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6

강남 대항마는 잠실?…개발 호재로 날개 달았다 [강남 재건축⑤]

부동산 일반

‘잠실’이 한강변, 뛰어난 인프라, 대형 개발 호재 등에 힘입어 강남권 중심이 되기 위한 발돋움에 나섰다. 잠실 일대에는 재건축으로만 1만9000여 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선다. 일각에서는 잠실이 머지않아 강남의 중심 입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정비사업 업계에 따르면 잠실에는 총 1만9000여 가구가 공급되는 5건(주공5단지, 우성1~3차, 장미1~3차, 진주, 미성·크로바 맨션 등)의 재건축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여러 개발 호재도 맞물려 있다. 강남권 최대 개발사업이라 불리는 잠실스포츠·마이스(MICE) 복합공간 조성사업을 필두로 대형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 MICE, GBC, 영동대로환승센터 등 대형 개발 호재 가득한 잠실 잠실 마이스사업은 사업비만 2조160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서울의 랜드마크사업이라는 상징성까지 지니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약 35만㎡ 부지에 전시·컨벤션 및 야구장 등 스포츠, 문화시설과 이를 지원하는 업무·숙박·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복합 시설 기준 국내 최대 민간 투자 규모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한화컨소시엄을 잠실 마이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시는 이번 달부터 우선협상대상자와 실시협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착수한 뒤 2023년 상반기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착공 예정일은 2023년 하반기, 완공은 2029년으로 예정됐다. 잠실 일대에는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 영동대로 광역환승센터 조성, 올림픽대로·탄천동로 지하화 사업 등이 착공했거나 착공을 앞두고 있다. 이들 대형 개발이 속속 완공되면 잠실은 삼성동 무역센터부터 탄천과 한강을 포함한 종합운동장까지 갖춘 서울의 강남 핵심축이 될 전망이다. 잇단 개발 호재를 방증이라도 하듯 2020년 국토교통부는 6·17 대책을 통해 잠실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여러 대규모 개발사업이 이뤄지면서 땅값이 급등하고 투기세력이 유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서울시도 잠실을 포함한 강남 일대 총 14.4㎢를 지난해 6월 23일부터 올해 6월 22일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 재건축으로 1만9000여 가구 공급되는 잠실 잠실 일대 재건축 시장은 이미 활황이다. 잠실 재건축 대장인 잠실 주공5단지를 비롯해 잠실우성1~3차, 장미1~3차, 잠실진주, 잠실 미성·크로바 맨션 등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부분 1970~1980년대 지어진 구축 아파트들로 재건축이 완료되면 잠실 일대에만 1만9000가구가 넘는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 중 하나인 잠실 주공5단지는 정비계획안이 마련된 지 6년 만에 심의 통과가 이달 중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잠실 주공5단지의 정비계획안이 통과되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안건 상정 자체를 보류하며 진행되지 못했던 강남 재건축이 다시 재가동 된다. 재건축시 기존 3930가구 규모가 6827가구, 최고 50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잠실 주공5단지는 지난해 11월 전용면적 82㎡ 기준으로 32억788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다. 전달에 기록한 신고가 31억3100만원을 한 달 만에 갈아치웠다. 주공5단지 외에도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후 비교적 재건축 진행 속도가 빠른 곳은 잠실진주와 잠실 미성·크로바 맨션이다. 잠실 진주아파트는 지난해 9월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를 거쳐 착공만을 앞둔 상태다. 잠실 미성·크로바 맨션은 2018년 7월 관리처분인가 2019년 상반기 이주까지 마쳤지만, 특화설계 문제로 서울시 건축심의 통과가 미뤄지면서 사업 진전이 더뎠다. 이후 조합은 기존 설계안 일부를 변경했고, 지난해 8월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현재 사업시행 변경인가 막바지 절차를 진행 중이다. 특히 장미 1·2·3차는 오세훈표 민간 재건축 사업인 신속통합기획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빠른 사업 속도로 재건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신통기획은 통상 5년이 걸리는 정비사업 인가 절차를 대폭 줄여 2년 내로 진행하는 것이다. 잠실우성 1·2·3차도 지난해 6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재건축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 엘리트(엘스·리센츠·트라지움) 아파트도 신고가 행진 잠실이 가진 인프라 개발의 기대감과 재건축 정비사업으로 인한 대규모 새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자 잠실의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잠실 주공 1~4단지가 재건축된 엘스, 리센츠, 트라지움, 레이크팰리스 등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지정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비웃듯 지난해에도 신고가 행진을 이어나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잠실 엘스는 전용 84㎡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18일 27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직전 신고가 기록은 같은 달 초에 기록한 26억원이었다. 단 며칠 만에 신고가를 새로 썼다. 이 단지는 지난달 21일에도 26억4500억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모두 전용 84㎡ 기준으로 23억~27억원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기 전인 2020년 5월에 이 단지들은 17억~20억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그만큼 잠실의 미래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도 잠실의 미래 가치 상승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당 지역의 가치는 지역의 미래 발전 가능성에 따라서 올라간다”며 “잠실 마이스 개발, 롯데월드타워 등 잠실이 가진 특수성을 고려하면 잠실의 미래 가치는 지금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김두현 기자 kim.doohyeon@joongang.co.kr

2022.01.15 12:17

4분 소요
사업비 2조 '잠실 마이스'…우선협상대상자에 한화·HDC 컨소시엄 선정

부동산 일반

사업비 2조1600억원에 달하는 잠실 스포츠·MICE(마이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한화·HDC컨소시엄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서울시는 '잠실 스포츠·MICE(마이스) 복합공간 조성 민간투자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한화건설이 주간사를 맡은 '서울 스마트 마이스 파크'를 지정한다고 10일 밝혔다. 잠실 마이스 민자 사업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약 35만㎡ 부지에 전시·컨벤션 및 야구장 등 스포츠, 문화시설과 이를 지원하는 업무·숙박·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복합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투자사업이기도 하며 총사업비는 2조1672억원에 이른다. 한화 컨소시엄에는 한화건설, HDC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중흥건설, 우미건설, 하나금융투자, 신한은행, 이지스자산운용, HDC자산운용, 킨텍스, 넥슨, 아이파크몰,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리조트, 한화큐셀, 한화시스템, 메가존 등이 함께했다. 서울시는 이른 시일 내에 협상단을 구성해 빠르면 내년 1월부터 우선협상대상자와 실시협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착수한 뒤 2023년 상반기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협상 단계부터 본 사업으로 인한 교통·환경 등 각종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며 ”지역 주민, 시민,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설계안을 확정한 후 2023년 하반기 착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7월 제3자 제안 재공고 이후 이달 7∼9일 평가위원회의 종합 평가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한화 컨소시엄의 차순위에는 한국무혁협회가 주간사를 맡은 '글로벌복합마이스'가 선정됐다. 서성만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은 "잠실 스포츠·MICE 민간투자사업은 서울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줄 핵심 프로젝트"라며 "양질의 국제업무 인프라 조성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초일류 글로벌 도시 서울을 만들어나가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서울시와 협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두현 기자 kim.doohyeon@joongang.co.kr

2021.12.10 15:09

2분 소요
공적자금과 아름다운 이별, '한화생명 주가'에 달렸다

은행

정부는 부실기업의 재기‧회생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공적자금'을 비롯해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대출 등 이른바 '정책금융'이다. 정책금융의 주체는 은행이고, 이 은행의 최대 주주는 대한민국 정부다. 사실상 국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것이다. 1조원 이상 지원을 받았던 국내 기업의 현 상황은 어떤지 가 대표 기업 8곳을 분석했다. 우리나라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은 29%다. 창업기업 10곳 중 7곳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치열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74년 넘게 역사를 쓰고 있는 기업이 있다. 1946년 대한생명으로 시작해 2012년 사명을 바꾼 한화생명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속에 수많은 곡절이 있었지만, 한화생명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위기는 1999년이었다. 당시 한화생명의 전신인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과 부실대출로 누적 결손금만 2조2906억원에 달했다. 결국 정부는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했고, 그 해 11월, 예금보험공사(예보)는 2조5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정상화가 힘들어지자 예보는 2001년 9월, 1조5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대한생명의 파산을 막기 위해 총 3조5500억원의 혈세를 들인 것이다. ━ 부실기업의 화려한 부활, 공적자금 회수 모범사례로 정부는 당시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신경 써야 하는 부실기업들이 넘쳐났다. 기업들을 가능한 한 빨리 처분해 손을 털고 싶었다. 결국 공적자금을 투입한 3년여 만인 2002년, 한화컨소시엄에 대한생명을 매각했다. 한화는 정부가 매각을 시도했던 1999년부터 대한생명 인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1999년 6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당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입찰제안서를 직접 제출한 것이다. 인수 절차 시작 단계부터 그룹 총수가 모습을 드러낸, 상당히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보는 2002년 10월, 대한생명 지분 51%를 한화그룹이 주축이 된 한화컨소시엄에 넘겼다. 매각 대금은 8236억원이었다. 당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는 여러 뒷말을 낳았다. 외환위기 후 제조업 분야 대기업에 대형 금융기관이 넘어간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자본의 금융 부분 진출을 막겠다던 정부의 원칙이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이를 두고 당시 특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한화의 외환위기 후 부실경영, 분식회계, 재무불건전, 충청은행·한화종금 등 계열사에 공적자금 투입, 보험감독규정에 명시된 대규모기업집단의 부채비율 기준 초과 등을 지적하며 보험업법의 출자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대주주 등이 경영 부실에 직·간접적 책임이 없고, 당국이 정한 경제적 책임을 이행한 경우에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인허가 규정을 완화하기도 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헐값 매각 논란도 있었다. 총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지분 51%를 팔면서 당장 손에 쥔 돈은 8236억원이었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의 23.2%를 건지는데 그친 셈이었다. 당시 대한생명의 불투명한 미래를 고려하면 남은 공적자금 1조9350억원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또다시 전면에 나섰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된 2002년 12월, ㈜한화 대표이사 자리를 떠나 대한생명 대표이사로 옮긴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생명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보수 근무”를 선언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김 회장은 대한생명이 일정 부분 궤도에 오른 2년3개월 후 ㈜한화 대표로 복귀했다. 대한생명은 한화에 인수된 지 6년만인 2008년 흑자로 전환했다. 총자산도 100조원을 넘는 성과를 거뒀다. 탄력을 받은 대한생명은 201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됐다. 공적 자금까지 투입됐던 부실 금융회사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동시에 기업 가치 상승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모범사례가 됐다. ━ 낮은 주가로 잔여 지분 매각 시점 불투명 예보는 2010년 대한생명이 상장하면서 지분 24.75%를 취득했다. 이 중 8.3%를 매각해 1590억원을 손에 쥐면서 남은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후 당국은 ▶2015년 9.5% ▶2017년 8월 2.75% ▶같은 해 11월 2.5% 등 지분을 잇달아 매각하며, 공적자금 2조4729억원을 회수했다. 현재 예보가 보유한 한화생명 잔여 지분은 10%, 금액으로는 1조771억원의 공적자금이 남은 상태다. 최근 들어 한화생명에 투입한 공적자금 회수를 놓고 다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예보의 행보 때문이다. 예보는 지난 4월 9일, 우리금융지주 지분 2%(약 1444만5000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매각해 공적자금 1493억원을 추가 회수했다. 한화생명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사인 우리금융지주의 지분을 털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보는 2022년까지 2~3차례에 걸쳐 남은 지분을 모두 매각할 계획이다. 공적자금 회수를 결정하는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도 지난해 7월과 8월, 매각소위원회와 간담회를 열고 예보의 한화생명 잔여지분 10%의 매각 여건을 점검했다. 그러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예보가 한화생명 주식을 마지막으로 처분한 때는 2017년 11월. 당시 예보는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세일) 방식으로 주당 7330원에 한화생명 주식 2.5%(2171만74주)를 매각했다. 이를 통해 공적자금 1591억원을 회수했다. 잔여지분 10%(8658만3000주)를 매각해 1조771억원 이상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주당 가격은 1만1400원이 넘어야 한다. 공적자금 회수 조치가 당장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화생명 주가가 2018년 이후 하락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지난해 3월에는 주당 881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지금은 3000원대에서 주가가 형성되고 있다. 5월 10일 기준 한화생명 주가는 371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당국은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상환기금)이 종료되는 2027년까지 한화생명 잔여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환기금은 IMF 외환위기 때 금융 구조조정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예보에 설치한 기금이다. ▶금융사 특별기여금 ▶공적자금 회수금 ▶채권 발행으로 기금을 조성한 뒤, 구조조정 투입자금의 원리금을 갚는 데 사용한다. 이 기금은 공적자금상환기금법에 따라 2027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가진다. 앞으로 6년 안에 한화생명의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장 후에도 조 단위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른 기업과는 다르게 한화생명은 그래도 성공적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공적자금’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남은 공적자금 1조원을 회수할 시간이 이제 6년이 남았다.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지는 한화생명의 주가에 달려 있다. ━ 공자위 “주가는 여러 매각 기준 중 하나” 당국은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예보 관계자는 “매각 여부나 시점을 결정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공자위도 같은 입장이다. 공자위 관계자는 “한화생명, 우리금융과 같은 주요 자산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시장 여건이나 가격 등 여러 가지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타이밍이 됐다고 판단됐을 때 매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지분 매각 당시 주가가 기준이 될 것이라는 시장 관측에 대해서는 “특정 주가에 도달해야 매각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주가는 매각을 결정할 때 여러 기준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잔여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준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보는 앞서 2019년 5월, 한화생명 지분 매각 주관사로 씨티증권과 삼성증권을 선정한 바 있다. 계약 기간은 최장 2년으로 만료 시점이 곧 다가온다. 이에 대해 공자위 관계자는 “(연장 혹은 재선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어떻게 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1.05.11 12:22

5분 소요
[M&A는 왜 성공하기 어려운가? (1)]기업문화 . 인사 문제부터 챙겨라

산업 일반

예금보험공사와 한화그룹은 지난 10월28일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대한생명을 한화컨소시엄에 매각하는 내용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인수 그리고 조흥은행을 접수하려는 금융권의 치열한 물밑 싸움…. 금융권을 중심으로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 급보들이 언론매체를 오르내리며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DJ 정부 출범 뒤 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줄을 이었던 M&A 열기가 연말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이런 M&A 바람은 80∼90년대 이후 기업 성장전략의 중심이었던 세계적인 M&A 붐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00년 기준 세계 직접 투자의 90%(약 1조1천억 달러)가 M&A에 투자됐다고 하니, M&A는 규모나 거래 빈도 면에서 기업의 보편적인 경제활동으로 자리잡은 모습이다. 국내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의 직접 투자는 기업 매물을 노린 M&A가 주류였다. 반면 요즘 들어 그동안의 구조조정 노력을 통해 국내 기업끼리 M&A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특히 금융계에서 일고 있는 M&A 폭풍은 시장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자발적인 합종연횡이란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금융기관이 M&A를 통해 대형화·겸업화 추세로 나아가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IT 투자에 들어갈 비용 확보, 예대마진 감소에 대처할 다양한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 등 경영 여건이 어느 때보다 척박하다. 더구나 M&A를 빼곤 이런 경영 환경에 대처할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기관 간 M&A 또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전략적·재무적으로 심도 깊게 검증된 M&A라 하더라도 성공을 보장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5억 달러 규모가 넘는 3백여개 기업의 M&A 사례 가운데 57%가 경쟁사를 초과하는 주주이익 달성에 실패했다. 또 2000년 한 해 동안 이뤄진 10대 M&A 기업들을 보면 주주들의 곡소리만 남았을 뿐이다. 잘해보자고 했던 노력이 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걸까? 여러 가지 분석 가운데 비교적 설득력 있게 들리는 건 바로 인적자본 이슈(people-side issues)다. 예컨대 1990년대 미국에서 이뤄진 1백73개의 대규모 M&A 사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경영진 사이의 스타일 차이, 즉 경영진의 문화적 차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3백50억 달러의 딜로 98년 최대 규모의 M&A 사례였던 AHP(American Home Products) Corp(제약)과 Monsanto Corp(화학) 간의 합병도 결국 두 회사의 문화적 차이로 재난을 피할 수 없었다. 가정적이며 합리적인 저원가 원칙이 뿌리깊었던 AHP와 다소 과격하고 진취적이었던 Monsanto는 심각한 문화 충돌을 보였다. 프랑스와 독일도 비슷했다. 85%가 넘는 합병 사례에서 이런 문화적 또는 인사 제도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반대로 영국(1백91개)과 프랑스(1백55개)의 기업 간 M&A에서 사후 성과가 뛰어난 기업을 보면, M&A 과정에서 문화·인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였고, 구체적인 행동도 취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일련의 사례들이 암시하고 있는 내용은 결국 M&A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의 소프트한 부분, 즉 인적자본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다. ■기업문화의 충돌과 기업문화 실사(Due Diligence)=서로 다른 가치관과 스타일을 갖고 있는 조직이 통합에 실패할 때 M&A는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자유분방한 한일은행의 문화와 관료적인 서울은행의 문화가 충돌한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어느 기업문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두 문화를 융합하는 전략적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기업문화 실사는 이런 측면에서 M&A 뒤 위험을 미리 측정하고, 대비하기 위한 작업이다. 흔히 많은 M&A 사례에서 보면 실사 작업 때 세무·법률 분야의 실사는 심도 있게 진행하지만 인적자본이나 기업문화의 실사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M&A 실패의 한 원인이 됐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프랑스계 회사가 국내 기업을 인수했을 때 세무·법률 분야는 면밀하게 조사했지만 악화된 노사관계 문제는 잘 몰라 큰 진통을 겪기도 했다. 특히 M&A 전 퇴직금 관련 충당금의 설정 문제라든가, 기존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급여 개선 등의 내용을 약속한 사실, M&A 발생시 임원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기로 한 규정 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M&A에 따른 인적자본 문제를 풀려면 딜이 끝난 뒤가 아니라 M&A 대상 선정 때부터 고민해야 한다. ■인사통합 계획 수립과 실행 (1백일 통합 계획)=M&A에 따른 인적자본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 못지않게 시점도 매우 중요하다. 어느 시점에서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냐에 대한 치밀한 계획이 요구된다. 실제로 M&A 뒤 1년 동안 아무런 액션 없이 방치하다 그 때부터 통합 작업을 했던 어느 기업의 경우 통합 작업 시점에서 이미 고객의 30%를 경쟁사에 빼앗기고, 생산성은 50% 감소했다. 초기 통합은 우수 직원 이탈과 직원 동요를 최소화하는 것이 주요한 관건이다. 실제로 GE캐피탈처럼 M&A를 통해 성장한 회사의 경우 딜 이전·딜 종료일·딜 종료 후 일주일 등 일 단위의 전략적인 행동계획을 준비하고 이를 다시 60일·1백20일·1백80일 계획으로 확대, 치밀하게 실행하기도 했다. 통계적으로 M&A 뒤 3개월 이내 별다른 행동이 없을 경우 고객의 30%가 이탈한다는 결과는 참조할 만하다. ■M&A 과정에서 핵심인재 유지=인수합병이라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환경에서 직원들은 지위와 급여의 안정성 그리고 경력과 비전 등과 같은 ‘자신’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모든 관심을 이에 쏟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가장 높은 ‘자발적 이직률’을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기업의 핵심인재들이다. 따라서 핵심인재 이탈 방지 계획이 딜 전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돼야 하며 체계적인 핵심인재 이탈 방지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M&A는 성급한 계획이 될 것이다. ■통합기업의 최고경영진 선임=국내 M&A 성공사례를 분석해 보면 예외 없이 발견되는 성공 요인이 바로 다문화 융합 능력을 갖춘 최고경영진의 유무다. 국내 M&A 성공사례로 꼽히는 볼보코리아의 경우 인수 대상 선정과 실사 작업 때부터 본사 최고경영진의 지대한 관심과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M&A에 따른 인적자본 문제를 최소화했다. 또 인수 뒤에도 한국 문화·한국 기업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최고경영진의 노력으로 국내 직원들을 한마음으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반면 실패사례 때도 어김없이 자문화 중심적인 최고경영진이 등장한다. 나의 경험으론 누가 새로운 조직의 최고경영진이 되느냐가 성공의 반을 담보한다. 새로운 조직의 비전과 새로운 기업문화에 적절한 리더십을 엄격하고 전문적인 평가 과정을 거쳐 선정하는 작업은 딜을 전후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휴먼컨설팅그룹은 글로벌 표준이 적용되기 쉽지 않은 인사·조직 분야에서 외국계 인사·컨설팅 회사와 경쟁하고 있는 국내 기반의 인사·조직 전문 컨설팅 회사다. 컨설턴트 대부분이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금융·화학·자동차·미디어·교육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컨설팅 경험을 갖고 있다.

2002.11.14 00:00

5분 소요
大生 인수한 ‘승부사 김승연’

산업 일반

김승연 회장 지난 9월23일 김연배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통상대사로 유럽에 머물고 있는 김승연(50) 한화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 오전 10시에 열린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생명을 한화컨소시엄에 매각하는 본계약이 최종 승인됐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3년을 끌어온 한화의 대생 인수가 마침내 확정됐다는 낭보였다. 김회장은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한화 측도 별다른 축하행사를 하지 않았다. 이날 저녁 대생 인수 특별팀의 몇몇 직원들이 맥주 파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인데, 샴페인부터 먼저 터뜨려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예상보다 비싼 가격으로 대생을 인수했다”며“대생 인수를 무조건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화가 대생을 인수한 것은 그러나 재계의 판도를 바꿔 놓은 ‘사건’이다. 재계서열 10위(공정위 지난 4월 기준, 공기업 제외)였던 한화그룹은 이로써 현대차그룹에 이어 재계서열 5위권에 진입했다. 25개 계열사에, 총자산 규모 11조5천억원인 한화는 당초 올해 매출액 8조3천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총자산이 26조원에 달하는 생명보험 업계 2위(보험료 기준)의 대생을 인수함으로써 한화의 총자산은 단숨에 3배 이상의 규모로 늘어났다. 한화, 재계 5위 급부상 올해는 김승연 회장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해다. 우선 1952년 한국화약을 모태로 창업한 한화그룹이 창업 50돌을 맞았다. 또 최순영 전 대생 회장 측이 벌인 저지 로비를 뿌리치고 대생을 인수함으로써 금융전문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도 그는 별 말이 없다. 그는 지난 9월 초 출국, 아직 귀국하지 않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 활동과 한미교류협회 회장·경제통상대사 등 대외활동이 많아 미국과 유럽에 머물고 있다”며 “대생 인수와 관련된 주요 현안들은 매일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의 장기 출장 배경에 대해 한나라당이 대생 인수 로비 의혹을 폭로, 지금 귀국하면 자칫 이 문제가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해석은 김회장이 지난 81년 그룹 회장에 오른 후 겪은 우여곡절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92년과 그 이듬해 그는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의 재산싸움’과 ‘람보별장’ 불법 매입사건에 휘말렸다. 미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 소유였던 별장을 4백7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이 한 시민단체에 의해 폭로됐을 땐 5개월 동안 해외에 머물렀다. 이후 그는 ‘람보별장’ 매입 자금 출처 조사에서 외국은행에 불법으로 계좌를 개설, 1백10만5천 달러를 빼돌린 것이 밝혀져 그해 11월30일 구속됐다. 그는 50여일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구약성경 욥기 8장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에 의지해 견뎠다고 한다. 94년 1월 중순 그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백80만 달러(47억여원)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재판부는 “김피고인이 중동에서 건설공사를 수주하면서 지급한 커미션을 되돌려받아 이 돈으로 호화별장을 구입한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나, 그가 이를 깊이 뉘우치고 있고 해외사업 확장을 위해 로비용으로 쓴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회장은 다시 해외로 나가 6개월을 보냈다. 이에 대해 외화 밀반출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자숙의 의미였다고 한화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이후 그는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에 오른 그는 본래 ‘거칠 것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당시 그가 국세청에 신고한 상속세는 70억원으로 최고의 상속세 납부자로 기록됐다. 요즘의 재벌 총수들처럼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우회증여를 하는 등의 편법을 쓰지 않았다. 그룹 회장직 수행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최근 한화그룹이 발간한 50년사를 보면 김회장이 취임한 시기를 제2의 창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1981년 10월 「다이너마이트」지(옛 한화그룹 사보)에 실린 김회장의 취임 일성을 보자. “새 시대에는 확고한 가치관을 지닌 경영철학 위에 새로운 기업상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동안의 좋은 전통은 계속 유지, 발전시키고 과거의 누적된 문제점은 솔직히 노출시켜서 과감하게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 민간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신속한 업무처리와 창의성 있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조직이 딱딱해지는 것, 즉 관료주의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룹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관료주의화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 점을 고치지 않고서는 새 시대의 새로운 기업으로서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울림이 있다. ‘무서운 젊은 회장’ 김회장은 취임 후 특유의 꼼꼼한 성격으로 경영 전반을 장악해 나갔다. 취임 후 한동안은 사무실에 비치된 임직원 인사카드를 집에까지 들고가 일일이 신상을 파악했다. 한화그룹의 퇴직 임원인 K씨는 “김회장은 어린 나이에 그룹 회장에 올라 안팎의 많은 적들과 싸워야 했다. 자신을 은근히 깔보는 원로경영인들, 회사와 불합리한 관계에 있던 외국 기업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그는 상당한 ‘오기’와 뚝심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美 유니온 오일과의 합작회사인 경인에너지(옛 한화프라자)의 경영권을 장악할 때의 일이다. 경인에너지는 계약상 회사의 경영권을 89년까지 유니온오일 측이 행사하게 돼 있었다. 한화 측으로서는 이 회사에 근무하는 국내 직원들의 인사권까지 유니온오일 측의 사전동의 없이는 행사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이 회사는 인재들의 유출이 잦았다. 일을 잘해도 미국 사람 밑에서는 중역으로 승진할 기회가 없다고 봤던 것. 김회장은 인사 담당 중역을 불러 경인에너지의 몇몇 부·차장급 간부사원들을 그룹 종합기획실로 전보 발령하라고 지시했다. 선대 회장인 고 김종희 창업주도 넘보지 못했던 경인에너지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유니온오일 측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이 일로 당시 경인에너지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는 라이슨씨가 그를 찾아와 계약위반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김회장은 “유니온오일이 경인에너지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것은 을사보호조약이나 마찬가지”라고 응수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후 그는 주한미국상공인협회 회원들 사이에 ‘코메리칸 깡패’로 통했다. 그룹 안에서는 ‘무서운 젊은 회장’으로 불렸다. 김회장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혁신’이다. 그는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인 90년대 중반부터 경영혁신을 강조했다. 지난 95년 계열사 사장들로부터 ‘회사 기본 운영계획 및 제3의 개혁’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지금은 변혁기의 상황이다. 국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혁기이며,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가 오히려 발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96년 그룹 창립 44주년 기념사에선 “밥값이나 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는 임원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는 “김회장이 이처럼 다소 과격하다 싶은 내용의 발언을 하게 된 것은 그룹 내에 이류의식·패배주의·적당주의·무사안일이 팽배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조정과 개혁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과 관행의 문제를 과감히 혁파하지 않고는 앞으로 10년을 버텨내기 힘들다는 것이 김회장의 생각이었다. 위기론이었다. 구조조정의 마술사 김회장은 96년 창립 44주년 기념식에서 “제3의 개혁은 결국 구호나 말로만 떠들어대는 개혁이었고, 실제적인 개혁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94년부터 2년 동안 추진해 온 제3의 개혁을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한화그룹을 21세기형 사업구조로 조정하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우선 직급간의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경쟁과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장기 근속자에게 수여하는 메달의 직급별 차등을 없앴고, 전문화를 강조하면서 기능직 사원들의 급여체계를 개선해 직책간의 벽도 허물었다. 그가 건 드라이브가 먹혀들어간 것은 그 자신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기 때문이었다. 1998년 초 한화에너지는 자금회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유를 도입할 자금마저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김회장은 그해 2월 은행권에 한화에너지에 대한 협조융자를 신청하면서 계열사 주식과 금융자산 등 사재를 담보로 제공했다. 회장의 집이 은행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은 회사 정상화에 대한 그의 의지에 신뢰를 보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소유주의 사재출연을 요청한 이후 실제로 재벌 회장이 사재를 담보로 기업운영자금을 마련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한화바스프우레탄과 한화NSK정밀·한화GKN·한화종합화학 과산화수소 사업부문 등 비주력 사업뿐 아니라 비교적 수익성이 높고 재무구조가 건실한 계열사까지 매각했다. 97년 말 32개였던 계열사 수는 98년 말 15개로 줄었고, 자산도 12조원에서 7조8천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차입금은 8조원선에서 3조6천억원으로 줄어 몸집이 가벼워졌다. 규모가 작아진 반면 알찬 기업으로 거듭난 셈이다. 그는 올해 그룹 창립 50돌을 맞아 세 가지 혁신을 내세웠다. ‘의식의 혁신·조직의 혁신·사업구조의 혁신’이다. 인물평은 엇갈려 김회장에 대한 인물평은 크게 엇갈린다. 그에겐 재벌 총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순박하고 다정다감한 면이 있다. 지난 98년 10월 故 이성수 전 경향신문 사회부장의 빈소를 찾은 김회장은 8시간 동안 목놓아 통곡했다. 초등학생이던 고인의 장남을 불러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회장과 이 전 부장, 두 사람은 한화가 경향신문을 경영할 당시 그룹 총수와 노조 지도자로 만나 인연을 맺었다. 김회장은 98년 12월 말 구조조정 과정에서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난 5천여명의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연하장을 보내면서 사보 「HANWHA」를 보내도록 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임직원들에 대한 배려였다. 99년 10월 한국시리즈에서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가 우승했을 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그는 급성백혈병으로 입원해 있던 유승안 코치(현재 감독)의 부인 이금복씨의 병실로 방문,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회장은 이씨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자 매우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회사 안에서의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직원들은 그를 위해서라면 불법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9월 한화그룹 비서실 과장 하모씨는 인천 인송중학교에서 치러진 제4회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 필기시험에 김회장의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김회장의 이름으로 응시했다가 수험표 대조 과정에서 감독관에게 적발됐다. 동력수상레저기구 면허는 모터보트·수상오토바이 등 5마력 이상의 추진기관이 달린 수상레저기구를 타기 위해 필요한 면허. 하씨는 “회장이 수상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것 같아 면허를 대신 따주기 위해 비서실에서 보관 중이던 회장 주민등록증을 갖고 시험에 응시했을 뿐 회장의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2002.11.07 00:00

7분 소요
韓火, ‘화약’ 털고 금융그룹 변신 始動

산업 일반

김승연 한화 회장 “그룹 발전을 위해서라면 회사 이름을 바꿀수도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올해 초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다. 올해로 창사 50주년을 맞는 한화그룹은 창업 반세기라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IMF 외환위기 이후 업계에서 가장 혹독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그룹이다. 특히 올해는 금융사업군을 그룹 성장축으로 한 ‘그룹 재도약’을 선포하는 등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연초 시무식에서 “유통·레저사업군은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기존의 제조사업군은 글로벌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도록 사업구조를 재편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또 “한화증권·한화투자신탁 등 금융사업군은 그룹의 성장축이 될 수 있도록 진행중인 프로젝트(대한생명 인수작업)에 전념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제2창사를 위해 대한생명 인수에 총력을 기울여 금융사업군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대한생명이 신동아화재·63빌딩 등과 함께 패키지로 매각될 예정이므로 대생 인수에 성공할 경우 한화는 생명보험·화재보험·증권·투신 등 광범위한 금융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돼 일약 금융전문그룹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혹독한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한화는 올 들어서도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선 업종별 전문화를 통해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그룹 주력사인 ㈜한화를 3개사로 분할하고 보유자산의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다. 한화는 지난 1993년 한국화약에서 한화로 사명을 변경한 뒤 여러 사업 부문을 차례로 인수·통합하면서 몸집을 키워왔다. 현 무역부문에 해당하는 골든벨상사를 지난 95년 1월 합병했으며 96년 1월에는 덕산토건을, 98년 말에는 한화기계를 합병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모색했다. 주력 ㈜한화 3개사로 분리 화약·무역·정보통신(CDMA)·건설·기계 등의 사업영역을 망라해왔던 ㈜한화를 화약·무역(벤처부문 포함)·우주항공 및 정밀무기분야 등 3개 분야에 사업역량을 집중키로 한 것. 혼재돼 있는 사업구조를 따로 분리해 부문별로 사업전문화와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자는 의도다. 화약·무역·우주항공 및 정밀무기 등을 전문으로 하는 ㈜한화는 올해 매출 3조3천5백20억원에 경상이익 5백22억원, 부채비율 1백41%를 달성하는 건실한 재무구조를 갖춘 우량회사로 거듭날 전망이다. 화약부문은 생산→유통→발파 등 토털 솔루션업체로 사업을 구조화하고 미사일 등 정밀 유도무기체제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인천공장(75만평)을 보은공장으로 통합·이전하는 등 현재 인천·여수·대전 등 전국 7곳에 있는 공장을 오는 2004년까지 2∼3개로 통합하고 이전한 후의 공장부지는 단계적으로 매각할 방침이다. 한화건설은 레저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부동산 사업 개발 전문회사로 키울 방침이다. 건설은 올해 수주규모 1조2천억원, 매출 7천48억원을 달성해 국내 건설업계 10위권 내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으며, 이를 위해 서울 서소문·소공동 사옥 등의 리츠(부동산 투자신탁)사업과, 이와 연계한 병원·호텔사업 등을 벌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화기계 역시 기존 산업·공작기계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 사업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키로 했다. 예컨대 고화질 평면TV용 액정화면 열처리장치인 ‘PDP소성로’ 등 미래형 신규품목을 집중 육성한다는 생각이다. 한화기계는 올해 매출 9백91억원에 부채비율 1백27%로 낮아질 전망이다. 금융사업군에 대해 전력투구했던 한화는 이제 서서히 그 가시적인 성과물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 3월21일 대한생명 인수전에 참여해온 미국 메트로폴리탄생명(메트라이프)가 협상 중단을 선언하면서 2파전을 벌여온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메트라이프측이 그동안 정부와의 협상과정에서 인수 후에 발생하는 부실부분에 대해서도 정부가 되사줘야 한다는 풋백옵션을 요구한 것이 협상결렬의 중요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생 인수자로 한화컨소시엄이 거의 확정적이다. 정부는 한화측과 인수지분 및 범위, 지급준비율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대부분 합의했으며, 매각대금 및 지급 여력비율 1백% 충족시 연장문제 등을 놓고 막바지 조정을 거쳐 빠르면 4월중 양해각서(MOU)를 체결키로 했다. 김승연 회장 행보 재계 주목 매각대금은 6천억∼7천억원 선에 절충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대한생명 지분 51%를 비롯, 서울 여의도 63빌딩, 신동아화재 지분(66%)을 1조원가량에 일괄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 정부측과 최종적인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2000년에 2천9백8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대한생명이 지난해에는 7천억원의 흑자를 낸 점을 들어 인수가격을 올려줄 것을 한화측에 요구, 막판 쟁점이 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헐값 시비가 나올 만큼 낮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생명보험업계의 경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대한생명의 미래가치를 후하게 쳐주기는 어렵다”고 말해 인수가를 놓고 정부측과 이견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메트라이프가 협상포기를 선언한 이상 한화컨소시엄(일본 오릭스그룹+호주 매커리보험)에 매각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 아무튼 올 한해는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에게는 뜻깊은 해가 될 것 같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승연 회장은 언제부터인지 말수가 적어지고 생각을 많이 했다. 기업구조조정을 한창 진행했던 98년보다 오히려 지난해부터 말수가 줄어들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지난해는 김회장에게 회장 취임 2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는 한해였다. 김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량기업들을 IMF사태 이후 상당수 매각해야 했다. 이를 두고 외부에선 ‘성공한 구조조정’이란 호평도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우량회사를 통째로 팔거나 지분을 매각할 때 무척 괴로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김회장은 ‘마취도 하지 않고 폐를 잘라내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화학과 경인에너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책감 같은 것이다. 김회장은 청년 나이에 그룹 회장 자리에 앉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카리스마가 강한 총수로 자리매김됐다. 이를 두고 한 한화그룹 계열사 사장은 “김회장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경영인을 관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간 거만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회장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올백으로 넘기는 헤어스타일을 즐겼는데 이것도 나이가 들어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전해진다. 김회장은 지독한 구조조정을 겪으며 그룹 창업 50주년을 대비하는 다양한 신규사업을 구상했다. 정보통신사업을 진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의도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회장은 금융업에 그룹의 미래를 걸었다. 원로 경영인인 박종석 한화증권회장, 경기고 동기인 진영욱 한화증권사장, 김회장의 인척인 안창희 한화투신운용사장등이 금융업 진출을 적극 권유했고 김회장이 최종 승인하면서 대한생명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룹 이름까지 갈아치울 각오가 돼 있다는 김승연 회장. 이제 대생 인수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창업 50주년을 맞는 올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름 변경과 새 로고 지정 등도 포함돼 있다. 한화의 이같은 변신에 대해 재계의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화종금과 충청은행을 살리지 못한 한화그룹이 단순히 ‘성장엔진’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의욕 하나만으로 무리하게 뛰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 구조조정을 잘해 놓고 핵심역량을 키워야지 신규사업에 눈길을 돌릴 때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그룹 의사결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면밀한 내외부 검토를 통해 공개적으로 그룹정책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회장이 구조조정본부 의견만 듣고 그룹 운명을 좌우할 신규사업 진출을 결정할 만큼 의사결정 구조가 폐쇄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의사결정이 빠를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밀실’에서 이뤄진 결정이라 독단적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아무튼 대생인수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화의 재도약은 재계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화그룹이 화약의 무거운 이미지를 털어내고 첨단 금융업으로 변신에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2002.03.29 00:00

5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