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7

GC지놈, 신생아 유전체 선별검사 ‘아이스크린’ 특허 취득

바이오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GC지놈이 특허청으로부터 신생아 유전체 선별검사 '아이스크린(i-screen)'의 기술 특허를 취득했다고 22일 밝혔다. 아이스크린은 신생아의 제대혈이나 발뒤꿈치에서 소량의 혈액을 채취해 23쌍의 유전체(염색체)를 스크리닝 하는 검사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법을 활용해 이용해 전장유전체시퀀싱(WGS, Whole Genome Sequencing)을 기반으로 신생아의 염색체 이상을 찾아낼 수 있다.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자폐나 지적장애 등 유전질환을 검진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천적인 유전질환은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지만 조기 진단을 통해 언어능력을 높이고 문제행동을 줄이는 등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기창석 GC지놈 대표는 "신생아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유전질환을 빠르게 확인해, 부모의 궁금증과 두려움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했다. 한편 GC지놈은 지난 4월 GC녹십자지놈에서 사명을 변경한 임상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이다. 주력 사업은 암 유전자 검사로 현재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액체 생검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국내 난소암 표적항암제 처방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상동재조합결핍검사 '그린플랜 HRD'를 신의료기술로 승인받았다. 선모은 기자 suns@edaily.co.kr

2022.06.23 14:35

1분 소요
[섹스 로봇과 가상현실, 그리고 사이보그화(2)] “생식 위한 섹스는 NO, - 재미 위한 섹스는 YES”

산업 일반

우리가 자녀를 갖는 방식은 수백만 년 동안 똑같았다. 성행위를 통해 여성이 남성에게서 정자를 받아 수정해 임신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1978년 영국에서 태어난 루이스 브라운은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30세였던 어머니 레슬리 브라운은 나팔관이 막혀 난소에서 만들어진 난자가 자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불임의 상태였다. 의료진은 레슬리의 난자와 남편 존(당시 38세)의 정자를 작은 시험관 속에서 수정시켰고, 48시간 후 이 수정란을 레슬리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태아는 분만 예정일을 3주 앞두고 제왕절개를 통해 2.6㎏의 건강한 아기 루이스 브라운으로 태어났다. 이런 체외수정은 ‘인간 생명의 인위적 생산’이라는 윤리적·종교적인 문제와 우려를 제기했지만 자연 임신이 불가능하거나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여성이 임신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혁명을 일으켰다.거의 40년 뒤인 지금은 체외수정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머지않아 시험관 아기가 임신의 주된 방식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조이스 하퍼 교수는 뉴스위크에 “대다수 사람이 섹스를 통하지 않고 아기를 갖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섹스와 임신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으로 분리될 것이다. 미래엔 섹스가 단지 재미를 위한 행위가 될 수 있다.”금세기 말이 되면 약 1억5700만 명이 체외수정과 기증된 난자, 대리모 같은 보조생식 기술로 태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그런 방식으로 출산된 아기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의 출산율은 1.9로 요즘 세계 추이를 고려하면 그다지 낮은 출산율이 아니지만 신생아 10명 중 한 명 꼴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 받아 태어난다. 지난해 덴마크는 여성의 결혼 여부나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국가가 지원하는 체외수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마련했다.덴마크에 사는 피아 크로네 크리스텐센은 두 살짜리 딸 사라의 어머니다. 그녀는 갈수록 늘어나는 ‘솔로모어(solomor)’ 중 한 명이다. 기증된 정자를 사용해 스스로 아기를 갖는 덴마크의 싱글맘을 가리킨다. 크리스텐센은 뉴스위크에 “난 언제나 아기를 갖고 싶었고 늘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젊었을 땐 남편이 어떤 사람이고 우리가 어떤 집에 살며 우리의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하지만 난 마흔 살이 다 돼도 적합한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난 기증된 정자가 결혼의 대안이라고 판단했고 단 한번의 체외수정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아주 운이 좋았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이 섹스 없이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하퍼 교수에 따르면 주로 사회적·교육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생애 느지막이 아기를 갖는 여성이 늘어난다. 하지만 35세가 넘으면 난자의 수가 적어지고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하퍼 교수는 “현재 부부 6쌍 중 1쌍은 불임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아기를 늦게 가질수록 문제는 더 많아진다. 남성의 몸엔 그런 생체시계가 없다.” 게다가 체외수정은 앞으로 훨씬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퍼 교수의 전공은 ‘착상 전 유전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이다. 착상 전의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을 확인한 뒤 그런 가능성이 없는 배아만 선택해 자궁 내 이식하는 방법이다. PGD는 그 과정이 더 신속해지고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하퍼 교수는 “지금 등장하는 것은 유전체 편집 시퀀싱(염기서열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누군가의 유전체를 약 1000달러에 시퀀싱할 수 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빠르면 약 24시간 안에 할 수 있다. 앞으로 비용도 더 저렴해질 것이다. 유전체 시퀀싱은 아주 단순하다. 중요한 것은 그 정보의 해석이다. 근년 들어서야 완전한 유전자 코드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매우 흥분되는 시기다. 암이 나타날지, 심장병이나 당뇨 심지어 알레르기에 취약한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검사를 여성의 자궁에 배아를 착상하기 전에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특정 질병에 걸릴 배아를 착상할 이유가 없다.”그러나 유전자를 변형시킨 인간이 태어날 가능성은 법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11월 26일 중국의 한 과학자는 세계 최초로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 중국 선전남방과학기술대학 허젠쿠이 교수는 불임부부 7쌍으로부터 얻은 배아를 통해 유전자 편집 기술로 쌍둥이 아기가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의 목표는 유전병을 치료하거나 막는게 아니라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면역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이런 기술이 질병 예방부터 특성 변경까지 아무런 결함 없고 또 완벽하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된 아기의 세대가 등장할 길을 열 수 있을까? 하퍼 교수는 “누군가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문제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배아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지 않도록 확실히 보증하려면 엄청난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많은 국가에서 성별 선택은 합법적이다.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는 것은 의학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부 국가의 경우 배아 유전자 편집과 관련된 법이 없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아기의 신체적 특징을 바꾸는 것 같은 ‘경박한’ 생각으로 배아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 우리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하퍼 교수는 유전자 편집이 미래에 피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 기법이 치료법이 되기 전에 먼저 적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체외수정부터 유전자 편집까지 인공적인 방법이 생식에 사용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난다. 이런 기술이 좀 더 발전하고 비용도 저렴해지면서 ‘맞춤 아기’의 시대가 도래하면 자연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갖는 것은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키아라 브람빌라 뉴스위크 기자

2018.12.31 11:02

4분 소요
[간헐적 단식 효과 있나] 대사성 질환 예방·치료에 효과

산업 일반

캐나다 토론토아동병원팀 연구 … 뱃속 비우면 ‘베이지색 지방’ 늘어 몇 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은 일주일에 5일을 먹고 2일은 단식하는 식이요법이다. 주기적으로 뱃속을 비우면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다. 오히려 영양 부실이나 근육 소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역풍을 맞았다. 그런데 최근 간헐적 단식의 효과와 원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가 나와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체중 감소뿐 아니라 대사성 질환의 예방·치료 도구로서의 가능성까지 시사한다.우리 몸에는 세 가지 지방이 있다. 백색 지방은 음식으로 섭취한 잉여 에너지를 저장한다. 갈색 지방은 열을 발생시키면서 에너지를 소모한다. 신생아의 체온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성인이 되면 퇴화한다. 베이지색 지방은 중간 형태의 지방이다. 백색 지방이 갈색화하면서 베이지색으로 바뀌면 마치 갈색 지방처럼 열을 내면서 에너지를 쓴다. 지방이 타면서 체중도 함께 줄어든다. 캐나다 토론토아동병원 성훈기 교수는 “3~4년 전부터 베이지색 지방이 당뇨·비만 등 각종 대사 질환을 해결할 열쇠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며 “백색 지방을 베이지색 지방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베이지색 지방을 만드는 요인으로 저온·운동 같은 물리적 자극과 몇 가지 세포 신호 인자들이 밝혀졌다. 최근 비만·당뇨 치료에 쓰이는 저온요법(cryotherapy)도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탄생했다.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성훈기 교수와 오타와 대학 김경한 교수(당시 캐나다 토론토아동병원) 팀이 진행한 대규모 연구다. 관련 논문은 국제학술지 ‘셀 리서치(Cell Research)’ 11월호의 커버스토리로 게재된다. 성 교수팀은 베이지색 지방을 늘릴 방법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간헐적 단식법’을 선택해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했다.먼저 간헐적 단식이 비만 같은 대사 장애를 예방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성인 쥐를 간헐적 단식 그룹과 일반 그룹(대조군)으로 나눈 후 지방 함량이 많은 고열량식을 먹게 했다. 단식 그룹은 2일 식사 후 1일(2대 1) 단식하는 일정을 약 16주 동안 지속했다. 실험 결과는 뚜렷했다. 간헐적 단식을 한 쥐들의 몸무게가 감소했다. 지방 세포의 크기도 줄었다. 자기 공명영상(MRI) 촬영을 해보니 근육량은 그대로였다. 지방의 무게만 쏙 빠진 것이다. 간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단식을 하지 않은 쥐는 간에 하얗게 지방이 끼어 지방간이 나타난 반면, 단식한 쥐의 간은 건강한 빨간 빛이 돌았다. 간 수치(ALT)도 개선됐다. 많은 양의 당을 투여한 후 단식 그룹 쥐의 혈당이 더 빨리 떨어졌다. 다양한 대사 장애의 예방 효과가 관찰된 셈이다. 비만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단식한 쥐의 수치만 개선됐다.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확인한 연구팀은 단식한 쥐의 지방 세포를 추출해 유전체 분석 실험을 했다. 단식을 하는 동안 분자 수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 단식한 쥐의 지방 세포에서 ‘VEGF(혈관내피세포인자)’의 수치가 크게 높아지는 것을 관찰했다. VEGF는 새로운 혈관을 만들도록 촉진하는 인자다. 연구진은 VEGF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한 2차 쥐 실험을 했다. 성인 쥐의 지방 세포에서 VEGF를 제거했더니 16주 간 2대 1 단식을 해도 몸무게 등 수치에 변화가 없었다. VEGF가 없으면 체질 개선 효과도 없다는 의미다.다음은 단식 없이 성인 쥐의 지방 세포에서 VEGF 수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면서 변화를 관찰했다. 16주 후 VEGF 수치를 높인 쥐에서만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성 교수는 “이 실험으로 백색 지방 세포의 VEGF가 베이지색 지방으로의 변화를 촉진한다는 것을 입증했다”면서 “더불어 VEGF의 수치가 오르면서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는 의미 있는 사실도 관찰했다”고 말했다.

2017.10.29 12:22

3분 소요
아름다운 의술 ‘바꿔치기’

산업 일반

DNA: 질병을 유발하는 잘못된 유전자를 건강한 것으로 교체…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벤처투자업체 투자 급증 도미닉 게슬러는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실험용 쥐 두 마리를 들어 올렸다. 셰리 엡스타인은 주춤거렸지만 게슬러가 그녀를 설득해 손을 내밀도록 했다. 그가 엡스타인의 손에 쥐들을 내려놓자 그 두 마리는 손바닥 위를 빙빙 돌며 그녀의 손을 간지럽혔다. “어느 쥐가 카나 반병을 앓았는지 알 수 있겠느냐”고 게슬러는 물었다.그로부터 몇 ㎞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 위치한 엡스타인의 집엔 한 젊은 여성이 침상에 누워 있다. 그녀의 야윈 팔 다리는 구부러진 채로 미동도 없었고,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가 베개 너머로 뻗쳐 있다. 엡스타인의 딸 레이첼(17)이다. 레이첼은 치명적인 뇌 질환인 카나반병을 지니고 태어났다. 갓 태어났을 때 레이첼은 소리를 지르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유아기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잤다. 생후 6개월이 지나고도 머리를 들어올리지 못하자 치료사는 뇌성마비를 의심했다. 엡스타인은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그러나 레이첼은 부모로부터 ASPA라 불리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물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한 ASPA 유전자가 없는 한 레이첼의 세포는 뇌 속의 산(acid)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한다. 그러면 산이 뉴런을 보호하는 뇌 속 절연체를 서서히 파괴하며, 뇌 백질(white matter)을 액체로 가득한 스펀지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레이첼은 말을 하지도, 팔 다리를 움직이거나 여타 신체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게 됐다.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그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다.현재 카나반병의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서 엡스타인은 레이첼과 같은 병을 갖고 있던 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금은 손바닥 위에서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쥐를 말이다. 몇 주 전 그 쥐는 게슬러 연구실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미생물학자 가오광핑이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를 정맥에 주입받았다. 이 치료제는 가오의 23년 유전자 치료 경력이 맺은 결실이다.가오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가 연구실 밖에서 사용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유전자 치료 분야엔 환자의 사망 등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년 간 신경과학 분야에서 유전자 치료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유전자 치료야말로 수많은 뇌 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약이 개발될 가능성을 확인한 노바티스, 샤이어, 아스트라제네카, GSK 등 거대 제약사들도 속속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20여 개 생명공학 업체가 유전자 치료 기술을 개발 중이다. 유전자를 직접 조작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업체도 있다. 3개 유전자 치료업체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업체 서드락벤처스의 공동설립자 케빈 스타는 “유전자 치료는 급속도로 발전한다”며 “머지 않아 주류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 뇌로 향하는 택배 기사 유전자 치료 개념은 아주 명확하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질병을 유발한 잘못된 유전자를 건강한 것으로 교체함으로써 치료한다는 것이다. 초기 단계였던 1900년대 인간 유전자 치료 실험은 중증복합형면역부전증(SCID)을 가진 두 소녀에게 환자 본인의 백혈구 세포를 조작 후 투입해 잘못된 유전자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실험은 성공했다. 두 소녀의 면역 체계는 복원됐고, 이후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가오는 1993년 처음 카나반병 환자를 만났다. 카나 반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한 그의 공로를 축하하는 파티에서다. 카나반병에 걸린 6세 소년이 가족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가오에게 다가갔다. 가오의 연구에 조직세포를 기증했던 소년이었다. “그 아이의 DNA가 내 손바닥 위에 있었다. 나는 그 DNA에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밝혀냈다”고 가오는 돌이켰다. 당시 그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러나 치료법까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때 난 남은 생애를 카나반병 치료법 개발에 헌신하리라고 느꼈다”고 가오는 말했다. “방법은 오직 유전자 치료밖에 없다.”유전자 치료는 유전적 뇌질환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우선 대부분의 약은 뇌를 보호하는 혈액 뇌관문(blood-brain barrier)을 돌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한 바이러스처럼 작은 물질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뇌는 부분별로 철저히 구분됐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의 위험도 최소화된다. 폐나 간 같은 다른 신체 장기가 피해 입을 걱정은 없다.1990년대 초반 가오는 개인 연구실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는 유전자 치료계의 떠오르는 샛별인 펜실베니아대학의 제임스 왓슨을 찾아갔다. 가오는 13년 동안 윌슨 밑에서 일하며 유전자 치료에 적합한 새 바이러스를 개발했다. 바이러스 매개체라 불리는 이 분자 형태의 ‘택배 차량’은 건강한 유전자를 담아 신체 내의 필요한 부위까지 배송할 수 있다.가오의 판단은 시의적절했다. 1999년까지 미국에선 155건이 넘는 유전자 치료 임상실험이 허가됐다. 암부터 혈액질환까지 분야는 다양했다. 윌슨은 실험실을 벗어나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개시했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조작해 다섯 건의 연구를 실시했다. 그 실험 대상 중 하나는 제스 겔싱어라는 10대였다.유전적 간 질환을 약품과 식이요법으로 억제해왔던 겔싱어는 자신과 같은 병에 더 심하게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치료법 개발을 돕기 위해 실험에 자원했다. 겔싱어가 1999년 9월 유전자 치료를 받았을 때 아데노바이러스 매개체는 맹렬한 면역 반응을 유발했고, 그 결과 그의 간과 폐가 손상됐다. 4일 뒤 겔싱어는 사망했다.겔싱어의 죽음으로 미국에선 유전자 치료 후원과 연구가 중단됐다. 유럽에선 2000년 유전자 치료로 SCID 어린이 20명을 치료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연구가 계속 됐다. 그러나 수년 뒤 그중 5명이 백혈병에 걸려 1명이 사망했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치료 연구를 그만뒀다. 가오는 겔싱어의 임상실험에 직접 연관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얘기를 꺼린다. 그저 윌슨의 잘못이 아니라고만 말할 뿐이다. 가오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보다 안전한 바이러스 매개체를 찾아 연구를 계속했다.가장 유망한 후보는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다. 아데노바이러스가 있는 곳에서 생겨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다. AAV는 인간 세포에 도달하기가 아데노바이러스처럼 효율적이진 않지만 훨씬 안전하다. 인간 면역 체계는 AAV의 외피를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또 AAV는 인간 세포 유전체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SCID 환자들이 겪었던 백혈병을 유발하지도 않는다.2008년 가오는 매사추세츠대학에 새로 설립된 유전자치료센터의 센터장으로 부임했다. 엡스타인이 이 건물을 찾았을 땐 아직 벽에 칠한 페인트가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 건물의 시간제 근무 직원이었던 엡스타인은 지역 신문에서 가오를 알게 됐다. 그녀는 가오를 찾아가 자신을 소개하고 레이첼이 과거에도 유전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음을 설명했다. 5년 전 의사들은 사상 첫 카나반병 유전자 치료를 시도하면서 레이첼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여섯 개 내고 흡입관을 설치한 뒤 뇌 속으로 약을 직접 주입했다. 안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첫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엡스타인은 레이첼을 데리고 연구실을 찾았다. 가오는 다시 한 번 절박한 부모와 죽어가는 아이 앞에 서게 됐다.당시 세계에 유일하게 허가된 유전자 치료는 중국의 항암치료제뿐이었다.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은 유전자 치료의 안전과 효과에 매우 회의적이다. 가오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성급히 임상실험을 시도한 선배들의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그는 그로부터 8년 동안 실험실에서 연구에 골몰하며 카나반병을 치료할 새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했다. 카나반병에 걸린 쥐 수백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데 정부와 대학의 후원금 200만 달러(약 23억원) 이상을 썼다.신경외과의를 목표로 공부 중인 젊은 독일 과학자 게슬러는 2012년 가오의 프로젝트에 참가해 치료법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주도한다. 뇌에 주입할 이상적인 AAV 매개체 후보군을 좁히고(현재 AAV9가 선정됐다) 이전보다 10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유전자 구조를 개량했다. 최신 유전자 치료법은 뇌로 주입하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게슬러는 약을 혈관에 주입해 혈액 뇌 관문을 뚫고 뇌 어디든 보낼 수 있다. 이젠 두개골에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다.게슬러는 최적화된 치료법을 처음으로 살아 있는 동물에 실험했을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그는 새로 개발한 약을 어리고 병든 쥐에 주입했다. 근육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웅크리고 있던 쥐였다. 게슬러가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는 웅크리고 있던 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 이름표를 잘못 붙였나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 쥐는 다른 쥐들처럼 건강하게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오늘날 이 치료법은 카나반병에 걸리도록 조작된 쥐 두 종을 치료했다. 보존된 세포조직과 바이러스로 가득찬 냉동고 10여 개가 가오의 연구실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우리는 치료법을 찾았다. 이제 준비가 다 됐다”고 가오는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은 재정 문제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오는 첫 임상실험을 하는 데 100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잠재적인 수익성은 이미 생명공학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오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기업이 이미 그와 접촉했다. ━ 거대 제약업체의 투자 밀려들어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의 보이저세라퓨틱스의 사무실은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모습이다. 투명한 유리 문, 화이트보드 벽, 미니멀리즘적인 오렌지색 장식에 무료 다과가 비치된 공용 공간도 있다. 커피 냄새와 돈 냄새가 함께 풍기는 곳이다.그러나 IT스타트업과 달리 이 사무실은 양쪽으로 현미경과 바이러스가 가득한 연구실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회사는 파킨슨병, 헌팅턴 무도병, 루게릭병 등 중추신경계 질환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한다. 스티븐 폴 CEO는 제약업체에서 35년간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종사하며 유전자 치료가 겪는 시련을 지켜봤다. 그는 이제야 유전자 치료의 때가 도래했다며 열의를 불태운다.투자자들도 동의한다. 벤처투자업체들은 2010년 이후로 유전자 치료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뇌 질환 치료가 단연 중심이다. 지난 2월 창업 1주년이 된 보이저는 미 제약업체 젠자임과 선불 1억 달러, 향후 성과에 따라 최대 7억450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4월엔 투자자들로부터 60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오는 11월엔 투자자 공개 모집을 통해 8100만 달러를 추가로 모금할 계획이다. 희귀 안구 질환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하는 필라델피아 소재 스파크세라퓨틱스는 설립 2년만에 기업공개(IPO)를 하고 2억6800만 달러 투자를 받았으며 제약업체 화이자와 대규모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블루버드 바이오는 지난해 8억660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받았다.그동안 거대 제약회사는 희귀병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희귀병 시장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고 폴 CEO는 말했다. 그러나 가격만 잘 정하면 적은 수의 환자에게만 판매되는 치료제라도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다. 유럽에서 최초로 승인된 유전자 치료제 질베라는 주사 1회 당 140만 달러로 책정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보건당국과 보험업체들은 이 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고심 중이지만, 시장이 존재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유전자 치료에 투자가 밀려들자 일부 연구자들은 정부 지원 대신 벤처캐피털의 투자에 의존한다. 1980년대 최초로 유전자 치료용 AAV를 개발한 R 주드 새멀스키는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생명공학업체 뱀부세라퓨틱스를 설립하며 투자 열기에 합류했다. 이 업체는 뒤센 근위축증, 카나반병, 프리드라이히 운동실조, 거대 축색돌기 신경병증 등 희귀 유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내년부터 임상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유럽에선 유전자 치료법 허가가 늘고 있다. 지난 4월엔 SCID 치료법 허가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의 업계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임상실험 데이터를 기다린다. “2년 내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유전자 치료제가 나올 것”이라고 가오는 말했다. “틀림없다.” 그 첫 대상은 안구질환 치료제가 될 듯하다. 지난해 10월 스파크는 선천적 맹인 21명의 시력을 성공적으로 회복시키면서 최종 단계 직전인 3단계 임상실험을 통과했다. 올해 내로 FDA 승인을 받는 것이 목표다.블루버드는 로렌조 오일병이라고도 불리는 부신백질 형성장애증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병은 카나반병처럼 뇌 속 백질에 이상을 일으킨다. 이 회사의 렌티D 치료법은 체외에서 실시되는데, 우선 환자의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를 뽑아내 유전자 치료법으로 치료한 뒤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다시 환자의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이 같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치료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 접근법은 유전자 하나 이상에 문제가 있거나 원인이 불명인 경우엔 효과가 적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질환들은 증상이 완화되긴 하지만 치료는 안 된다.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떤 치료를 받든 항상 효과와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폴 CEO는 말했다. “우리는 치료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질병만 표적으로 삼는다.”카나반병을 앓는 어린이 대부분은 열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지만 20·30대까지 생존하는 사례도 있다. 가오와 게슬러는 자신들의 치료법이 돌연변이 판정을 받은 신생아에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지만, 레이첼처럼 보다 나이 많은 카나반병 환자도 잊을 수는 없다. 게슬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보다 나이 많은 쥐도 실험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얼마나 나이 들고 병이 진행된 쥐까지 치료할 수 있을까? 게슬러는 6주(인간 나이로 10대), 12주(인간 나이 성인), 24주(인간 나이 장년)된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지난 2월의 어느 춥고 맑은 날, 나는 가오의 건물 6층 사무실에서 게슬러를 만났다. 그는 웃고 있었다. “방금 생후 6주차에 치료 받은 쥐들에 대한 1년치 자료를 손에 넣었다”고 게슬러는 말했다. “그 쥐들은 모두 정상이다.”게슬러와 만난 뒤 나는 북쪽으로 1시간 동안 달려 레이첼이 사는 아동요양원을 찾았다. 레이첼은 보라색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발 아래엔 유니콘 모양 베개가 보였다. TV에선 드라마 ‘프렌즈’가 방영되고 있었다.내가 도착했을 때 엡스타인은 레이첼의 손톱을 칠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TV화면을 레이첼에게 더 가깝게 움직였다. “레이첼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엡스타인은 말했다. 그녀는 약간의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더 나이 든 쥐를 치료하는 게슬러의 실험 결과에 대해 물었다. 엡스타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이첼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엡스타인은 항상 자녀에게 가장 좋은 길을 원한다. 쥐 실험 결과를 들려주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엡스타인은 다시 딸의 손톱을 칠하기 시작했다. 밝은 분홍색이었다.- 메간 스쿠들라리 뉴스위크 기자

2016.07.18 10:54

10분 소요
Science - 암에 걸리지 않고 지극히 오래 산다

산업 일반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미스터리 속속 밝혀져…심근경색·뇌중풍 예방·치료에 단서 아프리카 동북부의 땅속을 누비고 다니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미스터리의 동물이다. 길이 8cm, 무게 35g에 불과한 이 설치류는 20~300마리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간다. 몇 ㎞에 이르는 터널을 뚫어 휴식처와 화장실을 만들고 식량이 되는 식물뿌리를 찾아낸다. 놀라운 것은 포유동물이면서도 개미나 벌과 동일한 사회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지배자인 여왕 한 마리가 번식을 도맡는다. 그 아래에 여왕의 교미 상대인 1~3마리의 수컷, 전사 계급, 가장 덩치가 작은 일꾼 계급이 차례로 포진한다. 전사들은 굴에 침입하는 뱀과 싸운다. 이빨로 밀어내고 흙으로 굴을 막는다. 소속이 다른 개체들과도 싸운다. 두 군집이 파고 들어간 굴이 우연히 맞뚫리면 양측은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일꾼들은 굴을 만들고 식량을 구하고 여왕과 새끼들을 돌본다. 이들의 사회성은 워낙 강해서 동물원에서 한 마리를 격리시켜 놓으면 죽고 만다. 미국 국립동물원의 데이비드 케슬러는 “집단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고 말한다. 포유류 중 이 같은 진(眞)사회성 동물은 다마라랜드두더지쥐를 포함해 2종뿐이다.새로운 진통제 개발의 단초도 제공이들은 생리도 유별나다. 포유류 중 유일하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능력이 없는 변온동물이다. 땀샘이나 피하지방이 없는 점은 파충류와 동일하다. 피부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염산이나 캡사이신(고추의 매운 성분)으로 문질러도 끄떡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의학적 관심이 집중되는 더 큰 이유가 있다.첫째, 엄청나게 장수한다. 설치류의 수명이 3년 안팎인데 비해 이들의 수명은 30년에 가깝다. 둘째 암이 없다. 전 세계의 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사육했지만 암에 걸린 개체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셋째, 노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생존 기간 내내 매우 활동성이 크고 뼈가 건강하며 번식 능력과 인지 능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넷째,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특별히 많이 포획하는 능력이 있다.설치류는 전반적으로 유전자의 85%가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의 노화와 장수, 통증과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이 벌거숭이두더지쥐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1년 10월 한·중·미 합동 연구팀은 그 유전자 2만2561개를 모두 해독했다. 지놈(유전체 전체) 지도가 만들어진 것이다.일차적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인간 및 생쥐의 지놈과 비교한 결과 장수, 암 저항능력, 저산소 환경 적응능력과 관련된 일부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다고 한다. 연구를 주도한 ‘베이징지놈연구소(BGI)’는 지놈 지도를 온라인으로 무료 개방 중이다.그 연구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이들이 산성이 강한 지하터널의 공기 속에서 멀쩡한 비결은 무엇일까. 2012년 9월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 저널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대학 팀의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이들 쥐를 산성 연기에 노출시켰다. 이런 경우 여타의 포유동물은 콧물을 흘리며 도망간다. 코에 있는 특별한 신경섬유가 활성화돼 3차 신경핵이라 불리는 뇌간의 신경 집단을 자극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산성 연기에 노출된 들쥐나 생쥐는 이 부위가 고도로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연구팀은 신경세포가 발화할 때 흔히 나타나는 신경활동의 간접표지인 특정 단백질(c-Fos )을 측정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산성화에 끄떡없는 능력은 새로운 진통제 개발의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이 상처를 입었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것은 상처 부위가 산성화되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2012년 6월에는 장수의 비결이 일부 드러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과 미국 텍사스대학, 뉴욕 시립대학의 공동연구 결과를 보자. 연구팀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유전자를 기니아 피그, 들쥐 등 다른 6종의 친척 설치류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뇌의 뉴런(신경세포)이 망가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NRG-1 이란 단백질이 장수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단백질은 운동을 관장하는 소뇌에 집중돼 있었는데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서는 다른 설치류에 비해 그 함량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게다가 생후 1일된 갓난 새끼나 26세의 고령을 가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지속적으로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다는 말이다. 연구팀은 그토록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단백질과 장수와의 관계는 다른 설치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설치류의 공통된 형질과는 관련이 없는 독특한 형질이란 말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세포 노화(Aging Cell)저널에 발표됐다.그에 앞서 5월에는 손상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능력이 유난히 뛰어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텍사스대학의 ‘바숍 장수 및 노화연구소’가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발표한 내용을 보자. 연구팀은 이 쥐의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ome)의 숫자가 다른 설치류에 비해 훨씬 많으며 간에서 이 같은 분해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연구팀은 이에 앞서 2009년 이 쥐의 단백질은 평생토록 온전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었다. 이번에 그 이유를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손상된 단백질을 세포 내에서 좀더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면 세포기능이 지속적으로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면서 “건강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속성”이라고 말했다.이 쥐는 또한 간에 면역단백질 분해효소가 특히 많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효소는 면역계에서 생산된 후 기능을 다한 항체를 분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쥐의 간 조직에서는 유해산소에 의한 손상이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감안하면 면역단백질 분해효소는 산화로 인해 손상된 단백질을 처리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2012년 2월에는 산소결핍증에 끄떡없는 이유도 일부 드러났다.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비결은 칼슘 차단이었다. 칼슘은 기억의 형성을 돕는 등 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지만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치명적이다. 문제는 뇌세포에서 산소가 고갈되면 칼슘 유입을 조절하는 평소의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심장 근육의 일부가 죽거나(심근경색), 뇌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면(뇌중풍)뇌세포가 죽는 이유가 이것이다. 혈액이 산소를 운반해주지 못하면 칼슘이 과다유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산소가 희박해도 칼슘 통로를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환경에 진화적으로 적응인간도 신생아 때는 이런 능력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없어진다. 일리노이대학 연구팀은 “빈 구두 상자 속에 200마리를 집어넣고 지하 1.2m에 파묻어 놓으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면서 “이 쥐는 이런 환경에 진화적으로 적응한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이런 능력은 심근경색과 뇌중풍의 예방과 치료법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연구하면 할수록 배울 것이 더욱 많아지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계속 되고 있다. 암을 원천 봉쇄하고 수명을 10배로 늘리는 유전자를 발견하는 날을 향해서….

2013.01.02 18:17

5분 소요
지놈 시대가 온다

산업 일반

1964년, 로버트 홀리 교수가 이끄는 코넬 대학과 미 농무부 연구팀이 인간 유전자 지도의 단서를 제공하는 유전자 구성 염기 4개(아데닌·티민·시토신·구아닌)의 순서를 간접적으로 ‘해독’했다. 이들이 인류 최초로 유전자 서열의 해독에 성공하면서 이와 함께 유전체(genome) 혁명이 시작됐다.초기만 해도 해독 절차가 매우 느리고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에(77개 염기를 분석하는 데 4명의 연구원이 꼬박 3년을 투자했다), 30억 개에 달하는 모든 인간 유전자 염기를 분석해서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일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다.그러나 90년대 들어서 다수의 연구팀이 로봇 공학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 염기 해독 작업에 앞다퉈 달려들었고, 2003년에는 30억 달러를 들이면 인간 1명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는 일이 가능해졌다.‘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유전체 하나를 분석하는 데 수십억 달러가 소요됐던 당시만 해도 이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차세대 분석 기술이 연이어 등장했고, 덕분에 비용은 해마다 90%씩 하락했다.그 결과 5년 전 1명의 유전체를 분석했던 비용으로 지금은 100만 명의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졌다. 분석 비용이 5000천 달러로 줄어들자 제 3자(보험사·기업·정부)가 무료로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활용해서 의료비를 감축하게 된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누가 부담하든, 기술 발전으로 비용이 계속 낮아진다면 100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진다.유전체 분석이 가져올 혜택은 분명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신생아가 최대 40개에 달하는 유전 질환 검사(DNA 염기분석 검사는 거의 없지만)를 받고, 이에 따라 미국에서만 연간 400만 명의 신생아가 발병 위험이 높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미리 알게 된다. 일례로, 유전자 검사가 도입되기 전에는 PKU 유전자 2개가 손상된 채 태어나면 정신지체아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해당 유전자 손상이 확인되면, 예방을 위한 특별 식단이 처방된다. 유전체를 면밀히 분석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수천 명의 아기가 PKU 유전자 손상을 비롯한 다른 고통스러운 질환을 피했다. 지금까지 1500여 개의 질병 관련 유전자가 규명됐고, 그 결과 진단과 치료, 예후 절차가 개선됐다.성인의 경우, 유방암과 관련된 BRCA1-2 및 neu/HER2 유전자, 결장암 유발 유전자, 심장 부정맥과 관련된 LQT1-12, 혈관 내 응고를 유발하는 유전자(응고 인자 V 라이덴, 프로트롬빈 유전자 등)의 분석이 일상적으로 실시된다. 유전자 검사는 “자, 이게 당신의 운명이니 받아들여라”가 아니라 “이렇게 될지 모르니 미리 조치를 취하자”고 권고하려는 취지다.질병은 유전적 취약성과 생활 습관이 결합해 발생한다. 특정 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크다면 당연히 그 위험을 줄여주는 생활 방식이나 습관을 실천해야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예방 가능성이 더 크다. 유전체 규명은 치료법 선택에도 도움을 준다. 특정 약물에 개개인이 유전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은 이미 많은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HIV-AIDS(치료제 아바카비어), 정신병(클로자파인), 혈액응고(와파린), QT 연장 증후군(베타 차단제), 암(이매티닙, 이리노테칸, 5-플루러유러실, 메르캅토푸린, 또는 타목시펜) 등의 처방 약물이나 처방량을 결정할 때도 사용된다.최근에는 보편적 항응고제 클로피도그렐의 효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유전자 변이가 규명되면서 해당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의 30%에게는 좀 더 강력한 항응고제가 처방된다. 일반 환자와 똑같이 처방할 경우, 심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 유전체 분석의 비용이 낮아지면 생물학 연구는 혁신적 변화를 겪게 되고, 이는 엄청난 의료 혜택으로 이어진다.유전 지도와 병력 관련 자료가 늘어나면 암·심장병 등 일반 질병을 야기하는 희귀 유전자 변이가 더 빨리 규명된다. 더불어 온라인 암환자 커뮤니티 ‘페이션츠라이크미’나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바이오 뱅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제공하는 자원자도 증가했다.치료약이나 예방법 연구를 촉진하려고 자신의 병력이나 유전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는 이들의 진정한 희생정신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신기술의 등장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된다는 우려가 있는데, 유전체학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은 빈곤층에도 혜택을 준다.제 3세계에서는 전염병의 기승으로 삶의 질과 교육 수준 향상에 어려움을 겪는데, 유전자 분석 비용이 낮아지면 각종 질병과 신종 질환을 유발하는 미생물과 약물 내성의 추적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일도 용이해진다. 인간 유전 지도를 연구자에게 공개하면 장점도 있지만 잠재적 위험성도 있다.유전 지도만큼 자세한 개인 정보도 없다. 따라서 미래 유전체학의 존망은 유전 정보 보호에 좌우된다. 기업이나 의료 보험사, 정부가 개인의 병력이나 유전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게 되면 이들이 개인의 유전체나 세포 관련 정보를 통제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위험이 있다. 또한, 개인의 유전 정보가 보험사나 고용주 손에 들어갈 경우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이런 문제를 방지할 목적으로 2008년 미국에서는 유전 정보에 근거해서 더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거나 채용·승진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전정보차별금지법(GINA)이 도입됐다(장기치료나 장기생명보험의 경우, 유전자 분석 결과에 따라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큰 사람이 가입하므로 GINA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유전자 분석 1세대’인 우리가 세운 규칙은 미래 세대에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 된다. 유전체는 우리 얼굴처럼 개인의 건강 상태나 선조로부터 내려온 특징, 성격 등의 중요 정보를 보여주면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는 운명에 처할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질까? DNA가 공개되면 인간을 기계적으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다양성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애가 고양될 가능성도 있다.이는 인간의 신비감을 줄이는 동시에 경외감을 더욱 강화시킬 듯하다. 인간 유전체는 미래의 무한한 자원이다. 이를 어떻게 다룰지에 따라 인간은 뚜렷한 특징이 없는 평균적 다수에서 미세한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개인으로 인식될 전망이다.

2010.01.05 16:10

4분 소요
베일 벗겨지는 유전자의 비밀

산업 일반

DNA 검사로 발병 위험 미리 알아내 차단 가능 해진다 1895년 젊은 여성 재봉사 폴린 그로스는 겁이 났다. 그녀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나 인간 지놈(유전체) 프로젝트를 전혀 몰랐다. 그 같은 의학적 승리는 먼 훗날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로스는 암으로 알려진 골치 아픈 질병은 분명히 알았다. 그녀의 가족도 암에 시달려 왔으니까 말이다. 당시 그녀는 미시간대 병리학자인 앨드리드 워틴 박사에게 “나는 지금 건강하다. 하지만 분명 조기에 사망할 듯하다”고 고백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그로스의 예측(실제로 그녀는 암으로 일찍 사망했다)은 오직 관찰 결과였다. 가족들이 결장암과 자궁내막암으로 사망했으니 자신도 그러리라 여겼다. 그로부터 100년 이상 지난 지금 그녀의 친척들은 훨씬 더 임상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바로 유전자 검사다. 간단한 혈액 검사로도 자신의 DNA를 훤히 들여다본다. 이로써 아직은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어도 수십 년간 가족들을 괴롭히고 심각한 위험에 빠뜨린 돌연변이 유전자의 보유 여부가 확인된다. 그로스의 자매를 증조모로 둔 에이미 매케이(38)는 자녀들의 앞날을 우려해 2002년 유전자 검사를 받기로 했다. 결과는 “양성반응”이었다. “그것은 나의 존재를 송두리째 바꿨다”고 매케이는 말했다. 유전자 검사는 의학도 바꾼다. 과학자들이 인간 지놈을 규명했다고 발표한 지도 3년이 지났다. 이제 유전자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새로운 지식 덕분에 질병을 이해하고, 진단하고, 치료하고, 심지어 예측하는 방법도 바뀌었다. 요즘엔 유전자 검사를 이용해 낭성섬유증·혈우병 등 1300여 가지 질병을 미리 알아낸다. 게다가 유전자 검사 비용이 갈수록 저렴해지고 속도도 빨라지면서 연구자들은 복수의 유전자가 관련된 보다 복잡한 장애의 생물학적 근거를 추적한다. 복잡한 장애란 제2형 당뇨병·알츠하이머병(퇴행성 치매)·심장병·우울증 등 미국인 수백만 명이 매년 겪는 가혹한 질병을 가리킨다. 만일 과학자들이 옳다면 이런 질병 중 일부는 2010년께면 유전자 검사가 가능할 듯하다.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반드시 그 질환에 걸리진 않는다. 그러나 분명 자신이 처한 위험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진정한 혁명의 최전선에 와 있다”고 전미 인간 지놈 연구소장인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말했다. 요즘 유전자 검사는 조기에 시작된다. 출산 계획이 있는 부부는 임신 전 검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전적 질환이 있는지 알게 해준다. 이미 임신했더라도 출산 전에 검사를 받으면 된다. 미국의 주 정부들은 현재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최대 29가지 질환의 유전자 검사를 한다. 버지니아주 우드리지에서 사는 제이너와 톰 모나코 부부는 조기 유전자 검사로 자녀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의 시작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겉으론 건강해 보이는 셋째 스티븐이 치명적인 위 내막 바이러스에 걸려 심각한 뇌손상을 입으면서다. 진단 결과 희귀하지만 치료가 가능한 ‘아이소발레르산(酸) 혈증(血症) ’(IVA)이었다. 식이용 단백질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을 인체가 처리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두 부부는 자신이 그 유전자를 보유한 사실을 몰랐으며, 당시엔 IVA가 신생아 유전자 검사 항목에서 제외됐다. 그때까지 부부는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다. 제이너가 다시 임신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딸 캐롤라인은 자궁 속에 있을 때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의사들은 캐롤라인이 돌연변이 유전자 보유자임을 확인한 뒤 출생일부터 약을 처방했다. 모나코 부부는 딸의 건강을 고려해 식단에 신경 쓸 준비도 갖췄다. 현재 아홉 살인 스티븐은 걷거나, 말하거나, 혼자 음식을 먹지도 못한다. 그러나 네 살인 캐롤라인은 활동적이고 건강하다. 유전자 검사는 “스티븐이 갖지 못한 미래를 캐롤라인에게 선사했다”고 제이너는 말했다. 미래는 많은 성인을 클리닉으로 끌어들이는 동인이다. 유방암이나 결장암 등 특정 질병의 발병 여부를 미리 파악하려 실시하는 유전자 검사는 전체 환자 중 소수에게만 효과가 있다. BRCA1과 2를 포함한 유전성 돌연변이 유전자로 유방암에 걸린 사례는 전체의 5~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장암을 일으키는 주요 돌연변이 유전자로 발병하는 사례는 전체 환자의 3~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생명체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질병 예방을 목표로 모종의 조치를 취한다는 점이다. “유전자 검사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 환자들을 보살피는 우리의 능력도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고 미시간대의 스티븐 그루버 박사는 말했다. 에이미 매케이는 현재 매년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유전되는 또 다른 형태의 결장암인 ‘가족성 대장 폴립증(茸腫症)’은 결장을 제거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BRCA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유방암과 자궁암에 걸릴 위험도 잦은 검사와 절제수술로 줄어든다. 물론 건강한 유방이나 자궁을 제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속적인 불안의 종식과 질병에의 선제 공격은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유전성 암 퇴치에 앞장서는 단체인 FORCE의 책임자로 본인도 유방암에 걸렸다 살아난 수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예방적 수술을 받은 여성 대부분은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된 데 실망했지만 제거 수술을 받은 뒤 기뻐했다. 이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다소 흥분은 되더라도 유전자 검사가 항상 해결책은 아니다. 미시간대에서 유전자 상담자로 일하는 웬디 울먼은 의대생들을 가르치면서 두 개의 슬라이드를 화면에 번갈아 가며 보여줬다. 하나엔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다른 하나엔 ‘아는 게 힘’이란 말이 적혀 있었다. 특히 50세가 되기도 전에 종종 발병하는 알츠하이머병이나 유전성 중추신경 질환의 일종인 헌팅턴병처럼 예방이나 치료 방법이 없을 경우 유전자 검사의 가치는 불분명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요즘엔 헌팅턴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 중 5%만 유전자 검사를 받는다. 헌팅턴병은 단일 유전자 때문에 초래되며 신체적 통제력과 정신적 능력을 갈수록 잃게 되는 질병이다. 많은 사람은 유전자 검사로 자신의 의료보험이나 직업 안정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실제로 차별이 발생했다는 기록은 별로 없다. 그러나 더 많은 질병 유전자가 발견되고 더 많은 미국인이 예방 차원의 검사에 나서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주 정부들은 임시방편적 규정을 마련했지만 전문가들은 의회가 ‘유전 정보 비 차별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법안이 통과되면 개인의 유전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을 연방 정부가 승인한다는 뜻이다.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사는 샤나 마틴(26)은 훨씬 더 개인적인 이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어머니 데보라가 헌팅턴병과 싸우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현재 피트니스 강사로 일하는(동시에 통나무 굴리기 세계 챔피언인) 그녀는 젊고, 강인하고, 건강하다. 따라서 자신의 유전적 ‘판도라 상자’를 열 생각이 없다.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행복한 삶을 사는 내게 그런 소식은 인생에 먹구름만 드리우게 된다. 따라서 그 유전자의 존재를 모르고 사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불확실성 속에 살지 못한다. 울먼의 환자인 스테파니 보그트(35)에겐 헌팅턴병 가족력이 있다. 친할아버지와 할아버지 형제 중 세 명이 헌팅턴병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스테파니는 현재 자신의 상태를 알고 싶었다. “검사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뿌리치기 힘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2000년 8월 스테파니와 언니 빅토리아(36), 그리고 어머니 게일 스미스는 종합적인 유전자 검사를 받고 스테파니가 양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같았다. 모든 게 얼어붙고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고 스테파니는 말했다. 스테파니는 미혼이다. 한편 음성 판정을 받은 빅토리아는 앞으로 동생을 돌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완치를 위해 기도도 한다. 발병 가능성을 미리 안다는 사실이 항상 마음 편하진 않다. 스테파니는 기분이 좋을 때는 기운을 내지만 나쁠 때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이 신경 쓰는 대상은 자신의 건강만이 아니다. 이젠 가족력 자체를 없애려 한다. 요즘 부부들은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이란 첨단 방식을 통해 일반 인공수정법으로 배아를 만들고 미리 유전장애가 있는지 검사한 뒤 돌연변이가 없는 배아만 골라 자궁에 착상한다. 그러나 이 시술은 워낙 고가(수만 달러)여서 일반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미 유전학 공공정책 센터가 불임시술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PGD를 활용해 유방암이나 헌팅턴병처럼 성인기에 생기는 질병을 미리 피하도록 돕는 병원은 전체의 28%에 달했다. 캐리와 팀 베이커 부부는 이 방법을 시도해 봐야겠다고 판단했다. 캐리의 할아버지는 헌팅턴병으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1999년에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미 헌팅턴병 협회의 임원인 캐리는 아이들만은 보호해주고 싶었다. 쌍둥이 브루클린과 레비는 현재 원기 왕성한 20대로 앞으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질병이 아이들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다 강구했다는 사실이 커다란 즐거움이자 위안”이라고 남편 팀은 말했다. 검사는 지놈 혁명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놈 혁명의 주요 목표는 질병의 생물학적 결함 자체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근원적으로 고칠 새롭고 정교한 치료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유전자는 이미 기존의 약물에 환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약리유전학 분야에서 가장 비근한 예는 TPMT로 불리는 유전자 변이라고 워싱턴대의 와일리 버트 박사는 말했다. TPMT는 화학요법에 쓰이는 약물이 일정량에 이르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반응을 초래한다. 유전자 검사는 당사자가 안전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이끈다. 항응혈제 와파린의 인체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유전자가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항우울제처럼 널리 사용되는 약물의 인체 반응에 유전적 차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 중이다. DNA 분석을 통해 환자의 유전자형을 파악하면 난치병 예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존스홉킨스의대의 크리스토퍼 로스 박사는 쥐의 헌팅턴병 진행을 둔화시킨다고 여겨지는 여러 가지 화합물을 실험했다. 현재 그는 헌팅턴병엔 양성반응을 보이면서도 아직 증상은 나타나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그 화합물들을 실험해보길 원한다. 병이 꽤 진행된 상태에서 치료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기존의 치료제 임상시험에서 크게 진보한 방식이다. “우리는 유전학을 활용해 사후약방문식 접근방법을 지양한다. 최악의 증상이 일어나기 전의 사전 예방이 우리의 목표”라고 로스는 말했다. 원래 유전의학의 치료 대상은 낫적혈구 빈혈이나 테이-삭스 병처럼 희귀한 단일유전자 질환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큰 목표가 생겼다. 유전적으론 복잡하지만 훨씬 보편적인 심장병 같은 질환들이다. 이미 수많은 유전자가 그런 질병들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졌지만 거기엔 더 많은 유전자가 연관돼 있다.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닌 DNA의 99.9%를 밝혀낸 인간 지놈 프로젝트는 그 출발점이다. 그 다음은 ‘햅맵’이다. 햅맵은 지난해 완성된 유전자 변이 지도로 개개인마다 다른 0.1%의 DNA에 초점을 맞춘다. 햅맵은 과학자들에겐 엄청난 축복이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거의 모든 DNA를 검사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낸다. 과학자들은 이미 햅맵을 활용해 노년층 시력 상실의 주원인인 황반변성을 초래하는 다양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밝혀냈다. 하버드대의 루돌프 탄지 박사는 햅맵을 이용해 보다 일반적인 후발성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추적 중이다. 이 질병은 2050년께면 미국에서만 1600만 명이 겪으리라 예상된다. 탄지 박사의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치료기금’(CAF)에서 자금을 지원받는다. AF는 비영리단체로 알츠하이머병 유전체 규명 작업에 300만 달러를 지원 중이며 2008년 여름께 성과가 나오리라 기대된다. 탄지는 알츠하이머병 검사를 목표로 한 원형 유전자 칩의 5년 내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의 에릭 토폴 박사는 사람들에게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추적 중이다. 약물요법 개발에 관심이 있는 개인기업들도 DNA 연구에 투자 중이다. 아이슬란드의 디코드 제네틱스사는 TCF7L2라는 제2형 당뇨병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확히 규명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가 한 번 복제되면 발병 가능성이 40% 높아지고, 두 번 복제되면 140% 높아진다고 이 회사 CEO 카리 스테판손은 밝혔다. 스테판손은 유전자 검사가 이르면 내년에 실용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올 초 발표된 미 국립보건원(NIH)과 화이자의 공동연구는 정신분열증, 조울증, 극심한 우울증 등 수많은 질병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찾는다. 과학이 발달하면 비즈니스도 뒤따른다. 오늘날 유전자 검사는 주로 전문병원에서 시행된다. 여기서 환자들은 사전사후 검사를 통한 철저한 상담을 거친다. 이를 통해 환자 본인과 가족들은 향후 겪게 될지 모를 정신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를 이해한다. 한편 소비자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온라인 자가진단법을 소개하는 기업도 인터넷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2004년 설립된 DNA 디렉트의 CEO 라이언 펠란은 자사의 웹사이트는 면봉 하나만 보내는 간단한 방법으로 검사가 가능한 ‘유전자 가상병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비용은 200달러부터 3300달러까지). DNA 디렉트사는 검사는 제공하지만 결과가 나온 이후 치료 방법까지 팔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은 그렇게 양심적이지 않다. 과학적 타당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검사방법을 판매하고 치료법이라며 상품을 강매한다. 보다 엄중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학적 검사와 상품 판매 사이의 경계가 매우 모호한 상태”라고 터프츠-뉴 잉글랜드 메디컬 센터의 애덤 울프버그 박사는 말했다. 과학 혁명은 현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유전자는 복잡한 질병의 유일한 요인이 아니다. 식생활·흡연 등 생활방식과 환경적 영향도 중요하다. 새로운 검사방법과 치료법은 연구자들의 희망처럼 빨리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전혀 실현되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학적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게 벌어질 때는 특히 미래에 흥분하게 된다. NIH는 개개인의 지놈을 단돈 1000달러에 배열하는 방법을 10년 안에 찾도록 연구자들을 독려한다(현재 비용은 500만∼1000만 달러). 현재 추세를 감안할 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의사에게 혈액을 건네면 자신의 생물학적 청사진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앞으로 펼쳐진다”고 콜린스는 말했다. 자신의 유전자를 꼭 붙잡아라.

2006.12.19 16:54

9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