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24

철강·알루미늄, 美 25% 보편 관세 전쟁 시작

산업 일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했던 ‘보편 관세’ 정책이 3월 12일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0일 서명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관련 포고문의 효력이 미국 동부 시간으로 12일 0시 1분, 한국 시각으로는 같은 날 오후 1시 1분부터 발효됐다.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포고문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면서 일부 국가와의 합의에 따라 적용해 온 면제 등 ‘예외’를 모두 폐지하는 게 핵심이다. 예외 없이 모든 나라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뜻이다. 철강의 경우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회원국 ▲일본 ▲영국 등에도 미국에 철강 제품을 수출할 경우 25%의 관세를 부과한다. 알루미늄 역시 2018년에 부과한 10% 관세율을 25%로 인상했다.이번 조처로 우리 기업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주요 수출국 가운데 ▲한국(29억달러·9%)은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캐나다(71억4000만달러·23%) ▲2위는 멕시코(35억달러·11%) ▲3위는 브라질(29억9000만달러·9%)였고, ▲독일(19억달러·6%)과 ▲일본(17억4000만달러·5%)이 우리 뒤를 이어 4~5위를 차지했다.철강업계에서는 그동안 쿼터제를 적용받아 일정 물량만큼 관세 없이 미국으로 수출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는데, 이제는 전 세계 철강사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우리 정부도 경제단체와 관련 기업, 학계 등과 함께 민관합동 관세전쟁 전략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미국 방문 등을 통한 대미 협상 동향을 포함해 향후 계획을 공유했다.안 장관은 “산업부는 1월 말부터 비상 대비 태세를 갖추고 업계와 밀착 소통하며 대응해 왔다”며 “4월 초 예고된 상호 관세 부과 등을 앞두고 대응체계를 더욱 강화해 산업계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측과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급 및 실무 협의를 밀도 있게 진행하는 한편, 여타 주요국의 대응 동향을 모니터링해 산업계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이날 ‘미국 정부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 현장 간담회’를 방문했다. 오 장관은 “수출 중소기업이 느끼는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며 “관세 피해가 우려되거나 관세 피해를 본 수출 중소기업의 경영 정상화, 수출국 다변화 등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2025.03.12 15:26

2분 소요
美, 오후 1시부터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 부과 발효

국제 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산업을 살리겠다며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가 한국시간으로 12일 오후 1시부터 발효된다.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서명한 '미국으로의 철강 수입 조정' 행정명령에 따라 현지시간으로 오는 12일부터 모든 수입산 철강,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예고대로 관세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한국 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번 철강, 알루미늄 관세가 처음이다.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 수입산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자, 협상 끝에 수출량을 제한하고 면세 혜택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기존 쿼터제는 폐지하고 일률적으로 25% 관세를 적용받는다.알루미늄 수출품은 트럼프 1기 당시 때 10% 관세가 부과됐는데, 25%로 상향된다.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서명한 캐나다와 멕시코 대상 25% 관세부과는 한달 유예됐고, 이후에도 일부 품목에 유예가 적용됐다. 하지만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당초 계획대로 실행된다.미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29억 달러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철강 수출액 332억9000만 달러의 약 9%에 해당한다.문제는 이번 조치가 시작이라는 점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2일 대부분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를 발효할 예정이다.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대미 관세가 미국보다 네배 높다고 주장한 만큼 한국이 주요 타깃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정부는 상호관세 발효전 미국 측에 최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할 계획인데, 이번주 중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워싱턴DC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2025.03.12 09:09

2분 소요
[세계 산업계 이끄는 인도 출신 CEO들] 구글의 피차이, MS의 나델라… 글로벌 ‘파워 피플’로 자리매김

CEO

전문성과 리더십·선견지명 앞세워 종횡무진 활약 … 美 이민정책 변화에 인도 정부는 긴장 창업주가 아니었다. ‘흙수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령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40대 초반에 세계 제일의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순다르 피차이(46) 구글 CEO 얘기다. 인도 남부 첸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한 번 익힌 전화번호는 모두 기억할 만큼 수학적 재능이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인도 IT 인재들의 요람 인도공과대(IIT)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주머니를 탈탈 털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과 재료공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땄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잠시 일했다.그런 그가 30대 초반이던 2004년 구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을 때만 해도 장래에 CEO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학과 과학, 엔지니어링에 능통한 인재는 이미 구글 안에 무수했다. 미국인이 아니라는 핸디캡도 있었다. 그를 낭중지추(囊中之錐)로 만든 덕목은 학구열에서 비롯된 혜안, 그리고 과묵하면서도 어떤 갈등이든 중재해낼 수 있는 포용적인 리더십이었다. 엔지니어 시절 “독자적인 웹 브라우저를 만들어야 한다”며 에릭 슈미트 당시 구글 CEO를 설득한 일화는 그가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갖춘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슈미트는 과한 비용이 드는 것을 우려해 브라우저 개발을 반대했지만, 피차이는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에서 구글 툴바 설치를 제한하는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봤다. 그는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틈틈이 시장 분석을 끝마친 상태였다.피차이와 몇 명의 개발자들이 만든 자체 브라우저 ‘크롬’ 시제품은 슈미트를 만족시켰다. 이렇게 해서 2008년 세상에 나온 크롬은 그 편의성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지면서 세계 1위 브라우저로 등극했다. 이는 피차이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했다. 2015년 10월, 그는 수석부사장에서 승진해 구글의 새 CEO로 취임했다. “탁월한 식견과 사업 감각을 가졌다. 기술적 전문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에 대한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주의 평이다. “조용하고 학구적인 CEO”라는, 취임 당시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평가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리더십에선 약점을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부서 간 갈등 해결과 교류·협력 증대에 수차례 기여하면서 안팎으로 신망이 두터웠다. 수줍은 듯 열정적인 그는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면서 솔선수범하는 데 능하다. 지금껏 호평 속에 CEO로 활약하고 있는 이유다. ━ 피차이 CEO, 구글 크롬 히트시킨 주인공 인도 출신 인재들이 피차이처럼 글로벌 산업계를 주름잡는 ‘파워 피플’로 자리매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모두 선견지명과 리더십을 갖추고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IT 업계의 경우 구글에 피차이가 있다면 MS에는 사티아 나델라(49) CEO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망갈로르대 산하 마니팔공과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마찬가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 위스콘신대와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각각 컴퓨터과학 석사, MBA 학위를 딴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잠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MS에 1992년 정식 입사했다. 소프트웨어(SW) 기술 부문 등에서 눈에 띄는 업무 성과를 거두고 입사 15년 만에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클라우드(SW·데이터를 중앙 컴퓨터에 저장해 인터넷 접속자가 언제 어디서든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사업을 이끌어 대성공을 거뒀다.구글과 IBM, 아마존 같은 경쟁 상대들이 미래 먹거리로 보고 집중 육성하고 있던 클라우드 사업에서 MS는 뒤처진 상태였지만, 나델라의 지휘 아래 MS의 클라우드 사업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는 3년 만에 클라우드를 MS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로 만들었고, 그 공로로 2014년 2월 CEO가 됐다. 빌 게이츠 MS 창업주, 스티브 발머 전 CEO에 이어 세 번째로 MS 수장에 오른 것이다. 취임 후에도 그는 자신의 강점인 추진력과 통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와 ‘오피스365’ 등은 업계 1위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맹추격하고 있다. MS는 올 초 2000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나델라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인드라 누이(61) 펩시코 CEO처럼 명망 높은 여성 리더도 인도 출신이다(그는 최근 미 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통상 인도는 여권(女權)이 낮기로 악명이 높지만, 20대 때 미국 유학에 나섰던 그에게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모토로라 등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1994년 펩시코 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펩시코는 펩시콜라로 유명한 미국의 청량음료 업체다. 탁월한 재무관리 능력과 여성 기업인 특유의 친화력을 겸비한 그는 최고재무관리자(CFO) 등을 거쳐 2006년 CEO, 2007년 회장 겸 CEO가 됐다. 안팎으로 “당연한 수순”이라는 말이 나왔다.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업계 2위였던 펩시코를 2004년, 무려 100년 만에 1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 그였다. 누이는 청량음료 시장이 사양세로 돌아설 것을 예측하고 건강음료 등 사업 다각화에 힘썼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인도 출신 여성이라는 약점을 딛고 ‘펩시코의 잔 다르크’가 된 그의 입지는 10년째 굳건하다.이밖에 ‘포토샵’으로 유명한 미국의 SW 업체 어도비시스템즈의 샨타누 나라옌(53) CEO, 올 1월부터 덴마크 완구 업체 레고그룹을 이끌고 있는 발리 파다(60) CEO도 인도 출신이다. 나라옌은 2007년부터 10년째 어도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9년 웹 데이터 분석업체 ‘옴니추어’를 인수하고 디지털 마케팅 솔루션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성과를 냈다. 최근 어도비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만큼 성장세가 무섭다. 파다의 경우 1932년 설립된 레고가 84년 만에 처음으로 발탁한 외국인 CEO다. 그는 12세에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2002년 레고에 입사했다. 레고의 4대 소유주인 토마스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부회장은 파다를 두고 “그룹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레고의 차기 전략을 세울 적임자”라고 평했다. ━ 84년 전통의 레고, 첫 외국인 CEO는 인도 출신 이들은 선견지명·리더십이라는 개인적인 능력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지녔다. 인도가 아닌 미국 등 선진사회에 유학이나 이민 등으로 편입돼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 CNN은 201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 50주년(1965년 ‘국가별 쿼터제’ 폐지)을 조명하면서 “인도 출신 CEO들의 부상은 개방적인 이민정책의 뒷받침 속에 일어난 현상”으로 분석했다. 올해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 이민정책에 인도 정부가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해외 전문 인력에 대한 취업비자(H-1B비자) 발급 규정을 손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H-1B비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 같은 해외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매년 8만5000건 가량 발급된다. 이 H-1B비자 신청자의 약 70%가 인도인이다. 트럼프는 자국민 위주의 일자리 정책을 계속 펼친다는 입장이라 ‘제2의 피차이’, ‘제2의 나델라’가 계속해서 등장해 든든한 외부 지원군이 돼주기를 바라는 인도 정부로서는 순항 중에 암초와 마주친 격이다. 미국의 반 이민정책에 H-1B 비자 신청 건수는 5년 만에 첫 감소세로 돌아섰다.다만 이 같은 현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아난드 마힌드라(62) 인도 마힌드라그룹 회장이 “인도 IT 아웃소싱 업체들엔 기회일 수도 있다. 미국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차제에 아웃소싱에만 의존해 매출을 올리던 데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과 관련된 사업을 키우면서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인도는 타타 컨설턴시서비스, 인포시스, 테크마힌드라 같은 대규모 IT 아웃소싱 업체들을 대거 보유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500대 기업의 75% 이상이 인도의 아웃소싱 업체를 활용 중이다.

2017.05.28 12:21

6분 소요
영욕의 한국 영화 110년 - 울타리(스크린쿼터) 낮춰도 안방 지키며 흥행몰이

산업 일반

10전. 우리나라 최초로 상영한 영화의 입장료다(당시 쌀 한 가마 가격 약 100전). 보통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출발점을 1903년으로 본다. 서울 동대문의 한 기계창고에서 단편영화를 상영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사진도 신기하던 시절에 사진이 움직이기까지 하니 당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은 짐작할 만하다. 1908년 이 기계창고가 광무대로 이름을 바꾼 데 이어 우미관·단성사 등 정식 상영관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대중 속을 파고들기 시작한 건 이맘때부터다.극장은 늘었지만 1920년까지만 해도 상영작들은 프랑스 등지에서 수입된 외화였다. 최초의 한국 영화는 1923년 만들어진 윤백남 감독의 라는 게 정설이다. 이로부터 3년 뒤엔 한국 영화계의 대부 나운규 감독의 이 개봉했다. 소작농 가족이 겪는 고통과 복수를 그린 이 영화는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계엔 대중성을 갖춘 작품이 속속 등장했고, 현재의 제작사 개념인 독립 프로덕션도 크게 늘었다. 일제의 통제와 탄압으로 침체했던 한국 영화는 해방과 함께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다. 수작 쏟아진 1960년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흥망성쇠를 반복한 한국 영화의 첫 중흥기는 1960년대였다. 국민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연간 5회(2013년 4.25회)를 넘어설 정도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를 제외하곤 별달리 문화생활을 즐길 방법이 없었던 이유가 컸다. 보는 사람이 많으니 만드는 사람도 신이 났다. 1950년대 초 연간 10편 정도에 머물던 제작 편수는 1969년 200편을 넘어섰다. 물론 그 이면엔 연간 15편을 제작해야 영화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군사정권의 규제가 있었다. 대량 생산 체제에도 양적인 성장만 이룬 건 아니었다. 등 지금도 명작으로 꼽히는 다수의 영화가 이 때 나왔다. 신상옥·김기영·이만희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기도 했다. 잘 나가던 한국 영화는 1970년대 들어 침체기에 접어든다. TV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 때문이었다. 1961년 한국방송공사(KBS)가 개국했고, 1966년엔 금성사(현 LG전자)가 첫 보급형 흑백 TV를 내놨다. 당시 이 제품의 출시 가격은 6만3510원. 당시 쌀 한 가마가 2500원 정도였고, 생산직 근로자의 1년 연봉이 약 7만원 정도였으니 TV를 소유한 집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근로자의 소득 증가와 저가 TV 보급이 맞물리면서 TV는 엄청난 속도로 거실을 점령해가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전국 TV 보급은 약 10만대에 불과했지만 1977년 400만대를 돌파했다. TV가 잠재적 영화 관객을 집에 묶어두면서 제작 편수가 줄었고, 장사가 안 돼 몇몇 극장이 문을 닫는 일도 있었다. 저예산으로 제작하다 보니 장르도 청년영화나 멜로영화 등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컬러 TV 보급이 시작된 1980년대에는 연간 영화 관객 수가 4000만명대로 추락할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다. 군부 통치에 따른 과도한 검열 제도 역시 영화의 인기를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였다. 제작 환경이 나빠지자 외국 영화의 강세가 이어졌다. 1970~80년대는 가요보다 팝송을 많이 듣던 시기였는데 외국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던 시대적 분위기도 한 몫했다. 이러한 한국 영화의 불황은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졌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건 1990년대 말이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만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Blockbuster)’가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1999년 2월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를 빼놓을 수 없다. 순수 제작비 24억원, 3000여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한 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폭파 장면 등 이전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했다. 최민식·송강호·한석규 등 최고의 배우들이 동시에 출연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 해 582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는 세계적인 흥행작 의 국내 흥행기록을 깨고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 동원의 기록을 세웠다. 지금도 역대 박스오피스 41위에 올라있다. 역대 박스오피스 100위 중 2000년 이전에 개봉한 영화는 가 유일하다. 경쟁력을 갖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한국 영화는 이후 제2의 르네상스를 맞았다. 일단 50%대의 관객점유율을 회복했다. 박찬욱 감독의 , 곽경택 감독의 , 강우석 감독의 등 매년 수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영화들은 흥행에도 성공했다. 대기업들이 연이어 영화 제작에 뛰어들면서 제작비 조달 환경이 개선됐고, 과거엔 제작을 꺼렸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늘면서 관람 환경이 크게 개선된 덕도 봤다. ‘스크린쿼터 축소→한국 영화 궤멸?’ 주장 틀려내용도 알찼다. 지금 우리나라 영화계를 상징하는 감독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는데 박찬욱·봉준호·이창동·김지운·홍상수·김기덕 등이 대표적이다. 분야와 스타일은 달라도 저마다의 영역에서 창조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들이다. 칸·베를린 등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 소식을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감독들이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면서 한국 영화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쑥쑥 커 나가던 한국 영화는 2007년 또 한번 성장세가 꺾였다. 60%를 넘어섰던 관객점유율은 2007년~2010년 4년 연속 40%대에 머물렀고, 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작도 나오지 않았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효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 한국 영화의 성장 과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스크린쿼터’다. 1966년 처음 도입된 스크린쿼터는 극장에서 특정일 이상 국산 영화의 상영을 의무화하는 제도다. 기반이 약한 한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다. 이면엔 외국 영화 수입을 제한해 국민들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숨어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가 지금도 스크린쿼터제를 활용하고 있다. 투자수익률 2년 연속 10%대로 개선우리나라의 경우 도입 당시 연간 90일로 정한 뒤 축소와 확대를 반복했고, 1985년 연간 146일로 정해진 게 계속 이어져왔다. 문화부장관과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20일씩의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어 실제로는 연간 106일 정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극장들이 지키지 않는 사례가 많아 스크린쿼터 감시단이 활동하기도 했고, 실효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국론 분열 사태로 확대된 건 2006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스크린쿼터 폐지 또는 축소를 요구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영화계는 즉각 반대에 나섰다. 한국 영화가 성장한 건 맞지만 시장을 개방할 만큼 안정적인 기반을 갖춘 게 아닌 만큼 당분간 더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엄청난 자본을 무기 삼아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나라 극장가를 휩쓸것이란 예측도 많았다. 배우와 감독 등 유명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와 몇 달 동안 시위를 이어갔다. 에서 이순신 역을 맡아 사상 첫 ‘2000만 배우’의 꿈을 꾸게 된 최민식은 당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가장 강력히 항의했던 배우 중 하나였다. 항의의 뜻으로 2004년 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뒤 받은 문화훈장을 반납하기도 했다. 논란 끝에 ‘절반 축소’로 가닥이 잡혔고, 지금은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1(73일) 이상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는 내용으로 시행령이 바뀌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 영화는 여전히 잘 나간다. 보호를 받던 때보다 관객점유율은 오히려 더 높다. 할리우드 대작이 한국 영화를 피해 개봉일을 잡을 정도로 힘도 세졌다. 그 사이 ‘문화 주권’을 빼앗기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던 목소리는 사라졌고, 스크린쿼터가 아예 폐지된 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지금은 ‘장벽을 낮출 경우 해외 사업자들에게 시장을 빼앗긴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사례로 자주 사용된다. 그러므로 2007년 이후 약 5년 동안 한국 영화가 침체에 빠진 이유를 스크린쿼터 축소에서 찾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 당시의 침체는 스크린쿼터와 무관하게 제작 환경을 둘러싼 영화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수면위로 드러난 결과였다. ‘묻지마 투자’ ‘과잉 투자’의 부작용이었고, 투자수익률이 -40%대를 기록할 만큼 내실이 없던 탓이었다. 상황은 심각했다. 제작 편수가 크게 줄어 제작·배급·상영 산업 전반이 동반 침체를 겪었다. 가뜩이나 취약한 영화계 고용 문제가 불거졌고, 우수한 제작 인력이 이탈하면서 부정적 연쇄효과를 낳았다. 흔히 영화를 경제가 불황일수록 호황을 누리는 산업으로 보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은 극장에도 덜 갔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함께 줄어든 1970~80년대 침체기와 유사했다. 분명한 위기였지만 대처는 과거와 달랐다. 영화인들은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자구노력을 시작했다. 참신한 기획을 발굴하고, 제작 과정에서 누수를 줄여 나갔다. 제작자는 더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고, 투자자도 따질 건 따지는 문화가 형성됐다. 영화 제작 밀도가 더욱 높아지자 신규 투자가 들어왔고, 좋은 작품이 연이어 시장에 나왔다. 침체기는 짧았다. 2012년 관객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국 영화 관객 1억명 시대’를 열었다. 과 가 1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을 이끌었지만 400만 이상을 동원한 영화가 9편이나 될 정도로 저변이 탄탄해진 게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관객점유율은 58.8%로 크게 올랐고, 극장 매출은 1조4551억원으로 2011년보다 17.7% 늘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수익성이 개선된 점이었다. 2012년 개봉한 한국 영화 174편 가운에 제작비 10억원 이상, 스크린 수 100개 이상을 확보한 상업영화 70편의 투자수익률은 약 13.3%였다. 2005년 7.9%를 기록한 이후 7년 만의 흑자 전환이었다. 영화 수익성의 잣대인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총 22편으로 전체의 31.4%를 차지했다. 투자수익률 100%를 넘은 작품도 12편이나 됐다. 2013년은 더 좋았다. 상업영화 63편의 투자수익률이 15.2%로 2012년보다 1.9%포인트 증가했다.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등의 해외 매출 수익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9편으로 전체의 약 30.2%였고, 투자수익률 100%를 상회한 영화도 8편 있었다. 배급 3강 구도 깬 NEW의 등장신생 배급사의 등장도 반가운 이슈였다. 지난해 영화계에선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내내 화제였다. NEW는 연초 <7번방의 선물>로 1000만명 동원에 성공하더니 연말에는 으로 다시 대박을 쳤다. 2009년 설립 이후 한 자릿수에 머물던 점유율은 2012년 11.8%(매출 기준)로 올랐고, 지난해엔 18.1%로 2위에 올라 배급 3강(CJ·롯데·쇼박스) 구도를 깨는데 성공했다. 독보적인 1위였던 CJ E&M(21.2%)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대기업 계열사도 아닌 신생 배급사의 성공은 매우 이례적이다. 올해는 약간 주춤한 편이지만 메이저 투자 배급사의 숫자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크다. 여러 면에서 볼 때 한국 영화의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결산 좌담회에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어느덧 ‘한국 영화 재미있다’는 인식이 대중 안에 자리를 잡았다”며 “잘 만들어지고, 대중이 이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한 게 한국 영화가 최근 잘 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여건도 좋다. 의 기록적 흥행덕분에 40%대로 떨어졌던 관객점유율을 51%로 끌어올렸고, 남은 하반기에도 기대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지난해 수준은 무난히 달성할 것이란 관측이다.

2014.08.25 11:29

7분 소요
한국 영화산업 ‘제3의 르네상스’ -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돈을 부른다

산업 일반

한국 영화 이 개봉 한 달도 안 돼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상 처음이다. 덕분에 한국 영화가 3년 연속 ‘관객 1억명’을 돌파할 가능성이 커졌다. 등 외화에 밀려 올 상반기 부진했지만 여름 특수를 타고 반전에 성공했다. 전례 없는 호황에 한국영화가 ‘제3의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한국 영화가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성장해가 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급의 안정성, 수요 증가, 판로 확대 등 돈 되는 산업이 갖춰야 할 여러 조건을 채워가고 있어서다. 그 사이 스크린쿼터 폐지에 따른 한국 영화산업 붕괴 우려도 사라졌다.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한국 영화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잘 포장된 겉모습 속에 곪아가는 속사정은 없는지도 들여다봤다. 2013년은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해였다. 관객 수는 2012년보다 약 9% 증가해 처음으로 2억명을 돌파했고, 전체 영화산업 매출도 1조8839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속 성장을 이끈 건 한국 영화였다. 2013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1억2727만명으로 2008년(6355만명)에 비해 100.3%나 증가했다.한국 영화의 관객점유율은 59.7%로 사상 최대였던 2012년보다 0.9%포인트 늘었다. 2012년 워낙 실적이 좋았던 터라 2013년에는 ‘유지’ 정도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설 연휴 <7번방의 선물> 의 흥행을 시작으로 등이 1년 내내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 모았다. 숨 고르기였을까? 한국 영화는 올 상반기 주춤했다. 2014년 상반기 전체 영화 관객수는 전년 상반기 대비 200만명 줄어든 9651만명을 기록했다. 감소폭도 크지 않고, 매출 역시 큰 차이가 없었지만 한국 영화 점유율은 크게 줄었다.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전년 상반기 대비 1403만명 감소한 4154만명이었으나 외국 영화 관객 수는 1203만명 증가해 5497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1028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데 이어 등이 연이어 성공했다. 한국 영화는 등이 그나마 선전했으나 대작이 없었다. 한국 영화 점유율은 43.0%, 외국 영화는 57.0%였다. 5년 만의 역전이었다. 8월의 한국 영화 점유율 84%하지만 한국 영화는 7월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6편이 7월 흥행순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가 7월에만 약 4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7월 말 개봉한 은 단 이틀(30~31일)만에 141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일주일 단위로 개봉한 가 박스오피스 1~3위를 석권하며 8월을 한국 영화의 달로 만들었다. 8월 들어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83.3%로 올라갔다. 이 중 명량의 성공은 단연 돋보였다. 8월 19일 사상 처음으로 관객 수 1500만명을 돌파한 은 대통령까지 관람에 나서고 사회 전반에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올 만큼 파급효과가 컸다. 아직 개봉한 지 한 달도 안 됐다. ‘2000만명’이란 상상 속 숫자까지 가능하다는 예상도 나온다. 배우 송강호가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을 이끌었다면 올해는 최민식이다. 송강호는 2013년 한국 영화 관객 중 10%를 혼자모셔왔다. 로 934만명, 으로 913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더니 연말 으로 기어이 2000만명을 채웠다. 올해는 또 다른 국민배우가 나섰다. 그동안 호연에도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던 최민식은 단 한 편의 영화로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입증했다. 송강호가 여러 캐릭터를 오가며 ‘배우의 힘’을 보여줬다면 최민식은 이순신의 재림이라 할 만큼 ‘몰입의 힘’을 보여줬다. 의 흥행 덕에 한국 영화가 3년 연속 ‘관객 1억명’을 돌파할 가능성도 커졌다. 전례 없는 호황에 한국 영화가 ‘제3의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화계에서는 1960~70년대를 첫 번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를 두 번째 르네상스기로 본다. 지금 ‘제3의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과거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앞선 두 번의 르네상스기가 단순히 흥행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은 한국 영화가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성장해간다는 의미가 크다. 공급의 안정성, 수요 증가, 판로 확대 등 돈 되는 산업이 갖춰야 할 여러 조건을 채워가고 있어서다. 2013년 송강호, 2014년은 최민식일단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 대작 몇 편이 선두에 서는 건 예전과 같지만 관객을 싹쓸이 할 정도는 아니다. 볼만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웰-메이드(Well-made)’ 영화로 불리는 수작들이 꾸준히 시장에 나온다. 하반기 한국 영화 기대작이었던 등은 흥행 성적엔 차이가 있을 지 몰라도 대부분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가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해도, 대안이 있다는 의미다. ‘한국 영화=재미있다’는 등식이 통하게 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장르의 다양성도 한 몫 했다. 독특한 시나리오로 승부한 부터 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사극까지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무조건 된다’했던 영화가 의외로 고전하고, ‘이게 될까?’ 했던 영화가 성공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장르의 다양화 덕에 관객층도 두터워졌다. 원래 영화 기획자들 사이에서 주 타깃층은 ‘20~30대 여성 관객’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 공식은 통하지만 ‘이제는 40~50대 남성 관객으로의 확장성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영화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낮은 수익률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흥행을 해도 손익분기점자체가 워낙 높아 손해를 보는 영화가 제법 많았다.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던 시기라 제작비 집행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됐다. 수익률 하락은 제작 위축으로 이어졌고, 이는 2008년~2010년 한국 영화가 침체기를 겪은 요인 중 하나였다. 이 시기 한국 영화 투자수익률은 -40%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2012년 플러스 수익률을 회복한 뒤 지난해에도 적절한 수익률(15.2%)을 유지했다. 작품을 더 신중하게 고르고, 제작 단계에서 부적절한 비용을 줄이는 관행이 자리를 잡은 결과다. VOD 등 극장 외 매출 꾸준한 성장세수요는 더 늘었다. 영화 매출을 주로 극장에서 거두는 건 여전하지만 과거와 달리 여기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온라인 시장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어서다. 지난해 디지털·온라인 영화 매출은 전년 대비 24% 증가해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가장 큰 동력인 IPTV 및 맞춤형영상정보(VOD) 영화 서비스 매출은 전년 대비 32.6%나 늘었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더 큰 폭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역시 한국 영화가 성장을 이끌었다. 지난해 TV VOD 판매 상위 10위에 오른 영화는 모두 한국영화였다. 한국이 영화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 수출액(완성작)은 2012년 대비 83.7% 증가한 3700만 달러에 달했다. 단 한편에 편중돼 있긴 해도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크다. 중화권 등으로 수출하는 기술서비스(특수효과, 디지털 효과 등) 판매액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 영화가 얼마든지 케이팝(K-POP)처럼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대목이다. ‘스크린쿼터제가 없어지면 한국 영화는 망한다’고 했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양적·질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겉으로 잘 나간다고 속까지 멀쩡한 건 아니다. 한국 영화가 진짜 제대로 된 산업으로 커 나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제작사는 편중돼 있고, 배급 시스템은 여전히 독과점 상황이다. 흥행을 해도 수익 배분은 잘 안 된다. 스태프의 권익 향상과 독립영화 저변 확대 역시 시급한 과제다.

2014.08.25 11:02

5분 소요
Special Report | 경제 부문 국정과제 점검해 보니 - 경제부흥 42개 과제 ‘지지부진’

산업 일반

국무조정실이 올 2월 발표한 국정과제 평가에서 ‘총체적 재난체계 강화’는 우수·보통·미흡 중 ‘우수’ 등급을 받았다. 우수하다는 총체적 재난 체계는 세월호 참사로 총체적 부실 상태임이 드러났다. 다른 과제 평가도 이처럼 엉터리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경제부흥 분야 국정과제 42개 중 6개는 우수, 30개는 보통, 6개는 미흡을 받았다.어떤 과제가 미흡하고 보통인지, 왜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는 정부 정책 자료, 전문가들의 조언, 관련 산업계 의견, 언론 설문조사, 자체 분석 등을 토대로 42개 과제의 추진 현황과 성과를 평가해 점수를 매겼다. 평점 ‘C’ 이하 과제가 수두룩하다. 과제1. 가능성에 투자하는 금융환경 조성 - 핵심 정책과제 국회에서 낮잠 C금융감독원은 4월 초 ‘2014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자본시장 선진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형 투자은행(IB) 육성, 금융회사의 자기자본 규제 개선, 공모펀드 활성화 등이 골자다. 1년 전 발표한 국정과제 내용과 다를 게 없다.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확대하는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개인 투자자의 정보 불균형 해소를 위해 공시 정보를 확대하는 방안은 여전히 검토만 하고 있다. 기업 재무제표 작성 책임을 강화하고, 증권시장 대체거래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벤처창업 투자 확대와 중간 회수시장 확충을 위해 지난해 5월 내놓은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 순환 방안’으로 벤처 투자는 늘었지만, 여전히 중간 회수시장 시스템은 미흡하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평가다.과제2. 지식재산의 창출·보호·활용 체계 선진화 - 알맹이 없고 거창한 담론만 반복 D지식재산(IP) 시장 생태계를 조기에 구축하겠다는 국정과제는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 지식재산 전략을 본격 가동한다는 거창한 과제를 내세웠지만, 담론만 있고 구체적인 시행 계획은 찾기 힘들다. 주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2014년 업무보고에도 지식재산은 언급되지 않았다. 관련 부처인 특허청은 올해 업무보고에서 지식재산 창출·보호·활용체계 선진화를 위해 12개 과제를 중점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평가 이후에 나온 재탕 발표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본회의는 지금껏 두 차례 열렸다.과제3. 재도전이 가능한 창업 안전망 구축 - 제2금융권 연대보증 폐지 등 구체적 정책 B실패 기업인이 재창업 할 때 소득세·법인세를 감면해주고, 제2금융권까지 연대보증제 폐지를 확대하는 계획은 시행 중이다. 다만, 재창업 자금 지원 확대나 재기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적 제도 개선 등은 눈에 띄는 정책이 없다. 기업이 부도·파산해도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압류재산 면제범위 확대, 신속한 회생을 돕는 ‘간이회생제도’는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도입이 결정됐다.과제4. 중소기업 성장 희망사다리 구축 - 최근에야 기본 계획 수립·발표 C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확대와 정부 출연 연구소 예산의 중소기업 쿼터제 확대 등은 국무조정실 자체 평가가 발표된 후 두 달 뒤에야 관련 정책이 마련됐다. 아직은 ‘방침’ 수준이다. 공공기관의 여성 기업제품 구매 의무화는 4월 초에야 관련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중소기업 졸업 때 대폭 축소되는 금융·세제 지원 등을 확대하는 방안은 아직 논의 중이다. 사업용 재산(가업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 공제 확대 관련 법안은 올 1월 국회를 통과했다.과제5. 중소·중견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 - 중소·중견기업 수출 비중 증가 B경제부흥 국정과제 중 가장 활발히 추진된 분야로 평가된다. 이전 정부 정책과 연속성이 컸던 만큼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정부 산하 기관 등에서 관련 정책이 대거 나왔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중소기업 해외 마케팅 지원과 지역전문가 양성프로그램도 크게 늘었다. 무역투자진흥회의 신설, 중소기업 수출지원센터 신설 등 수출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과제는 계획보다 빨리 이뤄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중견기업 수출 비중은 32.9%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높아졌다.과제6. 동반성장 등 협력적 기업생태계 조성 - 정책만 있고 성과는 없는 탁상행정 D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의 확대와 성과 공유제 도입 등 동반성장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은 속속 나왔지만 기업의 반응은 차갑다. 동반성장지수 평가에 대한 재계의 불만도 여전하다.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위한 ‘U턴 기업 지원’ 관련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실제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은 드물다.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92곳을 조사한 결과, 한국으로 되돌아오겠다고 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정책만 있고, 결과는 없는 전형적인 실패 과제다. 공익사업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영주 자격을 주는 공익사업 투자이민제도 역시 탁상행정에 그친 것으로 평가된다.과제7. IT·SW 융합을 통한 주력산업 구조 고도화 - 범 정부 차원의 액션 플랜 부족 C140개 국정과제 중 정부가 우선 추진키로 한 40개 과제 중 하나다. IT와 소프트웨어 융합을 통해 주력산업을 고도화하고 신사업을 발굴한다는 계획인데, 과제 자체가 워낙 포괄적이라 평가는 쉽지 않다. 지난해 말 정부가 ‘4대 국민생활분야 융합 신산업 시장 활성화 전략’을 내놓는 등 과제 수행을 위한 세부 정책이 나왔지만, 범 정부 차원의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관련업계·학계의 지적이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과제8.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제 기반 조성 - 구체적인 정책 없이 뜬구름만 D창조경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6월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수립했다. 올 초에는 각 부처별로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추진 과제를 마련해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이 과제의 주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그동안 창조경제 관련 정책을 쏟아냈지만 여전히 ‘모호하다’는 게 중평이다. 한 언론사가 2월에 188개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창조경제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83%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개념이 모호하고, 정책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창조경제 종합포털 사이트 ‘창조경제타운’은 유명무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과제9. 보건·고령 친화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 - 총론은 거창, 각론은 여전히 논의만 C2017년 제약산업 글로벌 10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글로벌 제약 육성 펀드가 조성되고, 4월에 투자 1호 기업이 선정됐다. 지난해 7월에는 보건복지부 주도로 제약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보건의료정보 표준화, 제약산업 전문인력 양성, 특성화 대학원 추가 지정, 의약품 유통 구조 선진화, 전략적 보건의료 R&D 투자 확대 등은 여전히 논의만 되고 있다. 3월에 발표한 의료기기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은 이전 정부 정책을 대부분 베낀 재탕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 과제는 국무조정실 평가에서도 ‘미흡’ 평가를 받았다.과제10. 교통·해운 선진화 및 건설·원전산업 해외진출 지원 - 교통·원전 부분은 성과, 해운 선진화는 빵점 C철도병목구간 개선과 혼잡권역의 고속도로망 확충, 대도시권 광역철도망 구축 등이 교통체계 선진화의 주요 과제다. 3월 말 정부가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광역교통기본계획’을 마련하는 등 광역철도망 구축사업은 탄력을 받게 됐다.해운·물류 선진화 과제는 빵점 수준이다. 제3자 물류 육성, 선박관리산업 육성, 평형수 처리설비 R&D 확대 등은 진척된 것이 없다. 국적 크루즈 육성을 위한 법안은 4월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원전 플랜트 수주 확대를 위한 원전금융 활성화, 미자립 원전기술 국산화 등은 일부 성과를 냈다. 과제11. 해양수산업의 미래산업화 및 체계적 해양영토 관리 - 수산업 활성화 정책 잇따라 나와 B세월호 참사로 뭇매를 맞은 해양수산부가 주관 부처인 과제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기본 계획은 이미 수립됐고 올해 수산·어촌 분야 예산을 전년 대비 3.5% 증가한 1조8340억원 확보해 수산업 미래 산업화 등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후 어선 현대화, 양식수산물재해보험 확대, 해양관광진흥 10개년 사업 추진, 수산식품 클러스터 조성, 10대 수출전략 품목 육성, 마리나(marian)산업 활성화 등 손에 잡히는 지원 정책이 잇따라 나왔다.과제12. 농림축산업의 미래성장산업화 - 6차 산업 활성화 법안 뒤늦게 국회 통과 C지난해 7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의 6차 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농식품의 첨단산업화, 축산업 육성 등을 추진 중이다. 2017년까지 매출 100억원 이상 기업 1000곳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 5000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관련 법률(농촌 융·복합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가 5월 중순에야 본회의를 통과했다.과제13. 우주기술 자립으로 우주강국 실현 - 우주산업 예산 증가, 인력 양성대책 전무 D워낙 장기적인 목표인데다, 국내 기술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져 있어 평가가 이른 과제다. 주관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우주산업 육성을 통해 창조경제 구현에 기여한다는 애매한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시적 성과는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를 창립한 정도다. 다만, 정부가 올해 우주분야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50% 증가한 3179억원을 책정하는 등 정책 의지는 내비쳤다. 이 비용의 절반은 한국형발사체개발 사업에 투입된다. 하지만, 우주기술 개발에 근간이 될 인력 양성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과제14. 서비스산업 전략적 육성기반 구축 - 서비스산업발전법 2년째 국회에 표류 D서비스산업 육성은 역대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빠짐없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박근혜정부도 서비스산업 발전방안 마련, 서비스산업발전 5개년 계획 수립, 서비스산업 허브화 추진 등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금융·교육·의료·법률·관광 서비스 분야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2년째 국회에 막혀 있다. 법 제정만 되면 서비스산업이 육성될 것이라는 정부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과제15. 청년 취업·창업 활성화 및 해외진출 지원 -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 증가 B고용노동부는 청년층의 해외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3곳의 K-무브(Move) 센터를 개소하고, 해외취업장려금 제도를 도입했다. 창업선도대학과 창직인턴제도 확대했다. 공공부문 청년층 일자리 확대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5월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3% 청년 고용 규정을 ‘노력’에서 ‘의무’ 조항으로 개정하면서 실제 공공부문 일자리가 소폭 증가했다. 청년 채용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한다는 과제는 박근혜정부 이전부터 시행해 온 것이었다.과제16. 국가 과학기술 혁신역량 강화 - 과학계 숙원인 과학기술기본법 국회 통과 B과학기술 인재 양성, 국가 R&D 투자 확대와 효율성 제고, 과학기술인 연구 몰입 환경 조성, 과학기술 기획 인프라 강화 등이 주요 추진 계획이다. 미래부는 지난해 말 과학영재의 체계적 육성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R&D 규모도 증가 추세다. 과학기술계의 숙원이었던 과학기술기본법은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 출연연구소 지원 비중 확대, 사학연금 수준의 과학기술인 복지서비스, 65세 정년 환원, 과학기술유공자 지원법제정 등은 논의 중이다.과제17. 산·학·연·지역 연계를 통한 신산업 창출기능 강화 - 1년 지나 국정과제 재탕 발표 D미래부는 3월 ‘2014 특구육성사업 시행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중소·중견기업의 R&D 지원거점을 만들고, 출연연구기관과 민간이 결합하는 민간연구소 기업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대부분 국정과제에 포함됐던 내용의 재탕이다. 학·연 교수제와 학·연 학생 제도 활성화 지원, 출연금 중 일정비율(5~15%)을 중소기업에 지원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할 계획이다’만 반복하고 있다.과제18.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국가 신성장 거점으로 육성 - 별다른 성과 없는데 정부 평가에선 ‘우수’ C국무조정실 국정과제 평가에서 ‘우수’를 받은 과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이전해 대학·연구소·기업과 융합하는 중심기관이 되도록 하는 계획이 추진 중이나, 나머지 세부 추진 계획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과학벨트 정부지원체계 일원화, 과학벨트내 과학자와 가족을 위한 정주 요건 조성 등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이명박 정부 정책을 이어받은 과학비즈니스밸트 육성 사업은 이번 정부 들어 기본 계획이 변경되면서 완공 시기가 늦춰졌고,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반발하면서 ‘정치벨트’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좋은 평가가 어렵다.과제19. 세계 최고의 인터넷 생태계 조성 - 잇단 개인정보 유출에 표현의 자유도 제약 F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통신 심의를 대폭 축소하고, 업계 자율심의 기능 강화, 임시조치(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명예훼손 피해자의 요청을 받아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게시글을 안 보이도록 하는 제도) 남용에 의한 표현 자유 위축 방지 등 정부가 내놓은 과제 대부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잇따른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서 보듯이 사이버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 강화 등도 공염불이다. 인터넷 신사업 육성을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육성법은 국회에 묶여있다. 인터넷 피해구제 원스톱 서비스센터 개소가 거의 유일한 성과다.과제20. 정보통신 최강국 건설 - ICT 정책 방향 잘 잡았다는 평가 B콘텐트·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를 아우르는 혁신적 정보통신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정부 국정과제에 대해 관련 업계는 방향은 잘 잡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정부가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조정할 정보통신전략위원회를 발족하고 제시한 4대 전략 16개 과제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방송법·IPTV법 연내 통합, 디지털콘텐트랩 설립과 디지털코리아펀드 조성 등도 잘 이행됐다. 다만, ICT 중소벤처를 위한 해외 기술거래 유통망 확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 등은 지지부진하다. 과제21. 경제적 약자의 권익보호 - 납품업체 관련 불공정 거래 규제 강화 B대기업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 행위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과제로, 추진 속도도 빠르고 목표 달성률도 높은 과제 중 하나다. 납품업체에서 징수하는 판매장려금 개선, 판촉사원 파견 규제, 가맹본부의 매장 리뉴얼 강요 금지, 가맹점주 단체 결성·가입에 대한 불이익 부과 금지, 하도급법에 부당 특약을 전면 금지하는 조항 등 과제 추진 계획이 상당 부분 이뤄졌다. 다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1차 협력사와 2·3차 협력사 간 공정거래협약 체결은 미진하다.과제22. 소비자 권익보호 - 금융소비자 보호법 제정 ‘차일피일’ D실효성 있는 소비자 피해를 위해 동의 의결제를 도입하고, 신용조회회사가 개인 신용등급 변동사항을 통지하도록 하는 등 일부 과제는 시행 중이다. 하지만 소비자 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설립하기로 한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은 아직 가닥을 잡지 못했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과제는 진척이 더디다.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기관 설립과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연내 추진할 계획”이라고만 밝히고 있다.과제23. 실질적 피해구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집행체계 개선 - 공정위 전속고발권 33년 만에 폐지 B오랜 논란 끝에 지난해 하도급법이 개정돼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와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공정위가 독점했던 전속고발권도 33년 만에 폐지됐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담합 및 재판매 가격 유지 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제와 사인의 금지청구제(개인이나 기업이 공정거래법상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금지 명령을 청구하는 제도) 도입은 찬반 의견이 팽팽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과제24.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행위 근절 - 일감 몰아주기 처벌 강화 B최근 공정위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에 최대 80%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고시를 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앞서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관련 법안이 대거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기업 지배주주의 횡령·배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고,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엄격한 사면권 적용, 회계부정행위 등 기업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 과제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거나 별다른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과제25. 기업지배구조 개선 - 7월부터 신규 순환출자 전면 금지 B7월 25일부터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가 전면 금지된다. 공정위는 신규 순환출자 관련 탈법 행위 유형을 추가하고, 과징금 기준을 마련하는 세부 내용을 담은 시행령도 입법예고했다. 상장기업의 전자투표 의무화도 곧 시행된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축소하는 은행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도 강화할 방침이다. 다만 감사위원·사외이사 분리,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등은 표류 중이다.과제26. 금융서비스의 공정경쟁 기반 구축 - 근본적 감독체계 개편 미흡 D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하는 상호금융정책협의회는 그동안 상호금융에 대한 대출 규제, 꺾기 규제 등을 내놨다. 우체국·새마을금고·수협 보험부문에 민영보험사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되도록 하는 계획이나 펀드 규제체계 개선 등은 제자리 걸음이다. 특히 금융감독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수 있는 법률 개정은 부처·정치권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과제27. 주거안정 대책 강화 - 관련 대책 실패하거나 대폭 축소 D하우스푸어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프리워크아웃제와 희망임대 주택 리츠 사업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채권 지분 매각 제도는 지난 1년 간 실적이 전혀 없었다. 렌트 푸어 지원 방안으로 내놓은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는 사실상 실패했다. 보편적 주거복지를 위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놓은 행복주택 20만호 공급, 공공임대주택 지속 공급, 주택바우처 도입 등은 계획이 대폭 축소되거나 추진 속도가 더디다.과제28. 서민 금융부담 완화 - 국민행복기금 수혜자 25만명 돌파 B서민 금융부담이 완화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계획은 상당 부분 이행됐다.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위해 국민행복기금이 설립되고, 20% 이상 고금리 대출 채무자에 대해 저금리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바꿔드림론’ 등이 도입됐다.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 출범 후 약 25만명이 수혜를 받았다. 최근에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ICL)’ 시행 이전에 학자금 대출을 받은 채무자에 대해 ICL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과제29. 교육비 부담 경감 - 유명무실한 정책의 대표 사례 D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 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고교 무상교육을 위해 정부가 제출한 ‘초·중등교육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이나 대학 기숙사 확충 지원, 한 번의 원서 작성으로 여러 대학에 입학원수를 접수하게 하는 시스템 구축 과제는 성과가 없다. 대학이 대입전형료 차액을 응시생에게 돌려 주도록 한 고등교육법이 지난해 개정됐지만, 실제로 전형료를 반환한 대학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무실한 정책의 대표 사례다.과제30. 통신비 부담 낮추기 - 알뜰폰 활성화에 단통법도 국회 통과 C이동통신 가입비 인하, 알뜰폰 서비스 활성화 등은 성과를 거뒀다. 논란이 컸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은 2월 국회를 통과해 10월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 등에서는 통신비 인하를 위해선 정부의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가계 통신비에서 비중이 점차 커지는 스마트폰 가격 인하를 위한 대책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과제31. 농어가 소득 증대 - 농어업재해 보험 대상 확대 B농어업재해보험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손해평가사 제도 도입을 명시한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이 5월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농업인 재해보험 가입률은 19%, 양식수산물 재해보험 가입률은 24%에 불과해 가입률을 높이는 정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과제 중 하나였던 쌀고정직불금은 올해 인상됐다. 자유무역협정(FTA) 보완대책의 하나로 농어촌 특별세 기한이 10년 더 연장됐다. FTA 대책 예산은 크게 늘었다.과제32. 농축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 유통구조 줄면서 4000억원 절감 A정부는 지난해 5월 직거래·수의매매 확대, 농산물 도매 유통센터 개설과 농·수협 중심의 유통계열화 등의 내용을 담은 ‘농산물 유통구조개선 종합대책’을 내놨다. 최근에는 농산물 직거래 비중을 늘리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용역 연구 결과 대책 발표 후 약 4000억원, 가구당 3만2000원 정도의 유통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과제33. 소상공인·자영업자 및 전통시장의 활력 회복 - 소상공인기본법 제정 올 하반기에나 추진 C소상공인 공제기금인 노란우산공제기금 가입자가 40만명을 돌파하고, 부금 납입은 2조원으로 늘었다. 중소기업 사업조정이 시행 중인 사업에 대해 대기업의 인수·개시·확장 금지를 명령하는 사업조정 일시정지 명령제는 올 2월부터 시행됐다. 소상공인 단체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소상공인기본법 제정은 아직 진척이 없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올 하반기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발행되는 온누리상품권은 지난해 판매액(3250억원)이 대폭 줄어, 연간 1조원 발행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과제34. 영세 운송업 등 선진화 - 연안여객운송 선진화 과제 엉망 D과잉 공급된 택시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택시운송사업 발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택시 감차에 따른 비용 부담을 놓고 정부·지자체·택시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버스산업선진화와 관련해, 정부는 2020년까지 현재 2개인 광역급행 노선을 44개로 늘리는 광역교통기본계획 변경안을 최근 의결했다. 화물 운송업 관련, 표준운임제는 도입에 진통을 겪고 있다. 연안여객운송업 선진화 과제는 세월호 참사로 평가를 대신한다.과제35. 대외 위험요인에 대한 경제의 안전판 강화 - 외환건전성·국가신용등급 관리 무난 B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 외환건전성 부담금 규제 등으로 외국인 자본 유출입 변동에 대처한다는 국정과제는 지난 2월 국무조정실 평가에서 ‘우수’를 받았다. 하지만 두 규제는 이전 정부 때부터 해왔던 정책이다. 외채·외화유동성 관리, 금융기관의 외환 건전성 관리·감독 등은 지표로 볼 때 안정적으로 관리됐다는 평이 우세하다. 국가신용등급도 안정적으로 관리됐다.과제36. 금융시장 불안에 선제 대응 - 가계부채 1조원 돌파, 부채의 질도 나빠져 F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구멍난 한국 경제, 한국 가정 빚더미에 허덕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정부는 가계부채 연착륙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3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025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중 은행대출 비중이 줄고, 제2 금융권 부채가 증가하는 등 부채의 질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회사채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도 지지부진하다. 무대책 수준이다.과제37. 부동산 시장 안정화 - 잇단 대책에도 부동산 시장 냉랭 D박근혜정부는 지난해 4·1 부동산 대책을 시작으로 8·28 대책, 올 2·26 대책 등을 연이어 내놨다. 표현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였지만,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규제를 대폭 풀었다. 효과는 반짝 상승에 그쳤다. 정부와 국회의 규제 완화에 따라 아파트 거래가 늘고 집값이 소폭 상승하는 듯 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내리막이다. 정부 부처 간 정책 엇박자도 끊임없이 지적됐다.과제38. 물가의 구조적 안정화 - 일부 물가안정 대책 성과 거둬 B농산물 유통구조개선, 통신·석유시장 경쟁 촉진을 통한 가격 인하 유도 등 물가안정을 위한 일부 대책은 효과를 거뒀다. 공공요금 안정화와 관련해서, 정부는 공공요금 산정 기준을 일부 개정했고 조만간 원가 검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초부터 일부 업종을 대상으로 실시된 옥외가격표시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물가는 안정세지만,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과제39. 안정적 식량수급 체계 구축 - 계획은 지지부진, 추진 정책은 예산 낭비 F국제 곡물 가격 전망모형 구축, 우량농지 확보를 위한 농지매입비축사업, 농지보전부담금 부과 기준 조정 등 추진 계획이 대부분 지지부진하다. 높이겠다던 곡물 자주율은 하락했다. 곡물공공비축 대상을 현행 쌀에서 밀·콩으로 확대한다는 정책 과제는 2년전 발의돼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한 내용이다. 해외 농업개발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은 감사원 감사에서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됐다.과제40. 안정적 세입기반 확충 비과세·감면제도 축소 소극적 D4월 초 기획재정부는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제도는 원칙적으로 종료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축소 후 재설계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기존 15%에서 10%로 축소하기로 했지만, 국회에서 1년간 추가 유예기간을 주기로 결정된 바 있다. 금융소득 과세 정상화를 위해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금액은 기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인하됐지만, 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정부 내에서 아직 가닥을 못 잡고 있다. 여론 눈치를 보느라 성과가 부진한 대표적 과제다.과제41. 건전재정 기조 정착 - 정부 관리재정수지 적자, 낭비 예산도 많아 D5월 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5%의 적자(21조1000억원)를 기록한 관리재정수지를 임기 내 1.4%의 흑자로 개선해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다. 건전 재정을 위해선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데, 국회예산처가 발표한 ‘2014 예산안 총괄분석’에 따르면 성과 달성이 불확실하거나 유사·중복 사업에 예산이 과도하게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과제42. 공공부문 부채 및 국유재산 관리 효율화 - 공공부문 부채 900조원 돌파 C지난해 말 공공부문 부채는 900조원을 돌파했다. 공공부문 부채 관리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박근혜정부는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안을 잇따라 내놨다. 정부는 1년마다 발표하던 공공부문 부채 현황을 매달 발표할 계획이다. 성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국유재산 관리 효율화를 위해 추진하는 국유재산 통합관리시스템 구축과 관련, 기획재정부 측은 “현재 2단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2014.06.09 10:57

16분 소요
중국은 국내 대출 늘려라

산업 일반

현 금융위기의 한 가지 교훈은 그동안 서방 세계에서 대출이 통제 불능이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과거보다 대출이 줄었다. 지난 10년과 달리 이젠 사실상 아무도 돈을 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은행들이 자기자본 1달러당 26달러를 빌리고, 일반 가계는 주택을 담보로 평균 12만1000달러를 빌려 썼다.그러나 대출 축소는 서방 세계에서는 일리가 있을지 몰라도 중국에선 단호히 배격돼야 한다. 뉴욕과 런던은 새로운 절약 풍조를 수용해야겠지만 중국의 은행들은 오히려 예전의 시티그룹과 JP모건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물론 무절제한 대출과 차입 투자는 배제하고 말이다). 중국인들에게 더 많은 돈을 대출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 주게 되면 중국이 현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에도 혜택이 돌아간다. 중국 은행들은 규모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 일례로 중국공상은행(ICBC)은 세계에서 여섯째로 큰 기업으로 시장 가치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높다. 문제는 자금력에 비해 대출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대출이 대부분 대기업과 국영회사에 집중된다. 모건스탠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국 은행들의 대출금 중 일반 가계로 간 부분은 7%에 그쳤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정부 정책의 결과다. 중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대출 축소 ‘전쟁’을 해 왔다. 고도성장기에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은행들의 대출에 쿼터제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 경제가 냉각되는(일설로는 냉동되는) 만큼 인플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은행들의 족쇄를 풀어 줘야 한다”고 미국외교협회(CFR)의 경제 전문가 브래드 세처는 지적한다.세처 등 몇몇 전문가는 중국 정부의 대출 축소 전쟁이 뜻밖의 부작용을 초래한 만큼 이런 정책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작용 중 하나는 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은행의 주된 수입원인 예수금의 재대출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호황기에 많은 수익을 거둔 중국 기업들은 그 돈을 은행에 저축하기보다는 곧바로 지출(때론 아무 데나 투자)했다고 미국 코넬대 경제학 교수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지적한다. “아무 데나 투자해도 은행의 사실상 제로 금리보다는 수익률이 높다.” 대출 축소 전쟁은 일반 가계에도 부정적 결과를 불러왔다. 중국인들은 소득의 25%가량을 저축한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저축률이 높은 주된 이유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탓이다. 일반 가계는 긴급한 현금 수요에 대비해 상당히 많은 비상금을 간직한다. 만약 중국에도 미국의 시티뱅크처럼 모든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고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은행이 있다면 이런 비상금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급전이 필요한 경우엔 신용대출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비재 구입에 지출하는 돈이 늘어나 경기 부양에도 기여한다. 중국의 국내 대출 증가는 서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오랫동안 수출 경쟁력을 키우려고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왔다. 이는 서방 제품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낳아 대(對)중국 수출 감소를 초래했다. 또 미국은 중국이 환율을 조작한다고 비판해 왔다. 중국이 국내 대출을 늘려 개인소비 지출(GDP 대비 약 33%)이 늘어나면 중국 수출업체들의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중국 정부도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외제 물품의 수입을 늘리고 대미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중국의 일반 소비자는 대출 증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지하 경제가 번창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하 은행은 친구나 친인척의 조직망처럼 비공식적이거나 전당포·농협처럼 공식적인 형태를 띤다. 이런 지하 은행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스탠더드차터드은행 상하이 지점의 스티븐 그린은 “지하 은행은 유연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7년 중국 전역의 지하 은행 대출 규모는 2900억 달러나 됐다. 지하 은행들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최소한 60%의 높은 이자를 받는다(제도권 은행의 대출 금리는 법정 상한선이 26%다). 그러나 사법제도는 고리대금 분쟁을 제대로 처리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듯하다. 중국 당국은 경기 침체 심화를 막기 위해 현금 흐름을 약간 늘리는 조치를 취했다. 신용대출 쿼터제 폐지, 대출 금리 인하, 지급준비율 인하 등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은행들은 지난해 12월 최소한 1100억 달러를 신규 대출했다. 전년 동기 대비 14배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이 신규 대출금의 50%가량은 각종 청구서 정산 등 기업의 단기적 용도로 사용됐다. 일반 가계로 들어간 대출은 거의 없었다. 지하 은행 시스템이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정면 대처해야 한다. 지하 은행 시스템의 합법화가 한 가지 방안이다. 정부도 미온적이나마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지하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고 그린은 전한다. 합법화란 대출 금리 상한선 등 정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지하 은행가들이 좋아할 리 없다. 이들은 금융 당국의 규정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제도권을 멀리한다. 중국 정부는 이런 우려를 감안해 착취에 가까운 고리대금은 규제하되 비공식적인 은행들을 합법화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형 제도권 은행들을 예전의 시티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은행으로, 즉 ‘인민공화국의 인민을 위한 은행’으로 변신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또 다른 방안이다. 이런 개혁을 위한 세부 사항은 은행마다 다르겠지만 대출 증가라는 대원칙은 똑같다. 서방 세계에선 대출을 줄여야 할지 몰라도, 중국에서는 늘려야 한다.With LAUREN HILGERS in Shanghai

2009.02.24 14:59

4분 소요
값싸고 품질 좋은데 ‘끝난 거지’

산업 일반

일본 도쿄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 전경. 불황 때 꽉 닫힌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첫 번째 열쇠는 저렴한 가격이다. 그렇다고 올라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무시한 채 값만 내려서는 곤란하다. 품질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기업만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의 유니클로(UNIQLO)는 불황에 강한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다.최근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발표한 ‘2008년 최고 인기상품’에서도 유니클로가 공동 1위로 선정됐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쟁 브랜드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니클로의 지난달 매출액은 32%나 급증했다. 유니클로가 불황 때 명성을 떨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8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2000년 당시에도 일본은 경기둔화와 디플레이션이 겹친 복합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외투 속에 입는 방한용 ‘후리스’가 2600만 장이나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약 ‘불황의 스타’로 떠올랐다. 불황에 강한 유니클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최단기간에 최저비용으로 생산사람들은 1998년에서 2000년에 걸친 유니클로의 후리스 붐을 상기하며 “불황일수록 유니클로가 잘 팔린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가격을 꼼꼼히 따지는 때에 저렴한 유니클로가 주목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단순히 값싼 브랜드가 아니다.품질이 매년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의류 전문가는 “3900엔짜리 유니클로 청바지와 같은 제품을 다른 업체에서 만든다면 판매가격은 8000엔이 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모든 기업이 회사의 비전을 내세우고 있지만 유니클로 만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기업은 드물다. 유니클로의 힘은 ‘비전에 대한 실천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유니클로 브랜드를 만든 ㈜퍼스트리테일링의 회사 비전을 살펴보자.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가 입을 수 있는 고품질 베이직 캐주얼을 시장 최저 가격으로 제공한다. ▶이를 위해 저비용(Low Cost) 경영을 철저히 해 최단시간, 최저비용으로 생산과 판매를 직결시킨다. ▶자사에 요구되는 고객 니즈를 파악해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실현시킨다. ▶세계적 수준의 인재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한 팀으로서 혁신적으로 일한다. ▶그 결과 매출과 수익의 고성장을 목표로 세계적인 캐주얼 그룹으로 성장한다.유니클로는 이러한 비전을 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브랜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유니클로 1호점이 문을 연 것은 1984년 6월. 상품기획, 생산, 유통, 판매까지를 일괄 진행하는 SPA(제조소매업)모델을 확립하고 고품질 캐주얼을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비약적인 성장을 실현했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재빨리 파악해 상품개발,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 2005년부터 도쿄·뉴욕·파리·밀라노를 거점으로 글로벌 R&D 체제를 확립했다. 각 거점은 점포나 거래처 등으로부터 트렌드, 고객 니즈, 라이프 스타일, 소재 등에 관한 최신 정보를 수집해 본사로 보낸다. 이를 바탕으로 시즌별 컨셉트를 정하고 4개 도시에서 동시에 디자인을 결정해 각국 시장에 맞춘 상품을 편집하고 있다.유니클로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의 9할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한다. 그러나 수준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현지공장에 일본 기술자를 파견해 철저하게 지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전체의 3분의 2 정도로 줄이고 방글라데시 등 다른 생산거점을 찾을 계획이다.2001년에 유럽·미국과의 섬유쿼터제가 폐지되면서 이들 국가 의류회사들이 중국 생산을 확대하는 바람에 한정된 우수 공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에 시작된 후리스 열풍은 유니클로의 지명도를 절대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후리스는 일본인들에겐 낯선 방한의류였다.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제시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후리스 붐이 끝난 2001년부터 2~3년간은 유니클로의 침체기였다. 단순히 값이 싼 제품이 아니라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익 감소 시기를 극복하고 2004년부터 수익이 점차 회복세에 들어섰지만 내세울 만한 히트 제품은 나타나지 않았다.시행착오 끝에 2006년 여름, 바지통이 아주 좁은 ‘스키니진’이 400만 장이나 팔리는 히트를 쳤다. 유니클로가 패션성을 강조하며 경쟁사들보다 앞서 투입한 제품이다. 시키니진의 성공으로 유니클로는 패션성을 과신하게 되었다. 2006년 추동 시즌에는 지금까지의 베이직 제품을 줄이고 유행을 의식한 제품들을 대량 투입했다.유니클로의 이미지 상승, 신규 고객 확보가 목적이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매장에 원하는 베이직 제품이 없어지자 기존 고객의 발길이 멀어졌던 것이다. 이런 실패를 통해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 겸 사장은 유니클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알게 됐다. 그것은 ‘패션성을 가미한 베이직 제품’이었다.2007년은 히트상품 풍작의 해였다. 습기에 강하고 보온효과가 뛰어난 속옷 ‘히트테크’와 가느다란 어깨 끈의 탱크톱에 브래지어를 붙인 ‘브라톱’이 각각 2000만 장, 300만 장이나 팔렸다. 사실 두 제품 모두 2007년 발매한 신제품이 아니라 3~4년 전부터 꾸준히 팔리던 제품이었다.2020년 세계 1위 의류업체 꿈꾼다그렇다면 이러한 평범한 제품을 어떻게 히트상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제품의 특성을 부각시킨 프로모션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히트테크’는 습기에 강하고 보온 효과가 뛰어나며 겹쳐 입을 수 있는 속옷이란 점을 강조했다. 또한 브라톱은 속옷 메이커의 브래지어에도 손색이 없는 몰드컵을 캐주얼 의료와 합쳤다는 점을 부각시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유니클로는 3년 내 ‘매출 1조 엔’, 2020년에는 ‘세계 1위의 의류 기업’을 꿈꾸고 있다.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유니클로로서는 이러한 계획이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퍼스트리테일링은 2010년에 일본 내 유니클로에서 매출 6000억 엔, 해외 유니클로에서 매출 1000억 엔, 그리고 나머지는 M&A를 통한 매출로 1조 엔을 채운다는 계획이다.야나이 회장은 이를 위해 현재 750개에 달하는 일본 내 매장을 늘릴 뿐만 아니라 중국·한국 등 아시아권에서도 출점 속도를 높이겠다고 한다. 한국 매장은 2005년 1호점을 연 이래 현재 13개 점으로 늘어났다.

2008.12.15 14:33

4분 소요
[파워! 중견기업] “해외 복합공단 개발이 새 성장동력”

산업 일반

영원무역의 성장은 영원할까? 이 회사 성기학(60) 회장은 글로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생산업체로 탄탄히 다진 기반 위에서 해외 복합공단 개발 사업이란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동하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유명한 영원무역의 성기학 회장은 9월 7일 오후 서울 만리동 본사 1층 주차장에서 서류를 결재하고 있었다. 성 회장은 방글라데시 · 베트남 · 중국 등에 있는 영원무역의 생산 거점을 둘러보느라 1년에 6개월 넘게 해외에 머물기 때문에 이 회사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성 회장은 이 날도 베트남-방글라데시-홍콩으로 이어지는 출장 길에 오르는 참이었다. 성 회장이 1974년 세운 영원무역은 무역과 의류 제조, 유통 전문업체다. 영원무역은 ‘영원(YOUNGONE)’이란 자기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주력 사업은 OEM 방식의 의류 · 신발 제조와 수출이다. 영원무역은 노스페이스 · 나이키 · 폴로 · 팀버랜드 등의 스포츠 의류를 방글라데시 · 중국 등에서 OEM 방식으로 만들어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한다. 이 회사의 매출 구조는 의류 수출 86.15%, 신발 수출 5.54%, 의류 내수 4.33% 등으로 수출 비중이 95%을 넘는다. 현재 방글라데시 · 베트남 · 중국 등 11개국에 공장과 현지 법인을 두고 있다. 영원무역은 창립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세계 11개국에 흩어져 있는 공장과 현지 법인에서 원단 · 노동력 · 부자재를 효율적으로 공급받아 경쟁력을 유지해온 덕이다. 영원무역의 지난해 매출액은 4,564억원, 당기순이익은 339억원이었다. 2005년 매출액은 4,110억원, 당기순이익 233억원이었다. 영원무역은… 설립 : 1974년 6월 대표 : 성기학 본사 : 서울시 중구 만리동 자본금 : 255억원 주요 제품 : 아웃도어 및 스포츠 의류, 신발 등 임직원 수 : 400명(해외 인력 6만 명) 수출 대금을 미국 달러화로 결제하는 영원무역으로선 원 · 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지는 악조건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셈이다. 실적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4,000~5,000원대에 머물던 영원무역의 주가가 올해 1만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9월 14일 종가는 9,110원이었다. 이 회사는 특히 15년 전 일본 골드윈과 합작해 만든 자회사(지분율 51%) ‘골드윈코리아’에서 판매하는 노스페이스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업이익보다 지분법 평가이익이 더욱 큰 이 회사의 수익 구조에서 골드윈코리아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원무역이 올 상반기에 골드윈코리아에서 얻은 지분법 평가이익은 96억원으로 영원무역의 영업이익(113억원)과 거의 맞먹었다. 주5일제 근무 등으로 레저 인구가 늘어난데다, 등산 · 수영 등을 좋아하는 성 회장이 전략적으로 아웃도어 시장을 키운 덕이 컸다. 서울 상대 무역학과를 나온 성 회장은 군대 제대 직후 가발과 스웨터를 수출하는 서울통상에 들어갔다. 그는 여기서 해외 바이어 수주와 생산 업무를 맡았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과 유럽인의 취향에 맞는 의류가 뭔지 감각을 길렀고, 국내 섬유산업의 강점에도 눈을 떴다. 그래서 서울통상에서 일한 지 1년 6개월 뒤 평소 친분이 있던 두 사람과 더불어 영원무역을 만들었다. 회사 이름을 영원무역이라고 지은 건 ‘젊은 사람들(Young Ones)’이 모여 무역회사를 만들었다는 뜻에서였다. 노스페이스’ 브랜드로 국내 아웃도어 1위 비교적 순항하던 영원무역은 79년 2차 오일 쇼크와 원부자재 가격 상승, 그리고 80년대 초의 정치 · 사회적 불안 탓에 기우뚱했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악화됐다. 성 회장은 탈출구로 해외 진출을 택했다. 그는 80년 5월에 방글라데시에 합작법인을 세웠다. 국내 아웃도어 회사로는 해외에 가장 먼저 진출했다. 특히 이 법인은 방글라데시 정부로서도 외자 유치 1호 사례였다. 성 회장은 그 후에도 국내 노사 분규와 인건비 상승, 섬유 쿼터제 폐지 등의 악재를 해외 생산으로 극복했다. 성 회장의 글로벌 전략은 단순히 임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기는 것만은 아니었다. 세계 유수의 스포츠 의류 회사 등과 거래하면서 쌓은 생산 노하우와 기술을 방글라데시 등 저개발 국가의 노동력과 결합해 고가의 고급 의류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팔아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코디네이터’ 기능이 핵심이었다. “영원무역만큼 글로벌 한 기업도 없다”고 말하는 성 회장은 해외 복합공단 개발 사업을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잡고 있다. 거점은 오랜 거래로 신뢰를 쌓은 방글라데시와 새로운 성장 시장인 베트남이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에 여의도 1.5배 크기인 1,157만㎡(350만 평) 규모로 친환경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96년에 아예 땅을 사들인 성 회장은 99년에 공단 기공식을 가졌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단인 이곳은 민간 기업이 개발 · 운영한는 방글라데시 수출자유지역(EPZ)의 효시이기도 하다. 외국인 투자 규모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정부가 운영하는 공단을 모두 더한 것보다 더 크다. 저개발국 특유의 복잡한 인허가 문제 등으로 더뎠던 사업 진행도 활기를 띠고 있다. 영원무역은 지난 6월에 마침내 사업 운영권을 발급 받았다. 영원무역은 이곳을 노동집약적 산업 단지, 첨단과학 기술 단지, 환경친화적 기업 단지 등 8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한다. 성 회장은 먼저 3~5년 안에 도로 등 기반 시설을 마련하면서 기초 제조업과 정보기술(IT) 산업을 유치할 생각이다. 이미 도로와 골프장 등은 만들었다. 그는 특히 친환경 공단으로 꾸미기 위해 공단 안에 늪지를 만들었다.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창녕의 우포 늪을 본뜬 것이다. 그는 “당장은 돈도 더 들고 공장이 들어설 땅도 줄어들지만 길게 보면 공단의 가치가 올라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 회장은 이 공단에 영원무역의 공장도 새로 지어 생산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특히 그릇겾맛?등에 쓰이는 세라믹스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법으로 개발하는 이곳에 영원무역과 오랜 거래 경험이 있는 거래처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생산 거점 국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온 그는 “치타공 공단에서 10년 안에 10만 명 이상의 고용 효과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원무역은 베트남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 남딩 지역의 땅 46만2,812㎡(15만 평)을 50년간 빌려 스포츠 의류 생산 공장을 지은 데 이어 공장 옆에 첨단 빌딩과 주거 시설이 공존하는 복합 단지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 경영도 챙기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는 성 회장이 바쁜 이유는 또 있다. 성 회장은 한국에 머물 때면 주말마다 부인과 함께 고조부 때부터 내려온 경남 창녕의 고가에 내려가 한옥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성 회장은 9년 전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를 창녕에 모시고 들리면서 한옥 개겫맑?작업에 관심이 커졌다. 고향 마을에 한옥촌 복원 성 회장은 직계 조상과 친척 등이 살던 이곳의 2만3,140㎡(7,000평) 땅에서 기존 한옥을 개 · 보수하거나 흔적만 남은 집터에 새로 한옥을 짓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성 회장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4세 때 가족과 이곳으로 피난 와 6년 동안 살았다. 성 회장은 이곳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현재 24채 공사를 마무리 했다. 앞으로 2년이면 30채 전체의 공정을 매듭 짓는다. 그는 새로 한옥을 짓기보다 멸실될 전국 각지의 한옥을 사들여 재활용한다. 그는 스스로를 ‘헌 집 짓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자재 욕심에 보존이 잘 된 한옥을 사고 싶은 욕심이 굴뚝 같지만 제 집 짓자고 남의 집을 허물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직원이나 가까운 사람 등을 초대해 한옥촌에서 지내는 그는 “외국인도 쓸 수 있는 미니 컨벤션 센터로 키우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2007.10.10 11:03

5분 소요
[경제부촐릐 영광과 좌절] 한덕수의 성적표

산업 일반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6일 아침. 스크린 쿼터 축소를 결정하기 위해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현행보다 절반으로 줄인다는 방침이 결정됐지만 누가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거듭됐다. ‘문화부 장관이 해야 한다’ ‘통상교섭본부장이 낫겠다’며 갑론을박이 한참 이어지던 것을 지켜보던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나섰다. 총대를 메기로 한 그는 곧바로 재경부로 돌아가 기자들 앞에서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7·3 개각으로 참여정부의 세 번째 경제팀 수장에서 물러나게 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업무 스타일은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즐기며, 도출된 결과의 집행을 중시한다. 그러나 취약한 경제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으면서 재임기간 내내 ‘색깔 없는 부총리’로 불렸다. 카리스마와 보스 기질이 넘쳐났던 역대 거물급 경제 부총리들에 비해 파워가 약하고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선입관’이 깔려 있는 이 표현은 학자풍의 면모에다 조용히 일을 추진하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됐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꺼리지 않는 ‘반골’ 성향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상황 판단과 조언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참모형’ 인재라는 게 그에 대한 중평이다. 이 때문인지 각각의 목소리가 크고 복잡한 경제팀 내에서 강력한 지도력이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곧잘 받았다. 한 전직 장관은 “각료들과 자주 폭탄주를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경제팀을 이끌었던 전임 이헌재 부총리와는 달리 그는 말수가 적고 학구적인 면모가 강해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며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장수라기보다는 ‘단기필마(單騎匹馬)형’ 인재에 가깝다”고 평했다. “한덕수는 단기필마형 인재” 하지만 그가 부총리 재임기간 중 이룬 실적에 대해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8년 동안 해묵은 난제였던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비롯, 이렇다 할 경기부양책을 동원하지 않은 채 일관된 정책을 펼치면서 국내총생산(GDP) 등 실물지표를 개선하고 경기회복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은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실제 정책 개발에서도 ‘개방과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외환규제 완화, 시장개방 등 우리 경제의 규제 개혁과 글로벌화에 주력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 부총리의 적극적인 개방 정책은 해외에서 ‘한덕수 프리미엄’이라 불릴 정도로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정책의 안정성을 높이는 업무 방식도 돋보인다는 게 과천 관가의 평이다. 그는 항상 ‘합리적’이란 말을 즐겨 사용한다. 예컨대 ‘경기 부양’이라는 말 대신 ‘합리적인 경기 진작’이란 표현을 쓸 정도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답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소통을 좋아했다. 실제로 한 부총리는 재임기간 중 일주일에 네 번씩 관계 각료들과 공식·비공식 정례 모임을 하고 경제현안에 대해 토론했다. 화요일·목요일 아침에 관계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거시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목요일 저녁 관계장관 정례 만찬 등을 통해 이견을 좁힌 뒤 금요일 아침의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정책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지금까지의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익숙한 ‘통솔식’ 정책 입안 과정과는 분명히 다른 대목이다. 산자부 출신인 그가 머리 좋다는 수재들이 모여있는 재경부에 들어가 1년4개월여 동안 조직을 장악하고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33년 경제 테크노크라트 생활에서 배어난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는 기획원 과장 시절 산자부로 옮겨갔으며, 산자부 차관을 지낸 뒤엔 직업 외교관들이 판치는 외교부 내에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가는 등 항상 외부 인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본 경험이 많았다. 그런 만큼 적응력이 뛰어나고 처세술도 원만했기 때문에 재경부 입성 후에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는 부내 분위기를 무리 없이 잘 추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다르다”주장 “리더십이란 카리스마가 있고 없고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고 지식을 길러야만 나오는 것입니다.” 지난 6일 재경부에서 열린 마지막 정례 브리핑 자리. 한 부총리는 퇴임 소회를 밝히면서도 자신을 향한 세간의 지적을 의식한 듯, “그동안 수직적 리더십보다는 수평적 리더십을 보이려고 노력해 왔다”며 “이를 위해선 지시와 명령보다는 꾸준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한 부총리는 재임기간 내내 ‘경제부총리는 어디에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유약한 리더십에 대한 비판에 시달렸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의 존재감은 바로 리더십 부재(不在)라는 지적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를 (개각 대상에) 넣으나 빼나 색깔은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성향을 ‘시장주의자이자 개방주의자이고 재정에 관해서는 (건전성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시장 개방과 자율성을 추구하면서도 부동산 시장과 같은 시장의 실패에 대해서는 공적 수단과 시장주의적 대책을 함께 추진했다고 자평해 왔다. 그러나 대화와 토론을 통한 수평적 리더십이라는 외형적인 변화를 내세웠지만 결과물로 나온 각종 경제정책들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노무현 정부의 통치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수주(受注)형 정책’을 내놓는데 그쳤다는 것이 비판론의 골자다. 특히 보유세 강화를 골자로 하는 8·31 대책으로 대표되는 부동산·조세정책은 집값 양극화와 조세저항을 불러와 결국 그의 퇴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의욕을 보였던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도 정치 논리에 밀려 사실상 논의를 접었다. 그의 교체는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분위기 쇄신과 국면 전환을 위한 정치적 차원에서의 ‘경질’ 성격이 짙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선거 직후 경제부총리 교체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여당 의원들과 청와대의 젊은 참모들을 중심으로 선거 패배 원인이 부동산 세금정책 등 경제정책의 실정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 부총리가 유연하지만 약하다. 뭔가 2% 부족하다”는 인물평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좋지않은 상황까지 크게 작용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문제와 관련해 감사원과 재경부가 맞서고 재경부 출신 인사들이 수뢰 문제로 구속되는 사건 등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한 부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더욱 증폭됐다. 금리·환율 등의 거시 경제변수 운영에 대한 확고한 정책 비전 없이 ‘관리형’ 정책에만 주력하는 바람에 하반기 이후 뚜렷해지고 있는 경기둔화 조짐·양극화 등에 대한 선제적 정책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나치게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스크린 쿼터제가 오히려 한국 영화 산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며 스크린 쿼터 폐지의 직격탄을 날릴 정도로 시장 개방 문제에 관한 한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거시 경제 정책의 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행보로 일관해 자신의 컬러가 담긴 정책 개발이 아쉬웠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신과 닮은 ‘참모형’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후임 권오규 경제부총리에 대해 “거시와 미시 경제에 정통하며 국제적 안목과 개방적 사고도 하고 있는 유능한 관료”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권 후임 부총리가 과연 전임자의 전철을 비슷하게 밟게 될지, 아니면 전임자의 ‘실패학(失敗學)’을 교훈 삼아 새로운 행보를 보일지에 주목하고 있다.

2006.07.10 20:44

5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2호 (2025.4.14~20)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2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