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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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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에도 90년대생들이 온다 ②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가계의 주택마련 방식은 저축이었다. 당시엔 은행대출이 어렵기도 했고, 이자도 높았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1기 신도시 주택소유자의 인식조사’ 설문과 2013년 내놓은 ‘고도성장기에 계획된 한일 수도권 교외 신도시의 성장과정 비교연구’ 속 통계에 이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나있다. 1기 신도시 초기입주자는 30~40대 가구주와 그 자녀세대로 구성된 가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들 가구 중 서울에서 이주한 비율이 3분의 2(분당 69%, 일산 65.9%) 가까이나 됐다고 한다. 이들의 주택구입목적은 69.7%가 ‘실거주’였으며 주택구입자금 조달방식을 묻는 질문에는 70%가 ‘본인이 모아둔 저축’이라고 응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축한 돈으로만 집을 산다는 게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유추해 보면, 이들은 서울에서 전세 또는 자가 소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집값이 저렴했을 신도시로 이주하는데 그 자본(전세보증금, 또는 기존 주택 매각자금)이 주요한 자금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이 적거나 거의 없는 요즘말로 ‘풀(full) 소유’였다. IMF 외환위기, 중산층의 버팀목 된 아파트그러나 이들은 신도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뒤 채 10년이 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는 많은 게 무너지고 사라졌다. 기업과 일자리가 사라졌고, 고용시장에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집값, 전셋값이 하락했으며, 지금처럼 명예퇴직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일자리와 소득이 단절된 가장이 그래도 버틸 만 했던 배경에는 온전히 풀 소유 했던 내 집 한 채가 있었다. 이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자영업에 뛰어든 40-50대가 많았는데 이들의 사업초기 자금은 자신들이 소유한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나 융자였다. 다행히 1999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금리가 내려갔고, 은행의 대출대상이 기업에서 가계로 전환되면서 가계들의 자금동원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이때 가계대출에서 금리가 가장 저렴한 대출은 단연 주택담보대출이었는데 2000년대 초부터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얻어 사업자금이나 가계운영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게 됐다. 일부는 자가에서 전세로 하향이동하면서 그 차액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요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대출이 적었던 자가 주택 덕분에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중산층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계획도시가 가져다 준 삶의 질과 주거문화1기 신도시지역에 가보면 간혹 동네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계획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다보니 모습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단지마다 배치된 상가나 대로변 상업용지에 조성된 상가건물들도 서로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준공 후 15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주거만족도가 매우 높아 1기 신도시는 중산층이 선호하는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천당 밑에 분당’, ‘천하제일 일산’이라는 명칭은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일산 백석고, 분당 서현고 등 고교평준화 이전 신도시 내 명문고는 대학진학율이 높아 유명 학군지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지금은 신도시 내 상가 공실율이 높지만 그때만 해도 대로변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상업시설에 학원, 병원, 대형 사우나와 뷔페, 예식장, 운동시설, 쇼핑센터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집 앞을 나서면 공원길이 있었고, 호수공원이나 중앙공원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대형 근린공원이 신도시 중앙에서 ‘도시의 허파’가 돼 주었다. 이 같은 1기신도시들은 서울에서 반경 30㎞ 떨어져 있었지만 서울까지 출퇴근도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다. 적어도 1기 신도시와 서울 사이의 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해 추가신도시를 조성하고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기 신도시 주택소유자 대상 설문조사에 의하면 2005년 이전까지 1기 신도시에 거주한 이유로 직장 및 통근(28%), 도시공원과 녹지환경(20%)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이는 그나마 서울로의 출퇴근이 견딜 만했으며, 주거지 주변의 풍부한 녹지공간에 대한 주민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무임승차한 난개발에 위기 맞은 1기신도시 그러나 광역교통망 구축은 입주초기에 이뤄지지 못했다. 당초 1기 신도시를 워낙 급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기 신도시를 위해 건설된 광역교통시설이 이제 완공되려는 즈음, 이에 무임승차한 연접개발들이 급격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연접개발이 1기 신도시보다 계획적 측면에서 진일보하지 못하고 후퇴했다는 점이다. 한 예로 1기 신도시에선 상하수도는 물론 통신시설들을 공동구로 모두 지하화 시켰는데, 연접지역을 개발할 때는 비용절감을 위해 공동구를 설치하지 않고 전봇대를 설치하거나 공원이나 녹지공간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1기 신도시보다 주거환경이나 인프라 수준이 떨어진 난개발 형태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당연히 광역교통시설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서울 집값이 오를 때마다 정부는 경기도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농지나 산지를 택지로 전환해 추가신도시를 건설해야 했다. 이 같은 신도시는 결국 비싼 집값에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수용하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수도권정비법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수도권에는 기업유치도, 대학설립도, 공장증설에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그러나 아파트를 건설해야 할 때만 늘 1순위 후보지가 돼 버렸다. 당연히 직장이 있는 곳까지 출퇴근 거리는 길어지고, 늦어지고, 이로 인해 유발되는 환경오염 역시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기 좋던 신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이 점차 힘을 잃어가던 중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다음 편에 계속)필자는…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은 현재 경기도 고양정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자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도시계획학 박사인 그는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전문가로 통한다.

2023.03.12 09:00

4분 소요
“나는 중산층” 비중 늘었다…‘계층 상승’ 기대는 줄어

바이오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지하는 비중은 늘었지만, 앞으로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영욱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31일 이런 내용이 담긴 ‘우리나라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를 공개했다.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통계청이 활용하는 중산층 기준인 ‘중위소득 50∼150%’ 비중은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2011년 55%에서 2021년 61%로 높아졌다.시장소득을 기준으로 잡아도 중산층의 비중은 50% 내외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시장소득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재산소득 등 가구가 직접 벌어들인 소득을 말한다. 처분가능소득은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수당 등에 시장소득을 더한 것이다.중산층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지원금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이영욱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처분가능소득과 시장소득의 중산층 비중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연금과 지원금 등 정부의 이전소득 때문”이라며 “정부의 소득 지원이 중산층의 비중 증가를 크게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다만 계층 이동 사다리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높다’와 ‘비교적 높다’ 등 긍정적인 응답을 한 비율은 2011년 29%에서 2021년 25%로 줄어들었다.자녀세대가 계층 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사그라들었다. 보고서에서 “자녀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1년 42%에서 2021년 30%로 감소했다.부동산 자산을 중심으로 한 불평등은 세대의 계층 대물림과 교육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소득 이동성이 줄어들며 자산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자리가 만들어져 고용이 확대되고, 실제 빈곤층의 근로소득이 늘어나면 이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보고서는 또한 “정부의 이전지출로 중산층을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런 방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높이는 중산층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3.01.31 21:59

2분 소요
7월 5일 조정대상지역 11곳 해제…

부동산 일반

정부가 오는 5일부터 조정대상지역 11곳을 규제 대상에서 해제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부동산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매매 시장을 활성화하는 효과는 미미하겠지만, 주택을 보유하는 세금 부담이 줄어 버티기나 증여에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오는 7월 5일부터 대구 동구‧서구‧남구‧북구‧중구‧달서구‧달성군, 경북 경산, 전남 여수‧순천‧광양 총 11곳을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연내 규제지역을 추가로 해제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근 주택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만큼 하반기 지역별 주택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핀 후 추가 지정 해제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전문가들은 조정대상지역 해제가 지방에 몰려있어 전반적인 주택 매매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수도권, 세종 등 세간의 관심지역들을 조정지역 해제 대상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이번 규제지역 조정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일 것"이라며 "규제지역 완화, 해제의 방향성은 유지하더라도 실제 적용은 점진적으로, 장기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반적인 주택 시장 거래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공급과잉 우려가 있거나 향후 차익 기대가 제한적인 곳, 대출 이자 부담이 컸던 매도 예정자들이 집을 팔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한 것"이라면서도 "매수자 입장에서는 규제지역 해제에 따른 매입 의지가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매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지는 못하지만 조정대상지역 규제를 해제한 곳에 부동산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금 절감 효과를 얻기 위해 양도와 증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장원 장원세무사 대표 세무사는 "이번 해제 대상에 포함하는 조정대상지역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던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면 양도를, 기존에 증여를 하지 못했다면 자녀세대에게 증여하는 거래가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며 "특히 정부가 추가 해제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에 경기 외곽을 중심으로 올해 연말 안에 조정대상지역을 추가로 해제하면 바로 증여를 계획하는 다주택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는 2023년 1월 1일부터 부동산 증여에 대한 취득세는 기존보다 늘어날 예정이다. 취득세 과세표준을 기존 시가표준액에서 '취득일로부터 6월부터 취득일 후 3개월 이내의 기간에 존재하는 매매사례가액, 감정가액, 공매가액 가운데 최근 거래가액'인 '시가인정액'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증여를 할 때 취득세가 증가되는 셈이다. 현재 지방세법에서는 무상 취득인 상속과 증여의 경우 시가표준액인 공시지가(주택의 경우 공동주택가격 또는 개별주택가격)를 과세표준으로 삼아 상속세법과 증여세법상 시가보다는 낮은 가액으로 취득세를 부과한다. 이 세무사는 "조정대상지역 해제로 보유세를 완화하면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산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주택보유자들은 종부세 부담이 줄면서 보유하는 것을 택할 것"이라면서도 "주택 처분을 고민하던 유주택자들 가운데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세율 배제를 적용받는다면 주택을 매도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재투자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녀에게 채무를 승계하는 부담부증여를 통해 세부담을 분산하는 등 절세를 계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윤 기자 jypark92@edaily.co.kr

2022.07.01 20:29

3분 소요
지난 2년간 대기업 총수 자녀세대 주식비중 9.7%p 늘었다

증권 일반

국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자녀 세대가 보유한 주식가치 비중이 2년 새 10%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60개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올해(10월 22일 기준)까지 총수일가 보유주식에 대한 가치를 조사한 결과, 총수일가의 자녀세대 주식가치 비중은 지난 22일 43.6%로 2019년 말(33.9%)대비 9.7%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룹별로 자녀세대 주식가치 비중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삼성으로 2년 새 38.6%포인트 증가했다. 이어 롯데(29.1%p), 신세계(21.2%p), 한국타이어(18.9%p), LS(15.8%p), KCC(12.5%p) 순으로 증가 폭이 컸다. 이는 국내 주요 대기업이 지난해부터 상속과 증여 등으로 세대교체를 진행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올해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주식 상속으로 자녀세대의 주식가치 비중이 늘었다. 2019년 말 기준 34.3%였던 비중은 올해 72.9%까지 증가했다. 롯데는 지난해 7월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주식 상속을 통해 자녀세대의 주식가치 비중을 2019년 70.9%에서 올해 100%로 늘리며 자녀세대 주식 승계를 마무리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9월 이명희 회장이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백화점 부문 총괄 사장에게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 각 8.22%를 증여했다. 이에 자녀세대 주식가치 비중이 2019년 46.7%에서 올해 67.9%로 늘었다. 자녀세대의 주식가치 비중이 창업세대인 1세대를 넘어선 그룹은 60곳 중 46곳으로 전체의 76.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2세대의 주식자산 비중이 50% 이상인 그룹은 현대자동차, SK, 롯데, 현대중공업 등 28곳이었다. 3세대 비중이 50%를 넘어선 곳은 삼성, 한화, GS, 신세계, CJ 등 16곳이었으며, 4세대는 LG, 두산 등 2곳으로 집계됐다. 14개 그룹은 1세대의 자산가치 비중이 여전히 높았다. 특히 셀트리온, 네이버, 넷마블, 이랜드, IMM인베스트먼트 등 5개 그룹은 1세대의 자산가치 비중이 100%였다. 개인별 보유 주식가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조6144억원으로 2019년보다 6조2627억원 늘어 1위를 지켰다. 이어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보유 주식자산이 2019년 3조1062억원에서 올해 10조5667억원으로 7조4605억원 늘었다. 이에 김 의장의 순위는 2019년 8위에서 올해 2위까지 올랐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1.10.27 11:53

2분 소요
“‘뭘 물려줄까’ 고민말고 증여랩에 투자해라” 임상수 하나금투 본부장

증권 일반

증여도 이제 ‘투자’인 시대가 됐다. 더 이상 증여가 수백억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고된 증여재산가액은 43조6134억원으로 10년 전인 2010년(9조8017억원)보다 5배 가량 늘었다. 증가 추세를 보면 큰 부자는 아니어도 직계존속으로부터 미성년자 2000만원, 성인 5000만원까지 증여하는 증여자가 늘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과거 증여는 일시에 목돈을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증여도 투자의 개념이 적용할 때가 됐음을 시사한다. 최근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주식 증여도 늘고 있다. 이런 니즈를 반영해 하나금융투자는 금융권 최초로 ‘증여랩’을 내놨다. 증여와 랩 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를 합쳤다. 임상수 하나금융투자 본부장은 “서비스와 금융상품을 합친 증여랩은 ‘증여하고 싶은 상품, 증여받고 싶은 상품, 증여할 정도로 좋은 상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시했다”이라며 “자녀가 어릴수록 가입하면 매우 유리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선보인 증여랩은 출시 3개월 만에 판매액 1000억원을 돌파할 만큼 인기가 많다. ‘증여랩’ 열풍을 몰고 온 비결을 임상수 본부장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증여랩 열풍이 거세다. 비결이 뭔가. 증여랩은 금융권 최초다. 증여는 절세와 연결되기 때문에 고객들의 관심사다. 기존 금융사가 선보인 것들은 증여대행서비스에 그쳤지만 우리는 증여서비스에 상품을 결합해 만들어낸 게 인기 요인이 된 거 같다. 투자 대상은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 50곳 중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점수 항목을 별도로 넣어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들을 추려냈다. 상위 50개 기업 중 삼성전자도 포함돼 있다. 굴뚝주나 환경 파괴적인 기업 말고 내수 소비재 기업이 많다. 코카콜라나 존슨앤존스과 같은 기업이다. ━ 장기보유형이 전체 가입자의 65% 달해 미성년자 가입률이 늘었다던데. 증여랩을 내놓기 전에 하나금투의 미성년자 계좌 보유 현황은 전체 0.6%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 증여랩으로 16%까지 늘었다. 조부모님이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광고도 많이 안했다. 보통 상품이 나오면 온라인과 은행, 타 증권사 등에 채널을 열고 팔지만 증여랩은 하나금투의 오프라인 점포 49개에서만 판매했다. 3개월 만에 49개의 오프라인 점포로 1000억원 넘게 팔았다는 건 놀라운 기록이다. 투자 방식은 어떻게 되나. 최소가입 2000만원이다. 투자방법은 두 가지다. 가입 시점에 투자 기업이 정해지는 ‘장기보유형’과 주기적으로 투자 대상을 조정하는 ‘자산배분형’이다. 가입하면 10년 정도 보유해야 하는 장기보유형은 12개 종목에 투자한다. 가입 현황을 보니까 장기보유형 선택이 65%정도로 월등히 많았다. 10년마다 수증자기준으로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를 받는 경우 미성년자는 2000만원(성인은 5000만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보유형을 많이 선택한 거 같다. 증여랩의 장점은 세 가지로 첫 번째는 시세차익, 두 번째는 배당수익, 마지막은 환차익이다. 사실 기대수익률은 따로 없다. 매출 100조원이 넘는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 성장에 따라 주가도 오른다. 여기에 배당 수익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보유할수록 유리하다. 증여는 부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지 않다. 시대가 바뀌었다. 투자자들이 증여랩 상품에 가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주식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현재 증여랩 가입 연령을 살펴 보면 미성년자 비율이 16~17%, 20~30대가 35% 정도다. 즉 대부분이 자녀세대다. 연령대가 높은 70~80대 투자자들은 손자나 손녀 앞으로 가입을 많이 했다. 자금이 있어도 소비할 곳이 많지 않고, 은행 금리도 낮은 편이라서 손자, 손녀에게 자산을 물려줄 수 있는 증여랩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 좋은 주식을 적정한 가격대에 물려줄 수 있어 증여는 자녀가 어릴수록 투자해야 한다. 자녀가 어릴수록 증여해주면 장점이 많다. 첫 번째는 시간을 벌게 된다. 예컨대 삼성전자를 20년 전 10만원을 투자해 사놨다면 지금은 액면분할로 현 가격의 2배가 됐을 거다. 이처럼 좋은 주식을 적정한 가격대에 물려줄 수 있다. 두 번째는 아이가 스스로 경제공부를 한다는 점이다. 증여랩으로 투자해주고 들어가는 종목을 알려주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회사를 찾아보게 되고 경제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또 정부는 출산율 감소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다 보니 세금을 계속 거둘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자산 이전의 방법은 시간을 버는 증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투자의 개념으로 ‘증여’를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하나금투도 ESG 상품이 있나. ESG를 표방하는 상품은 뉴딜금융테크랩 V3, 뉴딜글로벌테크랩 V4가 있다. 투자 트렌드도 바뀐다. 과거 4차산업 관련주에서 1등주, 친환경뉴딜주, 지금은 ESG 관련주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ESG로 모든 지표를 평가하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이를 고려해 매수할 수밖에 없다. 연기금들도 ESG 상품을 매수해야 한다. 수요와 공급 원칙에 의해서 ESG 상품을 많이 매수할수록 가격은 올라가게 된다. ESG 투자상품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다만 운용사간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하나대투는 증여라는 콘셉트에 ESG와 결합시킨 상품(증여랩)을 내놨다. 또 다른 뉴딜금융테크랩 V3은 미국 바이든 정책과 연관시켜 친환경 관련주로 구성했다. 일반적인 ESG펀드가 가진 대중성과 상품 간 차별성을 둬서 투트랙 전략을 취했다. 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내세우는 모토는 “내 손님의 돈을 잠들게 하지 마라”다. 손님의 돈을 발 빠르게 투자하는 스마트머니를 일궈야 한다. 투자처가 어떤 나라든, 섹터든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돈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시각은 물론 고객들의 돈이 투자 트렌드에 맞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길라잡이를 하는 게 목표다. 신수민 기자

2021.10.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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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에 부는 세습 바람] 고가주택 부의 대물림 시작됐다
증여·상속 비중이 역대 처음 매매 앞질러… 집값 폭등으로 불어난 자산에 보유 심리 강해져 고가 주택을 세습하려는 심리가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 도심의 고가 아파트일수록 매매보다 증여·상속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다. 역대 처음으로 증여·상속 비중이 매매 비중을 앞지를 정도다. 이는 주택 자산에 대한 규제 수위가 높아질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양상이다.한국도시연구소가 최근 ‘임대주택등록제 현황 및 조세 등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 대상인 서울 4개 아파트 단지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대치은마),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아현래미안),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상계주공5),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이촌한가람)이다. 이들에 대해 인근 중개업소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중개업소들은 단지 특성, 거래 사유, 수요 변동 등 지역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중개업소들은 해당 지역에서 집주인들의 거래를 주선 대행하는 업무 특성상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처리했다. ━ 소유권 변동 사유 매매 줄고 증여·상속 늘어 부동산 소유권이 바뀌는 통상적인 유형은 매매·증여·상속·경매·기증·교환·대물반환·대물변제·재산분할·화해·소유권보존(토지·건물 최초 등기) 등이다. 4개 단지의 소유권 변동을 보면 대한민국 고가 아파트의 지표로 꼽히는 대치은마의 경우, 매매 비중은 2000년 427건(소유권 이전 유형들 중 차지하는 비율이 약 92%)→2010년 145건(약 78%)→2020년 65건(약 44%)으로 전체적으로 감소세다. 하지만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30건(약 6%)→33건(18%)→81건(55%)으로 늘었다. 특히 2018~2020년에 증여·상속 비중이 큰 폭으로 급증했다.이촌한가람도 비슷하다. 2000년대 초 해마다 220건 이상(95% 전후)을 유지하던 매매는 2001년 255건(약 96%)→2010년 84건(83%)→2020년 38건(72%)으로 감소했다. 반면, 증여·상속은 같은 기간 9건(약 3%)→14건(14%)→15건(28%)으로 늘었다. 특히 역대 20년 중 지난해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두 단지 모두 2020년 수치가 8월까지만 집계한 점을 감안하면 증여·상속 비중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는 부촌 아파트일수록 매매보다 증여·상속에 관심이 더 커졌다는 근거다. “소유자들이 지금 매매를 통한 이득보단 보유를 통한 실익이 훗날 더 크다고 판단하는 거 같다”는 게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이 같은 경향은 자녀세대에 물려주는 20·30대 소유자의 소유권 변동사항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 변화를 보면 대치은마는 매매 비중이 2015년 약 95%에서 2020년 26%로 감소세지만,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3.4%에서 75.4%로 증가세다. 이촌한가람도 같은 기간 매매는 98%→48%로 줄었지만, 증여·상속은 0%→52%로 늘었다. 특히 대치은마와 이촌한가람의 증여·상속은 지난해 매매를 추월했을 정도다. 이런 역전 현상은 지난 20여 년 중 처음이다. 2014년 9월에 준공해 지은 지 6년 된 아현래미안도 같은 기간 매매는 90%→74%로 줄고, 증여·상속은 10%→26%로 늘어나 대조를 이뤘다.증여·상속을 부추기는 주 원인으로 중개업소들은 정부 규제와 집값 폭등을 꼽았다. A 중개업소는 “정부가 대출·거래·투기, 시세·개발 차익 등에 대한 규제와 과세 수위를 계속 높이자 소유자들은 타인에게 넘기느니 가족에게 물려주는 쪽을 택했다”며 “현 상황에서 매도 시 징벌적 과세와 자산 노출 등에 따른 불이익보다는 전수를 통한 중장기적 보유가 낫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봤다.이런 판단은 입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치동과 이촌동은 강남과 가까워 이동성과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위치다. 경기 변동에 무관할 정도로 개발호재·주택수요·유동인구·부촌명성 등이 집중돼 집값을 떠받치는 지역이라는 게 중개업소들의 관점이다.B 중개업소는 “선거철이나 정권 교체 때마다 대형 호재들이 늘 거론되고 도시개발계획에서 권역별 특화 개발의 중심에 늘 꼽히는 점이 시세를 끌어올린다. 앉아서 자산 불리기엔 더 없는 효자”라며 “이런 점들이 규제 강화와 맞물려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려는 심리를 더 부추기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 과세증액·돈줄차단으로 옥죄던 2007년 데자뷰 이들의 증여·상속 증가에 대해 일부 중개업소는 “2007년 상황을 보는 듯한 데자뷰 같다”고도 했다. 당시 국내외 주택시장에선 미국발 모기지론 사태(주택담보대출 업체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와 국제 금융위기가 벌어진 가운데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종부세·양도세 중과, 과세기준 확대, 분양가상한제 강화 등으로 고가주택자·다주택자 같은 부동산부자들을 옥좼다.그 여파로 당시에도 증여·상속이 증가했었다. 대치은마의 경우 매매 비중이 2000년대 초반 90%대에서 2007년 약 78%로 급감하고,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6~7%대에서 약 21%로 급증했다. 이후에도 매매는 80%대에 머물고, 증여·상속은 한동안 10%대를 유지했다. 이촌한가람도 매매는 2000년대 초 90%대에서 2007년 83%, 2008년 81% 정도로 줄고, 증여·상속은 같은 기간 5~6%에서 각각 14%, 18% 정도로 늘었다. 상계주공5 역시 매매는 90%대에서 2007년 86%로 감소하고 증여·상속은 4~7%대에서 약 14%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30대 소유자의 증여·상속 비중도 급증해 2007년 기준 대치은마는 약 24%, 이촌한가람은 16%, 상계주공5는 18%를 기록했다. 평소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대치동은 아파트 단지 수가 강남구 안에서 압구정동 다음으로 많은데다 건축한 지 30여년 돼 재건축 호재가 상시 언급되는 지역이었다. 또한 10여년 전엔 외국어고·과학고·자사고 등 특목고 입시 열풍으로 지방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오는 등 대치동 학원가 덕에 주택수요도 몰렸다. 이촌동은 용산구에서 고가 아파트들이 밀집한 부촌으로 한남동과 쌍벽을 이룬다. 2007년 용산지역 통합개발 계획에 포함되면서 집값이 급등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2007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 제정으로 미군 용산기지 반환 작업이 본격화되던 때였다.이에 대해 C 중개업소는 “당시 시장 상황이 불안정하고 정부 압박이 거센데도 대형 호재들이 떠받치고 있어 소유자들이 자산을 물려주는 쪽으로 무게를 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한 최근 증가하는 증여·상속에 대해선 “부동산은 중장년층의 핵심 자산인데다 아파트가 연식이 오래됐지만 계속 보유하려는 마음이 크고 소유자 연령대가 높아진 점도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 재건축 기대와 집값 급등에 10년 이상 장기 보유 늘어 이 때문에 대치동과 이촌동의 아파트 소유자들은 장기간 보유하려는 심리가 강한 편이다. 소유주가 평균 10년 이상 보유하는 비율이 대치은마는 52%, 이촌한가람은 44%에 달했다. 보유기간이 길고 아파트는 낡다 보니 이곳에 실제 거주하는 소유자들은 많지 않다. 소유자의 실거주 비율이 대치은마 32%, 이촌한가람 29% 정도다. 세 집 걸러 하나씩 살고 있는 셈이다.집값 폭등도 증여·상속과 장기 보유에 한 몫 한다. 평균 매매가격이 대치은마 전용 84㎡는 2015년 10억원을 넘어 2017년 약 14억1300만원, 2019년 약 19억6200만원, 2020년 약 21억원으로 올랐다. 5년 동안 증가폭만 10억원에 이른다. 이촌한가람 전용 85㎡도 2017년 10억원을 돌파, 2019년 약 15억6500만원, 2020년 약 16억1200만원에 달한다. 아현래미안 전용 85㎡도 2018년 약 12억8800만원으로 10억원을 뛰어넘더니 2020년 약 15억7500만원까지 치솟았다.아현래미안은 지은 지 6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유자의 실거주가 42% 정도다. 즉, 투자 수단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얘기다.상계주공5도 대치은마·이촌한가람과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상계주공5 역시 소유권 변동 유형에서 매매 비중이 2000년 114건(약 88%)→2010년 34건(92%)→2020년 44건(73%)으로 줄었다. 하지만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9건(6.9%)→3건(8%)→16건(27%)으로 소폭 늘었다. 20·30대 소유자의 소유권 이전 유형 중 증여·상속 비중도 최근 3년 동안 증가세다. 2015~2017년 한자릿 수에 머물렀으나 2018년 약 38%→2019년 13%→2020년 29%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매를 통한 20·30대 소유자의 소유권 이전 비중은 60~80%대로 감소했다. 이와 같은 증여·상속의 두드러진 증가세는 2007년(약 18%)에도 나타났었다.상계주공5 소유자들의 보유기간은 10년 이상 보유 비율이 약 38%로 대치은마와 이촌한가람보다 적다. 실거주 비율은 약 13%로 대치은마·이촌한가람의 절반도 안 된다.증여·상속의 증가에 대해 D 중개업소는 “오랜 숙원이던 재건축 사업이 올해 1월 가결됐다. 코 앞으로 다가온 재건축 때문에 매매할 시간이 부족하고 싸게 팔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1억원 후반대에 머물던 상계주공5의 평균 매매가는 2015년 2억원대에 들어서더니 2018년 약 3억원대, 2019년 4억원대, 2020년 약 5억원대로 가파르게 급등했다.시세가 저렴해 집을 판 값으로 서울 도심에 진입하기 어려운 점도 한 이유다. E 중개업소는 “주거면적이 전용 32㎡(약 11평) 단일 평형 원룸형이며 지은 지 35년이나 됐고, 인근에 다산·별내·구리갈매 신도시들이 들어선 탓에 소유자 실거주가 감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거주하지 않는 소유자들이 대부분 단지와 가까운 도심 인접 동네에 사는 대치은마·이촌한가람과 다른 모습이다. “상계주공5는 도시철도 4·7호선으로 도심까지 한번에 오갈 수 있어 대부분 1인 가구나 젊은 부부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최근엔 서울 집값 폭등에 30대가 패닉바잉(공포로 인한 사재기)으로 많이 구매한 곳”이라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1.03.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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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REPORT

Check Report

━ 중소기업중앙회 | “물려주고 싶지만 세금 때문에 ”중소기업 “가업 승계 중요해” 중소기업들도 가족과 자식에게 가업을 상속하고 싶어 하지만 막대한 세금 부담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2월 업력 10년 이상의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 10곳 중 7곳 이상(76.2%)은 기업 지속을 위해 가업승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곳은 6.0%에 그쳤다.가업승계 방식을 묻는 질문에는 ‘일부 증여 후 상속하겠다’는 대답(48.2%)이 가장 많았다. ‘생전 사전증여’(26.4%), ‘아직 결정하지 못함’(18.1%), ‘사후 상속’(5.8%) 등이 뒤를 이었다. 가업 승계에 필요한 시간으로는 ‘10년 이상’(52.5%)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6~9년’(25.4%), ‘2~5년’(20.1%), ‘2년 미만’(2.0%) 순이다. 가업 승계가 완료되는 시점 질문엔 기업 소유주의 나이가 ‘70세 이상’(77.4%)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승계가 완료되는 평균 예상 연령은 73.2세였다.가업 승계를 추진할 때 어려운 사항 질문엔 ‘막대한 조세 부담 우려’(94.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관련 정부 정책 부족’(55.3%), ‘후계자 경영교육 부재’(15.1%) 순이었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활용해 가업을 승계할 의향이 있다’(33.8%)는 답변도 있었다.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필요한 정부 정책으로 ‘일시적 경영안정 자금 지원’, ‘가업승계 컨설팅·정보 제공’, ‘사회적 인식 개선’, ‘경영자·후계자 전문 교육’ 등을 꼽았다. ━ 한국부동산원 | 청약경쟁·집값상승 1위 세종 서울은 경쟁률 3배 뛰어 올라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조치에도 전국에서 아파트 분양 때마다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청약홈)과 부동산정보 리서치 업체인 리얼투데이가 2020년 한 해 동안 이뤄진 아파트 청약경쟁률을 분석한 결과 전국 평균은 27.6대 1을 기록, 2019년 평균(14.9대 1)보다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세종시가 평균 청약경쟁률이 153.3대 1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입주 시기를 기준으로 지역별 아파트의 실거래가 상승률을 살펴보면 5년 내인 신축 아파트의 경우 세종시가 아파트값 상승률이 46.6%로 전국에서 1위다. 입주시기가 6~10년 된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도 세종시가 41%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세종 인접 도시인 대전도 별다른 호재가 없음에도 높은 상승폭을 구가했다. 입주시기가 6~10년 된 대전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은 30%에 이를 정도다.세종 다음으로 평균 청약경쟁률이 높은 지역은 서울(89.8대 1)이다. 2019년에 비해 경쟁률이 2.8배 올랐다. 경기 지역도 30.2대 1로 전년보다 2.6배, 인천 지역도 29.5대 1로 전년보다 3.5배나 청약경쟁률이 상승했다. 주택 공급난과 전세대란이 수도권 청약경쟁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한편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은 매년 초에 발표하던 새해 부동산시장 전망을 올해는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부동산원은 지난해 초에 정부의 규제 강화에 발맞춰 2020년 집값과 전셋값을 모두 하락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주택시장은 최근 5년 중 가장 높게 폭등하는 반대 상황을 나타냈다. ━ 산업통상자원부 | 외국인직접투자 2년째 감소 온라인·그린뉴딜 산업엔 늘어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2년째 감소세로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외국인 직접투자 동향을 집계한 결과 FDI는 신고 기준 2020년 207억5000만 달러로 2019년 233억3000만 달러보다 약 11% 감소했다.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퍼진 상반기에는 큰 폭으로 감소했고,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회복세로 돌아섰다. 실제 투자를 진행한 기준(도착 기준)으로 보면 FDI는 2020년 110억9000만 달러로 전년 133억6000만 달러보다 약 17% 줄었다.하지만 신산업에 대한 FDI는 증가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친환경차·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분야의 투자 규모와 비중 모두 늘어났다. 신고 기준 2019년 77억 달러에서 2020년 84억2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도착 기준으로 2019년 51억2000만 달러에서 2020년 49억5000만 달러로 큰 차이가 없었다. 첨단기술 집약도가 높고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으로 하는 신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 FDI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수처리·자원재순환 등 녹색산업과 관련된 기반시설 구축과 서비스 확대에도 FDI가 몰렸다. 신고 기준 2019년 2억4000만 달러에서 2020년 4억8000만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가 그린뉴딜을 정책에 주력하면서 성장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무역협회 | 미국·인도, 한국에 수입규제 강화 대부분 반덤핑·세이프가드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경제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에 대한 외국의 무역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코로나 쇼크로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자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한국무역협회가 1월 8일 기준 한국에 대한 외국의 수입 규제 건수를 집계한 결과 27개국, 228건으로 파악했다. 1년 전인 2020년(29개국, 211건)에 비해 2개국, 17건이 늘었다. 10년 동안 계속된 증가세다.한국에 대한 외국의 수입 규제 건수는 2011년 117건에서 2021년 228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입 규제 사항들을 살펴보면 주로 반덤핑(수출국이 정상가격 이하로 수출해 수입국이 피해를 입는 경우 부과), 상계관세(수출국이 정부 지원을 받아 수출해 수입국이 피해를 입는 경우 부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이다. 2020년에는 반덤핑이 169건, 상계관세가 10건, 세이프가드가 49건이었다.품목별로는 철강·금속(108건)이 가장 많고, 화학(49건), 플라스틱·고무(26건), 섬유·의류(14건), 전기·전자(6건) 순이다. 한국에 수입 규제를 많이 조치한 국가는 미국(47건)과 인도(34건)로 한국의 수출우호시장으로 여겼던 국내 인식과 사뭇 다르다. 인도는 한국과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하자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수입규제로 정책을 바꿔 디지털 오프셋 인쇄용 판, 나일론 원료인 카프로락탐 등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이런 식으로 2020년 1년 동안 세계에서 외국이 한국에 수입규제 조사를 시작한 건수가 39건에 이른다. ━ 기획재정부 | 재정 적자 100조원 넘을 듯 고령화로 국가채무 증가 ‘가속’ 2020년 한국의 재정 적자는 11월까지 98조원에 이른다. 1년 한 해를 집계하면 1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금이 목표만큼 걷히지 않은 점도 한 원인이다. 경제 저성장과 저출산으로 세금 징수가 원활하지 않던 가운데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국가 재정 적자 부담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기획재정부의 12월 재정동향에 따르면 2020년 11월까지 걷힌 국세 수입은 267조8000억원이다. 2019년 같은 기간보다 8조8000억원 적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와 세금납부 유예 등으로 법인세가 2019년보다 16조4000억원, 부가가치세도 4조1000억원 각각 덜 걷혔다.이런 가운데 정부의 지출은 크게 증가했다. 2020년 11월까지 총지출은 501조1000억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57조8000억원 늘었다. 영유아 보육료 지원, 구직급여(실업급여) 지급 등 4차례 추가경정예산 집행으로 정부 지출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국가 채무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채무는 2020년 956조원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 채무의 비중이 47.3%를 차지한다. 국가가 저출산과 경기침체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국가 채무 비중은 3년 뒤인 2024년에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세금을 낼 경제인구와 내수가 급감하고, 그에 따라 잠재성장도 위축되면 국가의 세입 감소와 채무 증가를 부추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CEO스코어 | 4년 뒤 임원, 13년 뒤 사장 오너일가 입사 후 승진 속도 입사 후 5년이 안 돼 임원이 되고 15년도 안 돼 사장이 된다. 국내 대기업 그룹 소유주 일가가 승진하는데 소요된 기간이다. 국내 대기업그룹 평가 업체인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64곳 중 소유주 일가 부모와 자녀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그룹 43곳을 조사한 결과다.그룹 소유주 일가가 입사한 뒤 임원이 되기까지 부모세대는 약 5.1년, 자녀세대는 약 4.5년 걸렸다. 승진 소요기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나이는 입사할 때는 평균 29세, 임원으로 승진할 땐 평균 33.8세로 파악됐다.이들이 입사한 뒤 사장단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기간은 부모세대는 약 14.4년, 자녀세대는 약 13.6년 걸렸다. 이들이 사장단에 입성한 나이는 평균 42.7세다.대기업 소유주 일가의 승진 소요기간은 다른 평범한 입사 직원과 비교했을 때 15년 이상 빠르다. 일반 직장인의 경우 이사·상무급 임원이 되는 나이가 통상 52세 전후, 사장이 되는 나이가 58~59세다. 이에 비하면 그룹 소유주 일가는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약 18년, 사장이 되기까지 약 16년 더 빠른 것이다. 게다가 승진 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더 빨리 임원과 사장이 됐다.이런 경향은 그룹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주요 30대 그룹의 일가는 임원 승진까지 5.5년이 걸렸지만 30대 이하 그룹 일가는 3.4년으로 약 2년 더 빨랐다.- 정리=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1.01.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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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IF’ㅣ사랑을 믿는 당신에게(1)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있다면] 경제적 능력보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

전문가 칼럼

파경 맞은 할리우드 연상연하 커플 많아… 순애보적인 사랑의 울림 여전히 커 아, 정말 이런 누나 없나? 인기리에 방영됐던 JTBC 얘기다. 드라마에서처럼 사랑이 현실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그런 환타지가 없다면 드라마를 보는 재미도 없으리라. 각설하고, 사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 시작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해가 다름을 아는 순간 사랑이 달리 보이고 유지가 어려워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랑이 변했다고 한다. 물론 사랑이 변한 건지 사람이 변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사람도 잘 안 바뀌니까! 둘이 처음에 불꽃이 튀었을 때는 이해고, 오해고, 박해고 뭐고 안 보인다. 그냥 좋을 뿐이다. 살다 보니 약점이 보이고 드디어 온전히 나의 이해로 상대를 지배하려들 때 불화는 극도에 달한다. 사실 부부 간에 연인 간에 서로의 이해가 어찌 똑같겠나. 피 한방울 안 섞인 남남이 만났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양보하며 이해하는 게 그래서 결혼과 연애의 미덕일 수 있겠다. 한 남자가 벼르듯이 말한다.“이해를 해주는 상대가 있다면 연애든 결혼이든 유지될 여지가 많죠. 문제는 이해를 서로 못해준다고 극단으로 달리는 데 있죠. 처음에는 제 눈에 안경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완전히 잘못된 안경을 썼다고 생각하면 헤어지기 쉽겠죠. 남자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다고 해보세요. 요즘 여자들이 이를 충분히 이해해줄까요? 사람 나름이겠죠. 여자의 자의식이 강해진 요즘 같아서는 충분히 이혼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 순수한 사랑을 믿는 여자, 경제적 이해를 따지는 여자 드라마 이야기를 멈추고 현실로 돌아가 보자. 경제학자들은 여자를 어떻게 분류할까? 순수한 사랑을 믿고 결혼하는 여자와 경제적 이해를 따지는 여자로 단순화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세 가지 유형의 커플이 나올 것 같다. 비경제적 유인과 경제적 유인 간의 결합, 비경제적 유인과 비경제적 유인과의 결합, 경제적 유인과 경제적 유인과의 결합. 물론 늘 그렇듯이 경제학자들은 삶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해하자. 이 복잡한 세상을 모든 유형으로 범주화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지 않나.여기 소문에 밥 잘 사주는 여자와 결혼한 유명한 남자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실일까?“그의 여성 편력은 대단합니다. 그는 평생 네 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보다 더 많은 연인과 사귀었습니다. 그의 아내들은 부자였습니다. 그가 작품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었습니다. 혹자는 그가 성공적인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고 다른 대륙으로 이사했다고 합니다.”하긴 그건 그의 삶에 나타나는 주기적인 특징이긴 했다. 지금은 옛 이야기로 들리지만, 의사나 판검사 남자와 결혼하려면 열쇠 3개(집, 차, 사무실 혹은 헬스클럽)를 주고 결혼하려는 여성도 있었다. 그들과 결혼해서 여자는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유지하고 남자는 경제적 편익을 유지하는 목적이 있었다. 헤밍웨이도 그런 사랑의 유형에 속했을까? 그에게도 아주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가 밥 잘 사주는 누나를 좋아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의 삶을 추억해 보면 첫사랑은 귀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교시절 첫사랑의 항로를 찾아 헤밍웨이가 태어나 자란 시카고 교외도시 오크파크를 방문해 보자. 그곳의 공립도서관에서는 헤밍웨이의 고교시절 과제물 뭉치가 나왔다. 그 속에 첫사랑의 폭우같은 열정적인 시가 섞여 있었다.“그의 편지는 100년 전 쓰였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간절함이 불타오르고 있어요. 몇 문장은 황급히 삭제됐고, 일부 문장 위에는 가위표가 쳐졌으나 첫줄 만큼은 명료했습니다. 헤밍웨이의 ‘첫사랑의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비할 데 없는 너의 우아함과 오감을 만족시키는 사랑스러움, 아름다움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어.’ 오그라드는 멘트를 날리는 그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첫사랑은 정말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가 봅니다. 그건 시를 써보라는 작문 숙제의 초안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당시 고교 4학년이었는데 3학년인 아네트라는 소녀에게 편지를 썼어요. ‘너와 함께라면 지옥에라도 기꺼이 갈 수 있고,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고 서술한 대목도 있네요.”실제 그들은 얼마나 사랑했을까. 아네트의 아들 존은 “어머니가 헤밍웨이와 잠시 연애했고, 둘이 영화를 보러 가곤 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1918년 11월. 헤밍웨이는 누나 마셀린에게 편지를 쓴다. 당시 그는 자원입대해 적십자 부대 앰뷸런스 운전기사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다. 그해 7월 불행히도 심한 부상을 당해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 17살 연상인 간호사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이쯤에서 쿠로프스키를 헤밍웨이의 실질적인 첫사랑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1954년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 에 나오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의 실제 모델이 바로 쿠로포스키입니다. 헤밍웨이는 1919년 1월 고향 오크파크로 돌아오면서 결혼 약속을 받아내지만 두 달여 만에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 헤밍웨이의 첫 부인도 8살 연상 헤밍웨이의 첫 부인도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나 8살 연상이었다. 경제적 안락함을 그가 추구했다는 어느 경제학자의 의심에 귀가 쏠리는 대목이긴 하다. 최근 유행하는 연상연하 커플에서 누나의 경제적 안정성에 기대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린다.“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확보한 미혼 여성의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상당수 여성이 결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하잖아요.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여성이라면, 굳이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려고 할까요. 오히려 자신과 일상을 위한 소비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하겠죠. 그들이 연하남자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는 결혼을 위해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하지 않는 이상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수 있죠.”큰 비용이 아닌 이상 여자는 감당할 능력이 되고 요즘처럼 청년들의 삶이 어려운 시대에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연하남의 든든한 누나는 사랑으로 뭉치기 쉬울 수 있다. 그들이 헤어진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쳐는 아니지 않나. 데미는 애쉬튼보다 15살 많고 데미의 전 남편 브루스 윌리스는 24살 연하와 재혼해 아이를 두었다. 왜 열렬히 연애하던 할리우드 스타들이 결혼한 후 파경에 이를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그들은 겁 없는 사랑에만 너무 무게를 둡니다. 당장 사랑하니까 결혼해야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요. 선남선녀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그들 사랑 역시 변하지 않을까요. 변하는 것에 일생을 건다는 것은 어쩌면 도박일지 모릅니다.”그래서일까. 사랑에만 의존하기 어려워 많은 젊은이가 상대의 경제적 능력을 점점 고려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혹자는 연상 연하 커플의 증가를 그런 차원에서 분석하기도 한다.“결혼할 때 경제적 능력을 무시하기 어려워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으레 거쳐야할 병역의 의무 2년을 생각해 보세요. 누나들은 먼저 사회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잖아요. 요즈음은 ‘오빠 밥 사주세요’보다 ‘누나 밥 사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왜 드라마 가 인기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물론 아줌마들의 환타지를 그렸다는 평은 이해는 가요. 국민 남동생도 만들어야 하고요. 오빠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누나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한다면 억측일까요.”물론 사랑에 나이차가 문제 되겠나. 사랑에도 유행은 있는 것이고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게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연상연하 커플이 경제적 이해만으로 결합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드라마 역시 그런 결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으로 뭉친 커플의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이다. 누나의 친구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현실로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이제 다른 순애보 사랑으로 눈을 돌려보자.“사랑을 하면서 금전적 이익을 터부시하는 커플도 시시각각 변하는 사랑의 감정과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사랑의 감정이 영원할 수 있을까요?”그래도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를 유혹한다. 그리고 환상을 심어 준다. 물론 이 오래된 이야기에 감동하는 세대들은 과거만큼 많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그냥 안타까운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으리라.“윌리엄시드니 포터, 필명이 오 헨리로 알려진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죠. 아마 이들이 사랑으로 뭉친 커플의 유형이 될 텐데요.”돈이라곤 1달러87센트 밖에 없던 아내인 델라는 평상시 남편 짐이 가지고 다니는 시계에 줄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델라는 말한다.“대대로 가보로 내려온 그 시계에 맞는 줄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선물하고 싶어요.”반면 짐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델라에게 그 머리에 잘 어울리는 머리핀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둘의 사연이 소통의 부재로 교차하고 각자는 다른 결정을 해 버린다.“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에게 시곗줄을 선물하는 델라와 자신의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사는 짐의 이야기가 추억의 빚장 속에 감쳐둔 이야기여서는 곤란하죠. 이 시대에도 사랑하는 이들은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이런 커플은 서로 기질이 동일해 서로를 보면 마치 자신을 보는 모습일 수 있다. 이런 커플의 종말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입하려할까? 어렸을 적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가난한 연인에게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감안해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말할 수 있다. 사랑만으로 살기에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심리학자의 진단이 현실적으로 들린다.“심리적으로 너무 닮은 남녀는 싫증을 빨리 느낄 수 있어요. 결혼에도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매력을 발산할 수 있거든요. 너무 편안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되면 서로에 대한 매력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조금의 변화로 서로에게 매력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 설정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늘어나는 재벌가 사이 결혼의 진실 금전적 이해관계에 끌려 결혼을 하는 유형은 사업에서 파트너와 비슷할 것 같다. 사업이 번창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식기 쉽고 이익이 커져도 서로의 이해가 충돌한다면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느 기사에서 최근 재벌끼리 결혼이 늘어난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그들 간에도 사랑이 어찌 없겠는가? 일단 ‘국내 100대 그룹 자녀세대 절반 이상, 재벌가끼리 결혼’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자.“우리나라 재벌은 재벌끼리 사돈을 맺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과거 부모 세대 재벌은 정·관계 집안과 혼맥을 형성하는 비율이 높았으나 자녀세대에 들어서서는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일반인 가정과의 혼사는 상대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아무리 사랑으로 결혼을 해도 결국 집안 배경의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결국 재벌가에서는 ‘끼리끼리 결혼’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리고 평범한 여성과 남성이 재벌가와 결혼해 힘든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한 이야기도 숱하게 나오는데요. 특히 재벌가의 2세, 3세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결혼은 재계 판도를 좌우하기도 하죠.”재벌과 평사원의 혼인은 양가 부모의 반대로 쉽지 않다. 얼마 전 남성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픔으로 끝났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연인이 양가 부모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단식까지 했다는 소문도 있는 걸 보면 연애와 결혼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재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이혼 사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죠. 그러나 성격 차이와 함께 성장 환경이 너무 달랐던 것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많이 합니다. 결혼이나 연애를 이어간다는 의미는 일종의 암묵적 계약을 유지하는 것일 수 있어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으니 말 못하겠는데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고 끌림과 유지라는 강력한 인간의 심리가 존재하는 한 사랑의 강력한 힘을 믿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확실히 결혼에 대해, 헤어짐에 대해 말하는 경제학자의 이야기에 대해 하나쯤은 동의하는 게 있어요. 헤어지거나 결혼을 하는 시기는 ‘함께 하는 만족이 혼자 살 때 얻는 만족보다 클 때’라는 이야기 말이에요. 계산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헤어지죠. 평범한 사람이 재벌의 아들이나 딸과 결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보다 생활은 윤택하고 풍요롭겠지만 그런 삶을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엄청납니다. 더구나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이들 부부 간에 너무나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겠죠.” ━ 행복해지는 모습 대동소이, 불행해지는 모습 제각각 연애하고 결혼하려는 커플의 유형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은 엇비슷하나 불행해지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밥 잘 사주는 누나’라고 예외는 없다. 드라마처럼 그녀와 연애하고 결혼한다고 해피엔딩이 될 수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노력하는 태도다.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결혼 자체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지 않을까? 결혼은 선택일지 모르나 사랑은 진실로 선택일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을 믿는다면, 무엇이 그리 서글픔이리. 어찌 그것이 설움이 되리.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 ‘짐과 델라’인들 어떠하리. 그래도 사랑은 거짓은 아니지 않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19.08.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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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령화 대응책의 반면교사 포인트는] 젊은 세대 복지 소홀해 저출산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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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가 올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다룰 때 일본 경제학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다. 고령화의 위험성은 알고 있지만, 경제 고도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저출산, 의학기술 발달 등 사회·경제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단 얘기다. 세계에서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일본. 일본의 중위연령은 46.5세로 세계 1위며, 출산율은 1.46명에 불과하다. 6월 30일엔 65세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6.7%(2015년 기준, 3342만2000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2차 대전 이후 10여년 간 베이비붐 시대를 거친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65세 이상이 되는 10여년 후 고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일본의 고령화 비율은 2060년 40%를 웃돌 전망이다. 일본처럼 고도성장을 겪은 나라일수록 성장의 에너지는 금세 바닥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경제 규모 축소 등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의 시대도 빨리 찾아온단 뜻이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언제 처음 인식했을까.과거 기사를 살펴보면 ‘일본’과 ‘고령화’ 키워드가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46년 전인 1970년 들어서다. 성장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진 시점이다. 고령화가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고령층의 사회활동과 노후안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본 산업계가 노동인구 고령화로 두통을 앓고 있으며(‘변모해가는 일본 산업계’ 매일경제 1973년 12월 13일자), 노인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노인자살 증가 … 일본서 큰 사회문제 방황하는 황혼’ 경향신문 1974년 9월 27일자) 등이 대표적이다. 1975년 6월 2일자 매일경제의 ‘차별 정년은 부당’이란 기사에서는 고령화란 용어가 신조어였음을 시사하는 ‘이른바 고령화 현상’이란 표현도 사용한다.니혼게이자이신문을 보면 1975년 6월 2일자로 일본 노동성의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 결과와 1976년 4월 26일 사설 ‘고령 사회의 대응을 서둘러야 하며, 노동자가 능력을 개발하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자’라는 주장의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60년대 말~70년대 초 언론과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고령화 경고가 제기됐고, 70년대 초중반부터 정부의 대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 60~70년대 고령화 첫 경고 고령화 사회 대비는 ‘복지원년’으로 불리는 1973년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해 노인복지법이 개정돼 노인들이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건강보험법이 개정돼 의료비 보험급여비율이 상향조정됐다. 연금제도도 이 때 확대, 개정됐다. 이미 있던 법을 강화해 사회 변화에 대비하려는 조치. 출산을 장려하기보단 고령화 문제를 연착륙시키겠단 뜻으로 읽힌다.80년대 들어선 인구 감소와 고령화 경고가 이전보다 더 세졌지만, 의료비 팽창 등 재정 부담 문제와 부딪혀 사회·정치적 논란이 확산됐다. 막대한 재정 지출에 부담을 느낀 일본 정부는 결국 연금을 줄이는 쪽으로 메스를 들이댔다. 요양급여의 본인부담액을 늘리고, 의료비 증가를 억제했으며, 연금제도를 일원화한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신카와 토시미츠 교토대 교수는 1973년을 연금확충의 시대, 1985년을 연금감축의 시대로 규정한다. 다만 노년층의 개호(간호) 수요 증가를 대비해 1988년 ‘복지비전’, 1989년 ‘골드플랜’을 발표했다. 병상과 방문간호사, 주간서비스센터 등 인프라를 비약적으로 늘린단 내용으로 이는 2000년 개호보험제도로 이어졌다.90년대 들어선 복지, 특히 노후안정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거품 경제가 꺼지고 저성장 시대 돌입으로, 대중들의 복지 수요가 늘어났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느꼈으나,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사회복지 관계8법을 개정하고 고령자 개호서비스를 상향 조정한 신골드플랜을 1995년 발표했다. 이를 두고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했다. 재정 조달의 어려움을 느낀 정부가 결국 복지공약을 포기, 수정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실제 일본은 고령화로 연금지급액이 늘고, 인구 감소로 재정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출산율 저하로 앞으로 자녀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 시절인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연금개혁 문제는 여전히 논쟁이 한창이다. 일본은 40여년 전 고령화 경고가 들어오자마자 복지제도를 강화했는데, 경제성장률 하락 등 재정 부담, 거품 붕괴에 따른 소비 위축, 소자화 등의 영향으로 재정은 더욱 악화됐다. 시간이 흘러 고령층은 더욱 불어났지만 줄어드는 재정을 구제할 방법은 없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일본의 고령화 대책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 중장기 전략 실종…고령화 방어 실패 한국도 일본 못지 않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80년 한국인의 평균 연령은 26세였고, 현재는 40.3세. 출산율은 일본보다 낮은 1.23명이고, 기대수명은 81.3세다. 2060년엔 6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이 일본보다도 커진다. 한국에선 일본보다 10년가량 늦은 1977년께부터 고령화 경고가 제기됐다. 중앙일보는 1977년 6월 27일 ‘55세 정년은 너무 빠르다-의학계·여당서 재검토론 제기’, 이듬해 ‘정년 연장 득과 실을 가려보면…기능직 3년 연장 계기로 고개 드는 현실화론’(1978년 2월 3일자) 이란 제목의 보도를 했다.한국 정부의 대응은 일본에 비해선 현저히 늦다. 한국과 일본의 인구구조 변화는 10~15년, 제도 도입은 15~20년가량 뒤진다. 한국에 노인복지법이 제정, 공포된 것은 1981년. 1982년이 돼서야 경로헌장이 선포됐다. 60년대부터 노인복지법을 시행한 일본과는 약 20년의 차이가 있다. 국민연금은 일본이 1961년 도입한 데 비해 한국은 1988년에 시행했다. 1998년 노령수당제도 폐지 및 경로연금 신설, 2000년 저소득층 노인으로 경로연금 확대 등 고령화 대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2008년 기초노령 연금제도 및 노인장기보험 실시, 2013년 기초노령연금 갈등 고령화 정책 진행 양상은 일본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한국에선 시간이 갈수록 노년층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 지원, 연금 확대 등 고령층 대상의 복지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의미다. 다만 고령층만을 중심으로 복지정책을 펼쳤다간 일본과 같은 악순환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정부가 고령자 복지를 확대한 대신 젊은 세대의 복지에 미진했던 탓에 저출산이 가속화됐다”며 “한정된 재원을 세대별로 적절히 분배해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09.0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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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⑭ 당신의 국민연금은 안전할까?] 소득대체율보다 보험료율 인상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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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뱃돈을 받은 기억, 다들 있으시죠? 저도 할머니·할아버지·삼촌·고모까지 식구 많은 집이라 명절 때면 수입이 꽤 쏠쏠했습니다. 받긴 했는데 곧 엄마에게 회수를 당했죠. ‘걱정 하지마. 나중에 엄마가 다 돌려줄 거야!’ 철석같이 믿었지요. 하지만 그 세뱃돈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맡긴 사람도 걷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은 게지요. 이제와 그 돈을 내놓으라는 건 아닙니다. ‘엄마표 은행’은 사라진 세뱃돈의 몇만 배에 달하는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사랑이란 이자까지 쳐줬으니까요. 이 세뱃돈처럼 국민이 정부에게 맡기는 돈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연금입니다. 명분은 비슷합니다. ‘네가 관리하긴 어려울 테니 나중에 나이가 들면 돌려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걷어갑니다. ━ 국민연금은 물가 반영하는 최고의 재테크 수단 당장은 좀 서운하지만 국민연금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습니다. 일단 꽤 훌륭한 재테크 수단입니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합니다. 물가가 올라도 그 실질가치를 보장해준다는 건 굉장한 매력인데 가입 당시 소득이 100만원이었더라도 현재가치로 재평가한 소득이 500만원이라면 이를 소득으로 인정해 연금 지급액을 계산합니다. 실제 연금을 받는 기간에도 전국 소비자물가변동률에 근거해 지급액이 조정됩니다. 지금 4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고 할 때 매년 3%포인트씩 물가가 변동한다면 20년 뒤엔 72만2000원을 받게 될 겁니다. 시중에 판매하는 어떤 연금상품도 국민연금보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수익이 뛰어난 건 없습니다. 가입 대상자가 아닌데 임의로 가입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입니다.국민연금은 사회보장적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죠. 국민연금엔 건강보험처럼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데 아마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 중에 자신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국민연금의 급여액 계산식엔 가입자의 평균 소득이 포함돼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이 본인의 소득보다 높은 저소득층은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더 받고, 평균 소득보다 위쪽에 위치한 고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덜 받는 개념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2028년까지 단계적 인하)인데 소득재분배 기능에 따라 저소득층의 소득대체율은 60% 이상으로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이렇게 좋은데 국민연금엔 난제가 하나 있습니다. 현재의 장점을 천년, 만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연대 성격이 있는 국민연금은 의무 가입이 원칙입니다. 소득이 있는 국민은 좋든 싫든 보험료를 내는데, 아직은 이렇게 걷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습니다. 자연히 돈이 쌓이게 됐죠. 1988년 도입된 이후 지난해까지 차곡차곡 모은 기금이 약 430조원이나 됩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올해 처음 500조원을 돌파하는데, 2043년엔 무려 2561조원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돈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7년. 현재 예상대로라면 국민연금은 2060년에 완전 고갈됩니다. 받을 사람은 많아지고, 낼 사람은 줄어드니 당연합니다. 한국 사회를 물귀신처럼 따라다니는 고령화·저출산의 그늘입니다. ━ 18년째 9%에 묶여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엔 우리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있습니다. 운영하는 방식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크게는 쌓아둔 돈으로 연금을 주는 적립식과 필요한 돈을 해마다 걷어서 연금을 주는 부과식으로 나뉩니다. 이 둘을 합한 부분적립식도 있는데 우리나라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은 ‘당사자가 낸 보험료+현 근로세대가 내는 보험료+국민연금기금의 운용 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2060년까지 현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쌓인 돈이 고갈될 테니 어쩔 수 없이 부과식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이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영합니다.지금이나 그때나 보험료를 내는 건 같겠지만 액수는 크게 달라집니다. 지금은 연금을 받은 이전 세대가 이미 납부한 보험료도 있고, 기금의 운용 수익도 있지만 그 때는 모두 사라지고, 근로세대가 내는 보험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죠. 당연히 보험료율이 올라갈 겁니다.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2060년 부터 보험료율을 당장 21.4%로 올려야 합니다. 지금이 9%니까 2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우리는 9%만 내고 연금을 받으면서, 우리 자녀세대에게는 ‘월급의 5분의 1을 우리를 위해 내놓으라’고 말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해야 합니다. ‘너희가 받을 연금은 너희 자식들에게 걷어라’.얼마 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부과식’을 ‘세대 간 도적질’로 빗댔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과한(숫자를 부풀린) 측면이 있지만 영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나씩 따져보죠. 국민연금엔 ‘계층 간 소득재분배’ 기능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도 있습니다. 이는 애초에 연금 도입 초기가입자(주로 현재 60대 이상)를 배려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낮은 보험료에서 출발해, 차츰 보험료를 올리는 식으로 설계를 한 것이죠. 이 세대의 상당수가 자신의 노후는 물론 노후 준비를 못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고 있었던 점을 고려했습니다.실제로 1988년 도입 당시 3%였던 보험료율은 1993년 6%, 1998년 9%로 차츰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18년째 9%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제기됐고,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 12.9%로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당시 법안 통과를 막았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요즘 당장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주장하고, 야당은 보험료율 인상에 소극적입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겠군요. 그러는 사이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대체 왜 9%에 고정돼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세대 간 소득재분배’의 본질이 후세대가 부담을 더 지는 방식이라면 18년 사이 보험료율을 조금씩이라도 올려서 부담을 나눠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제자리에 머물고 있으니 이 기간 국민연금을 납부한 세대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본 겁니다. 연금 보험료를 세금처럼 여기는 터라 인상에 대한 거부감에 큰 데다, 정치권 역시 ‘미래를 위해 보험료를 더 내자’고 국민을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야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자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 꼭 필요한 겁니다. 생계를 걱정하는 빈곤 노인이 전체의 50%에 육박하는 상황인데 국가든 후세대든 이들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라고 하지만 실질 소득대체율은 20~30% 수준에 머뭅니다. 생활비는커녕 용돈 수준입니다. 당연히 올려야 합니다. ━ 젊은층이 가난한데 ‘부모세대 부양’ 논리 통할까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소득대체율 50%에 대해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당시 전문가 사이에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전문가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던 의견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보험료율 12.9%’였습니다. ‘더 내고 더 받자’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 내자는 소리는 안 하고, 더 받자는 소리만 하니 납득을 못하겠다는 겁니다.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을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올려둬야 나중에 부과식으로 바뀌더라도 연착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득대체율 인상은 그 다음이어야 합니다. 보험료율을 2~3%라도 먼저 올려야 지금의 40~50대가 조금이라도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앞서 살폈듯 40~50대는 보험료율이 고정된 18년 동안 이미 약간의 혜택을 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먼저 올리자고 주장합니다. 올해 당장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은 5년 뒤에 인상하기로 했다고 치죠. 그러면 현재 55세인 A는 10년 뒤 소득대체율 인상 혜택은 보겠지만, 60세에 퇴직할 때까지 보험료 부담은 그대로입니다. 퇴직한 뒤에 혜택만 보고, 부담은 후세대만 지는데 어떻게 젊은이들이 이걸 ‘세대 간 연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게다가 국민연금 도입 당시 포함시킨 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에는 후세대로 갈수록 더 잘 살 것, 그래서 보험료를 더 많이 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한창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으니 나름 합당한 논리였습니다. 그러니 현 시점에 세대 간 연대가 성립하려면 지금 젊은층이 실제로 부모세대보다 잘 살거나 더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까? 불행히도 한국 경제의 고성장기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저성장과 저물가로 천천히 굴러가기라도 하면 다행이고,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해야 할 겁니다.나라 경제가 이런데 개인의 삶이 윤택할 리 없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빚을 내고, 좁디 좁은 취업문을 통과해도 쥐꼬리 만한 월급과 바닥을 기는 임금상승률에 만족하고 사는 게 지금 20~30대 아니던가요? 돈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자산 증식의 길은 막혀, 부모 도움이 아니면 내 집 마련은 아예 꿈도 못 꾸는 세대 아니던가요? 그런데 어떻게 세대 간 소득재분배를 위해 희생하라는 건지 1988년과 다른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언젠가 국민연금의 고갈을 피할 수 없더라도 현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그 시점을 최대한 뒤로 늦추는 것’이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을 합니다. ‘국민연금은 애초에 쌓아둘 목적이 아니라, 노인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 ‘기금은 쌓아두는 금융상품이 아니다’ 모으다 보니 적립이 된 것이고, 이 돈이 많이 쌓인 것일 뿐이란 주장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런 의도로 설계했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기금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현재 500조원에 가까운 국민연금 기금은 대부분 국내 주식·채권·부동산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앞으론 1000조원, 2000조원을 넘어서겠죠. 이 돈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겠지만 우리나라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주식을 몽땅 사고도 남는 돈입니다. 이 돈이 단기간에 빠지면 시장이 받을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부 추계대로라면 이 큰 돈은 2044년부터 불과 17년 사이 사라집니다. 이미 기금이 쌓여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어쩔 수 없이 고갈되더라도 시간을 좀 버는 게 맞지 않을까요? 기금을 더 늘리자, 혹은 더 공격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문제(안정성)가 있지만 기금이 없어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쉬 수긍하기 어렵습니다.물론 45년이나 남았는데 그 때까지 이 제도를 가만히 내버려 두겠냐고 속 편한 소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전에 대안이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이 세대, 저 세대 눈치만 보다간 정말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고령화·저출산 추세를 극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현재의 부분적립식을 그대로 가져가긴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고 꼭 곳간을 다 털어먹은 다음에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부과식으로 가되 사전에 일정액의 기금을 따로 떼 내 운용 수익을 거두고, 이를 연금 지급에 활용하는 방식도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500조원이든 1000조원이든 미리 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손대지 않는 별도 기금으로 만들고, 거기서 나온 수익을 활용하는 겁니다. ‘기금 수익+보험료’로 운영하는 거죠.물론 이게 되려면 현재의 기금 운용 방식으론 어림도 없겠지요.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 운용체계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입니다. 돈을 어떻게 굴릴지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기본적인 금융 용어도 모르는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 뒤에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가 있지만 독립성이 없습니다. 기금 수익률이 좋을 리 없습니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은 5.25%에 그쳤습니다. 미국·일본·캐나다 등 주요국 연기금과 비교하면 답답한 수준입니다. 수익률 제고를 위한 여러 개편안이 논의 중이지만 답보 상태입니다.중요한 건 하루빨리 2060년 이후의 국민연금을 어떻게 할 건지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더 내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고, 전 세대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20~30대가 그 중심이 돼야 합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의 고민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지금 20~30대가 따라 해선 안 됩니다.지금의 50세는 15년 후인 2030년부터 연금을 받게 됩니다. 2060년 고갈이니 30년 동안, 즉 95세까지는 걱정 없이 받겠네요. 저는 그것이 ‘나만 받으면 된다’는 이기심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니 관심의 정도가 덜할 뿐입니다. 현재 상태를 내버려둬도 전혀 문제될 게 없으니까요. 그런 이들에게 맡겨 두니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 20~30대, 기성세대의 무성의 답습하지 말아야 첫째, 매달 나가는 돈이라 무감각해지면 안 됩니다. 둘째, 알아서 챙겨주겠지 무작정 믿어서도 안 됩니다. 셋째,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는 데 동의해야 합니다.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가면 이렇게 써 있습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은 반드시 준다’. 한번 믿어보죠. 그러나 그때 받는 연금을 내 자식의 월급에서 떼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지금 20~30대는 본인이 받을 연금의 안전성도 고민해야 하지만, 자식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고민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우리가 조금 더 내야 합니다. 현재 기성세대의 무성의를 답습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 옛날, 엄마에게 맡긴 세뱃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세뱃돈을 꼭 좀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그렇게 하겠지요. 다음 번에는 ‘당신이 떠안은 복지비용’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보겠습니다.

2015.06.2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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