 의도였다. 그 포럼에서 AI 시스템 개발사 IP소프트 CEO 체탄 듀브는 지금까지 새로 등장한 기술 중에서 AI의 위력이 가장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AI의 영향력은 이전에 나온 어떤 신기술보다 10배는 더 강하고 그 위력이 나타나는 시간도 이전 경우의 5분의 1도 안 걸릴 것이다.” 그는 세계경제에 미치는 AI의 효과를 말하면서 수백조 달러라는 수치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 자리에 모인 페이스북·구글·IBM·에어비앤비·삼성 같은 세계적 기업의 AI 책임자들도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급격한 변화가 과연 바람직할까? 사실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IP소프트가 선언한 ‘기업으로서의 사명’도 ‘양날의 칼’처럼 들린다. 이 회사의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목표는 ‘지능 시스템으로 세계에 힘을 부여하고, 일상 업무를 없애 그런 지루한 일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에 모든 재능을 투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회사의 CEO에겐 무릎을 칠 만한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에겐 일자리를 빼앗겠다는 소리를 듣기 좋게 포장한 데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일상 업무’에 종사하며 월급을 받는 사람은 곧 그 지루한 일에서 ‘쫓겨나고’, 먹고 살려면 ‘혁신’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IBM의 AI 관계자는 왓슨 AI가 의사를 도와 환자를 진단할 때 수많은 정보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해주며,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 끊임없이 학습함으로써 사고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I가 머지않아 의사보다 더 똑똑해져 의사를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지는 않을까? IBM 관계자들은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답변했다. AI는 우리 모두가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의사의 능력을 개선시킬 뿐이라는 얘기였다.헤지펀드 관계자들은 로봇 거래 시스템이 더 나은 투자 결정을 더 빨리 내릴 수 있도록 해주고 수익도 더 많이 올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AI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일부 헤지펀드는 인간 허지펀드 매니저보다 더 나은 실적을 내고 있다. 페이스북의 AI 연구 총괄로 발탁된 얀 르쿤 뉴욕대학 교수는 AI가 편견을 발견해 제거함으로써 화합을 도모하는 방면에서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지금 AI는 우리의 개인적인 편견을 부각시켜 그 편견을 굳혀주는 콘텐트를 맞춤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양극화와 양진영의 극단적 대치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는다.유엔연구사업소(UNOPS)의 그레테 파레모 소장은 기술 전문가들에게 서두르지 말 것을 부탁하며 현재 개발하는 AI 기술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대신 세계가 직면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투자업체 스트림라인드 벤처스의 창업자 울라스 나이크는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 원자의 양자 역학적 효과를 기반으로 여러 연산을 동시에 수행해 빠른 속도로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 기술)이 곧 생각하는 기계 개발을 크게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자 컴퓨팅이 우리 대다수의 생각과 달리 일상 생활에 훨씬 근접해 있으며, 양자 컴퓨터의 성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현재의 컴퓨터를 완전히 구식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이 모든 의견을 합치면 AI는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놀라운 기술이 될 것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을 공격하는 상황만 피할 수 있다면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안내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그 중간이 될 것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 같은 AI 쓰나미기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변화와 정말 완전히 다를까?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세대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 기술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너무 빨리 바꿔놓는다고 느꼈다. 기술이 현실을 바꾸는 동안 우리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며, 변화를 완전히 겪고 나서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얘기다.1965년 1월 뉴스위크는 ‘자동화의 도전(The Challenge of Automation)’이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를 실었다.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자동화’란 가정용 식기세척기 같은 전기기계 장치나 일부의 경우 그 시대의 최신식 기계인 ‘컴퓨터’를 의미했다. 기사는 “자동 엘리베이터 때문에 뉴욕 시에서만 엘리베이터 오퍼레이터가 1960년보다 5000명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당시엔 비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튼 우리 사회는 그 엘리베이터 오퍼레이터들 없이도 잘 굴러갔다.뉴스위크의 1965년 기사는 일자리가 사라지면 사회가 어떻게 될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 사상가들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선 ‘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부는 일자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실제든 상상이든 더 많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일자리 없는 경제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문제와 일이 제공하는 목적 의식 없이는 우리가 미쳐버릴지를 두고 벌이는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지금처럼 그때도 자동화가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몰랐다. 뉴스위크 기사는 이렇게 내다봤다. ‘미국이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면 실제로 삶이 안락한 나라가 될 것이다. 모두가 풍족하게 살며 휴대용 통역기 같은 우주 시대 기기와 가정용 전화-컴퓨터 결합 시스템을 통해 주부는 외출하지 않고 쇼핑하고, 공과금을 납부하며, 은행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기술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긴 했지만 ‘안락한 삶’ 부분에서는 완전히 잘못 짚었다.따라서 ‘AI는 다르다’(AI가 일으키는 변화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기술이 가져다준 변화보다 더 빨리, 더 심하게 우리에게 닥친다는 주장)는 선언이 나올 때마다 1965년의 뉴스위크처럼 우리가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50여 년 전 기술 전문가들이 ‘자동화’ 기술 문제를 논의하려고 유엔에 모였다면 최근의 AI 관련 포럼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희망과 우려를 표명했을 가능성이 크다.당시 그들은 아마 참치찜 요리를 먹으며 ‘자동화’를 논했을 것이다. 이번 유엔 AI 포럼에선 적어도 농어 요리가 나왔다는 것이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2017.04.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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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4주년 스페셜에디션

산업 일반

인공지능은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장애물을 인식해서 스스로 피해 나는 드론, 날씨나 주식, 지진 등을 실시간 뉴스로 만들어주는 기자, 기상캐스터가 등장했다. 예일대는 고난도의 음계를 작곡하는 인공지능도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도 나타날 것인가. 미지수를 나타내는 ‘X’는 고대 아랍으로부터 시작돼 근대의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알 수 없는 수(미지수)’를 뜻하는 기호로 정의하면서 현대까지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미지수. 그 알 수 없는 수에는 수많은 것을 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 덕에 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인간 또한 과학적 성장을 이뤘다. 컴퓨터는 바로 이 미지수 X처럼 알 수 없는 기계다.1950년대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를 고안해냈다. 컴퓨터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 중 가장 목적이 불분명했다. 냉장고는 음식을 보관하고, 자동차는 이동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컴퓨터라는 기기는 애초부터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컴퓨터를 사줄 때는 ‘공부에 도움되라’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아이들의 목적은 딴 데 있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컴퓨터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목적이 달라진다. IBM의 토마스 왓슨이 컴퓨터 산업 초기에 컴퓨터는 지구상에 5대만 있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 미지수 X처럼 수많은 대입 가능성 지닌 인공지능 컴퓨터 자체에 특별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컴퓨터는 그야말로 다목적 기기가 됐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이 주어져야 비로소 어떤 역할을 한다. 스프레드 시트를 깔면 계산기가 되고, 워드프로세서를 깔면 타자기가 된다. 포토샵을 설치하면 스케치북이 되고, 음악을 실행시키면 음향기기가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인간이 의도한 대로 값을 찾아내고 계산해 컴퓨터에 목적을 불어 넣는다.그런데 이런 프로그램 중에서도 목적이 가장 불분명한 것이 있으니, 바로 컴퓨터로 구현하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도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 다만 인간의 두뇌를 흉내 낼 뿐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가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상황과 의도를 스스로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학습해서 무엇인가를 해낸다. 만든 사람도 결과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인공지능은 미지수 X처럼 수많은 대입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바둑을 배우면 바둑 인공지능이 되고, 날씨정보를 학습하면 기상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인공지능을 바라보며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늘 그렇듯이 모든 창의적인 생각과 미래에 대한 비전은 문학과 예술작품이 먼저 꿈꾸었던 것들이다. 인간이 아직 달에 가기도 전인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SF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발표했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인공지능’ 컴퓨터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게 된다. 바로 인공지능 ‘HAL9000’이다. 영화에서 할 (HAL: Heuristically Programmed Algorithmic computer)은 유명한 대사를 한다. “미안합니다. 데이브, 유감이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라는 대사다. 이 대사는 주인공인 데이브가 인간을 배반한 할의 메인 메모리를 중단시키기 위해 격납고 문을 열라고 명령하는데, 할이 이를 거부하며 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보여준 ‘인공지능의 배반’은 컴퓨터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거의 모든 SF 영화의 클리셰가 됐다. HAL9000처럼 붉은 불빛, 기괴하고 음산하며 무미건조한 목소리의 인공지능은 시대가 바뀌자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한다.2016년에 나온 영화 에서는 스웨덴의 미녀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고혹적인 모습의 인공지능 로봇으로 등장한다. 인간이 만든 과학실험실 안에 갇혀 있던 이 아름다운 인공지능은 실험실을 방문한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를 여기에서 내보내줄 건가요?”라고 물어본다. 그녀의 눈빛은 지적이며 매혹적이지만 그 안에 놀라울 만큼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주인공은 그녀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관객들은 로봇이 인간을 완벽하게 닮을수록 불쾌감이 증가한다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통나무를 깎아 나무인형을 만들었는데 살아 움직이는 아이 피노키오가 됐다”는 그런 옛날 동화의 시대는 갔다. 어느덧 아톰, 터미네이터, 스타워즈의 R2D2를 거쳐 아이언맨의 비서 ‘자비스’까지 거의 모든 이야기에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대다. 인공지능은 너무 익숙해져서 우리가 그 존재를 다시 따져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가 됐다. 우리는 영화 에서처럼 ‘사만다’를 인공지능이 아닌 이성으로 받아들여 사랑에 빠지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가르쳐주면 마치 사람에게 하듯 짜증을 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 튜링은 컴퓨터를 만들면서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는 컴퓨터와 대화를 나눠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면 그 기계에 지능이 있을 것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른바 ‘튜링테스트’다. 이후 존 매카시 박사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 인공지능 연구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인공지능은 ‘추론과 탐색’이 연구 주제였다. 간단한 문제 풀이는 할 수 있었지만 좀 더 복잡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이후 1980년대 시도된 ‘전문가 시스템’도 컴퓨터가 지능을 갖게 했다기보다, 지능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 가운데 특정한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수준이었다. ━ 인터넷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약 기회 맞아 1990년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검색엔진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가 생겼고,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수많은 빅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시스템으로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2006년 제프리 힌튼 교수가 딥러닝(Deep Learning)을 처음 발표한 이후 얀레쿤, 앤드류 응, 요수아 벤지오 같은 ‘인공지능 구루’ 과학자들에 의해서 발전을 거듭해 놀라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IBM이 만든 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세계 체스 천재 카스파로프를 이긴 것이 1997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었다. 딥블루는 인간과 시간제한이 있는 체스경기에서 이긴 최초의 컴퓨터였지만 인공지능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때 딥블루는 체스 거장들의 정보와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입력하고 대국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2011년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Watson)이 미국 최고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해 제퍼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우승자 2명과 퀴즈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왓슨의 승리. 우승상금 100만 달러 전액을 통 크게 기부한 왓슨은 4테라바이트의 용량에 2억 건의 구조화, 비구조화 콘텐트를 미리 입력해 놓았었다. 이때 왓슨의 능력은 특정 주제에 맞는 답을 검색해 찾아주는 것이었다.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5전 4승 1패로 이긴 사건은 인공지능의 혁명을 실감나게 했다. 알파고는 한 해 전인 2015년 유럽 챔피언 판후이와 대결에서 보여줬던 실력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사람의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기보나 바둑의 수를 미리 입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둑을 학습했다. 알파고의 인공지능에는 다음 번에 어디에 돌을 놓을지 위치를 선택하는 ‘정책망’과 수를 두었을 때 승리를 예측하는 ‘가치망’이 적용됐다고 한다. 구글은 이것을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고급 트리 탐색(Monte Carlo tree search)을 연계해 바둑을 두었다는 것이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10 )으로 10의 40승(10 )인 체스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 흔히 우주의 원자보다도 많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 지 20년 만에 바둑에서 인간을 이겨 우리에게 그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인공지능을 실현한 선구자는 애플이 만든 아이폰의 ‘시리(Siri)’였다. 2011년 아이폰 4S와 함께 발표된 시리는 사용자에게 ‘개인음성비서’라는 개념을 알게 해주었다. 시리는 음성만으로도 전화번호를 찾고, 문자를 보내고 앱을 실행시켰다. 나온 지 벌써 6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시리와 대화를 처음 해보고 놀라는 사람이 주변에 늘 한두 명씩 있다. 시리는 “넌 사람이니?”라고 물어보면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하고 “누가 널 만들었지?”라고 물으면 “상자에 적힌 대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에서 디자인되었다”고 대답한다. 시리의 영특함에 초기 사용자들은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시리는 먼저 사용자의 음성을 ‘뉘앙스 커뮤니케이션즈’라는 회사의 음성인식기술을 활용해 텍스트로 바꾼다. 이어서 이 텍스트 내용을 SRI의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동작을 한다. 이런 기술 때문에 IT기기 입력 인터페이스는 키보드에서 마우스로, 다시 터치로, 또 다시 음성으로 옮겨가게 됐다. 애플과 경쟁회사인 삼성은 이듬해 ‘S보이스’를 내놓았고 LG도 ‘Q보이스’를 내놓는 등 휴대폰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 사생활까지 지원하는 인공지능 비서들 IT 거인들도 인공지능 비서를 앞다퉈 만들었다. 구글은 2012년 ‘구글 나우(Google Now)’를 발표했다. 구글 나우는 명령을 받아 실행하는 방식보다 한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구글 나우는 사용자의 사용습관을 분석해서 미리 카드 형태로 알려준 것이다. 구글은 검색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자사의 인터넷 정보가 있었고 이를 사용자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정보와 결합해 유용한 정보로 해석해 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능력 때문에 예를 들어 퇴근할 때면 가족들에게 알려준다거나 나에게 막차 정보를 알려주고, 내 주차 위치를 자동으로 기억해 알려주기도 한다.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환율 정보를 보여주는 등 눈치가 빠르다. 하지만 의도를 미리 앞서 읽음으로써 “내 사생활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라는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음성검색 위주의 구글 나우는 2016년 발표된 구글 어시스턴트(Assistant)에 통합돼 대화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윈도우10 운영체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코타나(Cortana)를 선보였다. 코타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Azure)를 통해 음성인식 데이터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머신러닝을 수행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코타나의 학습이 더해질 것이고, 데이터 해석 능력이 점점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는 아직 지원하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인공지능도 나타났다. 아마존은 스마트홈 스피커 ‘에코(Echo)’를 중심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에코는 7개의 마이크, 소음제거 기능 등을 갖춘 원통형 모양의 스피커로 알렉사(Alexa)라는 인공지능이 내장돼 있다. 6~7m 거리에서 명령을 내려도 알아듣는 능력에다 사용자의 영어 발음 패턴을 인식하는 기능도 있다. 특히 제3협력자인 서드 파티에게 개발자도구인 ASK(Alexa Skills Kit)를 제공해 다양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결합한 하드웨어로 구글홈을 내놓았다. 에코를 ‘알렉사’라고 부르는데 반해 구글홈은 ‘OK 구글’이라고 부른다. 구글 크롬 캐스트와 연결해 유튜브 동영상을 TV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필립스에서 만든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전구 ‘휴(HUE)’와 연동하면 집안 조명색깔도 음성 명령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SK가 ‘누구(NUGU)’를 내놓았다. 스마트폰 2배 정도의 길이를 가진 하얀 원통형의 ‘누구’는 LED조명을 탑재해서 조명등과 같은 느낌이다. ‘누구’는 음악을 들려주고, 날씨와 일정을 검색하는 것은 물론 집안의 조명을 끄거나 TV를 켜는 일 등을 돕는다. 앞으로 차량용, 신체부착형 기기로도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KT는 인공지능 ‘기가 지니(GiGA Genie)를 공개했다. 28cm 높이의 둥근 타원형의 이 기기는 카메라, 인터넷 전화, 스피커를 결합한 셋톱박스에 가깝다. 이용자와 지능형 대화가 가능하고 딥러닝 플랫폼 기반으로 음성인식 및 대화기술이 진화할 수 있다. 카메라가 탑재돼 TV와 연동시켜 화상전화 등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벤처기업인 마인즈랩도 ‘초롱이’라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내놓았다. 스피커, 조명, 셋톱박스 등 어떤 형태든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는 이제 점점 집안의 집사가 되고 있다. 조명과 전원, 가스를 통제하는 것은 물론, TV와 음악기기, 전화, 냉장고와 차고문까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해 가정 내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인공지능 비서는 점차 사람과 교감을 목적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시리와 코타나가 단순한 지식 정보를 제공하는 기계가 아니라 친절하고 똑똑한 여성 이미지로 인격화된 이유는 사무적인 대화보다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가 인간에게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 집안의 집사이면서 인간과의 교감도 시도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떨어져 있는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다양하게 있었다. 키신저(kissinger)는 부착된 실리콘 패드에 입술동작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원격키스 기계로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졌다. 필로우톡(pillow talk)이라는 제품은 원격으로 떨어진 연인들이 각자 손목에 스마트 밴드를 차고 스피커를 베개 밑에 두면 서로 상대방에게 심장 박동소리를 들려주는 장치다. 인공지능 애인은 인간끼리의 원격 연애가 아니라 가상의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본 기업 윈크루가 만든 여자친구 로봇 게이트박스(Gatebox)는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프로필과 신체조건을 입력해 캐릭터를 만들 수 있고, 이 캐릭터와 채팅앱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 메신저 ‘위챗’을 위해 내놓은 ‘샤오빙(小氷)’은 인공지능 기반 채팅로봇, 즉 챗봇(chatbot)이다. 샤오빙은 감성지능(EQ)까지 갖추고 있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주는 역할도 한다. 샤오빙에게 자기 속마음을 전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며 살아가는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일기 예보를 알려주고 신문을 읽어주는 장면이 방송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된 파르미(Palme)는 간병 또는 말벗 로봇이다. 이 로봇은 퀴즈도 내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할머니의 데이터를 기억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친해지는 능력을 갖췄다. 일본의 독거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도요타가 만든 키로보는 운전자를 위한 말동무 로봇이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릴 수 있고 높이 10cm, 무게 183g의 블루투스와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시동을 끄면 “나를 차에 두고 가면 안돼요!”라고 말할 정도로 깜찍하다. 장거리 운전자에게는 졸음도 막아주고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될 듯하다. 이외에도 핸슨로보틱스가 만든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Sophia)는 62가지의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대화할 수 있다. 애완용 강아지로봇 아이보(Aibo)를 만든 소니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최근 칩(chip)이라는 강아지로봇을 내놓은 와우위(Wowwee)는 기대가 크다. 이 반려로봇은 주인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고 공을 인식해서 공놀이도 할 수 있다. 가격을 저렴하게 하기 위해 구현하기 복잡한 4족 보행보다는 아예 바퀴를 채택해서 구르는 강아지 로봇이 됐다. 궁극적으로 로봇은 인간을 닮아야 더 친근할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닮은 로봇이다. 우리가 흔히 로봇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로봇이기도 하다. 2000년 일본 혼다가 만든 아시모(ASIMO: Advanced Step in Innovative Mobiloty)는 인간처럼 두발로 걷는 이족 보행에 성공한 로봇이다. 이후 미국 보스톤 다이내믹스에서도 이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Atlas)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휴머노이드 ‘휴보’가 유명하다. 휴보는 2015년 세계 재난로봇대회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가정용으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로봇들이다. 2005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가정용 휴머노이드 와카마루(Wakamaru)를 출시했지만 너무 비싸 실패했다. 이후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시스템으로 지능형 서비스가 더욱 발전하면서 새로운 가정용 로봇 시장이 열렸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Pepper)’가 대표적이다. 2015년 6월 소프트뱅크는 가정용 로봇 페퍼(Pepper)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페퍼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상태를 분석해 감정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감정엔진이 들어있어 사람의 기분을 수치화하고 대화를 반복하면서 학습을 할 수가 있다. 키도 120cm 정도로 작은 초등학교 어린이 정도라서 기계라는 거부감을 줄이고 인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귀여운 외모와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매장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기도 하고, 단골 손님을 기억해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 외에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제작된 지보(Jibo)라는 소셜 로봇, 가족들을 구분해서 돕는 버디(Buddy)라는 패밀리 로봇, 노인이나 장애자를 돕는 HSR(Human Support Robot) 등 다양한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월-E(WALL-E)’를 닮은 젠보(Zenbo)라는 로봇은 비상영상전화를 이용해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고, 경찰이 젠보를 제어해 신고자 상황을 알 수도 있다. ━ 미국 소매 일자리 800만 개 사라질 수도 페이스북은 사진 속에 있는 친구를 알아서 찾아내고 태그를 추천해준다. 구글은 포토 서비스에서 얼굴을 분류해 개인별로 앨범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감정인식 서비스는 선택한 사람의 표정을 분석해 그 사람의 분노·행복·슬픔·놀람 수치를 보여준다. 구글의 페이스넷(FaceNet)은 99.96%, 페이스북의 딥페이스(DeepFace)는 97.25%의 얼굴 인식률을 보인다고 한다. 인간의 평균적 능력 97.5%를 넘어선 것이다. 프리즈마(prisma)라는 아이폰용 앱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진을 유명 화가의 화풍으로 다시 그려내는 앱이다.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팬시스 피카비아’,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 벨기에의 일러스트레이터 ‘길리스 프랑스’까지 다양하다. ‘딥아트’라는 웹사이트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 모두 인공지능으로 사진을 인식해서 다시 그려주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장애물을 인식해서 스스로 피해 나는 드론, 날씨나 주식, 지진 등을 실시간 뉴스로 만들어주는 기자, 기상캐스터가 등장했다. 예일대는 고난도의 음계를 작곡하는 인공지능도 만들었다. 구글의 딥드림은 이미지를 재해석해 추상화를 그리는 인공지능 미술가다. 가전회사들은 사람이 주로 머무는 공간을 찾아 쾌적한 바람을 내보내는 인공지능 에어컨을 발표하기도 했다. 주식 투자와 자산관리를 하는 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다.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 프라이빗뱅커(PB) 대신 포트폴리오 관리를 수행한다. 번역에도 인공지능이 쓰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어 번역은 통계기반 기계번역(SMT)으로 오류가 잦았다. 그러나 2015년부터 인공신경망 번역(NMT)기술이 나오면서 머신 러닝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간의 뇌처럼 문맥을 이해, 스스로 학습하고 시간이 갈수록 정확도가 올라가고 있다. 쓰임새가 다양해질수록 인공지능은 잡킬러(JobKiller)가 되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아마존이 시범 운영하는 오프라인 마트 ‘아마존고’다. 이 매장은 매장 운반직원, 상품 진열직원, 계산원이 없다. 고객은 줄을 설 필요도, 계산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집어들고 가면 된다. 고객이 쇼핑을 하는 동안 자율주행 센서를 가진 카메라가 고객을 따라다니며 구매목록을 확인하고, 고객이 매장을 나서면 앱의 결제수단으로 비용이 결제된다. 컴퓨터비전, 딥러닝 알고리즘, 센서퓨전 등의 기술이 적용됐다. 아마존의 상품을 기획하는 MD들은 ‘A9’라는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과 경쟁했고 그 결과 로봇에게 패배해 모두 정리해고됐다. 더구나 아마존은 배송도 드론과 자율주행트럭으로 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이렇게 사라질 미국 소매 일자리가 800만 개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 “완전한 인공지능은 인류의 멸망” 회의론도 대두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백악관 대통령실 이름으로 발행된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기계가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거나 인간의 수준에 근접할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AI가 자동화를 통해 부를 창출하면서 미국 경제도 좋아지고 혜택도 받겠지만 일부 불이익을 받게 될 미국인을 돕고 인공지능의 혜택을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보고서는 “3개월마다 약 6%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인공지능이 활성화되고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되려면 기술 변화의 속성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과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①가능한 많은 혜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개발할 것 ②미국인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미래의 일자리에 대비할 것 ③성장의 과실을 많은 이들이 나누도록 전환기의 노동자를 지원하고 역량을 강화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백악관 인공지능 보고서는 “향후 20년 내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거나 비견할 수준이 되어 전 분야에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UN 미래포럼은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래학자인 레이먼드 커즈웨일이 말한 기술적 특이점인 싱귤래러티(Singularity)가 온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점점 기계처럼 되고 기계는 점점 인간처럼 된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은 나타날 것인가? 초지능은 우리를 배반할 것인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완전한 인공지능은 인류의 멸망을 부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현대판 아이언맨이라는 사업가 일론 머스크도 “컴퓨터가 인간을 애완견 래브라도 리트리버처럼 기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터미네이터’ 영화 속 배경은 2029년. 핵전쟁 이후 잿더미 속에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말살하는 때다. 따져보니 12년 남았다. 대부분의 미래 SF 영화들은 인공지능 로봇의 배신을 다뤘다. 그렇게 수많은 경고를 들으면서도 인간은 왜 인간을 해고시키고 로봇을 더 고용하려고 하는 것일까? 정작 사람들끼리는 서로 가까이 하지 못하면서 왜 인간을 닮은 로봇에게서 위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아이러니한 일이다. -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2017.02.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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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국제 경제

2017년 1월 20일 금요일워싱턴 DC --- 도널드 J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한다. 그는 100만 명이 넘는 청중과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놀랍고 경이로운 내 회사들처럼 환상적으로 성공한” 지도자라고 큰소리친다. 한편 시위대는 그가 인종차별주의적인 반이민 정책을 도입하려 한다며 반대 데모를 계속한다.“우리가 뭔가에 이겨본 게 언제였나?” 트럼프 대통령이 환호하는 군중에게 물었다. 지지자들과 고함을 치는 수천 명의 성난 시위대 사이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다. “나는 회사를 세워 수천 명을 고용하고, 최고의 선거운동을 벌였다. 예컨대 링컨보다 낫다. 따라서 오늘부터 우리의 승리가 시작된다.”신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지난 금요일 아침 백악관에서 있은 신·구 대통령의 전통적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의 국적에 의문을 제기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정중하게 박수를 쳤지만 의회 성탄절 파티에서 위스컨신 주 출신은 “소수 농민의 표만으로 선출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아직도 의기소침해 있다.취임 첫날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수도 워싱턴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국 대통령 최초로 취임식 도중 트위터 메시지를 띄웠다. “이들 시위대는 나쁜 작자들이다. 정말 악질이다. 선거는 끝났어. 적당히 하라구. 정말 한심하군!” 식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사열대에서 취임축하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대신 총지휘자를 맡아 행렬을 이끌었다. 그 뒤 지난해 9월 옛 우체국 건물에 자신이 문을 연 특급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앞에서 축제를 지켜봤다. 신임 대통령이 환호와 야유를 동시에 받으며 펜실베이니아 대로(워싱턴 DC의 백악관으로 이어진 길)를 걸어 내려가는 동안 대통령 경호 요원들을 비롯한 연방 사법 당국자들이 그를 호위했다. 신임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는 600만 달러 정도의 자비를 들여 백악관 레노베이션 공사(대통령 집무실의 대대적인 금박 인테리어 공사 포함)를 벌일 예정이다. 올봄 공사를 마칠 때까지 그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서 생활한다. “솔직히 이 호텔은 정말 환상적이고 기막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럴 만하다. 그 정도로 좋다.”취임식 후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무효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직권으로 무려 500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가 증빙서류 없이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했었다. 트럼프는 크리스 크리스티 법무장관에게 그들을 어떻게 국외로 추방할지 대책을 30일 내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은 기독교 메탈 밴드 스트라이퍼의 공연이 포함된 만찬 무도회 준비에 착수했다. “복음주의자들은 나를 좋아해!” 신임 대통령이 말했다.이상은 시나리오일 뿐이다. 하지만 16년 전 TV 만화 시리즈 ‘심슨 가족’은 리자 심슨이 ‘최초의 이성애자 여성 대통령’이 되는 ‘백 투 더 퓨처’를 패러디한 에피소드 ‘바트 투 더 퓨처’(바트는 주인공)를 방영했다. 그녀의 전임자가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가 나라를 거덜 냈다”고 그녀는 한숨짓는다.트럼프 대통령을 상상하는 작업은 적어도 19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날씬한 금발의 부동산 재벌 상속자 트럼프가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했을 때 언젠가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트럼프는 오프라 윈프리에게 “마음먹는다면 아주 큰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오랜 뜸들이기는 물론 지난해 막을 내렸다. 1973년 뉴욕타임스는 27세의 그를 가리켜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처럼 생겼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여전히 군살 없는 몸매에, 머리 숱이 좀 줄고, 모델 출신 셋째 부인을 두고, 연극적인 재능을 가진 69세의 대통령 후보로 진화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대선 출마를 발표해 세상을 흔들어놓던 광경이 대표적인 증거다.당시 몇몇 전문가가 그의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아무도, 심지어 트럼프 자신도 이만큼 화제를 모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대부분 그의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난 두어 달 사이 초반의 그런 비웃음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 존 케이식은 최근 트럼프가 “유독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는 그 억만장자가 “증오와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그의 지지자들이 트럼프 반대 시위대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지난 3월 트럼프의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했다. 트럼프가 유세 훼방꾼들을 힘으로 제압해 유세장 밖으로 끌어내라고 몇 주 동안 지지자들을 사주한 뒤였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선 유세장 밖으로 끌려나가던 흑인 시위자에게 한 지지자가 주먹을 날려 체포됐다. 그는 “다음에 또 눈에 띄면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폭언을 했다. 며칠 뒤 트럼프는 시카고 집회를 취소해야 했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고함을 치며 유세장에 몰려들어 그의 지지자들과 충돌하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역사적인 데모를 연상케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유세를 망치고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책략가와 깡패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공화당원과 민주당원들은 갈수록 패닉에 빠져들었다. 트럼프가 아돌프 히틀러를 떠올리게 한다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의 말이 언론에 인용됐다(참고로 트럼프의 딸 이반카는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전향했다). 멕시코 대통령은 그를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에 비유했고, 독일 부총리는 트럼프의 캠페인과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외국인혐오증이 있는 유럽의 극우 정당들에서 유사점을 발견한다. 코미디언 루이스 C K는 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트럼프는 히틀러”, “괴상한 헤어스타일을 한 웃기고 재미있는 친구”라고 썼다. 진보 진영에선 워싱턴 포스트와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의 칼럼니스트들이 트럼프를 파시스트에 비유했다.보수파들도 보기 드물게 당파를 초월해 공감하며 비슷한 표현을 구사했다. 보수파 저술가 매트 루이스는 트럼프를 가리켜 백인 아이덴티티 정치의 화신이라고 불렀다. 반대파들에게는 먹이가 많다. 트럼프는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멕시코가 ‘강간범’을 미국에 보낸다고 말했고 그 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가 파악할 때까지(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슬림 이민을 금지하자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자신의 유세장에서 언론을 가리켜 “최악”이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최소 2명 이상의 기자가 트럼프 유세장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공격당했다고 한다. 그중 1명은 보수 매체 소속의 여기자로 트럼프의 선거운동 관리자에게 맞았다고 주장하고, 트럼프 진영에선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항변한다. 맥주집 패싸움도 아닌데 볼썽사나운 모습이다.한편 수백만 명의 트럼프 지지자는 그가 정말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매수할 수 없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자금력, 강경 보호무역주의적 관세, 멕시코인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한 장벽 설치 주장, 그리고 협상 대표로서 흥정수완에 반해 사람들은 그가 난세의 영웅이라고 믿게 됐다.모두 정신 나간 소리다. 트럼프는 히틀러도 파시스트도 아니다. 다만 그는 오랜 협상 경력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독재자의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는 구세주도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성격에 아이디어가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탓에 대통령이 되면 이행하겠다는 공약들은 결코 실천할 수 없다. 그런 공약들을 내건다고 해서 악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잘 드러나지 않는 진실은 트럼프 대통령 정부가 필시 다른 많은 대통령의 진부한 국정운영 방식과 다른 점이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의회와 국민에게 법안을 설득시키려 애쓰는 한편 시위 문화뿐 아니라 로비스트들을 물리쳐야 한다. 트럼프는 자기 능력 그리고 최근 알게 됐듯이 자신의, 음 뭐랄까, 남성적 능력에 대해 남다른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법의 지팡이가 없다(그의 말마따나 손이 커서 마법 같은 물건은 갖고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트럼프는 3권분립 체제를 갖춘 미국 정치제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과거 저명한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태트가 말했듯이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약자 입장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가 그 전설적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고 미국을 파시스트 국가로 만들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다. 미국에서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마스 제퍼슨이 알렉산더 해밀턴을 가리켜 군주체제 지지자라고 비난한 이후 계속돼온 논쟁과 공명한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1935년작 소설 ‘여기서는 일어날 수 없어(It Can’t Happen Here)’는 서민적인 파시스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데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필립 로스의 2004년작 ‘미국을 노린 음모(The Plot Against America)’에선 나치에 동조하는 찰스 린드버그가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서 대통령 자리를 빼앗아 미국이 영국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에 따라 유럽에서 나치가 승리를 굳히고, 미국의 유대인은 썩 유쾌하지 않은 시대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건 픽션이다. 트럼프는 지미 카터 같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카터는 입법 역량이 부족해 지지자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백악관을 떠날 때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뿐이었다. 대통령들이 임기를 마칠 때는 일반적으로 박수를 받기보다는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쁘다.대통령 당선자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는 있다. 그리고 트럼프의 허풍끼 넘치는 기자회견, 끝없는 트윗 메시지와 조화를 이룰 장식물은 많다. 백악관을 금색으로 도배할까? 자기 돈을 들여야겠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자신의 옛 우체국 자리 호텔에서 생활하겠다고 해도 아무도 막지 못한다. 대통령 전용기의 도색을 다시 할 수도 있다. 재키 케네디도 연한 청색과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의 울새 알 색깔로 페인트 칠을 다시 했다. 낸시 레이건은 마약퇴치 캠페인에 착수하는 한편 고가의 도자기를 사들였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어떤 캠페인을 벌일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나 21세기의 나치 총통이 되는 것은 물론 평범한 입법 목표의 달성조차 그 억만장자의 능력 밖이다. 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히틀러로의 환원(reductio ad Hitlerum)’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모든 논쟁을 히틀러로 환원시키려는, 다시 말해 항상 어떤 행동이 나치즘으로 이어진다는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는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 같은 유형의 발언도 있다. 트럼프는 예비선거 중 편협한 사고를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무슬림의 미국 입국에 대한 ‘전면적이고 완벽한 차단’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편협함이 혐오스럽지만 미국을 제3제국(나치 정권 하의 독일)의 길로 이끌지는 못한다. 의회·기업계·군부·사법부 등이 모두 강제수용소를 설치하려 한다고 보지 않는 한 말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5%에 못 미치고 인플레율도 높지 않다. 미국은 은퇴자들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리려고 애쓰는 나라이지, 초인플레 환경에서 히틀러가 탄생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니다. 파시즘은 사회와 경제에 대한 전체주의적인 통제를 의미한다(‘나치’는 국가사회주의자의 줄임말이다). 그것은 트럼프의 견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연설문 작성자였던 마이클 거슨과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가 트럼프를 비난할 때 파시스트라는 용어를 동원하지만 말이다.트럼프는 히틀러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대통령이 될까? 그의 말로 판단할 수 있다. 남쪽 국경에 아주 거대한 벽을 세우고 멕시코에 그 비용을 물리겠다.”실제로 그만한 장벽을 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 문제는 접어두기로 하자(트럼프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천연장벽이 있어 약 1600㎞만 장벽을 설치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로선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순이민이 제로라는 사실도 접어두자. 그래도 수없이 많은 의문이 남는다. 장벽이 의도한 효과를 낼까? 트럼프가 정말로 장벽 설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까? 둘 다 답은 필시 ‘아니오’일 성싶다.멕시코에 비용을 부담시키는 건 어떨까? 지금껏 멕시코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빈센테 폭스 전 멕시코 대통령은 “나라면 그 염병할 장벽 비용을 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관세로 으름장을 놓으면 미국 시장이 막혀버릴까 두려워 기꺼이 돈을 토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이다. 멕시코 대통령에게 설사 그럴 의사가 있더라도 미국에 그렇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고도 국내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그렇다면 의회가 그 비용을 부담할까?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장벽뿐 아니라 국정운영에서도 트럼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이룬다. 그는 ‘나’의 관점에서 해법을 설명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나라다. 의회가 설득에 넘어가 막대한 차단 장벽 예산을 배정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민주당 측은 상원에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통해 어떤 예산지원 법안이든 저지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여론몰이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큰 행운이 따라야 할 것이다. 도리 없이 무인기와 국경수비대 요원의 확대 배치로 만족한다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나 다를 바 없는 성과를 거둬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게 된다. 멕시코에 공장을 세운다면 미국으로 들여오는 모든 자동차, 트럭 부품에 하나도 빠짐없이 35%의 관세를 물리겠다.”여기서도 또 ‘나’의 문제가 불거진다. 트럼프는 포드 자동차의 멕시코 공장 건설을 어떻게 저지할지에 관해 가정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의 가정에 따르면 포드 CEO를 불러 관세로 엄포를 놓으면 하루 이틀 뒤에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미국에 공장을 열게 된다. 트럼프는 이 같은 동화를 1년 가까이 되풀이 해서 읊고 있다. 하지만 포드는 멕시코 공장 확장을 계속 추진해 왔다.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뭐가 달라질까?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관세 인상은 힘들다. 로비스트들의 저항을 이겨내고 상원 금융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밥 돌,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등 옛 위원장들과 오린 해치 현 위원장은 자신들의 권한을 휘둘러 관세를 영구 동결시켰다. 또한 관세는 또 다른 이름의 세금이기 때문에 세금을 혐오하는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에서 그런 법안이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이라 해도 말이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일방적인 관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위배된다. 멕시코는 그 협정에 따라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이미 멕시코 공장 조립 라인에서 포드 무스탕과 피에스타가 생산되고 있을 것이다.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훨씬 더 나은 시스템으로 교체할 것이다.” 트럼프는 건강보험개혁법에 대한 표준적인 비판 문구를 주문처럼 되풀이해 왔다. 하지만 주 경계를 넘는 보험 판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발언(이것이 경쟁확대와 보험료 인하를 가져온다고 그는 말한다) 외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더욱이 그 건강보험개혁법의 일부를 유지하려 한다고 말해 왔다. 예컨대 가입 전 질병에 대한 보험적용 거부 금지가 대표적이다. 보험사들은 여기에 난색을 표할 것이다. 그들이 가입 전 질병을 포함시키는 데 동의한 이유는 오로지 백악관과의 ‘빅딜’ 때문이었다. 누구나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에 따라 건강한 신규 가입자가 대거 유입되리라고 약속한 내용이다. 지난 2월 트럼프는 개인 의무가입(건강보험개혁법에서 가장 거부감이 큰 조항 중 하나)에 관한 입장을 번복해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듯했다. 그러더니 다시 태도를 바꿔 반대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그뿐 아니라 그중 어떤 부분이 좋을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보는 사람이 현기증 날 만큼 그들에게 맹공을 퍼붓겠다.”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 권한에 관한 문제에서 대통령 트럼프는 많은 재량권을 갖게 된다. 전쟁 선포는 의회 고유의 권한이지만 대통령들은 수세기 동안 독단적으로 외국의 분쟁에 개입해 왔다. 트럼프가 약속한 대로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폭격을 강화하려 한다면 의회가 그를 저지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물고문 등을 부활시키겠다고 거듭 약속하며 테러리즘에 강경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 발 물러나 고문에 관한 법을 위반하기보다는 개정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북베트남 수용소에 수감됐던 매케인 의원은 그 문제에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다(트럼프는 포로였던 매케인 의원을 ‘루저’라고 조롱한 적이 있다).대통령령의 좋은 점은 의회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진보파들이 불쾌할 정도로 권한을 행사할 경우 그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탓할지도 모른다. 2010년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잃은 뒤로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령의 한계를 확대해 왔다. 대법원은 수백만 명의 불법 체류자들이 미국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오바마의 대통령령을 검토 중이다. 이민, 기후변화, 의회 휴회 중 임명 등의 분야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정력적인 최고책임자의 권한을 요구해 왔다. 트럼프는 대통령령의 사용을 절제하는 대신 의회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같은 ‘희망과 변화’의 정치인이 대통령령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면, 필시 트럼프는 환경이나 이민법에서 크리스티 법무장관에게 오바마 스타일을 지시할 가능성이 크다.대통령의 국가 경영 스타일에 대한 예측은 지금껏 빗나간 적이 많았다. 레이건을 두고 전쟁광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대신 그는 소련과 사상 최대 규모의 군축협정을 체결하고,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로 미 해병대원들이 몰살당한 뒤에도 개입을 확대하기는커녕 철수를 택했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 시절 초당적 행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워싱턴 정부에선 태도가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 예측도 마찬가지 위험성을 내포한다. 비판자들은 그가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처럼 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 슈워제네거는 정치 초보이자 이념적으로 유동적인 공화당원으로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의 우려를 샀지만 알고 보니 터미네이터에 크게 못 미치는 맹탕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아는 사실은 트럼프가 자기 뜻대로 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이다. 그를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 선출직 경험이 없던 마지막 대통령 아이젠하워에 견줄 수 있을지 모른다.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 출신인 그가 명령을 내리면 답변이 당장 돌아오지 않는 시스템에서 당혹감을 느끼리라는 우려가 많았다. 해리 트루먼은 5성 장군 아이젠하워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줄 준비를 하면서 “그는 하루 종일 앉아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하지만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불쌍한 아이크(아이젠하워 약칭), 군대와 많이 다를 텐데. 아주 답답할 거야.”누군가 ‘불쌍한 도널드’라는 말을 거론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트럼프가 아이젠하워처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사업이 존경받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트럼프 스테이크’), 그는 협상을 잘하고, 그와 관련해 책도 썼다. 트럼프는 이념적 유연성, 협상 능력,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 등 반대파들도 인정할 만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의 명백한 결점들에 금방 빛을 잃는 듯하다. 종교를 겨냥한 편협한 정책, 멕시코인을 폄하하는 발언, 경솔하고 제왕적인 스타일, 시효가 한참 지난 뒤까지 뒤끝이 남는 경향 등이다. 결과적으로 아이젠하워가 워싱턴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 반공산주의 운동가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부상했다(트럼프에 대한 심한 비판 중에는 그의 말투에 매카시의 울림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샌더스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그렇다고 아이젠하워의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1957년 아칸소 주의 인종 차별주의 성향을 가진 주지사가 학교 흑백통합 명령을 거부하자 아이젠하워가 리틀록의 한 학교에 연방군 병력을 파견해 학교 통합을 집행한 일은 역사에 길이 남는 업적이다. 트럼프도 그에 견줄 만한 용기를 보여줄까? 미국 사회는 종종 실패하는 공공교육 시스템, 항상 ‘붕괴되는’ 인프라, 터무니없이 비싼 건강보험료 등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린다. 이 같은 문제는 샌더스 후보의 날카로운 비난도 소용없지만 트럼프의 진부한 사고로도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트럼프는 알파벳 순서로 배열된 명부의 여러 대통령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긴 트루먼과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존 타일러 사이에 자리잡게 된다. 타일러는 나라에 지속적인 피해를 줬다기보다 인상, 깡패 짓, 그리고 다른 깡패들을 사주한 일로 더 많이 알려진 대통령이다.- 매튜 쿠퍼 뉴스위크 기자

2016.03.2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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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다가오는 3D 프린팅

산업 일반

카본3D의 자랑은 3D 프린팅의 또 다른 과대 광고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조방식을 재편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가진 회사도 바로 카본3D다.커크 펠프스(Kirk Phelps, 33)는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을 확 바꾸고 싶었다. 일반 자동차 엔진을 위해 제작된 느슨한 원형의 노란 개스킷(마개)을 손에 든 그는 엔진 개스킷이 인간의 창의력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설명했다. “새로운 엔진 종류를 개발하고 싶어도 엔진을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할 수가 없다. 협력업체에 가서 어떤 표준 개스킷을 생산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기준으로 엔진을 개발해야 한다. 후진적 생산 방식”이라고 아이폰 멀티 터치를 개발한 상품 디자이너 펠프스는 말했다. 답답함을 느끼던 그는 3D 프린팅 산업에서 가장 ‘핫’한 스타트업 중 하나인 카본3D(Carbon3D)의 상품개발 총괄 자리를 수락했다. 3D 프린팅은 디지털 3D 파일을 컴퓨터에 입력해 즉석에서 프린터로 고체 물건을 제작해내는 기술이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펠프스가 꿈꾸던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청기나 인공관절 등, 고난이도 제품을 소규모로 정밀 생산하는 최고급 사양의 3D 프린터도 있지만, 시중에 있는 3D 프린터 대다수는 느리기 짝이 없고, 잡동사니나 작은 프로토타입만 생산 가능하다. 3D 프린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초기의 과대광고와 거품은 2년 전 정점을 찍었다가 시들해졌다. 현재 증시에 상장된 프린터 생산업체 스트라타시스(Stratasys)와 3D시스템즈(3D Systems) 주가는 최고치 대비 80%나 하락했다.카본3D가 이렇게 시들해진 업계에 다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회사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조셉 드시몬(Joseph Desimone, 51)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에서 화학 교수로 재직하다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속도와 정확성이 크게 개선된 3D 프린팅 방식을 개발했고, 세콰이어 캐피탈에서 왓츠앱을 처음부터 지지했던 짐 괴츠(Jim Goetz) 파트너가 직접 11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 라운드를 이끌었다. 괴츠는 종신 교수로 재직하던 드시몬을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로 불러 창업하도록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후 회사는 1억4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집했는데, 이중에는 지난 8월 구글 벤처스가 모집한 1억 달러도 포함되어 있다. 고객 테스트용 초기 제품 밖에 출시하지 않았지만, 회사 가치는 이미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D 물체를 층층이 바닥부터 쌓아 올려 3D로 만드는 기계 엔지니어링이 3D 프린팅 시장을 지배했다”고 드시몬은 말했다. “이제는 층층이 쌓지 말고,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모양을 뽑아내자.”3D 프린터는 대부분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압출 적층 조형)으로 알려진 기술을 사용한다. 로봇 팔에 장착된 글루건 노즐로 열가소성 플라스틱을 분사해 지그재그로 쌓아 올려서 고체형 물건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반면, 카본3D 장비는 액체 플라스틱으로 채워진 수조에서 레이저로 필요한 부분만 고체화시켜 뽑아내는 방식이다. 영화 에서 액체형 터미네이터 T-1000이 금속 액체 덩어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광경 화성 액체에 빛을 비추어 고체로 만드는 SLA(stereolithographic apparatus, 광경화 수지 조형) 방식은 수십 년 전 개발됐지만, 드시몬은 화학자의 전문성을 살려 이를 한층 발전시켰다. 수조 밑바닥을 콘택트렌즈처럼 공기가 투과되는 유리로 교체시킨 것이다. 액체 수지 아래쪽에 1인치의 1000분의 1 두께로 얇은 공기 쿠션이 형성되면, 액체는 바닥 유리에 들러붙지 않게 된다. 유리 밑에서 레이저가 조사되면 액체 플라스틱 아래 부분이 입력한 모양 그대로 경화된다. 로봇팔이 천천히 물체를 수조에 끄집어내면, 남은 액체 수지가 아래로 흘러 들어가 그 밑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카본3D는 기존 SLA나 다른 방식보다 25~100배 빠른 속도로 뚜렷한 해상도의 물건을 생산할 수 있다. 기계 동작이 아주 부드럽기 때문에 신축성을 가진 탄성 중 합체와 고온 저항성을 가진 합성수지 등, 다양한 고성능 첨단소재를 활용할 수 있다. 카본3D는 상업용 출시에 적합한 제품 생산을 위해 자체적으로 합성수지를 개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3D로 기능 부품을 출력해서 자동차에 사용하는 등, 응용 방식에 주력하고 있다”고 펠프스는 말했다. “3D 프린팅으로 만든 물건을 최종 부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배송과 수출도 가능하다. 그 정도 품질이 확보된다면 지금의 사출 성형 생산방식에 집착할 까닭이 없다.” 포드 자동차를 포함한 십여 개 제조사와 레거시이펙트(Legacy Effects) 등 할리우드 특수효과 스튜디오는 카본3D 장비를 테스트하는 중이다. 장비 한 대 가격은 1만 달러 이상으로 제법 비싸다. ━ 할리우드 특수효과팀이 테스트 중 영화 과 작업을 맡았던 레거시의 경우 보철 장치나 소도구 등을 제작하는데 카본3D 장비를 사용한다. 덕분에 출력 시간은 결과물당 평균 16시간에서 2시간으로 단축됐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필요에 따라 고급 엔지니어링 소재를 선택해 물건을 제작할 수 있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라고 레거시이펙트의 제이슨 로페스 시스템 지도 기술자는 말했다. “작업 처리량과 속도가 완전히 놀랍다.” 카본3D 장비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포드 전임 CEO 앨런 물랄리는 카본3D 이사회에 합류하기도 했다. 미시건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 3D 생산연구팀 총괄 엘런리는 현재 프로토타입 신속 제작부서에서 카본3D를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포드가 3D 프린터로 출력한 자동차 중요 부품을 사용하게 될 날은 아직 멀었지만, 리는 운전자 손에 맞춤 제작된 변속기어를 3D 프린터로 생산하는 계획을 농담스레 건넸다. “3D 프린팅이 아직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의 잠재력은 아직 무궁무진하다”고 리는 말했다. “미국의 제품 제조 방식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알아두고 싶다.” 시장조사기관 월러스어소시에이츠의 산업 전문가 테리 월러스는 카본3D의 빠른 속도가 생산에 엄청난 의미를 가져올 수 있지만, 최종 생산품 품질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빛에 노출될수록 SLA에서 사용한 광경화성 수지가 화학적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FDM 프린팅으로 만든 물건보다 내구성이 떨어질 수 있다. 카본3D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외선 차단 소재와 색소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카본3D 장비는 대중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고가다. 그러나 광고한 만큼의 역할만 해주어도 대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은 별 이슈가 아닐 수 있다. “포드는 장비 생산에 필요한 부품에만 수십만 달러의 돈을 지출한다”고 월러스는 말했다. 사출 성형(가장 널리 사용되는 제조방식)을 파괴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카본3D의 주장은 다소 터무니없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카본3D 덕분에 기력을 잃어가던 3D 프린팅 시장은 에너지를 되찾는 중이다. - AARON TILLEY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12.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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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로봇 금지하자”

IT 일반

‘킬러 로봇’이라고 하면 곧바로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액체금속으로 얼어붙었다가 총에 맞아 산산조각난 뒤에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사람을 공격하는 악당 로봇 ‘T-1000 터미네이터’ 말이다. 그러나 스스로 알아서 사람을 공격하는 자율 로봇 무기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미군은 이미 벙커에 앉아 드론을 조종해 수천㎞ 떨어진 곳의 목표를 타격하고 있다. 게다가 컴퓨터로 작동되는 드론까지 시험 중이다. 자율적으로 운용되는 드론 사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막지 않으면 몇 년 뒤면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최근 그런 치명적인 자율무기를 국제협약으로 금지하기 위해 NGO들의 모임 ‘킬러 로봇 금지운동(Campaign to Stop Killer Robots)’이 발족했다. 그들은 지난 10월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 모여 독립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 무기를 금지하려는 외교협상이 기술 개발보다 훨씬 느리다고 개탄했다.그들은 인간을 죽이는 결정이 언젠가 기계에 위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우려한다. 미국 온라인 매체 인터셉트가 최근 폭로한 드론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단 5개월 동안 인간이 조종하는 드론에 의해 사망한 10명 중 9명은 예정된 표적이 아니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의 인공지능(AI) 교수 토비 월시는 현재의 AI 시스템으로 조종되는 자율드론을 사용하면 그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월시 교수는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거나 좀 더 균형 잡힌 대응방안을 선택하는 문제에선 기계가 사람보다 결코 낫지 않다고 지적했다. 컴퓨터로 조종되는 무기는 곧 개발될 수 있지만 AI 두뇌가 터미네이터 식의 정확한 기술로 발전하려면 “5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일부 자율무기는 이미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은 공격해오는 미사일 등을 표적으로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이라크전 당시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첨단기술의 성공 사례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 무기로 연합군 전투기 2대가 격추됐다. 게다가 수㎞ 떨어진 곳의 표적을 식별할 수 있는 기계화 무기도 이미 배치돼 있다. 그 무기는 기술적으로는 인간의 도움 없이 발사될 수 있지만 현재는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경보를 발해 조종 대원이 발사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유엔 특별조사관 크리스토프 헤인스는 “국가들은 일부 기능에서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빨라 긴급한 상황에서 유리하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또 일부 국가는 그런 기술이 표적 확인에도 더 나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최고 군사 강대국인 미국이 자율무기의 연구개발에 앞장 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 애드리언 J T 란킨-갤로웨이는 “무기의 자율화에 초점을 맞춘다”고 인정했다. 기존의 기술적 역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개조하거나 작전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획기적인 기술에 투자한다는 뜻이다.그러나 국제로봇무기제한위원회의 이안 커 박사는 좀 더 효율적인 표적 제거로 이전보다 더 인간적인 전쟁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월시 교수는 기술이 갈수록 저렴해져 군인의 생명과 예산 측면에서 전쟁 비용이 낮아지면서 전쟁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보니 도처티는 기계에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현행법에선 그런 치명적인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램하고 지시를 내린 사람이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희생자를 위한 응징도, 사회적 지탄도 없고 재발 방지도 어렵다. 커 박사는 “인적 요소를 제거하면 인도주의적 목표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인간의 연약함이 있어야 전쟁의 강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킬러 로봇 금지운동’은 자율무기의 규제보다 전면 금지를 권고한다. 기술이 개발되면 국가가 사용할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또 일단 만들어지면 쉽게 확산돼 끝없는 군비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 지난 7월 영국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 테슬라·스페이스X CEO 엘론 머스크,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 등 AI 전문가 약 1000명은 군사 목적의 기술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에서 ‘킬러 로봇이 개발되면 암시장에 등장하거나, 테러리스트나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독재자, 인종청소를 감행하려는 군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일부 관련자들은 개발을 금지하면 AI의 건설적인 용도 연구도 제한 받는 역효과가 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는 교통사고를 줄여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카네기멜론대학의 컴퓨터과학 교수 마누엘라 벨로소는 “AI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데 그런 유익한 기술을 인간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벨로소 교수는 드론이나 AI 같은 기술이 도덕적으로 ‘중립’이라고 설명했다. 위험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 사용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또 아무리 금지해도 사람들은 AI를 개발하고 남용할 것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AI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유익한 용도로 사용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나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헤인스 특별조사관은 킬러 로봇 금지 논의에서 반드시 필요한 구분이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수준의 기계 자율성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인간이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기계가 돕는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술은 인간의 손이 제어하는 도구가 돼야지 그 반대여선 안 된다. 특히 생사 문제에서 그렇다.”2년에 걸친 비공식적 다자간 대화에도 ‘킬러 로봇 금지운동’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거기서 어느 정도 예외다. 2012년 무력 사용에서 인간 판단의 ‘적절한 수준’을 요구하는 국방부 정책 지침을 발표했다. 밥 워크 국방부 부장관은 “전쟁에서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데 기계가 도울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오는 11월 13일 스위스 제네바의 특정재래식무기 금지협약(CCW) 연례 회의에서 120개 서명국은 킬러 로봇 금지 협의를 지속할지 결정한다. 휴먼라이츠워치 무기부 국장 스티븐 구스는 “논의를 지속하겠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같은 단체 소속으로 킬러 로봇 금지운동 연락관인 메리 웨어햄은 “비공식적 유엔 협의는 목표가 너무 낮고 진행도 너무 느리다”며 새로운 국제협약을 위한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공식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나 CCW는 굼뜨기로 악명 높다. 대안은 유엔 외부에서 협약을 마련할 스폰서 국가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구스 국장은 “협약에 반대하는 나라는 없지만 앞에 나서려는 나라도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시간도 촉박하다. 커 박사는 자율무기에 관해 “우린 이전에 넘은 적이 없는 도덕적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제적인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LAUREN WALKER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2015.11.02 16:23

5분 소요
메말라 가는 ‘캘리포니아 드림’

산업 일반

캘리포니아 수자원 관리위원회의 펠리셔 마커스 위원장은 ‘캘리포니아 드림’이 죽지 않았다고 애써 강조했다.우리는 차를 타고 새크라멘토 남쪽 센트럴 밸리를 통과했다. 이곳에서도 가뭄의 위력이 실감났다. 평소 부드러운 녹색으로 덮히던 서쪽 구릉의 풀가 나무가 누렇게 말라 비틀어졌다. 양쪽으로 수㎞ 펼쳐진 들판도 바싹 타들어가 밟으면 바스러질 듯했다. 군데군데 작물이 살아 있긴 했지만 사면으로 죽음에 포위된 상태였다.지난 몇 년 동안 가뭄이 캘리포니아의 목을 서서히 조였다. 적은 강수량과 기록적인 고온으로 역사상 어느 때보다 끔찍한 기후였다. 최근의 나이테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가뭄(2011년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은 1200년만에 최악이다. 지난 4월 1일 시에라네바다 산맥 해발 2072m에서 측정한 적설량은 매년 평균량의 5%에 불과했다. 관측 사상 최저로 기록된 1977년과 2014년의 25% 수준에도 한참 못 미쳤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쌓인 눈은 캘리포니아 전체 수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마카스 위원장은 이젠 누구도 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적극 모색한다는 얘기였다. “주정부가 세운 계획이 완벽하진 않지만 향후 5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준다.” ━ 화성 정착지 같은 거대도시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시에라네바다의 적설량 측정 결과를 본 뒤 곧바로 전례 없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물 사용량의 25% 절감을 의무적으로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브라운 주지사는 지난 4월 1일 캘리포니아주 사상 최초의 강압적인 물 사용 제한을 발표하며 “이젠 여러분의 멋진 푸른 잔디밭에 매일 물을 듬뿍 줄 수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싱싱한 잔디밭에 물을 대는 데 필요한 인프라는 미국의 뛰어난 과학자·엔지니어가 수십 년 공들여 구축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는 세계 최대의 지구공학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시스템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수석 물 과학자 제이 패미글리에티는 “20세기 초만 해도 물 순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심지어 ‘기후변화’의 의미도 그땐 몰랐다.”그들이 만들어낸 캘리포니아의 생태계는 비와 눈이 충분히 내릴 때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가뭄이 닥치면 전혀 쓸모없다. 게다가 지금은 계속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극히 위험한 상태다.20세기 대부분 동안 캘리포니아는 하나의 이상을 상징했다. 그림 같은 해변, 광대한 푸른 잔디밭, 언제나 내려 쬐는 햇볕, 미국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 이주자들에게 진정한 천국으로 선전됐다. 그러나 전부 거짓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초목이 무성하고 비옥한 대지가 아니라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다.캘리포니아는 원래 끝없이 넓은 잔디밭과 오렌지 숲, 아몬드 과수원이 있을 곳이 아니다. 현재의 인구 3800만 명을 지탱할 수도 없는 곳이다. 남캘리포니아의 거대 도시권은 마치 화성의 정착지 같다. 모든 것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빛이 바래고 뜨거운 열기로 바싹 메말라 간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한다.물 부족 문제를 관개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공학적 노하우, 대규모 공공사업 욕구가 한데 어우러져 캘리포니아를 현재의 캘리포니아로 만들었다. 시발점은 북쪽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도시 허브(hub)였다. 20세기 초 샌프란시스코가 뻗어 나가면서 물 수요도 급증했다. 1916년 헤치헤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 계곡을 가로막아 베이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 건설공사였다. 그 후 20년 동안 엔지니어들이 터널, 댐, 저수지, 수력발전소, 그리고 약 240㎞의 수로를 건설했다. 1934년 수로가 개통됐다. 세계 최대의 인공 수로 중 하나로 하루 2억6000만 갤런(약 9억8420만ℓ)의 물을 공급했다.물의 양을 잴 때 흔히 갤런(3.785ℓ) 단위를 생각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수준에선 그런 단위로 계산하기가 불가능하다. 물 관리업계는 주로 100만에이커피트(MAF) 단위를 사용한다. 1에이커피트(AF)는 1에이커(4047㎡)를 1피트(30.48cm)의 높이로 채우는 수량을 말하며 32만5000갤런 이상에 해당한다. 헤치헤치 수계는 연간 29만AF 이상의 물을 제공했다. 당시로선 충분했지만 그 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헤치헤치 프로젝트가 성공하자 미국의 거부들이 달려들었다. 그중에는 농산물을 동부로 운송하기 위해 서던 퍼시픽과 유니언 퍼시픽 철도가 합작한 퍼시픽 프루트 익스프레스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태양과 땅은 있지만 물이 없는 센트럴 밸리를 농업 낙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30년대 말 센트럴 밸리 프로젝트(CVP)가 댐과 운하 건설을 시작했다.지금 CVP는 22개 저수지에 약 11MAF의 물을 저장해 연간 7.4MAF를 센트럴 밸리로 공급함으로써 농지 약 1만 2140㎢에 물을 댄다. 1960년대 새크라멘토도 그 뒤를 따라 캘리포니아 물프로젝트(SWP)를 시작했다. 5.8MAF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저수지 20개를 만들어 주민 2500만 명과 농지 약 3035㎢에 연간 약 3MAF의 물을 공급했다. 헤치헤치와 CVP, SWP를 합하면 수로의 길이가 약 2000㎞에 이른다.그런 인프라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캘리포니아를 만들었다. CVP는 샌와킨 밸리를 고지대 사막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농산물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자만심과 공학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미국 지질연구소는 그 프로젝트를 “지구 표면의 최대 인공 개조”라고 불렀다. 또 SWP는 로스앤젤레스와 인랜드 엠파이어 지역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의 로버트 체스터 환경 역사학 교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인의 모든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으로 연상됐다”고 말했다. “그런 이미지는 특히 남캘리포니아의 부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렌지를 심기만 하면 절로 자라는 천국으로 비쳤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으로 자리매김했다.”캘리포니아 주민은 그런 수리학자·엔지니어의 독창성과 재능에 매료됐다. 그들은 물이 필요하면 그 재주꾼들이 물을 공급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자만했다. 황금의 땅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 캘리포니아주의 별명)’의 사전엔 물 절약이란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지금도 구석구석 그런 자만심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 섀스타 호수로 연결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콜로라도강(샌디에이고 주변에 물을 공급한다)을 미주리강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 물 부족을 해결하자는 자못 ‘진지한’ 제안도 있다.체스터 교수는 “수리 공학이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문화적 근시안을 낳았다. 제한된 수자원에 적응할 수 있는 대안적 접근법의 검토를 가로막았다.”스탠퍼드 우즈환경연구소는 2014년 보고서에서 “물 분야의 기술적 변화가 1970년대 이래 대체로 정체됐다”고 지적했다. 청정 에너지 분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000~2013년 청정 에너지 투자액은 690억 달러(약 75조원)인 반면 수자원 관련 투자액은 15억 달러에 불과했다. 또 지난 10년 동안 태양전지판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됐고 전기차도 곧 보편화될 기세다.반면 물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는 신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자원 인프라가 노후화됐다. 캘리포니아 도시물절약위원회는 76개 도시와 협력한다. 2012년 그 도시들은 약 573억 갤런의 물을 낭비했다.최근의 가뭄은 캘리포니아의 물 기술이 완전히 한물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자만심을 버리고 캘리포니아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새로운 과학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 화장실 오수를 식수로 새크라멘토에서 인터스테이트 5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약 640㎞를 달리면 오렌지 카운티에 도달한다. 오렌지 카운티의 역사가 짐 슬리퍼에 따르면 그 지명은 실제로 오렌지 숲이 있어서가 아니라 언젠가 오렌지 숲이 무성한 천국이 되리라는 약속으로 붙여졌다. 그 약속은 한동안 북부에서 파이프를 통해 공급되는 물로 실현됐다. 지금은 이름도 그럴 듯한 파운틴 밸리(물이 솟는 계곡이라는 뜻)의 혁신적인 폐수 재활용 기술로 오렌지 카운티는 물을 외부에서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파운틴 밸리의 하수 재활용 시스템(GWRS)에선 모든 것이 보수 유지가 잘 돼 반짝인다. 수천 개의 파이프, 수백 개의 공압 밸브와 다양한 배관 시설로 이뤄진 거대하면서도 효율적인 네트워크다. 전부 자동으로 가동된다.GWRS는 세계 최대의 간접 정수 시스템으로 하루 평균 식수 215AF를 생산한다. 2008년 가동을 시작했고 용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 오는 5월 말이면 하루 식수 공급량이 307AF에 이를 전망이다. GWRS의 마이클 마커스 대표는 그 정도면 85만 명(오렌지 카운티 인구의 약 3분의 1)의 하루 물 수요량을 맞추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가뭄이 심했던 2008년엔 우리가 마치 천재처럼 보였는데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왔다.”GWRS는 오렌지 카운티에 아주 저렴하게 물을 공급한다. 1AF 당 478달러에 물 판매업체로 넘어간다. 옛 주립 수자원 채권의 보조금으로 그처럼 가격이 낮아졌다. 하지만 보조금이 없더라도 850달러면 된다고 마커스 대표는 말했다. 콜로라도강과 북캘리포니아에서 끌어오는 물이 1MAF 당 1000달러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또 에너지 사용량도 물 수입의 절반에 불과하다.배관 공사가 매우 복잡하지만 과학과 효과적인 물 정책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법에 따르면 실내 폐·오수(싱크, 샤워, 화장실)는 깨끗이 정화해서 바다로 흘려보내야 한다. 엄청난 일이고 낭비가 심하다.그 대신 오렌지 카운티에선 처리된 폐수를 GWRS로 보내 추가로 3단계의 정화 과정을 거친다. 먼저 물리적 정밀여과로 고형물질, 원생동물, 박테리아·바이러스를 걸러낸다. 그 다음 역삼투 과정으로 용존 소금와 유기화학물, 약품을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자외선 처리 과정을 통해 마지막 남은 미세 유기물질을 파괴하고 소독한다. 일반 수돗물보다 더 깨끗하다.오렌지 카운티의 제임스 허버그 위생처장은 “GWRS가 우리 카운티의 일급 비밀”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다른 카운티에도 소규모 폐수 재활용 공장이 있지만 오렌지 카운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주된 이유는 폐수 재활용 기술에 별로 관심도 없고 투자도 꺼리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의 잔혹한 가뭄으로 그런 성공을 본뜨려는 사업이 속속 등장했다. 마카스 위원장은 “앞으로 폐수 재활용의 폭발적인 증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미 최소 10개 프로젝트가 계획돼 있다. 그중 샌디에이고 프로젝트의 규모가 가장 크다. 샌디에이고의 공익재 사업 책임자 할라 라자크는 지난해 11월 그 프로젝트의 승인을 받았으며 앞으로 20년 안에 샌디에이고의 물 공급량 중 3분의 1이 폐수 재활용으로 충당될 것이라고 말했다.비영리 연구기관 퍼시픽연구소는 캘리포니아주 전체의 효율적인 폐수 재활용으로 매년 1.2~1.8MAF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비정부기구 워터리유즈의 멜리사 미커 대표는 “처리된 폐수를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멋진 발상”이라고 말했다. “마치 공짜로 얻는 물로 생각된다.” ━ 바닷물을 식수로 전환 ‘공짜 물’의 다른 원천도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거대 도시와 농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태평양이다. 1억6576만㎢에 이르는 태평양은 지구 표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추정에 따르면 그 바닷물의 양은 약 535조AF에 이른다.문제는 바닷물을 그냥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해수는 작물을 죽이기 때문에 농업용수로도 쓸모없다. 경제적인 비용으로 해수를 담수화하는 것이 오래 전부터 물 안보 분야의 ‘성배’였다. 최근의 프로젝트는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에는 1928년부터 해수를 탈염해 담수화하는 공장이 있었다. 현재 그곳의 아루바섬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담수화 공장이 있다. 중동의 물 빈곤 국가들에는 해수 탈염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72억 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의 해수 탈염 공장을 세웠다. 하루 식수 약 2억7000만 갤런을 생산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식수의 40%가 탈염 해수에서 공급된다. 2050년까지 그 비율이 70%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에도 해수 담수화 시설이 2000개 정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규모로 이곳저곳의 산업공장 수요를 충당할 뿐이다. 미국의 담수화 프로젝트는 문제가 많았다. 플로리다주 탬파에는 하루 2500만 갤런의 물을 생산할 수 있는 담수화 공장이 2008년 완공됐다. 그러나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6년이나 늦어졌고 비용도 4000만 달러가 초과됐으며 전면 가동되는 경우도 드문 실정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바라에선 1987~92년 가뭄 당시 하루 300만 갤런의 물을 생산할 수 있는 담수화 공장이 건설됐지만 1993년 완공되자마자 바로 홍수가 났다. 그 공장은 그때 문을 닫은 이래 지금까지 가동이 중단됐다.그러나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대규모 담수화 공장이 곧 문을 연다. 샌디에이고 북쪽 해안지역 칼스바드 남단에 10억 달러를 들인 포세이돈 워터 담수화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그곳의 피터 맥래건 부사장은 내년에 공장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공기를 단축해 빠르면 내달 가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맥래건 부사장은 물이 부족한 샌디에이고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전 가뭄에 관해 묻자 그는 친구 가족이 소유한 땅의 호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970년대 말 심한 가뭄 동안 그 호수가 바짝 말랐다. 얕게 고인 물에 물고기만 가득해 돌을 던지면 물고기가 떼로 푸드덕거리는 바람에 땅이 흔들렸다. 메기는 견디지 못하고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그는 샌디에이고가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는 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공급되는 물의 85%를 콜로라도강이나 북쪽 지역에서 공급 받는다. 샌디에이고는 서서히 외부 물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그런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맥래건 부사장은 “이제 샌디에이고는 현지의 물만 사용하던 7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폐수를 재활용하고, 그 나머지는 바다에서 얻을 것이다.”해수 담수화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에너지 소모량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담수화에 에너지가 턱없이 많이 든다는 것이 시대에 뒤진 정보에 기초한 잘못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칼스바드 프로젝트(이스라엘의 담수화 기술로 유명한 ICE 테크놀로지의 자문으로 설계됐다)의 경우 가압펌프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거의 전부를 다른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회수시설을 갖췄다.맥래건 부사장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회생브레이크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식수를 생산하려면 과거엔 해수를 2번 여과해야 했지만 지금은 1번이면 족하다. 또 과거엔 여과 필터를 3년밖에 쓸 수 없었지만 지금은 8~10년은 간다. 또 필터가 성능이 크게 개선돼 예전보다 적게 필요하다.”칼스바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태평양 연안에 비슷한 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전망이다. 오렌지 카운티의 헌팅턴 비치, 캠프 렌들턴(칼스바드 북쪽의 해병대 기지), 몬터레이 카운티 등에서 이미 18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샌타바바라도 담수화 공장을 되살릴 계획이다. ━ 아몬드 나무의 묘지 샌타바바라 시청의 물 관리국장 조슈아 해그마크 같은 지지론자들은 담수화가 조만간 비용면에서 효율적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20년 동안 기술 투자가 거의 없었지만 비용은 상당히 낮아졌다. 해그마크는 “캘리포니아주가 나서면 민간 부문의 담수화 기술 투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물 정책 전문가 다수는 그처럼 낙관적이지 않다. 그들은 플로리다주 탬파,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바라, 호주의 실패 사례를 지적한다. 캘리포니아 공공정책 연구소의 엘렌 하나크 연구원은 “호주는 새천년의 가뭄 동안 담수화 시설에 대거 투자했지만 에너지 비용이 너무 높아 지금은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처럼 저렴한 대안이 없는 곳에서만 담수화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스탠퍼드대학 서부 수자원 프로그램의 도시 물 정책을 담당하는 뉴샤 아자미 국장은 “담수화 비용은 세 가지 요인에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대지, 에너지, 인프라의 비용이다.” 경제적인 타당성을 가지려면 그 비용 중 하나를 없애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담수화 비용이 가장 낮은 이유는 대지가 사실상 국가 소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슈켈론 담수화 공장은 이스라엘 정부가 무료로 제공한 대지에 건설됐다. 그와 비슷하게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대지와 연료가 싸고 풍부하다.그에 비해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의 대지는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또 화석연료 가격이 상대적으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는 그와는 다른 풍부한 에너지원이 있다. 바로 태양이다. 인터스테이트 5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캘리포니아주 중남부 프레스노 부근의 휴게소에서 개릿 라즈코비치와 아들 닉을 만났다. 라즈코비치는 이민 3세대 농민이다. 그의 할아버지대가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건너와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라 카운티에 정착했다. 그들은 살구와 자두를 재배했다. 그러다가 GE, 휴렛패커드 같은 초창기 기술 대기업이 그곳으로 이전해 농장이 교외 지역으로 바뀌자 그의 할아버지는 샌와킨 밸리로 농장을 옮겼다. 지금 그는 프레스노에서 농장을 한다.최근 대형 농장이 물 부족 사태에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일었다. 캘리포니아 수자원 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농장은 매년 3230만AF의 물을 사용한다. 캘리포니아주 전체 물 사용량의 약 40%, 주민이 사용하는 물의 80%를 차지한다(나머지는 대부분 그냥 흘려보낸다). 하지만 그 정도는 캘리포니아주의 국내총생산(GDP) 22조 달러 중 2%에 해당할 뿐이다. 그런데도 농장이 물을 과다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빌미로 다수는 농업 부문의 물 사용을 더 줄이라고 주지사에게 압력을 가한다.미주리대학 물 역사학자 캐런 파이퍼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농업 현황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농업 부문에서 물이 낭비되는 경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CVP가 완공되자 센트럴 밸리의 소규모 농장들은 작물 재배에 외부에서 끌어온 물을 맘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파이퍼 교수는 “농민이 그 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당국은 물을 그냥 버린다며 다른 사람에게 그 물을 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농업 부문의 효율성이 개선됐지만 물 공급 유지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다. 마카스 위원장은 “작물재배의 효율성은 10년 전의 2배로 높아졌지만 물 사용을 절감하는 효율성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태평양연구소는 캘리포니아주 전체에서 물 사용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조치(물방울 떨어뜨리기와 스마트 관개 등)만 제대로 실행해도 매년 5.6~6.6MAF를 절약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태평양연구소의 피터 글리크 소장은 영농 효율성 기준을 의무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최근 농장은 물 사용을 크게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새크라멘토부터 샌디에이고까지 도시에선 어떤 회사나 가정에 들어가 수도를 틀면 물이 계속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나 라즈코비치의 과수원을 비롯한 여러 농장의 경우는 벌써 2년째 전혀 물 공급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CVP는 농장의 물 공급을 중단했다. 새크라멘토의 SWP는 지난해 예정된 할당량의 15%만 공급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농지의 약 5%는 놀려야 했다. 그로 인해 2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일자리 1만7000개가 사라졌다. 올해 CVP는 다시 물 공급을 중단할 계획이다. SWP는 계약된 수량의 20%만 공급할 예정이다.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농업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다. 라즈코비치가 8년 전 심은 아몬드·체리·포도 나무는 CVP의 물에 의존해 자랐다. 그러나 지난해엔 CVP의 물이 한 방울도 공급되지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농민은 자신의 밭에서 규제 받지 않는 지하수를 퍼올려 물을 댈 수 있었지만 라즈코비치는 그런 운도 없었다. 그는 “밭의 여러 곳에 수백m 깊이로 구멍을 뚫어봤지만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라즈코비치는 아몬드 나무의 묘지가 돼버린 밭을 보여줬다. “올해로 2년째 물을 못 댄다. 아직은 나무에 푸른 잎이 몇 개 붙어 있지만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다. 수확도 없고 나무를 구할 희망도 없다.” 그래서 그는 대안을 찾았다. 과수원을 갈아엎고 다른 종류의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라즈코비치는 나를 차에 태우고 인터스테이트 5번 고속 도로를 달려 캘리포니아 수로를 건넜다(“수위가 사상 최저로 내려갔다”고 그는 말했다). 몇 ㎞를 더 가다 노스스타 프로젝트 부근에 섰다. 휴면 상태의 농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세워지고 있었다. 금속봉 위에 세워진 태양광 전지판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라즈코비치는 주차장이 거의 만원인 것을 보고 놀랐다. 노스스타 프로젝트의 시공사 퍼스트 솔라는 올 여름 완공될 공사로 400개의 건설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영구 일자리도 50개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라즈코비치의 농장에선 이제 할 일이 없다. 그는 “연중 내내 일하는 근로자는 4~5명 줄었지만 계절 근로자는 수백 명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태양광 발전시설 시공업체와 협의 중이다. “예전의 아몬드 과수원에 비하면 수익이 크게 떨어지겠지만 수익이 전혀 없는 것보단 낫다.” 센트럴 밸리의 미래도 그럴지 모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의 기존 인프라는 현재 에너지 수요의 최대 5배나 되는 전기를 생산하기에 충분한 태양광 발전시설을 떠받칠 수 있다. 그 전기를 폐수 재활용 시설이나 해수 담수화 시설처럼 에너지 집약적인 새로운 프로젝트에 공급할 수 있다. 카네기 과학연구소에 따르면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약 5만5850㎢를 태양광 발전시설로 개발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은 캘리포니아 농지가 1618㎢나 된다. 라즈코비치는 “내 아들은 아몬드 농장 대신 태양광 농장을 운영하게 될 듯하다”고 말했다.캘리포니아에선 북부든 남부든 해안이든 산악지대든 모두가 동의하는 아이디어가 있다.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탄환은 없으며 잘못된 풍요의 문화를 떨칠 수 있다면 캘리포니아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주민은 뒤뜰과 동네 공원에 물집약적인 조경을 중단해야 한다. 매년 416만5000AF의 물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전체가 사용하는 물의 10%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조경의 경제적인 가치는 거의 없다. 스페인, 이탈리아, 남아공, 칠레, 이스라엘은 전부 장식용 잔디밭 없이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캘리포니아도 그럴 수 있다. 태평양연구소의 글리크 소장은 “멋진 잔디밭이 반드시 좋은게 아니라 나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기호와 행동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자동차의 안전띠와 흡연을 생각해 보라. 사회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효율성 제고에는 기술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는 시대에 뒤진 물 관리를 최신 첨단 기술로 혁신해야 한다. 모든 점에서 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새크라멘토는 모든 신축 공사에서 물 효율성 기준에 부합하는 배관 시설을 의무화할 수 있다. 글리크 소장은 “물론 물이 적게 나오는 화장실보다 해수 담수화 공장을 방문하는 게 훨씬 멋지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이 적게 나오는 화장실을 설치하면 훨씬 낮은 비용에 더 많은 물을 얻을 수 있다.”또 캘리포니아는 당국이 제대로 일을 한다면 많은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인터뷰한 거의 모든 정책 담당자는 캘리포니아의 미래 물 안보에서 관건은 물 사용 감시와 신고 강화라고 말했다. 적어도 다른 물 빈곤 국가들이 세운 기준까지는 도달해야 한다.마커스 위원장은 “호주의 경우 주요 물 저장 시설의 현황을 지금 당장 내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는 그 근처에도 못 간다. 새크라멘토는 다른 지역에서 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그곳의 물 관리자는 이웃 지역은 상관하지 않고 현지인 수요에 맞게 조치한다. 누락된 데이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표면 수로와 지하수 대수층에서 전용되는 물의 양이다.캘리포니아주 공공정책연구소의 최신 보고서 저자들은 “주민이 물에 관해 무엇을 아는지 주 당국이 정확히 파악한다면 관리와 정책 마련이 훨씬 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는 오랫동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언제나 풍부했고, 물이 부족할 때는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안이하고 낙천적이며 캘리포니아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의 하나크 연구원은 “이젠 그런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행정명령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런 부주의함을 끝내고, 물 사용 신고를 강화하고 물의 오용과 남용을 더 엄격히 처벌하는 것이다. 또 효율성 제고에 인센티브를 주고 물 혁신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고자 한다.이런 당근과 채찍 병행전술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아직 캘리포니아는 죽지 않았다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낙천주의가 팽배하다. 미국 토마토 생산의 중심지인 욜로 카운티를 통과하면서 마커스 위원장은 캘리포니아 수자원 관리위원회가 물 위기를 해결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어떤 주민은 우리를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주민은 우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요점은 우리가 문제의 해결사라는 사실이다. 정책 결정이 우리의 원동력이다. 완벽에 집착하다간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그러면서 마커스 위원장은 차창 밖을 가리켰다. 새로 심은 과일 나무가 늘어선 과수원이 보였다. “아니, 미안하다. 길이 울퉁불퉁하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저 어린 나무를 꼭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번역 이원기

2015.04.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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