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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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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과거 배신했던 만행…김민지

정책이슈

TV조선이 최초로 도전하는 본격 정글 서바이벌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 2R 마지막 탈락 팀이 결정된다.2일 방송되는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는 무인도를 떠날 탈락 팀을 결정할 2R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다. 결승에 진출할 팀이 결정되는 마지막 대결에서는 1R와 동일하게 ‘깃발 전쟁’이 예고됐다. 각 팀은 생존지에 있는 팀 깃발을 지키며 상대 팀의 깃발을 태워야 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팀 깃발이 태워지면 용병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다. ‘정글팀’ 김동준은 “우리가 유일하게 무경험이다”라며 돌아온 ‘깃발 전쟁’에 당황했다. 같은 팀 정지현도 “우리가 제일 불리하다”라며 걱정이 가득했다. 이에 국가대표팀 리더 박태환은 “제 경험상…군인팀은 믿지 마세요”라며 꿀팁(?)을 전수했다. 1R의 깃발 전쟁에서 이승기가 이끄는 군인팀은 국가대표팀과의 연합을 순식간에 배신했던 전과가 있다. 군인팀 리더 이승기는 “공교롭게도 거짓말쟁이만 모여 있다”며 자신들의 과거 만행을 인정했다. 한편, 피지컬팀과 정글팀 생존지 중간에 끼어 위태로운 군인팀은 살아남기 위해 연합을 계획했다. 김병만은 ‘바다 요새’ 같은 피지컬팀의 생존지에 하늘길로 침투하려 했다. 이에 이승기는 ‘육군첩보부대 HID’ 출신 강민호가 물길로 침투 가능하다며 연합을 제안했다. 그러나 연합이 성사되려던 찰나 ‘배신의 희생양’이었던 국가대표팀 김민지가 “절대 믿으면 안 된다”라며 막아서, 군인팀은 또 위기에 놓였다. 배신한 과거로 ‘신뢰 회복’이라는 큰 문제에 직면한 군인팀, 바다 요새라는 최적지에서 방어에 나선 피지컬팀, 그리고 처음 깃발 전쟁을 치르는 정글팀 중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탈락자가 결정되는 2R의 마지막 대결은 2일 오후 10시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 공개된다. ‘생존왕 : 부족전쟁’은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도 매주 화요일 공개된다. 일간스포츠 이수진 기자 sujin06@edaily.co.kr

2024.12.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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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국제수영연맹 경영 월드컵’ 공식 파트너로 참여

은행

KB금융그룹이 24일부터 26일까지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개최되는 ‘2024 국제수영연맹(AQUA) 경영 월드컵 2차대회’에 공식 파트너로 참여한다고 밝혔다.경영 월드컵은 매년 하반기 대륙별 순회로 개최되며, 올해 대회는 중국·한국·싱가포르에서 총 3차례 열린다. 특히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이후 5년 만에 국제수영연맹 주최로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다. 2005년 이후 19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경영월드컵인 이번 대회에 국내 수영 팬들이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이번 대회에는 파리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김우민 선수와 세계수영선수권대회 3회 연속 메달을 수상한 황선우 선수, 국내 배영 유망주인 이은지 선수 등 대한민국 경영 국가대표를 포함한 25명의 국내 선수가 총출동한다.아울러 리건 스미스(Regan Smith), 케이트 더글라스(Kate Douglass), 판 잔러(Pan Zhanle) 등 2024 파리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전 세계 2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남녀 개인전 5종목(자유형·평영·배영·접영·혼영)에서 총 34개의 금메달을 두고 박진감 넘치는 역영을 펼칠 예정이다.KB금융 관계자는 “국내 선수들이 이번 국제무대 도전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KB금융은 대한민국이 수영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KB금융은 유망주의 발굴과 성장을 통해 대한민국 수영 종목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대한수영연맹과 황선우, 김우민, 지유찬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또한 수영·체조·육상 등 하계 기초 종목과 동계 피겨스케이팅·쇼트트랙 등 다양한 종목의 국가대표팀 및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인 KB국민은행도 사격단과 농구단을 운영하며 한국 스포츠 산업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양종희 회장이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에 2억원의 격려금을 전달했다.

2024.10.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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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골프공 타인 상해 후 동행인 앞세웠지만 법원 “책임 없다”

정책이슈

30일 서울 동부지법은 수영선수 박태환이 친 공에 맞아 눈을 다친 피해자가 박태환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지난 2021년 11월 강원도 춘천의 한 골프장에서 박태환은 골프를 치던 중 다른 홀에 있던 A씨의 왼쪽 눈을 다치게 해 고소를 당했지만 약 4년 만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A씨는 당시 박태환이 친 공에 왼쪽 눈을 맞고 이후 시력 저하와 협착 증상이 이어지자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했다. 이와 더해 박태환은 사고 발생 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동행인을 앞세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 세인들의 공분을 샀다.하지만 이법원은 박태환의 이런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며 질타하면서도 손해배상 책임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결했다.“당시 A씨와 박태환 모두 경기보조원이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를 했다”며 서론을 연 재판부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할 의무는 다른 홀에 배치된 경기보조원과 수시로 무전연락을 주고받는 경기보조원에 있다”며또“박태환은 경기보조원의 안내에 따라 정상적으로 티샷을 쳤을 뿐”이라며 “박태환에게 이 이상의 어떠한 주의의무도 없고 이 또한 위반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24.09.3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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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이 친 골프공에 망막 다쳐”…피해자, 불기소 처분에 항고

정책이슈

전 국가대표 수영 선수 박태환(34)이 2년 전 골프 경기 중 옆 홀에 있던 경기자를 다치게 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31일 춘천지검 등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박씨의 과실치상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박씨는 2021년 11월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중 골프공으로 옆 홀에 있던 A씨를 맞춰 눈과 머리 부위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A씨의 고소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사안으로 판단해 불송치했다.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한 A씨의 이의신청으로 다시 사건을 살핀 검찰 역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검찰은 박씨가 당시 경기보조원(캐디) 지시에 따라 타구한 점과 아마추어 경기에서 슬라이스(공이 타깃 방향으로 날아가다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휘어지는 것)가 발생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박씨에게 죄를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A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항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10.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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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반사효과] 옆집 잔치에 우리도 덕 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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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외국 전지훈련 유치 열전… 스포츠도시 인지도 높이고 지역경제 온기 기대 일본 도쿄올림픽(7월 24일~8월 9일)을 앞두고 외국 선수단의 전지훈련 수요를 유치하기 위한 국내 지자체와 체육단체의 활동이 분주하다. 지자체와 각 시·도 체육회, 한국관광공사 등이 손잡고 각 종목에 적합한 체육시설과 환경, 저렴한 이용료·체류비, 국내 팀과의 연습경기 주선 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홍보물과 홈페이지를 만들어 선보이고, 교통수단 제공, 숙박·체육 시설 이용료 할인, 관광 연계 서비스 등 각종 편의 제공을 기획하고 있다. 국내외 체육계 인맥을 동원해 외국 선수단과 체육기관을 접촉하는 전략도 나온다.인천에서는 인천시·인천관광공사·인천시체육회·한국관광공사경인지사가 지난해 말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2014 아시안게임을 치른 경험과 19개 국제 규격 체육시설을 집중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특히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옥련사격장·문학박태환수영장·도원체육관을 앞세워 사격·수영·태권도·럭비·양궁 등에서 전지훈련 수요를 붙잡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사격에서 베트남과 호주, 수영에서 영국·우크라이나·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전지훈련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엔 몽골 복싱, 스리랑카 레슬링, 싱가포르 사격, 타지키스탄 태권도, 태국 양궁 선수단이 인천에서 전지훈련을 마쳤다. 오자현 인천시 체육진흥과 국제경기대회담당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국가들을 집중 유치할 계획”이라며 “이달 중에 홍보물을 제작하고, 숙박·체육 시설 이용료 할인, 이동차량 지원 등의 제공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인천관광공사 해외마케팅팀의 김미지 주임은 “구한말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개항장, 스마트시티 송도신도시를 엮은 시간여행 관광상품을 만들어 전지훈련 수요를 관광 수요로 연결시키려 한다”며 “예산 안에서 셔틀버스·시티투어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부산도 2002년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를 치른 시설과 역량을 앞세워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외국 체육계와 접촉하고 있다. 부산지역의 훈련시설·숙박시설·훈련파트너·의료기관 등을 묶은 논스톱 패키지 서비스를 마련해 스페인·영어·한국어 버전의 전지훈련 인터넷 홈페이지 ‘캠프 부산’을 열었다. 홈페이지에선 18개 종목의 체육관 현황, 호텔·숙박·식당·편의시설 정보와 사이트, 훈련파트너인 25개 종목 부산지역 프로팀·실업팀, 업무협약을 맺은 13개 병원에 대한 정보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비용할인·문화관광 혜택 얹어주며 열띤 세일즈 전지훈련 1번지로 꼽히는 제주는 천혜 자연환경을 내세워 유치작전을 펼치고 있다. 제주시·도와 체육회·관광협회 등이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이들은 전지훈련 유치 전문가를 채용하고, 시·도나 체육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 도시들을 초청해 제주의 장점을 알리고 있다. 제주도는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크다고 판단해 레저스포츠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2022년까지 제주체육진흥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8년 말에 제주종합경기장 안에 제주스포츠과학센터도 열었다. 선수들의 심리 상담, 기초·정밀 체력 측정, 운동법 처방·지도, 기록 관리·분석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마라톤·사이클·트라이애슬론·조정·카약·요트 등이 제주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스포츠다. 정찬식 제주도체육회 운영부장은 “제주는 매년 60여 개 굵직한 대회를 치를 정도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며 “전지훈련 중 국내 팀과의 연습경기를 적극 주선하면서 말레이시아, 베트남 호치민, 인도네시아 발리 등 동남아 3개국 체육계와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대한레슬링협회는 도쿄올림픽 훈련캠프를 한국에 설치하자는 국제레슬링연맹의 제안을 받아 심사를 거쳐 경남 양산시를 레슬링 전지훈련 도시로 정했다. 대구도 육상·사격·핸드볼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인도·쿠웨이트·태국 등과 접촉 중이다. 이 가운데 폴란드·슬로바키아 육상팀과 전지훈련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한국 체육계는 전지훈련 유치전에서 과거 뼈아픈 상처가 있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일본은 서울올림픽 출전국의 전지훈련 수요를 유치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펼쳤다. 일본이 내세운 것는 한국의 불안한 정세였다.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 남북대치 상황 등을 들먹이며 외국 선수단이 일본에 올림픽 훈련캠프를 차리도록 유도했다. 당시 36개국이 일본에서 훈련을 마치고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올림픽 개최국이었지만 실속은 일본이 챙긴 것이다.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한국이 수혜국이었다. 그 해에 중국은 쓰촨성 대지진, 티베트 반중시위 유혈사태, 미세먼지 환경오염 등의 악재가 있었고, 이를 피해 40여개 국이 시차와 기후가 비슷한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현재 대외상황도 한국의 유치활동에 힘을 실어준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 위험, 후쿠시마산 식재료 선수촌 공급 논란, 전범국가·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 사용 구설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눈총을 받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정치·경제 마찰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까지 발병해 설상가상 우환을 겪고 있다. ━ 주변국 혼란 속 한국 특장점 부각시켜 지자체와 체육계는 홍보활동에서 이 같은 상황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 캠프를 차리고 경기가 열리는 날 앞뒤로만 일본에 머무는 방안도 넌지시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칫 국가간 오해와 갈등으로 비화될까 쉬쉬하는 분위기다. 발전한 한국의 스포츠의학도 유치전략에 활용한다. 국내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지훈련 수요 유치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각 나라에서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도쿄올림픽 출전 국가가 최종 선정되는 5월까지 시간이 있어 발병 사태 추이를 지켜볼 수 있다.제주연구원이 스포츠대회와 전지훈련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지훈련 동안 그 선수단과 코치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1일 기준 1인당 평균 약 14만5000원(2016년 물가 기준)으로 조사됐다. 숙박·식음료·쇼핑·운송·스포츠·오락·문화·기계장비·용품·개인서비스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이들의 체류기간은 16~20일(31%)이 가장 많았으며 6~10일 이하(24%), 21일 이상(20%), 11~15일(13%), 5일 이하(11%) 순으로 집계됐다. 평균 체류기간이 19일 정도다. 이를 적용하면 1인당 평균 약 275만원을 쓰는 셈이다. 선수단 가족이나 선수단을 만나러 온 관계자들의 방문까지 포함하면 지출비는 더 증가한다.김종철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 차장은 “올림픽이 열리는 일본과 시차가 없고,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며, 직항노선도 많은데다, 기후와 환경도 비슷해 현지 적응을 위한 훈련캠프로 한국이 최적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림픽 특수를 노린 일본의 물가 급등으로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체류비 고민이 커지고 있다. 레슬링협회는 양산시와 협력해 3끼 뷔페식을 포함한 숙박 편의를 1인당 110달러(한화 약 13만원)에 제공할 계획”이라며 “올림픽이 열릴 도쿄 인근 지역의 현재 숙박비의 3분의 1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0.02.0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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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산업의 탄생(4) 1970년대 민영화 막 올라] 신라호텔 전신은 청와대 영빈관

산업 일반

선경개발, 워커힐호텔 27억원에 인수...1970년대 관광 붐 일자 재벌들 호텔산업 진출 1962년 6월 국내 관광의 선전, 관광객에 대한 편의 제공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 기타 관광사업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경영하기 위해 교통부 산하에 국제관광공사가 설립됐다. 국제관광공사는 1963년 개관 예정이었던 워커힐호텔의 운영권을 인수했으며, 정부가 운영하던 7개 국영 관광호텔을 비롯해 대한여행사·운수사업소·반도호텔·조선호텔을 잇따라 인수했다. 1960년대는 방한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드물었던 시기다. 국내에서 일본 등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유엔군 장병은 연간 3만 명에 달했다. 이들을 국내에서 머물게 해 관광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대규모 휴양시설을 건립할 계획이 수립됐다.서울 아차산 자락에 있던 이승만 대통령 별장 부지를 중심으로 19만1520평의 부지에 동양 최대의 리조트 호텔을 건립하는 계획이 수립됐으며, 공사에는 민간 시공사뿐 아니라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공병이 투입되기도 했다. 1962년 12월에 준공해 다음해인 1963년 4월 문을 열었는데, 외자 220만 달러를 포함, 6억4000만원이 소요됐다. 이 호텔은 객실 5개동과 빌라 13동, 전망대와 차고 등 26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워커힐이라는 호텔의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초대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각 동의 명칭도 더글라스, 맥스웰, 매튜, 제임스 등 유엔군 장군의 이름을 따 붙여졌는데, 이는 이 호텔의 주요한 고객을 배려한 처사였다. 또 미 8군 PX분실, 미군은행출장소, 국제전화전신분실, 전보꽃집 등이 입주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더했다. ━ 주한 유엔군 이용하던 ‘워커힐호텔’ 경영난으로 민영화 워커힐호텔에는 최초로 도입된 시설이 많았다. 퍼시픽 나이트클럽에서는 국내 최초의 호텔공연이자 공연관광의 시초가 되는 허니비쇼(Honey Bee Show)가 시작됐다. 당시 퍼시픽 나이트클럽은 식사와 공연을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장으로 최초의 전자오르간, 재즈 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다. 개관 기념 공연은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했는데, 매일 밤 2회씩 공연을 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신성일, 그리고 엄앵란이 1964년 11월 14일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볼링장이 4레인을 갖추고 문을 열었는데, 당시 한국의 소피아 로렌이라 불리던 배우 김혜정이 이곳에서 볼링을 즐기기도 했다. 실내 수영장은 길이 23m 폭 7m, 연중 수온 24도를 유지하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1963년 2월 1일부터 우수한 수영선수들에게 수영장을 개방해 훈련을 할 수 있게 했는데, 이 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동계에 수영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박태환 선수를 발굴한 김봉조 감독도 선수 시절 이곳에서 동계훈련을 했고, 4개월 뒤에 진행된 시합에서 본인이 수립한 자유형 400m 한국 신기록을 12초 단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워커힐 호텔은 당초 기대와 달리 영업실적이 좋지 않았다. 해마다 이용객 숫자가 줄어들었으며,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지리적인 입지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자가용의 보급률이 낮았던 당시에는 이곳까지 가기 위해 별도의 관광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다. 또 도심에 새로운 호텔이 들어서거나 재단장하면서 국제회의 등 각종 행사 유치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68년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카지노가 문을 열었다. 당초 외국인 전용이었던 카지노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경영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내국인 출입과 억대 도박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적자는 계속됐으며 연평균 객실 이용률도 계속 감소해 1970년에는 44.4%에 머물렀다. 1972년에서야 처음으로 1억7000만원의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국영 업체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1973년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의 계열사 선경개발(지금의 워커힐)에 27억4200만원에 매각됐다. 1964년 12월 남산 자락에 아시아반공연맹 자유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는 1966년 제12차 아주반공연맹 대회를 위한 시설로 건설됐는데 5층의 본관과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17층의 자유회관으로 이루어졌다. 17층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한 16개 국가와 한국을 포함한 숫자를 의미했으며, 외국에서 찾아올 학생들과 교수들의 숙소로 이용될 예정이었다. 1966년 8월 국제관광공사가 한국반공연맹으로부터 미완성인 자유회관을 인수했으며, 1년 간 개축을 통해 1967년 7월 1일부터 타워호텔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업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8월 31일 갑자기 호텔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두 차례의 유찰 끝에 1968년 11월 공성산업 남상옥 대표에게 7억3700만원에 낙찰됐다. 이런 매각으로 당시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1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호텔을, 흑자를 올리고 있음에도 서둘러 헐값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 이익 내던 자유회관 헐값에 매각 의혹 1967년 3월 2일 한국을 방문한 서독의 뤼프케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안내로 영빈관 서쪽 2층 큰 방에서 한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뤼프케 대통령은 1967년 2월 28일 개관한 영빈관의 첫 번째 손님이었다. 영빈관은 1958년 장충단공원으로 부지를 선정하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4.19혁명이 발생해 건설이 중단됐다가 1964년이 되어서야 공사가 재개돼 개관에 이르렀다. 창덕궁 희정당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이곳은 전통적인 외양과 달리 내부는 서양식으로 치장했다. 정원에는 2개의 팔각정과 관상목 5000주, 분수대가 있었으며, 청사초롱 50여 개가 밤을 밝혔다. 영빈관은 국빈의 숙소로 사용하거나 차관급 이상이 주최하는 공식 파티의 장소로만 활용했다. 전통적인 외관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대외에 보여주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운영은 녹록하지 못해 문을 연 첫해에 적자가 1000만원에 달했다. 이후 1970년 조선호텔의 신축은 영빈관의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1970년 8월 방한한 애그뉴 미국 부통령이 조선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머무는 등 국빈을 모시기 위해 민간호텔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영빈관은 1973년 6월 공개입찰을 통해 7월 삼성그룹의 임페리얼(지금의 호텔신라)에 28억4420만원에 넘어갔다. 새로운 호텔 건설에 앞서 8월 3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돼 그릴, 칵테일 라운지,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참고로 1978년 12월 청와대 내에 루이 14세의 건축양식과 전통양식을 절충한 영빈관이 새로 건립돼 국빈의 숙소와 만찬장소 역할을 계속하게 됐다. ━ 청와대 안에 영빈관 새로 지어 1967년 7월 6일 저녁 조선호텔은 주요 고객 200여 명을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는 미리 뜯어놓은 타일을 기념선물로 나누어주며 곧 사라질 풍경에 대한 아쉬움을 나누었다. 직원들은 뒤뜰 팔각당, 현관 그리고 400년이 넘은 시호나무 밑에 제단을 차려놓고 고별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조선호텔은 영업을 마감하고 철거를 시작했다. 호텔의 비품들은 골동품 애호가와 주부들에게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조선호텔의 철거와 신축은 노후화와 수익성 악화가 이유였지만, 국제대회 등 대규모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호텔 건립이 필요했던 이유도 있었다. 미국의 아메리칸 에어라인(AA)과 국제관광공사가 공동으로 1100만 달러의 공사비를 투자했으며 29개월 간의 공사를 거쳐 지하 2층, 지상 19층에 504개의 객실을 갖추고 1970년 3월 17일 다시 개관했다. 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리퍼블릭 볼룸에는 6개 국어를 동시통역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으며, 옥외 수영장과 나이트클럽 등이 있었다. 조선호텔은 1971년 순이익 2억원을, 이듬해에는 4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는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호텔의 지리적 이점과도 관련이 있지만, 1971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관광산업의 수요에 기인한다. 1972년 세계 관광인구 증가율은 9%에 머물렀지만, 우리나라의 증가율은 53.8%를 달성했고, 관광수입 증가율은 133.7%에 이르는 등 무역 외 수입 중 관광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71년 6.4%에서 1972년 12.3%로 크게 증가했다. 이와 같은 관광 붐은 국내 재벌들의 호텔경영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2018.11.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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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김원의 스포츠 & 비즈(6)

전문가 칼럼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불리는 F1은 자동차 레이서들에게 꿈의 무대다. 일본은 벌써 21명의 F1 드라이버를 배출했다. 한국은 언제쯤 F1 드라이버가 나올 수 있을까. 영국의 자동차 경주 팀인 매너 레이싱(Manor racing)에는 리오 하리안토(24)라는 인도네시아인 드라이버가 있다. 하리안토는 올해 포뮬러원(F1) 그랑프리에 참가하는 유일한 아시아인 드라이버다. 그가 올해 초 매너 팀과 계약하자 미국의 CNN 방송은 “인도네시아 드라이버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하리안토는 인도네시아에서 국민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일본의 나카지마 사토루(63)는 1987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F1 무대를 밟았다. 일본은 사토루 이후 지금까지 21명의 F1 드라이버를 배출했다. 스즈키 아구리(56)는 90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3위에 오르며 일본인 가운데 처음으로 포디움(1~3위가 오르는 시상대)을 밟았다. 이후 2004년 미국 그랑프리에서 3위에 오른 사토 타쿠마(39)와 2012년 일본 그랑프리 3위 고바야시 카무이(30) 역시 시상대에서 샴페인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아직 F1 드라이버가 나오지 않을까. ━ ‘8조원의 게임’ 모터스포츠의 꽃 F1 모터스포츠는 전세계 수억 명의 팬을 가진 인기 스포츠다. ‘모터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F1 외에도 나스카(NASCAR), 인디카(Indycar), 세계내구챔피언십(WEC),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 대회 종류도 많다. 르망24시(WEC), 몬테카를로 랠리(WRC), 모나코 그랑프리(F1), 인디500(인디카), 데이토나500(나스카) 등 풍부한 역사와 스토리를 갖춘 단일 경주들은 레이싱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겨루고 우수성을 인정받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모터스포츠에 투자한다. 특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메이커들은 매년 2000억~5000억원을 쏟아 붓는다. 지난해 말 토토 볼프 메르세데스 팀 대표는 “F1 팀 운영을 통한 벤츠의 브랜드 노출 효과는 30억 달러(3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마케팅을 위해 거액을 기꺼이 지불한다. 스폰서십 컨설팅 업체 IE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모터스포츠 스폰서십 총 규모는 54억3000만 달러(약 6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포츠 마케팅을 배우려면 모터스포츠를 보라’는 말처럼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 기법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모터스포츠 가운데 전세계 5억2500만 명이 시청하는 F1은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불릴 만큼 관심이 높다. F1에서 F는 ‘포뮬러(formula)’, 즉 규정을 의미한다. 여러 대회의 규정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1’은 최고의 대회라는 의미다. 대회에 출전하는 차는 운전석 덮개가 없고 바퀴가 차체 밖으로 튀어나온 경주용 오픈 휠(open wheel) 차량이다. 첨단 자동차 기술이 집약돼 있기 때문에 ‘머신(machine)’이라고도 불린다. 머신의 평가액은 대당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세 차례(2008·2014·2015년) F1 월드챔피언(시즌 포인트 종합 1위)에 오른 루이스 해밀턴(31·영국)이 2014년 주행한 머신의 평가액은 230억원에 달한다. 머신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불과 2.5초, 시속 200km에서 정지 상태까지 1.9초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순발력이 좋다. 최고의 스피드를 내는 데 최적화 됐다.1950년 시작한 F1은 산업적 가치도 크다. 지난해 영국의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F1의 경제적 가치는 50억 파운드(약 7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F1은 1년 동안 11개 팀 소속 드라이버들이 전세계 21개국을 돌며 그랑프리 대회를 치러 순위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F1 팀을 운영하는 회사는 벤츠·맥라렌·르노·혼다·페라리(이상 자동차 제조사)와 하스(부품사), 레드불(음료 회사) 등으로 업종이 다양하다.레드불은 11년 전인 2005년 레드불 레이싱 팀을 시작한 이후 매출이 2배(66억 달러, 약 7조6000억원)로 껑충 뛰어올랐다. F1 참가로 큰 효과를 본 레드불은 또 다른 F1 팀인 스쿠데리아 토로 루소 팀도 이듬해 창단해 운영 중이다. 스폰서로 참여하는 기업은 기술 파트너(자동차 회사·타이어·부품·텔레매틱스 업체)와 일반 스폰서(전자·IT·금융·소비재 등)로 나뉜다. 참여 기업 숫자가 300개에 이를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F1은 호스팅(대회 개최) 권리를 판 돈과 방송 중계권료를 합쳐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2013년 기준 두 항목의 수입은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였다. 경기장 광고, 입장 수입 등을 모두 포함하면 17억 달러(약 2조원)에 이른다. 순이익(profit)도 5억3000만 달러(약 6100억원)나 된다.상금 규모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3년 총 상금액은 8억 달러(약 9200억원)였다. 5년 전에 비해 46.6%가 증가한 것이다. 이에 맞춰 각 팀들의 운영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 팀에 스태프만 300~500명이 있다. F1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30개국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5만명의 고용 유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 F1 드라이버로 가는 길, ‘사다리 오르기’ F1은 자동차 레이서들에게 꿈의 무대다. F1의 각 팀에는 2~3명의 드라이버가 소속돼 있다. 매년 20명이 조금 넘는 선수들만 F1 그랑프리에 참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F1 드라이버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선수 개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운·자본·저변 등 모든 요소가 갖춰져야 F1 드라이버로 세계 무대를 질주할 수 있다.F1에서는 7번이나 월드챔피언에 오른 미하엘 슈마허(47·독일)가 2012년 은퇴한 이후 해밀턴 시대가 열렸다. 해밀턴은 2008년에 이어 2014년과 2015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올랐고, 지난해 메르세데스 팀과 3년간 총액 1억4000만 달러(약 1603억원, 2016시즌부터 적용)에 재계약을 체결했다. 포브스 자료에 따르면 해밀턴은 지난해 상금·연봉 등으로 4600만 달러(약 527억원)을 벌어들여 세계 스포츠 스타 가운데 11번째로 많은 수입을 올렸다.최초의 흑인 F1 드라이버인 해밀턴은 ‘F1의 타이거 우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는 8살 때부터 카트를 타기 시작했다. 카트란 카 레이싱 입문을 위해 만든 소형 경주용 차량을 말한다. 카트를 탄 지 2년 만에 해밀턴은 두각을 나타냈다.해밀턴은 95년 유로 오토스포츠 시상식장에서 ‘F1의 대부’라 불리는 론 데니스(59·영국) 맥라렌 회장을 만난다. 그리고 2년 뒤 유러피언 카트 챔피언십을 평정한 해밀턴은 ‘맥라렌 영 드라이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해밀턴이 2007년 F1에 데뷔할 때까지 맥라렌은 그에게 500만 파운드(약 74억원)를 지원했다. F1 드라이버 대부분은 해밀턴처럼 조기 교육을 받는다.유럽에서는 이르면 세 살부터 카트 운전대를 잡는다. 7~8세가 되면 대회에 참가하고, 꾸준히 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15세 전후로 포뮬러 포드 등 주니어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르노·맥라렌·페라리·로터스 등에서 운영하는 ‘영 드라이버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돼 집중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다. 이후 F3(F1의 3부리그 격), GP2 등 단계를 거쳐 F1에 입성하는 구조다. 최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단계를 차례대로 밟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사다리(ladder) 오르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 모터스포츠의 박태환·김연아가 나오려면?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카트 대회를 관장하는 CIK-FIA를 두고 세계 대회를 개최하며 카트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OTK그룹(이탈리아)은 세계 최대 카트 제조업체다. OTK그룹이 운영하는 카트 팀인 토니카트는 이 대회에 가장 많은 선수를 출전시켰다. 토니카트는 1958년 창단해 최근 10년간 6명의 카트 세계 챔피언을 배출한 명문 팀이다. 이 팀은 1년에 300만 유로(약 38억원) 이상의 예산을 대회 참가와 선수 육성에 쓴다. 그러나 대회 참가비는 선수들이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유럽에서 열리는 4일짜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인당 2000만원 이상 든다. 39개국 51명이 참가한 카팅 아카데미 트로피 대회에는 한국의 이찬준(14·서초중)도 도전장을 내밀었다.2014년 시작된 아카데미 트로피는 각국 자동차경주협회(ASN)가 추천한 만 13~15세의 카트 선수(국가 당 최대 2명)들이 참가하며 1년에 세 차례 대회를 연다. 이찬준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한국을 대표해 아카데미 트로피에 참가했다. 그는 지난 4월 프랑스 에쎄에서 열린 대회 첫 라운드에서 준결선 4위, 결선 7위에 올라 포인트 11점을 얻었다. 모터스포츠의 불모지 한국 출신 선수가 종합 순위 7위에 오르자 CIK-FIA에서는 대회 소식지에 이찬준의 사진을 실어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찬준은 이번 대회 준결선에서 다른 차량과 충돌하면서 페널티를 받았고, 결선에서 32명의 참가자 중 25번째로 출발선에 서는 악재 속에 최종 순위 15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이찬준은 6월 12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 카트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 2년째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로부터 대회 참가비와 항공비 등을 지원받았다. 7살부터 카트를 탄 이찬준은 한국인 최초의 F1 드라이버를 꿈꾸고 있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 5월 현재 국내에 등록된 자가용(영업용·관용 제외) 대수는 1996만대를 넘어 세계 15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1.55대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러나 국내에서 모터스포츠는 찬밥 신세다. 지난 2010년부터 4년간 전남 영암 KIC에서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개최하며 모터스포츠 붐이 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대한 적자만 안고 계약 기간 7년을 채우지도 못한 채 2014년부터 대회를 열지 못하고 있다. ━ 국내 기업 등의 도움이 절실 대회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KARA가 공인한 국내 성인 모터스포츠 대회는 4개에 불과하다. CJ그룹이 매년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 2006년부터 스톡카(stock car) 경주인 슈퍼레이스를 개최하고 있다. 스톡카는 일반 승용차를 개조해 만든 1인승 레이싱 카로 일반 차량과 외피만 같고 별도의 프레임과 엔진으로 제작한다. 슈퍼레이스는 아시아 유일의 스톡카 레이스로 자리를 잡았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대회를 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를 개최하고 있고, 금호타이어(엑스타 슈퍼챌린지)·넥센타이어(넥센 스피드 레이싱)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회를 후원한다. 몇몇 비공인 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그러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KARA는 올해부터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5라운드)을 개최하고 유망주의 해외 대회 출전을 지원하면서 미래의 F1 드라이버 육성에 나섰다. 이찬준이 첫 수혜자인 셈이다. 국내 모터스포츠 시장이 크지 않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KARA의 노력으로 국내 공인 팀(53개), 공인 경기(45개), 공인 경기장(5개) 등이 계속 늘어나는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두 차례나 유럽 카트 챔피언을 차지했던 마크 로스는 영국 출신 F1 드라이버 젠슨 버튼(36)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포트투갈에서 만난 로스는 “레이스에 대한 관심과 열망, 그리고 일주일에 4번 이상 실전 주행을 할 수 있는 경기장이 갖춰진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F1 드라이버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F1 코리아 그랑프리 심사위원을 맡았던 장성국 한라대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 역시 “충분한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국내 선수들도 세계 무대에서 뛸 만한 기량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이찬준의 아버지 이동원 씨는 “협회의 지원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이의 도전 의지가 강하고, 가능성이 보여 계속 지원을 해 줄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내년쯤 1년에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네덜란드 카트 스쿨 유학을 보낼 계획도 갖고 있다. 이씨는 “카트 단계를 잘 넘어선다 해도 내 힘으로만 끝까지 지원할 수는 없다. 수영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박태환이 나왔고, 피겨에서 김연아가 탄생한 것처럼 모터스포츠의 박태환, 김연아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 등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임채원(32·현대자동차)은 2013년 한국인 최초로 F3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F1 드라이버가 탄생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당시 그는 “드라이버 한 명이 F1에 진출하기까지는 수십억 원이 드는 게 보통이다. F1은 하루 테스트를 받는 데만도 1억5000만원이 든다. 그래서 F1 팀들은 드라이버를 뽑을 때 얼마나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지를 따진다”며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올라오기는 했는데 올라갈수록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임채원은 현재 F1의 꿈을 잠시 접고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랠리 챔피언십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일본의 혼다·닛산·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모터스포츠 팀을 운영하고, 많은 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한다. 일본 내 포뮬러 대회를 후원하고, 유럽 메이커들처럼 유소년 카트 선수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직접 F1팀을 운영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일본에는 51개의 공인 카트 경기장이 있을 정도로 저변도 탄탄하다. 인도네시아 F1 영웅 하리안토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보증과 지원을 받아 올해 매너 레이싱에 입단할 수 있었다. 장성국 교수는 “한국이 정상급 드라이버를 키우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정부 차원의 후원이 필요하다”며 “F1 드라이버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동시에 국내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영재 선임기자·김원 기자

2016.07.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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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이종호 LA중앙일보 논설위원] 우리가 무관심했던 자랑스런 명장면

북 리뷰

현대 경영에서 인문학은 필수가 됐다. CEO, 기업 간부, 고위공무원 너나 할 것 없이 단단한 인문학 콘텐트로 무장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다. 역사도 그중의 하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역사적 지식으로 무장을 했다 해도 막상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딱히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전체 역사를 관통하는 맥락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상당히 유용한 인문학적 교양으로서의 역사 접근법이다. 최근 출간된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은 그런 점에서 꽤 눈길을 끈다.마침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한국사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핵심 논점은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다. 상고사 부분도 논란의 요소들이 잠재해 있다. 그렇다면 다른 시대는 문제가 없을까. ‘한국사 7장면’은 어렴풋이나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저자는 말한다. “민족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긍정의 역사냐 부정의 역사냐가 그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안타깝고 속상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부끄러운 부분만큼 자랑스러운 역사도 충분히 많다. 과거를 너무 미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춰 보는 것도 피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자랑스러운 부분조차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현직 언론인이 강연 형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이야기 한국사로 우리 역사에 대한 맥락을 잡아 주고, 동시에 자부심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저자인 이종호 LA중앙일보 논설위원을 e메일로 만났다.책을 쓰게 된 동기는. “직접적인 계기는 한 공기업의 입사시험 문제 출제와 채점 때의 경험이었다. 당시 출제한 문제가 ‘세계인이 놀랄 만한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였는데 응답자 대부분이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 같은 스타를 언급했었다. 충격이었다. 우리 젊은이들의 역사 인식이 이렇게 스포츠 스타나 TV 드라마, 영화에서 만난 인물에 그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똑똑한 젊은이들인데 우리 역사에 대해 그 정도밖에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 심히 안타까웠다. 주변에 아직도 우리 역사를 비하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도 아쉬웠다. 일제의 폐해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 의식을 좀먹는 식민사관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세계를 무대로 뛰면서 다음 세대를 살아갈 우리 젊은이들이 최소한 이 정도의 한국사 지식으로는 무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정체성 확립 문제라고나 할까.”‘7장면’엔 신라 통일, 과학 기술, 기록문화 등 뜻밖의 장면도 들어가 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책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내 스스로 뽑았다. 대학 때 역사를 공부했던 이유로 평소 늘 역사 관련 책을 취미 삼아 읽어왔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에서 적어도 이런 부분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겠구나 하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주로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에서 골랐고 요즘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처럼 해석상 민감한 부분이 많은 20세기 이후는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저자로서 책에 대해 자평한다면.“대개 전공 학자들이 쓴 글은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려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인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기 쉬운 우리 역사를 나름 재미있게 소개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용상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그동안은 너무 당연시했고 무관심했던 우리 역사의 많은 장면이 세계인들도 놀라워하는 위대한 역사의 일부라는 점을 한 번 더 일깨워 준 것이다.”저자 후기를 보니까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세계인이 놀라는 진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라고 했던데 정말 그런가?“그렇다. 실제로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대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어떻게 그 가난했던 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됐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진부한 이야기지만 외국서 살아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조국이 더 잘 되기를 바라고 조국에 대해 좋은 점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이 너무 어렵고 팍팍하니까 과거 역사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거기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각자 이념의 잣대로 일방적으로만 과거를 평가하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다. 과거 정권의 공과도 있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고 논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역사서 저자로서 요즘 논란이 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우리 역사를 긍정의 역사로 바라보자는 점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국정화라는 수단이 옳은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이렇게 다수 역사학자나 전문 지식인들을 적으로 돌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텐데 아쉽다. 애국심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지 누가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2015.11.22 12:10

4분 소요
글로벌 파워피플[55] 팀 쿡 애플 CEO - 애플의 체질 바꾼 ‘제2의 잡스’

CEO

팀 쿡(54) 애플 CEO는 오랫동안 스티브 잡스라는 거물에 가려왔다. 2011년 1월 잡스가 암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를 대신해 회사를 맡아왔으며 2011년 8월24일 애플 최고경영자가 됐다. 하지만 잡스 없는 애플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애플을 큰 문제 없이 잘 이끌어왔다. 잡스의 힘이 그의 사후에도 계속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쿡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사실 그는 애플의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해온 혁신적인 전문 경영인이다.쿡은 앨러배마주에서 조선소 노동자인 아버지와 약국 직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번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 1982년 졸업했으며 1988년 듀크대의 파쿠아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그 뒤 IBM에 들어가 12년 동안 PC분야를 담당했으며 북미 지역 총괄을 지냈다. 그런 뒤 인텔리전트 전자의 컴퓨터 판매 부분 최고 영업이사도 지냈다.쿡이 애플에 들어간 것은 운명이었다. 그의 영업능력을 눈 여겨 봤던 잡스는 1998년 그를 영입했다. 쿡은 모교인 오번대의 입학식 연설에서 “나는 잡스를 딱 한 번 만나고 애플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컴팩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성적으로 비용 대비 이득을 고려하면 당연히 컴팩에 머무는 게 나았다. 나를 잘 아는 분도 컴팩에서 계속 일하는 게 낫다고 했다. 하지만 딱 5분 간 잡스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내 두뇌나 나를 잘 아는 분의 충고보다 내 직관을 더 믿게 됐다. 내 직관에 따르면 애플에 입사하는 것은 창조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였다. 나는 경영팀에 합류해 이 위대한 미국 회사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업능력 높이 평가한 잡스가 영입그가 애플에서 처음 맡은 직책은 해외 영업 담당 수석 부회장이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제품 주기가 빠른 애플을 낙농회사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유통기한이 조금만 지나면 즉각 문제가 생기는 비즈니스 말이다. ” 하지만 낙농기업이 되려면 이전까지의 체질로는 어림없었다.체질을 바꿔야만 했다. 땅에 정착해서 사는 농부 같은 전자 기업 스타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새 풀을 찾아 즉각 천막을 뜯어 목초지를 옮길 수 있는, 기동성 있는 유목민이 돼야 했다. 익숙한 곡물을 버리고 입에 맞지 않는 고기와 우유, 요구르트로 배를 채울 각오가 돼야 했다.이에 따라 그는 실적이 나쁘고 부담이 큰 직영 공장의 문을 닫고 대신 계약 생산을 시작했다. 이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땅과 ‘신토불이’로 밀착한 농부처럼 몸이 무겁고 정착 기업이던 애플을 몸이 가볍고 항상 움직일 수 있는 이동성 유목민 기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의 결심으로 애플은 수개월에 이르던 재고보관 기간을 며칠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쿡의 이런 경영수완은 애플에 재기의 발판을 제공했다.정보기술(IT) 산업과 같은 기술 산업에서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제품을 제시간에 공급하는 것은 경영의 핵과도 같은 것이다. 잠시만 머뭇거리면 경쟁업체가 즉각 신제품을 출시해 시장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는 빠른 자가 강하고 느린 자는 약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입맛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이 시장에서 이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애플은 놀랄 만한 제품을 주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게다가 깜짝 마케팅으로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왔다. 제품을 내기 전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제품을 출시할 때 고객들을 깜작 놀라게 하고 순식간에 전 세계 매장을 혁명적인 제품으로 쫙 깔아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왔다.쿡은 비용을 성공적으로 관리했으며 디자인과 마케팅 정보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그는 고객의 수요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을 마케팅의 중심에 뒀다. 그 결과 애플은 엄청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2012년 4월 타임은 그런 쿡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포함시켰다.애플을 이끌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그 순위에 오른 것은 지금의 애플을 창조한 공로 때문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2012년 초 그는 애플 이사회로부터 2016년과 2021년 사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주식 100만주를 포상으로 받았다. 쿡은 2012년 합계 3억7800만 달러의 급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경영인으로 꼽혔다.쿡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애플을 이끄는 인물이다. 그를 잘 아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쿡은 최근 공격적인 경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품 개발, 마케팅 등 삼성에 줄줄이 밀려오던 쿡이 과감해지고 있는 것이다. 애플을 살리기 위한 결단이다.5월 28일 쿡은 애플 사상 최대의 베팅을 했다. 음원 스트리밍 비츠뮤직과 고급 헤드폰 제작사인 비츠일렉트로닉스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대가는 30억 달러(약 3조원). 애플의 인수·합병 중 가장 큰 금액이다. 159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한 애플로서는 그리 큰 돈이 아니겠지만 관련 업계에선 전례가 없다.이 발표를 하면서 쿡은 “음악은 너무나 소중하다”며 “우리의 심장은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이 두 회사는 2008년 힙합 가수 출신의 닥터 드레와 지미 어바인이 공동 창업한 기업이다. 비츠뮤직은 11만1000명의 가입자(2014년 3월 기준)를 보유하고 있으며 비츠일렉트로닉스는 2013년 기준으로 130억 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고급 헤드폰 시장의 27%를 점유하고 있다. 이 합병으로 창업자들은 힙합 가수 최초의 억만 장자가 됐다. 음원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비츠의 고성능 이어폰은 수영선수 박태환이 경기 직전 끼고 나오며 주목 받은 바로 그 제품이다. 사실 비츠의 창업자들은 음악인 출신으로 고객의 마음을 잘 읽었다. 지미 어바인은 “컴퓨터와 질 낮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며 “그런 걸로는 우리가 만든 음악을 팬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고 고성능 이어폰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비츠의 고성능 헤드폰은 가격이 300~400달러나 되는데도 인기가 높다. 애플은 이런 고성능 이어폰과 비츠의 스트리밍 사업을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전자산업에 성공한 소니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사들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음악 시장은 스트리밍 업체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연 매출 11억 달러의 기업을 30억 달러에 사기로 한 쿡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쿡은 이 업체의 현재 가치가 아니라 미래 가치에 투자한 것이다. 사실 과거 흔들리던 애플은 음악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2001년 휴대용 음악 재생 기기 ‘아이팟’과 연계 프로그램 ‘아이튠스’를 출시하며 회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폭발적인 잠재 수요를 지닌 음악시장이 IT업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애플이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사이에서 음원 다운로드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스트리밍 시장의 잠재력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스트리밍 산업 매출은 2010년보다 세 배증가했다. 현재 전체 음원시장에서 다운로드가 67%, 스트리밍이 27%를 차지하고 있지만 스트리밍은 고성장세이고 다운로드는 정체 상태라 조만간 역전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애플이 뒤늦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튠스 라디오’를 출시했지만 비츠를 합병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시장 상황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국은 이미 스트리밍 시장의 점유율이 70%에 이른다. 애플이 과감하게 이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애플의 경쟁자인 삼성은 3월에 미국 스트리밍 라디오인 밀크뮤직을 출시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졌다.뿐만 아니라 쿡은 올 가을쯤 스마트 시계 ‘아이워치(iWatch)’를 내놓고 스마트시계 시장에서도 삼성과 한판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은 단일 모델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크기·디자인의 아이워치를 출시해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아이워치는 8월부터 대만에서 시험 생산될 예정이며 앞으로 2∼3개월 안에 대량 생산이 시작돼 9월 말~10월 초쯤에 판매에 들어갈 예정으로 관측된다. 애플의 전통대로 아이워치 출시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다.대량 생산을 통해 전 세계 시장에 동시 출시하는 전략도 여전하다. 아직은 경영전략상 새로운 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미 삼성이 스마트 시계를 내놓은 상황에서 쿡이 어떤 놀랄 만한 제품을 내놓을지도 미지수다. 애플의 아이워치는 이미 세계 최초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쿡의 마음이 급할 수도 있다.“우리는 세계 1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쓰레기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안하는 듯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자신감을 유지할지도 알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디자인과 마케팅에 능한 쿡이 주도하고 있기에 경쟁업체들이 방심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디자인·마케팅 주도아이워치는 IT기기와 의료기기의 융·복합형 기기다. 총 10개가 넘는 센서가 부착되는데 이 중에는 건강과 체력 상태를 점검하는 센서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아이워치 사용자들의 땀을 분석해 그 결과를 의료진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센서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LG전자도 조만간 LG의 첫 스마트 손목시계 ‘G워치’를 공개할 전망이다. 발표장소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구글 개발자대회(IO)’로 보인다. 웨어러블(입는) 기기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웨어’를 적용했다. 모토롤라도 같은 행사에서 스마트 시계 ‘모토360’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다.삼성도 조만간 안드로이드 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스마트 손목시계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IT업체들은 스마트시계 시장이라는 ‘용감한 신세계’를 놓고 한바탕 대결이 불가피하다. 이미 업체 간에는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다. 애플과 삼성은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됐던 2007년과는 반대다.당시 세상에 없었던 스마트폰을 내놓은 애플은 시장을 선도했고 삼성전자는 추격에 바빴다. 그 뒤 특허권 침해를 들어 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소송도 벌이며 삼성전자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일찌감치 웨어러블 제품을 먼저 내놓고 애플이 따라오는 상황이다.쿡의 애플이 스마트워치로 과거의 입지를 되찾을지, 삼성이 수성에 성공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시장 판도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쿡의 입지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잡스에 이어 세계 IT 시장을 주도해온 애플의 쿡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일찍이 그가 간파한 대로 IT시장은 유목민 사회이기 때문이다. 잠시 긴장을 풀면 가축을 먹일 풀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세상 말이다.

2014.07.07 15:53

7분 소요
SEOUL REPORT - 사교육 문제, 끊지 말고 풀자

산업 일반

정부는 일방적인 규제 대신 학생, 학부모와 함께 해결책 모색해야 2300여 년 전 알렉산더 대왕이 아나톨리아 반도를 정복했을 때였다. 그는 전설을 하나 듣게 되는데, 지금껏 한 번도 풀린 적이 없는 어떤 매듭을 풀면 이 시대의 제왕이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그 매듭을 풀겠노라고 나섰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그는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 뒤 “내가 매듭을 풀었다”고 선포했다.최근 아나톨리아 반도, 다시 말해 터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교육 평등주의’를 내세우며 학원을 전면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사교육이라는 매듭을 잘 풀어내 활용하기보다 아예 잘라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이다. 나는 터키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학원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나 같은 사람들은 학원이 터키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안다.사교육은 한국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문제다. 터키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학생들은 주로 시험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다. 시험을 치자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을 피하자고 입시 시험 대신 면접을 도입한다면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돈 많은 학생들은 면접에 합격하기 더 쉬워지고, 반대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불평등하긴 마찬가지다. 먼저 대학 입시 제도부터 손봐야지 무턱대고 학원만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다.높은 사교육 비용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교육과 사교육 비용은 별 관계가 없다. 사교육을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1980년대 과외금지법이 실시됐을 때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오히려 사교육이 음지로 숨어버리면서 가격은 더욱 올랐고, 교육이 공평해지지도 않았다. 많은 가정이 사교육비로 인해 힘들다고 해서 학원을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교실마다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매일 다투는 탓에 불행한 학생이 있는 반면 행복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학생도 있다. 부지런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게으른 학생도 있다. 교사는 최대한 학생들의 차이를 파악하고 개인별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렇다 보니 결국 공교육이란 어느 정도 평균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아무리 똑똑한 학생이라도 진도를 더 빨리 나갈 수는 없고, 게으른 학생을 위해 같은 내용을 몇 번씩 반복할 수도 없다. 인구가 적고 사회가 안정된 나라라면 공교육에 집중 투자해 난관을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공교육만으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학원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학원이라고 해서 입시 학원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공부 이외의 재능를 가르치는 학원도 많다.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는 학교나 입시 학원에서 재능을 배우지 않았다. 본인의 재능에 강사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한국의 모든 학생이 좋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나 카이스트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자식을 오로지 명문대에만 보내려는 부모들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많은 학생의 재능을 없애버린다. 한국 학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재능이 있고, 자식을 어떤 학원에 보내야 유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사다리만 오르려고 하니 경쟁이 지나치고 불평등하게 보이지만, 사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그밖에도 많다.학생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 부모는 나를 과학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고,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공대 전자학과에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찾아 한국 유학을 택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세상을 접했고, 부모를 설득해 전자학과 대신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재주를 발견하고 발휘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것도 사교육 문제 해결의 열쇠 중 하나다.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 자식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모르는 부모는 내버려 둔 채 사교육을 자유시장에 맡기거나 아예 없애려고 나서는 정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 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필자 알파고 시나시(터키)는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이다.

2013.11.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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