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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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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에 드리운 ‘탄소중립’ 그늘…갈 길 먼 ‘2050 탄소중립 시대’

산업 일반

탄소중립이 만든 그늘이 짙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24파리올림픽이다. 앞서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탄소배출량을 2020도쿄올림픽 대비 5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탄소·친환경 올림픽을 위한 희생은 선수들의 몫이었다.희생은 결국 또다른 차별을 낳았다. 미국 농구대표팀은 800개 객실을 보유한 파리의 특급호텔 전체를 대여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미국 농구팀의 독단적인 행위는 차별의 단초가 됐다.파리올림픽의 무리한 움직임은 이어졌다. 파리올림픽 주최측은 ‘친환경 올림픽’ 기조아래 육류 소비를 최소화 했다. 선수촌 식당 식단 60%를 채식으로 채웠다. 효과는 미비했다. 각국의 선수들은 단백질 보충을 위해 자체적으로 식사를 공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성급한 탄소 줄이기가 시사한 부작용의 파편들이다.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질서가 된 탄소중립이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은 틀림없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 아래 우리나라도 덩달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다만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저탄소 정책’이 직면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리한 추진 과정이 전력수급난과 지역 격차 등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지난 2020년 10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공개했다.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은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유망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등 3대 정책방향에, ▲탄소중립 제도적 기반 강화를 더한 ‘3+1’ 전략이다. ‘2050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에너지 전환 ▲산업 ▲건물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수소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CCUS) 등 부문별 키워드를 선정해 구체적인 방안이 담겼다. 해당 시나리오는 A안과 B안 총 두 가지로 구성됐다. A안은 화력발전 전면 중단 등 배출 자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B안은 화력발전이 잔존하는 대신 CCUS 등 제거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다. A안과 B안 각각에는 공통적으로 ‘화력 발전 대폭 축소’ 내용이 포함됐다.명분은 좋다. 두가지 안 모두 화력발전 대폭 축소 및 재생에너지·수소기반 발전 확대를 공통 목표로 둔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A안에서는 70.8%, B안에서는 60.9%로 확대된다. 현재는 상용화되지 않은 무탄소 가스터빈도 A안 21.5%, B안 13.8%까지 비중이 늘어난다. 이에 반해 원자력 발전은 각각 6.1%, 7.2%로 줄어든다. 석탄 발전은 두 안 모두에서 전면 중단되고,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B안에서만 5% 잔존한다. 사실상 화력 발전의 종말인 셈이다. ‘2050 탄소중립 시대’...남은 시간은 26년문제는 짧은 시간안에 화력 발전소가 문을 닫음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정점부터 탄소중립까지 도달하는 시기를 살펴보면 ▲유럽연합(EU) 60년 ▲미국 45년 ▲일본 37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 배출량의 정점이었던 2018년(6억8630만톤) 기준 32년의 시간이 주어졌다.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시간이 부족한 우리나라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탄소 중립을 강행할 경우 ▲전기요금 상승 ▲지역 격차 ▲고용 불안정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영국 산업단체 에너지인스티튜트(EI)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 소비는 화석 연료에 크게 의존한다. 2023년 기준 전기의 61% 이상이 석탄·가스·석유 등 화력발전에서 생산됐다. 특히 석탄과 가스는 각각 32%와 27% 이상의 전기를 생산했다. 한국의 전력 절반이 화력발전을 통해 만들어지는 셈이다.나머지 저탄소 및 청정 에너지원은 전기의 38%를 제공한다. 이 중 원자력이 전기의 약 29%를 생성한다. 이에 반해 태양열과 지열, 바이오 연료와 등과 같은 다른 에너지원은 전체적으로 약 8%를 차지한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대로 화력발전이 대거 문을 닫고, 원자력 발전 비중이 줄어들 경우 전력수급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기료 인상 등에도 영향을 끼치는 부작용을 야기한다.또 다른 문제는 지역 격차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지 등 탈(脫)탄소 정책이 지역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책 연구기관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탄소중립의 역설: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지역 격차를 심화시키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당진 1∼4호기를 폐쇄할 경우 한국 국내총생산(GDP)는 2조3349억원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이 밖에 보령 5·6호기, 태안 1~6호기를 폐쇄할 경우 각각 1조5865억원, 1조5522억원 규모의 GDP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아울러 연구원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지역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보령 5·6호기 폐쇄 시,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전국 지니계수’는 기존 0.5106에서 0.5109로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충청 ▲수도권 ▲부산권 ▲대구권 등 다른 광역권 간 격차도 지니계수가 기존 0.4033에서 0.4035로 커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다만 보령시가 속한 충청권 내 지니계수는 폐쇄 이후에도 0.1073로 큰 변화는 없었다.발전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도 해결 과제다. 충남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36년까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정부의 계획으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충남의 경우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전국 59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절반에 가까운 29기가 몰려 있다. 이 가운데 14기가 오는 2036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대상은 ▲2025년 2기(태안) ▲2026년 2기(보령) ▲2028년 1기(태안) ▲2029년 3기(당진·태안) ▲2030년 2기(당진) ▲2032년 2기(태안) ▲2036년 2기(당진) 등이다.산업통상자원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방안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충남 지역 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한 피해로 생산유발 감소액 19조2080억원, 부가가치유발 감소액 7조8300억원으로 조사됐다. 취업유발 감소인원은 1만7647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전문가는 탄소 중립 전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속도가 아닌 EU, 미국 등 유리한 국가의 속도에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화석연료 기관에 의해 성장한 국가인 만큼, 산업 전반에 필요한 전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기관에 의해 성장한 국가다. 화석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대량생산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뤄왔다”며 “탄소 중립 전환에 있어 유리한 국가가 주도하는 대로 따르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탄소 중립을 단기간에 이뤄내야하기 때문에, 기존 목표를 바꾸기 보다 산업 전반에 필요한 사안들을 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에 맞는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4.08.12 12:00

5분 소요
‘성관계 방지’ 조롱받던 도쿄올림픽 ‘골판지 침대’, 파리서도 쓴다

국제 이슈

2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화제를 모았던 ‘골판지 침대’가 2024 파리올림픽 선수촌에서도 사용된다.16일(한국시간) 온라인 매체 인사이드더게임즈에 따르면,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도쿄 올림픽 침대 매트리스 공급 회사인 에어위브와 계약했다.에어위브는 파리 올림픽 선수촌,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선수촌과 미디어빌리지 등 올림픽·패럴림픽 참가자들이 머무는 숙소에 침대와 매트리스 1만6000개를 내년 3~6월 배송할 예정이다. 대회가 끝나면 파리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는 이 침대를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등장한 골판지 침대는 친환경 대회를 추구한 도쿄 올림픽 조직위가 에어위브에 재활용할 수 있또록 주문 제작한 침대다. 침대 프레임을 골판지 재질로 설계하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았다.도쿄올림픽 조직위는 폭 90㎝, 길이 210㎝ 규모의 골판지 침대가 약 2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고 홍보했다. 당시 선수촌에 투숙한 선수들은 골판지가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를 두고 실험하는 영상을 SNS에 올린 바 있다.2명 이상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을 것으로 보여 골판지 침대를 ‘성(性)관계 방지’ 침대로 조롱하는 선수도 있었고, 이스라엘 야구대표 선수 9명은 한 명씩 숫자를 늘려가며 침대에 올라 무너뜨리기에 도전했다가 침대를 결국 박살 낸 뒤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하지만 이번엔 내구성이 강화됐다. 다카오카 무토쿠니 에어위브 사장은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침대 공개 행사에서 직접 침대에 올라 뛰면서 튼튼함을 강조했다. 다카오카 사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견고한 침대로, 메달을 딴 선수 3∼4명이 침대에 올라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골판지 침대는 2년 동안 많은 부분이 발전됐다. 침대 매트리스는 머리와 어깨, 허리, 그리고 다리 세 부분으로 나눠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선수촌에 입촌하는 각 국 선수는 먼저 전신 스캔과 사진 촬영을 하고,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키, 몸무게, 출전 종목을 고려해 선수에게 가장 알맞은 매트리스를 정해준다. 침대는 키 큰 선수들을 위해 220㎝로 늘릴 수 있다.

2023.07.16 15:36

2분 소요
도쿄올림픽이 반영한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도쿄 2020 올림픽에는 20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소속팀과 난민대표팀 등 206개 참가국 선수단 및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북한만 빠졌다. 도쿄 대회엔 북한을 포함해 207개가 참가한 지난 2016년의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팀이 참가했다.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역병에 대응하는 인류의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는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도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피하진 못했다. 경기 외적인 부분뿐 아니라 경기 자체에서도 국제정치의 차가운 바람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나라 이름이다. 이번 대회에는 국내에서 부르는 자기 나라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출전한 팀이 둘이나 있다. 대만과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한 발칸반도 국가 마케도니아다. 대만은 중국의 압박으로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만 참가할 수 있다. 타이페이는 타이베이(臺北)의 광둥(廣東)어 등 남방 계통 발음이다. 영어권에서 베이징을 남방식인 페킹(Peking)으로 표기하던 시절의 유산이다. 대만에서도 표준어를 쓰지만, 과거 남방식으로 쓴 게 영문 표기로 굳어졌다. 중국은 코로나19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한 지난해에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도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만의 참가를 막았다. 인류의 생명과 건강 유지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정치를 앞세운 셈이다.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공식 국명은 물론 대만(臺灣)이라는 통칭도 쓰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이유로 내세운다. ━ 올림픽 모토에 ‘함께’ 추가 이런 상황에서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유연한 아이디어를 냈다. 도쿄올림픽에선 일본 문자 오십음도를 기준으로 입장 순서를 정했다. 물론 첫 입장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로, 둘째는 난민선수단이 맡았다. 그다음부터는 일본어 오십음도 순에 따라 ‘아’로 시작하는 아일랜드·아이슬란드·아제르바이잔·아프가니스탄 등이 입장했다. 오십음도 순의 마지막인 ‘레’로 시작하는 레소토·레바논이 개회식장에 행진해 들어왔다. 그 뒤로 차차기인 2028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유치한 미국과 2024년 파리 대회를 여는 프랑스 선수단이 각각 입장했다. 이번 대회 개최국인 일본이 관례에 따라 가장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들어왔다. 조직위는 공식적으론 ‘차이니즈 타이페이’인 대만을 ‘차’ 항목이 아닌 ‘타’ 항목에 넣는 묘수를 발휘했다. 그래서 103번째로 입장한 ‘대한민국(일본어 발음으로 다이칸민코쿠)’의 다음으로 104번째로 대만이 입장했다. 이를 중계한 NHK 아나운서는 대만을 타이완이라고 발음했다고 DW가 전했다. 대만 뒤를 타지키스탄과 탄자니아가 이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일본어로 추카진민쿄와코쿠)’이라는 명칭으로 110번째로 입장했다.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시절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연방 내 공화국 지위를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면서 1991년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지리적으론 고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이 위치했던 지역이다. 현재 마케도니아인을 비롯한 남슬라브족은 7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발칸 반도로 이주해 그리스 전역까지 퍼졌다. 하지만 남쪽으로 국경을 맞댄 그리스는 슬라브족이 대다수인 나라가 고대 그리스인의 나라인 마케도니아라는 국명을 쓸 수 없다고 끈질기게 항의했다. 결국 ‘옛 유고연방 마케도니아’란 이름을 거쳐 2019년 나라 이름을 공식적으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바꿨고, 지난해엔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이름도 이에 맞춰 변경했다. 이에 따라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북마케도니아(일본어로 키타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와 기니 사이에 입장했다. 러시아연방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는 러시아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이름과 깃발을 앞세우고 대회에 참가했다. 개막식에서도 그렇게 했으며,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메달 집계도 러시아란 이름 대신 ROC로 하고 있다. ROC는 대만이 공식 국호인 중화민국의 약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에선 ‘대만과 친한 일본에서 대회를 치른다고 대만을 그렇게 표시하느냐’ ‘대만이 그렇게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느냐’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러시아가 이런 이름으로 참가하는 것은 도핑 의혹 때문이다. 러시아가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이름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수가 개별적으로만 참가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다. ROC 이름으로 메달을 집계하기도 한다. 이런 희비극 속에서도 도쿄올림픽에선 올림픽의 가치를 추구하는 체육인들의 열정을 볼 수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다소 긴 연설을 하면서 의미있는 내용을 언급했다. 기존의 올림픽 모토인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틴어: Citius, Altius, Fortius 영어: Faster, Higher, Stronger)’를 도쿄 2020년 올림픽부터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그리고 함께(Faster, Higher, Stronger & Together)’로 한 단계 진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바흐 위원장은 지난 3월 10일 열린 제137차 IOC 화상 총회에서 진행한 차기 위원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찬성 93표, 반대 1표, 기권 4표로 연임이 결정되자 올림픽 모토에 ‘함께(Together)’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개회식 연설에서 바흐 위원장은 이를 결의해준 IOC 회원국에 감사를 표시했다. 각 국가나 공동체별 경제·사회·정치의 차이를 넘어 모두 함께한다는 시대정신을 추가한 것이다.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년)이 1894년 제안하고 1924년 IOC가 공식화한 올림픽 모토에 한 세기 만에 글로벌 연대를 강조하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런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종목이 바로 태권도다. 태권도는 남자가 58㎏급(플라이급), 68㎏급(페더급), 80㎏급(웰터급), 80㎏ 이상급(헤비급), 여자가 49㎏, 57㎏급, 67㎏급, 67㎏급 이상급 등 남녀 각각 4개 체급에서 경기를 치른다. 금메달과 은메달 각각 8개, 동메달 16개 등 모두 32개의 메달이 걸려있다. 7월 24~28일 치른 경기에서 모두 21개국이 메달을 나눠 가졌다. 도쿄올림픽에서 추가된 올림픽 모토인 ‘함께’에 가장 걸맞은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 태권도 21개 메달, 12개국서 고루 나눠 가져 태권도는 32개의 메달을 모두 21개국에서 고루 가져갔다. 가장 많은 메달을 가져간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ROC)도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등 모두 4개의 메달을 가져갔을 뿐이다. 금메달을 가져간 나라나 조직은 ROC 외에 크로아티아·세르비아·이탈리아·태국·미국·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뿐이다. ROC 외에는 모두 금메달을 하나씩만 확보했다. 태권도에선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도 평등한 여러 나라의 하나에 불과했다. 미국이 금메달 1개밖에 얻지 못한 것을 비롯해 중국도 동메달 1개에 그쳤다.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대만도 동메달 하나를 얻었다. 영국이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등 3개의 메달을 가져갔다. 대한민국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3개의 메달을 얻었다. 이슬람국가인 우즈베키스탄·요르단·튀니지·이집트·터키도 메달을 따갔다. 뉴욕타임스(NYT)는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뒤로 12개국 이상에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고 소개했다.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와 중동의 요르단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참가 이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따냈다. 요르단에선 당시 첫 금메달이 태권도에서 나오자 3개월 만에 태권도복이 5만 벌 이상 팔렸다고 NYT는 소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출전 이래 첫 올림픽 메달인 동메달을 확보한 종목도 태권도였다. NYT는 우즈베키스탄이 대학에 태권도학과를 설치했으며, 요르단·터키·르완다의 난민 캠프에는 태권도 도장이 설치돼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태권도연맹에는 난민 대표단을 포함해 도쿄올림픽 참가 국가·단체보다 많은 210개 국가와 단체가 소속돼 있다. 도쿄올림픽에도 모두 61개국에서 128명이 참가했다. 태권도 종목에는 난민 올림픽팀 선수 3명도 동참했다. 난민팀의 참가 선수 29명 중 3명이 태권도 선수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압둘라 세디키는 남자 68㎏급에 출전했지만 16강전에서 중국 선수에게 20대 22로 석패했다. 25세인 세디키는 2017년 살해 위협을 피해 벨기에로 이주해 난민으로 살고 있다. 2019년 스페인 오픈에서 은메달, 2020년 네덜란드 오픈에서 동메달을 딴 경력이 있다. 여자 49㎏급에 출전한 디나푸리우네스(29)는 이란 출신으로 2015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푸리우네스는 네덜란드의 망명신청자 센터에 살고 있던 그해 9월 폴란드 오픈에 참가했다. 2017년 터키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태권도 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첫 난민 선수가 됐다. 도쿄올림픽에선 16강전에서 탈락했다. 도쿄올림픽 난민팀 태권도 종목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는 이란 출신의 키미아알리자데흐(23)다. 알리자데흐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란 국가대표로 출전해 57㎏급으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이란 여성이 여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딴 메달이다. 하지만 2020년 1월 이란을 떠나 독일로 떠나 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이란을 떠난 이유에 대해 “나는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많은 여성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아닌 거주지인 독일 대표로 참가하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난민팀에 합류했다. 알리자데흐는 1차전에서 이란의 나히드키아니를, 16강전에서 영국의 제이드 존스를, 4강전에서 중국의 저우리쥔(周俐君)을 각각 눌렀지만 준결승에서 ROC의 타티아나 미미나 선수에게 패배했다. 미미나는 최종적으로 은메달을 땄다. 패자부활전에선 터키의 하티제 큐브라 일균 선수에게 패배했다. 일균 선수는 동메달을 가져갔다. 알리자데흐는 도쿄올림픽에서 메달권에 가장 근접한 난민 선수로 기록됐다. 이란 출신의 유도 선수로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몽골 국가대표로 출전한 사에이드몰라에이(29)는 스포츠 정신 위배에 대한 ‘내부 고발자’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81㎏급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러시아의 하산 할무르자에브 선수에게 1차전에서 고배를 마신 그로선 짜릿한 스포츠 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할무르자에브는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몰라에이는 대진운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절치부심해 2017년 부다페스트 대회에선 은메달을, 2018년 바쿠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대망의 금메달을 각각 땄다. 문제는 그 뒤에 발생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 등에 따르면 2019년 도쿄 유도선수권 대회에서 이란 당국은 그에게 준결승전에서 일부러 패배하도록 강요했다. 결승전에서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 선수를 만나서 시합하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경기대회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맞붙는 걸을 비공식적으로 회피해왔다고 한다. 일부 종목에서 이런 식으로 미리 경기를 포기해 이스라엘 선수와 부딪히는 걸 원천적으로 막아온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권하면 이란에 비난이 쏟아지고 국제스포츠 단체의 조사와 제재를 받을 수 있으니 ‘승부조작’으로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결을 피해온 셈이다. 몰라에이는 지시를 어기고 압박감 속에서 경기에 임했지만 패배해 이스라엘 선수와 겨루지는 못했다. 무키 선수는 2019년 도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몰리에이는 자국 유도협회 등의 조치에 실망해 대회가 끝난 뒤 2년 비자를 받고 독일로 향했다. 그는 2019년 몽골 국적을 얻어 대표선수로 도쿄올림픽에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스라엘 선수와 경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일은 도쿄올림픽에서 이미 두 건이 발생했다. 독일 국제방송인 DW에 따르면 유도에서 알제리의 페티 누린 선수에 이어 수단의 무함마드 압달라술 선수가 줄줄이 이스라엘 선수인 토하르부트불 선수와의 시합을 피하기 위해 기권했다. 부트불 선수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며 반발했지만 누린 선수는 “나는 기권함으로써 알제리를 대표한다”고 말하며 시합을 포기했다. 알제리는 이스라엘과 국교가 없지만, 수단은 지난해 이른바 아브라함 협약에 따라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국가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정부는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무슬림이 상당수인 국민은 여기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선수·지도자와 악수를 하거나 서로 인사하는 이란 스포츠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그 나라의 체제나 이념, 국민 인식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스포츠 정신과는 동떨어진 정치 지향적이거나 민족주의적, 또는 증오를 당연시하는 사회 풍조 때문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더 많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올림픽은 계속 열리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7.31 18:55

8분 소요
2020 도쿄올림픽 바이러스와 전쟁 시작…위기는 여전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연기됐던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패럴림픽’이 1년 연기 끝에 7월 23일 개막했다. 지난해 그리스에서 채화해 1년간 보관됐다가 올해 일본 47개 현을 돌았던 올림픽 성화가 도쿄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불을 밝혔다. 8월 8일까지 열전이 이어질 이번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악재, 일본의 아날로그 방역과 더딘 백신 접종, 준비 부족, 열기 저하 등 숱한 논란 끝에 개막했다는 점에서 어느 올림픽보다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대회는 난민 대표팀을 포함해 전 세계 206개 국가·조직이 동참하고 1만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33개 종목에서 339개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도핑에서 문제가 지적됐던 러시아는 국가 이름으로의 참가가 금지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이름으로 개별 선수가 출전한다. 북한은 지난 4월 6일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을 발표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오지 않으며, 도쿄2020올림픽에 불참하는 유일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 기록됐다. 올림픽이 통째로 연기돼 개최되는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125년 만에 처음이다. 도쿄 2020패럴림픽은 8월 24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열린다. 올림픽 1년 연기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코로나19의 충격은 올림픽 행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막식·폐막식의 네 행사는 ‘전진(MovingForward)’이라는 공통 주제를 담았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TOCOG·이하 조직위)는 “우리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장애물인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 속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지금까지의 대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며 “스포츠가 가진 힘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만들고자 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 코로나19 범유행, 1년 연기 끝에 개막 7월 23일의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주제는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United byEmotion)’였다. 조직위는 “개막식을 통해 우리는 스포츠의 역할과 올림픽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모두 함께 해 온 노력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전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직위는 그 배경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지난 1년을 살아왔고, 2020 도쿄올림픽은 전례 없는 범유행의 한가운데에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8월 8일 치러질 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Worlds we share)’로 잡았다. 조직위는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그 세계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며 “우리는 폐막식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렇게 2020 도쿄올림픽은 인류가 바이러스와 벌이는 싸움을 상징하는 대회가 됐다. 대회 자체가 1년 연기된 것부터, 올림픽 선수단·관계자를 거품 안에 넣는 것처럼 외부와 접촉할 수 없게 분리한다는 ‘버블 방역’ 등 초유의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인류는 이런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결국 개최한 데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하지 못한 방역과 골판지 침대 등 부족한 대회 준비 등으로 지적이 끊임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도쿄올림픽은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극복의 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 말고도 올림픽을 위협하는 요인은 적지 않다. 국제 분쟁과 갈등이 그것이다. 올림픽 헌장에는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상일뿐 현실은 올림픽이 열린다고 분쟁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분쟁 감시·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R)의 로버트 맬리 전 회장은 ICR 웹사이트에서 기고한 글에서 세계 10대 분쟁·위기·긴장 지역을 제시했다. 아프가니스탄·예멘·에티오피아·부르키나파소·리비아·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한반도·카슈미르·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 등이다. 이미 수시로 국제뉴스에 등장해온 지역들이다. 미국외교협회(CFR)는 현재 글로벌 분쟁·갈등·위기 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소개했다. CRR은 전 세계 갈등 지역을 ‘위기 상황’ ‘중대 상황’ ‘제한적 상황’으로 세분했다. 국제적 분쟁이나 내전, 갈등의 고조, 위기나 불안의 지역 또는 글로벌 확대 등 다양한 상황을 고루 반영했다. 미국 국익에 주는 영향을 기준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상황의 심각도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 올림픽 시작됐지만, 글로벌 분쟁·갈등·위기는 심화 CFR은 위기 상황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남중국해 영토 분쟁, 동중국해 긴장, 북한 위기, 미국과 이란의 대치의 다섯 가지를 꼽았다. 글로벌 5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가 중국과 관련이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중국이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벌이는 섬과 바다의 영유권 다툼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7월 중국이 이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인공섬을 건설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마이동풍이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앞세워 여기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이기도 하다. 이 바다는 한국과 일본에도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이기도 하다. 동중국해 분쟁은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와 관련한 갈등을 가리킨다. 2020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바다는 이처럼 긴장 상황이다. CFR은 중대 상황으로는 12가지를 추렸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와 레바논의 정치적 불안정, 이집트의 불안정, 터키와 쿠르드 무장조직의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절반이 중동에 집중됐다. 지리적으로 중동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이슬람권인 파키스탄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활동과 인도와의 분쟁 등 2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았다. 남미는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범죄와의 전쟁, 베네수엘라의 불안정 등 2가지가 제시됐다. 유럽에선 러시아가 개입한 우크라이나 분쟁이, 아프리카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학생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하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의 폭력이 각각 꼽혔다. 미국의 국익에 대한 영향을 제한적이지만 현지 주민의 고통은 상당한 분쟁·갈등도 10가지가 거론됐다. 중동에선 리비아 내전과 예멘 내전(국제전으로 비화)이 꼽혔다. 유럽에선 카프카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벌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들어갔다. 아시아에선 미얀마의 로힝야 위기가 제시됐다. 아프리카에선 말리 지역의 불안정,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민주콩고공화국(DRC)의 폭력, 소말리아 극단주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알샤바브의 발호, 에티오피아 분쟁, 남수단 내전이 6가지가 포함됐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분쟁이 벌어지거나 무장단체 조직원이 주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일시 총성이 멎었어도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팽배한 곳도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상황에도 세계 곳곳에 위기가 상존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살상이 벌어지지 모르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분쟁이나 갈등과 관련한 이런 지적들은 올림픽이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올림픽 헌장은 인류의 이상을 보여주는 문구일 뿐이며, 현실에선 여전히 갈등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고대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사실을 되새김질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고대 올림픽은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력과 국력이 좌우하는 근육질 행사였다. 당연히 이상은 훌륭했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1000년 이상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신을 모시는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경기를 치렀다. 엘리스에는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이 올림픽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 국내와 국제 정치 대결장이었던 올림픽 하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도 현실은 종교나 도덕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 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창과 방패를 들고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장한 스파르타 전사들을 야단치고 벌금을 받아내기란 어지간한 배짱으론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보다 힘이 좌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국제정치는 인간 본성의 하나인 지배욕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대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 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패배한 도시는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올림픽에서도 문제가 되는 아마추어리즘이 고대 올림픽에서도 역시 문제가 됐다. 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두둑한 상금과 격려금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근대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우승자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연애와 결혼은 물론 경제활동과 심지어 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고려해 축구나 야구, 골프 등 여러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마추어 선수라고 돈과 거리가 먼 가난한 스포츠 수도승은 아니다. 그래도 종교행사였으니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수시로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 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사례를 받고 움직였을 것이다.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고대 올림픽도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더욱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은 이러한 부정이나 돈 때문이 아니다. 고대 올림픽은 종교로 시작해 종교로 막을 내렸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은 게 계기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니 이교도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은 폐지됐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지면서 하나의 문화가 단절됐다. 이런 고대 이집트의 비극과 비교하면 고대 그리스 세계의 고대 올림픽 폐지는 그나마 평화로운 편이었다. 도쿄올림픽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이런 형편에도 IOC가 중계료 수입 때문에 대회를 강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개인의 안전과 명예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로 선수들의 참가와 불참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도전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지 세계가 도쿄를 주시하고 있다. 7월 23일 개막해 8월 8일까지 17일동안 열전이 벌어질 도쿄 2020 올림픽은 인류가 얼마나 더 성숙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축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7.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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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일본의 올림픽 경제·정치학] ‘사면초가’ 도쿄 올림픽 강행하는 속내
금전 손실 줄이고 스가 정권 지지 높이기… 전범국 흑역사 가릴 수 있을까 오는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은 어떤 대회로 기록될까.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조직위)는 3월 25일 후쿠시마(福島)현 나라하마치의 축구시설인 J빌리지에서 성화 봉송을 시작했다. 올림픽·패럴림픽은 통상 성화 봉송을 계기로 준비 속도가 빨라지고 대회 분위기가 확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 등으로 분위기가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조직위는 이날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 등 16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발 기념행사를 열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출발 행사를 간소화하고 무관중으로 열었다지만, 2021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총리의 참석도 없는 서막을 올린 셈이다.성화 봉송 행사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7월 23일까지 121일 동안 일본 전역에서 진행된다. 약 1만 명의 봉송 주자가 일본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를 모두 달리게 된다. 문제는 코로나다. 일본 정부와 조직위는 성화 봉송 행사가 코로나19 확산의 계기가 되지 않도록 길거리 밀집 응원이나 거주지를 벗어난 원정 응원 등을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심지어 성화 통과를 보려고 인파가 몰리면 해당 장소를 통과하지 않고 다음 장소로 넘어가는 고육책까지 동원했다. 조직위는 성화 봉송을 직접 보는 대신 인터넷 생중계로 볼 것을 권고할 정도다. 성화 봉송 경비를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들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 협조 표지판을 목에 걸고 나왔다. 일본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성화 봉송 장소부터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치르는 이유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성화 봉송 출발지인 J빌리지는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쓰나미로 전력시설이 물에 잠기면서 발생했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초기에 수습 작업을 지휘했던 거점이었다. 도쿄 올림픽은 일본에선 인류의 대제전의 의미보다 2011년 3월 발생했던 동일본대지진의 아픔을 털어내고 새출발하는 ‘부흥 올림픽’의 의미가 커 보인다. 성화 봉송 장소부터 이를 부각하기 위해 정한 셈이다. 도쿄 올림픽의 정치학이다. ━ 올림픽 코앞인데 확진자 증가세, 백신 접종 지지부진 성화의 첫 봉송 주자 선정도 마찬가지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 축구 여자 월드컵 독일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대표팀 ‘나데시코 재팬’의 전 멤버들이 맡았다. 당시 ‘나데시코 재팬’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비극의 현장에서, ‘나데시코 재팬’의 전 멤버들이 성화 봉송을 시작한 것은 도쿄 올림픽을 보는 일본인과 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성화 봉송은 개인이 아니라, 이와시미즈 아즈사(岩淸水梓) 등 16명의 선수가 함께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묻어난다.도쿄 올림픽 성화는 이 대회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성화는 지난해 3월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돼 특별수송기 편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지난해 3월 26일부터 성화 봉송 행사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이틀 전에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면서 1년간 대기해야 했다. 결국 성화는 일본에 도착한 지 1년 만에 봉송에 들어가는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일본 정부는 성화 봉송 사흘 전인 3월 22일 코로나19로 인한 수도권의 긴급 사태를 해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코로나19 하루 확진자는 긴급사태 해제 당일 816명이었으나 다음날 1503명, 하루가 지나자 1918명으로 뛰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인 셈이다. 올해 대회가 코로나19를 이기는 올림픽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참고로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일본의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는 3월 21일 1480명, 22일 1143명, 23일 978명, 24일 1289명이다. 일본은 백신 접종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아 대회 이전에 집단 면역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블룸버그 백신 트랙커에 따르면 일본은 3월 25일까지 77만5122 회분이 접종됐으며 이는 전체 인구 1억2650만 명의 0.3%에 해당하는 횟수다. 전체 인구에서 1회 이상 접종자의 비율은 0.6%, 2회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비율은 0.1% 미만이다. 하루 접종 횟수는 38만60회에 불과하다.영국이 지금까지 3176만 회분을 접종해 전체 인구의 43.4%가 1회 이상, 4.2%가 2회 완전 접종을 마친 것과 비교된다. 영국은 하루 59만3000 회분을 접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억3330만 회분을 접종하고 전체 인구의 26.3%가 1회 이상, 14.3%가 2회 완전 접종을 마쳤다. 미국은 하루 250만 회분 이상을 접종 중이다. 전체 인구의 9.6%가 1회 이상, 4.2%가 2회 완전 접종을 완료한 유럽연합(EU)과 비교해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EU는 하루 128만 회분 이상을 접종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접종을 계속한다면 백신으로 안심 올림픽을 치르기가 힘들다. ━ 해외 무관중 경기로 진행…경제 손실 갈수록 눈덩이 이에 앞서 성화 봉송 닷새 전인 3월 20일 일본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 대회 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3월 20일 5자 화상회의를 열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에 해외 관중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대회 취소를 피하기 위한 차선책이자 또 하나의 고육지책이다.일본 관객의 제한 여부는 4월 말까지로 결정을 미뤘다. 해외 관중은 포기하더라도 일본에서의 올림픽 열기는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드러난다. 일본 언론들은 당국이 ‘일본 내국인은 관객 수 제한 없이 수용’ ‘입장 관중 50% 제한’ ‘무관중 경기’의 세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며 지금으로선 50% 제한 방안의 채택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도했다.이번 ‘해외 무관중 경기’ 결정에 따라 해외에 판매한 올림픽·패럴림픽 입장권 63만 장은 환불할 예정이다. 입장권과 함께 판매된 항공권이나 숙박요금 등을 포함하면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이번 결정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도쿄 올림픽은 치르겠다는 선언이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관중 제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따져보자. 요미우리 신문 등에 따르면 해외 관중을 아예 포기하고, 가장 유력한 예상대로 일본 국내 관중은 50%로 줄인다는 것을 상정했을 때 경제적 손실은 약 1조6258억 엔(약 16조 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에 대한 마이너스 영향은 약 2000억 엔(약 2조790억원)으로 계산됐다. 일본 스포츠 경제 분야의 권위자인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關西)대 명예교수(이론경제학)의 추산이다. ━ 스가 지지율 추락, 손해 증가 우려해 행사 추진 강행 원래 2020년 개최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코로나19로 1년간 연기되면서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대회가 1년 연기되면서 조직위원회를 1년간 더 운영해야 하며 이에 따른 인건비와 활동비, 그리고 경기장 대여에 따른 비용이 추가된다. 여기에 숙고 위약금도 필요하다. 니케이 등에 따르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비용 추가분을 계산한 결과 최대 3000억 엔(약 3조1185억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책 비용도 추가될 수 있다.도쿄도와 올림픽 조직위원회사 2019년 12월 발표했던 예산안 제4판에 따르면 2020년 대회가 열렸을 경우 전체 경비는 1조3500억 엔(약 14조3000억원)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3000억 엔이 추가되면 2021년 도쿄 올림픽은 전체적으로 1조6500억 엔(약 17조1500억원)의 비용이 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무관중에 일본 관객 50%로 대회를 치를 경우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다.물론 이는 올림픽을 취소하면서 생길 손실보다는 적다. 미야모토 교수가 지난해 3월에 내놓은 추산에 의하면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면 4조5151억 엔(약 48조1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올림픽을 취소하면 48조원, 해외 무관중으로 치르면 16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해외 무관중 대회에 따른 손실도 상당하지만 대회 취소보다는 손실이 적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일부에선 스가 총리가 올림픽 강행으로 지지율 반등을 노린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치른다고 일본의 부흥에 도움이 되고 스가의 리더십을 인정해 지지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하지만 올림픽을 포기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라는 브랜드가 입을 타격은 상당하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이유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행정부의 능력이나 통찰력, 그리고 의지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코로나19를 이길 백신 접종에서 경이적인 속도를 낸 이스라엘이라면 비교적 문제없이 대회를 치렀을 수 있다. ━ 중일전쟁 벌이느라 1940년 올림픽 스스로 반납하기도 일본이 이번 도쿄 올림픽을 취소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오래 전 침략의 역사 속에서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56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열리는 역사적인 대회다. 그런데 사실 이번 행사는 도쿄가 역대 2번째가 아니라 3번째로 유치한 대회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이어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결정했다. 침략 전쟁을 일삼던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은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자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핑계로 올림픽을 포기, 반납한 사례는 도쿄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일본으로선 부끄러운 일이다.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점철됐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중국항일전쟁사』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 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기록했다.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 명이 숨졌다.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년 11월 30일~1940년 3월 13일)을 벌이면서 이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이 전쟁으로 중지된 두 번째 사례다.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것이 첫 사례다. 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리카계 선수인 제시 오언스(1913~1980년)가 100m, 200m, 400, 계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따서 4관왕에 오르면서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1944년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런던은 종전 뒤 처음 열린 1948년 여름 올림픽을 개최해 평화와 화합의 제전으로 이끌었다. 그 뒤 인류는 올림픽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 반납은 일본 제국주의가 인류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느라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을 포기한 흑역사다. 일본이 이번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하거나 대회를 포기하면 이런 흑역사가 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일본으로선 올해 도쿄 올림픽 포기가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1.03.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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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연기] 역대 올림픽은 순탄하지 않았다

국제 이슈

전쟁·냉전으로 취소·보이콧… 반칙·승부조작은 고대 올림픽도 마찬가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으로 인한 글로벌 혼란이 급기야 2020년 도쿄(東京) 올림픽·패럴림픽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3월 24일 45분간 통화하면서 연기에 합의했으며 IOC는 이날 즉시 임시 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연기를 승인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먼저 연기를 제안하고, 바흐 위원장은 “100% 동의한다”고 응답하면서 담판이 이뤄졌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연내 개최를 포기하고 2021년 여름까지는 개최하며, 그리스에서 채화돼 일본으로 옮긴 올림픽 성화는 일본이 보관하고 시기를 미뤘음에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2020’이라는 대회 명칭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는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성화 릴레이도 연기됐다.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 안전한 곳이 없어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언제 꺾일지 알 수 없어 올해 하반기로 옮기는 방안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선수의 안전과 관중의 참여, 그리고 전 세계적인 흥행을 위해선 개최 시기를 한 해 뒤로 옮기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 도쿄 올림픽 1년 연기 후폭풍 만만치 않아 결국 개최 시기를 1년 연기했지만 뒤처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내년 비슷한 시기에 열릴 예정인 다른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 시기 조정도 문제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2021년 여름과 초가을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수영세계선수권 대회와 고베에서 장애인육상 세계선수권 대회가 예정돼 있으며, 미국에선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대회 연기에 따른 행정 처리는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가장 먼저 생각할 대상이 경기장이다. 조직위원회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위해 33개의 경기장을 포함해 진행 공간 등 모두 43개의 장소를 확보했는데, 내년에 이를 다시 확보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내년에 다른 이용이 이미 예약돼 있는 경우도 있어 이를 연기하거나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임대 재협상을 해야 한다.선수촌도 문제다. 새로 건설한 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선수촌으로 사용한 뒤 개보수를 거쳐 분양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연기로 사달이 나게 생겼다. 부동산 인도시기를 1년 뒤로 늦출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위원회가 보상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위원회도 활동이 1년간 연장되면서 자칫 ‘돈 먹는 하마’가 될 처지다. 인건비는 물론 사무실 임대료도 1년 치가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조직위원회는 IOC와 각국 올림픽위원회에서 도쿄를 찾은 VIP와 직원들을 위해 가계약한 경기장 주변의 숙소 4만6000개의 취소도 문제다. 조직위원회는 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일반인은 대회 기간 중 예약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연기로 이 많은 물량을 모두 취소하고 내년으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약금을 둘러싼 분쟁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올해 여름 도쿄와 주변 지역에는 이들 숙박 물량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급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미 500만 장을 판매한 입장권도 문제다. 환불과정도 만만치 않으며, 이를 1년 뒤에 쓸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쉽지 않다. 확보해둔 임대버스 2000대의 계약을 모두 취소하고 내년에 이 정도 물량을 다시 모아 계약하는 일도 골칫거리다. 1만명 이상의 경비 인력, 11만명의 자원봉사자를 일단 해산하고 내년에 다시 모으거나, 활동 시기를 내년으로 조정하는 일도 과중한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 2차 대전 당시엔 ‘정치 선전장’되기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한번 정한 올림픽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건을 겪는 데 따른 심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올림픽 연기는 근대 올림픽 도입 뒤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취소나 반쪽 개최, 선수 학살 등 비극은 왕왕 있어왔다.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은 올림픽 반납과 취소의 전력이 있다. 과거 침략전쟁을 벌이느라 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한 전력이 새삼스럽게 지적된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두 번째로 같은 도시에서 열린다. 그런데 사실은 도쿄 올림픽 유치는 이번에 세 번째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다음인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군국주의 일본은 1937년 침략전쟁인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스스로 결정했다. 한 나라가 유치했던 올림픽을 자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을 이유로 스스로 포기하고 반납한 사례는 1940년 도쿄 올림픽이 유일하다.이렇게 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년 11월 30일~40년 3월 13일)을 벌어지면서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근대올림픽을 전쟁으로 중지한 것은 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아프리카계 제시 오언스(1913~1980년) 선수가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고 4관왕에 오르면서 히틀러의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1940년 도쿄 또는 핼싱키 올림픽에 이어 1944년으로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올림픽은 종전 뒤인 1948년 런던이 여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비로소 재개됐다.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이어졌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기록했다. 동아시아를 넘어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 올림픽 참가마저 갈라놓은 냉전시대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숨졌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침략전쟁 과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잃기도 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여름 올림픽에서 마술경기의 일종인 장애물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 다케이치(1902~1945년 3월 22일) 선수다. 니시 선수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이오지마 전투(1945년 2월 19일~3월 26일)에서 전차 제26연대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인류애에 입각한 평화와 화합의 제전을 버리고 국가주의를 내세운 침략전쟁을 벌인 대가였다.올림픽은 정치 문제를 내건 보이콧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27개국이 보이콧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당시 뉴질랜드가 반인륜적인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의 분리거주) 정책 때문에 국제적인 제재를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경기를 치렀는데, IOC가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하지 않자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와 이라크 등이 대회를 보이콧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92개국 6084명이 참가했으며 29개국이 대회를 보이콧했다.몬트리올 올림픽 보이콧 사건은 그 다음에 열린 1980년 모스크바 여름 올림픽에 비하면 약과였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1956년 이후 가장 적은 80개국 5179명 참가에 그친 반쪽 올림픽이었다. 소련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보이콧을 주도했다. 그 결과 서방 진영을 중심으로 한 66개국이 올림픽에 불참했다. 한국도 포함됐다. 13개국이 참가는 했지만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앞세우고 입장했으며 3개국은 국가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들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89년 2월까지 이어지면서 소련을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투입한 이 전쟁으로 소련은 재정문제에 봉착했으며 고전적 공산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웠던 소련을 몰락으로 이끄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공교롭게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다음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었다. 이번엔 소련이 보복에 나서 보이콧에 나섰다. 하지만 동조 국가는 소련과 북한,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등 14개국에 불과했다.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140개국 6829명이 참가했다.1972년 뮌헨 올림픽은 72개국 717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지만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다. 올림픽 기간 중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인 ‘검은 9월단’ 무장대원 11명이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하다 선수 전원을 살해한 뮌헨 참사가 벌어졌다. 인질극이 시작되면서 일시 중단됐던 경기는 사건이 종료되면서 재개돼 폐막식까지 마쳤다. 이 사건으로 올림픽기가 사상 처음으로 조기로 게양됐으며 이스라엘 국가도 조기로 게양됐다. 이스라엘의 대외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는 테러 관련자를 보복 살해하는 ‘신의 분노 작전’을 펼쳐 20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의 분노 작전은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의 모티브가 됐다.뮌헨 참사를 겪은 뒤 올림픽의 보안과 경비가 강화됐으며 안전 올림픽이 강조됐다. 몬트리올, 모스크바,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보이콧을 겪은 뒤 국제사회는 올림픽 보이콧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않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동서 양 진영이 참가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보이콧은 사라지고 올림픽은 더 이상 정치로 얼룩지지 않았다. 인류는 올림픽의 비극으로부터 그나마 교훈을 얻었던 셈이다. ━ 연애·결혼·정치권력 얻은 고대 올림픽 우승자들 하지만 고대 올림픽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힘이 좌우하는 우락부락한 행사였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각각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했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하지만 현실은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고대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가 낮아졌다.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상금과 격려금으로 평생 먹을 재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올림픽 우승자가 인기를 얻어 연애와 결혼은 물론 정치에서도 힘을 얻는 게 일반적이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감안해 축구 등 일부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하는 이유다. 하긴 아마추어 선수하고 해도 돈과 거리가 먼 수도승은 아니지만 말이다.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 아래에서 경기를 치렀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도 종교 때문이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으면서 이교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을 폐지했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졌다.‘그래도 종교행사였던 만큼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다반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돈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다양한 측면에서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다.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를 계기로 더욱 성숙한 대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일본 때문에 전쟁 피해를 입었던 이웃나라들이 ‘침략의 상징’으로 여기는 욱일기를 자국민의 응원도구로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황당한 일부터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인류가 코로나19라는 재앙 앞에 힘을 합쳐 대응하면서 그 정도 교훈은 얻어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 정신인 평화와 화합을 제대로 이루려면 말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3.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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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연기 결정, 아베의 셈법] 경제적 피해 아프지만, 분위기 반전시 정치적 자산

정책이슈

국제 여론 악화에 1년 연기… 개최 후 내수 살면 총재선거 해볼만 “인간은 길을 잃었을 때 더 빨리 뛰어가는 유일한 동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의 말마따나 사람은 일이 계획대로 안 풀리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내면의 불안감을 행동으로 드러낸다.최근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며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음에도 도쿄올림픽을 일정대로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와서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예정대로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준비를 진행해 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툐올림픽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국제사회 여론이 연기 쪽으로 기울자 IOC는 올림픽 개최를 연기하기로 입장을 선회했고, 아베 총리도 “(IOC가) 완전한 형태로 실시하겠다는 방침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이라며 고집을 꺾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관중 경기는 상상하지 못한다. 도쿄올림픽 개최는 1년 연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우회적 압박도 영향을 끼쳤다. 아베 총리로서는 뼈 아픈 일이다. 도쿄올림픽은 단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정치·경제적 빅 이벤트였기 때문이다.아베 총리는 ‘선거의 아베’로 불린다. 2012년 민주당을 밀어내고 두 번째 총리에 오른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치른 다섯 차례 선거(중의원 두 번, 참의원 세 번)에서 모두 승리했다. 올해 9년 차에 접어든 아베 총리는 이미 지난해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아베 총리가 2012년 취임 때부터 내건 슬로건은 ‘부흥’이었다. 1945년 패전한 국가의 멍에를 벗는 한편 1990년대 경제 버블 붕괴로 맞이한 잃어버린 20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을 지우고 다시 일어서자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시간의 역순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당장 시급한 동일본 대지진 문제 해결과 후쿠시마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동일본대지진 복구에 2011∼15년도 25조 엔(약 283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다.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심각해 근본적 문제 해결에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겠다는 입장이나 국제 사회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해 의도적으로 태풍 하기비스에 후쿠시마 원전폐기물 자루를 유실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낳고 있다. ━ 대지진-잃어버린20년-패전국 ‘트라우마’ 해소 천착 일본 정부는 더불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해외에 알리는 한편 수출을 재개하는 등 동일본 대지진 이전으로 회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규제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부흥 정책을 가로막는다고 판단해서다.아베 총리는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취임한 이듬해인 2013년부터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무제한 양적 완화 방식에 나섰다. 아베 총리가 취임할 당시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요국들이 돈을 풀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근린국 궁핍화’ 경쟁이 치열했다. 아베 총리도 이에 동참해 일본중앙은행(BOJ)을 통해 장기 국채 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일본은행(BOJ)이 채권과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해 시장에 자금을 직접 공급했다.또 실물 부문에서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는 한편 가정주부들의 사회진출 유도, 부업 허용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일본이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은 성별과 연령,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일하는 ‘1억 총활약 사회’가 목표다.이와 함께 인문계 인원을 감축하고 현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이공계를 늘리는 대학 개혁도 단행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교육 정책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등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2014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내수 진작에도 나섰다. 더불어 확장적 재정정책과 부채 감축을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해 세수 확대에도 나섰다. ‘제3의 화살’로 불리는 이 같은 성장전략의 마지막에는 올림픽을 통한 내수 진작이 있다.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국가 부흥 프로젝트의 백미는 개헌을 통해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는 일이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 규정을 풀어냄으로써 패전국 일본을 보통국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여야의 틀을 넘어 활발히 논의해 레이와(令和) 시대에 맞은 헌법 개정 원안 마련을 가속하겠다. 임기 중에 내 손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초 연두 소감에서도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 나라의 형태를 중심에 두고 큰 개혁을 추진하겠다. 그 앞에 있는 것이 헌법개정이다”이라며 개헌을 일본의 새해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가 연두 소감에서 개헌을 언급한 것은 2014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아베 총리로서는 올해 도쿄올림픽은 동일본 대지진을 극복하고, 경제 부흥의 성과를 세계에 알리는 한편 보통국가로 나선다는 일종의 세러머니다. 내부적으로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재현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중장년층 표심을 사로잡아 정치적 자산을 키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이를 발판 삼아 올 8월 이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다시 해 정권을 유지하는 한편 아베 총리의 취임 10년 차인 2021년 개헌에 나설 것이란 게 일본 정가의 대체적 전망이었다. 자민당은 지난해 말 임시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 내년 총리 10년차, 올림픽 이후 개헌 가능성 아베 총리는 사실상 올해 헌법 개정이 어려워져 내년에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베 총리의 당 총재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이 때문에 올해 안에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으면 권력 누수(레임덕)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지난달 요미우리신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소속 정치인 중 차기 총리로 선호하는 인물 1위는 25%를 얻은 이시바 시게루가 꼽혔다. 이에 비해 아베 총리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로 언급한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5%의 선호도를 얻는 데 그쳤다.아베 총리로서는 자신의 임기 연장 구상을 추진하지 않고 퇴임하면 후임 자민당 총재가 다음 총선을 지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베 총리는 본인 임기 때 개헌을 성사시키는 한편 정치적 자산을 승계하기 위한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중의원 해산 시점을 11월 14~15일 여는 추수감사 제사 ‘다이조사이(大嘗祭)’가 끝난 뒤로 예상하기도 한다. 올해 다이조사이가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후 처음 갖는 행사라서다.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을 일정대로 열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은 경제적 고려도 있다. 도쿄올림픽이 취소되거나 일정대로 열리지 않으면 수조~수십조 원대 경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일본 간사이대 수리경제학 명예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1년 연기하면 6400억 엔(약 7조2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구체적으로는 대회운영비와 입장료, TV 광고비 등이 사라지고 관광객 유입 등의 2차 효과가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또 선수 재선발 및 홍보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올림픽이 취소되면 소비지출과 관광 진흥, 문화활동 등 효과가 사라져 4조5151억 엔(약 51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일본 국내총생산(GDP) 4조9709억 달러의 10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연기해도 GDP의 0.7~1%가량의 피해가 생긴다. 분양·임대된 선수촌 아파트 입주 지연, 전철 역사 변경 등에 따른 경제 손실과 올림픽 관련 물자 납품, 인력 채용이 사라져 소득과 고용에도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나가하마 도시히로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도쿄올림픽 취소 시 2020년 한 해에만 발생하는 경제 손실이 3조2000억 엔(약 36조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또 도쿄올림픽 준비를 위한 경기장·선수촌 등 건설 경기 부양으로 그간 경제성장률을 떠받쳤고, 2018~19년 소비를 진작한 점을 고려하면 경제 충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소비세 인상으로 내수가 위축된 상황이라 소비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올림픽 선수촌에서 수소에너지를 사용하는 구상을 내놓는 등 올림픽은 신기술과 서비스를 세계에 선보이는 귀중한 기회”라며 “연기 혹은 취소된다면 신기술 보급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특히 올림픽 개최를 위해 쓴 여태까지 쓴 돈도 모두 매몰 비용이 될 수 있다. 도쿄올림픽 주최 측은 개최 비용을 총 1조3500억 엔(약 15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도쿄도가 5970억 엔, 일본 올림픽조직위원회가 6030억 엔, 중앙정부가 1500억 엔씩 각각 비용을 부담한다. ━ 내년 임기말에 올림픽 개최하면 오히려 지지율 상승 그러나 간접적으로 발생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일본 정부는 2013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된 이후 2018년까지 1조6000억 엔을 지출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AFP는 보도했다. 올림픽 후원사인 일본 대기업 도요타·브리지스톤·파나소닉 등도 3480억 엔을 후원 행사 등에 사용했다. 이는 IOC와 체결한 올림픽 후원금과는 별도로 쓴 돈이다.이 같은 피해예상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확산과 국제사회의 비판으로 국내 여론까지 올림픽 연기로 기울자 아베 총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을 한 셈이다. 요미우리신문 설문조사에서 일본 국민 69%가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연기하는 쪽이 좋다’는 의견을 냈고, ‘예정대로 개최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은 17%에 그쳤다.그러나 아베 총리로서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없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와 10월 중의원 임기 만료를 앞둔 7~8월께 올림픽을 열면 지지율 상승이 있을 거란 관측에서다. 일본 경제산업성 출신 정치경제평론가 고가 시게아키는 주간 아사히 기고에서 “올림픽 분위기에 지지율이 오르면 아베 총리가 기세를 올려 당 총재 4선에 도전하거나 차기 총재를 지명하는 킹메이커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아베 총리도 국내 연기 여론의 상승과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도쿄올림픽 개최 연기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쿄올림픽 연기 피해 예상메인프레스센터·국제방송센터 임대 보상선수촌 확보 및 임대·분양인과의 갈등조직위원회 인력 유지 및 자원봉사자 재편올림픽 입장권 수입 확보내수 부진고용 악화관광객 유입 감소TV 광고비 위축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2020.03.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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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많은 올림픽의 골프 역사] 유명 선수 보이콧에 올림픽 종목 탈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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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가 112년(여자 기준으론 116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골프를 즐기는 나라가 늘고 골프 인구도 증가하면서다. 다만 올림픽 종목으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만 한시적으로 열리기 때문이다.이 같은 우려는 세계적인 남자 선수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나왔다. 세계 골프랭킹 1위인 제이슨 데이부터 4위 로리 매킬로이까지 빅4가 빠졌다. 출전 가능한 랭킹 상위권 60명 중에 호주의 애덤 스콧, 마크 레시먼이나 남아공의 루이 웨스트호이젠, 찰 슈웨첼과 같은 인기 선수 20여명이 출전을 고사했다.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는 “지카바이러스 때문에 출전하기 두렵다”면서 “올림픽에서도 육상·수영·다이빙이나 보지 골프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시니컬하게 말해 올림픽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지카바이러스를 불참 이유로 든다. 그러나 실은 1년 내내 빡빡하게 돌아가는 투어 스케줄을 잘라서 상금도 없는 대회에 출전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내년에 골프의 정식 종목 유지 여부를 다시 고민하겠다”고 경고했다.골프와 올림픽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올림픽에서 골프는 공식적으로는 두 번 열렸다. 처음은 남녀 선수가 모두 출전한 1900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었고, 두 번째는 남자 선수만 출전한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이었다. 1896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 시작된 올림픽의 당시 위상은 오늘날처럼 세계 스포츠인들이 열광하는 축제가 아니었다. 올림픽을 주창한 쿠베르텡 남작은 처음부터 골프도 포함시키려 했으나, 아쉽게도 당시 아테네에 골프장이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치러지지 못했다. ━ 투어 스케줄 빡빡해 올림픽 출전 꺼려 가장 오랜 골프대회인 디오픈은 1860년에 시작되었고, 미국의 최대 메이저인 US오픈 역시 올림픽보다 한 해 앞서는 1895년에 시작했으니 골프는 자존심을 내세울 만했다. 그러나 당시 올림픽에서 골프는 주요 종목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두 번의 골프대회 모두 세계박람회의 부속 이벤트처럼 열렸다. 파리에서는 오늘날 엑스포 개념인 파리 만국박람회와 함께 열렸고,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루이지애나상품박람회와 더불어 개최됐다. 미국이 루이지애나주를 획득한 100주년을 기념한 루이지애나 박람회는 올림픽보다도 더 큰 이벤트였다.1900년의 파리 올림픽의 대회 방식은 지금과는 달랐다. 파리 북쪽 80마일 거리의 꼼파니엔 골프장에서 남자 12명, 여자 10명이 출전해 열렸다. 남자부는 10월 2일 하루 36홀 스트로크 플레이를 펼쳤는데, 1895년 US아마추어선수권에서 준우승을 한 미국의 찰스 샌드가 82-85타로 스코틀랜드의 월터 루터포드를 한 타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영국의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동메달을 차지했다.다음 날은 여자부 경기가 9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치러져 역시 미국의 마가렛 에보트가 47타로 금메달을 땄고, 폴린 휘트(은메달), 다리아 프렛(동메달)까지 미국이 휩쓸었다.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난 에보트는 모친(7위)과 함께 모녀가 출전했고, 트로피로는 도자기를 받았다. 애석하게도 에보트는 1955년 78세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올림픽에서 우승한 첫 번째 미국인이란 사실조차 몰랐다. 이벤트처럼 열린 이 대회는 여성이 출전한 첫 공식 골프 경기로 기록된다. 그래서 올해 올림픽에서 여자 부문은 116년 만에 재개되는 대회가 된다. 대회 3일째인 4일에는 18홀 스트로크 경기가 핸디캡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올림픽과는 상관없는 관계자들의 이벤트 경기였다. 이날 우승자는 워너람버트 제약의 대표인 알버트 람버트였다. 람버트는 4년 후 올림픽에는 정식 선수로 다시 출전한 아마추어 고수였다.4년 후인 1904년에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글랜애코골프클럽에서 열렸다. 캐나다인 3명에 미국인 74명으로 북미 대륙의 남자 선수들만 출전했다. 정식 경기는 개인·단체전 두 개였으나 퍼팅 컨테스트 등 다양한 이벤트 시합도 함께 열렸다. 9월 17일 열린 팀매치에서는 10명으로 구성된 6개 팀이 출전했는데 미국의 웨스턴골프협회가 금메달을 차지했다.36홀 매치플레이로 열린 개인전은 9월 19일 월요일부터 24일 토요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캐나다의 43세 조지 리온이 스무살의 미국 골퍼 핸리 C.이건을 2홀 남기고 3홀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온은 화재보험사 세일즈맨으로 38세에 골프를 시작했으나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우승했다. 나중에 캐나다선수권에서 5번이나 우승했다. 이건은 금메달은 놓쳤으나 이듬해인 1905년 US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했고, 나중에 코스 설계가가 됐다. 동메달은 미국의 버트 메키니와 프랑크 뉴튼이 차지했다.1908년 영국 런던 올림픽에서는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컸지만 결국 자존심 대결 탓에 무산됐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장인 데스보로 경이 대회를 주선했고 메달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골프계는 스코틀랜드의 영국 왕립골프협회(R&A)가 주도하고 있었다. 올림픽위원회는 영국의 모든 골프 단체에 올림픽에 출전해줄 것을 요청하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골프룰을 관장하는 R&A는 이를 받은 적이 없다고 우기면서 처음부터 신경전이 불꽃 튀었다.경기 진행과 종목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R&A는 자신들이 주도하지 않는 국제 경기여서 매사에 시큰둥했다. 반면 시간에 쫓긴 올림픽위원회는 잉글랜드의 로열세인트조지스 등 3개 코스에서 3일 간 36홀씩 스트로크 경기로 대회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팀경기는 출전 선수의 타수를 합산해서 내리기로 했다. 각 국은 6명씩을 출전시키고, 그중 성적이 좋은 4명의 스코어만 발췌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영국은 4개 팀(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이 모두 출전토록 했다.하지만 발표 직후부터 불평이 쏟아졌다. 일정을 짧게 하라거나 영국은 왜 4개 팀이 출전하는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애초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 들어있지도 않던 골프를 왜 올림픽에서 하느냐는 불만까지 나왔다. 비방전이 이어지면서 결국 영국의 모든 골프클럽은 올림픽을 외면했다.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보다 참가하는 전체 선수 규모는 200명으로 3배나 늘려 잡았으나 정작 출전 선수는 단 한 명에 그쳤다. 4년 전의 금메달리스트인 조지 리온뿐이었다. 타이틀 방어를 노렸던 리온은 경기를 하지 않고도 우승컵을 지킬 수 있었지만 금메달을 거절했다. IOC에서도 정식 대회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12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올림픽과 1920년 벨기에 앤드워프 올림픽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북유럽에서 골프를 하는 나라와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개최국에서 선수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 독일 선수 패배에 트로피 수여 거부한 히틀러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중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된 스포츠 제전이었다. 당시 독일의 지배자는 히틀러였다. 그는 독일의 국위를 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제전에서 세계 만방에 과시하려 했다. 거액을 들여 베를린 교외 그루네발트에 10만 명을 수용하는 웅장한 스타디움을 건설했고,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를 1500여 명의 주자들이 이어 달려 대회장으로 운반하는 오늘날의 성화 봉송 방식도 시도했다. 그리고는 “베를린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 종목이 다 치러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갑자기 치러지게 된 골프는 시기나 절차상 문제가 있었으나 각국에서 2명이 한 팀으로 출전해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열렸다. 한 팀은 감독과 코치 그리고 예비선수 한 명까지 총 5명으로 구성됐다. 대회 장소는 프랑스 국경 근처의 휴양지 바덴바덴의 18홀짜리 골프장이었다. 베를린 올림픽은 49개국에서 총 4000여명이 참가한 엄청난 규모였으나, 뒤늦게 추진된 골프는 36개국을 초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유럽 7개국만 출전했다.히틀러는 실제 골프를 즐기지 않았지만 다른 종목과는 달리 귀족적인 스포츠라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큰 은쟁반에 8개의 호박석이 박힌 우승 트로피를 독일 총통 이름으로 특별 제작하기까지 했다. 바덴바덴에 결집한 각국 선수단은 이틀 간의 연습라운드를 마치고 추첨에 의해 두 팀 4명을 한 조로 묶어 경기를 펼쳤다. 8월 26~27일 이틀간 하루 36홀씩 72홀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이었다. 주최국 독일은 19세의 레오나드폰베커라트와 헬머가 첫날 요크셔 사우스포트의 헤스켓 골프클럽 대표 선수인 영국팀 아놀드 벤틀리, 토미 터스크에 3타차로 앞서 선두를 달렸다. 외무상인 폰 리벤트롭이 그 내용을 보고하자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다음 날 바덴바덴으로 향했다. 하지만 베를린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외무상으로부터 ‘9번 홀을 마친 상태에서 독일이 영국과 비기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히틀러는 차를 세우고 결과를 다시 확인하도록 했다.결국 독일이 3타차로 졌다는 속보를 전해들은 히틀러는 화를 내면서 길을 돌려 베를린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당시 우승 트로피는 폰 헨켈 독일골프협회장이 대신 수여했다. 영국이 금메달이었고, 독일은 프랑스에 이어 동메달에 그쳤다. 히틀러가 무시한 골프는 이벤트 대회로 평가절하되었다. 그 트로피는 떠돌다가 잉글랜드골프협회에 잠시 진열되더니 지난 2012년 런던의 체스터 백화점에서 경매로 나왔다. 원래 주인인 영국 사우스포트의 헤스켓골프클럽이 1만8750파운드에 사들여 오늘날까지 벤틀리룸에 보관하고 있다.세월이 흐르면서 올림픽은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로 발전했다. 이와 달리 골프는 세계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시장 규모를 키우려면 미국·유럽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미국 PGA투어뿐만 아니라 세계 각 골프투어와 선수들 역시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노력했다.IOC가 골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2009년만 해도 타이거 우즈, 안니카 소렌스탐, 미셸 위 등 당대 최고의 골프 스타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투게 됐으며 적극 참여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개최가 현실이 되자 입장이 달랐다. 지카바리어스와 함께 대회 방식과 스케줄, 보상 등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이런 탓에 골프가 내년 IOC 총회에서 살아남을지 미지수다. 최근 스포츠 종목이 올림픽에 들어올 때는 상당한 당위성과 흥행 요소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 스타들이 출전해 올림픽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게 재도입의 이유였으나 그런 점에서 타격을 입었다. ━ 테니스의 ‘골든슬램’에 담긴 의미는 골프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스포츠 종목이 있다. 야구는 최정상급 선수가 올림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림픽에서 퇴출된 바 있다. 올림픽 기간에도 페넌트레이스 경기를 계속한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올림픽에 선수를 내보내지 않으면서 결국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탈락했다. 1992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됐지만 한국이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퇴출되었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시범종목에 도전한다.올림픽 재진입의 연착륙을 꿈꾸는 골프가 본받아야 할 종목은 테니스다. 1924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진 지 64년 만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테니스는 무성한 반대 여론을 뚫고 프로 선수에게 올림픽 문호를 개방했다. 28년이 지난 오늘날 테니스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한다.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 복식까지 5개의 메달을 걸고 싸운다. 테니스에서는 4대 메이저를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에 올림픽 금메달을 더한 ‘골든슬램(Golden Slam)’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슈테피 그라프가 1988년에 4개의 메이저와 금메달을 함께 획득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밖에 1988년 미국의 팜 슈리버 이래 안드레 아가시, 라파엘 나달, 세레나 윌리엄스까지 총 19명이 커리어 골든슬램을 달성했다. 테니스에서 올림픽 금메달은 메이저 대회 이상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골프계에서도 선수들이 올림픽을 메이저 대회만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국제골프연맹(IGF)은 금메달 수상자에게 내년 메이저 대회 출전권을 특전으로 주기로 했으나 이는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 가능한 상위 랭커에게는 의미가 없다. 라이더컵이나 월드컵 이상의 명예를 올림픽에서 찾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 리우올림픽의 골프 출전국과 선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연결 통로인 국제골프연맹(IGF)이 밝힌 남녀 60명씩 120명의 명단을 보면 120명 중에 유럽 52명, 아시아 29명, 남미 12명, 북미 11명,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각각 8명이 출전한다.경기 방식은 남녀 각각 60명이 참가해 컷 탈락 없이 개인전 72홀로 치러진다. 컷 탈락이 없는 스트로크 플레이를 택한 이유는 최대한 많은 나라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경기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올림픽 취지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세계 랭킹 15위 이내 상위 국가에서는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고 60위 이내면 2명까지 출전하도록 했다.8월 11일부터 4일 간 펼쳐지는 남자 경기에서 미국은 출전을 고사한 세계 랭킹 2위 더스틴 존슨, 3위 조던 스피스를 빼고도 15위 매트 쿠차까지 4명이 출전한다. 세계 랭킹 51위인 스위스의 번트 비스베르거는 함께 출전할 선수가 없어서 혼자 출전한다. 한 명만 출전하는 나라는 모두 11개국이다. 피지의 비제이 싱과 콜롬비아의 카밀로 비예가스가 출전을 고사하면서 그 나라의 출전권은 사라졌고, 멕시코의 루돌포 카주본이 행운을 얻었다.호주의 경우 세계 1위 제이슨 데이뿐만 아니라 세계 8위 아담 스콧과 45위인 마크 레시먼이 고사하면서 81위인 스콧 헨드, 86인 마커스 프레이저가 출전권을 물려받았다. 남아공도 세계 랭킹 10위 브렌든 그레이스를 비롯해 루이 우스투이젠(14위), 찰 슈웨첼(21위)까지 3명이 불참하면서 세계 랭킹 67위 자코 반 질과 90위인 브랜든 스톤이 출전한다.일본에서는 세계 17위로 가장 순위가 높은 히데키 마쓰야마와 함께 69위이자 상금랭킹 1위인 히데토 타니하라도 불참하면서 이케다 유타(93위), 가타야마 신고(107위)가 출전하고 한국에서는 안병훈과 왕정훈이 출전한다. 아시안게임에서 병역면제를 이미 받은 김경태가 후배를 위해 출전권을 양보하면서 왕정훈이 출전권을 이어 받은 것이다.17일부터 4일 간 열전을 펼치는 여자 경기에서 한국은 4명(박인비·김세영·양희영·전인지), 미국은 3명이 출전하며, 11명은 각 나라에서 한 명씩 출전해 총 34개국의 경합이 펼쳐진다. 한국에서는 메달 연금에 특별 장려금, 남자의 경우 병역 혜택까지 주어지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금메달이 단순 명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호주와 미국의 경우 금메달 보상금이 3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한국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연금 상한액인 100만원을 매월 받는다. 특히 대한골프협회는 금메달 3억원, 은메달 1억5000만원, 동메달은 1억원을 특별 포상금으로 주기로 했다.

2016.08.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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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64 도쿄 올림픽

국제 이슈

모든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20 도쿄 올림픽은 대회 시작 전부터 경이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올림픽 참가자와 관광객은 자율주행 택시를 타고 시내를 오가고, 올림픽 주경기장 용도로 새로 지은 국립스타디움 입구에서 출입증만 살짝 대고 입장한 뒤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로 신원이 확인되면 10개 언어 중 하나로 안내 받아 좌석을 찾아갈 수 있다. 또 도쿄 어디서든 밤하늘을 쳐다보면 80㎞ 상공에서 펼쳐지는 인공 별똥별 쇼를 구경할 수 있다.일본은 지금 이런 혁신 기술의 실현을 목표로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1964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기술적 쾌거와 국가적 이미지 쇄신의 유산을 2020 올림픽에서 되살리려는 의도다. 올림픽 폐막 후에도 오랫동안 일본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도쿄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와 혁신가, 기업가, 학자들이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힘을 모은다.도쿄 올림픽 조직위의 무토 도시로 사무총장은 “올림픽은 스포츠 축제지만 과학기술 혁신을 과시할 기회로도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위는 각국 대표 선수단의 경기장 이동에 수소연료 차량을 사용하고 첨단 스마트폰 툴로 관광객을 돕는 등 여러 가지 첨단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무토 사무총장은 “세계가 경탄할 멋진 올림픽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보였다.세계의 각 도시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올림픽 유치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지만 갈수록 올림픽 개최를 꺼린다.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2 런던 올림픽은 126억4000만 달러,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510억 달러가 들었다. 정부는 주로 관광 수입과 관련 상품 판매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며 거액의 비용 지출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실제로 올림픽 개최 도시가 적자에 허덕인 경우가 숱했다.물론 올림픽 개최로 멋지게 성공한 도시도 있었다. 1984 LA 올림픽은 보기 드문 흑자(2억3250만 달러) 대회였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그 도시의 부두를 부흥시켰고, 런던 올림픽은 최고의 디지털 대회로 IT 인프라를 구축했다.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 예산을 원래 30억 달러로 책정했지만 현재 조직위는 준비 비용을 재검토 중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체 비용이 그 6배에 이를 수 있다. 예산이 얼마로 늘어나든 일본은 이번 대회의 유산이 이전 도쿄 올림픽의 화려한 영광에 뒤져선 안 된다는 막중한 부담을 갖는다. 일본은 1964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세계은행의 차관을 받아 공공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려 차량 소유와 인프라가 크게 성장하면서 일본 경제는 급상승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적인 컬러 TV 사용 증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 도움으로 첫 국제 위성방송으로 모든 행사와 경기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20년만에 일본의 세계적 지위는 높이 치솟았다.독일 뒤셀도르프 소재 하인리히하이네대학의 일본 현대사 전문가 크리스티안 타그솔드 교수는 “1964 도쿄 올림픽으로 세계는 일본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1964 도쿄 올림픽이 개막되기 열흘 전 일본은 고속철도 신칸센을 개통했다. 정시 발착으로 명성이 높은 신칸센은 그 이래 수십 년에 걸쳐 노선을 계속 확장하면서 사고 한번 없이 승객 100억 명 이상을 실어 날라 세계적인 모범을 세웠다. 미국 뉴욕 소재 맨해튼대학의 일본 현대사 교수 폴 드루비는 “신칸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로 기술 대국으로서 일본의 재부상을 상징했다”고 설명했다.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또다시 당시의 성공을 재현하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일본 경제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선진국 중 부채 부담이 가장 크며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노동력이 크게 부족하다. 분석가들은 한때 드높았던 일본 정부의 야심이 작아졌다고 지적한다. 드루비 교수는 “1964년과 달리 이번엔 원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연례 ‘과학기술과 인류의 미래에 관한 국제 포럼’에서 혁신이 끊이지 않는 일본의 비전을 제시했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를 실용화해 도쿄의 거리가 운전자 없는 차로 가득할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을 내놨다. 아베 총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로봇택시에 기댈 수밖에 없다. 모바일·온라인 서비스업체 DeNA와 로봇 전문업체 ZMP가 합작한 운송회사 로봇택시는 기존 택시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하는 중이다(새 차를 만들기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로봇택시는 우선 도요타 미니밴 에스티마를 개조하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회사 대변인에 따르면 그 기법은 다른 모델이나 자동차회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곧 도쿄 부근의 가나가와현에서 12일 동안 주민이 참여하는 시험운행을 실시할 계획이다.DeNA의 자동차사업 본부장 나카지마 히로시는 일본 정부가 내년까지 자율주행 택시 관련 법을 통과시킬 계획이라며 로봇택시가 2020년 올림픽에 맞춰 자율주행차 수천 대를 운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종 운행 대수는 자율주행차 운행이 허용되는 도로 등 규제의 엄격함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도요타와 닛산 같은 일본 자동차회사들도 2020년까지 일부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시판할 계획이다. 그러나 나카지마 본부장은 로봇택시의 차량이 완전한 자율주행과 맞춤형 서비스로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로봇택시는 2020 도쿄 올림픽이 이상적인 도약의 발판이라고 본다. 관리가 잘 되고 활동 범위가 지리적으로 넓으며 관광객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택시의 서비스는 앞으로 물류부터 의료까지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다. 또 자율주행 택시가 허용되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늘어가는 농촌 격리화와 고령자 연령층(대부분 자율주행차를 구입할 여력이 없다)의 높은 교통사고율 등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로봇택시 프로젝트는 일본이 2020 도쿄 올림픽 개최에 맞춰 선보일 계획인 수많은 혁신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베 과학박물관 관장인 와다 도모아키는 “여러 대기업이 2020 올림픽을 첨단 연구개발 제품의 이상적인 출시 시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파나소닉은 공식 올림픽 스폰서로서 자동통역기부터 전기자전거 공유와 미세분무냉각 설비까지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파나소닉 전시실에서 방영되는 홍보 동영상의 로봇 목소리는 “도착부터 출발까지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런 혁신이 2020년 올림픽 때 일본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만이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중요한 유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파나소닉은 또 ‘완벽한 보안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올림픽 선수촌과 경기장의 안전을 위해 수십만 대의 고정·이동식 감시 카메라와 제한구역의 센서를 단일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시스템이다. 그 카메라에 부착된 9메가픽셀(900만 화소) 360도 어안 렌즈는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특정 구역의 음성·소음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지향성 마이크와 연결된다.파나소닉의 대변인 미하라 마코토는 이 네트워크가 테러공격의 탐지와 예방에 효과적이며 사생활 보호에 관한 모든 법과 규정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이 시스템이 여러 분야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할 때 군중 속에서 쓰러진 사람을 찾고 특정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도 우리는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 파나소닉은 도쿄 올림픽 조직위와 손잡고 ‘원더 재팬 패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홍보 자료에 따르면 방문객의 경험을 ‘더 스마트하고 심플하게’ 만들어주는 신용카드식 기기다. 출입과 요금 지불에선 사용자를 확인하고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한다. 다른 주요 기업들과 정부가 합류한다면 그 시스템은 신분증과 경기장·호텔방 출입증만이 아니라 택시 이용부터 쇼핑까지 모든 서비스의 요금을 지불하는 신용카드로도 사용할 수 있는 ‘올인원’ 기기가 될 수 있다.현대 올림픽은 스포츠 못지않게 화려함을 중시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위성을 통해 아테네에서 캐나다로 송신된 무선 신호로 작동하는 레이저빔으로 성화가 점화됐다. 1984년 LA 올림픽 개막식에선 제트팩을 등에 맨 남자가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경기장으로 날아들어 성화에 불을 붙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장애인 양궁선수가 불화살을 쏴 성화대를 밝혔다.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선 한 신생업체가 과학 혁신의 장기적 유산을 남기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모든 성화 점화 방식을 능가할 계획이다. 자칭 ‘외계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ALE는 인공 유성우를 개발 중이다. 개발자들은 이 기술이 대규모 엔터테인먼트로서 불꽃놀이를 완전히 대체하는 동시에 유성과 상층대기 연구, 위성을 다시 지구에 착륙시키는 우주기술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ALE 개발팀에 따르면 80㎞ 상공에 나노위성을 쏘아 올려 화학물질로 만든 작은 알갱이를 방출하면 그것이 대기권으로 내려가 공기와 마찰하면서 불이 붙어 밝게 빛난다. 천문학 박사로 골드먼삭스 임원을 지낸 레나 오카지마 CEO는 직경 320㎞ 범위에서 약 3000만 명이 그 인공 별똥별 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ALE는 니혼대학 항공우주공학부의 아베 신스케 교수를 포함해 여러 일본 학자들과 협력한다. 아베 교수는 알갱이의 크기와 모양, 구조를 변경해 인공 별똥별을 더 밝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자연 유성의 이동 속도는 초속 80㎞에 이르지만 인공 별똥별의 재진입 조건은 초속 약 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베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는 같은 공기역학 조건에서 자연 유성보다 약 70배 밝게 빛나는 특수 알갱이 제작에 성공했다”고 말했다.그들은 이 사업이 과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믿는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항공우주 엔지니어 사하라 히로노리는 “우리의 인공 별똥별은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라 상층대기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중요한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 교수에 따르면 그들의 연구는 자연 유성의 물리·화학, 궤도 패턴과 대기권 재진입에 관한 핵심 정보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ALE는 2018년 도쿄에서 인공 별똥별 쇼를 연출할 나노위성을 쏘아올릴 계획으로 부유한 우주 애호가와 대기업 중에서 후원자를 찾고 있다. 오카지마 CEO는 1회 발사에 약 9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한다. 위성을 쏘아올릴 로켓에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ALE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오츠키 노부히코는 지금으로선 비용이 너무 비싸 어렵지만 미래엔 나노위성 시스템이 기존의 불꽃놀이를 대체하면서 하늘을 형형색색으로 수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캔버스가 될 수 있다. 100년 안에 사람들은 인공 별똥별에 열광할 것이다.”- 조 잭슨 뉴스위크 기자

2016.03.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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