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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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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앞둔 교사 2명, '대통령 훈장 거부'…

정책이슈

인천에서 초·중학교 교사 2명이 정년 퇴임을 앞두고 대통령 이름으로 주는 정부 훈장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31일 인천시 교육청에 따르면 내년 2월 정년 퇴임하는 인천 모 초등학교 교사 A(61)씨는 "윤석열 대통령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취지로 정부 훈장을 거부했다.30여년간 교직에 몸담은 A씨는 최근 인천시교육청에서 진행한 훈·포장 수요조사에서 이 같은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A씨에 앞서 지난 8월 정년 퇴임한 인천 모 중학교 교사 B(62)씨도 "현 정부에서 주는 포상은 받지 않겠다"며 훈장을 거부했다.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A씨와 B씨가 훈장을 거부한 구체적인 사유는 알 수 없다"며 "인천에서 이들 2명 외에 추가로 훈장을 거부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최근 인천대학교 김철홍(66)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도 정년 퇴임을 앞두고 대통령 이름으로 주는 정부 훈장을 이례적으로 거부했다.김 교수는 일부 언론사에 보낸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무릇 훈장이나 포상을 할 때는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상을 주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수여자가 왜 대한민국 또는 직책상의 대통령이 아니고 대통령 윤석렬이 되어야 하는가"라면서 "나는 만약에 받더라도 대한민국의 명의로 받고 싶지,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고 목소리를 냈다.

2024.10.31 08:00

1분 소요
독립 30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와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리더십의 화신을 만났다. 바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하자 피신하지 않고 수도 키이우에 남아 전쟁을 지휘하고, 국민에게 항전 메시지를 보내며 저항을 독려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의 북쪽에 있으며,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의 국경에서 불과 90㎞정도 떨어졌다. ━ 젤렌스키, 미국 피신 제안 거절 SNS로 항전 모습 알려 젤렌스키가 특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음날인 2월 25일 미국의 피신 제안을 사양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당국자를 인용해 이날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탈출을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군사력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젤렌스키는 바람앞의 등불 같은 운명이 됐다. 미국과 서방 진영은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본격적인 군사적 지원을 거부했다.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대공 미사일 정도의 무기만 지원하는 정도에 그쳤다. 다만 러시아에 잡힐 경우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은 젤렌스키와 가족의 피신을 돕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침공 앞에 미국의 동정으로 국외 탈출해 망명 정부나 꾸릴 처지가 됐다. 하지만 이튿날 대반전이 일어났다. 2월 26일 AP통신은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가 침공하자 피신을 제안한 미국 측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싸움은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내게 필요한 건 피신이 아니라 실탄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선거로 뽑은 지도자로서 조국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게다가 희망을 잃지 않고 실탄을 지원하며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희생을 각오하고 국민을 결속시키는 지도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젤렌스키는 그날 저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의 결속과 용기가 러시아의 점령 시나리오를 깨뜨렸다”며 “세계는 우크라이나인의 강한 모습과 용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SNS 영상 메시지를 올리면서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를 배경으로 찍은 ‘인증 영상’을 올렸다. 계엄령으로 인적이 드문 키이우의 밤거리에서 일행과 함께 서서 자신이 수도에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조국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러시아의 제거 표적 1순위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피신하는 대신 키에프에 남아 전쟁을 이끌고 있음을 국민에게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러시아의 역정보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영 스푸트니크 통신은 전날 하원 대변인을 인용해 “젤렌스키가 이미 폴란드 국경에 가까운 서부 리비우로 도주했으며, 영상은 사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젤렌스키의 영상에 나온 일행들은 휴대전화를 들어 액정에 표시된 촬영 날짜와 시간을 보는 이들에게 확인시켰다. 러시아의 역정보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진실과 용기임을 새삼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쳐들어오자 자신이 키이우에 남아있는 모습을 셀카로 찍은 수많은 동영상을 SNS에 올리고 있다. 굳건한 항전 의지는 물론 실제 항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물리치는 전황도 알리면서 군과 국민을 이끌고 있다. 러시아의 부당함과 무도함, 잔혹함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각국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특히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글로벌 청년층을 사로잡고 있다. 젤렌스키의 공식 SNS 팔로어는 1670만 명 이상이다. 모스크바 서쪽 교외 지역인 노보오가료보의 대통령 별장에서 주변에 온통 아날로그 전화기가 즐비한 사무실에 앉아있는 푸틴과 대조가 되는 장면이다. 푸틴은 보안을 우려해 휴대전화는 물론 디지털 기기를 일절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세대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실시간 홍보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 푸틴 앞에서 당당한 젤렌스키…협상 제안 항전 의지 고취 젤렌스키는 사실 위기가 고조되던 올해 초까지 러시아로부터 협상 상대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의 담판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당당했다. 러시아군이 침공 이틀 만에 수도 키이우에 접근하자 푸틴 대통령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협상하자고 제안하자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만나자고 역제안을 하며 샅바 싸움에 들어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벨라루스의 고멜에서 첫 휴전 회담을 열 수 있었다. 2차 회담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가까운 벨라루스 서남부의 벨라베슈 숲에서 열렸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대통령, 벨라루스의 스타니슬라프 슈스케비치 최고회의 의장이 모여 소련의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A) 창설을 결정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미 30년 전에 다른 나라로 결별했음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는 장소다. 우크라이나가 거센 저항을 계속하자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무기와 자금 등의 추가 지원에 나섰다. 분쟁 지역에 살상 무기를 제공할 수 없다던 독일도 2월 26일 입장을 바꿨다. 지대공미사일과 대전차 로켓 발사기 등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로 했다. 성능 좋은 독일산 대전차 무기인 판자 파우스트 1000대와 미국산 지대공 미사일 스팅어 500기다. 러시아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무기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튿날인 2월 27일 분데스타크(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특별방위기금 1000억 유로(약 125조원)를 한꺼번에 증액하고 올해부터 매년 국방비로 GDP의 2%를 쓰겠다고 밝혔다. CNN은 수도에 남아 군과 국민을 독려하는 젤렌스키에 대해 “TV에서 대통령을 연기하던 배우에서 반항적인 전시 지도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나토에 현행 GDP의 1.5% 수준인 국방비를 2024년부터 GDP의 2%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젤렌스키의 분전으로 이를 2년 앞당겼다. GDP의 3.5%를 국방비로 지출해온 미국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에 2% 국방비를 요구하지만, 매번 미지근한 대답만 받았는데, 러시아의 침공과 우크라이나의 분전이 분위기를 일신한 셈이다. 러시아와 협력 관계인 주요 산유국 아제르바이잔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석유 지원을 약속했다. CNN은 수도에 남아 군과 국민을 독려하는 젤렌스키에 대해 “TV에서 대통령을 연기하던 배우에서 반항적인 전시 지도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는 배우와 제작자 출신으로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은 중등학교 교사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린 연작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끌다 같은 이름의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19년 결선 투표에서 72%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그런 젤렌스키는 SNS와 화상 연설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3월 8일 영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하면서 감동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젤렌스키는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다”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가 했던 연설을 인용하며 항전 의지를 다졌다. 처칠은 1940년 6월 나치 독일이 프랑스에 침공하자 원정군을 보냈던 영국이 영불 해협의 작은 항구에서 어선까지 동원한 필사의 탈출 작전으로 영국군, 프랑스군, 네덜란드군 수십만 명을 철수시킨 됭케르크 작전 뒤에 의회에서 이런 내용의 연설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항전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뿐만 아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서 인용해 우크라이나는 ‘살기(to be)로 결론지었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2013년 EU와 경제협력과 가입을 위한 절차 진행을 백지화하자 국민이 들고일어나 이듬해 수도 키이우의 유로마이단 광장에서 100여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빚으면서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는 서구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의 입김을 피하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반EU,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하다 국민의 저항을 받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 독립부터 유로마이단까지…신생 우크라이나 이끈 대통령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국민은 젤렌스키 앞에 6명의 대통령을 겪었다. 초대인 레오니트 크라프추크(88) 대통령은 1991년 12월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한 직후부터 1994년 7월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산당이 무너지면서 무소속으로 대통령을 맡았던 크라프추크는 옐친 등과 소련의 붕괴에 합의했다. 크라프추크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의 모든 전직 대통령은 전원 아직 생존해 있다. 우크라이나는 젊은 나라이다. 2대인 레오니트 쿠츠마(83)는 1994년 7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1기를, 그리고 그 뒤 1999년 11월부터 2005년 1월까지 2기에 걸쳐 대통령을 지냈다. 역시 무소속이었다. 3대 대통령인 빅토르 유셴코(68)는 2005년 1월부터 2010년 1월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인민 연합 ‘우리 우크라이나’라는 정당 연합 소속이었다. 민족주의를 지향한 그는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거대한 러시아의 입김에서 나라의 독립과 국민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서구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독 공격을 받아 얼굴이 흉하게 변했다. 유셴코의 얼굴은 우크라이나의 고난을 상징하게 됐다. 4대인 빅토르 야누코비치(71)는 1997~2002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주지사를 지낸 친러 인사다. 2002~2005년과 2006~2007년 총리를 지냈다. 2004년 지역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가 당선자로 발표됐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재선거를 한 결과 당선하지 못했다. 대신 유셴코가 당선해 5년 임기를 지냈다. 2010년 출마해 당선했지만 2010년 2월~2014년 2월에만 재임하고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탄핵당하고 러시아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2013년 EU와 경제협력과 가입을 위한 절차 진행을 백지화하자 국민이 들고일어나 이듬해 수도 키이우의 유로마이단 광장에서 100여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빚으면서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는 서구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의 입김을 피하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반EU,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하다 국민의 저항을 받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유로마이단 유혈사태 여파로 야누코비치는 2014년 2월 22일 탄핵당했다. 그해 푸틴은 크림 반도를 병합했으며,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동부 도네츠크 주와 루한스크 주에는 분리주의자 정부가 들어섰다.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반역자’로 낙인 찍혔다. 유로마이단과 야누코비치의 탄핵으로 빈 정치 공백은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57) 대통령 권한 대행이 2014년 2월부터 그해 6월까지 맡았다. 그는 모든 우크라이나 연합 ‘조국’ 소속으로 중립적으로 차기 대통령 선출까지 정부를 맡았다. 그 결과 페트로 포로셴코(56)가 2014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한 차례 대통령 임기를 맡았다. 서남부 오데사 인근 출신인 그는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 ‘연대’를 이끌었다. 포로셴코는 소련 말기에 과자 공장을 비롯한 기업의 관리인을 맡았다가 소련 붕괴 뒤 민영화 과정에서 이를 불하받아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축적한 부자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초콜릿 아저씨’로 불린다. 그는 퇴임 뒤 동부 돈바스 지역을 불법 지원한 혐의 등을 받자 해외에 망명했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귀국해 예비군에 지원했다. 부정 의혹이 있지만,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조국을 위해 얼마든지 목숨을 바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2.03.13 20:00

7분 소요
[장근영 팝콘 심리학] ‘저지른’ 행동이 당신을 지배한다

산업 일반

잘못된 신념은 전파되며 강화… 제3자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 '더 헌트(The Hunt)’는 덴마크 영화감독 토마스 빈터버그의 2012년 작품이다.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의 악당 르쉬프로 잘 알려진 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인공 루카스로 출연한다. 영화는 마을 토박이이자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가 우연한 계기로 아동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쓰면서 겪게 되는 집단적인 폭력, 그리고 그가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다. 이를 통해 한번 찍혀버린 낙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특히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전달한다.이 영화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원래 좋은 영화는 여백이 많고 관객 각자가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뻔하디 뻔한 교훈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기 전에 100까지 세어라”, “한번 내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 등 격언들은 모두 생각은 많이 하더라도,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길 때는 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내 말과 행동은 남들에게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올가미 역할을 한다. 내가 저지른 행동에 나의 생각이 끌려가는 꼴이 벌어지는 것이다.이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옳은 것 같지만 틀린 명제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사건의 시작인 아이의 증언은 사실 둘이었다. 루카스가 자기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증언과, 그런 일이 없었다는 증언. 한 아이가 두 이야기를 했음에도 사람들은 첫 번째 이야기만 믿는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상상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건을 조사할 때는 아이의 증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황증거도 세심하게 검증해야 한다. ━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비슷한 일이 실제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상담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자기가 어릴 적에 부모나 친지에게 성추행이나 학대를 당했다고 기억했던 것이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고소 고발과 수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조사결과 대부분의 경우 환자들의 기억은 사실이 아니었다.집에 지하실이 없는데 지하실이 있다고 기억하는 이 영화 속 아이처럼. 이후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oftus)라는 심리학자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실험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암시에 의해 창조되는지를 보여줬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피험자들에게 “당신 어릴 적에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요청한 거였다. 그러자 실제로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본 적 없던 피험자들이 자기가 쇼핑몰에서 엄마를 놓치고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어린아이들이 오죽하랴.두 번째 실수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 행동부터 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일단 루카스를 범죄자로 판단 내린 마을 사람들은 경찰 조사 결과 루카스가 무죄임이 확인되었음에도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만약 동네 사람들이 루카스를 손쉽게 범죄자로 단정 짓지 않고 최종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법원의 무죄 판결 후에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는 이미 다들 루카스를 배척하는 행동을 저질러 버린 다음에야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하고 무고한 마을 동료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차라리 경찰 조사가 불완전해서 범죄자가 풀려났다고 믿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 쉽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루카스에 대한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아마 이들 중에서도 루카스를 적극적으로 가해했던 사람일수록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려들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질 테고, 그럴수록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필요로 하게 될 테니까. 모든 잘못된 신념은 이런 식으로 강화된다. 즉,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옳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게 전파되고 강화되는 것이다.얼마 전까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두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 일은 미국 사상 최초의 국회의사당 점거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그 잘못된 믿음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던 이들이 많았다. 이제 트럼프가 정식으로 퇴임하고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니 이들의 태도는 바뀌었을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고수한다. 선거결과는 조작되었고 트럼프가 정당한 재선 대통령이지만 어떤 악의 세력에 의해 바이든이 취임했다는 식이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아예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 바둑·장기판, 주식투자도 ‘객관화’ 중요 아마도 그 차이는 당사자의 수치심이 얼마나 덜 발달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이 일에 깊이 개입했느냐에 따라서도 행동은 달라진다. 누구든 어떤 상황맥락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을수록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렵다.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지른 이는 루카스의 ‘절친’이자 사건 당사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 일에 자의든 타의든 가장 많이 개입한 사람이다. 반면에 유일하게 루카스의 결백을 믿어주고 도움을 주던 이는 오히려 루카스와는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였다. 그는 제3자였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다.지금은 극단적인 대립과 극단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시대다. 미미한 근거만으로 누군가의 존재 가치를 결정지을 만한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수록 이 영화 속 마을사람들처럼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때일수록 한발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건의 해석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판에서도, 심지어 주식투자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 , 등을 썼고 , , 등을 번역했다.

2021.02.2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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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브렉시트 예외 없이 완수하겠다”

산업 일반

‘영국판 트럼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 취임하면서 EU 탈퇴 의지 재천명해 보리스 존슨(55) 전 영국 외무장관이 지난 7월 24일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존슨 신임 총리는 이날 관례에 따라 버킹엄궁을 찾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하고 신임 총리 취임 사실을 알린 다음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첫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영국은 10월 31일 유럽연합(EU)을 탈퇴할 것이다. 예외는 없다(no ifs, no buts)”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의지를 천명했다.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원하진 않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3년간의 우유부단함으로 영국이 민주적 권한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비관론자들이 국내외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한 불신자, 비관자, 비관론자는 틀렸다. 영국의 반대쪽에 돈을 건 사람들은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복원할 것이고, 국민에 대한 의회의 거듭된 약속을 이행할 것이다.”지난 7월 23일 영국 집권 보수당의 당 대표 경선 투표 결과 존슨 신임 총리는 9만2153표를 얻어 4만6656표를 획득한 제러미 헌트 현 외무장관을 제치고 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집권당 대표 자격으로 영국 총리직을 자동 승계했다. 보수당은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6월 7일 당대표직에서 공식 사임하자 후임 선출 작업을 벌여왔다.존슨 신임 총리는 경선 결과 발표 직후 승리 연설에서 “브렉시트를 완수하고, 나라를 단결시키는 한편,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를 패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완수하고(deliver), 단결시키고(unite), 패배시킨다(defeat)’는 보수당 구호의 첫 철자를 합치면 ‘dud’(못 쓰는 것)라는 나쁜 뜻이지만 자신은 거기에 ‘energize’(활력을 불어넣는다)의 ‘e’를 추가해 ‘dude’라고 말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모든 회의론자에게 말한다. 듀드(dude, ‘이봐’), 우리는 이 나라에 활력을 불어넣을 거야.”존슨 신임 총리의 경선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평소 그를 자신의 절친이라고 부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는 멋진 총리가 될 것!”이라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메이 전 총리는 인기 없는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회에서 거듭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유권자와 보수당원들의 지지를 잃고 물러났다. 존슨 신임 총리는 영국 정계의 괴짜이자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로 잘 알려졌으며,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적극 지지했다.명문 기숙학교인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존슨은 일간 더 타임스와 텔레그래프 등 유력지를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금발의 더벅머리와 직설적인 화법으로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2001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008년과 2012년 런던 시장을 역임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괴짜지만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지자들은 보수당이 정권을 유지하려면 그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 진영은 그가 개인적인 야망에 사로잡힌 정치인으로 정치적 신념도 강하지 않고 런던 시장으로서의 업적도 보잘것없다고 폄하한다. 현 상황에서 존슨 신임 총리는 국정운영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당초 2022년 예정된 총선을 앞당기는 조기 총선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이 거론된다. 존슨 신임 총리는 런던 시장 시절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정신 나갔다” “끔찍할 정도로 무식하다” “대통령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존슨이 2016년 외무장관이 된 이래 두 사람은 친해졌다(존슨은 브렉시트 문제로 메이 총리와 갈등을 빚으며 지난해 외무장관직을 사임했다). 두 사람은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논란을 촉발한 막말에서 닮은꼴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존슨 신임 총리는 부모가 유학 중이던 시절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 이중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2016년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영국 하원의원이면서 미국 국적을 가졌다는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세금 폭탄’이 이유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존슨 신임 총리는 2014년 런던 북부 자택을 매각하면서 미국 정부가 5만 달러에 이르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자 이에 반발해 자발적으로 미국 국적을 버렸다고 보도했다. ━ 존슨의 막말은 트럼프와 닮은꼴? 존슨 신임 총리는 하원의원과 런던 시장, 언론인의 경력을 거치면서 가는 곳마다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킨 직설화법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닮은꼴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힐러리 클린턴을 두고“She’s got dyed blonde hair and pouty lips, and a steely blue stare, like a sadistic nurse in a mental hospital.”“정신병원의 가학적인 간호사처럼 염색한 금발 머리에 삐죽거리는 입과 차가운 눈빛을 지녔다.” - 텔레그래프, 2007부르카를 착용하는 무슬림 여성을 보고“...it is absolutely ridiculous that people should choose to go around looking like letter boxes.”“우체통처럼 보이는 차림으로 돌아다니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텔레그래프, 2018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흉상을 치웠다는 소문이 돌자“Some said it was a symbol of the part-Kenyan President’s ancestral dislike of the British Empire - of which Churchill had been such a fervent defender.”“그 행동을 두고 일부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부분적으로 케냐인이기 때문에 대영제국에 맺힌 게 많아서 그랬다고 한다. 처칠은 대영제국을 열렬히 옹호했다.” (오바마의 친부는 케냐인으로 케냐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 - 더 선, 2016파푸아뉴기니를 두고“For 10 years we in the Tory party have become used to Papua New Guinea-style orgies of cannibalism and chief-killing, and so it is with a happy amazement that we watch as the madness engulfs the Labour Party.”“지난 10년 동안 우리 보수당은 파푸아뉴기니 스타일의 식인 행위와 추장 살해에 익숙해졌다. 따라서 이제 노동당이 그런 광기에 휩싸이는 것을 보는 게 아주 즐겁다.” - 텔레그래프, 2006‘노딜’ 브렉시트를 기업이 두려워한다는 지적을 받고“Fuck business.”“빌어먹을 비즈니스.” - 2018년 여왕 생일 기념 공식 리셉션에서나이트클럽의 게이들을 두고“tank-topped bumboys”“민소매 티셔츠를 입는 난봉꾼들.” - 텔레그래프, 1998- 섀인 크라우처 뉴스위크 기자 ━ 영국 경제 침체기로 들어서나 - 보리스 존슨이 총리에 취임하면서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 커져 성장에 타격 불가피할 듯 영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브렉시트 위기로 영국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섰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최신 보고서에서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을 40%로 제시하며,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그지트 차드하 NIESR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수년 동안 성장이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성공한다고 해도 공공재정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NIESR 보고서는 지적했다.특히 브렉시트 강경론자 보리스 존슨이 총리에 취임했기 때문에 ‘노딜 브렉시트’가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NIESR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경제는 올해 2분기(4~6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3분기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영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래 처음으로 침체기에 공식 진입하게 된다.영국 경제의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NIESR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영국 예산책임국도 10월 이후의 전망은 아주 암울하며 ‘노딜 브렉시트’를 할 경우 영국 경제가 완전한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실제로 이뤄지면 영국과 EU 간 교역 시 평균 4%의 관세가 적용돼 내년 말까지 영국 경제가 2% 축소될 것이다.”NIESR은 또 영국의 2019년과 2020년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1.4%와 1.6%에서 1.2%와 1.1%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NIESR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브렉시트 시나리오를 고려했을 때도 2020년 영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이 30%에 이른다. “공적자금 지출의 증가가 불가피하며 공공부문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기업 로비단체인 영국산업연맹(CBI)의 캐럴린 페어번 사무총장은 존슨 신임 총리의 취임과 관련해 “새 총리는 브렉시트를 두고 좋은 합의에 따르는 이점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영국 산업별 노동조합의 상급 단체인 영국노동조합연맹(TUC)의 프랜시스 오그래디 사무총장도 성명에서 노동자가 저임금과 정부 지출 축소 등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노딜 브렉시트마저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한편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 7월 22일 메이 총리의 퇴임 이틀 전 영국의 2%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공공 부문 근로자의 급여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해먼드 장관도 메이 총리와 함께 사임했다). 이번 임금 인상으로 공공 부문 근로자 100만 명이 혜택을 본다. 교사의 임금 인상률은 2.75%, 의사와 경찰은 보수에서 각각 1500파운드와 978파운드를 더 받는다. 군인의 급여도 인상할 계획이다.- 칼리안 쿠마르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9.08.0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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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와인 이야기(12)] 미국 와인의 역사(1)

전문가 칼럼

미국에서도 유럽에 버금가는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계속해서 비티스 비니페라종을 미국의 토양에서 재배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이다. 미국산 와인들이 유럽 최고의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최고의 와인들과 미국 나파와인간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결을 벌였던 1976년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미국 와인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의 편의적 역사해석이다. 틀렸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면이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1789년 7월14일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전을 절대왕정시대라 부르고, 그 이후를 국민국가시대로 구분 짓는 시대사 구분법과 같다. 1789년 이전에 이미 시민계급이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왕정체제의 누수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부르봉 왕가의 절대왕정이 끝났지만, 곧바로 국민국가시대가 개막된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 루이 18세 그리고 샤를 10세의 즉위 등 한동안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다가, 5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국민국가체제가 공고히 확립되었다. 1976년 ‘파리의 심판’ 역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일 뿐, 미국 와인의 성장과 발전은 그 전에는 물론, 그 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 유럽의 고급 포도종을 수입해 재배하다 북미 대륙에서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 유럽 이주민들이었다. 고향에서 즐기던 음료를 새로이 정착한 미국 동부지역에서도 만들어 마시고자 하는 자연스런 욕구의 발로였다. 처음에는 북미의 토착 포도 종으로 와인을 만들었으나, 역한 냄새 때문에 즐기기가 어려웠다. 결국 유럽 이주민들은 와인양조용 포도종인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를 유럽에서 수입해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사추세츠 주에서부터 플로리다 주까지 대서양 연안지역을 따라 곳곳에 심은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나무는 이상하게도 시들어 죽어버렸다. 유럽의 비티스 비니페라종은 북미 대륙의 병충해에 취약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도 유럽에 버금가는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계속해서 비티스 비니페라종을 미국의 토양에서 재배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그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다. 제퍼슨은 1801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 1785년부터 1789년까지 4년여 동안 프랑스 대사로 봉직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유럽의 와인에 매료되어 유럽 전역의 와인 산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제퍼슨의 와인 사랑은 대통령 퇴임 후 버지니아 주에 있는 자신의 사저인 몬티첼로로 귀향한 후에도 이어졌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에 버금가는 토양과 환경, 그리고 기후를 가졌다”고 주장했던 제퍼슨은 몬티첼로에 직접 양조용 포도를 재배했으나, 생전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거의 80여 년의 세월 동안, 유럽에 버금가는 품질 좋은 미국산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듯 했다.와인 생산국이 되겠다는 미국의 꿈은 19세기 후반 유럽의 포도밭에 불어 닥친 재앙을 통해 불씨가 되살아났다. 그 재앙의 이름은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해충이었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해충은 포도나무에 기생하면서 그 뿌리를 갉아먹기 때문에, 그 숙주인 포도나무는 말라죽게 된다. 1860년대에 필록세라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그 후 약 20여 년간 유럽 포도밭의 90% 이상이 황폐화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필록세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미국산 포도나무종 뿌리에다가 유럽산 포도나무종의 가지를 접목시키는 것이었다.당시 유럽의 생물학자들은 필록세라가 본래 미국 동부에서 유래한 해충이라는 사실과, 비티스 애스티발리스(vitis aestivalis)와 같은 미국 토착 포도종은 필록세라로부터 면역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필록세라가 미국 토착 포도나무종의 뿌리를 갉아먹게 되면 상처가 난 뿌리 부위에서 진액이 나오게 되는데, 이 진액이 필록세라를 퇴치시킬 뿐만 아니라 막을 형성해서 상처 부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미국 토착 포도종의 뿌리에 유럽의 비티스 비니페라종의 가지를 접목시키면, 필록세라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양조용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콧대 높은 유럽의 와인생산자들은 ‘저급한’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유럽의 거의 모든 포도나무는 지금까지도 미국 토착종의 뿌리에다가 비티스 비니페라종의 가지를 접목시켜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유럽에서 필록세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역으로 미국 동부에서는 비티스 비니페라종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1890년대부터 토착 품종의 뿌리에 비티스 비니페라종의 가지를 접목시켜서 유럽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초 이래로 실패를 거듭하던 꿈이 마침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 유럽의 필록세라를 잠재운 미국 토착종 미국 서부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계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중미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포교 영역을 넓혀가면서, 유럽에서 가져온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나무를 선교지 곳곳에 심으면서 와인을 만들어 나갔다. 캘리포니아 주의 동쪽을 둘러싼 로키산맥이 천연 방호벽의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동부에서 서식하는 필록세라 등의 병충해로부터 안전지대를 형성해 비티스 비니페라종이 번창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1840년대 말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동부의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오는 골드러쉬(Gold Rush)가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에는 이미 비티스 비니페라를 이용한 와인 양조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도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자연적인 기틀이 다져질 무렵, 이를 가로막는 법제도적인 움직임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호에서 계속)이석우 -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중앙일보 편집국 디지털총괄 겸 조인스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 『와인력』을 출간한 와인 마니아다.

2017.03.28 16:03

4분 소요
[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3) IMF 구제금융 협상]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데…(김영삼 대통령)” 안이했던 위기 대응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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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국가 경각인 상황에서 분위기 쇄신 명분으로 경제팀 경질... 후임 임창열, IMF와의 합의 번복하다 뒤늦게 백기 들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공통점은?첫째, 둘 다 명문대를 졸업했다. 김 대통령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부시 대통령은 예일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둘째, 명문대 출신인데도 모두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인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예일대를 우수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퇴임 후, 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선 “C학점을 받고 졸업하는 이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자신의 신체적 건강에 비해 정신적 역량이 떨어짐을 인정하는 동시에 만회하고자 했다. 셋째, 두 대통령 모두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 경제위기를 맞았다. 김 대통령 임기 말에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에 빠졌고, 부시 대통령 임기 말에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에 처했다.두 대통령의 경제위기 대응은 크게 달랐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에 좌초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악화시켰다. 김 대통령은 구조적인 요인으로 자금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대기업조차 부도를 내지 말라고 지시했고, 기아자동차 노사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언론매체와 함께 기아 문제 해결을 오랫동안 방해했다. 외환위기에 대한 김 대통령의 몰이해와 임기응변은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경질로 마침표를 찍었다. 김 대통령의 해임의 변은 “분위기 쇄신”이었다. 외환위기를 분위기를 바꿔서 해결하거나 완화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발상을 드러낸 인사였다. 강 부총리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의 후임으로는 각각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과 김영섭 관세청장이 임명됐다. 후임 임창열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합의를 번복했고, 이로 인해 바닥난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더욱 실추됐다.반면 부시 대통령은 경제 현안을 이해했고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에 봉착하자 경제정책 책임자에게 힘을 실어줬다.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2005~06)으로 활동한 뒤 2006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된 벤 버냉키는 “부시 대통령은 빠르게 이해하고 좋은 질문을 많이 했다”고 평가했다.YS, 진화 중인 소방수를 끌어내리다: 1997년 11월 19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김용태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배석한 가운데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는 오전 8시 15분에 시작됐다. 강 부총리는 먼저 전날 폐회된 국회에서 금융개혁법이 처리되지 않은 것과 1998년도 예산안 심의 결과를 보고했다. 이어 그날 오후 5시에 발표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보고했다. IMF 구제금융 합의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발표를 미룰 이유가 없고, 외환시장과 환율의 안정을 위해서도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했다. IMF 건은 김 경제수석이 며칠 전에 이미 보고한 사안이었다. 강 부총리는 “다만 종합대책 발표 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김 대통령은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개 보고가 끝나면 몇 마디 당부하거나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은 아무 말 없이 1분 가까이 침묵을 지켰다. 이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데”라고 혼잣말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강 부총리는 ‘무언가 기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나를) 경질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모른 척하고 그냥 일어섰다. 이 장면은 에서 인용했고, 다음 이야기도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대통령 집무실 건너편에는 대기실이 있다. 강 부총리는 보고를 마친 뒤 대기실에서 정책과 현안에 대해 김 수석과 의견을 나누고 협의하곤 했다. 그날 두 사람은 대통령의 태도가 여느 때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김용태 실장이 대기실에 들렀고, 강 부총리는 그에게 “무언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김 실장도 동감을 표했다. 강 부총리는 더 이상 우물쭈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김 실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김 실장은 “대통령의 의중을 알아보고 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돌아온 김 실장은 “각하께서는 개각을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부시, 침착하게 경제정책 뒷받침: 2008년 9월 18일 오후 3시 반 미국 백악관 루스벨트룸. 벤 버냉키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부장관, 크리스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백악관 비서진 등이 배석했다. 버냉키 의장과 두 사람은 긴 테이블에서 대통령의 맞은편에 앉아 금융위기의 심각함과 대응 방안을 보고했다. 이들은 경제가 더 큰 손상을 입기 전에 위기를 시급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시장의 불안에 휩쓸린 금융회사들은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더 코너에 몰렸다. MMF로부터의 자금유출은 금융시장의 패닉을 가중시켰을 뿐 아니라 우량 대기업조차 운영자금 조달을 어렵게 했다. 이들은 재무부의 외환안정자금을 통한 MMF 지급보증과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금지 계획을 보고했다.이날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안건은 부실채권매입 프로그램(TARP)이었다. 버냉키 의장은 폴슨 장관이 요청한 대로 TARP의 중요성을 부시 대통령에게 강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금융시스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금회수의 물결을 중단시키기 위해 연준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이미 바닥나고 있습니다. 의회의 승인 하에 자금을 동원해 위기를 종합적으로 공략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방법입니다.”부시 대통령은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는 공화당원이었다. 그런 부시 대통령에게 시장에 개입하고 더구나 정부 자금으로 금융회사를 돕는다는 정책은 달가울 리가 없었다. 버냉키 의장은 회고록 에서 “부시 대통령은 (TARP에 대해) 공화당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80년 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택한 방법에 따라서, 장기적으로 자유시장을 보호하려면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철저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부시 대통령은 다시 한번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버냉키 의장과 폴슨 장관은 부시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앞서 며칠 전 리만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뒤 AIG에 대한 구제금융을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자신은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IMF를 당황하게 한 임창열 부총리: 후임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취임 당일인 11월 19일 오후 6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이 강 전 부총리가 마련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과 다른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크지 않은 수정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중대한 변경이었다. 하나는 일일 환율 변동폭 15%를 10%로 축소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IMF 자금요청을 빼놓은 것이었다. 임 부총리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거나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간 협조융자를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임 부총리는 “이번에 발표한 안정대책으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국제금융계가 협력하면 IMF 자금 지원 없이도 외환위기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11대 교역국인 한국이 잘못되면 미국과 일본도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임 부총리가 자금 지원 요청에 대한 합의를 번복하자 IMF와 미국은 황당해 했다.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와 미국 재무부의 티모시 가이트너 부차관보는 미리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한국이 19일 IMF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에 앞서 협상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임 부총리가 판을 깬 것이었다. 이경식 한은 총재도 애를 태웠다. 이 총재는 19일 김용태 실장과 김영섭 신임 경제수석에게 IMF 건의 긴급성을 대통령에게 보고해 지시를 받을 것을 요청했다. 김 수석은 다음날 오전 강만수 재경원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께서 채근하니 IMF와 합의한 대로 자금 요청을 빨리 발표하라”고 말했다. 이 지시를 전하자 임 부총리는 “한번 더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그날 저녁 임 부총리는 이경식 총재와 함께 롯데호텔에서 피셔 부총재, 가이트너 부차관보를 만났다. IMF와 미국은 합의한 대로 가자고 했다. 임 부총리는 또 결정을 미뤘다.21일 오후 강 차관은 일본 대장성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IMF가 자금을 지원하기 전 일본이 중앙은행 간 스왑으로 연결차관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카키바라 차관은 “정당한 과정을 통해 IMF의 틀에 따라 지원한다”며 “미국과의 합의가 중요하다”며 거절했다. 임 부총리는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단독으로 한국을 돕지 않고 IMF 및 미국과 공조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몇 차례 계기와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임 부총리는 이날 밤 10시 15분에 이르러서야 IMF 구제금융 요청을 발표했다.12월 3일 한국 정부와 IMF는 구제금융에 합의했다. 임 부총리는 협상 기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1월 28일 일본에서 미쓰즈카 대장상을 만나 연결차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니 임 부총리가 나선 IMF와의 협상이 순조로울 리 없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1998년 3월 3일자 기사에서 임창열 부총리를 “IMF에 맞선 강한 국수주의자”로 평가했고 “한국 관료들은 ‘한국이 더 잘 안다’는 학파의 사고로 아시아의 경제태풍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비꼬았다. 추가 자금지원 등을 둘러싼 협상에서도 갈등이 불거졌다. 워싱턴포스트는 12월 28일자 기사에서 “미국 정부와 국제 금융계는 한국 정부가 IMF 자금 지원을 요청한 후 금융개혁 등 IMF 요구사항은 미룬 채 자금 지원 일정을 앞당겨줄 것만을 요구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임 부총리는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하위’에서 ‘바닥’으로 실추시켰다. 그는 구제금융에 합의한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임창열 부총리는 위기 상황의 리더십 및 권한 위임, 대응과 관련해 반면교사의 사례를 남겼다. ━ 외환위기 주범은 YS? - 국가의 실패는 여러 부문 리더의 실패 김영삼(YS) 대통령은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외환위기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러나 YS를 주로 비판하는 것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YS가 무능해 한국이 초유의 국난을 겪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않는 일이다.한국의 IMF 외환위기는 이 시리즈의 첫 회와 둘째 회에서 복기한 것처럼 우리 사회 여러 부문의 잘못이 어우러져서 빚어졌다. 기아자동차 처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야합해 서로 이익을 챙겨준 CEO와 노조 지도부였다. 여기에 일부 언론사 리더들이 나서서 진실을 호도하고 여론을 오도하면서 정부의 대응을 방해했다.금융개혁법안에 대해 언론은 우호적이었지만 야당이 애초 긍정적인 태도에서 표변해 등을 돌리는 바람에 처리가 무산됐다. 야당의 비 협조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몸을 사린 데에서 비롯됐다. DJ는 왜 금융개혁법 처리를 외면했나. 한국은행 구성원들이 집회를 갖고 시위에 나서면서 반대하자 표를 의식했으리라고 본다. 이 사안에서는 한국은행 노조 지도부가 책임이 있다.강경식 부총리는 에서 “중앙은행 직원들이 머리띠를 둘러매고 거리로 몰려나와 데모를 하고 단식농성을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이외에 또 있는지 궁금했다”며 개탄했다.한보를 시작으로 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이후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각 부문이 저마다 이익을 좇아가면서 구심력을 잃고 원심 분리됐다. 그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국가의 리더십은 대통령뿐 아니라 다수 부문의 리더들이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이다.시계를 더 앞으로 돌리면 김영삼 정부 시절 한국 경제의 리더십은 대기업이 쥐고 있었다. 대기업 총수들은 ‘세계 일류’가 됐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모한 투자를 벌였다. 당시 화두는 ‘세계화’였고, 김영삼 정부도 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기업은 재무건전성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부채를 한껏 끌어다 외형 확장을 꾀했다.세계화의 깃발을 내건 김영삼 정부는 규제를 풀었고 외채가 국경을 넘어 밀물처럼 몰려왔다. 세계화의 허상을 추구한 끝에 이른 파국은 누구의 잘못인가. 대기업 총수들과 세계화의 비전을 설파하고 전파한 학계와 언론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정치의 계절을 맞아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개헌이 논의된다. 그러나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우리 사회 다른 부문의 리더들과 함께 리더십을 공동 행사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헌법의 국가지배구조를 바람직하게 개선할 수 없다.

2017.03.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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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만난 사람 (1)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산업 일반

새해 정유년이다. 부자이건 가난한 이건 저마다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여기 98세의 노년을 ‘젊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써온 사람, 무한경쟁으로 회자되는 세상에서 힘 빼고 살아도 행복한 철학자, 김형석 옹을 만났다. 100세 시대라지만 그래도 98세면 많은 나이다. 그 나이를 살아간 이는 손에 꼽는다. 고구려 장수왕이 98세까지 살았다. 대만의 장제스 총통도, 맥도날드 ‘빅맥’을 창시한 미국인 짐 델리게티도 그 나이까지 살았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인 98세 철학자 김형석이 최근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백세가 가까운데도 아직 청춘이다. 그러고 보니 ‘젊은 노년’들에게 98세는 다시 시작하는 나이다.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낸 일본의 사바타 도요 할머니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24일 불광동 성당에서 개최된 독서아카데미 강의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강연 내용을 귀에 쏙쏙 담는 한편, 학창시절 밤을 새워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었던 데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인생을 살아갈 지혜를 청했다.기억력이 좋으시다고 들었다.몇 년 전까지도 대학 강의 때 배운 것을 기억해 곧잘 사람들에게 써먹곤 했다.(웃음) 내가 대학갈 때는 대학을 가는 학생이 아주 적었다. 그래서 그 때 대학에 갔던 이들은 가슴 속에 문제의식을 하나씩 갖고 살았다. 배운 것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강의 내용이나 스승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세상이다. 책임감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적은 것 같다. 문제의식이 있는 학생과 문제의식이 없는 학생은 졸업한 뒤에 인생도 달라진다. 사람이 나이 20이 되면 내가 50이 됐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평생을 교육자로 사셨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교육은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물(지식)이 금방 흘러내려가는 것 같지만 물이 내려가는 동안에 콩나물은 자란다(교육된다). 물이 내려가지 않고 물 안에서만 키우면 콩나물이 썩어버린다. 지식도 물이 흘러 내려가는 것처럼 자꾸 새로 배워야 한다. 콩나물에 물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말라버린다. 지식을 배우는 것도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한 가지만 공부하면 썩어버린다. 공산주의가 그렇다. 역사가 사회가 다 결정되어 있다고 믿으니 공산주의는 고인물이다. 불행해지고 폐쇄적이고 부러지게 된다. 우리는 콩나무를 키우는 물처럼, 지식이 흘러가는 것처럼 성장해야 한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스무 살에 몰랐던 것을 서른이 넘으면 알게 될 때가 있다. 마흔을 넘기면 인생이 또 달리 보인다. 만약 백년을 산다면 인생은 또 우리에게 어떤 무늬로 그려질까? 백년을 준비하는 그는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 백년 중 그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언제 나이 때가 제일 좋았나.지금은 작고하고 없지만 철학자 안병욱 선생(전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김태길 선생(서울대 철학과 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이 제 친구였다. 언젠가 한 번 세 명이 모여서 인생에서 ‘계란 노른자’라고 할 만한 나이가 언제였는가를 놓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았다.그랬더니 60~75세까지가 가장 생산적이고 보람 있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김태길 선생은 76세 때 『한국인의 가치관』이라는 책을 내놓았고, 안병욱 선생은 89세까지 일을 했다. 이런 말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60이 되면 ‘내가 나를 믿게 된다’. 60 이전에는 어렵다. 나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 공자도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60이 제일 좋은 나이다.(웃음) 살아보니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니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계속 일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75세부터는 이제 그것을 얼마나 인생 끝까지 유지해가느냐가 숙제로 남는다. 그렇게 잘 관리하면 85세까지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85세 이후로는 장담하기 어렵다(웃음).김형석은 말 그대로 역사의 산증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도산 안창호(1878~1938)의 강연을 직접 귀로 들었고, 시인 윤동주 (1917~1945)와 중학교를 함께다녔다.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이 학교 선배였고, 한국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1922~2009)이 일본 조치(上智)대학교 후배였다. 교과서에서, 영화에서나 봤던 인물들이 그가 만나고 겪고 함께 했던 인물들이었다. 존경할 만한 원로와 영웅이 귀한 이 시대. 그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위인들은 어떤 모습의 사람들이었을까. ━ 안창호·김성수·유일한은 존경할만한 인물 역사적 인물들, 신화적인 분들과 함께 지내셨는데.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우리 근현대사 100년 내에 우리 국민이 존경할 만한 민족의 지도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정치인이나 문화인 중에는 없었다. 그러다 한 분을 떠올렸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 국민이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도 지도자로 모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려대학을 설립했지만 총장을 맡지 않았다. 자신은 나서지 않고 항상 뒤에서 도움을 주었다. 기업인으로는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1895~1971)을 꼽았다. 그분은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 자금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세금은 누구보다 많이 냈지만 정치자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처럼 정경유착하지 않았다. 그 자녀들도 받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그런데 제가 살면서 이 네 분과 추억이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 세 분이 모두 좋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이었다.김형석은 일제 강점기에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철학계의 내로라하는 제자들을 길러냈고,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로 우리를 일깨우는 집필에 힘썼던 시대의 지성이었다. 그는 1960~70년대에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영원과 사랑의 대화』등 베스트셀러를 냈다. 당시 피천득의 수필집 다음으로 잘 팔렸다는 한 해 60만 부 판매 기록은 이후에도 출판계 판매기록으로 회자됐을 정도다. 그의 수필집 『인생, 소나무 숲이 있는 고향』,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철학자로서 깊이 있는 사색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 경제적으론 중산층, 정신적으론 상위층으로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삶일까.나 자신도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뒤늦게 발견한 인생의 교훈이 있다. 인생에서 50에서 80까지는 단절되지 않은 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 공자도 말했지만 50은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이 맡긴 사명을 깨닫는’ 나이다. 그래서 나이 50부터는 내가 80이 되었을 때 적어도 어떠어떠한 삶의 조각품을 완성해야 겠다는 계획과 신념, 꾸준한 용기를 갖고 제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재출발해야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야 하고, 확실한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나이 50쯤 됐을 때 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를 고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 50에 자기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은 그 후의 자신의 삶이 갈짓자를 그리지 않는다. 그냥 직선으로 간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혼란을 겪는다.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은가.자기 인격의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인격의 성장이 70이라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고 해서 90의 재산을 갖게 되면 그 분에 넘치는 20의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고 지지 않아야 될 짐을 지고 사는 것만큼 고통과 불행을 겪는다. 내가 항상 가족들이나 제자들에게 하는 충고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고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더 많이 누리도록 되어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다른 모든 것은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그러나 행복은 어떤 것인가? 라고 물으면 같은 대답은 없다. 행복은 모든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만의 행복론이 있을 듯 했다.행복이란 무엇일까.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삶은 행복하며, 성공적이다. 그래서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법이다. 내가 어려서 건강 때문에 고생했다.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자녀들 여섯을 키웠다. 지금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탈북한 남동생 둘에 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열명이나 됐다. 선생 월급만으로 먹고사느라 참 고생 많이 했다.(웃음)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더라. 내가 책에 쓴 내용도 그것이다.교육자라서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그렇다. 내가 뿌린 씨앗을 내 제자들을 통해서 나는 거두고 있으니 행복하다. 몇 년 전에 어떤 제자를 만났더니 “선생님께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라’ 하고 말씀하셔서 늘 그것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고 말해줘서 참 기뻤다. 우리들이 사는 가정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다. 사랑의 나무에는 많은 열매가 맺어야 한다. 그 열매가 자녀들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베푸는 사랑과 봉사다. 나는 이런 인간애를 모르는 인생은 고귀한 삶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행복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다. ━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요즘 우리는 미증유의 혼란스러운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시대의 등불같은 저작을 내놓았던 그에게 시대의 고민에 대한 답을 청했다.불신과 절망의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소통이 단절된 데서 시작됐다. 그런데 소통 부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대화가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과 내 생각이 같으면 대화보다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고는 내 생각을 말해야 한다. 그 내용이 다를 때는 어느 주장이 더 많은 사람과 미래에 도움이 되겠는가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시정할 것은 고친 다음에 나와 네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런 노력을 계속하다보면 모두를 위한 객관적 이익을 도모하게 된다. 개인 간의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그 이상의 건설적 방법은 없다.이처럼 어려운 일을 당한 우리 민족이 새롭게 출발할 방법은.나는 해방되고 2년간 공산치하에서 살다가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왔다. 대한민국이 나를 품 안에 안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먼저 나라 걱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민족과 국가 속에서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정권 잡을 생각, 자기 당파 생각을 먼저 할 것이 아니라 나라 걱정을 먼저 해야 한다. 사람이 민족과 국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 꼭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에 갈 때쯤 되니까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사람이 자기와 자기 가정만 생각하고 살면 자기 가정만 이끌 수 있는 만큼 밖에는 크지 못한다. 같은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고 내 직장을 걱정하면 직장과 지역 사회에서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항상 국가와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고 살면 민족과 국가의 지도자만큼 커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살아보니 그게 진리더라.그 생각을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셨나.내가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34살에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됐다. 그런데 주위를 보니까 절반 이상의 교수들이 연세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만 생각하더라.(웃음) 그런 교수들은 정년퇴임하면 불러주는 데가 없다. 그런데 나보다 더 연세대를 걱정하는 사람은 나중에 교무처장도 되고 학장도 되고 총장도 된다. 항상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는 사람은 정년퇴직 후에도 사회에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일한다. 그런 사람들은 처장이, 학장이 안 돼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다. 내 친구인 안병욱 선생, 김태길 선생이 그렇다. 언젠가 셋이 모여 얘기하는데, “대학교 있을 때보다 정년퇴직 후에 수입이 더 늘었지.” 그러더라. 다들 웃었다. 우리 셋은 90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지금의 우리 지도자들이,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김형석의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난 두 친구, 안병욱 교수(2013년 작고), 김태길 교수(2009년 작고)였다.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렸던 이들은 반세기 동안 사랑이 있는 경쟁을 벌인 ‘축복받은 관계’였다. 김형석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김성수 선생 다음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이 두 친구였다고 한다.어떻게 하면 선진국민이 될까.전세계를 앞서서 이끌어가는 나라는 국민의 70% 이상이 백년 이상 책을 읽는 나라다. 나이 50 이상 되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어른들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자연히 따라 온다. ━ 책 읽는 국민들이라야 선진국민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50이 넘어서는 주 3회 정도 수영장을 찾고, 하루에 50분 정도 걷는 운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일’이 내 건강을 유지해주었던 것 같다. 칸트나 슈바이처의 경우를 살펴봐도 그렇지만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건강도 유지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이들이 많은데, 일이 목적이고 건강은 수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누가 더 건강한가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가를 물으면 된다. 나에게 있어서는 일이 건강의 비결이다.어떻게 살이야 행복한 노년일까.노년기에는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라는 것은 ‘늙으면 이렇게 사는 것이 좋겠다’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푸대접을 받았어도 상대방을 대접할 수 있는 인품, 모두의 인격을 고귀하게 대해줄 수 있는 교양, 그 이상의 자기수양이 없다.내년이면 백세에서 1을 뺀 99세 백수(白壽)이시다.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생명과 삶도 그렇다. 죽기를 거부하는 밀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이 인생의 순리다. 내가 오래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고통을 안겨준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인생과 사회가 되겠는가. 그래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까지 사는 것이 최상의 인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장수보다는 좀 더 오래 많은 일로 봉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내 소원이다.90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어렵고도 드문 사례다. 정신은 멀쩡해도 몸이 잘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혼자 거동하기 어렵다. 대개 배우자 한쪽이 없는 경우가 많다. 김형석 옹도 아내를 잃었다. 그런데도 보청기도 없이, 휠체어도 없이 잘도 걸었다. 아니 정신세계는 여느 젊은이보다 더 젊었다. 나이 들수록 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그렇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그의 사유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기자의 그룻이 너무 작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권일 기자 na.kwonil@joongang.co.krprofile :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1920년 평안남도 대동(大東) 출생 1944년 일본 조치(上智) 대학 철학과 졸업 1944~1950 송산(松山)여중·중앙중 교사 1954년 고려대·연세대·한국신학대 강사1964년 연세대철학과 교수

2016.12.26 16:40

10분 소요
[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2)] 해외에도 재취업 기회 얼마든지 있다

산업 일반

일본에서도 베이비부머이자 숙련 기술자인 단카이(團塊) 세대 퇴직자가 쏟아져 나오자 해외 진출이 본격화했다. 1990년대 국내 전기전자·철강·조선·화학·정유 업체로 일본인 기술자가 줄줄이 영입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에 출생한 710만 명) 세대도 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중국·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동유럽·남미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들 지역은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을 해외에서 수혈받아야 한다.더구나 국내 기업들은 갈수록 글로벌 경영이 불가피해진다. 이에 맞춰 국내 인력의 해외 진출도 수반될 수밖에 없다. SK그룹의 경우 이미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중국·동남아에 더 많은 해외 지사를 세울 예정이어서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비롯해 해외 현지 공장에서 장비를 설치할 때 첨단 기술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핵심 기술자는 한국인 숙련기술자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낯선 환경에선 위기 대응이나 유연한 대처능력이 필요해 경험과 끈기가 있는 중장년층이 더 적합할 수 있다.중장년의 마인드에도 글로벌 진출은 낯설지 않다. 재작년 말 57세의 나이로 정년퇴직을 한 A(59)씨는 국내보다 해외 재취업을 더 선호하고 있다. 퇴직 전 담수 플랜트와 관련된 일을 하며 중동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당시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해외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 주재원 생활을 오래 했다는 B(51)씨는 다른 구직자들에게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는 “이제 성장이 한계에 달한 한국에선 생활비가 많이 들고 금리도 낮아 이자 생활도 어렵다”며 “지금 한창 고도성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현지어 익히면 정착에 유리 관건은 얼마나 미리 준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준비된 만큼 기회가 많고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다. 국내 취업과 마찬가지로 해외 취업도 퇴직 후 공백이 길어질수록 일자리를 잡을 기회는 줄어든다. 한국무역협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퇴직자가 늘고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준비 없이 실행에 옮기는 사례가 많다”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제대로 인정받자면 퇴직 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해외 이주인 만큼 현지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동아건설에서 퇴직해 르완다에서 건설 자문 일을 하고 있는 최모(61)씨는 “의사소통만 되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하고 빠르게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출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하다. 예컨대 한국에선 일상화된 24시간 자동차 애프터서비스 긴급 출동이 라오스 같은 나라에선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직원에게 야간 근무를 시켰더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부인들의 전화가 쇄도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반퇴 세대를 위한 해외 이주 지원 프로그램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여전히 경쟁률이 높다. 그만큼 발품을 많이 팔고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고용노동부가 중장년 재취업 지원을 위해 전국 28곳에 마련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부터 챙겨볼 필요가 있다.이 중 해외 취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한국무역협회가 맡아서 운영하는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부터 7만3000여 개 회원사의 채용 정보를 발굴해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 퇴직자와 연결해 주고 있다. 해마다 40~50명이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해 6월 개최한 ‘중장년 채용 기업 박람회’에선 수출기업 20곳이 해외 마케팅이나 영업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찾았다. 35명이 현장에서 면접을 거쳐 채용됐다.정부기관이나 대기업 퇴직자는 해외 파견 ‘자문관’을 겨냥해 볼 만하다. 2010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세계 곳곳의 개발도상국에 정책 자문이나 지식을 전수하는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다. KOICA와 NIPA가 50여 개국에 파견한 자문관은 2014년 228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두 기관의 자문단은 전문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퇴직 전문가라는 게 공통점이다. 기관마다 파견하는 분야는 다르다. KOICA자문단은 농림수산·교육·보건 같은 기초 인프라가 부족한 최빈국에서 주로 활동한다. 이와 달리 NIPA자문단은 정보기술(IT) 관련 사업이 활발한 지역에서 수요가 많다. KOICA 월드프렌즈 관계자는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퇴직자가 쌓은 경험이나 지식이 개도국 발전에 도움이 되고, 퇴직자 역시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다만 자문단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류심사·기술면접·신체검사를 거쳐야 한다. 개도국의 중소기업 육성 자문처럼 인기가 많은 곳은 경쟁률이 5대 1 이상이다. 자문관은 통상 1년이지만 두 차례 연장해 3년까지 일할 수 있다. 항공료·주거비·활동비를 포함해 연평균 5만 달러가 지원된다. 해외 취업 정보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 서비스(www.work.go.kr)에서 한꺼번에 찾을 수 있다. ━ 사기 당하거나 근무 여건 다르기도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 강사 수요도 늘고 있다. 한국어 보급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은 세계 54개국에 140개 세종학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해마다 40명 안팎의 교사를 파견한다. 70대 고령자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해 해외 학당에 취업한 C(76)씨는 “한국 취업을 원하는 학생이 늘면서 고교와 대학에서 한국어 특화 과정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퇴직 후 해외에서 찾는 인생 후반기 일자리엔 위험이 따른다. 낯선 환경에서 홀로 일어서야 한다. 사기를 당하거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근무 여건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자면 전문성과 사전 준비가 필수다. 익숙한 일이어야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생계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감안해야 한다. 최봉식(61) 세계한인무역협회 하노이 지회장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건너온 사람들 가운데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어렵게 생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저개발 국가라고 얕보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2016.08.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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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의 샐러리맨 코칭스쿨] 원하는 게 있으면 묻고 또 물어라

의료

참선할 때 생각을 집중하는 주제를 ‘화두’라고 한다. ‘이뭣고?’가 대표적인 화두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오직 ‘이뭣고’라는 화두에 집중한다. 집중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날 홀연히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이 방식을 코칭에 적용했다. 상대방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요?” 최고의 리더가 어떤 의미인지, 최고의 리더가 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에 대해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 제안했다. “2주일 후에 만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한시도 잊지 말고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떻게 하면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출근할 때도, 회의할 때도, 점심 먹을 때도, 저녁에도, 다른 모임에 갔을 때도 한시도 잊지 않고 이 주제에 몰입하는 겁니다.” ━ 원하는 주제에 시종일관 몰입 상대방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2주일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 분은 질문에 몰입했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회의할 때도 ‘최고의 리더는 이럴 때 어떻게 할까?’하고 자신에게 물었고, 복도에서 직원들을 마주칠 때도 자신에게 물었다. 짜증나는 피드백을 해야 할 때도 자신에게 물었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도 질문에 몰입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이미 최고의 리더처럼 행동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짜증이 없어졌으며, 화를 내는 것도 없어졌다. 오직 질문만 했을 뿐인데, 자신이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걸 보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또 물었다. “당신은 최고의 아버지입니까?” 그분은 즉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의 아버지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되면 어떤 점이 좋은지 등 우리는 한참 동안 ‘최고의 아버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요청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최고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몰입하자. 효과는 놀라웠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지 않는 아버지, 믿고 기다려주는 아버지, 존중하는 아버지 등 자신이 되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신이 변해가고 있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마치 자동항법장치에 의해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자신도 질문이라는 자동항법장치에 의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 느꼈다고 했다.모 교육청의 요청으로 ‘교사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교사들은 가르치는 데 전문가들이다. 이들에게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질문을 몇 개 만들었다. ①여태까지 만났던 교사들 중에서 닮고 싶은 분은 누구입니까? 그분의 어떤 점을 닮고 싶습니까? ②여태까지 만났던 교사들 중에서 최악의 사람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그분의 어떤 점이 나빴나요? ③정년퇴임 할 때 학생, 후배 교사, 학부모들에게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④교사로서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요? 꼭 실천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 외에도 많은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해 선생님들이 서로 토론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선생님은 이래야 됩니다, 저래야 됩니다’ 하는 등의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오직 질문만 했다. 강의를 마칠 때 선생님들이 말했다. “오늘 좋은 것 많이 배웠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가르친 게 없었다. 다만 질문만 했을 뿐이다. ━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 코치는 질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게 해 준다. 코칭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떤 내용으로 코칭 받고 싶은가요?” 상대방의 대답을 깊이 있게 듣고, 그 속에서 또 질문을 찾아낸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잘 해결되면 무엇이 좋은가요? 그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질문하고 듣는 과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코칭이다. 코치가 뭔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다. 질문과 경청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 코칭을 마칠 때 사람들은 잘 배웠다고 말한다. 이처럼 ‘가르치지 않으면서 깨닫게 하는 것’이 코칭이다.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질문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질문에도 기술이 있다. 많이 훈련해야 한다. 그러나 코칭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질문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지?’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명령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질문으로 바꾸면 된다.A그룹의 L상무가 말했다. “제가 질문의 기술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어떤 질문을 할까’를 깊이 고민하는 게 바로 질문의 기술입니다. 고민의 깊이가 질문의 깊이입니다.” 놀랍다. 촌철이다. 그렇다. ‘이럴 때 어떤 질문을 하지?’하고 고민하는 게 바로 질문의 핵심이다. 그렇게 되면 내면의 모든 것이 질문에 집중한다. 질문에 반응한다. 질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자동항법장치가 되어준다.역량은 뛰어난데 열정이 부족한 직원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자발적으로 스스로 잘하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그게 바로 질문의 기술이다. 질문을 잘하고 싶은가? 시도 때도 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질문하면 좋을까?’ ‘저 친구에게는 어떤 질문을 하면 동기부여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질문의 핵심이다.석가모니가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그가 자주 생각하는 것을 향해 움직인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된다.” 이게 바로 자신이 몰입하는 질문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이유다.김종명 -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리더십과 코칭, 소통 등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보성어패럴 CEO, 한국리더십센터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등 다수가 있다.

2016.07.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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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50대 부자

산업 일반

포브스가 선정하는 2016년 한국 50대 부자 순위가 발표됐다. 정보기술(IT)기업의 약진이 돋보였지만 부자 대부분의 재산은 줄어들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한국에서 새로운 자수성가형 기술기업들은 매해 부자 순위에 등장하고 있다. 올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유니콘(투자자들의 평가가치가 10억 달러를 웃도는 스타트업) 두 개 업체의 창업자가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34위의 이상혁 옐로모바일 대표와, 36위의 김범석 쿠팡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이상혁 대표가 창업한 옐로모바일(YelloMobile)의 평가액은 김범석 대표의 쿠팡에 10억 달러 못 미치는 40억 달러다. 이 대표는 옐로모바일 지분 26%를 소유한 덕분에 김 대표보다 더 많은 자산을 기록하며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16위)의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Kakao)를 합병하기 전, 이 대표는 다음에서 임원을 지냈다. 합병 후 1년 반만인 2013년 다음에 사표를 던지고 옐로모바일을 창업했다.옐로모바일은 초기 투자 및 모바일 기반의 스타트업 기업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터 업체이다. 이 대표는 몇 차례 라운드를 거듭하며 2억4000만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미국의 벤처자금기업 포메이션 8(Formation 8) 및 가장 최근에는 일본의 금융서비스 기업 SBI 홀딩스(SBI Holdings)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현재 옐로모바일의 포트폴리오에는 80개 이상의 기업이 포진해있다.올해 처음으로 순위에 등장한 부자는 7명이다. 여기에는 새로 억만장자 타이틀을 획득한 부자가 4명 포함됐다. 이 중 두 명이 단일 기업에서 배출되었는데, 바로 7위를 차지한 임성기 회장 및 31위를 기록한 신동국 회장으로 모두 제약업계의 스타기업 한미사이언스를 기반으로 대폭적인 자산증가를 기록했다. 43위를 차지한 대림 그룹의 이해욱 부회장 및 47위를 기록한 사모펀드 사업가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순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하지만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산감소를 기록했다. 순위에 복귀한 부자 중 29명 가량이 순자산의 대대적인 감소를 기록했다. 자산이 증가한 부자는 11명에 불과했다. 글로벌 경제의 둔화로 수출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 벤치마크인 코스피 지수는 6% 가까이 하락했다. 원화가치는 미 달러화대비 5.6% 절하됐다. 2015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6%에 그쳤다. 올해 순위에서 8명의 부자가 탈락했는데,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례가 건설기업 IS동서의 권혁운 회장, 한화의 김승연 회장 등이다.순위는 개인, 주식거래소, 애널리스트, 민간 데이터베이스, 정부기관 및 여타 정보원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순자산액은 4월 15일 마감일 기준 주가 및 환율을 기반으로 산정했다. 비상장기업의 평가액은 각종 금융지표 및 유사 상장기업의 여타 비교 수치를 기준으로 산정했다. ━ 1. 이건희 126억 달러 ▼업종: 전자·보험, 나이: 74세, 기혼, 자녀 3명2년여 전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줄곧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이때부터 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전체 경영을 맡아왔다. 이건희 회장의 순자산액은 아내 홍라희 여사가 소유한 12억 달러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포함했다. ━ 2. 서경배 84억 달러 ▼업종: 화장품, 나이: 53세, 기혼, 자녀 2명전 세계적으로 사그라질 줄 모르는 한류열풍에 힘입어,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을 3배 가까이 신장한 100억7000만 달러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장담한다. 올해는 중동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브랜드는 중국에서 지난 12월 200번째 매장을 개장했다. ━ 3. 이재용 62억 달러 ▼업종: 전자·보험·관광, 나이: 48세, 이혼, 자녀 2명부자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삼성 그룹을 이끌고 있다. 스마트폰 매출이 중국 저가 모델의 공략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고성장 동력원 모색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의료·금융·무인자동차 기술에 주력하고 있는 중이다. 산하의 여타 삼성 계열사들의 사업이 삼성 전자보다 훨씬 큰 폭으로 위축되면서, 순자산액이 아버지 이 회장의 자산감소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6억 달러 하락했다. ━ 4. 권혁빈 49억 달러 ▲업종: 온라인 게임, 나이: 42세, 기혼, 자녀 2명온라인 게임 산업이 호조를 보인 덕분에 지난해 순위에 진입한 이래 자산액이 35% 이상 증가했다. 2002년 창업한 스마일게이트홀딩스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지난 10월, 스마일게이트는 로스앤젤레스에 본거지를 둔 영화사 오리지널 필름(Original Film)과 손잡고 자사의 블록버스터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CrossFire)를 영화로 만든다는 계획을 밝혔다. ━ 5. 정몽구 48억 달러 ▼업종: 자동차, 나이: 78세, 기혼, 자녀 4명순자산이 2년 만에 3분의 1 감소했다. 자동차 수입이 증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대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년대비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 것은 2003년 이래 처음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중국 시장 판매량은 전년대비 하락세를 기록했으며, 이 역시 2007년 이래로 처음이었다. 중국 본토 소비자들이 점점 현대자동차 제품 라인업의 주종을 차지하고 있는 세단보다 SUV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 6. 김정주 41억 달러 ▲업종: 온라인 게임, 나이: 48세, 기혼, 자녀 2명한국 최대의 온라인 게임 업체 넥슨을 창업했으며, 현재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최근 뉴욕에 머물며 기술과 거의 관련이 없는 식품 기업과 같은 스타트업 기업을 모색하고 투자하고 있다. 주식보유 상태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가 드러나면서 자산액이 14억 달러 늘었다. ━ 7. 임성기 39억 달러 ★업종: 제약, 나이: 76세, 자녀 3명보유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지난해 한해 226%에 이르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했다. 지인이자 투자자로 31위에 안착한 신동국 회장과 함께 올해 처음으로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 8. 최태원 34억 달러 ▼업종: 컴퓨터 서비스·이동통신, 나이: 56세, 별거, 자녀 4명횡령혐의로 투옥돼 모든 SK 계열사 이사회에서 퇴진한 후 3년만인 지난 2월 SK 그룹 회장으로 복귀했다. 바이오기술, 액화천연가스 및 IT 서비스와 같은 고성장 산업군으로 SK의 사업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12월 “혼외 관계로 한 명의 자녀를 낳았다”라고 고백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아내 노소영과 이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 9. 정의선 28억 달러 ▼업종: 물류, 나이: 46세, 기혼, 자녀 2명현대자동차에 묶여 있는 자산 때문에, 아버지 정몽구 회장(5위)과 마찬가지로 일 년 만에 10억 달러의 자산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현대 계열사로 현대자동차의 주요 고객사이기도 한 물류기업 현대글로비스에 보유한 주식이 전체 자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 10. 김재철 25억 달러 ★업종: 식품, 나이: 81세, 기혼, 자녀 4명순위에 오른 부자 중 최연장자로, 1969년 동원그룹을 창업했다. 참치캔 제품으로 오랫동안 유명세를 떨쳐온 동원은 오늘날 한국 최대의 원양어업 기업이 되었다. 가난한 집안의 11명 형제자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대양이 원대한 기회를 품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서울대학교 대신 부산의 수산대학에 진학했다. 23세의 나이에 남태평양행 어선에 몸을 싣고, 2년 후 남태평양과 인도양을 누비는 어선의 선장이 되었으며, 한국이 어업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위험을 피해 잔잔한 바다만 항해한다면, 절대 어선 가득 고기를 잡을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순자산액에는 차남 김남정 부회장의 주식도 포함돼 있으며, 작년 순위에 이름을 올렸던 김남정 부회장은 그룹승계전략의 일환으로 아버지 김재철 회장을 능가하는 18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장남 김남구 부회장은 올해 순위에서 탈락했으며,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이다. ━ 11. 이재현 24억 달러 ▼업종: 식품·엔터테인먼트, 나이: 56세, 기혼, 자녀 2명2014년 탈세 및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제기한 항소심에서 지난 12월 패소했으나, 형량은 4년에서 2년 반으로 줄었다. 2013년 구속된 이후, CJ 그룹에서 맡았던 직책에서 하나둘씩 퇴임하고 있다. 건강상태가 계속 악화하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감옥에 투옥되어 형량을 채운 기간은 없다. ━ 12. 이중근 23억5000만 달러 ▼업종: 건설·부동산, 나이: 75세, 기혼, 자녀 4명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부영그룹을 창업했다. 부영그룹은 지난 몇 달간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삼성생명 사옥을 포함한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8억 7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 13. 서정진 23억 달러 ▲업종: 바이오기술, 나이: 59세, 기혼, 자녀 2명셀트리온의 지속적인 해외사업 확장과 제네릭 약품의 판매 증가에 힘입어 자산액이 5억 달러가량 껑충 상승했다 ━ 14. 박현주 22억 달러 ◀▶업종: 자산운용, 나이: 58세, 기혼, 자녀 3명지난 1월 미래에셋이 20억 달러에 대우 증권의 지분 43%를 인수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자산 기준 한국 최대의 증권중개업체를 탄생시켰다. ━ 15. 신창재 21억 달러 ▼업종: 생명보험, 나이: 63세, 기혼, 자녀 2명지난 한 해 교보 생명을 비롯한 국내 보험업계가 부진했던 가운데, 자산이 2억5000만 달러 감소했다. 의사 출신인 신 회장은 아버지가 일군 기업을 물려받았다. 지난 11월 한국정부가 주도하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펀드에 170만 달러를 출연할 것이라 공언했다. ━ 16. 김범수 20억 달러 ▼업종: 온라인 서비스, 나이: 50세, 기혼, 자녀 2명카카오는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급작스러운 성장통에 직면하고 있다. 2014년 다음 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이후 1월에는 음악콘텐트업체 로엔 엔터테인먼트의 지분 76.4%를 인수했다. 이에따라 정부는 카카오를 대기업으로 분류하고, 대략 35개에 이르는 반독점 및 경쟁 규제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17. 구본무 19억 달러 ▲업종: 전자·가정용품, 나이: 71세, 기혼, 자녀 3명오랜 세월 LG 그룹의 회장을 역임해 왔으며, 지속적으로 매출 및 수익을 증대시키고 있다. 스스로의 성과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며, 지난해 LG에 보유한 지분을 늘렸다. 순위에 이름을 올린 구씨 형제 4명 중 한 명이다. 아버지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다. ━ 18. 이부진 18억5000만 달러 ▼업종: 컴퓨터 서비스·관광, 나이: 46세, 이혼, 자녀 1명한국 최고의 여성부호이자, 이건희 회장(1위)의 장녀다. 자산의 3분의 2가 리조트 사업 및 다양한 비즈니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 물산에 연동돼 있다. 롯데 다음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운영하는 삼성계열사인 호텔신라의 운영을 맡고 있다. 호텔신라는 3월 현대산업개발과 합작투자를 통해 서울 중심지구에 신규 면세점을 개장했다. 최근 한국의 전통가옥인 한옥을 본뜬 고급 호텔을 짓기 위한 서울시의 허가를 따냈다. ━ 19. 이서현 18억 달러 ▼업종: 컴퓨터 서비스·관광, 나이: 43세, 기혼, 자녀 4명지난 12월 삼성물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패션 사업부의 지휘권을 맡았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고, 2020년까지 삼성 패션사업부의 매출을 5배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 20. 신동빈 17억 달러 ◀▶업종: 소매, 나이: 61세, 기혼, 자녀 3명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24위)을 축출하고 롯데그룹 전체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 21. 허영인 16억 달러 ▲업종: 제빵·패스트푸드 체인점, 나이: 67세, 기혼, 자녀 2명카페와 베이커리를 겸한 파리크라상 푸드 체인이 지속적으로 매장을 내면서, 이른바 “프랜차이즈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난 10월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만2000개 매장을 열어 10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 22. 장평순 15억5000만 달러 ▲업종: 교육, 나이: 65세, 기혼 자녀 2명가정학습용 교재를 공급하는 업체 교원을 창업했다. 전자책에서 가정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모든 분야로 진출하면서,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 23. 홍석조 15억 달러 ▲업종: 소매, 나이: 63세, 기혼, 자녀 2명한국 최대의 편의점 체인인 CU를 운영한다. 홍석조 회장이 BGF리테일을 인수한 2007년 3700개를 기록했던 점포수는 현재 9000여개로 늘었다. ━ 24. 신동주 14억5000만 달러 ▼업종: 소매, 나이: 62세, 기혼, 자녀 1명20위에 오른 동생 신동빈 회장의 전술에 밀려 롯데 그룹의 승계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 25. 이화경 14억 달러 ▼업종: 스낵식품, 나이: 60세, 기혼, 자녀 2명오리온의 중국 매출이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초코파이 제조사로 널리 알려진 오리온의 중국 매출은 한국의 두 배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 한 해주가는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남편인 담철곤 회장이 오리온을 이끌고 있으며, 위의 순자산액 수치는 담철곤 회장이 보유한 6억6000만 달러어치의 지분을 포함한 것이다. ━ 26. 김준기 13억5000만 달러업종: 보험·철강, 나이: 72세, 기혼, 자녀 2명철강, 화학, 금융, 전자 및 부동산 개발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동부그룹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부친이 국회 부의장을 지낸 바 있으며, 1969년 40일 동안의 해외 여행 중 일본과 미국의 문물을 접하고 깊이 영감을 받은 김준기 회장은 학업을 지속하기보다 건설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한다. 1970년대 들어서 중동의 건설 붐을 타고 사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김준기 회장의 순자산액은 외아들 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부장의 지분을 포함한 것이다. 김남호 부장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아버지보다 더 많은 7억5500만 달러어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27. 이명희 12억5000만 달러 ▼업종: 소매, 나이: 73세, 기혼, 자녀 2명신세계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자산의 3분의 2는 이마트를 통해 창출된 것이다. 신세계는 2011년 이마트의 주식을 공개했으며, 이마트는 현재 한국 최대 규모의 할인유통점이다. 지난 한 해 온라인 소매업체 쿠팡과의 가격 전쟁에서 큰 타격을 입으며 이마트의 운영이익과 주가가 하락했다. 37위에 오른 아들 정용진 부회장이 이마트를 경영하고 있다. ━ 28. 조정호 12억 달러 ▼업종: 금융, 나이: 58세, 기혼, 자녀 3명메리츠금융그룹의 조정호 회장은 기록적인 수익을 기록하고 운영자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자산이 7.7% 감소했다. ━ 29. 김택진 11억5000만 달러 ▲업종: 온라인 게임, 나이: 49세, 기혼, 자녀 4명지난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에 보유한 15.1%의 지분 전체를 매각했을 당시, 자신 소유의 지분을 2% 증가한 12%로 늘렸다. 1997년 김택진 대표이사가 창업한 엔씨소프트는 조만간 중국에서 자사의 히트작 블레이드&소울의 모바일 버전 게임을 출시할 예정이다. ━ 30. 이호진 11억2000만 달러 ▼업종: 화학·금융·미디어, 나이: 54세, 기혼, 자녀 2명태광산업의 창업주 이임용 회장의 막내아들인 이호진 전 회장은 섬유에 주력하던 태광산업을 케이블 TV, 금융 및 전자 산업 기업으로 전환했다. 현재 간암 투병 중이다. ━ 31. 신동국 11억 달러 ★업종: 제약, 나이: 66세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한양정밀의 창업자. 7위에 오른 지인 임성기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미사이언스에 투자한 덕분에 억만장자로 올해 순위에 데뷔했다. ━ 32. 조양래 10억8000만 달러 ▲업종: 타이어 제조, 나이: 79세, 기혼 자녀 4명1년의 공백기를 딛고 억만장자 순위에 복귀했다. 한국타이어 월드와이드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관계사인 한국타이어는 세계 7위의 타이어제조업체이다. 한국타이어는 2013년부터 벤츠에 타이어를 공급해왔으며, 올해는 BMW의 뉴 7시리즈 세단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등 하이엔드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페라리와 같은 초고성능 자동차에 공급할 계획이다. 2014년 출시한 저가 브랜드 라우펜의 매출 및 마케팅 활동을 증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올해 미국 테네시에 미국 내 최초의 제조공장을 개소한다. ━ 33. 최기원 10억7000만 달러 ▼업종: 컴퓨터 서비스·이동통신, 나이: 52세, 이혼8위에 오른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여동생으로, SK홀딩스에 보유한 7.4% 지분이 자산을 구성하고 있다. 2009년 이래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진행 및 사회적 기업의 설립 및 경영을 관장하고 있는 SK행복나눔재단을 맡고 있다. ━ 34. 이상혁 10억5000만 달러업종: 기술 투자, 나이: 44세, 미혼자신이 창업해 초고속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기술기업 인큐베이터업체인 옐로모바일에 보유한 26%의 지분을 바탕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 35. 구본능 9억7500만 달러 ▼업종: 전자부품, 나이: 67세, 기혼, 자녀 2명17위를 차지한 LG구본무 회장의 남동생이다. 희성그룹을 관장하고 있으나, LG에 보유하고 있는 지분가치가 더욱 크다. ━ 36. 김범석 9억5000만 달러 ★업종: 온라인 소매, 나이: 38세, 기혼, 자녀 1명순위에 오른 최연소 부자.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자상거래 웹사이트 쿠팡을 창업했다. ━ 37. 정용진 9억4500만 달러 ▼업종: 소매, 나이: 48세, 기혼, 자녀 2명자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마트 사업이 온라인 소매업체 쿠팡과 경쟁중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 온라인 쇼핑몰 및 기타 전술을 활용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순위 27위에 오른 어머니 이명희 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세계 그룹의 부회장 및 대표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 38. 정몽준 9억4000만 달러 ▼업종: 조선·산업용 기계, 나이: 65세, 기혼, 자녀 4명국제축구연맹 FIFA의 부회장을 지낸 바 있다. 국회의원 7선 출신으로, 2014년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대중공업의 개인최대주주이다. ━ 39. 이해진 9억3500만 달러 ▼업종: 온라인 서비스, 나이: 49세, 기혼, 자녀 2명한국의 웹포털 및 검색엔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를 소유하고 있다. 네이버의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인 라인은 일본 최대의 메시징 플랫폼으로, 전세계적으로 2억1500만 명의 사용자 수를 자랑한다. ━ 40. 구본준 9억3000만 달러 ▲업종: 전자·가정용품, 나이: 65세, 기혼, 자녀 2명LG전자 부회장으로 구씨 형제 중 둘째이다 (17위, 35위, 45위 참조). LG상사와 필립스의 합작법인을 창업해 이끌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오늘날 세계적인 선도 LCD 제조업체다. ━ 41. 이준호 9억 달러 ▼업종: 온라인 게임, 나이: 52세, 기혼, 자녀 2명네이버 창업멤버로, 네이버의 온라인 게임 사업부였다 2013년 기업분할로 독립한 NHN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다. ━ 42. 조창걸 8억7500만 달러 ▼업종: 가구, 나이: 76세, 기혼, 자녀 4명1970년 창업한 한샘이 한국 최대의 가구제조업체로 떠올랐다.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을 글로벌 리더로 양성하기 위한 한샘 DBEW 디자인센터에 지분의 거의 절반을 기부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 43. 이해욱 8억5000만 달러 ★업종: 건설, 나이: 48세, 기혼창업가의 3세대 일원으로 지난 7월 대림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지주사인 대림 코퍼레이션과 대림그룹의 IT 계열사인 대림 I&S의 합병 이후 순위에서 탈락한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합병으로 실질적으로 이준용 명예회장의 지분이 아들 이해욱 부회장에게로 양도되었다. ━ 44. 정지선 8억2500만 달러 ▼업종: 소매, 나이: 44세, 기혼, 자녀 1명현대백화점 및 현대 그린푸드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3월 현대백화점 브랜드를 더 현대(The Hyundai)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 45. 구본식 8억2000만 달러 ▼업종: 전자 부품, 나이: 58세, 기혼, 자녀 3명지난 한 해 희성그룹이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억만장자 대열에서 낙오했다. 35위에 오른 남동생 구본능 회장과 함께 희성그룹을 경영하고 있으나, LG에 보유한 지분가액이 더 크다. ━ 46. 정몽진 7억5000만 달러 ▼업종: 건축자재·화학, 나이: 56세, 기혼, 자녀 2명페인트, 유리, 건축자재, 바닥재 및 실리콘을 생산하는 KCC를 소유하고 있다. 2000년 사장직에 올라 현재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현대가의 창업주인 정주영의 조카이기도 한 KCC의 정상영 명예 회장의 장남이다. ━ 47. 김병주 7억3500만 달러 ★업종: 투자, 나이: 53세, 기혼, 자녀 2명칼라일 그룹 임원 출신으로, 2005년 칼라일 시절 동료 5명과 사모펀드기업 MBK 파트너스를 창업했으며, 현재 1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 9월 61억 달러에 이르는 테스코의 한국사업부인 홈플러스의 매수 건을 이끌었으며, 이는 한국 최대규모의 사모펀드 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배우자는 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딸 박경아씨다. ━ 48. 이상일 7억3000만 달러 ▼업종: 자동차 부품, 나이: 78세, 기혼, 자녀 4명비상장기업인 일진의 회장을 맡고 있다. 1978년 부품단조업으로 창업한 일진은 컨테이너 및 자동차 섀시 부품으로 사업을 확장해 오늘날 전세계 완성차업체들에게 휠베어링을 공급하고 있다. ━ 49. 신선호 6억9000만 달러 ▼업종: 쇼핑몰, 나이: 69세, 기혼, 자녀 1명자수성가형 기업가로 서울 중심가에 자리한 거대 규모의 쇼핑몰 및 호텔 복합단지 센트럴 시티를 건설했다. ━ 50. 조현준 6억8000만 달러 ▲업종: 섬유·화학·건설, 나이: 48세, 기혼, 자녀 2명효성그룹의 사장으로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장남이다. 삼촌인 한국타이어 월드와이드의 조양래 회장이 32위에 올라 있다. 지난 1월 탈세와 회계 부정 혐의로 조현준사장과 조석래회장 모두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 제약업계에서 두 명의 억만장자가 탄생하다 하나의 기업에서 포브스 부자 순위 신규 진입자를 두 명 배출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 한미약품은 신규진입자 2명을 곧장 억만장자 대열에까지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7위에 오른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31위를 기록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그 주인공으로, 이 둘이 보유한 거대제약기업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무려 226%나 상승했다.한미가 일라이 릴리, 베링거 잉겔하임, 사노피 및 얀센과 같은 해외 제약기업과 총 70억 달러를 상회하는 특허사용계약 거래를 연달아 성사시키면서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몰렸다. 이들 거대 제약기업은 한미가 개발중인 관절염 및 당뇨병 신약이 지닌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덕분에 한미사이언스, 그리고 이에 덩달아 한국 역시 1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제약업계의 글로벌 강자로 발돋움하게 되었다.임 회장과 가족은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57%를 보유하고 있다. 임 회장은 1966년 중앙대학교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1973년 한미사이언스를 창업했다. 신 회장은 투자의 일환으로 한미의 지분 12.5%를 사들여 보유하고 있다. 이 둘 모두 한국의 북단에 위치한 도시인 김포 출신으로, 고등학교 동문이다. 다만 신 회장이 10살 연하로, 이 둘은 졸업 후 고향 동문회를 통해 만나기 전까지는 수년 동안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신 회장은 한미와 마찬가지로 서울 외곽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한양정밀을 창업해 회장을 맡고 있다.현재 한미사이언스는 한국 최대의 제약업체이다. 모건스탠리는 한미사이언스를 2015년 아시아 최고의 주식으로 평가한 바 있으며, 자회사인 한미약품이 그 뒤를 따라 2위를 차지했다. 포브스 아시아는 이보다 더 전에 이미 한미약품의 가능성을 점쳤다. 포브스 아시아가 2006년 한해 매출 10억 달러 미만의 기업을 대상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200대 상장기업 순위를 작성할 시 한미약품 역시 포함되었다. 작년 한미약품은 9억4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제약업계의 또 다른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기업인으로 13위에 오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있다. 서정진 회장은 자신이 창업한 바이오 기술 기업 셀트리온의 주가가 작년 거의 25%에 육박하는 상승세를 기록하며 자산액이 5억 달러 증가했다. 지난달 미국에서 셀트리온이 화이자의 호스피라 사업부와 함께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약품 인플렉트라(Inflectra)가 승인을 받았다. 인플렉트라는 주로 관절염 및 크론병 치료에 쓰이는 약품으로 기존에 처방되던 약제 레미케이드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 ━ 무모한 행동이 남긴 흔적들 대림 그룹 창업주 가족의 3세대 일원인 이해욱(43위) 부회장은 전직 수행기사가 48세의 재벌가 자제의 기사로 일하면서 견뎌야 했던 온갖 사건을 상세하게 폭로하면서 공분을 샀다. 운전기사의 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기사에게 백미러를 보지 않은 채 운전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백미러를 안으로 향하게 접은 채로 “운전기술”에 의지해 운전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러로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한번은 차선을 바꾸려다가, 트럭과 충돌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단 1초만 더 갔더라도, 저는 가족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운전기사가 지역 언론사에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올해 순위에 오른 구씨 가문 4형제의 조카와 결혼한 이 부회장은 언론보도에 따르면 또 다른 운전기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고속으로 운전하면서 가득 찬 물컵에서 물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가속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을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이 부회장을 거쳐간 운전기사는 무려 40명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고통을 받아 죄송하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지난달 또 다른 재벌후계자의 행동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현대 BNG스틸의 정일선 대표이사(5위에 오른 정몽구 회장의 조카)의 운전기사에게는 아침에 대표이사를 깨우는 방법부터 시작해 명령할 경우 어떻게 교통법규를 위반해야 하는지까지 이들이 지켜야 할 수칙을 담은 100페이지가 넘는 매뉴얼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사건이 보도된 직후, 45세의 재벌 후계자인 정 대표이사는 기업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내고, 자신의 행동을 “치기어린 열정”에 따른 것이라 말했다.아마도 가장 큰 분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SK 임원을 둘러싼 사건을 들 수 있다. 2010년, 올해 순위 8위에 오른 최태원 회장의 사촌인 최철원은 여러 명의 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전직 직원을 야구방망이로 구타했다. 사건의 피해자인 52세의 전 SK 직원은 근무하던 계열사에서 해고당한 이후 SK 본사 앞에서 데모를 하고 있었다. 구타 이후 최철원은 이 직원에게 보상으로 수표를 던졌다. 최철원은 18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받았다.- 포브스 코리아 편집팀·GRACE CHUNG, YUELUN SUN 포브스 기자

2016.05.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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