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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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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트럼프…‘미국 우선주의’ 정책 본격화

산업 일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현지 시각) ‘미국 우선주의 2.0’ 시대를 선언하며 백악관에 복귀했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해 백악관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이다.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그는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시대는 이제 시작된다”며 “임기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우 단순히, 미국을 최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한 것이다.주목할 점은 대선 시절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했던 공약을 관철할지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40개가 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내렸던 행정명령 및 조치 78건을 철회했다. 이밖에 ‘보편 관세’ 부과 등 기존 정책을 변경하겠다고 언급한 것들도 많다. 이 가운데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비롯해 우리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처들도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한국 자동차·배터리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기차 판매 목표치 기준을 철회하고, 환경 규제도 축소했다. 사실상 전기차 의무화 철회의 첫 단계를 밟은 셈이다. 그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도 폐기했다. 또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제한하는 주(州) 정부 배출 규제를 적절할 경우 폐지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런 조치들은 미국에서 전기차 확산세를 둔화시킬 것으로 평가된다.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린 뉴딜(친환경 산업정책)을 종식하고,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 (이는) 자동차 산업을 구하고, 위대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이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 등을 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판매 목표치 기준을 없애고 전기차 충전소용 자금 집행도 금지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 전망을 어둡게 했기 때문이다. IRA의 폐기를 위해서는 상·하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현재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현재 미국 상원은 공화당 52석, 민주당 47석(민주당 성향 무소속 포함)이고 하원은 공화당 219석, 민주당 215석이다.IRA는 전기차와 여기에 탑재하는 배터리를 대상으로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 핵심인데 이 정책이 폐지될 경우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IRA에 따라 배터리셀에 대해 ㎾h(킬로와트시)당 35달러, 모듈은 ㎾h당 10달러를 환급하는 제도를 통해 분기마다 최대 수천억원의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현대차그룹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가동한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병행하고, 올해 안에 생산량을 연간 50만대까지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보편 관세 부과 움직임…韓 기업들 전략 수정 불가피 ‘보편 관세’ 부과 움직임 역시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것을 공언했고 중국에는 최대 60%의 추가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중국이 펜타닐(좀비 마약)을 멕시코와 캐나다에 보낸다는 사실에 근거해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월 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대중국 관세 부과 시점과 관련해 “아마도 2월 1일”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 이민 및 마약 유입 방지에 노력하지 않는다며 각각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는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유럽도 ‘보편 관세’의 그물망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의 무역 적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은 미국을 악용하지만,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아주 아주 나쁘다(very, very bad)”고 말했다. 또 “그들은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것(they're going to be in for tariffs)”이라며 “그것이 (무역) 공정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조처는 그가 공언해 온 보편 관세 정책의 시작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미국의 관세 선전포고로 중국이 맞대응하는 경제 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우리 정부와 기업이 가운데서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 일부 우리 기업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중국의 대미 수출 둔화는 중국으로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 가운데 85.86%가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부품 등을 포함한 중간재다. 한국은행이 2024년 발표한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대중국 수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이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멕시코를 통해 북미 지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 전략도 수정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멕시코·캐나다 3국은 ‘무(無)관세’를 표방한 북미 협정(USMCA)을 맺고 있다.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가 없다는 뜻이다. 이 정책을 이용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에서 가전 공장과 TV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기아는 몬테레이에서 연간 자동차 25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의 합작공장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두고 배터리 모듈을 양산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캐나다에 배터리 양극재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기업들이 미국 관세를 염두에 두고 전략을 새로 짜야 하는 것이다.지난해 12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 대미 수출과 부가가치 효과를 중심으로’를 보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확대와 보편 관세 부과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의 피해도 막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포함됐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관세 10%, 중국은 60%를 부과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9.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멕시코·캐나다에는 10%, 중국은 60%, 한국을 포함한 그 외 국가들에 20%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 효과는 13.1%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2025.01.23 10:00

5분 소요
늙어가는 한국…‘초고령사회’ 진입, 위기일까 기회일까

정책이슈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어섰다. 2024년 12월 24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5122만1286명인 것을 고려하면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국제연합(UN)은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통계청이 2019년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과 전망’을 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67년기준 46.5%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 중 65세 이상 구성비 18.6%와 비교하면 2.5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이다. 국가와 사회, 개인 모두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것은 2000년이다. 고령사회로 전환한 것은 2017년, 이후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었다. 당초 2026년쯤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뒤 1년 정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보다도 1년 더 빨리 초고령사회가 찾아온 셈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기까지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73년 ▲독일은 40년 ▲일본은 24년 걸렸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고령자 비중이 얼마나 빨리 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0.76명이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2024년 3분기 기준)은 ‘시니어 대한민국’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사회적 부담 증가 ▲개인과 사회의 준비 부족 ▲복지 체계와 제도적 대응 미흡 등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더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일본 총무성이 2023년 국제연합(UN) 인구추계 자료를 활용해 인구 10만명 이상 국가(지역) 200곳의 65세 이상 인구 추정 비율을 조사한 결과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9.1% 수준이었다. 이밖에 ▲이탈리아(24.5%) ▲핀란드(23.6%) ▲푸에르토리코(23.4%) ▲포르투갈(23.3%) ▲그리스(23.1%) ▲독일(22.7%) ▲불가리아(22.3%) 등이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기술 발달로 인류의 기대 수명이 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시니어 사회의 확대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도 있다. 경제 부담 증가‧세대 갈등, 초고령사회의 그림자고령자 수 증가가 불러올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명을 밑도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향후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령자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감소하고 노동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제 성장률 둔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동인구가 줄면 세수가 감소하는데, 고령자에 대한 사회 지원은 갈수록 확대되면서 연금을 비롯한 복지비용이 증가하는 문제도 있다. ‘국민연금 고갈’ 우려에 연금 개혁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는 연금개혁과 관련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연금 개혁은 지체될수록 그 부담이 미래 세대에게 넘어가는 만큼 우리 세대가 책임지고 시급히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했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나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20대들도 (향후) 연금·기금 고갈에 직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금개혁을 출발해야 될 것 같다”며 “연금개혁에서 국민연금만 놓고 보면 재정 지속 가능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정 지속가능성은 중요한 것 중 하나”라며 “보험료율은 (여야가 21대 국회서 합의한 13%보다 더 높은) 19%까지는 올려야 한다”라고 답했다.그렇다면 초고령사회는 무조건적인 위기일까. 에스코 아호(Esko Aho)전 핀란드 총리는 인구 고령화가 꼭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이데일리 전략포럼 기조연설자로 한국을 방문한 아호 전 총리는 ‘정년 연장’(Retirement extension) ‘일하는 노인’(Active senior) ‘더 적은 돌봄’(Less care)을 언급한 바 있다. 아호 전 총리는 “과거 핀란드에도 사람들에게 언제 퇴직할 것인지 물으면 ‘63~65세 정도’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시대가 바뀌었고 건강과 능력이 허락한다면 더 일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65세라는 나이는 산술적인 수치라는 것이다. 그는 회사가 보장하는 정년 연장이 아니라 노동자가 진짜 노동을 그만두는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하나의 추세가 됐다며 이런 변화는 한국에도 매우 빠르게 다가오고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노인 연령↑ 정년 연장 논의 시작…기업 부담 줄여야 일각에서는 ‘노인’을 규정하는 나이 기준을 높이고 정년 연장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이중근 대한노인회 회장(부영그룹 회장)은 노인 기준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매년 1년씩 상향 조정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이 회장은 ‘제19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에서 “현재 노인 인구는 1000만명이지만, 2050년에는 2000만명으로 추산된다”며 “나머지 인구 3000만명 중 20세 이하 1000만명을 제외하면 남은 2000만명이 2000만 노인 복지에 치중해 생산 인구가 없어질 것이라는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정년 연장 첫해엔 정년 피크 임금의 40%를 받고, 10년 후인 75세에도 20% 정도를 받도록 해 (노인의) 생산 잔류 기간을 10년 연장하면 초고령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른바 ‘건강한 노인’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인을 가리키는 나이 기준이 65세로 정해진 것은 지난 1981년 노인복지법의 경로 우대 조항이 제정되면서다. 당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66세였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대부분 근로하기 어려운 ‘노인’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2023년 OECD 보건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 수명은 83.6세로 나타난다. 기대 수명이 평균 20년가량 늘어난 셈이다. 정년 퇴직 이후에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건강과 경륜을 겸비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60대는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공감대도 옅어졌다. 지난 2020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노인 실태조사를 보면 노인들은 스스로 70.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에서도 정년 연장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된 정년 연장과 관련해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고령자고용법)이 3건 올라와있다. 골자는 현재 60세인 근로자 정년을 65세로 높이자는 것이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근로자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해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자는 내용이다. 다만 단번에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적용하도록 한다. 시행일부터 2027년까지는 정년 63세, 2028년부터 2032년까지는 64세, 2032년 이후에는 65세를 적용한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자의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시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 후 1년 뒤 ▲상시 50명 이상~300명 미만 사업장은 시행 후 2년 뒤 ▲상시 300명 이상 사업장은 시행 후 5년이 경과한 날부터 적용하자는 것이다. 다만 해당 개정안은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인권위원회도 정년 연장을 권고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인권위는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제23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할 것을 권고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상 법정 정년 연장 관련 제도개선 권고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경제성장 잠재력 약화가 우려되고, 고령층의 건강 수명은 상향되고 있다”며 “고령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고령화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령자의 고용을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는 등의 우려에 대해서는 임금피크제의 실효적 운용 방안을 검토할 것을 함께 권고했다. 또한 ▲세제 혜택 ▲금융지원 ▲행정지원(인허가 등) ▲인건비 지원 등 기업을 향한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도 언급했다.정부도 노인 기준 나이를 올리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는 “연세 드신 분들을 활용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며 “노인 연령 상향 문제를 당사자인 대한노인회가 제시한 것은 우리가 굉장히 잘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현실적으로 눈 앞에 있는 (생산성 향상 방안) 하나는 노동 인력을 늘리는 것”이라며 “청년을 어떻게 하면 경제에 좀 더 빨리 참여시킬 수 있을지도 중요한 지점이겠지만, 아직도 여성과 연세 드신 분들에 대한 경제 활동 참여 확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다만 정년 연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 총리는 “정년 제도(개편)를 넘어서서 노인으로서 계속 일하는 분에 대해 어떤 제도를 두는 것이 좋을지를 논의해야 하고, 이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야 하는 분야”라고 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년제는 대기업·공공기관 위주로 도입되고 있고, 청년층이 대기업·공공기관을 선호하는 점에서 정년연장은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청년층 일자리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노사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무원·대기업 정규직만 수혜?…디테일 고민해야 일각에서는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 정년 연장 정책을 우선 시행할 경우 중소기업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기업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어느정도 직원 수를 늘려도 대응이 가능하다. 또 정년이 늘어난 직원을 필요한 사업군에 전환 배치하는 등 인력 활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에비해 중소기업은 이런 여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고용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등 약자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년 연장 정책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부터 우선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은퇴 후 준비에 대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높고 임금 수준이 높은 공무원·대기업 정규직은 은퇴 이후에 대한 준비도 잘 돼있는데 정년까지 연장되면 이들의 노후는 더 탄탄해 진다. 반면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직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은퇴 준비가 미흡한 편이다. 정년 연장이 늦어지면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경우 법정 정년은 한국과 같은 60세이지만,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고용 연장’에 주목했다. 2013년 고령자 고용 안정법을 시행하면서 근로자가 희망하면 65세까지 고용하도록 했다. 사실상 정년을 65세로 늘린 것이다. 현재 99%에 달하는 기업이 65세까지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개별 기업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고려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정년 폐지, 65세까지 정년 연장, 65세까지 계속 고용’ 등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대부분 계속 고용을 택했다. 그러면서 정년 이후 계속 고용하는 인력에 대한 평가와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업무량을 조정하고 임금도 현역(60세 이전) 대비 약 50~60% 수준으로 낮췄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정년 연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정책을 시행하며 생길 수 있는 소외나 갈등, 부작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0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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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 민관 노하우 아울러 여전업 부흥 꾀한다 [피플&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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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완규 여신금융협회 회장의 항해 시간이 절반을 넘겼다. 정 회장은 민간과 공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부통제 개선안을 마련하고 카드사 공통 결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등 업계가 필요로 하는 목소리를 담아냈다. 그러나 카드 가맹수수료 재산정이나 자금 조달 수단 다변화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어 앞으로의 항해에서도 고민이 남아 있다.정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6일 제13대 여신금융협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당시는 전임자인 김주현 여신협회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때였다. 이 때문에 여신협회장 자리가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주목받으면서 한층 무거워졌다.더구나 정 회장 취임 당시는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리 인상이 본격화해 여전사들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이 불 보듯 훤해진 시기였다. 국내에선 ‘레고랜드 사태’로 한국의 채권 신용도가 폭락하면서 여전업계가 곤혹에 처하기도 했다.이런 대내외적 어려움에도 정 회장은 적임자로 인정받아 여전업계 리더로 자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공직과 민간 금융시장을 두루 거치며 금융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 와 ‘민관(民官) 올라운더(All-rounder)’로 평가받는다. 실제 정 회장은 금융위원회에서 오랜 기간 일한 데에 한국증권금융 대표·토스뱅크 사외이사 등 민간 경험까지 갖췄다. PF 위기에 발 빠른 지원펀드 구축민관의 노하우를 함께 장착한 정 회장은 취임 이후 1년 7개월간 닥쳐온 여전업계의 다양한 시련을 해소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우선 정 회장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연착륙을 돕기 위해 지원펀드 조성에 나섰다. 여신협회는 지난해 9월 업계 자율적으로 PF 사업장의 재구조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여전업권 PF 정상화 지원펀드’의 출범식을 가졌다.부동산 PF는 여전업권, 특히 캐피탈사들의 주요 영업자산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정 회장과 여신협회가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 정 회장은 “여전업권 PF 정상화 지원 펀드는 민간 주도의 사업장 정상화 추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금융권 펀드 조성·운용을 통한 자율적인 PF 사업장 정리와 재구조화를 강조했다.또 정 회장은 여전업권 내부통제 개선안을 마련해 여전사들의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여전업계는 수신 기능이 없어 은행이나 상호금융에 비해 내부통제 사고가 많지 않았으나, 지난해 8월 롯데카드에서 발생한 105억원 배임 사건을 계기로 그 필요성이 대두됐다. 여신협회와 금융감독원은 이 개선안을 지난 3~4월부터 시행했다. 개선안을 통해 ‘표준내부통제기준’, ‘금융사고 예방지침 표준안’ 등이 새로 제정됐다.아울러 정 회장은 지급결제 시장에서 핀테크들의 빠른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카드업계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여신협회와 8개 카드사, 3개 밴(VAN)사, 1개 간편결제사는 ‘모바일 결제 공통규격 추진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QR결제 공통규격을 국제규격인 ‘EMV QR’로 정하는 게 협약의 골자다. 앞서 2022년 12월에는 오픈페이(앱카드 상호연동 서비스)를 선보였다. 오픈페이는 고객이 1개의 카드사 앱에서 다른 회사의 카드까지 모두 등록·사용·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다.‘적격비용 재산정’은 여전한 숙제하지만 정 회장은 카드사들의 오랜 문제인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란 카드사의 자금조달·위험관리·일반관리·마케팅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3년마다 가맹점 수수료를 다시 책정하는 제도다. 2012년부터 정부는 3년마다 적격비용 재산정을 통해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왔다. 현재 연 매출 30억원 이하 우대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는 0.5~1.5% 수준으로 매우 낮아졌다. 문제는 카드사들이 본업인 가맹점 수수료에서 사실상 수익을 얻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정종우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현재 부가가치세 세액공제를 감안하면 전체 가맹점의 약 92%가 실제 수수료율이 없거나 오히려 환급받고 있다”고 꼬집었다.정 회장은 또한 여전사들의 자금조달 통로를 다각화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규제 완화를 끌어내야 하는 과제도 품고 있다. 그간 여전사들은 자금 조달 비용이 곧바로 수익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계속해서 금융당국에 자금 조달 방안을 늘려달라는 목소리를 내왔다.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 같은 업계의 과제를 인지하고 여전업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영업규제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신용카드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카드 가맹점 수수료 제도 개선이나 ▲신용카드 사용처 화대 및 지급결제 업무 수행 ▲부수업무 자산 기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한 조달 수단 다변화 등 업계의 과제를 놓치지 않고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2024.05.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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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우리는 ‘공격형’, KB·하나는 ‘안정형’

은행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새로운 수장을 맞으면서 리딩금융지주 타이틀 탈환 경쟁의 새판이 깔리고 있다. 두 지주사가 영업 확장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는 글로벌 은행권 위기 확산에 대비한 내부통제 강화와 상생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상식 깨온 진옥동 회장, 비금융 강화 예상올해부터 신한금융을 새롭게 이끌게 된 진옥동 회장은 3월 23일 취임사에서 “신한금융은 끊임없이 도전하며 ‘최초’라는 수식어를 차지해 왔다”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혁신의 DNA를 지켜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방식으로 안정적 성과를 거두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금융업 이상의 금융을 개척하자”며 기존의 상식과 틀을 깨 모든 분야에 녹아들어가는 금융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 회장이 이끄는 신한금융은 은행과 보험, 카드 등 기존 산업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비금융 산업에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 회장은 신한은행장 재임 시절부터 금융혁신을 이뤄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한은행이 은행권 첫 배달앱 ‘땡겨요’로 비금융 서비스에 도전해 약 1년 만에 성과를 만들어낸 것도 진 회장의 행장 시절 성과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정식 출시한 땡겨요는 같은해 12월 말 기준으로 가입자 수 165만명, 참여 가맹점 수 6만여개를 달성했다. 데이터앤리서치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땡겨요는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 6곳 중 관심도와 시장점유율에서 배달특급과 위메프오를 밀어내고 4위를 차지했다. 데이터앤리서치 관계자는 “땡겨요 앱이 론칭 1년도 안 돼 급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한금융이 새로운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이미 조용병 전 회장 시절 적극적인 비은행 계열사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조 전 회장은 회장 임기 6년 동안 다양한 금융사를 인수했다. 2019년에는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을 인수해 2021년 7월 신한생명과 합병했고, 이 외에도 아시아신탁 인수 후 신한자산신탁 출범, 신한자산운용 잔여 지분 인수 등으로 사실상 전 금융권을 아우르는 그룹 체제를 만들었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면서 현재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 내 외국계은행 1위의 입지를 다졌다. 이를 바탕으로 신한금융의 지난해 총 당기순이익은 4조64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다. 4조1732억원을 기록한 KB금융을 따돌리고 리딩금융 타이틀을 얻었다. 우리금융, 증권사 인수 시 업계 판도 바뀐다신한금융 다음으로 관심을 받는 곳은 우리금융이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제 9대 우리금융 회장에 취임했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기업 문화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3월 24일 취임사를 통해 “조직에 부족하거나 잘못된 관행이 있는 분야는 과감한 혁신을 지속하겠다”며 “분열과 반목의 정서, 낡고 답답한 업무 관행,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의 문화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이 과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으로 각 은행 출신 사이에 힘겨루기가 내부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새로운 기업문화 정립’에 대한 의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우리금융은 새 은행장 선임에도 돌입했다. 우리금융 자회사대표추천위원회(자추위)는 이원덕 우리행장의 후임 행장 후보로 이석태 국내영업부문장, 강신국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박완식 우리카드 사장,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사장 등 4명의 롱리스트를 선정했다. 자추위는 5월 말에 최종 후보를 발표한다. 특히 임 회장은 증권사, 보험사 인수합병(M&A)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의 지난해 총 당기순이익이 2조9034억원으로 KB국민은행의 2조7283억원보다 높았다. 하나은행의 3조1117억원, 신한은행의 3조457억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우리금융이 증권사와 보험사를 가지게 되면 지주사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 KB금융·하나금융, 내실 있는 지속성장에 방점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안정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임기는 올해 11월 20일까지고,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기는 올해로 1년이 된 만큼 지배구조의 큰 변화를 겪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의 경우 올해 1월 최대 계열사인 이승열 하나은행의 행장이 취임하는 등 계열사 대표 인사도 끝냈다. 윤 회장은 3월 24일 열린 주총에서 지주 핵심과제로 ▲내실 성장과 회복탄력성 강화 ▲글로벌사업 및 비금융사업 성과 확대 ▲넘버원금융 플랫폼기업 ▲지속가능 경영선도 ▲개방적·창의적인 조직문화 구현 등을 제시했다. KB금융이 은행을 비롯해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만큼 내실 있는 성장을 통해 수익 기반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미래 투자 재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도 최근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교훈 삼아 고객과의 신뢰 구축과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상생금융을 확대해 자산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함 회장은 3월 27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그룹임원간담회에 참석해 “하나금융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앞장서겠다”며 “우리 모두가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하나금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2023.03.3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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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

산업 일반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2022년 10월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이재용 부회장 발언) 27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직에 올랐다.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10년, 부친인 이건희 회장 별세 후 2년 만이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결을 거쳐 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취임사를 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역시 별도 취임사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다만 지난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당시 이 부회장이 사장단과 만나 언급한 소회를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사실상 취임사를 대신한 이재용 회장의 각오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소회를 통해 “(이건희) 회장님의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라고 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며 위기의식과 우려를 동시에 표했다. 그는 국내외 사업장을 두루 살펴본 결과 “절박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인재와 기술’을 강조했다.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으고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도 했다.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회장은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면서도 상황 변화에 유연하고, 우리의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이 자신과 임직원이 하나 되는 미래의 삼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며 자신이 ‘그 앞’에 서겠다고 밝혔다. ━ 복권 후 활발한 대외 활동, 경영 전면에 나서 이재용 회장은 지난 8월,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활발한 대외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기공식과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캠퍼스의 세계 최대 바이오 의약품 생산 시설 바이오로직스 4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이 밖에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S, 삼성생명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방문하며 임직원들과 ‘셀카’를 찍는 등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멕시코와 파나마, 영국 등을 돌며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활동에도 공을 들였다. 한편 이 회장은 최근 2기 삼성준법감시위원회와 직접 만나며 ‘4세 무승계 원칙’을 확인하고 준법위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2022.10.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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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체 갑질’ 수술대…‘공정위 칼날’ 이커머스로 향할까

유통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컬리에 이어 SSG닷컴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하면서 이커머스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번 현장조사가 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지난 16일 한기정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지 3일 만에 이커머스 업체에 칼날을 겨누면서 현장 조사에 이어 고강도 규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컬리 이어 SSG닷컴도…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여부 점검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19일부터 5일 일정으로 진행된 서울 역삼동 SSG닷컴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조사에서 공정위는 SSG닷컴이 납품업체 대금 지급과 판촉행사 비용 부담 등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상품 판매대금을 매월 판매 마감일부터 40일 이내에 납품업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이 법은 또한 사전에 약정 없이 판매촉진비용을 납품업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SSG 관계자는 “현장조사가 있었고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알수가 없다”면서 “조사 여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도 어렵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가 업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말에도 납품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컬리 본사를 찾아 현장조사를 벌인 바 있다. 컬리가 일방적으로 판매장려금을 결정해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컬리는 올해 1월부터 일정 비율 이상 매출이 증가한 모든 납품업체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는 정책을 적용해왔다. 이커머스 업체의 갑질 혐의를 적발한 사례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네이버와 11번가, 위메프, 인터파크, 지마켓, 쿠팡, 티몬 등 7개 오픈마켓 사업자의 판매자 이용약관을 심사해 불공정 약관 조항을 적발했고, 7개 기업은 문제가 된 약관 조항을 자발적으로 시정하기로 했다. ━ 이커머스, 자율규제 도입 앞두고 현장조사 방향성에 집중 공정위의 잇따른 이커머스 업체에 대한 현장조사에 업계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현재 쿠팡·롯데온·11번가 등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 전반적으로 매출 하락, 적자 심화 등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을 경우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규제 완화 기대와 상반된 모습이기도 하다. 당초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를 위한 규제개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플랫폼 업계가 입점 업체와의 거래 관계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규율을 만들고 상생하는 방안이다. 윤석열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을 줄이고 '자율규제'에 방점을 찍으면서 이전 정부에서 추진되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이 사실상 폐기되는 듯 했으나 다시 요 민생 입법 중 하나로 채택하면서 주요 쟁점 이슈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공정위의 이커머스기업 현장 조사 방향성도 바뀌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온플법은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기업들이 입점 업체를 상대로 하는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필수기재사항을 명시한 계약서 작성·교부 의무 ▲계약내용변경 시 사전통지 의무 ▲불공정행위 금지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온플법이 채택되면 이커머스의 성장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가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다만 공정위 측은 자율규제와 별개로 유통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불공정거래를 할 경우 제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급속히 성장한 온라인 유통 분야를 비롯해 가맹·유통·대리점 분야의 우월적 지위 남용행위에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대규모유통업법 관련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대한 현장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 정부가 플랫폼 분야 자율규제 기조를 보이고 있는데 공정위가 국내 유통 공룡인 신세계그룹까지 겨냥한 것을 보고 이번 조사가 규제의 방향으로 흘러갈지,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조사에 그칠지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고 말했다. 송현주 기자 shj1004@edaily.co.kr

2022.09.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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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 외교의 다양성 보여준 윤 대통령 취임식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해 특사 외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특사’에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이를 유난히 자주 활용하고 있어서다. ━ 알 나흐얀 대통령 조문에 대사보다 높은 특사 ‘묘수’ 윤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의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대통령이 5월 13일 별세하자 조문 사절로 장제원 의원을 조문 특사로 파견했다. 할리파 국왕은 UAE를 이루는 7개 에미리트(이슬람 군주인 에미르가 다스리는 나라) 중 가장 크고 석유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부다비의 에미르다. UAE는 가장 큰 에미리트인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대통령을, 둘째로 큰 두바이의 에미리트가 총리를 당연직으로 맡는다. UAE는 할리파가 2014년 병상에 눕자 동생인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이 왕세제 신분으로 국정을 총괄해왔다. 이번 할리파가 별세한 다음 날인 5월 14일 대통령을 승계했다. 무함마드는 중동에서 MBZ라는 약칭으로 불리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UAE는 한국이 건설한 바라카 원전 4기가 가동·건설 중이고 한국산 요격미사일인 천궁Ⅱ 수출 계약을 맺을 만큼 군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군주가 세상을 떠나자 윤 대통령은 현지 대사보다 격이 높은 장 의원을 특사로 파견해 MBZ를 만나게 함으로써 관계를 이어나갈 토대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 취임 직후라는 시기와 맞물려 조문 사절로 보낼 고위관료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대통령 주변 인물을 특사로 보내는 묘수를 찾은 셈이다. 특사를 활용하는 방법의 하나다. 단순한 고위 관료가 아닌 최고 지도자의 측근으로서 뜻을 헤아리고 메시지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을 파견하는 특사 외교의 한 전형이다. 윤 대통령이 5월 17일에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다보스포럼’에 파견할 특사단장으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을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나 의원을 단장으로 길정우 전 의원,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김상협 제주연구원장,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총장, 정인교 인하대 교수 등을 특사단으로 파견한다. 다보스포럼은 통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연초에 개최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연기돼 5월 22~26일에 양지 다보스에서 열리게 된다. 이는 새 정부 출범 뒤 글로벌 다자 회의에 대한 첫 대통령 특사 파견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사단은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면서 같은 스위스의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페터 마우러 총재와 면담도 할 예정이다. ICRC는 북한에서 드물게 활동 중인 국제인도주의기구로, 특사단은 마우러 총재와 만나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도적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다보스 특사단 파견을 발표하면서 “주요국 대표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공식·비공식 면담으로 전환기의 국제질서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공동 이익에 바탕을 둔 한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부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가치외교를 강화하고 인도주의 활동 등에서 한국의 역할과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제 안보와 기후 변화에 대한 윤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통상 지금까지 이러한 외교정책 방향 전환을 하게 될 경우 역대 대통령 상당수가 직접 다보스 회담을 찾아가 전 세계 정부와 기업·기구·단체의 정상급 인사들과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이를 직접 설명해왔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한 데다 21일의 한미정상회담 등으로 다보스포럼을 직접 참석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에도 나왔던 중량급의 나경원 전 의원을 다보스에 특사로 파견키로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무게 있는 인물을 특사로 보냄으로써 대통령의 의지가 실렸음을 보여준 셈이다. 향후 나 전 의원에게 비중 있는 일을 맡길 수도 있고, 나 의원에게 국제무대에서 다보스 특사단장으로 활동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결정일 수도 있다. 특사 임명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파장의 하나다. ━ 인수위원회 출범과 함께 미국에 특사 외교 시동 건 尹 사실 윤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특사를 적극적으로 파견해왔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4월 3일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이라는 이름의 특사를 미국에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특사 외교의 불을 지폈다. 대표단에는 국민의힘 박진 의원이 단장으로, 외교관 출신 조태용 의원이 부단장으로 각각 참석했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표세우 예비역 소장(전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강인선 당선인 외신대변인 등 7명이 대표단에 포함됐다. 중국·일본·국방·경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이 포함된 것이 특이하다. 취임 전이니만큼 특사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사실상 윤 당선인이 직접 파견한 특사의 격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한미동맹 강화’를 내걸고 당선했으니만큼 윤 당선인으로선 미국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표단은 한미 정상회담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미국과 외교 정책 조율에 나섰을 것으로 보인다. 특사 중 박진 단장은 외교부 장관으로, 조태용 의원은 주미 대사로 발탁됐다. 윤석열 외교를 직접 시험해본 셈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백악관은 윤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하는 축하 사절단으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그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을 단장으로 하고, 한국계 인사 4명이 포함된 8명을 보냈다. 미국에선 퍼스트레이디를 사실상의 특사로 보내는 일이 잦은 편이다. 실무 능력보다 상징성에 무게를 두는 파견이다. 현재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질 바이든 여사는 2021년 도쿄올림픽에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갔다. 코로나19 등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퍼스트레이디라는 비중 있는 대통령 가족의 방문으로 성원을 보낸 셈이다. 질 바이든 여사는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듬기도 했다. 미국에선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 부통령이 탄생하면서 퍼스트 젠틀맨도 처음 생겼다. 변호사 출신인 엠호프를 외교 특사나 사절 단장으로 보내는 것은 그만큼 상징성과 화제성이 있다. 미국 행정부 차원에선 엠호프 단장과 장관급인 마틴 월시 노동부 장관 등 5명, 의회 2명, 민간 1명으로 이뤄졌다. 민간 부문 축하사절로는 소설 ‘파친코’를 쓴 한국계 이민진 매사추세츠주 앰허스트대 레지던스 작가가 참석했다. 그가 쓴 소설 ‘파친코’는 최근 애플TV플러스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됐다. 한국계인 토드 김 법무부 환경 및 천연자원 담당 차관보, 린다 심 백악관 대통령 특별보좌관도 취임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사실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의 취임식에 파견한 특사 격이다.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은 윤 대통령에게 바이든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다만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사람이 겹치는 일을 막기 위해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 중량급 실무 책임자는 오지 않았다. 단발 특사 파견과 계속 진행되는 외교 업무의 다른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 특사 외교로 한일관계 복원…중국 관심도 이끌어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4월 26일 정진석 국회 부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이들은 이날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단장은 기시다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했다. 일본은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식에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을 취임 사절로 보냈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 기시다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한일 간에 특사 외교가 복원된 셈이다. 이를 확대하고 정례화해 한·일 정상 회담과 외교-국방 등 장관급 정기 회담을 열게 되면 정부 차원의 한일 관계 복원이 이뤄지는 셈이 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하야시 외무상은 윤 대통령에게 “한일, 한미일의 전략적 협력이 이 정도까지 필요할 때는 없었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강력한 복원 의지를 나타낸 셈이다. 특사 외교의 힘이다. 이런 적극적인 특사 외교에 놀랐는지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별 대표로 왕치산 (王岐山) 부주석을 지명하고 대표단과 함께 윤 대통령 취임식에 보냈다. 한국 대통령 취임식 특사로는 유례가 없는 고위급이다. 왕치산의 파견은 중국의 다급한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낮은 급의 외교관을 주로 보내왔던 주한 중국대사의 격도 앞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축하사절로 참석한 왕치산 부주석이 취임식 날 대통령실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저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민감한 문제를 타당히 처리하는 것’을 포함한 5가지 건의 사항을 말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감한 문제는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라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욍치산이 축하사절을 넘어 민감한 외교·국방·주권 문제를 거론하는 특사의 노릇을 무게를 둔 셈이다. 특사는 원래 ‘특정 문제를 처리할 목적으로 특별 임무를 맡겨 파견하는 일시적인 대표 사절’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문제에는 일시적으로 협의하고 절충해야 할 외교 사안이나, 의견을 발표해야 하는 국제 행사 참석, 또는 국가지도자의 취임식 등 특정 행사 참석이 포함된다. 대사 등 상주 외교사절은 아니지만, 지도자가 직접 고르고 임무를 맡겨 파견하는 만큼 무게 면에서는 더 비중이 큰 게 일반적이다. 왕치산은 이를 활용해 축하 사절과 외교 사안 해결 특사를 겸한 셈이다. ━ 최고 권력자의 외교 사절, 나라의 문화 수준과 국력 좌우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실린 특사 파견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역사적인 그림 한 점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런던의 한복판에 있는 트라팔가르 광장의 뒤편에는 웅장한 네오클래식 건물이 우뚝 서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다. 이곳의 컬렉션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사들(The Ambassadors)’이라는 작품이다. 튜더 왕조의 헨리 8세(1509~1547년 재위)가 왕위에 앉아 있던 1533년 독일 출신의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년)이 그린 걸작이다. 1890년 내셔널 갤러리가 구매해 같은 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다. 미술사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 특히 알프스 북부의 비이탈리아 지역으로 르네상스 예술이 확산하면서 탄생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의 한스 홀바인은 영국으로 건너와 걸작을 남겼다. 이 작품은 동시에 당시 외교 사절의 모습을 그린 드문 작품으로 관심을 끈다. 한 국가와 왕조, 왕실, 군주를 대표해서 다른 나라에 파견된 인물들의 품위와 우아함, 그리고 자부심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림에 나온 인물은 영국 런던 주재 프랑스 대사인 장 드 당트빌과 조르주 드 셀브다. 당시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의 왕비(나중에 이혼 당하고 처형됨)이던 안 볼레인이 의뢰해 런던에서 살던 한스 홀바인이 이들을 그리게 해서 선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파견한 프랑스 군주는 프란시스 1세(1515~1547년 재위)로, 르네상스 예술을 진흥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한 인물로 명성이 높다. 외교 사절이 한 나라의 문화 수준과 국력을 좌우함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드 당트빌이 영국 왕비와 친분을 쌓다가 영국에 머물던 당대 최고의 르네상스 화가를 동원해 이들을 그리게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프랑스로서는 영국 군주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친밀한 관계를 쌓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역으로 영국으로선 당대의 문화 국가이자 국왕이 문화예술의 후원자인 프랑스의 군주 특사인 인물에게 영국에서 활동하던 한스 홀바인이 그들의 모습을 우아하게 그리게 함으로써 서로 자국의 문화적 자부심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상 독일 출신 화가가 그린 그림을 매개로 영국과 프랑스가 치열한 문화 경쟁을 벌인 증거이기도 하다. 그 이면에 또 다른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외교는 이처럼 우아함의 외투를 씌운 근육질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특사 외교가 잘 보여준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5.23 19:00

8분 소요
尹 정부 무늬만 ESG?...기업들 '자유' 날개 펴나

산업 일반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들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경제계의 화두로 떠오른 ESG도 그 중 하나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따온 ESG는 국제사회에서 기업 활동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 공식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민관합동 ESG 컨트롤타워 출범 등을 공표했지만, 오히려 기존보다 후퇴한 정책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친기업 성향에 따른 규제 철폐로 기업의 부담이 이전보다 오히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 ESG 컨트롤타워 언급한 인수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새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새 정부는 공식 출범 전부터 ESG 혁신성장을 거론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지난달 29일 안철수 당시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은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 청년 기업인 및 주요 기업인과 ESG 정책을 논의했다. 인수위에서 밝힌 새 정부의 ESG 혁신성장 관련 대표 추진 과제는 ▶디지털 기반의 ESG 혁신성장 인프라 구축 ▶민간의 자금이 ESG 우수기업에 투자·지원될 수 있도록 금융인프라 고도화 ▶에너지·탄소 분야 신산업 및 사회적 산업·서비스 육성 ▶중소·벤처기업 ESG 지원을 위한 플랫폼 구축 등이다. 이날 안철수 위원장은 "기업의 ESG 의견을 듣고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ESG 표준 마련 등 기업의 ESG 활동 지원을 위해 민관합동위원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사회적 책임,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에만 투자·거래하겠다고 공헌한 바 있다"며 "블랙록 등 세계적 펀드들도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 정부에서는 규제 완화 등 기업에 자율권을 주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려는 모습"이라며 "새 정부에서는 ESG 관련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정책 후퇴, 기업 부담 없어" 윤석열 정부에서 오히려 ESG 정책이 후퇴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ESG 중 'E'에만 치중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 윤석열 정부가 내건 11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 산업 생태계 강화 ▶탄소중립 이행 방안 마련으로 녹색경제 전환 ▶기후위기에 강한 물 환경과 자연 생태계 조성 ▶미세먼지 걱정 없는 푸른 하늘 ▶재활용을 통한 순환경제 완성 등 환경 관련 정책이 주를 이룬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핵심 문제는 재벌문제인데 사실상 G(지배구조)를 포기했다고 본다"며 "국정과제만 봐도 민관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SG 중 'G'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재벌 중심 지배구조에 따른 한계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의 평가도 저조하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간한 'CG Watch 2020'에 따르면 한국은 총점 52.9%로 호주 포함 아시아 12개 국가 중 9위에 머물고 있다. 해당 평가 항목에는 상법 개정, 주주총회 활성화,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이사회 성별 다양화 등이 포함된다. 김 교수는 또 "S(사회)는 사업장의 안전이나 성별의 다양성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새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규제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보면 성별의 다양성 측면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E(환경)의 경우도 새 정부는 탄소배출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을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에너지 믹스의 비중은 밝히지 않고 있다"며 "결국 재생에너지 부문의 노력은 덜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ESG를 성장을 위한 전략 중 하나로만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SG에 대한 명확한 이해 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권 이노소셜랩 ESG센터장은 "ESG 이전 단계에는 지속가능경영, 그 이전에는 지속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이해 없이 ESG를 금융투자, 평가, 대응 등 기술적 또는 기능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과거 정부나 새 정부 모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ESG를 친환경 비즈니스로 좋은 등급을 받아 투자 및 평가를 받는 식으로만 생각한다. 이는 편협한 정도의 이해"라며 "미국, 유럽 등은 근본적으로 기업이 경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환경과 사회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인지 고려하며 환경, 사회의 지속가능성 등도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업들의 ESG 관련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친환경 등에 대한 고민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오롯이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상황에서 수익성과 무관한 사회적 활동이나 경영 투명성 등에 큰 비중을 두는 기업이 있을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완 기자 lee.jiwan1@joongang.co.kr

2022.05.11 19:00

4분 소요
DLF 판결로 체면 구긴 금감원, 금융사와 '갑을관계' 변화 기류

은행

최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내려진 금융감독원의 중징계에 대해 법원이 사실상 우리금융 손을 들어주면서 금감원의 스탠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금까지 금감원과 금융사 간 관계가 철저한 '갑을 관계'였다면, 앞으로는 '협력 관계'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 은행업계 "금감원 패소, 이미 예견된 결과" 3일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번 1심 소송의 결과만 두고 본다면 금감원의 중징계가 지나쳤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라며 "이번 판결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금감원이 무리하게 금융사 CEO 제재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금감원과 업계 간 소통 부재가 지속될 경우 불필요한 갈등과 불요불급한 비용만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손 회장이 제기한 파생결합증권(DLF) 불완전판매 관련 금감원 제재 불복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놨다. 지난해 초 금감원은 우리은행장을 지낸 손 회장과 정채봉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영업부문 겸 개인그룹 부문장)에게 중징계인 '문책 경고'를 부과했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내부통제 부실은 인정하면서도 금융사 임직원에 대해 제재할 만한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금감원이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처분은 피고가 적용될 법리를 오해하여 그 근거 법령이 허용하는 제재 사유의 범위를 벗어나게끔 처분사유를 구성한 탓에 대부분의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아 적법한 재량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피고(금감원)로서는 근거법령의 범위 내에서 적법하게 처분사유를 구성해 원고(손 회장 등)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제재를 가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당초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손 회장에 대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며 그 근거로 ▲상품선정위원회 생략 기준 미비 ▲판매 후 위험관리, 소비자보호 업무 관련 기준 미비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관련 기준 미비 ▲적합성보고 시스템 관련 기준 미비 ▲내부통제기준 준수 여부 점검체계 미비 등 5가지를 들었다. 하지만 법원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하여 제재 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운영 상 문제점을 위반한 것을 두고 금감원이 처분 사유를 잘못 구성했다는 판단이다. ━ 정은보 "금감원 본분은 금융사 규제 아닌 관리감독 지원" 이번 소송건을 두고 업계에서는 금감원과 금융사간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직적 갑을 관계보다는 수평적 협력 관계로의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의 경우 소송의 발단이 된 '사모펀드 사태'의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반성보다는 CEO 제재 등 금융사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제재를 가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금감원의 관리감독 스탠스는 금융사들의 자율적 개선보다는 적대적 관점에서의 징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이런 이유로 금융사들 역시 금감원의 관리감독 권한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를테면 금융위원회 결정만 남겨 놓은 제재 건이 있을 경우 피감기관인 금융사와의 소통을 생략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시장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업계 시각을 의식한 듯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취임사에서 "금융감독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는 점을 늘 새겨달라"며 과도한 감독 체계에 대한 변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판결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손 회장 판결이 다른 금융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은 금융사들이 줄줄이 행정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은행업계에선 지성규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하나은행의 사모펀드 판매와 관련해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받은 상태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현재 손 회장과 같은 이유로 금감원과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관련 금감원은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판단기준 등 세부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2021.09.03 16:52

3분 소요
[금융사와 갈등 반복하는 금감원 왜?] 정부 눈치 보며 오락가락 대응하다 불협화음

정책이슈

금감원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 vs 금융 업계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아”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과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깊어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위반 결정이 확정되면 금감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들의 갈등 내용은 대략 이렇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종속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부풀려 1조90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허위로 만들었다고 봤다. 금감원은 이런 내용을 5월 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에 조치 사전통지서로 전달했는데, 문제는 같은 날 통지서 발송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확정된 결과가 아닌 예비적 성격의 감리 결과를 금감원이 사실인 것처럼 공개해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사흘 만에 26% 급락했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월 8일 자사 홈페이지에 ‘금감원 감리와 관련해 요청 드립니다’라는 게시물에서 금감원을 겨냥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통지서 전달을 알린 이유에 대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 “기업 때리기 식에 지나지 않아”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 시장에서는 금감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사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당시인 2016년 12월 참여연대의 분식회계 의혹 제기에 ‘문제 없음’이라고 회신했고, 지난해 2월 국회 업무보고에선 “회계기준 위반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서 “문제없다”던 회계처리가 “고의적 분식회계”로 바뀐 것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정권 코드 맞추기’에 따라 뒤바뀐 결정이라는 소문도 나온다.금감원은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을 통합해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특수법인이다. 금감원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회사 검사권과 감독권을 쥐고 있다. 당초 금감원은 관료조직에서 독립돼 금융감독 기능을 맡으라는 취지로 설립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료들은 관료조직을 키웠고, 금감원은 금융위 산하기구로 전락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 임원 인사시스템이 정권과 연결돼 있다 보니 정치 논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상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번엔 누가 기업 때리기 피해자가 될지 우려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금융감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금감원은 지난해 말에는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김정태 회장의 ‘셀프연임(후계자를 키우지 않고 본인 연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3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급기야 하나금융 회장 선출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금감원은 김정태 회장의 특혜대출, 채용비리 등 관련 의혹을 둘러싼 CEO 적격성 검사가 끝나지 않았다며 하나금융에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잠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조사 과정에서 갑자기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2013년 하나금융 사장 시절 지인의 아들을 하나은행 채용에 추천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직까지도 하나은행의 2015~2016년 채용비리 의혹 11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때문에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금감원은 감독권을 무기로 금융회사 위에 군림하려 한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감독권 역할도 있지만 금융회사들이 금융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금감원의 할 일”이라며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명목 하에 회사들을 잡아 가두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금감원도 할말은 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금감원은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감독을 통해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곳”이라며 “가령 특정 기업이 밉다고 법에 있는 감독규정을 바꿔서 감독을 할 만큼 느슨한 곳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와 규제를 함께해야 하는데 사실 현장에서 조사를 하다 보면 현재 금융감독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있어 조사가 어려울 때가 많다”며 “정책과 감독을 함께 시행하는 현 구조로는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현재 금감원의 금융감독 체제는 금융위가 만든 제도와 규정의 틀 안에서 검사와 감독을 집행해야 한다. 감독규정 개정이 필요하면 금감원은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손 봐야 하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금감원이 독립권을 외치는 이유다. 윤석현 신임 금감원장은 지난 5월 8일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며 “금융감독이 단지 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 시절 줄곧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요구했다. 금융위를 해체해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융감독 정책과 집행은 금감원이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게 윤 원장의 구상이다. 다만 금융위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까지 감안하면 20년 간 유지된 금융부처 조직 체계를 뒤흔드는 ‘대수술’이어서 실제 개편으로 진행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복수 감독기구 도입 의견도 이유가 어찌됐든 최근 금감원의 오락가락 잣대는 금융시장에 혼란을 주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최흥식 전 금감원장 낙마 역시 성숙한 금융감독체계보다는 관치에 기반을 둔 완력을 발휘하면서 빚어진 참사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셀프연임’에 시끌벅적하게 제동을 건 자체가 금감원의 후진성을 보여준 셈이다. 일부에서는 금감원 내부의 자정 능력에 기댈 것이 아니라, 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8.05.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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