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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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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수주 확대 나선 대우건설…글로벌 시장 본격 공략

부동산 일반

대우건설이 해외수주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우건설은 체코 원자력발전소, 베트남 신도시 등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잇달아 추진하며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우건설이 ‘팀코리아’ 시공 주간사로 참여한 체코 상용원전 건설사업 수주가 9부 능선을 넘은 모습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식재산권 분쟁 절차를 중단키로 하면서 오는 4월 최종 계약을 마무리할 전망이다. 이 사업이 순항하면 대우건설은 올해 안에 수조원 규모 시공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대우건설은 지난해 7월 체코전력공사(CEZ)가 발주한 체코 원전 입찰에 ‘팀코리아’로 참여해 프랑스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체코 정부는 한수원 컨소시엄(한수원·한전기술·한전원자력연료·한전KPS·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인 ‘팀 코리아’를 24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 사업(두코바니 5·6호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에 해외 원전 수출의 명맥을 다시 이어가게 됐다.체코 원전 시공 주간사로 참여체코 신규 원전 건설은 두코바니와 테믈린 지역에 1000MW 이하 원전 최대 4기를 짓는 사업이다. 팀 코리아는 두코바니에 추가로 건설되는 원전 2기(5,6호기)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됐다. 추후에 체코 정부가 테믈린에 추가 원전 2기 건설 추진을 결정할 경우 팀코리아가 발주사와 단독 협상할 수 있는 우선협상권까지 확보하게 됐다. 2029년 공사를 시작해 2036년부터 상업 운전하는 게 목표다.대우건설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해 75명의 직원을 투입했다. 투입된 직원들이 21회에 걸쳐 체코 현지 출장을 다녀왔고, 2019년 6월부터 체코 프라하사무소에 1명, 2021년 1월부터 경주 합동사무소에 10명의 직원을 파견해 팀 코리아의 일원으로 긴밀하게 협력했다. 대우건설의 원자력 경력 보유 직원은 15년 이상이 450명, 10년 이상이 710명에 이른다.대우건설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3,4호기 및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1,2호기 주설비공사와 같은 대형 상용원전 시공을 필두로 국내 건설사 최초로 요르단에 연구용원자로를 일괄 수출한 경험이 있다. 또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및 원전해체 분야도 수행하는 등 ▲설계 ▲시공 ▲유지보수 ▲해체에 이르는 원자력 전 분야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번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향후 발주 예상되는 폴란드와 네덜란드, 핀란드, 슬로베니아 등 다른 해외 원전 시장에도 국내 업계의 진출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대우건설은 폴란드원전에도 한수원과 팀 코리아로 참여 중이다.대우건설은 체코 원전 외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앞두고 있다. 우선 투르크메니스탄 ‘미네랄 비료공장’ 프로젝트가 올해 본계약 체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미네랄비료공장 프로젝트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 동쪽으로 약 450㎞ 떨어져 있는 투르크 제 2의 도시 투르크메나밧에 위치한 ‘투르크메나밧 미네랄비료 플랜트’로 연산 35만 톤의 인산비료, 황산암모늄 연산 10만톤의 생산설비 및 부대시설을 건설하는 공사다. 대우건설은 이번 지난해 10월 낙찰자 선정을 통해 신규 시장인 투르크메니스탄에 본격 진출하며 중앙아시아 지역에 첫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국가로, 대우건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시장을 적극 개척하여 향후 석유화학 및 비료관련 사업의 추가 기회를 모색할 뿐만 아니라 인프라, 신도시개발 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신규사업 발굴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이라크 해군기지 건설 프로젝트도 주요 인프라 사업 중 하나다. 이라크 해군 기지 건설 프로젝트는 이라크 알포(Al Faw) 신항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조8000억원 규모다. 현재 이라크 항만공사(GCPI)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연내 수주가 목표다. 대우건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이라크를 중동 지역의 거점 시장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북미 시장 공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2023년 말 미국 뉴욕에 투자법인 ‘대우이앤씨USA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며 미국 및 캐나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 진출했다. 베트남 시장 공들이는 대우건설대우건설은 베트남 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 신도시 사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해 8월 베트남 타이빈성에서 ‘끼엔장 신도시 개발사업’ 투자자로 승인받아 신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끼엔장 신도시 개발사업은 베트남 타이빈성의 성도 타이빈시 일대에 약 96만3000㎡ 규모의 주거·상업·아파트·사회주택 등이 들어서는 신도시로 오는 2025년부터 2035년까지 10년에 걸쳐 약 3억 9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신도시로 조성될 예정이다. 타이빈성은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해안도시다. 2018년 경제특구로 지정되며 신흥 산업도시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으며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뤄가고 있다. 특히 대우건설은 스타레이크시티 신도시의 경험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번 신도시 개발계획을 직접 주도해 주거·상업·교육·녹지·문화 등이 통합된 균형적인 신도시로 만들어갈 예정으로 전체 개발 컨셉과 아이덴티티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의 해외사업 성과가 가시화된 배경엔 정원주 회장의 적극적인 해외 세일즈 전략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원주 회장은 최근에도 일주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문은 대우건설이 2단계 개발을 추진 중인 베트남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 신도시 사업과 올해부터 투자를 시작하는 타이빈성 끼엔장 신도시 사업 협력을 모색하는 한편 베트남 정부가 향후 추진하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목적이 크다. 정 회장은 이를 위해 체류 기간 중 하노이시 인민위원장 등 현지 주요 인사들을 만나 베트남 사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대우건설은 국내 건설경기 위축 속에 나이지리아, 이라크, 리비아 등 해외로 시장 확장을 추진 중이며 특히 베트남을 주된 전략 시장으로 선택해 공을 들이고 있다. 정 회장이 최근 3년간 모두 6차례 베트남을 방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25.03.30 06:01

4분 소요
대우건설, 투르크메니스탄 통해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 ‘속도’

부동산 일반

대우건설은 지난 5월 28일부터 5월 30일까지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과 실무진이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해 현지 상황을 검토하고 국가정상급 지도자를 예방하며 중앙아시아 건설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1일 밝혔다. 대우건설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 정원주 회장은 투르크메니스탄 수도인 아쉬하바트에 위치한 대통령궁에서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Serdar Berdimuhamedow) 대통령을 예방하고 연이어 아르카닥 궁의 최고지도자 집무실에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w) 국가최고지도자 겸 인민의사회의장을 예방했다. 이 날 방문에서 정원주 회장은 지난해 11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던 비료공장 건설사업에 대한 진행사항을 논의하고 현지에서 진행 중인 신도시 개발사업의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대우건설 정원주 회장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따뜻한 환대와 관심에 감사인사를 표하며 긴밀한 협력 관계를 희망한다”며 “대우건설은 모로코, 나이지리아, 알제리에서 비료플랜트사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스마트시티, 인프라, 발전 등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어 풍부한 천연가스 자원을 바탕으로 잠재력이 큰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발전을 통해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대우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투르크메니스탄 측은 비료공장 프로젝트의 실행에 대해 대우건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하며 고속도로, 수처리, 담수화, 가스 프로젝트에서 대우건설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스마트시티 건설과 관리, 신재생 에너지 자원 분야에 대한 추가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며,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경제파트너로 한국을 고려하고 있으며 다양한 협력분야에 대한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이 지난해 투르크멘화학공사와 체결한 MOU는 ▲발칸(Balkan) 요소-암모니아 비료플랜트(연산 115만톤 요소비료와 연산 66만톤 합성 암모니아 생산설비)와 ▲투르크메나밧(Turkmenabat) 인산비료플랜트(연산 30만톤 인산비료 생산 설비‧부대시설)로 이번 방문에서는 구체적인 사업 추진 일정과 사업재정 확보방안 등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대우건설은 발칸 요소-암모니아 비료공장의 경우 중앙아시아지역 최초의 블루 암모니아 생산 설비로 건설할 것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친환경 비료의 유럽지역 수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당 사업은 빠르면 올해 말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하반기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날 면담 과정에서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과 실무진은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아르카닥(Arkadag) 신도시 방문을 승인받아 아르카닥 시장의 안내로 직접 신도시를 순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신도시 2단계 사업에서 대우건설의 참여를 희망한다는 의견도 전달받았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아르카닥 신도시는 수도 아쉬하바트 남서쪽 30㎞ 지역에 1002만㎡ 규모의 부지로 약 6만4000명이 거주할 예정인 스마트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9년 착공해 이달 1단계 준공 예정이다. 아르카닥 신도시는 향후 아할주(Ahal Province)를 주도할 새로운 신도시로 거듭날 예정이다. 총 50억 달러를 투입해 진행 중인 투르크메니스탄의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다.대우건설 관계자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해외 업체가 국가최고지도자와 대통령을 같은 날 예방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로 대우건설의 현지 진출에 대해 높은 관심과 지원을 확인받았다”며 “현재 추진 중인 2건의 비료공장 건설사업을 비롯해 신도시 개발 사업 등으로 현지화를 추진해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의 거점시장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3.06.01 16:05

3분 소요
대우건설, 투르크메니스탄 비료공장 업무협약…“현지 진출 모색”

부동산 일반

대우건설은 지난달 29일 투르크메니스탄의 비료공장사업 2건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일 밝혔다. 이날 대우건설이 MOU를 체결한 사업은 투르크메나밧(Turkmenabat)인산비료플랜트(연산 30만톤 인산비료 생산 설비 및 부대시설)와 발칸(Balkan) 요소-암모니아 비료공장(연산 115만톤 요소비료와 연산 66만톤 합성 암모니아 생산설비)이다. 대우건설은 추후 현장 실사와 추가적인 협의를 거쳐 사업을 구체화 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지난 27일 방한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Berdimuhamedow) 상원의장을 포함한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인사는 지난달 29일 ‘한-투르크메니스탄 기업인 간담회’를 개최해 한국무역협회 회장 및 국내 기업인과 투르크메니스탄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한 백정완 대우건설 대표이사는 “이번 비료공장 MOU 체결로 투르크메니스탄에 진출을 모색할 것”이라며 “대우건설의 폭넓은 실적을 바탕으로 플랜트, 발전, 주택건설 등 모든 분야에서 참여를 확대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대주주인 중흥그룹의 정원주 부회장도 베르디무하베도프 상원의장과 개별면담을 하며 대우건설의 투르크메니스탄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나섰다. 정 부회장은 이날 개별면담에서 대우건설이 한국 업체 중 최초로 러시아 사할린 지역에 진출했던 ‘사할린 LNG 플랜트’ 프로젝트와 비료 플랜트 사업의 다양한 실적을 소개했다. 정 부회장은 “최고품질의 공장 건설은 물론 운영에 필요한 기술지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베도프 상원의장은 1979년 투르크멘 국립의과대학 구강의학부를 졸업하고 1990년 모스크바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1997년 보건부 장관, 2001년 내각 부총리, 2007년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으로 취임해 15년간 역임했으며 올해 3월부터 인민이사회 의장직을 수행 중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당사는 국내는 물론 나이지리아, 알제리, 모로코 등 세계 각지에서 비료공장(Fertilizer)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양한 경험과 강점을 갖고 있다”며 “이번 MOU를 계기로 투르크메니스탄의 플랜트와 발전, 주택건설, 개발사업 등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지윤 기자 jypark92@edaily.co.kr

2022.12.01 07:58

2분 소요
카자흐스탄 사태로 조명 받는 중앙亞 지정학적·경제적 가치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한동안 잊혔던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가스값 인상을 계기로 1월 2일 반정부 소요 사태가 발생하자 러시아가 6일 2500명의 공수부대를 파견해 신속 진압하면서다. ━ 지리적 이점에 자원도 풍부해 미·중·러 동시에 눈독 들여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중국‧미국이 새로운 각축전을 벌이는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의 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19~20세기 영국‧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의 현장이면서 청나라가 최후까지 확장을 기도했던 역사적인 지역이다.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는 무한하다. 우선 중국과 러시아, 중국과 유럽, 중국과 중동을 잇는 지리적인 이점이 크다. 예를 들면 현재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에너지 파이프라인이 모두 러시아를 거쳐 외부로 나가고 있는데 중국으로 이어지는 새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서 지역의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우라늄 등 광물도 풍부해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서방 기업들도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지정학적인 요충지 선점과 자원 쟁탈전 성격이 동시에 있는 지역이 바로 중앙아시아인 셈이다. 1991년 12월 소련이 무너지고 옛 소련을 이루던 공화국들이 줄줄이 독립하면서 중앙아시아에서도 독립 국가들이 건국됐다. 우즈베키스탄(인구 3300만)‧카자흐스탄(1870만)‧타지키스탄(870만)‧키르기스스탄(600만)‧투르크메니스탄(570만) 등 5개국이다. 이 가운데 카자흐스탄만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댄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는 카스피해를 공유한다.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은 중국과 국경을 맞닿아 있다. 여기서 러시아와 중국 모두와 국경을 맞댄 카자흐스탄의 지정학적인 가치가 돋보인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 공사를 진행하면서 전략적 가치를 높여왔으며,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일대일로 추진의 중추로 삼고 있다. 중국은 1533㎞의 국경을 맞댄 카자흐스탄을 철도‧도로 등 육상 신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과 중동으로 이어지는 핵심 통로로 삼고 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카자흐스탄 없는 일대일로는 있을 수 없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육상·해상 신실크로드’ 구상을 처음으로 공개한 장소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현재 누르술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학교를 선택했다는 사실도 이런 맥락을 잘 보여준다. 소련 붕괴 뒤 미국은 중앙아시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지역은 한결같이 옛 소련 시절 현지 공산당 책임자가 새로운 나라의 대통령을 맡아 독재를 일삼고 통제경제‧부정부패로 국가를 사실상 자신들의 개인금고화하면서 미국의 시도는 빛이 바랬다. 옛 소련 시절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지속하려는 러시아의 노력도 계속됐다. ━ 시들해진 미국의 관심, 야심 드러내는 러시아 미국은 군사 기지를 설치하고 지역 국가를 동맹으로 끌어드리려고 낚시질을 계속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 지역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응해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행위자로서 미국을 원할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이 지역에 어떤 이익을 주느냐보다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에 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9‧11 직후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타지키스탄을 설득해 수도 두샨베 인근의 아이 공군기지에서 자국 공군기가 재급유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미군이 옛 소련 땅이었던 중앙아시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사건이다. 9‧11테러 발발이라는 특수한 상황,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압도적인 명분, 미국과 동맹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무슨 불똥이 주변으로 튈지 모른다는 작은 나라들의 불안, 그리고 미국의 거칠고 필사적인 외교전과 압박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타지키스탄으로선 멀리 있는 러시아나 당시까지는 경제나 국력이 ‘미생’ 상태였던 중국보다 아프가니스탄에 엄청난 군사력을 집중한 미국과 서방 동맹군이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공항 이용 대가로 타지키스탄 특수부대를 자국으로 초청해 훈련시켰다. 국경경비대 교육센터의 건설 자금도 지원했다. 타지키스탄은 언어적으로도 이 지역에서 중요하다. 이 나라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타지크족은 이란어로도 불리는 파르시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파르시는 이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타지크족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27%를 차지해 42%를 차지하는 최대 종족 파슈툰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파르시는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9%를 차지하는 하라르족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파르시는 아프가니스탄에선 서로 다른 종족끼리 만났을 때 상호 의사소통을 위해 공통으로 사용하는 ‘링구아 프랑카(일종의 공용어)’ 노릇을 해왔다. 파슈툰어가 아닌 파르시가 공용어가 된 것은 이 지역에 대한 페르시아의 오랜 영향력 때문이다. 그런 타지키스탄에 지역 진출의 발판을 만드는 일은 미국에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2001~2014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멀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에 미군 공군 기지를 운영했다. 그 뒤에도 일부 공항을 임대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는 미군의 환승 센터로 활용했다. 하지만 미국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러시아가 발톱을 세우면서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새롭게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에 대한 야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소련 시절처럼 이 지역을 모스크바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야심이다. 실제로 푸틴은 2014년 8월 “카자흐인들은 과거 한 번도 자기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그들은 (소련 붕괴 뒤) 아무도 나라가 없었다고 여기지 않았던 땅에 카자흐스탄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주권 국가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러시아 민족주의의 살벌함이다. 하지만 카자흐인들은 자신들이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고 강조한다. 10~13세기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 있었던 투르크계 쿠만-킵차크 연합에서 출발해 1259년 몽골제국이 분열하면서 생긴 킵차크 한국(1226~1395년)과 카자흐 한국(1465~1847년)을 승계했다고 여긴다. 실제 카자흐인은 투르크와 몽골계의 언어와 문화가 결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 제국은 1730~1863년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거의 일치하는 킵차크 초원의 부족연합체를 야금야금 정복해 영토에 편입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엄연히 있는데 푸틴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팽창주의적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러시아 제국주의와 궤를 함께한다. 러시아군의 카자흐스탄 진입이 중앙아시아에 지각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다. ━ 친미와 친러 사이에서 복잡해진 중앙아시아 각국의 셈법 카자흐스탄의 사정을 살펴보자. 남한의 12배가 넘는 272만4900㎢(세계 9위)의 광활한 영토에 1900만 인구가 사는 이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에 자리 잡아 지정학적인 가치가 크다. 그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자원도 풍부하다. 세계 12위인 하루 17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강국이다.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은 카자흐스탄에 세계 12위 수준인 30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19년 기준으로 하루 141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 세계 10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2019년에는 세계 최대의 우라늄 생산국에 올랐을 정도로 풍부한 자원 대국이다. 금‧티타늄‧카드뮴‧구리‧보크사이트‧갈륨‧아연‧안티몬‧인산‧납‧비스무트‧마그네슘‧유황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자랑한다. 소련으로부터 1991년(독립 선언은 1990년) 독립한 이후 에너지‧자원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돈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러시아가 체제 전환기에 심각한 경제난을 겪자 카자흐스탄은 영화를 비롯한 옛 소련권 문화산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소련 산하 카자흐스탄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산당 서기장 출신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1990년 독립선언 뒤 초대 대통령에 올라 2019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1999년 12월 31일 사임한 보리스 옐친의 뒤를 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일종의 ‘이익공동체’를 형성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복잡한 관계가 이번에 신속한 러시아군 투입을 가능하게 한 정치적 배경일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년)을 수행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인접 국가에 군사 기지 설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를 위해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주변 지역과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파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중국의 유일한 군사동맹으로 간주될 정도로 베이징과 돈독한 관계다. 아프가니스탄 서북의 투르크메니스탄은 북한과 비슷한 폐쇄‧고립 국가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지나치게 가까울뿐더러 아프가니스탄과 거리도 멀다. 게다가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를 여러 가지 국제기구로 묶어두려고 시도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은 1991년 설립된 독립국가연합(CIS)을 정치협력 기구로, 1992년 창설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집단안전보장 기구로 각각 유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회원국이다. CIS에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벨라루스‧몰도바 등 동유럽 국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 캅카스 국가까지 9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한 캅카스 국가 조지아는 헌장을 비준하지 않은 데다 2008년 탈퇴했다. 러시아와 앙숙이 된 우크라이나도 헌장을 비준하지 않은 데다 2018년 탈퇴했다. CSTO에는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아르메니아가 가입하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1999년 탈퇴했고, 우즈베키스탄은 1999년 탈퇴했다가 2006년 재가입했지만 2012년 다시 이탈했다. 두 나라는 안보에서 러시아의 지나친 영향력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지역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어 러시아와 중국,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분위기다. 미국에도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 미·러 각축장 타지키스탄서 승기 잡은 러시아 미국과 러시아가 최근 경쟁을 벌인 대표적인 사례가 타지키스탄이다. 중국과도 접경한 타지키스탄은 사실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경제를 러시아에 가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의 송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카네기 모스크바 재단에 따르면 코로나19 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30% 정도를 송금으로 얻었으며, 2020년에도 22%에 이른다.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만 대통령은 1994년 집권해 올해로 29년째 집권 중인데, 중앙아시아의 국가 원수 중 미국을 공식 방문하지 않은 유일한 지도자다. 미국과 가장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2021년 3월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삼각 회의를 열면서 다시 타지키스탄에 접근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더 이상의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국의 타지키스탄 접근을 방관하지 않았다. 2021년 4월 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타지키스탄의 라흐몬 대통령과 통화했다. 공식적으론 양국 관계강화를 논의했다고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푸틴이 타지키스탄에 미국의 접근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자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타지키스탄의 통화에 이어 CSTO 관련 회의가 세 차례나 타지키스탄의 수도 듀산베에서 열렸다. 그 결과 타지키스탄의 방공망을 러시아와 통합해 단일 지휘체계 아래에 두고,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대한 관리‧통제를 강화하며, 모스크바와 두샨베 간의 정기 항공로를 증설하기로 합의했다. 라흐몬 대통령은 푸틴의 초대를 받고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열병식에 외국 정상으론 유일하게 초대 받아 참석했다. 러시아가 승전 축하 열병식을 제법 성대하게 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외국 정상 초청은 하지 않았는데 라흐몬만 예외가 된 것이다. 서방에선 나치가 항복문서에 서명한 5월 8일을 종전기념일로 쇠지만, 소련과 이를 승계한 러시아에선 5월 9일에 기념행사를 연다. 당시 나치가 서방측 대표 앞에서만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소련이 다음날 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항복문서 서명식을 다시 열었기 때문이다. 라흐몬은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할 준비를 하는 데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엉망이던 나라 경제는 더욱 엉망이 됐으며, 미군 철수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면서 타지키스탄의 미래도 불안한 상황이다. 라흐몬이 필사적으로 러시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라흐몬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투명한 외교를 지향하는 미국보다 아무래도 러시아가 권력 세습과 자신의 안전보장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아시아에 문화적 배경이 다른 미국이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mccp@joongnag.co.kr

2022.01.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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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패권의 흑역사] 이란 발호할까 사우디·이집트·터키 ‘경계령’

국제 이슈

뚜렷한 지역 패권국가가 없는 중동은 20세기 이후 분쟁과 갈등의 끊임없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은 이를 서구 탓으로 돌리며 증오의 화살을 날린다.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기도 한다. 사우디·이집트·터키는 경제력을 회복할 이란을 경계한다. 이란이 37년 만에 정상국가로 돌아온 중동의 미래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지난 1월 16일 유엔 제재가 풀린 이란이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되자 중동 지역의 세력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량의 석유 수출이 가능해지면서 경제력을 회복할 계기를 마련한 이란이 지역 패권국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2012년 핵개발 이후 가해진 경제제재는 물론 1979년 이슬람 혁명과 미국과의 단교 등으로 인한 다양한 불이익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됐다. 특히 1000억 달러(약 121조 5000억원) 규모의 해외 동결자산을 회복하면서 거대한 돈주머니를 차게 됐다. 이 자산은 우선적으로 이란의 국제적인 신용을 높이고 경제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에 쓰일 것이다. 하지만 군비 증강에 이용될 가능성도 당연히 있다. 이럴 경우 인구 7800만 명의 대국 이란의 위상은 중동 지역에서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은 그동안 중동에서 ‘친이란 시아파 벨트’를 형성하고 유지해왔다. 우선 시아파의 지파인 알라위트파를 믿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원자가 이란이다. 이란의 지원은 중동에서 미국에 맞서는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러시아의 지원과 함께 알아사드 정권이 버티는 원동력이다. 알아사드 정권은 미국과 사우디가 지원하는 수니파 반군에 맞서 5년 가까이 버티고 있다. ━ 족쇄 푼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난립한 레바논에서 이란은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헤즈볼라 무장 민병대원은 레바논에서는 물론 중동의 여러 군대에 파견돼 시아파 벨트의 무력 축으로 작용해왔다.이란과 국경을 맞댄 인구 3200만 명의 이라크도 시아파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이라크의 국가원수는 소수민족인 수니파 쿠르드족인 푸아드 마아숨 대통령이지만 정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세력은 인구 면에서 다수인 시아파 아랍인이다. 다만, 미국의 영향력 등으로 인해 이라크 시아파 정부는 이란과 노골적으로 손을 잡지 못하고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있을 정도로 이라크 시아파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이란은 이슬람 종파와 무관하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반 서방 강경파인 하마스도 지원해왔다. 하마스가 실질적으로 행정권을 쥐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가자지구는 이란의 세력권이나 다름없다. 이란은 바레인의 시아파 반정부 세력과 예멘의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왔다. 바레인과 예멘은 사우디를 둘러싼 나라이기 때문에 이란의 개입은 사우디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바레인은 군주가 수니파로 사우디의 지원을 받고 있다. ━ 사우디에게 이란은 눈엣가시 이란은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슬람 세계의 종교적 권위는 물론 지역패권과 석유정책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경쟁하고 대립해왔다. 따라서 사우디는 이란의 부상을 어느 나라보다 방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사우디는 석유 증산의 고삐를 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저유가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앞으로 이란이 석유 수출을 늘려도 돌아가는 경제적 이익은 최소화하도록 이끌 것으로 보인다. 유가 조절을 통해 이란을 경제적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다. 이란이 회복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과 외교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사우디엔 악몽이다.뿐만 아니고 이란이 부상하면 중동의 전통적인 강국인 이집트도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3년 7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지금까지 내정 안정에 치중해왔지만 이란이 움직이면 이집트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인구 8200만 명의 대국인 이집트는 중동의 전통적인 군사외교 강국이었다. 그런 이집트를 빼고 중동 패권을 말할 수 없다. 이집트는 아랍민족주의를 앞세워 1958~61년 시리아와 통일 아랍공화국을 구성하기도 했다. 시리아의 군사쿠데타로 통일 아랍공화국은 사실상 사라졌지만 내정이 안정되고 국력이 회복되면 언제라도 아랍통일의 기치를 내걸고 중동 지역 외교에서 적극적이고 강력한 행위자로 나설 수 있다.7500만 인구의 대국 터키의 반응도 무시할 수 없다. 국경을 맞댄 이란과 터키는 오랫동안 서로 간섭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왔다. 하지만 권위주의 통치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완 대통령이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안보논리를 내세워 중동 지역에 대한 개입을 시작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1923년 케말 아타튀르크의 주도로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받아들여 공화국을 건국한 이래 전통적으로 중동 문제에 대한 개입은 자제해왔다.하지만 국경을 맞댄 시리아의 내란과 난민 사태 등으로 중동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터키는 중동 개입보다 튀르크 민족주의에 따른 중앙아시아 진출이 더욱 주목되는 국가다. 터키가 나서서 카프카스의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투르크계 언어를 쓰는 민족을 묶는 범튀르크 벨트를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이란계 제국과 튀르크계 제국이 경쟁했던 땅이기도 하다. 종합하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선 사우디의 수니파 패권주의와 이란의 시아파 패권주의, 그리고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아랍민족주의와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튀르크 민족주의가 각축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중동이 체질적으로 불안정한 이유를 알려면 이 지역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독립국가가 생기기 시작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다양한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미국 역사저술가 데이비드 프롬킨의 에 따르면 현대 중동국가는 대부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의 필요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다. 이에 따라 개별 국가의 내부 통합은 물론 나라들끼리의 지역 세력균형 유지와 안정 추구도 매끈하지 못하다. 1차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이 500년 가까이 중동 지역 대부분을 지배했다. 오스만 제국은 1차대전 이후 이 지역의 패권 외세였던 영국에 의해 해체됐다. 영국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민족자결주의’라는 고상한 이상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프롬킨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의 해체와 현대 중동국가 구도의 탄생은 중동 주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영국의 글로벌 패권에 위협이 되는 요인을 제거해 중동 지역과 인도에서 영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시 사정을 살펴보자. 오스만 제국의 말기는 1908년 벌어진 청년튀르크당의 혁명으로 혼란스러웠다. 군인 출신으로 혁명으로 오스만의 권력자가 된 엔베르 파샤가 터키민족주의를 추구했다. 그는 이른바 범튀르크주의·범우랄알타이주의·범투란주의에 앞장섰다. 오스만의 세력을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의 터키어 사용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 영국의 세계 전략 따라 오스만 제국 해체 군주인 술탄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제국의 실질적인 권력을 움켜쥔 그는 자신의 구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다. 실제로 엔베르는 1차 대전 말기인 1918년 이슬람군을 결성해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세력 공백상태가 된 카프카스의 바쿠(현재 아제르바이잔의 수도로 석유산업의 중심지)로 진군했다. 이 지역은 튀르크계 언어를 쓰는 아제르바이잔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오스만의 카프카스 진출에 영국은 경악했다. 만일 영국이 유럽에서의 전쟁(1차 대전)에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오스만 세력이 중앙아시아를 장악한다면 당시 영국 식민지인 인도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엔베르 파샤의 튀르크 민족주의를 중동과 중앙아시아, 인도에서의 영국 패권을 위협하고 글로벌 세력균형을 깰 수 있는 중요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아제르바이잔은 중동보다 먼저 석유가 발견된 유전지대였다는 사실이다. 1차 대전은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계기였다. 영국은 당시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의 제안으로 해군 함선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꾼 직후였다. 영국 입장에서 석유는 대영제국 유지의 핵심인 해군의 젖줄이었다. 따라서 전략자원인 석유 확보경쟁에 도전한 엔베르 파샤의 오스만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이 된 튀르크를 손보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문제는 튀르크를 해체하고 새 나라들을 세우는 게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선, 중동 지역의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지배를 받아만 봤을 뿐 자기들의 나라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사례가 이집트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역사와 전통, 문화를 자랑하는 이집트는 2000년 넘게 자국 출신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 이집트에선 기원전 31세기부터 기원전 525년까지 2500년 동안 26개의 고대 파라오 왕조가 명멸했지만 외세에게 정복됐다. 페르시아가 약 200년(기원전 525~기원전 332) 간 지배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밀려났다. 그 뒤로 알렉산드로스의 부하가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32~기원전 30)가 약 300년을 지배했다. 그리스 문화와 이집트 문화를 뒤섞은 그리스인의 왕조였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이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다. 그 다음에는 로마의 식민 지배(기원전 30~기원 393)를 360년 이상 받았다.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 이교도 사원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면서 고대 이집트 문화의 명맥마저 끊겼다. 그 뒤 이집트는 비잔틴 제국(395~646)의 지배를 받다가 이슬람 세력이 떠오르면서 아랍에 정복(639~1250) 당했다. 그러면서 상당수가 기독교도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물론 고유의 언어도 버리고 아랍어를 쓰게 됐다. 이후 이슬람 군인집단인 맘루크의 지배(1250~1517)와 오스만 제국(1517~1805)의 통치를 잇따라 받았다. 그러다 19세기에 들어서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가 왕조(1805~1882)를 세웠다. 폭군으로 유명한 그는 발칸반도 출신의 알바니아계다. 1882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점령했다.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지만, 1922년 입헌군주국이 돼 무하마드 알리의 후손이 통치했다. 하지만 1936년 영국-이집트 조약에 따라 영국군이 주둔했으며 이들은 1952년 군사 쿠데타로 이집트 왕정이 전복되고 나서도 계속 주둔하다가 1956년에야 철수했다. 1952년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나세르는 거의 2500년 만에 등장한 이집트인 통치자였다. 그러나 나세르도, 그의 뒤를 이은 사다트도 모두 평생 권력을 놓지 않았다. 사다트의 후계자인 무바라크도 30년을 군림하다 민중 혁명으로 물러나는 운명을 겪었다. 이집트의 역사는 중동에서 외세가 아닌 지배자가 자리 잡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외세에 고분고분한 것도 아니다. 현재 중동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대한 반감이 팽배하다. 국가 지도자와 지배계층은 국익을 위해 서구와 협력해야 한다고 믿지만 일부 주민 사이에선 배척 분위기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상당수 중동 지역은 부족 단위의 유목사회다. 지역은 외세의 지배 단위나 행정 단위로 묶였을 뿐, 주민이 바탕이 된 하나의 정치단위로 통합된 적이 드물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하려고 해도 그 민족이란 게 중동에선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특히 오래 전부터 아랍어로 ‘이라크’라고 불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내부 민족·종교·종파 구성이 특히 복잡했다. 크게 나눠도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로 이뤄진 아랍인, 그리고 이슬람 수니파지만 아랍인과 민족이 다른 쿠르드인의 3개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아랍인이라고 해도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는 같은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에 반대였다.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는 하늘 아래 함께 살기가 불편할 정도로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반목해왔기 때문이다. 같은 이슬람 수니파라고 해도 아랍인과 쿠르드인은 함께 하나의 나라를 만들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오스만제국 시절에는 동북부의 쿠르디스탄, 서부의 알자지라, 동남부의 이라크라는 세 지역으로 나뉘어 통치됐다. 그런데다 이 지역에는 아시리아 기독교, 유대교, 야지디교 등 다양한 종교적인 소수파가 존재한다. 하지만 영국은 이런 사실에 개의하지 않고 1922년 이 복잡한 지역을 ‘이라크’라는 이름의 한 나라로 통합했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는 통합 이후에도 끝없이 반목했지만 외세는 물론 중앙정부도 이를 무시했다. 이들의 반목은 이라크전 이후 사람 후세인을 축출하고 새로 생긴 이라크의 정쟁과 사회불안의 요인이 됐다. 다수 시아파가 중앙정부를 장악하면서 후세인을 추종했던 수니파는 군대와 정부에서 축출돼 소외됐으며 탄압을 받았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극단주의와 손을 잡았다.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이라크 출신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주도하고 있으며, 군사와 행정을 주도하는 두뇌는 바로 이 소외된 후세인 추종 수니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부 모술의 쿠르드족은 아랍인의 통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영국은 전략물자인 석유가 있다는 이유로 바그다드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했다. 이라크 주민의 75%는 정부에 복종해본 적이 없는 반독립적인 부족민이었다. 지역 출신 지배자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던 주민들은 ‘폭군이 하나 제거되면 또 다른 폭군이 들어서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이유로 아랍인 지배자를 두는 데 반대했다. ━ 쿠르드족, 아랍인 지배자 반대했지만… 영국은 서로 반목하는 이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어 이 지역 출신도 아닌 아랍인 파이살에게 넘겨줬다. 아라비아 반도 메카 출신으로 1차대전 중 오스만을 상대로 봉기를 일으켜 영국을 도운 아랍 명문가 하심 가문 출신이다. 이 왕조도 1958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에 권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군사정권의 마지막 ‘폭군’이 사담 후세인이었다. 이라크의 모순은 사담 후세인이 집권한 1979년이 아니라 이라크라는 나라가 탄생했던 1922년부터 잉태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폭군의 악순환’이라는 당시 부족민의 우려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2016.01.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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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벗어날 수 있을까

산업 일반

지난 7월 10일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의 제15차 정상회의가 러시아 우파에서 열렸다. 러시아·중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이 정회원국인 SCO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옵서버 참가국인 인도·파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승격시키기로 합의했다. 또 벨라루스를 옵서버 참가국으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캄보디아·네팔을 대화상대국으로 참여시켰다. 당초 정식 회원국 참여를 신청한 이란은 이번에 회원국 자격을 얻는 데 실패했지만 이르면 내년에 다시 가입심사가 실시될 것이라고 SCO 한 관계자가 전했다.이로써 서방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SCO가 서방을 견제하는 다자 안보기구로 본격적인 위세 과시에 나섰다. 아시아 대륙의 남쪽으로 권역을 확장해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방이 지배하는 국제기구에 대응하는 독자적인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SCO의 권역 확장이 ‘다극체제’의 세계질서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해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은 길고 험난할 듯하다. 그 과정에서 동반자들이 각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지난 몇 년 동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에 진척이 없다고 거듭 불만을 터뜨리며 대신 SCO가 더 낫겠다고 시사했다. 그는 2013년 러시아 방문에서 “우리가 SCO에 가입하면 EU엔 작별을 고하겠다”고 말했다. “SCO가 EU보다 낫고 영향력도 훨씬 크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가입을 원한다. SCO가 우리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 회원이 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공개적으로 다정한 말은 오갔지만 아직 터키는 공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터키 남쪽 국경 지역이 불안정하고 푸틴의 의도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EU 대신 SCO를 택하겠다는 에르도안의 으름장은 공식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진 않더라도 외관상 SCO의 신뢰도를 높여준다.SCO는 1996년 상하이 파이브(Shanghai Five)로 출범했다.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중국과 국경을 맞댄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권 3개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이 서로간의 영토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였다. 중앙아시아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2001년 상하이 파이브는 우즈베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여 상하이협력기구로 개명했다. SCO의 본부는 베이징에 있지만 사무총장은 각 회원국이 3년 임기 순번제로 맡는다.SCO는 설립 초기엔 지역 안보에 초점을 맞췄다.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대응하려는 중국의 구상이었다. 옛 소련권 국가들과 인접한 중국 서부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족이 그런 예다. 2004년 이래 SCO는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지역테러대응센터(RATS)를 설립했다. 회원국의 안보·정보 전문가들이 협력해 테러 용의자 명단을 공유하고 상호 송환 절차를 효율화하는 조직이다.만약 SCO가 중국의 위구르족 분리독립 운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면 상대적으로 힘없는 기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SCO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서서히 의제를 확대하면서 주요 회원국의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야망, 러시아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조치,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생기는 권력 공백 등의 문제를 다룬다.이런 노력으로 SCO는 앞으로 더욱 주목받겠지만 동시에 회원국 사이의 마찰도 많아질 듯하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의식과 상호 불신이 가장 큰 문제다. 이 핵심적인 이슈가 궁극적으로 SCO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그렇다면 SCO가 국제관계에서 막강한 기구로 부상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뉴욕 바너드칼리지의 정치학 교수로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 경쟁(Great Games, Local Rules: The New Great Power Contest)’의 저자인 알렉산더 쿨리는 “SCO의 주된 문제는 이 기구의 목적과 활동 범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중국의 근본적인 견해차가 심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SCO를 서방과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수정주의 의제를 개발하는 기구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와 달리 중국은 지역 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다. 무슬림 위구르족의 소요가 잦은 신장 자치구를 안정시키고 중국 기업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다(2009년 7월 우루무치에서는 한족과 위구르족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약 200명이 숨지고 1700여 명이 부상했다).이처럼 러시아와 중국의 비전은 양립하기 어렵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아시아·태평양 프로그램의 러시아 담당 국장인 알렉산더 가부예프에 따르면 러시아는 SCO가 중앙아시아의 안보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는 SCO보다 2002년 이웃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설립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선호하기 때문이다.가부예프 국장은 러시아도 중국도 상호 군사동맹 성격이 강한 국제기구를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SCO가 나토의 대안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어느 한 회원국이 침략받게 되면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안보 조치를 발동하는 나토 창설헌장 제5조와 비슷한 것은 절대 원치 않는다.동시에 SCO의 의제를 경제개발 분야로 확장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SCO 개발은행과 자유무역지대 설립 제안이 대표적이다. 쿨리 교수는 “중국이 제안한 경제 분야의 제안 대부분을 러시아가 검토한다며 시간을 끌다가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배력 증가가 제도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경제 측면에서 러시아는 SCO보다 독자적인 기구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강화를 원한다.”SCO 개발은행 설립 제안은 출자 자본금 할당 기준 문제가 장애물이 됐다. 국내총생산(GDP)과 연계하면 중국이 자본금의 80% 이상을 차지해 사실상 완전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 러시아의 제동으로 SCO를 경제개발 수단으로 발전시키려는 중국의 희망은 무산됐지만 경제 외교의 균형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SCO의 틀 밖에서도 그런 전략을 추진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SCO 개발은행 설립에 진전이 없자 10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를 순방하며 경제협력 협정을 잇따라 체결했다. 카자흐스탄 방문에서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을 발표했다. 중앙아시아의 도로, 철도, 파이프라인를 잇는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대담한 제안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 수출길을 육로로 트겠다는 의도다.그 직후 시진핑 주석은 남아시아에 초점을 맞춘 ‘해상 실크로드’를 제안했다. 그에 따라 남아시아 국가들의 항만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또 지난 4월엔 ‘신 실크로드’(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인프라 사업 및 국내외 정책 사업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국책은행(국가개발은행·수출입은행)에 620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아울러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해 유럽 등 세계 각지의 미국 동맹국들이 포함된 약 50개 국을 참여시켰다. 괄목할 만한 외교 성과다. 중국이 SCO를 통해 경제 의제를 추진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진 않겠다는 뜻이다.그러나 중국이 실크로드 계획을 내놓은 것은 SCO의 지지부진함에 대한 좌절 때문만은 아니라고 가부예프 국장은 지적했다. 다른 중요한 요인은 경제성장 둔화로 중국의 인프라 기업들의 설비과잉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응으로 중국은 산업을 서부 지역으로 이전해 중앙아시아를 통한 수출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가부예프 국장은 “중국은 SCO에서 자유무역지대를 원하지만 러시아와 다른 나라는 값싼 중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와도 관세장벽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EEU를 택해 중국의 진입을 막으려 한다.”최근 중국의 성장둔화 탈출 노력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최악에 이른 시점과 일치한다. 그런 특수 상황 때문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미국·유럽 외에 국제관계의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가부예프 국장은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조만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러시아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은 결국 중국을 의미한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현재의 조건이 형성됐다고 관측통들은 지적했다.한편으로 SCO의 위상 강화는 서방의 간섭이 없는 대안적 국제기구의 중심에 서려는 러시아의 욕구를 반영한다(미국의 SCO 옵서버 지위 신청은 2005년 거부됐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제적인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SCO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한다. 따라서 러시아로선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배를 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쿨리 교수는 서방의 제재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중국의 실크로드 계획을 묵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로선 대안이 없다.” 그는 지난해 말 러시아가 중국과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협정을 체결한 사실(양국의 협력 강화 상징으로 홍보됐다)이 이런 치열한 논쟁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유지해온 양자관계가 러시아의 영향에 못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쿨리 교수는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 협상에서 중국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저렴한 가격을 이용해 러시아의 에너지 대기업 가스프롬을 제압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가진 경제적 영향력이 러시아의 핵심 국익에 타격을 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서방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체했다.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의도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대안적 세계질서를 창출하려는 욕구는 공유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SCO가 끌어안으려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이 그 증거다. 아프가니스탄은 SCO 권역의 핵심부에 위치한다.2005년 7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수반들은 처음으로 서방의 관심을 끄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는 다국적군에 SCO 회원국에 있는 기지에서 철수할 기한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자국에 있는 미군 기지를 6개월 안에 철수할 것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올해 나토군이 마침내 아프가니스탄NEWSIS에서 철수하고 있지만 상황은 암울하다. 특히 IS가 득세하고 그 조직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새러 레인 연구원은 “SCO의 모든 회원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예전보다 더 신경 쓴다. 물론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중국은 아프간군·경찰의 막사 재건에 도움을 주고 제한된 훈련도 제공한다.”가부예프 국장은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안보 관리들로부터 IS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사우디 정부기관의 합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1980년대 소련군을 물리친 아프간 무자헤딘 운동이 서방의 지원을 받은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IS가 이란과 중국, 러시아에서 불안정을 도모하고 곧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푸틴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의 의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런 견해를 가진 정보 관리들이 있다.” ━ 나토의 공백 메우기 나토군이 철수한 뒤 그 공백을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메울 것인가? SCO 회원국들은 조만간 그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SCO가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현실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레인 연구원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많이 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 아무도 나토의 역할을 대신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투자와 경제안정이 정치안정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하겠지만 SCO가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 직면한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비효율적인 기구지만 세계에서 좀 더 두각을 나타내려고 애쓰는 SCO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SCO가 회원국을 늘리려는 움직임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가입시킴으로써 SCO는 세계 인구와 경제생산의 상당 부분을 대표하며 영향력이 커지는 국제기구라고 주장할 수 있다.이는 대부분 러시아의 의도다. 더 많은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의 영향력을 희석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넓어지는 국력 격차를 줄이려는 생각이다. 특히 인도를 끌어들인 의도가 그렇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중국보다 러시아에 훨씬 가깝다.중국으로선 원래 의도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SCO가 국제외교에서 주요 기구로 발전하려는 것을 마침내 수용한다는 뜻이다. 쿨리 교수는 “인도를 받아들일 자세가 됐다는 사실은 중국이 이 기구를 통해 경제적으로 중대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전엔 인도의 가입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파키스탄과 함께 인도를 일괄 가입시킴으로써 SCO의 상징적인 가치를 높이겠다는 생각이다.”아무튼 이런 기구는 서방 관측통의 관심을 끈다. 세계질서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쿨리 교수는 “모두가 서방을 배제한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가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서방 중심 국제기구와는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효과적일지 알고 싶어한다.”베이징에 있는 SCO 본부에서 그 답을 찾기는 어렵다. 폴란드 대사관 맞은 편의 작고 노후한 건물이다. 낡은 에어컨 설비가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저가 호텔처럼 보인다. 싸구려 꽃무늬 블라인드는 전부 내려져 있다. 앞쪽에는 회원국 국기가 나부끼지만 주차장은 차량 약 20대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뿐이다. 뉴스위크가 방문한 날에는 텅 비어 있었다.- ANDY DAVI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2015.07.27 09:49

8분 소요
심리적 트라우마 입은 푸틴

국제 이슈

“러시아에 영광이 있으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선언에 이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감동에 찬 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 다음 푸틴 대통령은 자리에 앉아 미소를 머금으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덕담을 나눴다. 2005년 5월 9일 맑은 날 오후였다. 두 사람 뒤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지도자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옛 소련권에선 ‘위대한 애국전쟁’으로 부른다) 승리 6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려고 모스크바에 모였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지난 5월 9일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는 60주년 때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듯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를 제외하곤 서방 지도자가 단 1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포함해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옛 소련권 독재자들이 단촐하게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들과 함께 붉은광장에서 웅장한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참석하기로 했지만 막판에 취소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행사 당일을 피해 그 다음날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메르켈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식의 일환으로 진행된 무명용사묘 헌화식에 참석했다.모스크바 소재 싱크탱크인 러시아 외교국방정책위원회의 표도르 루캬노프 회장은 “서방의 불참으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서방이 돌이킬 수 없이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은 러시아의 새로운 외교 방향을 보여준다.”나치군의 872일간 포위를 견뎌낸 소련 도시 레닌그라드(현 지명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서방 보이콧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모욕감을 감추진 못했다. 지난 4월 연례 국민과의 대화에서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동맹국 수반들의 러시아 승전 행사 참석을 “금지한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훨씬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블라디미르 치조프 유럽연합(EU) 주재 러시아 대사는 서방의 보이콧이 “나치와 싸우다 숨진 소련 장병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70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인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매우 중시한다. 그 전쟁으로 소련군과 민간인 2000만 명 이상이 숨졌고 많은 지역이 폐허가 됐다. 1945년 5월 마침내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행복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지난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승전일을 “가장 중요하고 경건한 기념일”이라고 불렀다. 올해의 승전 기념일 직전 모스크바 중심부는 전시 영웅의 초상화들로 장식됐고, 스탈린그라드(현 지명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숨진 소련군 100만 명 이상을 기리는 거대한 기념관은 대규모 보수 공사로 새 단장했다.그러나 러시아 승전 기념일은 전몰자의 넋을 기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크라이나군과 동부 친러시아 반군의 휴전이 물거품이 될 지경으로 치닫는 가운데 러시아는 붉은광장 퍼레이드에서 군사적 위용을 자랑했다. 장병 1만5000명과 아르마타 T-14 탱크, 전투기 150대 등 최신예 무기가 동원됐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반군 지원에 맞서 서방이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나토가 러시아 턱밑까지 확장되고, 미군 공수부대와 영국 군사고문단이 우크라이나군의 훈련을 위해 파견되자 크렘린은 러시아가 또 다시 적에게 포위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말 아나톨리 시도로프 러시아 서부군 사령관은 미국이 세계 지배를 노리고 러시아를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인다고 비난했다. 전면전 대신 정보전과 사이버전, 경제적 압박 등 비군사적 방법을 이용해 상대국을 뒤흔드는 전술을 가리킨다.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반서방 감정도 거세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득세한 공격적인 국수주의 단체 국가해방운동(NOD)의 회원인 콘스탄틴 돌기레프는 “러시아인이 서방은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NOD 회원인 다니일 레빈스키는 “이웃을 초청했는데 그들이 집 밖에 앉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총을 겨눈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관영 미디어는 반서방 감정을 부추기는 동시에 서방 비방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다. 그 결과 러시아인 대다수는 지난해 마이단 시위 후 정권을 잡은 우크라이나 현 정부가 ‘파시스트 군사정부’라고 믿는다. 최근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의회에 진출한 극우 정당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처럼 크렘린은 파시즘 망령을 불러일으키면서 끔찍한 전시 기억을 상기시키려고 애쓴다.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하야시킨 마이단 봉기를 ‘신나치주의’ 쿠데타라고 불렀다. 반면 크렘린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군은 지금의 내전을 제2차 세계대전의 연장전으로 생각한다.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예브게니 로고프(90)는 지난 4월 전쟁 기념 행사에서 “미국은 과거 우리의 전시 우방이었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파시스트 정부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장교로 참전한 블라디미르(93, 성은 밝히지 않았다)는 “미국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고 말했다.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크렘린은 그 전쟁의 역사적 재해석도 금지한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법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붉은군대)이나 소련 지도자의 역할을 ‘왜곡’하는 것은 범죄행위로 최고 징역 5년 형 감이다.예를 들어 나치 독일과 소련이 동유럽을 분할 지배하기로 합의한 1939년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Molotov–Ribbentrop Pact)’이나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군할 때 자행한 집단 성폭행을 거론하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뜻이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전시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금지됐다. 근년 들어 러시아는 스탈린의 명예 회복을 추진했다. 또 푸틴 대통령은 1961년 개명된 볼고그라드를 다시 스탈린그라드로 바꾸는 안을 지지한다.크렘린 대변인에서 러시아 정부 비판자로 변신한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는 “푸틴 대통령은 스탈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국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그가 굴라그(강제노동수용소)를 부활시킬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선 큰 문제를 해결할 위치에 있는 자신이 스탈린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러시아 승전 기념행사에 서방 지도자들이 참석을 거부한 것은 푸틴 대통령으로선 매우 불쾌한 경험이다. 서방의 보이콧은 그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심리적 트라우마가 됐다.”벨코프스키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 상황에 중대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모욕을 잊거나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번역 이원기

2015.05.18 08:58

4분 소요
핵협상 잠정 타결로 주목받는 이란 - 아랍인 듯, 아랍 아닌, 아랍 같은 나라

산업 일반

생각보다 차분하고 신중하다. 지난 4월 2일 이란과 ‘P5+1(UN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은 우여곡절 끝에 핵협상 최종 타결을 위한 포괄적 공동합의문을 도출한다는 데 합의했다. 세계 언론은 스위스 로잔에서 날아든 이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이란의 변화를 환영했다. 한바탕 국제 뉴스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이곳 테헤란은 지금 매우 고요한 분위기다. 전면타결 아니면 결렬(All or nothing)이 이번 협상의 원칙이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이란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최종 협상은 6월 말쯤 이뤄질 전망이다.테헤란 북부의 타즈리쉬 광장. 부촌이 밀집돼 있는 북쪽 지역의 대표적인 바자르(Bazar, 전통시장)가 있으며, 이란의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문화와 상업 중심지다. 서울로 치면 신촌과 홍대쯤 된다. 이 곳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과 유럽 등으로 이민을 떠난 이란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핵협상 타결 이후 찾은 타즈리쉬 바자르에는 언제나 그렇듯 이란 사람들 특유의 활기가 돌고 있었다. 장기간 지속된 경제제재와 인플레이션으로 이란 경제는 파탄 일보 직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이란 경제의 특성상 미국 주도의 제재가 생각보다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핵협상 타결과 제재 해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협상 결과를 두고 “헤일리 후베(Kheili-khub-e, ‘Very good’에 해당하는 페르시아어 표현)”를 연발하는 타즈리쉬 시장 주방용품점 주인 아흐마드 무스타파의 목소리에는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엿보인다. 2002년 8월, 반체제 인사로 구성된 이란 국민저항위원회 (NCRI)는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알리지 않고 우라늄 농축시설 및 중수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후, 이란은 서구 주요 국가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됐고, 강도 높은 제재로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2013년 자국 통화인 리알화 가치는 두 배 이상 폭락했고, 물가상승률은 35%에 육박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수준을 버틴 이란 국민은 길고 길었던 어둠의 터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 2015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이란 우리에게 이란은 어떤 나라일까? 비즈니스를 하러 이란에 간다고 가정해보자. 인천에서 출발해 두바이나 도하를 거쳐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까지 오는 여정은 15시간이 걸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하지만 물리적 시간과 거리를 떠나 우리에게 이란은 분명 먼 나라다. 부시 정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악의 축’ 국가 중 하나, 피비린내 나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당사자, 최고 지도자가 가장 큰 권력을 갖는 신정일치 국가, 끊임없는 핵개발 야욕, 매너 없는 플레이로 일관하는 침대 축구까지….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이 이란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닐까?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경험한 이란은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확립한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중동이지만 아랍 문화와는 차별화된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이며, 제국을 이루었던 만큼 커다란 역사적 자부심이 있는 국가다. 또한 온화한 기후에 사계절이 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다.이란 면적은 한반도의 7.5배에 달한다. 지정학적으로 아시와와 유럽·러시아·CIS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평가받는다.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터키와 이라크,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 나라를 접하고 있어서 주변국 진출의 거점 지역으로 꼽힌다. 또한 남부의 해안지대를 이용한 물류의 출입 활동이 용이하고 인접국과의 도로·철도 등 기반시설도 비교적 우수하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인구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많은 8100만명에 이르며, 중동 최대의 내수시장으로 알려져 있다.전체 인구의 60%가 30대 이하로 구성된 젊은 국가로,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2014년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다. 하지만 이란은 이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산업화를 추진해 왔다. 1990년대부터 5년 단위로 ‘경제·사회개발 계획’을 수립해 석유 의존 경제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20년 미래계획’을 발표하며 중동 제일의 경제·과학 선진국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 한국 사랑 유별난 이란인들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서구와의 관계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4월 초, 스위스 로잔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란이 예정된 협상기한을 넘기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핵협상에 정치적으로 합의했다는 뉴스였다. 2013년 8월 취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일관되게 평화적 메시지를 전달해왔으며 결국 ‘정치적 프레임워크 도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 냈다. 최근 CNN은 ‘제재가 풀릴 경우 이란이 중동의 독일 같은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2014년 기준으로, 이란은 우리나라의 26위 수출대상국이다. 한국은 이란에 41억7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전체 수출량의 0.73%다. 주요 수출품목은 TV·디스플레이 등 가전제품과 합성수지·자동차부품 등이다. 2012년에는 62억6000만 달러를 수출하며 20위 수출대상국에 올랐으나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가 심화되면서 수출량이 대폭 감소했다. 이란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인지도가 매우 높으며, 유럽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한국산 자동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는 이미 국민차 대열에 올랐다. 기아자동차가 사이파와 합작해 2005년까지 프라이드를 현지에서 생산·판매하고 조립라인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사이파는 사바(Saba, 프라이드 베타), 나심(Nasim, 프라이드)이라는 이름으로 프라이드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이란은 건설·플랜트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수주 시장이기도 하다. 1970년대 첫 진출 후, 2000년대 중반까지 5위권 안팎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 서구의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이란 진출이 거의 끊겼다. 이란은 원유 생산량에 비해 정제기술이 부족하고 전반적인 도시 인프라가 미흡해 건설 수요가 많다. 제재가 완화되면 16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발주가 예상되며, 우리 기업의 본격적인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KT&G는 2008년 이란 현지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담배 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5년 생산 목표는 5억 개비에 달하며, 에쎄(ESSE) 브랜드는 2014년 기준 시장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한국에 대한 이란인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 2006년 처음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시청률이 90%를 기록할 정도였고, 국민의 요청으로 재방영을 거듭했다. 또한 이란의 태권도 인구는 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20만명에 달한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태권도를 정식 교육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태권도 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럼에도 이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 아랍인과 동일시하면 낭패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어디일까?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이란은 테헤란과 동의어 혹은 대체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서울이 대한민국의 전부가 아니듯이 이란도 마찬가지다. 이란에 거주하면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도시는 테헤란이 아니라 오히려 에스파한이었다. 에스파한은 페르시아어로 ‘네스페 자한(Nesf-e-Jahan)’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는 세상의 절반(Half of the World)이라는 뜻이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는 집권기간 동안 딱 세상의 절반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싶었고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한 이란 소개 책자에는, ‘이란에서 해야 할 첫째 경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에스파한에 가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현 시점에서 에스파한이 세상의 절반은 아닐지라도 이란 문화의 절반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이란은 아랍의 일부가 아니다. 이란인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란인을 아랍 사람과 동일시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 역사를 ‘무지의 시대(Jahiliyya, 자힐리야)’로 구분한다. 이란은 이슬람이 유입되기 전에도 고대 중동 역사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페르시아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란인들은 국제정세 불안으로 지속된 경제 악화에도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내재하고 있다. 만약 이란 바이어를 자신보다 문화 수준이 한 단계 낮다고 여기는 아랍 문화권의 일부로 취급하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란의 국어인 페르시아어(Farsi)는 아랍어(Arabic)와 완전히 다르다. 페르시아어가 아랍어의 문자를 차용한 후 알파벳 4개를 독자적으로 추가해서 문자 체계를 구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고유 언어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문법·표현·발음 등은 큰 연관성이 없다. 또한 1935년에 페르시아에서 변경된 국호 이란은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이고 아랍인은 셈족이다. 아리아인 계통의 이란인과 비교해 아랍인은 피부색이 조금 더 검고 머리카락이 곱슬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역사적·문화적·민족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지리적·종교적 이유만으로 같은 아랍권으로 묶어서 인식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큰 결례가 될 수 있다.이란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혼동되는 여러 개념을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아랍 혹은 아라비아라는 말은 민족적 개념에서 파생된 단어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를 통칭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정신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아랍연맹을 만들어 결속하고 있다. 이슬람은 종교적 개념이다. 비아랍권 무슬림 국가도 분명 존재하므로 이슬람과 아랍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중동이라는 단어는 지리적 개념으로,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다. 정리하자면 이란은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이며 지리적으로 중동에 속하지만, 민족적·언어적으로 아랍이 아니다.체면을 중시하는 이란 사람들에게는 ‘터로프(Taarof)’라고 하는 특유의 빈말 문화가 있다. 터로프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는 언어 습관이다. 우리 역시 체면을 중시해서 비슷한 언어 습관을 갖고 있지만, 이란의 터로프 표현은 매우 다양하고 시적이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난 당신을 위해 희생할 거예요(고맙습니다).”, “당신은 내 눈동자 위에서 걸을 수 있어요(환영합니다).”, “당신 눈의 빛이 되고 싶어요(훌륭합니다).” 등이다.페르시아 특유의 터로프 습관은 문화·역사·종교적 배경과 연계해서 살펴봐야 한다. 공동체 문화의 특성상 이란인들은 말하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발화의 내용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는 80%가 지시적 표현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합리성을 중요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언어에 투영된 까닭이다. 반면 페르시아어의 80%는 암시적인 표현으로 구성돼 있다. 지리상 동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인 이란은 역사적으로 침략이 잦았다. 아랍·투르크·몽골 등 제국의 점령을 겪으면서 대립적인 현실을 피하고 싶은 위한 바람이 언어습관에 투영된 것이다.종교적으로도 이란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시아파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수니파가 중심이며 시아파는 소수에 속한다. 오랜 종교 분파 대립의 역사에서 소수파는 주류를 향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감춰야 했다.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이란의 언어습관에 모호한 표현이 많은 또 하나의 이유다. 바이어를 만나서 가격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언어습관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면 유리한 입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반면, 이란인의 모호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 제재 완화 추이 꼼꼼하게 모니터링 해야 이란과 서방은 6월 말까지 포괄적 공동합의문(JCPOA)을 도출한다는 데 합의했다. 양측의 신뢰구축 정도에 따라 향후 전면적인 제재 완화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제재 완화가 시작되면 우리 기업의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제재가 본격화된 2009년 이후 한국의 수주 실적은 전혀 없다. 국내 기업의 건설·플랜트 프로젝트 수주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철강제품의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또한 경제성 높은 이란산 원유 수입이 확대되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제품은 보다 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석유화학제품의 수요 확대는 장기적으로 해운 수송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반다르압바스 등 주요 항만의 서비스가 전면 재개될 가능성도 커졌다. 애프터 세일즈 시장으로 제한해 수출이 허용되고 있는 자동차부품의 경우, 점차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완성차 수출은 미국의 지속적 압력으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포괄적 공동합의문 도출을 위한 추가 핵협상 진행상황 및 제재 완화 추이를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란은 계약 체결시 신용장(L/C) 개설에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게임의 룰을 알면 경기는 재밌어지게 마련이다. 현지 바이어보다 더욱 느긋한 자세로 거래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우리 기업의 이란시장 진출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2015.04.26 13:12

8분 소요
중국의 에너지 야심 - 북극해 석탄도 노린다

국제 이슈

중국의 눈이 북쪽으로 향한다. 북극해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에 접근하고 편리한 대양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르웨이로부터 일부 영토를 매입할 생각이다. 홍콩의 약 3배 크기로 미개척지인 스발바르제도(노르웨이령)를 말한다. 노르웨이 정부는 최근 피요르드 지형인 스발바르 제도를 국제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그곳에는 석탄 2000만t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세계 최대 정치·경제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에너지 전문가 에밀리 스트롬키스트는 “급증하는 중국의 에너지 수요와 좀 더 효율적인 북극해 항로에 대한 관심이 결합돼 중국 기업들이 새로운 북극해 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극지방 연구학회의 윌리 외스트렝 부대표는 “중국이나 다른 비(非)북극해 국가들이 스발바르 제도를 소유하면 장기적인 북극 탐사를 시작할 교두보만이 아니라 북극 지방에 영구한 근거지를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중국의 그런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1년 부동산 재벌 황누보 중쿤투자그룹 회장은 아이슬란드에서 그보다 더 큰 땅을 매입하려 했다. 그는 2억 달러에 입찰했지만 영토의 외국인 소유가 지나치다는 아이슬란드의 우려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또 온라인 시사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국영 에너지 대기업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아이슬란드의 석유개발 기업인 아이콘 에너지와 공동으로 아이슬란드 동남부 해안 지역의 에너지 자원 개발권을 획득했다.중국은 근년 들어 급속한 산업화와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 세계에 전방위적인 진출을 꾀했다. 예를 들어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SINOPEC)는 캐나다와 북해에 투자했고, CNOOC는 캐나다 에너지회사 넥센을 인수했으며, 중국 국영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는 미얀마와 중국을 잇는 석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법률회사 브레이스웰 앤 줄리아니의 에너지 담당 대런 스폴딩은 “지난 수 년 동안 중국 국영기업들이 경매 과정, 특히 에너지 부문 입찰에서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아시아에도 중국의 에너지와 천연자원 투자 중 많은 부분이 집중됐다.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중앙아시아를 순방하면서 여러 건의 에너지 개발 계약을 했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공급을 2020년까지 매년 250억㎥ 늘리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또 카자흐스탄의 석유 프로젝트에서 300억 달러에 해당하는 8.33%의 지분을 매입했다.

2014.05.21 13:16

2분 소요
PERISCOPE GLOBAL VIEWPOINT - 팽창하는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

국제 이슈

중국은 에너지 접근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서쪽의 중앙아시아를 공략했다. 이제는 중국의 눈이 북쪽으로 향한다. 북극해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에 접근하고 편리한 대양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르웨이로부터 일부 영토를 매입할 생각이다.홍콩의 약 세 배 크기로 미개척지인 스발바르 제도(노르웨이령)를 말한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 정부는 최근 피요르드 지형인 스발바르 제도를 국제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그곳에는 석탄 2000만t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세계 최대 정치·경제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에너지 전문가 에밀리 스트롬키스트는 뉴스위크 온라인 자매지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극 지방의 탄화수소가 석유·천연가스의 마지막 개척 대상이다. 급증하는 중국의 에너지 수요와 좀 더 효율적인 북극해 항로에 대한 관심이 결합돼 중국 기업들이 새로운 북극해 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잠재적인 석탄 매장량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에 따르면 노르웨이 극지방 연구학회의 윌리 외스트렝 부대표는 중국이나 다른 비북극해 국가들이 스발바르 제도를 소유하면 장기적인 북극 탐사를 시작할 교두보만이 아니라 북극 지방에 영구한 근거지를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중국의 그런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1년 부동산 재벌 황누보 중쿤투자그룹 회장은 아이슬란드에서 그보다 더 큰 땅을 매입하려 했다. 그는 2억 달러에 입찰했지만 영토의 외국인 소유가 지나치다는 아이슬란드의 우려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또 온라인 시사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국영 에너지 대기업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아이슬란드의 석유개발 기업인 아이콘 에너지와 공동으로 아이슬란드 동남부 해안 지역의 에너지 자원 개발권을 획득했다.세계 전체의 개발되지 않은 탄화수소 매장량 중 20% 이상이 집중돼 있는 이곳에 눈독을 들이는 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다. 북극 평의회(북극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안국 기구)의 8개 회원국 중 최대 주주는 러시아다. 러시아 북극 지방의 생산은 GDP의 10~15%, 수출의 25%를 차지한다.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FIAA)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국가들(북극해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25%를 소비한다)만이 아니라 미국도 이 지역의 주요 주자로 부상했다.중국은 근년 들어 급속한 산업화와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세계에 전방위적인 진출을 꾀했다. 중국 기업들은 해외의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를 크게 늘렸다. 예를 들어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SINOPEC)는 캐나다와 북해에 투자했고, CNOOC는 캐나다 에너지회사 넥센을 인수했으며, 중국 국영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는 미얀마와 중국을 잇는 석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법률회사 브레이스웰 앤 줄리아니의 에너지 담당 대런 스폴딩은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 년 동안 중국 국영기업들이 경매 과정, 특히 에너지 부문 입찰에서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런 입찰에 성공하면서 중국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입지를 넓혔다.”한편 근년 들어 중앙아시아에도 중국의 에너지와 천연자원 투자 중 많은 부분이 집중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중앙아시아를 순방하면서 여러 건의 에너지 개발계약을 체결했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공급을 2020년까지 매년 250억㎥ 늘리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또 카자흐스탄의 석유 프로젝트에서 300억 달러에 해당하는 8.33%의 지분을 매입했다. 온라인 매체 허핑턴 포스트에 따르면 그 외에도 중국은 우즈베키스탄의 석유·천연가스·우라늄 프로젝트 지분을 150억 달러어치 인수했다.

2014.05.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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