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로스쿨'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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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변협)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평가위원회가 결정한 '한시적 불인증' 평가를 취소해달라며 인하대 로스쿨이 소송을 냈지만 법원이 각하했다.변협 평가위의 평가는 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아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판단이다.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이주영 부장판사)는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이 변협 로스쿨 평가위를 상대로 낸 '한시적 불인증 처분 취소' 소송을 각하했다.각하는 부적법한 소송을 본안 심리 없이 끝내는 조처다.2022년 9∼12월 전국 25개 로스쿨을 평가한 평가위는 지난해 1월 인하대 로스쿨이 5개 평가 영역 중 학생·교원 등 2개 영역에서 부적합하지만, 1년 이내 개선이 가능하다며 '한시적 불인증' 평가 결과를 통지했다.이에 인하대 로스쿨을 운영하는 정석인하학원은 이 평가가 부당하다며 올해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평가는 원고의 구체적 권리·의무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학교 측의 주장을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료했다.평가위 평가는 로스쿨의 설치인가·취소·변경인가·정원조정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향후 시정·보완 결과를 평가위나 교육부 장관 등에게 제출해야 하는 의무도 학교에 부여하지 않는다.또한 재판부는 "평가 결과의 공표를 통해 해당 대학의 이미지나 신뢰도가 추락해 대학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평가에 따른 간접적이고 사실적인 효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정석인하학원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 서울고법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2024.10.21 15:00
1분 소요“서울대·인하대·성균관대·고려대·전남대.”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처음으로 ‘한국형 MBA’의 경쟁력을 평가한 순위다. 국내 명문 MBA로 꼽히는 서울대·성균관대·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은 무난하게 상위권을 차지했다. 국내 최초 ‘한국형 물류MBA’인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국내 유일의 지방 소재 한국형 MBA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이 각각 2위, 5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상위권 한국형 MBA는 해외 MBA를 바짝 추격한다. 빼어난 실력의 외국인이 입학하고, 세계 석학이 초빙된다. 이른바 ‘국제화’. 해외 MBA의 콧대를 꺾는 비장의 카드다. #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글로벌 MBA' 과정에 다니는 한 외국인 학생. GMAT(미·유럽 경영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예일대 비즈니스스쿨에 능히 입학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서울대 MBA 과정을 선뜻 선택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이었다. 한국형 MBA가 해외 유력 MBA를 빠르게 추격한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만 그런 게 아니다.# 네이선 반스 웽크(미국·34)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SKK GSB 글로벌 MBA 과정에 다닌다. 그의 경력은 특이하다. 미 포틀랜드 주립대(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보험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 인디애나대 마우어 로스쿨도 졸업했다. 공학·경영학·법학을 섭렵한 웽크는 요즘 말로 ‘융복합형’ 인재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한국에 왔을까. SKK GSB의 복수학위제가 다리를 놨다. SKK GSB는 올 8월 인디애나 마우어 로스쿨과 협정을 맺고 JD·MBA(법학 석사 겸 경영학 석사) 과정을 운영한다. 해외에서 명성이 높은 마우어 로스쿨이 실력 없는 MBA와 손을 잡았겠나. SKK GSB의 국제화는 생각보다 높은 수준이다.“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해외 MBA를 따라!” 불과 몇 년 전 유행했던 말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UC버클리 하스스쿨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해외 경영전문대학원이었다. 고소득 전문 직장인으로 가는 ‘징검다리’랄까. 이들의 입지가 예년 같지 않다. 지원자는 줄고 연봉은 떨어진다.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미 GMAC 소속 332개 MBA 중 올해 지원자가 증가한 곳은 64%에 불과했다. 2008년 80%보다 16%포인트 줄었다. 해외 유력 MBA도 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와튼스쿨의 지원자가 전년비 9% 감소한 건 대표적 사례다.해외 MBA의 콧대는 꺾였지만 한국형 MBA의 상황은 다르다. 응시율은 떨어지지 않는다. 세계적 권위의 명문 로스쿨을 졸업했거나 해외 MBA에 가도 손색없는 학생이 ‘한국형’ MBA를 두드린다. 네이선 반스 웽크처럼 말이다. 한국형 MBA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인증한 국내 MBA 13곳을 말한다. 고려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전남대·중앙대·한양대·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과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등이다(한국정보통신대는 ‘한국형’ MBA였지만 2009년 2월 KAIST와 통합하면서 신입생 모집이 중단돼 제외됐다). 한국적 기업 특성에 밝은 국제적 전문인력을 만들기 위해 2006년 이후 설치됐다.쑥쑥 크는 한국형 MBA 국제화 ‘성큼’올해로 다섯 살. 한국형 MBA는 실제로 걸음마를 떼고 비상하고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조사에 따르면 한국형 MBA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7%를 넘었다. 상위 5개 MBA의 평균은 14%에 달한다. 외국인 교수도 크게 늘었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외국인 전임교원은 전체 전임교원의 30%에 육박한다. 비전임인 초빙교수를 포함하면 60%가 넘는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외국인 전임교원도 전체 (전임교원의) 약 10%다. 세계 20위권 미 MBA의 평균 외국인 교수 비율이 35% 정도인 것에 비춰보면 높은 수치다. 성과도 빼어나다. 한국형 MBA의 국내 취업률은 100%에 가깝다. ‘만족하지 못해’ 중도포기하는 학생은 100명 중 5.4명에 불과하다. 연봉상승률은 20%가 넘고, 해외취업률은 10%에 육박한다.원동력은 뭘까. 꼼꼼한 관리가 첫째 답이다. 한국형 MBA가 되려면 수많은 벽을 넘어야 한다. 주간 MBA 과정(1년제)은 국제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은 대학만 설치할 수 있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2.5명이 넘으면 안 된다. 박사과정 전임교원의 50%는 국내외 학술지에 2편 이상의 논문발표 실적이 있어야 한다. 학생 1인당 12㎡의 전용교사도 필요하다. 기준만 통과한다고 한국형 MBA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경영전문대학원 설치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한국형 MBA의 독특한 프로그램도 성장엔진 중 하나다. 한국형 MBA의 강의는 짧고 굵다. 수업기간은 대부분 1년, 집중형이다. 그렇다고 마냥 줄이는 게 아니다. 할 건 다 한다. 해외 MBA의 2년 강좌를 1년 안에 소화하는 식이다. 그래서 한국형 MBA 과정엔 방학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별화된 프로그램도 많다.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의료·미디어 경영을 특성화했다.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은 브라질·인도·중국 등 신흥시장에 적합한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브릭스 MBA를 운영한다.또 다른 원동력은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이다. 한국형 MBA의 대부분은 모집정원에 미달돼도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뽑지 않는다. 교수진이 해외에 직접 나가 우수 학생을 뽑는 MBA도 많다. 교수진은 해외 MBA에 버금간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의 ‘막강’ 교수진은 대표적이다. 이 대학원 교수진은 미 하버드대·와튼스쿨·스탠퍼드대·MIT 등 해외 명문 경영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석학이 즐비하다. 해외 교수를 초빙해 MBA 과정을 강화하는 사례도 있다. 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은 기술경영의 창시자인 미 스탠퍼드대 윌리엄 밀러 교수를 초청해 교육과정을 전면 손질했다.이런 열의는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경쟁력은 현장에서 먼저 나온다. 국내 및 해외 MBA 출신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대기업이 날로 증가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MBA 출신 60명을 채용했다. 국내 MBA 30명, 해외 MBA 30명이었다. 지난해에도 MBA 출신을 40명 채용했는데 국내외 비율은 반반이었다. 삼성전자 인사담당자는 “국내 MBA 출신은 1년제 집중코스를 밟았기 때문인지 실무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며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인사담당자도 “국내외 MBA의 대우가 동등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의 글로벌 MBA 과정 수업 모습. 하지만 한국형 MBA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출범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제대로 평가 받은 적이 없다. 현재로선 그들이 발표한 자료가 곧 사실이다. 발표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한국형 MBA 보도가 천편일률적인 까닭이다. 해외 MBA는 그렇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취업성과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비즈니스위크도 졸업생의 강의 만족도와 기업의 채용 만족도를 조사한다.이코노미스트는 한국형 MBA의 경쟁력을 평가했다. 출범 5년이 됐기 때문에 교육여건·성과 등을 분석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번 평가의 대상은 한국형 MBA 13곳 중 11곳이었다. 연세대·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은 불참했다.조사 결과는 이렇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108점),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99점),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97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95점),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86점)”. 괄호 안의 숫자는 4개 분야 15개 항목의 순위를 바탕으로 산출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은 한국형 MBA 중 유일하게 총점 100점을 넘었다. 인하대·성균관대·고려대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교육여건·연구실적·국제화·성과 등 4개 분야에서 고른 점수를 받은 게 효과를 봤다. 교육여건 분야에선 5위, 나머지 3개 분야에선 2위를 기록했다.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의 한 외국인 교수가 MOT(기술경영) MBA 과정에서 수업하고 있다.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은 총점 99점을 획득해 성균관대·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을 따돌리고 2위를 차지했다.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 수주액, 외국인 1인당 학생 수에서 1위에 올랐다.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87.1%로 압도적 1위였다. 2위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으로 40%가 채 되지 않았다.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 수주액은 한국형 MBA 중 유일하게 1억원을 넘겼다. 졸업생 해외취업률, 재학생 중도포기율 지표에서도 경쟁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총점 97점을 얻은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은 3위에 선정됐다. 불과 2점 차이로 인하대에 밀렸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과 차이는 11점. 외국어 강좌 비율, 외국인 교수 1인당 학생 수, 전임교원 1인당 SCI·SCCI급 논문 게재편수 등 많은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졸업생 연봉상승률 지표에선 서울대를 따돌리고 최고 점수를 얻었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졸업생 평균 기본급은 MBA 과정 입학 전 3654만8000원에서 졸업 후 5103만2000원으로 39.6% 상승했다. 서울대의 연봉상승률은 38.0%로 조사됐다.4위엔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이 올랐다. 총점은 95점. 이번 조사에서 총점 90점 이상을 얻은 MBA는 서울대·인하대·성균관대·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4곳뿐이다.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3위 성균관대와는 2점, 2위 인하대와는 4점 차였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연구실적 분야에서 빼어난 점수를 받았다. 전임교원의 2007~10년 SCI·SSCI급 논문 게재편수는 144편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전임교원 연구비 수주액도 172억2688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성균관대 2관왕, 국제화 1위는 세종대이번 조사에서 돌풍을 일으킨 곳은 유일한 지방 소재 한국형 MBA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이다. 86점을 획득해 중앙대·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등 서울 소재 한국형 MBA를 따돌리고 5위에 올랐다. 전임교원 연구실적·성과 등 두 분야에선 평균치에 머물렀지만 교육여건·국제화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다음은 분야별 순위다. 연구실적·성과 분야에선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이 1위를 차지했다. 유일한 2관왕이다. 성균관대가 1위에 오른 두 분야의 2위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이었다. 교육여건 분야에선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동국대·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이 뒤를 이었다. 국제화 분야에선 한국형 MBA가 무너졌다.일반 MBA 과정인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이 36점을 얻어 34점에 그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세종대는 외국인 학생 비율, 외국인 교수 전임 비율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이번 조사에서 꼭 검토해야 할 건 한국형 MBA의 경쟁력만이 아니다.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은 교과부의 인증을 받은 MBA가 아니다. 한국형 MBA가 출범했던 2006년 주간MBA 과정이 없어 탈락했다. 하지만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스스로 참여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한국형 MBA의 간판으로 종종 소개되는 일부 MBA는 자료공개까지 거부했지만 경쟁력이 높지 않았다.한국형 MBA의 출발은 일단 상큼하다. 날개를 잘 폈고, 항로도 시원하게 열렸다. 하지만 한국형 MBA는 불투명한 게 문제다. 뭐든지 숨기면 거창해진다. 속이 빈 걸 들킬까 말이 많아지고 과장하게 마련이다. 속이 훤하게 보여야 문제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개선점이 마련된다. 지난 10월 중순 한국형 MBA 평가를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세종대 MBA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형 MBA도 아닌데 애써 참여할 필요 없다”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우리는 한국형 MBA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공정 경쟁해서 밀리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경쟁하고 싶다. 우리가 부족한 점을 알아야 더 노력하지 않겠는가?”
2010.11.29 11:05
7분 소요▎클렘코스키 성균관대 SKK GSB학장(왼쪽)과 쿠마르 KAIST 학장. 장소는 교보문고. 성균관대 SKK GSB의 로버트 클렘코스키 학장은 한국에 MBA를 가르치러 온 첫 번째 교수다. 2004년부터 한국에서 여러 제자를 키웠다. 그는 한국 MBA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다.한국에서 가장 먼저 MBA 프로그램을 시작한 KAIST 경영대학 수장도 외국인이다. 지난해부터 KAIST 경영대를 이끌고 있는 라비 쿠마르 학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한파다. 1991년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을 계기로 한국 주요 기업을 분석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MBA에 관한 주제로 대담을 요청하자 이들은 ‘한국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지 환영’이라며 흔쾌히 응했다.한국에서 MBA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5년이 지났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도 많다. 한국 MBA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클렘코스키 한국에서 가장 먼저 MBA를 시작한 KAIST에 계신 쿠마르 학장님께서 먼저 한 말씀 해주시지요.쿠마르 발언권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먼저 몇 가지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레벨이 무엇일까요? 우수한 학생, 최고의 교수진, 글로벌 기업의 후원? 이런 요소가 있으면 글로벌 MBA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의 명성은 어떻게 쌓아야 할까요? 수많은 질문에 차례로 답하다 보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시장이 변할 때마다 대학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앞서 말한 조건을 유기적으로 충족하며 경쟁력 있는 학생을 배출해야 합니다. 한국 MBA가 여기에 도달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분야에서 발전이 계속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인정하는 하버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실력을 키웠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를 고쳐 나가며 명문으로 자리 잡았지요. 한국 MBA 프로그램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두 가지를 찍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클렘코스키 IMD, 인시아드 같은 유럽 명문 MBA의 역사는 불과 30년에 불과합니다. 자국을 대표하는 MBA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유럽 각국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국에서 참고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동문회의 활동을 들고 싶습니다. 한국은 선후배 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MBA도 이를 자연스럽게 활용해야 합니다. 선배들이 학교 발전을 위해 자연스럽게 기부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한국 MBA가 교육 내용에서는 글로벌 톱 스쿨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리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학교는 미국 MIT MBA와 동일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 수준, 강의 내용, 교육 과정이 거의 같지만 비용은 훨씬 적게 들어갑니다. 굳이 미국까지 가 MBA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외에서 한국으로 MBA 유학을 오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입니다.쿠마르 맞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에서 인정 받아야 합니다. 외국 MBA 못지않은 교육이 가능하다면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겠지요. 기업에서 한국 MBA 출신자의 능력을 인정한다면 변화가 빨라질 것 같습니다. 대학이 기업과 더 많은 협력을 해야 합니다. 장학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고요. 더 많은 기업이 프로그램을 인정할수록 더 우수한 학생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학장이다 보니 기업을 찾아다니며 이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로버트 클렘코스키 학장 1939년생 미시간주립대(앤아버) 졸업 인디애나주립대 경영학 석좌교수 2004년 성균관대 SKK GBS 학장 클렘코스키 한국 학생은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성실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한국 교육 제도의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MBA 수업은 토론 형식이 많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수업 중 아무나 지적해 발표를 시키려 하면 다른 나라 학생에 비해 훨씬 긴장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비중이 큰 편이지요.쿠마르 동의합니다. 한국 학생은 의사 표현이 약한 단점이 있습니다. 미국 학생은 수업 중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손 들고 물어봅니다. 하지만 한국 학생은 궁금한 점이 생기는 순간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합니다. 눈치 보는 게 눈에 보이죠.클렘코스키 영어 실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잘하는 만큼 수업이 쉬워질 것입니다. GMAT 시험 공부도 권합니다. 특히 미국대학과 공동학위를 생각한다면 필수입니다. GMAT 준비 자체도 MBA에서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쿠마르 왜 MBA를 선택했는지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해요. MBA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학교 프로그램은 어떻게 활용할지, 목표까지 어떤 경로를 거쳐 도달할지 생각을 멈추면 안 됩니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두 사람은 모두 미국 명문대 교수 출신이다. 성공적인 삶을 버리고 한국까지 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단지 친한파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클렘코스키 2002년 인디애나대에 성균관대 총장님이 찾아왔습니다. 성균관대에서 준비하는 MBA를 맡아 달라 하시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 총장이 교수 초빙을 위해 직접 찾아올 줄 몰랐습니다. 대학 재단을 담당하는 삼성그룹은 재정적인 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지요. 한국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생기더군요.클렘코스키 학장의 계약 기간은 4년이었다. 성균관대는 다시 한번 4년의 임기를 부탁했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에서 응했다. 순식간에 7년이 지났다는 클렘코스키 학장은 한국 생활에 만족했다. 다시 2003년으로 돌아간다 해도 한국행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성균관대와 삼성은 나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지켰다”며 “그 덕에 한국에 올 때 목표로 했던 일을 거의 다 이뤘다”며 미소 지었다.쿠마르 2008년 안식년을 보낼 학교로 인하대를 선택했습니다. 한국 대기업을 연구하기에 적합한 대학이었습니다. 연구 활동을 하던 중 서남표 KAIST 총장께서 차 한잔 어떠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만나러 간 자리에서 MBA 학장 자리를 제의 받았습니다. KAIST는 내가 가르치던 USC와 교환학생 프로그램 덕에 알고 있던 학교였습니다. 한국의 MIT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대기업에 관심이 있던 중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제의가 왔기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쿠마르 학장은 USC의 마셜 경영대학이 세계적 MBA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USC 경영학과를 졸업한 많은 한국 학생과 교류하게 됐다. 그가 인하대에서 안식년을 보낸 배경에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USC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쿠마르 학장은 “한국 오는 길에 대한항공에서 비즈니스 티켓을 제공해줬다”며 “이런 점까지 배려해주는 한국 문화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다음 더욱 인상적인 경험이 시작됐다고 한다. 교육자를 존중해주는 한국 문화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쿠마르 미국에 있을 때 교수실로 찾아오는 학생은 대부분 학점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내 점수가 왜 이 정도냐’는 항의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와서는 가르침에 감사하다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지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클렘코스키 맞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던 적이 많았아요. CEO 모임에 참석했는데, 저를 상석에 모시더군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학자를 얼마나 존중해주는지 자주 느끼곤 합니다.쿠마르 만도라는 기업에 강연을 위해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임원이 모인 대형 회의실 중앙에 회장이 앉아 있었지요. 나를 보자 갑자기 회장이 일어나더니 자신의 자리를 권하더군요.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한국에서 교수 하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라비 쿠마르 학장 1952년생 인도공대(IIT) 졸업 일리노이주립대(어배나-섐페인) 조교수 2003년 USC 경영대학 부학장 2009년 KAIST 경영대학장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교육에 대한 정부 규제가 많은 편이다. 대학 입시부터 졸업까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런 점들이 외국인 학장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쿠마르 학교마다 티오가 있더군요. 학생 수를 대학이 아닌 정부가 정해주는 문화가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클렘코스키 정원을 늘리기 위해 매년 많은 노력 기울였습니다. 단지 MBA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로스쿨을 보면 어떤 학교는 120명 정원이고, 다른 곳은 40명이었습니다. 어떤 의대는 매년 24명의 학생만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학교에 무려 400명의 교수가 재직 중이라는 것이지요. 왜 이런 제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학생 수가 너무 적으면 학교도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쿠마르 정부 지원금에 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지원금을 주는 과정에서 정부가 학교 정책에 영향을 주곤 합니다. 미국도 시스템은 비슷합니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대신 사용 내역과 남은 자금의 운용 계획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보고서가 부실하면 자금이 줄어들 수 있지요. 한국은 학교에 정부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학장이 공무원보다 학교를 잘 알 텐데, 왜 제가 할 일을 정부에서 지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KAIST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학교다. 쿠마르 학장은 박 전 대통령을 “굉장히 스마트한 CEO”라고 표현하며 “그분은 큰 그림을 그린 다음 세부적 요소는 실무진에게 맡겼다”고 강조했다. 일을 부실하게 하면 책임을 물을 일이지 전문가에게 사전에 지나친 주문을 하는 일은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클렘코스키 제 생각에 한국은 상위 교육기관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정부가 나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원은 유한한데, 경쟁은 치열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쿠마르 창의적 사고만이 살길이지요. 대학도 마찬가지겠지요. 더욱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는 대학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봅니다.한국 MBA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래서 우수한 학생들은 가급적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나려 한다. 인재가 떠나게 되면 우리나라 MBA 수준이 그만큼 떨어지고 미래도 불투명한 것은 아닐까. 외국인 학장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클렘코스키 먼저 한국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도전과 성취가 이어지는 역동적인 7년을 보냈습니다. 환상적인 경험이었지요.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톱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은 스스로를 낮춰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 왔으니 성공했다는 것을요. 지금 미국에서 전자제품 사러 가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는 삼성과 LG 제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쿠마르 그것도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분류돼 있죠. 저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이룬 업적을 정작 한국 분들은 이해 못 하더군요. 클렘코스키 한국 MBA의 미래는 밝습니다. 글로벌 기업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금융은 투명해졌고, 제조업 전반에 걸쳐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학교로 찾아옵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학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명문 대학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MB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MBA가 성장하기에 최고의 조건입니다. 세계에서 존경 받는 MBA 프로그램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쿠마르 한국인은 열정적인 민족입니다. 해외 대학 교수들은 대부분 굉장히 이성적입니다. 한국에는 이성과 열정 둘 다 겸비한 교수가 참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화끈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문화는 학문적 성취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빠른 나라입니다.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머잖아 한국 MBA를 찾아오는 외국인 학생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글로벌 리더가 KAIST를 선택하도록 저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2010.10.06 18:03
8분 소요▶2015년이면 변호사 간판은 두 배로 늘어난다. 지난 2년간 로스쿨 정원을 놓고 ‘변호사-대학-정부’가 벌인 논쟁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밥그릇 싸움’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변호사 진영이 줄곧 주장한 대로 ‘변호사가 늘어난다고 법률 서비스가 향상되고 가격(수임료)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게 진실이라면, 로스쿨 정원이 1000명이든 2000명, 3000명이든 숫자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이해관계자 간 합의와 상관없이 로스쿨 정원은 2000명으로 결론 났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 결정이 법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법률 서비스 시장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유추해볼 때다. 과연 법률시장은 어떻게 변화될까?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려간다.’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예외는 있다. 이를테면 최근 기름값이 그렇다. 산유국이 생산량을 늘려도 가격은 내리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이고 실제 그렇다. 왜? ‘수요-공급’에 관계없이 투기자본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법률시장 역시 이런 예외시장이라고 주장한다. 공급이 늘어난다고(변호사 수 증가) 수임료가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근거는 이렇다. 비정형적이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법률 서비스 시장에서는 다른 용역 서비스와 달리 공급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법률시장은 수요-공급원리 적용 안 되나 과연 그럴까? 시계추를 7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0년 국내 변호사 수는 4699명이었다. 현재는 9169명. 거의 두 배가 늘었다. 사시합격생이 매년 1000명씩 배출되면서 한 해 700여 명씩 변호사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송 변호사 중심의 국내 법률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양극화’다. 법조계가 추정하는 법률시장 규모는 대략 1조4000억원. 이를 현직 변호사 수로 나누면 1인당 1억6000만원 정도 된다. 하지만 이는 산술적 계산일 뿐이다.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7년 전 국내 개인변호사와 법무법인·합동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비율은 62대 38 정도였다. 현재는 거의 50대 50이다. 이 중 6대 대형 로펌(김&장, 태평양, 광장, 화우, 세종, 율촌)이 시장의 절반(업계 추정 7200억원)을 가져간다. 전체 변호사의 10%가량이 전체 법률시장 매출의 50% 정도를 가져가는 것이다. 중소형 로펌(합동법률사무소 포함)과 개인변호사가 나머지 시장을 절반씩 차지한다. 특히 개인변호사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서울시변호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진 휴업한 변호사는 173명. 올해는 2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냉정하게 바라볼 대목은 있다. 서울 소재 로펌 수가 2002년 135개에서 올해 228개로 늘어났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변호사들이 간판을 내리고 법무법인이나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로 재조직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민간 소송 업무 위주의 개인변호사 시장이 위기에 빠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서울 지역 개인변호사 1인당 평균 사건 수임건수는 30여 건 안팎”이라며 “그나마 매년 줄고 있어 300만원 미만의 수임료를 받는 소액 개인 송무마저 연 20건도 수임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많다”고 말했다. 수임료도 일부 하락 추세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는 공인 수임료 가격을 경력 변호사는 500만~1000만원, 새내기 변호사는 300만~500만원 정도라고 얘기한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김도현 동국대 법대 교수는 “소송금액이 2000만원 이하인 소액 민·형사 사건의 경우 변호사 대리율이 예전에는 2% 안팎이었는데 2006년에는 12%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1심 민사 사건을 변호사가 맡는 대리율 역시 2002년 7%대에서 최근에는 18%대로 올라섰다. 이런 현상은 최근 2~3년 사이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사시 합격 정원이 1000명에 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나온 변호사가 대폭 늘어난 것이 2004년부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변호사 시장에는 ‘수요-공급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변호사들은 계속 우는 소리(?)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로스쿨 정원 2000명은 많아 보일 수도 있다. 우선 공급량(변호사 수)으로 따져보자. 2009년 로스쿨이 개교하면 2012년에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률을 70%로 봤을 때 1400명이 배출된다. 합격률을 80%로 잡으면 1600명이다. 여기에 2013년까지 시행될 사법시험에서도, 비록 감축 논의가 있지만 매년 1000명의 합격자가 나온다. 이를 합하면 2012년에 법률시장에 배출되는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최하 합격자 1400명에 사시합격자 중 판·검사 임용자 및 군복무자 300명을 제외한 700명을 합해 2100명이 된다. 이런 계산이면 마지막 사법시험 합격생들이 사법연수원을 수료(2년)하는 2015년까지 4년간 배출되는 변호사만 대략 8400~1만 명이다. 여기에 한·미 FTA 협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법률시장이 개방돼 외국계 로펌까지 국내로 들어오면 그야말로 ‘법률시장 대란’이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현재 변호사 수는 7년 전보다 2배 늘었다. 그 사이 ‘가난한 변호사’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1인당(사업자 기준) 평균 연 수입은 줄지 않았다. 2004년 변호사 연봉은 3억1700만원, 지난해에는 3억5000만원이었다. 이마저도 국세청 자료일 뿐이다. 본지가 입수한 국가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국내 변호사 1인당 민사 사건은 189건 발생했다. 미국은 15.6건, 영국은 13.8건, 일본은 24.3건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발생하는 소송사건은 많지만 이와 관련된 변호사 숫자는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지난 7년간 변호사가 두 배나 늘었는데,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수임료가 대폭 내려가지 않은 것은 여전히 법률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2015년 4년간 1만 명 배출 하지만 앞으론 얘기가 다르다. 7년 후인 2014년까지 쏟아질 변호사는 9000명을 넘게 된다. 누적 변호사가 2만여 명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외국계 변호사도 국내에서 영업이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법률시장이 그만큼 커질 가능성은 작다. 시장 파이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공급자 증가 속도가 빠르면 당연히 경쟁은 치열해지고, 법률 서비스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보다 높아진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 공급량도 적다고 주장한다. 김민배 인하대 교수는 “변호사 1인당 인구수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변호사는 16만7000명, 영국 수준에 근접하려면 8만여 명”이라고 밝혔다. 법률 서비스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변호사 숫자가 빈약하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예측 가능한 법률시장 변화 시나리오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법률시장이 더욱 양극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펌은 점차 대형화·전문화할 것이 뻔하다. 로펌 간 M&A도 활발해질 것이다. 외국계 로펌이 국내 시장, 특히 대기업 송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개인변호사들은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다. 외국계 로펌이 국내 대기업 소송업무를 장악하면, 국내 대형 로펌들은 중소형 로펌시장을 차지하려 할 것이고, 중소형 로펌은 개인변호사들의 영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인변호사는 좀 더 세분화·특화하면서 틈새시장을 노리고 가격경쟁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법무사나 노무사, 변리사 등 법률 방계시장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와 함께 개업보다는 기업이나 정부기관, 공공기관을 선택하는 변호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법연수원 수료식 모습. 이미 법률시장은 ‘살아남기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소속 변호사가 100명을 넘는 대형 로펌은 좀 더 덩치를 키우며 외국계 로펌의 진격에 대비하고 있다. 20~100명 사이의 중견 로펌은 특정 분야에 강점을 키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앞세워 차별화된 시장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개업 변호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법무법인을 설립하거나, 의뢰인 밀착 서비스, 수임료 인하 등으로 법률 서비스 시장의 파고에 대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로스쿨과 사법시험 합격자가 동시에 배출되는 2015년까지 법률시장은 ‘격변’이 불가피하다. 그 사이 상당수 변호사는 퇴출당하거나 ‘백수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로스쿨 정원이 늘어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던 변호사 진영도 이제는 의뢰인 위에 군림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서비스를 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양극화와 ‘파레토의 법칙(20 대 80 시장)’이 심화할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젠 취업 걱정까지… 사법연수원에 ‘진로정보센터’도 생겨 지난 8월 사법연수원 내에 진로정보센터가 문을 열었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곳이다. 사시에 합격한 예비 법조인의 취업을 돕는다? 이 자체가 법률시장 변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진로정보센터 홈페이지에는 각종 법무법인이 낸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다. 11월 26일에는 진로정보센터 주최로 연수원생 대상 취업박람회가 열린다. 매년 취업설명회는 있었지만 규모를 늘려 박람회 형식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3일 간 열릴 취업박람회에는 삼성·LG전자·대한항공·한화 등 대기업과 화우·율촌·서정 등 법무법인, 국방부·노동부·정부 법무공단 등 정부기관 24곳이 참여할 예정이다. 판·검사, 로펌, 개업이 아닌 비법조계로 진출하는 사법연수원생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사법연수원 수료생(29기, 사시 39회) 중 비법조계로 진출한 인원은 37명이었다. 이후 2002년에는 55명, 사시 합격생이 대폭 늘어난 2004년에는 98명에 달했다.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료생 975명 중 판사(89명), 검사(88명), 로펌(273명), 개업(204명) 등 654명이 법조계로 진출했다. 반면 군복무(180명)를 제외하고 비법조계로 간 연수원생은 141명(정부기관 74명, 기업 46명, 사회단체 10명, 기타 11명)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기업 변호사’ 시장이다. 기업은 변호사 시장에서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불린다. 지난해 사업연수원을 수료한 975명 중 46명이 기업을 택했지만, 해마다 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국내 100대 기업 중 절반 가까이는 사내 변호사가 없는 실정이지만, 앞으로 수요는 대폭 늘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법률 리스크’가 증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상장기업의 피소 건수는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게다가 증권집단소송제, 소비자 단체소송, 제조물책임법 제정 등 기업 관련 소송제도가 급증하고 있어 기업이 법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세영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기업경영 활성화를 위한 법률 서비스 개선은 기업의 법률 리스크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기업 파트너로서 변호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불거진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 사건’으로 사내 변호사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부정적 인식’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변수다.
2007.11.26 18:50
7분 소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 코넬대는 뉴욕주에서 컬럼비아대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이다. 코넬대는 전형적인 대학촌을 이루고 있어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분방함을 중시하는 컬럼비아대와는 학풍이 다르다. 캠퍼스는 더없이 아름답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시러큐스에서도 100㎞ 이상 떨어진 코넬대는 두 개의 호 수를 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스탠퍼드, 프린스턴, 듀크대와 함께 아름다운 캠퍼스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코넬은 ‘공부를 너무 많이 시켜’ 미국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다소 떨어진다. 반면 유학생 모집은 적극적이어서 한국 학생들도 다수 재학하고 있다. 특히 코넬에 유학생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이 대학의 외국인에 대한 풍부한 장학금 지원이다. 미국 내에서 유학생에게 가장 많은 장학금을 주는 대학으로 꼽힌다. 1865년에 설립된 코넬대는 주립과 사립이 공존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코넬대가 뉴욕주 정부의 후원을 받아 몇 개의 단과대학을 설립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주립으로 간주되는 대학은 농대, 인문대, 인간생태대학, 산업-노동관계대학 등 4개 대학이다. 코넬대학교 구분: 사립대 개교연도: 1868년 소재지: 미국 뉴욕주 이타카 교수 1인당 학생수: 9명 장서: 611만 권 학교 특징: 코넬은 ‘공부를 너무 많이 시켜’ 미국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다소 떨어진다. 반면 유학생 모집은 적극적이어서 한국학생들도 다수 재학하고 있다. 한국 동문: 코넬대를 나온 국내 동문은 1000명에 육박한다. 송상현 서울대 법대 교수와 함태용 장은공익재단 이사장, 양윤세 전 동력자원부 장관, 최기곤 한국가구 회장 등이 코넬대의 1세대 유학생들이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경영대학원 유학생이 많았다.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과 서경배 태평양 사장, 이종철 풍농 대표, 이만수 호텔신라 상담역(전 대표이사 사장) 등이다. 이들 주립 단과대학들은 등록금도 주립대 수준으로 나머지 사립 단과대학들에 비해 거의 절반의 학비만으로도 졸업할 수 있다. 코넬대가 자랑하는 단과대학은 단연코 공대와 호텔관광대다. 전국적인 시설을 자랑하는 컴퓨터학과와 건축공학 등은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호텔관광대 역시 코넬 최고의 단과대학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대학 랭킹제가 실시된 후 코넬의 호텔관광대는 한 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다. 최고 명문대학으로서는 드물게 호텔관광학과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있으며 자체에서 호텔을 운영해 학생들에게 풍부한 실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는 로리무어(Lorrie Moore),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 등 쟁쟁한 작가들을 배출한 영문학과가 첫손으로 꼽힌다. 농대도 미국에서 최고 수준으로 이 계통에 투자하는 대학이 드문 동북부지역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코넬대의 교수들 중에는 카리스마적인 개성을 가진 학자들이 많다. 학생들이 이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들 괴짜 교수들은 학점에도 인색해 이들로부터 A학점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코넬은 기숙사 시설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 이는 이 대학의 자랑인 호텔관광학과 덕분이기도 하다. 전 학생의 82%가 기숙사 생활을 한다. 기숙사의 음식은 전 미국 대학 중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다. 매끼 보통 20가지 이상의 메뉴가 등장하고 있다. ▶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코넬대가 위치한 뉴욕주 이타카는 특별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이라고는 거의 없는 소규모 읍 단위 도시다. 이곳에서의 유학은 벽지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넬의 건물 중에는 중세유럽의 성을 본뜬 것도 많으며 이들이 호수를 끼고 늘어선 모습은 방문자들이 넋을 잃을 정도다. 집중해서 공부하기에는 최고의 대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근에는 면적이 제주도와 비슷한 2개의 대형 호수가 있어 보트를 타거나 낚시를 하기에도 그만이다. 코넬은 1872년부터 여학생들을 받아들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남녀공학이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재원을 배출한다’는 것을 모토로 삼는다. 대부분의 대학은 이타카에 있지만 1898년 설립된 Weill의과대학만은 뉴욕시 맨해튼에 자리 잡고 있다. ‘코넬 마피아’란 코넬대 호텔경영학과 동문들이 미국 호텔업계를 장악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전 세계 관광업계 요직에 1만여 명의 동문들이 포진해 있다. 전 세계에 호텔 체인을 갖고 있는 포시즌호텔 존 샤프 회장이 1965년 이 학교 졸업생이다. 메리어트 호텔 체인은 오너 가문이 코넬대 호텔 경영학과를 나온 덕택에 졸업생들이 곳곳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고품격 호텔체인인 브리스톨 호텔의 피터 클라인 회장, 미라지 호텔 댄 리 부사장, 애틀랜틱시티 시저스 호텔 오드리 오스웰 수석부사장 등이 코넬의 호텔관광대를 졸업했다. 북미에서 10번째 규모 안에 드는 코넬대의 19개 부속도서관에는 713만5881권의 각종 도서와 794만9515점의 마이크로 필름 자료 및 CD를 포함한 40만여 점의 시청각 자료가 소장돼 있다. 코넬대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학생 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매년 6000명 이상의 신입생을 받고 있는데 지원생 수는 3만 명을 넘는다. 신입생의 평균 SAT 점수는 1270∼1460점. 신입생의 82%가 고교성적 상위 10%였다.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학과로는 경제학, 생물학, 농학 등이며 약 5%가 호텔경영학에 지원한다. 코넬대를 나온 국내 동문은 1000명에 육박한다. 송상현 서울대 법대 교수와 함태용 장은공익재단 이사장, 양윤세 전 동력자원부 장관, 최기곤 한국가구 회장 등이 코넬대의 1세대 유학생들이다. 국내 동문 줄잡아 1000여 명 공대와 법대, 경영대 중심으로 100여 명이 유학하면서 2세대를 형성했고 이들은 1970년대에 유학한 그룹이다. 안규홍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 전홍택 KDI 부설 공공투자관리센터 소장, 엄봉성 케이아이비넷 대표, 포항공대 백성기 교수가 그들이다.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선 경희대 교수, 최홍림 서울대 동물자원학과 교수 등은 80년 전후로 유학한 2.5세대 그룹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경영대학원 유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을 코넬대 동문의 3세대그룹으로 분류한다.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 이종철 풍농 대표, 이만수 신라호텔 상담역(전 대표이사 사장) 등이다. 그 유명한 코넬의 호텔관광대 출신으로는 배선경 W서울 워커힐 부총지배인이 있다. 호텔업계 첫 여성 부총지배인으로 1996년 마이크로네시아와 한국의 하얏트호텔 마케팅을 관할하는 지역매니저로 호텔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2003년 1월부터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과 인연을 맺고 활동하다 8년여 만에 부총지배인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W서울 워커힐 부총지배인에 임명돼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상무도 코넬 호텔관광대 출신으로 그룹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의 이사다.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부에 입사한 조 상무는 2005년 상무보에서 1년 만에 기내식사업본부장인 상무로 승진했다. 이만수 신라호텔 상담역은 호텔관광학과 출신이 아니라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제계 인사로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이종철 풍농·양주컨트리 대표이사, 이상민 시안 레스토랑 사장, 박철준 베인 앤 컴퍼니 대표, 최훈학 한국가구 사장, 조철용 동우해운 사장,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경제학박사), 오태영 루이스독 대표이사 등이 있다. 코넬 출신 공학박사들은 삼성전자에만 약 30명이 근무하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1985년에 코넬에 유학,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코넬 경영대학원의 이름은 ‘존슨 스쿨’이다. 존슨 스쿨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기 위한 노력과 함께 여성과 소수인종에 대한 배려도 각별하다. 오래전부터 학생 선발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해왔다. 무엇보다 여성과 소수 인종의 입학이 쉽도록 적극 배려한다. 이들의 입학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존슨스쿨 출신의 한국 동문은 70~80명 정도다. 서경배 사장 외에도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둘째아들인 김정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이 있다. 김 부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86년 존슨스쿨에서 MBA 취득, 뱅커스트러스트은행 부지점장을 거쳐 1997년 삼양사에 입사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도 존슨스쿨의 동문이다. 차 사장은 코넬대 존슨스쿨과 인디애나대 로스쿨까지 마치고 1985년 미국 P&G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차 사장은 98년 P&G·쌍용제지 사장으로 출발해 해태제과 사장을 거쳐 지난해 1월 LG생활건강 사장으로 부임했다. 요즘 그는 LG그룹에서 가장 주목 받는경영자로 떴다. 그가 2005년 1월 취임한 이후 LG생활건강은 영업 이익이 두 배 가까이 뛰었고 주가는 3만원대에서 11만원대로 올랐다. 매출액은 1조원 시대를 개막했다. 2년 전만 해도 LG그룹 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던 LG생활건강이 효자로 급변신한 셈이다. 구본무 LG 회장이 직접 영입했다는 ‘차석용 효과’다. ▶ (위에서 왼쪽으로)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 배선경 W서울 워커힐 부총지배인, 송상현 서울대 교수, 안규홍 KIST 박사, 강충식 대검 부장 이호진(45) 태광산업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코넬대 MBA를 받고 뉴욕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회장은 국내 재계 순위 38위이자 계열사만 52개를 거느린 태광그룹의 오너다. 부인은 신격호 롯데 회장의 동생인 신선우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인 신유나씨다. 비료제조업체 풍농의 이종철 사장과 IT소재 전문업체 SSCP의 오정현 사장도 이곳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최훈학 한국가구 사장도 부친에 이어 코넬 동문이 됐고 1994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장기신용은행 회장 출신인 함태용 장은공익재단 이사장이 존스스쿨 출신. 서울대 공대 졸업 후 코넬에서 대학원을 수료하고 장기신용은행 은행장을 거쳐 명예회장까지 지냈다. 법조계에는 작년 12월 코넬 동문회장에 선출된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겸 대한변협 사무총장이 있다. 그는 해상법을 전공한 국내 2호 외국 박사다. 박병대 대법원 기획조정실장,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조희대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이 코넬 출신이다. 이영희 교수 등 학계서 맹활약 박병대 대법원 기획조정실장은 사시 21회로 서울고등법원 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2006년 1월부터 법원 행정처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깡마른 체구의 ‘딸깍발이’ 이미지인 조대희 부장판사는 법원 내에서도 개혁적 마인드의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2003년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시절 명의신탁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조 판사는 판결문에서 “명의신탁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로 명의신탁자에게 민사상의 구제를 허용하면 부동산 실명제에 심각한 훼손이 초래된다. 법원은 명의신탁자가 구하는 어떤 민사상 청구에도 협력을 거부해야 한다”며 명의신탁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강충식 대검 마약조직범죄 부장, 정현수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종훈 법무법인 대륙 파트너변호사, 김명진 변호사, 임한흠 법무법인 마당 대표변호사, 이진우 변호사, 한민 김앤장 법률사무소 파트너변호사 등도 코넬대에서 수학했다. 정현수 부장판사는 최근 화제의 판결을 내렸다. 증권전문가 행세를 하며 수십억원을 가로챈 사기범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형이 무겁다”며 항소하자 2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임한흠 변호사는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코넬대 법대에서 장기 연수 교육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법무법인 마당은 지적재산권 분야의 특화된 업무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는 권장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이기춘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권영혜·황금택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영희 인하대 법대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권태헌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교수, 전홍택 KDI 전 부원장, 진영환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 최홍림 서울대 농생대 교수, 여정성 서울대 생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신형식 전북대 교수, 김주연 홍익대 산업미술과 교수, 강신일 연세대 공대 교수 등이 활동하고 있다. KAIST 권장혁 교수는 항공우주과학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 이기춘 교수 역시 소비자 아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영희 인하대 법대 교수는 한나라당의 초대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아 당의 싱크탱크를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코넬대에서 학위를 딴 적은 없지만 1987년부터 약 1년 간 코넬대 법대에서 객원연구교수를 지냈다. 인하대 법정대 학장을 역임했고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현)을 맡는 등 시민운동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주연 교수는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시카고예술학교대학원 실내건축대학원에 진학했다, 1991년 코넬대에서 실내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강신일 연세대 교수는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고려대 학부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수가 된 보기 드문 케이스다. 나노산업 분야를 연구하면서 항상 최고의 연구성과를 내는 교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나의 모교 “아름다운 캠퍼스, 정다운 동문들의 대학” 김현 대한변협 사무총장 ▶ 약력 1956년생, 서울대 법대, 코넬대 법학석사, 워싱턴대 법학박사,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대한변협 사무총장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코넬대를 지망했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 송상현 지도교수께서 코넬대에서 국내 첫 번째 법학박사 학위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송 교수님의 추천서 덕분에 필자가 코넬 로스쿨에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유학하게 됐다. 도착해 보니 100여 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있었는데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신속히 귀국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코넬은 법학, 경영학, 화학, 물리학, 의학, 건축, 소비자도 유명하지만 특히 호텔스쿨과 농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 유명 호텔의 지배인은 대부분이 코넬 호텔스쿨 출신이라 할 수 있다. 코넬은 뉴욕주 한가운데 있다. 뉴욕시와 버펄로 나이애가라 폭포의 중간 지점에 있는데 빙하 지형이어서 주위에 손가락같이 가느다란 호수들이 많이 있다. 코넬의 작은 공항에 도착하니 은퇴한 코넬 호텔학 교수인 85세의 뱅스 교수가 친절히 맞아 하룻밤을 자기집에서 재워주셨다. 기숙사 방을 안내해 주고 가구와 자동차 구입, 전화 개통, 은행계좌 개설, 장보기 등 정착에 필요한 일들을 자상하게 알려주셨다.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에는 꼭 댁으로 불러 위로해 주셨고 일요일마다 방문해 시내 구경을 시켜주셔서 숙제하기에 바쁜 내가 사양하느라 쩔쩔매기도 했다. 나와 같이 뱅스 교수의 보살핌을 받은 학생이 무려 20명이나 된다고 하니 봉사의 정신이 몸에 밴 분이다.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셨는데 만년에는 시력을 상실해 녹음이 흘러나오는 맹인용 책을 듣던 모습이 눈에선하다. 또 송상현 교수의 지도교수인 로스쿨 딘 교수님은 나를 퍽이나 아껴주셨다. 아마도 송 교수께서 워낙 출중하셨으므로 그 제자인 필자까지 덩달아 총애하신 것 같다. 이만수 신라호텔 사장, 권태헌 포항공대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박원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안규홍 KAIST 교수 등이 당시 자주 어울리던 분들이다. 필자의 기숙사 옆 건물에는 농대 대학원생이던 서울대 농생대 최홍림 교수가 살았는데 최 교수는 아침마다 가방을 둘러메고 나들이를 가곤 했다. 방학이긴 하지만 참 한가롭구나 생각했는데, 최 교수는 아침마다 도서관에 가서 면학에 전념하고 계셨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는 대학생들이 메는 가방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최 교수님이 매일 놀러가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코넬 캠퍼스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다 해도 손색이 없다. 학교 안에 계곡이 있고 계곡을 가로질러 흔들다리가 있으며 학교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에 떠있는 하얀 배들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필자는 1984년 코넬 재학 시절 아들을 낳았는데 미국은 출생지주의이므로 아들이 본의 아니게 이중국적자가 됐다. 18세가 되면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데 아들과 숙고 끝에 한국 국적을 택하기로 하고 현재 군대에 가 있다. 매우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코넬 동문회 회원은 약 800명이다. 양윤세 전 동력자원부 장관, 최기곤 한국가구 회장, 함태용 장은공익재단 이사장, 송상현 국제형사재판관, 박헌서 한국정보통신 회장, 임강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엄봉성 전 재경부 장관 자문관·아이낸스닷컴 회장, 안규홍 KAIST 교수 등이 역대 동창회 회장들이다. 필자는 1991년 귀국한 이래 동창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해 왔다. 총무 5년, 부회장 2년, 수석부회장 2년을 거쳐 2006년 겨울 동창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올해 동창회 홈페이지 완성과 모교에 10만 달러의 장학기금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학기금은 영원히 코넬대 한국동문회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원금에서 생기는 이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 유학생들을 도울 생각이다. 연말에 스코튼 심임 총장이 방한할 예정인데 이때 ‘자랑스러운 코넬 동문상’을 제정해 시상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본회에는 최근 경사가 많았다. 송상현 교수님의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당선과 재선, 신희섭 KAIST 교수님의 제1호 국가과학자 임명,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님의 성공적인 기업 경영, 서울대 생활대 교수 27분 중 코넬 동문이 무려 일곱 분이나 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동문회는 한국의 고3학생들이 코넬 학부에 지원할 때 인터뷰해 코넬에 보고하는 일도 맡고 있다. 5년 전 연 50여 명이던 지원자가 작년에 300명을 넘어섰다. 면접자도 열 분이던 것을 사십 분으로 대폭확충했다. 우수한 지원자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곤 한다. 이 우수한 재원들이 유학 후 귀국해 우리나라의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2007.07.16 15:01
11분 소요예일대는 미국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한 대학이다. 1701년 설립돼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예일대가 위치한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시는 뉴욕에서 약 120㎞ 떨어진 인구 13만 명의 소도시로 예일대를 중심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대학도시다. 예일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교포학생을 제외하고는 한국 유학생이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크게 증가해 1990년대 이후에는 연평균 100명을 넘고 있다. 이 학교는 하버드보다 한국인에게 덜 알려져 유학생 수가 하버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예일대는 다른 유명 대학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소수인종 입학장려, 최초 남녀 공학 실시 등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신학문인 경영학을 달갑지 않게 여겨 1976년에야 뒤늦게 경영대학원을 설립할 정도로 보수적인 일면도 가지고 있다. 예일대학교 구분: 사립대 개교연도: 1701년 소재지: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 교수 1인당 학생수: 3명 장서: 1080만 권 학교 특징: 미국에서 최초로 박사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한 대학이다. 소수 인종 입학 장려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국인 동문: 예일대 동문 중엔 기업보다는 학계 쪽에 진출한 사람이 훨씬 많다. 윤후정 이화학당 이사장, 권태준 서울대 명예교수,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박문옥 단국대 명예교수, 백낙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등 원로 교수들이 학계의 거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치학 분야에서는 서강대 신윤환·유석진·김재천 교수가 있고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이삼성 한림대 교수, 신욱희 서울대 교수, 조정관 한신대 교수 등이 정치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일대는 아이비리그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Residential System’이 잘 갖춰져 있다. 거의 전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학업에 몰두하고 우정을 다진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수업 외 시간에도 항상 열띤 학문적 토론이 이어진다. 그래서 기숙사도 ‘Yale College’로 불린다. 17세기 중반부터 코네티컷 지방에 목회자 양성 학교의 설립을 구성하던 중 1701년 목사 10명이 제각기 소지하던 책자들을 들고 와 학교 문을 연 것이 예일의 시작이었다. 당시 학생 수는 단 1명뿐이었고 교장 그리고 강사 1명으로 한 목사의 집에서 개강했다. 그 후 1916년 현재의 뉴해이븐 자리로 옮기게 됐다. 당시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던 이 학교에 예일(Elihu Yale)이라는 상인이 상품들을 기증했고, 이를 팔아 562파운드를 모으게 되자 학교 이름을 예일로 바꾸게 됐다. 처음에는 인문계 과목을 중심으로 목회자를 양성하는 학교 정책에 전념했다. 시일이 지나면서 유럽의 새로운 학문의 영향을 받게 되고 또 목회자가 되려는 학생의 수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학교가 계속 발전하고 또 성장해 오면서 이 학교에는 의대(1810년), 신학대(1822), 법대(1824), 문리대대학원(1847), 미술대(1865), 음대(1894) 등이 세워졌다. 20세기 이후 산림학대(1900), 간호대(1923), 연극학대(1955), 건축대(1972), 경영대(1974) 등이 추가됐다. 문리대대학원은 1861년 미국 최초로 박사학위(Ph.D.)를 수여했고 1854년 동양인(중국 태생)에게 미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학사학위를 수여한 것도 예일대다. 대학원에서는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됐지만 학사학위 과정의 예일칼리지는 1969년에야 처음으로 여학생을 입학시켰다. 초창기에 재정난을 겪었던 이 대학은 현재 2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확보해 미국 대학 중 네 번째 부자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 부시 외에도 예일대 졸업생 중에는 뛰어난 인물이 많다. 우선 미국 내 주요 산업체 CEO 중 예일 출신이 가장 많다. 또 미국의 8만여 개 산업체의 중역 중에서도 예일 출신이 제일 많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예일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하버드나 프린스턴대 학생 못지않게 대단히 우수하다. 학사학위 과정에는 65개 전공 분야가 있다. 그중에서도 인문, 사회과학 분야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영문학, 역사, 미술사, 종교학 등이 뛰어나다. 음악과 연극분야도 잘 알려져 있다. 정치학, 외국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심리학 분야에도 쟁쟁한 교수들이 있다. 올해 개교 306주년을 맞은 예일대는 뉴잉글랜드의 콜로니얼식이나 빅토리안 고딕식 건물이 줄지어 있는 캠 퍼스가 인상적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2주간의 소위 ‘강의실 쇼핑’ 기간이 마련된다. 학생들은 자신이 지 원한 클래스에 들어갔어도 이 기간 내에는 다른 강의실에 드나들며 마음에 드는 교수나 강의실 분위기를 선택할 수 있다. 美 CEO 들 예일 출신 가장 많아 대학 내 43개 도서관에 약 1140만 권의 각종 도서와 980만 점의 마이크로필름 자료 및 24만여 점의 시청각자료, 6만6867종의 정기간행물이 비치돼 있고, 부설시설로는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플라네타리움, 라디오방송국, 베이네케 희귀본·필사본 도서관, 마시식물원을 비롯해 많은 연구센터가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클린턴,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예일대 출신이다. 구한말 태프트 조약의 당사자인 윌리엄 태프트(27대, 1909~13) 대통령이 로스쿨 출신으로 퇴임 후 예일대 법대 교수를 역임했다. 모스 부호를 만든 새뮤얼 모스(Samuel Morse)와 1828년 웹스터 영한사전을 편찬한 노아 웹스터도 예일 출신이다. 국내 예일대 동문은 300명을 웃돈다. 동문 사이에서 ‘원로’로 꼽히는 동문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정치학 박사)와 고 박성용 전 금호그룹 회장(경제학 박사)이다. 동문들은 두 사람을 예일대 동문의 ‘양대 축’으로 생각한다. 이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에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에서 학부 생활을 했다. 예일대에서는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에모리대 조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등을 거쳐 1988년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입각한 후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주영 대사, 주미 대사, 통일부총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금은 중앙일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면서 중후한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고 박 전 회장은 캘리포니아대 조교수,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등을 거치면서 학계와 관계에서 경험을 쌓은 뒤 72년부터 금호그룹에 발을 디뎠다. 그는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화가들과 음악 영재를 키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아 음악인들을 열렬히 후원했던 옛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 하지에 비유돼 ‘한국의 에스테르 하지’라고 불렸다. 예일대 동문 중에는 유난히 고위 공직자가 많았다. 기획예산처·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장승우(경영학 석사)씨,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경제학 석사), 정종욱 전 주중 대사(정치학 박사),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금융통화위원(경제학 박사),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김기환 전 상공부 차관(역사학 석사), 임내규 전 산업자원부 차관(경영학 석사) 등이 대표적이다. 장승우 전 장관은 한국투자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중용됐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예일대 경제학 석사 출신으로 현재 청와대 비서실 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변 실장은 공기업을 포함한 정부 세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으며 자전거 전용도로 확대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청와대 내 태스크포스를 가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태동 위원은 성균관대 교수, 한국금융학회장 등을 거치며 학계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시장 실패 해결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경제철학을 갖고 있다. 김기환 전 차관은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UC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을 거치며 현실 경제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정계 인사 중엔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있다.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으로 당내 소장개혁파의 중심인물로 성장하고 있다. 이종률 통일시대연구소 이사장도 예일 출신이다. 이 이사장은 1979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후 청와대 대변인, 정무1장관 등을 거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인권변호사 강신옥씨도 예일대 법대에서 수학한 경력이 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다 정계에 입문, 민주당 대표를 지낸 장상씨도 예일대에서 수학했다. 예일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를 받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에는 예일대 신학대학원 ‘자랑스러운 동문인 상’을 받았다. 경제계서도 활약 두드러져 예일대 신학과 출신으로는 석사학위를 받은 신낙균 전 의원이 있다. 신 전 의원은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아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을 펼쳤으며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맡으며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재계와 경제계에서도 예일 동문들의 활약이 상당하다. 다만 학풍상 정계, 관계, 학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다. 조현준 효성 사장은 예일대에서 정치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효성은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한창이다. 장남인 조현준 사장에게는 스판덱스 등 기존 섬유·화학 부문을, 2남 조현문 부사장에게는 중공업을, 3남 조현상 전무에게는 수입자동차 딜러인 더클래스효성과 금융회사인 효성캐피탈 등 기타 사업군을 각각 맡겨 상호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사업을 특화해 나가고 있다. 박재하 모토로라코리아 부회장도 예일 출신이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점이 이채롭다. 미국 해사에 유학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예일대에 진학해서는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외 이찬구 한라그룹 상임고문, 김한 유클릭 회장, 임래규 코코실버 회장이 예일 출신이다. 장일형 한화경영기획실 부사장은 전략홍보담당을 맡고 있고 이양동씨는 어헤드모바일 대표이사 사장이다. 김세진 한국채권평가 대표이사 사장, 김종희 한국전자거래진흥원 원장, 박성현 알짜마트닷컴 대표이사 사장도 예일에서 수학했다. 예일대 동문 중엔 기업보다는 학계 쪽에 진출한 사람이 훨씬 많다. 윤후정 이화학당 이사장, 권태준 서울대 명예교수,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박문옥 단국대 명예교수, 백낙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원로 교수들이 학계의 거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예일 출신들은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과 음악 등 예술 분야에서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정치학 분야에서는 서강대 신윤환·유석진·김재천 교수가 있고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이삼성 한림대 교수, 신욱희 서울대 교수, 조정관 한신대 교수 등이 정치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제학 분야에는 국내외 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박준용 성균관대 교수를 비롯해 황윤재·김재영·박상인 서울대 교수, 김창식·이인표·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이우헌 경희대 교수 등이 포진해 있다. 박준용 교수는 올해 2월 한국계량경제학회 2007년 회장으로 선임됐다.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우헌 교수는 MBC 대선 보도 자문단에 포함돼 대선 후보들의 경제 정책을 검증하고 스크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예일대 학풍은 시장 실패 해결을 위해 정부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며, 국제경제학과 계량 경제학 분야에서 높은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경영학에서는 신동엽 연세대 교수, 인류학 분야에서는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이 유명하다. 신 교수는 예일대에서 조직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분야의 권위자며, 정종호 교수는 중국 사회와 중국인의 변화에 학문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과 빈부격차, 그 대안들을 분석하는 데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사회학 분야에서는 진승권·최샛별 이화여대 교수, 박영신 연세대 전 교수 등이 있으며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조수철 서울대 의대 교수 등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조수철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베토벤 전문가로 이름이 높으며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자연과학에서는 이일항 인하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강석진(수학)·김영훈(수학)·이은(화학) 서울대 교수, 김용철 연세대 천문학과 교수 등이 있다. 특히 이일항 교수는 영국 왕립 전기전자공학회(IEE) 등 세계적인 권위의 저명 학회 4곳에서 ‘펠로’로 추대돼 화제를 모았다. 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축구광으로 잘 알려져 있고 최근 수학의 대중화를 위한 서적을 출간,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문사이기도 하다. 음악 분야에서는 박경옥 한양대 교수, 배일환 이화여대 교수, 손인경 연세대 강사, 이민정 건국대 교수, 유시연 숙명여대 교수, 작곡가 김지영씨 등이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영씨는 프랑스 유명 연주자인 요요마가 주관하는 실크로드 프로젝트 등에 참가했으며 김미희 예술종합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연극 비평에서 손꼽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나의 모교 “담쟁이 덩굴 캠퍼스에서 여한 없이 공부”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 약력 1968년생, 예일대학원 정치학 박사, 현 고려대 국제학부 조교수 방 열쇠를 받아 들고 들어선 기숙사 앞뜰에는 수도원에서나 볼 법한 담쟁이가 빽빽이 깔려 있었다. 불안감과 기대감으로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선잠을 깨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 사이로 보이는 마치 중세의 성곽과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었다. 예일대에서의 첫날은 시간을 거슬러간 느낌으로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어언 8년 가까운 시간을 대학원 생활과 교수 생활을 거치면서 예일에서 보내게 되었다. 예일대의 학생 규모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학부의 경우 일년에 1300명 정도만 선발하니까 한국의 주요 대학 규모의 3분의 1도 채 안 되는 셈이다. 대학원 역시 한 학년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필자가 다녔던 정치학과 대학원에는 14명 정도가 입학했고, 많이 뽑는 해에도 20명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규모가 작은 만큼 인간적으로는 더 각별하고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이미 수많은 경쟁을 뚫고 엄격하게 선발된 학생인 만큼 학생 서로 간의 경쟁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유로운 학풍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대학원생들에게는 어느 교수 밑에서 공부하느냐고 묻기보다는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work with)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 준 학자로서 대접해 주는 것이다. 학부의 거의 모든 생활은 12개로 나뉜 칼리지(College)라고 불리는 기숙사를 통해 이뤄진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보다 폭넓은 지식을 공유하고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예일의 힘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도서관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현대식 시설부터 고전적인 서재와 같은 열람실을 마치 뷔페식당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 자리 하나 맡기 위해 새벽부터 뛰어다니던 한국의 대학생활에 비해, 안락한 소파에 푹 파묻혀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학문을 하는 큰 즐거움이었다. 단지 아무리 읽어도 줄지 않을 만큼의 책과 논문을 과제로 받았던 것을 뺀다면. 지금 생각하면 무식이 용감이라고 그때는 그냥 막무가내로 공부했던 것 같다. 정신 없이 진행되는 세미나에서 “과묵한 동양학생”이 발언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와 집중을 요했다. 가끔은 몇 마디를 하기 위해 두 시간을 조마조마하게 버티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수업을 마치기도 했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과 단타 위주로 타점을 올리는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눈치가 늘어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수업에 대한 감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 것은 학위 과정이 거의 끝난 뒤였다. 강단에 서서 수업을 진행하는 지금에 와서 문득문득 “아, 그때 그 얘기가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쨌든 여한 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좋은 교수진과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교과서에서 보던 낯익은 이름들을 학교에서 직접 마주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정치학계의 전설과 같은 로버트 달(Robert Dahl)이나 후안 린츠(Huan Linz) 교수는 칠십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세미나를 하고, 포도주를 들고 와서 대학원생들과 나눠 마시며 수업을 진행하던 데이비드 엡터(David Apter) 교수도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늘 고맙게 여기는 것은 주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인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교수는 학내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소문난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겸손하면서도 진지한 대가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네에서 초등학교 축구 코치로 더 알려진 폴 케네디(Paul Kennedy) 교수는 봄, 가을이 되면 철새 구경(bird watch)을 가자고 종종 e-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다니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여사가 학창시절 자주 다녔다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상화된 대통령 투어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인구 5만 명의 유럽 소국인 안도라에서 온 20대 동료 유학생은 재학 중 유엔대사로 발령을 받아 종종 수업에 들어오지 못했다. 본인이 쓰는 비용이 안도라 중앙은행에서 결제되는 이 VIP 친구는 귀국 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분명 안도라 대통령이 될 것으로 모두 기대하고 있다. 예일에서 보낸 8년 동안 대학원에 갓 입학한 유학생에서 강단에 선 교수로 신분이 여러 차례 격상돼 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처음 도착한 기숙사 방에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된 심정으로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창 밖을 내다보던 그 모습이 또렷이 남아 예일에서의 유학생활을 상기시키곤 한다.
2007.07.16 14:38
11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