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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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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은행, 아람코와 60억달러 규모 기본여신약정 체결

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은 7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Aramco)와 향후 3년간 60억 달러 규모의 기본여신약정(Framework Agreement)을 체결했다고 밝혔다.기본여신약정이란 해외 우량 발주처를 대상으로 금융지원 한도금액과 지원절차 등 지원조건을 사전에 확정한 후, 우리기업의 해외사업 수주‧합작투자 등 개별지원 대상거래에 대해 신속히 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이날 윤희성 수은 행장과 지야드 알마르셰드(Ziad Al-Murshed) 사우디 아람코 CFO는 수은 여의도 본점에서 만나 이 같은 내용의 약정서에 서명했다. 두 기관의 이날 약정 체결은 수은이 우리 기업의 중동지역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원유 등 필수자원 공급망의 안정성 강화를 위해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이어 올해 1월 대통령의 UAE 국빈방문 등 중동지역 정상외교로 조성된 ‘제2의 중동 붐’을 지원하는 조치다. 아람코는 유가 상승에 따른 오일·가스 분야 투자 확대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차세대 에너지산업 육성 등으로 향후 신규 사업 발주를 크게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두 기관이 이날 60억달러 규모의 금융지원 약정을 체결한 만큼 ‘선(先)금융 후(後)발주’ 효과로 향후 우리 한국기업의 중동지역 수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원유·가스 등의 수입과 관련, 아람코 시설투자에 대한 수은의 금융제공으로 필수자원의 안정적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국내 원유수입의 30%가 사우디아라비아산으로, 우리나라 전체 원유수입국 중 1위를 유지 중이며,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가스를 독점 개발하고 있다.윤희성 행장은 이날 서명식에서 “수은이 중동 최대발주처인 아람코를 상대로 선제적인 금융협력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우리 기업이 중동시장 사업을 수주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서 “특히 수소‧신재생에너지 분야 협력을 위해 10억달러의 한도를 별도로 설정한 만큼 이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신시장 선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앞서 수은은 작년 1월 UAE 아부다비 국영 석유기업 ADNOC과 50억달러 규모의 기본여신약정을 체결한 바 있다. 수은이 일년 남짓한 기간 동안 ADNOC, 아람코 등 중동의 대표적인 국영 에너지기업 2개사와 연이어 거액의 금융망을 구축한 것이다.한편 수은은 우리 정부의 ‘2025년 해외건설 연 500억달러 수주 및 세계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 정책목표 달성을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다.

2023.03.0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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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해외건설 3.0시대’ 선언 “민·관 합동으로 원팀 구성”

건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해외건설·플랜트의 날’을 맞아 해외건설 3.0 시대를 선언한다. 국토부는 다음달 1일 기념식에서 원 장관이 2027년까지 해외건설 연 500억달러 수주와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 목표를 밝히며 해외건설 3.0 시대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원 장관은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민관 합동으로 팀을 구성해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고부가가치 분야 기술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정부는 한국의 우수한 스마트 기술과 한류 문화를 담은 인프라 패키지를 활용해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등 해외 인프라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원 장관은 다음 달 5일 사우디를 찾아 ‘원팀 코리아 로드쇼’를 열고 국내 기업들을 홍보한다. 원 장관은 “현지에서 네트워크를 견고히 구축해 외교 수주전의 첫발을 내디딜 계획”이라고 밝힐 예정이다. 해외건설·플랜트의 날 기념식에선 이상기 전 GS건설 부사장이 은탑산업훈장을 받는다. 이 전 부사장은 약 20여 년간 해외 현장에 근무하면서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호주 PPP(민간합작투자) 사업을 수주하고, 베트남 탄손낫 국제공항 간선도로 건설에 참여한 공로가 있다. 동탑산업훈장은 임용진 현대건설 부사장이, 철탑산업훈장은 최성환 대우건설 부장이 받는다. 또한 이병수 삼성물산 부사장 등 3명이 산업포장을, 정외환 현대엔지니어링 상무 등 4명이 대통령 표창을, 남관우 포스코건설 부장 등 5명이 국무총리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 한편 해외건설·플랜트의 날(11월1일)은 해외건설을 촉진하고 해외 건설인의 자긍심 고취와 사기 진작을 위해 지난 1965년 현대건설의 ‘태국 파타니-나리티왓 고속도로’ 해외건설 첫 수주일인 11월1일을 기념해 지정됐다. 이후 2005년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 격년제로 기념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승훈 기자 wavelee@edaily.co.kr

2022.10.3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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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업 해외건설 수주 낭보…올해 300억달러 달성 가능할까

부동산 일반

올해 우리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액이 2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목표액인 300억달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사우디 네옴프로젝트 등 대규모 사업이 대기하고 있는 만큼 올해 목표액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종합서비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한국기업의 해외 건설 수주액은 224억2841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늘어난 것이다. 수주건수도 349건에서 405건으로 16%, 시공건수도 2057건에서 2251건으로 9%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중동, 아시아, 태평양‧북미, 아프리카 순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동에서는 현재 66억달러를 수주해 전년 동기 대비 16억 달러 이상 많은 수주고를 올렸다. 아시아에서도 92억달러로 3억달러 더 많은 수주 금액을 기록했다. 태평양‧북미에선 29억달러, 유럽에선 26억달러를 수주해 전년보다 각각 14억달러, 4억달러씩 수주액을 확대했다. 아프리카에서도 10억달러를 수주해 2억달러 대비 5배 이상 수주고를 키웠다. 반면 중남미에서는 2억달러를 수주해 전년(8억달러)보다 부진한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건설업체별로는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 순으로 올해 가장 많은 수주액을 기록했다. 삼성물산은 49억547만달러로 수주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어 ▶현대엔지니어링(24억8488만달러) ▶삼성엔지니어링(24억3517만달러) ▶롯데건설(14억2330만달러) ▶현대건설(10억9493만달러) ▶대우건설(10억180만달러)이 10억달러 이상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9억8790만달러) ▶SK에코엔지니어링(5억8769만달러) ▶GS건설(5억557만달러) ▶엘티삼보(3억3168만달러)가 뒤를 이었다. 삼성물산은 올해 7월 미국 텍사스에서 19억1434만달러 규모에 달하는 테일러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신축 공사를 수주했다. 지난 3월에는 베트남에서 5억8279만달러 규모 연짝 3~4호 복합화력 발전 프로젝트 계약을 따냈고, 카타르에선 6억3787만달러 규모 카타르에너지 태양광 발전소 건설사업을 지난 6월 수주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7월 독일에서 5788만달러 규모 HMETC 신연구동 신축공사를 수주했다. 미국에선 지난 5월 3011만달러 규모 현대자동차 알라바마 신규차종 대응 증설공사를, 지난 3월 950만달러 규모 폐플라스틱 활용 석유화학제품 생산설비 기본설계(FEED) 계약을 체결했다. 6월 싱가포르 현대차그룹 이노베이션 센터 싱가포르 스마트 팩토리 차체와 도장 공장 공사(5086만달러)를 수주했고, 인도네시아에선 1월 롯데 인도네시아 뉴 에틸렌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8억6875만달러)와 4월 배터리셀 JV 공장건설 프로젝트(1억7284만달러)를 따냈다. 폴란드와 호주에선 각각 SK넥실리스 동박공장(2억6751만달러), ASM 더보 사업 기본설계(3358만달러)를 수주했다. ━ 국내기업 하반기 해외 수주 낭보…200억달러 돌파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2월 러시아에서 발틱 화학 플랜트 프로젝트로 11억4260만달러 규모 수주고를 올렸다. 미국에서는 5월 420만달러 규모 텍사스 액화천연가스 최종 투자결정 전 설계 계약을 체결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7월 6억8452만달러 규모 쉘 로즈마리&마조람 육상 가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한국 기업의 수주액은 올해 상반기만 해도 120억달러를 수주하는 데 그치면서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18%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연이은 수주 낭보를 알리며 해외 수주액이 200억달러를 돌파하고 올해 목표액인 300억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해외건설업계는 올해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이 정부 목표치인 300억달러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 네옴 프로젝트, 카타르 LNG 생산시설 확대, 쿠웨이트 세계 최대 석유화학 연구센터 건립 사업 등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프로젝트는 5000억달러를 투입해 사우디에 신도시를 조성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오는 10월 말~11월께 방한해 한국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네옴 프로젝트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입찰 일정이나 결과에 따라 수주 여부가 달라지겠지만 통상적으로 10월 말에서 11월 초나 내년 1월 중순께 건설사들이 수주 소식이 많이 몰리곤 한다”며 “최근 220억달러를 넘어섰고 올해 우리나라 건설업체 수주가 기대되는 사업장이 남아있기 때문에 목표액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중동 산유국들은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80~100달러의 국제 유가로 재정 여건이 대폭 개선됐다”며 “향후 정유·석유화학 공장 등 플랜트 시장의 발주 규모가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내 해외건설기업은 수익성 위주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구축했다”며 “해외 설계‧조달‧시공(EPC) 기업들이 자기자본이익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최근 중동에서 고전을 겪었던 우리 기업이 다시 중동에서 수주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도 국내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정부는 지난 8월 연 500억달러 수주, 세계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한 '해외 인프라 수주 활성화전략'을 수립했다. 정부는 최근 고유가에 힘입어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발주가 기다리고 있고 아시아·중남미에서도 개발수요가 증가하는 등 해외 인프라 시장이 활성화하는 분위기에 발맞춰 한국기업의 해외건설 시장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중동 붐을 일으킨 해외건설 강국으로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해외기업 저가 입찰 공세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해외 건설시장이 활력을 찾고 있는 만큼 정부와 공공, 민간이 한 팀을 이뤄 연 500억 달러 수주,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함께 뛰겠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jypark92@edaily.co.kr

2022.10.07 11:03

4분 소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4)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회장

CEO

포브스코리아가 한국경영사학회(회장 차동옥)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의 네 번째는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회장이다. 7월 20일은 운곡 정인영 회장 추모 10주기이기도 하다. 한라그룹은 정인영 창업주의 기업가정신과 관련한 자료를 제공하며 이번 기획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업을 다시 세우고 성장시켰던 운곡(雲谷) 정인영(1920~2006)을 흔히 ‘한국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곡은 부와 성공에 집착했던 단순한 경제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곡은 올곧은 경영철학을 실천한 한국의 프런티어 기업가였다. 최고 경영자로서 갖추어야 할 외국어 구사능력, 리더십과 자질 등 탁월한 창업가의 조건을 갖춘 진실한 기업가였다. 늘 책을 가까이하며 지행합일을 추구했던 인문주의자였고, 신 앞에서 겸손하게 살고자 했던 신앙인이기도 했다.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 재계의 거물이 살았던 다이내믹한 인생을 한 번 따라가 보자.정인영(鄭仁永)은 1920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마을에서 6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바로 위 친형이다. 불세출의 기업가를 형으로 두었으니 태생적 환경이 이미 기업가의 삶이었다. 소년시절에는 고향에서 한학(漢學)을 배웠고, 14세에 그의 형 정주영처럼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운곡은 YMCA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셰익스피어에 심취했다. ━ 주경야독하던 책벌레의 경영수업 1938년, 운곡은 19세에 뱃삯만 겨우 챙겨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낮에는 신문팔이와 트럭조수로 일했기에 밤늦게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독한 책벌레였다고 한다. “틈만 나면 고서점에 들렀고 휴일이면 서점에서 거의 시간을 보냈다. 한 서점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주인의 시선이 따가워 슬그머니 옆 서점으로 옮겨 읽던 책을 찾아 그 다음 페이지를 읽어나가는 징검다리 독서를 했다”고 한다. 사람의 인성은 성장기에 기틀이 잡힌다. 당시 학비를 모으기 위해 우동으로 끼니를 때웠던 경험은 평생의 근검절약과 독서습관으로 이어진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협상하며 공사를 수주하고, 세계 각지를 돌며 비즈니스 활동을 펼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운곡의 영어 실력도 사실상 이 시절에 연마한 기초로부터 시작되었다. 운곡은 아오야마 가쿠인대학(靑山學院大學) 영어과에서 2년 간 공부하다 태평양전쟁 발발의 소용돌이에서 중퇴하고 귀국한다.인생은 계획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운곡은 자서전에서 “전쟁이 나를 사업가로 바꿔놓았다”라고 썼다. 1948~1951년 운곡은 동아일보와 대한일보에서 기자로 활약한다. 6.25전쟁 중에는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미군통역관으로 일하게 된다. 당시 현대건설을 일으킨 정주영 회장을 도와 미군이 필요로 하는 사업, 예컨대 건설공사는 현대건설에, 물자보관 사업은 현대상운에 연결시켜주면서 기업경영활동에 참여하게 된다.운곡은 형 정주영 회장의 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1·4후퇴 후 부산 피난시절 때는 현대상운 전무를 맡아 일하게 된다. 1953년에는 현대건설의 전후 복구사업에 차질이 생겨 회사가 어려워지자 정주영 회장의 요청으로 현대건설 부사장을 맡게 된다. 현대건설은 그 후 미군이 발주한 인천 항만공사와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수주하면서 회생의 기틀을 마련했다. 1960년에는 건설업계 순위 1위로 성장하게 된다. ━ 5대양 6대주 넘어 세계로, 현대양행 창업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으니 독립해서 사업을 벌이겠다는 도전정신이 꿈틀댈 것은 당연하다. 현대건설의 기자재 수출입을 담당할 회사 설립을 구상한 운곡은 1962년 10월 1일 (주)현대양행을 창립한다. 그의 나이 43세 때다. 당시 운곡이 직접 지은 현대양행 사명(社名)은 “5대양 6대주를 넘어 세계로 나아간다”는 진취적인 뜻을 담고 있다.운곡이 창업한 현대양행은 이후 자동차부품을 생산하고, 건설 중장비를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해외 플랜트설비 턴키 건설 등 중공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경영학자들은 창업이후 운곡의 경영전략의 특징을 중공업 중심 전략에서 찾는다. 기계장비 산업을 비롯한 중공업을 일으켜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는 산업보국주의는 운곡의 경영철학에서 두드러지는 기업가정신이다.운곡의 중공업 전략은 이후 국가경제개발 제 2차 5개년 계획과 맞물려, 경제발전과 중화학 수출산업 강국으로 가는 선봉장으로서 대한민국 국가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세계 1위의 담수화 플랜트 수주를 하고 있는 두산 중공업의 창원기계종합공장은 본래 운곡이 계획하고 구상했던 대규모 종합기계단지였다. 당시 운곡의 인재양성의지로 다양한 해외 연수를 받은 엔지니어들이 현재 창원기계공장의 각 기술 분야별 전문가로 성장해 한국 산업 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운곡이 대한민국 중공업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유다.하지만 인생에는 평탄한 신작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운곡은 1980년 신군부의 ‘중화학공업투자조정 조치’로 ‘현대양행과 계열사’를 남에게 넘겨주는 큰 아픔을 겪게 된다. 피땀을 쏟아온 현대양행 창원기계공장을 빼앗겨 사업기반이 통째로 허물어지는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운곡은 담대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1980년 현대양행 안양공장 상호를 만도기계로 바꾸고 꿈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운곡은 ‘전 세계 1만여 도시로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담아 ‘만도(萬都)’라고 했다. 재기의 꿈을 담은 ‘인간은 할 수 있다’는 뜻의 ‘Man do’의 의미도 담았다. 운곡은 평생 희망을 붙들고 살았던 휴머니스트다. 이라는 논문을 썼던 최종태 서울대학교 경영대 명예교수는 특히 이 대목에서 “뜻을 세우면 길이 열린다고 보았던 운곡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의 신봉자이고 인간적인 낙관주의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1980년대 들어 국내외 자동차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자동차 부품기업인 만도기계와 한라공조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운곡도 그 기회를 타고 재기한다. 80년 그날로부터 11년이 지난 1991년, 한라는 매출액 1조원이 넘는 한국 27위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제2창업에 가까운 성공이었다. 사람들이 운곡을 ‘재계의 오뚝이’라고 부르게 된 사연이다. 운곡의 기업가정신을 계승한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운곡을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는 진정한 리더셨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따랐던 것은 아버지가 굳은 신념과 수많은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철학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얄궂다. 오뚝이처럼 재기한 운곡에게 또 한 번 큰 시련이 찾아온다. 1989년 7월, 운곡이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정인영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운곡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운곡은 아내 김월계 여사의 헌신적인 간호와 초인적인 재활노력에 힘입어 건강을 회복한다. 쓰러진 지 1년도 안돼 경영일선에 복귀하고야 만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운곡은 이제 ‘재계의 부도옹’으로 통하게 된다. 운곡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뇌졸중이 나의 반신을 마비시킬 수는 있어도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꿈과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육체적인 시련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그 후로 10년간 나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세계를 누비며 쓰러지기 전보다 더 정력적으로 일했다.” 운곡은 1990년대 들어 경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한라그룹을 글로벌기업으로 도약시켜 나간다. 한라그룹은 1992년 창립 30주년을 ‘국제경쟁력 강화의 해’로 설정, 경영체질의 국제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7월 1일, 운곡은 둘째아들인 정몽원 당시 만도기계 사장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조선, 중장비 플랜트, 해외건설 등 해외영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그룹 차원의 통합 해외영업본부를 발족한다. 운곡은 당시 휠체어에 의지해 밤낮으로 해외출장을 다녔다. 1994년 205일, 1995년 217일, 1996년 203일을 해외에서 일을 했다. 특히 해외 투자자들, 금융가들과의 협상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국제금융기관들은 운곡의 열정에 반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정인영이란 사업가를 보고 빌려 준다”고 할 만큼 운곡을 신뢰했다. 한라그룹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킨 운곡은 1996년 12월 24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된다. 창업 35년 동안 운곡 정인영이 이룬 성과는 대단했다. 한라그룹은 자산 6조 2000억 원, 21개 계열사를 둔 재계 12위로 성장해있었다. 한라그룹 성장사를 연구해온 남명수 인하대학교 교수는 “운곡은 경영자로서 성공적인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 정도경영을 확립했고, 그 위에 속도를 중시하고, 기초를 다지며, 규모를 확장시키는 경영활동을 실행했다”며 “운곡의 이 같은 성공적 기업 활동은 한라그룹의 재무성과로 이어졌고 매출, 자산, 자본 모두 성장하는 결과를 이루었다”고 한라그룹의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운곡은 이처럼 도전정신으로 한국 중공업의 씨앗을 심었고(1962~1979), 오뚝이 정신으로 한라그룹을 일으켜(1980~1996) 정도경영으로 한라의 성장발전 (1996-2006)을 도모했다. 운곡은 한국 중공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 산업보국의 사회적 책임경영을 다한 뒤 일선에서 물러났고 2세 경영의 정몽원 회장 체제가 들어선다. ━ 낙관주의자 운곡의 희망경영 철학 하지만 하늘은 운곡이 편히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운곡과 한라그룹은 뜻하지 않은 세 번째 시련을 겪게 된다. 1997년 12월 IMF 사태로 한라그룹은 부도를 내고 그룹해체의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한라건설(주)은 1999년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4000억원 규모의 화의 채무를 모두 갚았지만 알짜기업인 만도기계를 외국계 투자회사에 완전히 넘겨주어야 했다. 한라그룹 재기의 모태가 된 만도기계에 대한 운곡의 애정은 각별했다. 하지만 힘이 부쳤다. 운곡은 2006년 노환으로 영면하고 만다. 7월 20 일이다. 한국경영사학회는 “운곡은 투명한 정도경영, 열정적 도전과 개척정신, 창의적 혁신 등에 기반을 둔 기업가정신과 탁월한 변혁적 리더십으로 한라그룹을 형성하고 성장시켰다.”며 “운곡의 기업가정신은 한라그룹이 걸어온 모든 과정에서 한라의 창업과 성장과정의 뿌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운곡의 대표적인 기업가정신이 바로 투명한 정도경영이다. 운곡은 정도경영(正道經營)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자 철학으로 지켰다. 운곡은 모든 면에서 투명한 생활태도를 항상 주장했다. 사업을 하면서 일체의 뇌물, 향응 등을 제공하지 않았고, 공정한 경쟁과 윤리적 경영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1981년 3월 28일 외환관리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운곡 정인영 창업회장이 검찰에 연행되었다가 연행 14일 만에 무혐의로 석방된 사실은 유명하다. 비자금 사건으로 다른 그룹의 총수나 임원들이 수없이 정치자금이나 배임횡령 등의 구설수에 오르고 검찰에 소환될 때조차 그의 이름은 오르내리지 않았다. 기업인으로서 그는 이익창출과 납세의무를 지켰고, 인재육성과 고용창출을 확대하여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는 산업보국의 사회적 책임경영에 충실했다. 운곡을 특징짓는 또다른 기업가정신은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운곡은 “낙관과 긍정이야말로 내 삶의 버팀목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을 뿐이다”는 그의 발언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운곡의 도전정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운곡은 또한 창의적 혁신정신을 보여준 기업가였다. 운곡은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에 인재양성을 위한 과정을 개설하는 등 한국경영자로서 창의성 개발의 모범을 보였다. 운곡은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데도 앞장섰다. 지금은 일반화된 조선소의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도 운곡의 머리에서 나왔다. 인천조선에서 부지의 한계로 정상적 도크시설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자 운곡은 ‘야드에 레일을 깔고 배를 옆으로 밀어서 바다에 진수시키는’ 플로팅 도크방식을 제안했다. 당시 국내 조선 전문가들까지 모두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지만 지금은 일반화됐다. 글로벌 경영을 선도한 것 역시 운곡에게서 두드러지는 혁신정신의 사례다. “한라의 고객은 세계다”는 그의 발언은 너무나 유명하다. 운곡은 ‘21세기는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보았다. 그래서 항상 글로벌 문화에 대한 가치관과 규범을 공유하고자 했다. 그의 글로벌 경영과 혁신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쉼 없이 계속되었다. 인생의 황혼기, 평생 일궈온 한라그룹이 산산조각났지만 그래도 운곡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 운곡은 늘 “사업하는 사람은 꿈을 갖고 불굴의 신념으로 모든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만도기계를 되찾는 꿈을 꾸다 87세에 영면했다. 다행히도 운곡이 믿는 신은 그의 꿈과 기도를 잊지 않았다. 늦었지만 그 꿈은 실현되었다. ━ (주)만도 되찾은 정몽원 회장의 눈물 “드디어 잃어버린 만도를 되찾았습니다. 아버님 이제 편히 잠드세요.” 정몽원 회장이 만도를 되찾은 바로 그 장면이다. 정 회장이 2008년 1월 22일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경기도 양평군 용담리 선친의 묘소를 찾았다. 한라그룹의 주요 임원 20여 명도 동행했다. 정몽원 회장은 2005년부터 만도의 권토중래를 밤낮으로 생각했다. 만도를 한 번도 남의 회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사람들을 설득했다. 결국 정 회장은 KCC, 산업은행, 국민연금관리공단(H&Q 사모펀드) 등과 함께 한라건설컨소시엄을 형성해 지분 72.4%를 사들이며 모기업이었던 만도를 다시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만도를 한라의 계열사로 편입했다. 정 회장은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묘소 앞에 조용히 하얀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다. “(돌아가신 뒤에)‘저희 형편에 맞게 일단은 건설업을 했다가 만도를 되찾아서 그룹을 키워나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보호해 주세요. 힘이 돼 주세요. 그렇게 보고를 했었는데, 이제 만도를 되찾았다는 보고를 드립니다’ 그렇게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났더니 제 눈에 눈물이 글썽했죠… 사실 만도를 되찾기까지는 무엇보다 아버님의 음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잠깐 하는 말씀이래도 ‘뭐 도와줄 거 없느냐?’ 면서 지원해주는 우군들이 참 많았어요.” 정몽원 회장이 지난 6월 7일 남명수 교수에게 털어놓은 당시의 감회다. 정몽원 회장이 운곡의 못다 한 꿈을 뒤늦게 이뤘다고 보고하는 그 자리는 아마도 하늘에 있던 운곡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서정주의 시 )처럼 아들을 다독이고 눈물을 덮어준 포근한 서설(瑞雪)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이룬 한라그룹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고 다짐한 정몽원 회장은 그 약속을 지켰다. 만도는 상장 폐지 10년 만인 2010년 5월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다시 상장했다. 2013년 6월에는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45위에 선정되었다. 한라그룹은 현재 재계 40위권대로 그룹의 중심인 (주)한라홀딩스를 포함해 25개의 계열사를 두고 내실있게 순항하고 있다. 경영 구루 피터 드러커는 “미래는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는 운곡의 철학인 “꿈을 꾸고, 꿈을 믿고, 그 꿈을 실행하라”와 일맥상통한다. 경영사학자들은 운곡이 경영인생을 통해 피터 드러커와 같은 철학을 실행하고 구체화하는 삶을 살았고 이는 한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남명수 인하대 명예교수는 “운곡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것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공업계를 비롯해 향후 한국 기업의 지향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운곡 추모 10주기를 맞아 재조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 ━ 한라그룹 경영진과 임직원의 신뢰경영 결실 맺어 한라그룹은 매년 운곡 정인영 창업회장의 추모일이 다가오면 검소하고 내실 있는 행사를 통해 창업주의 정신을 되새기곤 한다. 2011년 7월 5주기 때는 추모 사진전을 열어 운곡의 기업가정신을 기렸다. 올해 역시 재계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인상적인 사례를 남겼다. ㈜한라(구 한라건설)는 지난 6월 9일 이사회를 열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보통주 300만주(약 1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호응해(주)한라의 대주주인 정몽원 회장도 임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에 공감하고 화답하는 의미에서 개인 보유주식 중 100만 주를 임직원들에게 무상증여하기로 약속했다. 정몽원 회장 임직원에 무상 주식증여한라그룹 박종철 상무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선제적 차원에서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임원들이 사업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올해 말이면 재무구조가 개선돼 어느 정도 수치를 보일 것이다’, ‘우리 조직은 앞으로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라고 설명하며 직원들에게 증자 참여 의사를 물었더니 다 하겠다고 나서더라”며 “이에 정몽원 회장께서 보답하는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상무는 그러면서 “한라그룹은 앞으로도 내실 있는 알찬 경영을 통해 수익성 극대화에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라그룹의 이 같은 발표는 조선과 철강 등 구조조정 위기를 겪고 있는 중공업계에 귀감이 될 만하다. 운곡이 늘 강조했던 사회책임 경영과 정도경영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영사학계의 평가다.

2016.06.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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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신도시 사업은 창조경제 사례”

재테크

바그다드 외곽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 … 지난해 전체 해외 건설 수주액의 12% 강창희 국회의장이 7월 13일 오후 이라크 비스마야에 도착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이 곳에서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다.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의 더위에 건설 중장비가 내뿜는 열기까지 더해져 눈 뜨기 조차 힘들다. 현장 한 켠에는 한화건설의 건설현장임을 표시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건설 노동자들은 연신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강 국회의장은 펜스가 설치된 둘레 20km의 현장을 꼼꼼히 살폈다. “이곳(비스마야 건설현장)이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로 평가할 만 하다.”해외 순방 중인 국회의장단이 이라크 비스마야를 찾았다. 당초 7월 3일부터 15일까지 케냐·탄자니아·에티오피아 동아프리카 3개국만 방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해외 건설 역사상 최대 규모인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라크도 함께 들르기로 했다. 이라크 정부로부터 비스마야 신도시 설명을 들은 강 국회의장은 직접 현장까지 찾는 관심을 보였다.해외 수주 역대 최대의 프로젝트바그다드 외곽의 비스마야 지역에 서울 외곽 분당급(1960만㎡) 신도시 1830만㎡를 건설하는 사업은 한화건설이 맡았다. 총 공사금액이 8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지난해 5월 수주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 해외 건설 수주액(649억 달러) 전체의12%에 달 하는 금액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수주한 단일 프로젝트 중에서는 최대 규모다. 김승연 한화 회장이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로 만든 성과다.한화건설은 도로와 상·하수관 등 기반시설을 포함해 총 10만 가구의 주택을 짓는다. 60만명의 이라크인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가 한국 기업의 힘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2020년까지 하루 평균 2만6000명의 인력이 투입되고, 6400t의 콘크리트가 사용되는 대역사다. 현재 2만여명의 인력이 머물 베이스캠프 공사와 부지조성, 정수·하수처리시설 등 도시인프라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건설자재 생산공장 공정률은 약 55%다. 본격적인 주택건설 공사는 내년 1월 시작해 2015년부터 해마다 2만가구씩 공급한다.강 의장과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한화건설 및 협력사 임직원 400여 명은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강 의장은 “비스마야 건설공사는 연 5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내 연관 산업을 발전시키며, 100여 개 협력사와 동반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7년 뒤 인구 60만 명의 비스마야 신도시가 성공적으로 완공하면 세계가 대한민국 건설의 힘에 또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분당급 규모의 신도시건설이라고 했는데, 분당보다 훨씬 나은 명품 도시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한화건설은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이 국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특히 일자리 창출에 기여도가 클 전망이다. 이라크 현장 투입인력 중 10%는 경험이 풍부한 50대 후반 중동건설 유경험자를 선발해 전문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나머지 90%는 청·장년층에서 선발한다. 그동안 한화그룹이 강조한 능력 중심의 인재채용과 고졸 신입사원 선발도 늘릴 방침이다.중소기업의 사업 참여도 늘어난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공사가 진행되면 이라크 현지에 100여개 중소 자재 및 하도급 업체와 1000여명에 이르는 협력업체 직원이 진출할 예정”이라며 “현재 관련 기업의 문의가 쏟아진다”고 말했다.한국 기업의 이라크 추가 진출 문도 열린다. 이라크는 현재 전후복구 사업이 한창이다. 많은 사업 기회가 있다. 국회의장단과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 한화건설 김현중 부회장은 바그다드의 총리 공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만나 이라크 재건사업과 관련해 한국과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를 비롯해 한국 기업의 이라크 진출 확대와 관련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와 KOTRA에 따르면 이라크는 2017년까지 주택부문 800억 달러, 교통인프라 460억 달러를 투자해 전후 재건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알 말리키 총리는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은 한화뿐만 아니라 나의 사업이기도 하며, 성공적인 신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현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의 순조로운 진행에 만족하며,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근면함에 놀랐다”며 “300조원을 투입하기로 계획된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에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강 국회의장은 “한국 기업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딛고 전후복구와 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차별화된 역량과 기술력을 축적했다”며 “한국 기업이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이라크 재건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이번 프로젝트 수주의 주역은 김승연 한화 회장이다. 수년 전부터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며 그룹 내 100여명 규모의 이라크 TF팀을 구성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본인이 직접 이라크 현지를 방문해 이라크 신도시 건설공사 수주를 진두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이라크 정부와 신뢰를 쌓았다.6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한-이크 경제협력포럼’에 참석한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을 소개하는 한화건설의 영상이 나오자 “한화, 퍼스트(first), 한화, 퍼스트”를 외쳤다. 이어 김 회장의 안부를 묻고 쾌유를 기원했다.“총수의 부재로 추가사업 수주 어려움”그러나 최근 김 회장의 부재로 한화의 글로벌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해 7월 알 말리키 총리는 김 회장에게 “발전·정유시설·학교·병원과 군시설 현대화, 태양광 사업 등 10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추가 재건사업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연간 73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이다. 300조원 규모로 진행되는 이라크 재건사업을 국내 기업이 선점할 좋은 기회다.김종현 해외건설협회 사업지원본부장은 6월 ‘해외건설 5대 강국 진입 및 일자리 창출 세미나’에 참석해 “이라크 정부와 두터운 신뢰를 쌓은 김승연 회장의 부재로 1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주 논의가 답보상태”라며 안타까와 했다.

2013.07.24 17:07

4분 소요
동남아 新시장 VIP - 세계 각국이 VIP(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모시기 경쟁

국제 이슈

동남아시아의 VIP가 뜨고 있다. VIP는 베트남·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근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이 선진국에서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로, 다시 VIP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인구, 풍부한 자원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동남아 VIP를 분석했다.‘동남아의 한국’ 베트남외국인 투자자 연간 80억 달러 투입 김태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국내에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커진 시기는 2000년대 중반 국내 증권사들이 베트남 펀드를 조성하면서부터다.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국제결혼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다. 베트남 하면 흔히 국제결혼과 쌀국수, 그리고 자전거가 떠오른다.최근들어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의 2010년 경제성장률은 6.8%다. 다소 주춤한 지난해에도 5.8%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흥개도국 가운데 베트남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국가는 많지 않다. 한국의 지난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3.4%였다.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2010년)은 1168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6년 608달러에서 4년 만에 약 2배로 커졌을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내수가 활성화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 중심에는 인구가 있다. 베트남의 인구는 약 9100만명으로 한국의 약 2배다. 중요한 것은 베트남 중산층이 날로 커진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0년 “글로벌 은행들에게 베트남이 매력적인 새 ‘먹잇감’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베트남 국민 5명 중 1명만이 은행계좌가 있을 만큼 글로벌 은행들이 유치할 신규 고객 잠재력은 크다”고 덧붙였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베트남은 현재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분석했다.베트남은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정부가 1991년 5개년 사회·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했고, 그 계획에 따라 경제가 작동하고 성장을 이뤘다. 베트남은 이제 ‘정부주도형 경제’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수립한 2011~2015년 계획의 중심과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제도개선, 인적자본의 육성, 인프라의 구축이다. 이 계획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외국 경제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국가계획단계부터 해외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베트남 경제는 외부 신뢰가 두텁다. 실제로 베트남은 다른 국가와 협력관계가 탄탄하다. 1986년 ‘도이머이(Doi Moi·개혁) 정책’으로 외국과 협력을 본격 시작한 베트남은 1991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 1992년 한국과 수교, 1997년 미국과 수교하고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가입했다. 1998년 이후 베트남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1998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가입, 2001년 미국과 무역 협정 발효, 2006년 APEC 정상회의 개최, 2007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특히 최근 베트남이 협상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력(TPP)에 미국·캐나다·멕시코·일본이 참여하면서 외국과의 경제협력은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보인다.이런 협력관계는 외국인 투자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2010년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약 81억7000만 달러로 2005년보다 4배 늘었다. 이중 한국의 비중이 크다. 베트남 정부자료를 보면 2010년 말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 투자국으로 떠올랐다. 무역 규모도 크다. 한국은 약 97억 달러를 베트남에 수출했고, 33억 달러를 수입했다.베트남은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외국 자본이 급격하게 유입된 2007년 이후 베트남 주식·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생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이런 거품이 조금은 해소됐지만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공기업의 방만경영이 문제다. 최근 공기업의 해외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발생했다. 베트남 정부는 공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부분적 민영화 등 각종 개선책을 강력 추진하고 있다. 2012년은 한국·베트남이 수교한 지 20주년 되는 해다. 한국·베트남의 정부협력 사업은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베트남 국민은 다른 동남아 국민보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예의가 바르다. 한국 민족과 닮은 면이 많다. 특히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한국 상품의 수요가 많다. 이를 적극 활용하면 국내 기업에게 베트남 시장은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포스트 BRICs 선두주자 인도네시아6300억불 내수시장 활짝 열린다정재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인도네시아가 세계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동남아에서 유일한 G20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포스트 BRICs’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이제 ‘빅스(BIICs·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중국)’가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는 2025년까지 세계 9대 경제대국 도약을 목표로 인도네시아 경제발전 가속화를 위한 ‘2011년~2025년 마스터플랜’을 발표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2025년경 국내총생산(GDP) 4조~4조50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총 4720억 달러를 투입한다는 중장기 개발계획이다. 우리에 잘 알려진 ‘인도네시아 경제개발회랑(IEDCs)’ 계획이 포함돼 있다.인도네시아의 성장잠재력은 크다. 무엇보다 인구가 많다.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현재 2억3440만여명으로 세계 4위다. 석유·천연가스·석탄·니켈 등 천연자원과 삼림·수산자원도 풍부하다. 인도네시아는 이를 발판으로 2000년대 들어 고속성장을 하고 있고, 상당 기간 지속할 전망이다.ADB는 최근 ‘아시아 2050’이라는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아시아 시대를 이끌 7개 리더 국가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인도네시아를 선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도네시아 경제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6.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인도네시아의 고성장을 이끄는 동력은 거대한 내수시장이다. 인도네시아 내수시장은 국내총생산(GDP·7148억 달러·세계 17위 규모)의 약 98%에 달한다. 둘째 성장동력은 ‘인구 보너스’ 효과다. 인구 보너스는 전체 인구 중 생산연령층이 많고 어린이·고령자는 적어 고도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중위연령이 27세로 젊다. 각종 경제전망기구는 인도네시아가 인구 보너스 효과를 2040년까지 누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인도네시아는 중산층이 탄탄해지고 있다. 가처분소득이 5000~3만5000달러에 이르는 중산층 규모가 2009년 8200만명에서 2015년 1억7000만명, 2020년에는 2억여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들의 소비 행태는 최고급 브랜드에서 명품과 최첨단 제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겨냥한 세계 유통·명품브랜드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또 다른 성장동력은 정치·사회적 안정과 개혁정책의 추진이다. 인도네시아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유도요노 대통령 등장 이후 정치·사회 안정뿐만 아니라 개혁·부정부패 방지·외국인 투자유치를 본격 추진해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우리가 인도네시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아세안 국가는 최근 교역·투자, 공적개발원조(ODA), 해외건설 분야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로 부상했는데, 그 중심에 인도네시아가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우리의 에너지자원 보급기지다. 인도네시아는 지열(세계 부존량 40%)·팜오일(세계 1위 수출)·코코아(세계 2위 생산)·열대삼림(세계 2위 보유국)·태양광(적도 근처 위치) 등 녹색성장 잠재력이 크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의 중장기 경제개발계획인 IEDCs에 우리의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은 우리에게 큰 기회다. 제2의 도약 노리는 필리핀서비스 경쟁력에 제조업 날개 단다신민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팀 연구원필리핀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경제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정권의 부정·부패가 잇따르면서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고 경제성장이 더디게 진행됐다. 2010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필리핀에는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은 필리핀의 고질병인 부정·부패 척결과 재정적자 축소를 주요 정책 슬로건으로 내걸고 업무처리 아웃소싱 산업(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을 중심으로 서비스산업 육성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필리핀의 중심은 서비스산업이다. 전체 산업의 55%에 이를 정도다. 2010년 한해에만 필리핀은 57억 달러의 콜센터 수익을 달성했다. 56억 달러를 벌어들인 인도를 제치고 콜센터 분야 세계 최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주요 고객은 익스피디아·AT&T·맥도널드·IBM 등 미국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저렴한 인건비, 자유로운 영어구사 능력, 높은 영미권 문화 이해도를 이유로 필리핀을 선택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의지에 힘입어 BPO산업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고용창출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필리핀 사회에 만연한 실업과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필리핀 정부는 최근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고르게 발전할 방안을 찾고 있다.전기·전자산업이 중심인 필리핀의 제조업은 대부분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해 재수출하기 때문에 높은 실적을 올리기 어렵다. 또 비싼 전기요금, 교통 인프라 미비로 물류비가 높고 정치 불안정으로 행정처리가 불편하다. 그 결과 필리핀은 태국·말레이시아 등 주변 아세안 국가와 대조적으로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제조업은 농업분야에서 유출되는 인력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용 규모가 크기 때문에 중산층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와 민간부문은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제1차 필리핀 제조업 회의를 개최하고 제조업 발전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필리핀 정부를 주축으로 14개의 민관협력 교통인프라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다. 필리핀 정부는 이를 통해 제조업 성장을 막는 장애물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필리핀의 이런 변화는 한국에 기회다. 필리핀에 제조업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한국 제조업체들의 진출이 더 쉬워질 것이다. 특히 필리핀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건비·물가·토지비용이 싸기 때문에 수익을 올리기 좋다. 한국에 대한 감정도 비교적 우호적이다. 특히 필리핀은 세탁기·TV·PC 등 전자제품 보급률이 낮아 이들 제품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가전업체에 매력적 시장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필리핀의 교통인프라가 개선됨에 따라 한국은 필리핀의 금·은·구리·니켈 등 풍부한 광물자원에 대한 에너지협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과 필리핀은 1949년 국교수립을 시작으로 외교적·경제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대필리핀 수출은 2010년 약 58억 달러, 수입은 약 35억 달러를 기록했다. 양국 교역은 현재 전기·전자제품에 집중돼 있다.

2012.01.16 11:30

7분 소요
누가 사막에 마천루를   세우는가

산업 일반

▶하늘 높이 솟아오른 한국의 경쟁력. 2005년 2월부터 시작한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버즈 두바이’ 공사가 끝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건설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해외건설 수주가 호황이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아직 규모 면에서는 세계 10위권 수준이지만 해외건설은 1970년대 값싼 노동력을 내세운 단순 하청 시공에서 기술력을 앞세운 고도화된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 최강을 꿈꾸는 한국 건설의 현장을 짚었다. 올들어 지난 2월까지 한국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따낸 공사 금액만 99억 달러다. 43개국에 진출한 97개 업체가 111개 사업을 통해 달성한 것이다. 불과 30년 전 한국 건설업체의 연간 해외 수주액은 82억 달러에 불과했다. 한물간 산업인 건설이 오일 붐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후반의 연간 수주 실적을 불과 두 달 만에 가볍게 넘겼다. 지난해 연간 390억 달러 정도를 수주한 한국의 해외건설 실적이 올해는 500억 달러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1965년 한국 건설사가 태국에 처음 진출한 이후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을 헤쳐나온 끝에 지금 해외건설이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중동 아랍에미리트의 경제도시 두바이. 작은 혁신도시 곳곳에서 한국 건설사가 눈에 띈다. 현대건설은 제벨알리 컨테이너 부두를 개발해 두바이가 물류 중심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반도, 성원 등 중견 건설사들은 업무 특구 단지인 ‘비즈니스 베이’에 고급 주거시설을 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버즈 두바이’는 삼성건설이 내년 완공할 계획이다. 숫자로 보는 한국 해외건설 40년사 80개국 국내 업체가 현재 진출해 있는 국가 335개사 현재 해외에 진출한 업체 수 800+αm 국내 건설업체가 수주한 최고층 건물인 버즈 두바이 높이(63빌딩 240m, 타워팰리스 267m, 붕괴 전 미국 세계무역센터 417m) 6563명 현재 해외에 진출한 건설 인력 10,390,000,000달러 국내 단일 건설업체 최대 수주액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1, 2단계 공사 두바이뿐 아니다. 중동은 아랍에미리트(UAE),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3개국을 중심으로 대형 플랜트 공사가 꾸준하다. 아시아는 싱가포르, 태국, 인도, 베트남 등의 건설 경기가 회복되면서 최근 수주율이 크게 늘었다. SK건설이 싱가포르 주롱섬에 플랜트 공사 중이고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경남기업이 랜드마크 타워를 세우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같은 신흥시장 진출은 최근 일이다. 아프리카는 앙골라,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 중심으로 플랜트, 인프라 시설 발주가 늘었고 러시아,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발달해 많은 건설 물량을 제공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은 워낙 멀어 전체 해외시장에서 점유율은 높지 않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캐나다 등에서 한국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을 벌이며 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경남기업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포스코건설이 남아메리카 엘살바도르에 최초로 진출한 것을 보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한국 건설사들의 ‘무한도전’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해외시장을 노린 결과 지난해 290개 업체가 76개국에서 수주총액 398억 달러를 기록했다. 2003년 37억 달러의 열 배가 넘는 규모다. 해마다 수주총액 신기록을 세우면서 올해는 400억 달러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 건설 전문지인 미국의 ‘ENR’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해외건설시장 점유율은 2.9%로 11위였지만 2~3년 안에 8%를 돌파해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전망이다. 지난해 해외건설 매출액은 200억 달러 정도다. 이를 산업별 수출액과 비교하면 석유제품(211억 달러, 7위), 철강(210억 달러, 8위)에 이어 10대 수출산업에 속하며, 수주총액 398억 달러는 우리나라 지난해 수출액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해외건설은 조선·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과도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됐다. 안은 너무 좁다, 밖으로 나가자 1970, 80년대 20만 명이 넘는 건설 역군들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 정글에서 수로를 파고 건물을 지으며 외화벌이에 나섰다. 80년대 초 해외건설로 우리나라 수출액(219억 달러)의 절반이 넘는 133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전체 경제 성장에 26.4%나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 일꾼들은 등 떠밀리듯 가족과 헤어져야 했다. 세계적 건설강국을 꿈꾸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좌절과 성공을 반복한 역전사가 있는 것이다. 70, 80년대 중동의 오일 붐에 기대어 성장하던 해외건설은 80년대 중후반 유가가 떨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동남아시아로 주무대를 옮겼지만 97년 외환위기가 오자 또다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재무 건전성, 수익성을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중동, 동남아시아에 대형 공사 현장을 두고도 건설사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그때 김대중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붐을 조성했고, 건설업은 극적으로 회생할 수 있었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억제책에 건설사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위기는 반복됐지만 이번엔 건설사들의 대응이 달랐다. 얼어붙은 국내 건설시장이 녹길 기다리는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안에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밖에서 모험을 해보자는 심리였다. 유라시아의 건설강국 터키도 2001년 경제 위기 때 건설업을 세계화한 일이 있다. 병이 오히려 약이 된 셈이다. 2006년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해외시장 진출 이유로 ‘국내시장 축소로 인한 위기감’을 꼽았다. 되는 집안에는 가지나무에도 수박이 열린다. 다행히 해외 사정도 따라줬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중동, CIS(독립국가연합),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산유국의 플랜트·인프라 건설이 늘었고, 주택·전력 등 기반시설 물량도 따라서 쏟아졌다. 석유가 있다는 점을 빼곤 황무지에 가깝던 나라들이 갑자기 거대한 오일 머니를 쥐게 되면서 건설 수요가 늘었다. 지난 4~5년간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으로 부동산 개발이 붐을 이뤄 아시아 지역의 개발사업도 활황을 이어갔고, 이는 우리 건설업체에 일감으로 돌아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GlobalInsight’에 따르면 세계 건설시장 규모는 2011년까지 4.6%의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런 외부 요인과 국내 건설업체들의 경험, 노하우가 합쳐져 오히려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여기에 과거와 다른 한국 건설사의 경쟁력도 더해졌다. 70, 80년대 단순 토목, 건축이 주 사업이었다면 90년대 중반부터 플랜트가 수주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분야가 됐다. 2000년 이후부터는 부동산·신도시 개발 등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발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해외시장에서 선진국과 비교해 가격은 많이 싸고 기술력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부동산·신도시 개발 노하우는 한국만의 블루오션을 만들 수 있는 경쟁력이다. 분당·일산·동탄 같은 신도시를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속전속결로 수차례 개발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아프리카의 알제리, 중앙아시아의 몽골,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에서 한국식 도시개발이 유행이 될 정도로 주목 받고 있다. 정보통신(IT) 기술이 발전한 것도 강점이다. 이미 한국 건설사들은 한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IT기술을 적용해본 경험이 있다. 이 노하우를 현지에 적용해 유비쿼터스 도시(U-도시)로 품질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U-도시는 전자산업을 동반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뛰어난 건설과 산업 기술을 함께 묶어 진출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도 강점으로 꼽힌다. 패키지 딜은 개발 업체가 진출한 국가에 철도, 도로, 항만, 공장 등 산업인프라를 건설하고 현지 정부가 현금 대신 자국이 보유한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콩고, 나이지리아 등 자원이 많고 자금은 없는 지역에서 이미 패키지 딜 방식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 고유의 그룹형 경영이 장점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껍데기만 만드는 ‘제조 마인드’ 버려야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이제 해외 건설시장에서 국내업체끼리의 과당경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 프로젝트를 놓고 국내업체끼리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과당경쟁으로 적자공사를 수주, 회사에 큰 부담을 지웠다. 하지만 기업구조가 개선되고, 주주경영이 중시되면서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과당경쟁을 유도해도 국내업체가 말려들지 않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물량의 공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익을 못 내면서까지 수주하려는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사의 활발한 해외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외 건설사업은 위험도(risk)가 큰 사업이다. 국내 경험이 많더라도 현지 정치·문화 상황에 따라 실패 가능성이 크고, 실패는 곧 기업의 존폐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해외 건설 경험이 많지 않은 업체들까지 해외에 진출해 위험도는 더 크다. 게다가 미국, 일본 등 건설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이 모자라고 중국, 인도, 터키 등 후발 개도국이 규모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치고 나와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팀장은 “과거와 같은 실패사를 또다시 쓰지 않으려면 해외 건설 경험이 있는 인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은 ‘People Business’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일은 지역·기술 다변화, 기술 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이 되는 작업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기술 수준을 보면 시공기술, 상세 설계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플랜트 사업에 꼭 필요한 EPC(설계·구매·시공)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업체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 공사의 틀을 짜는 기본설계 분야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기획 능력은 선진국 대비 59%, 설계는 63% 수준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제휴와 인수합병(M&A)으로 엔지니어링 등 원천기술을 갖춘 종합관리가 필요하다. 껍데기만 만들고 핵심 부품은 사오는 ‘제조 마인드’로는 70년대의 몸으로 때우는 ‘노가다 건설’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30년 전 밤을 새워 공사를 따내곤 했던 부지런함이 남아 있는지 우리나라 건설사는 공사 기간을 앞당기는 것으로 좋은 평을 받는다. 이런 ‘속도전’과 도시개발 경험으로 인한 창조적 개발 능력은 해외시장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현지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는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시장 다변화도 지속해야 한다. 김 팀장은 “중동에 의존하지 않고 신흥시장을 꾸준히 개발하고, 오일 머니에 따라 수주 물량이 결정되는 중동발 플랜트 외에 우리나라만의 특화된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2008.03.17 11:49

7분 소요
한국 해외 건설 제2황금기

산업 일반

GS건설 플랜트기획팀의 최문철(45) 팀장은 요즘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하루에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 회사는 7월 말 현재 14억9700만 달러를 수주해 업체별 수주액에서 현대중공업과 삼성건설을 제치고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2억 달러짜리 오만 플랜트를 수주한 데 힘입었다. 내친 김에 올해 플랜트 부문 수주액을 처음으로 2조원대로 끌어올릴 작정이다. 플랜트 수출 관련 기획과 장단기 전략을 짜다 보면 퇴근시간은 들쭉날쭉이다. 외환위기 당시 GS건설은 경영합리화를 위해 전체 직원 700명 중 200명을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규모와 맞먹는 인력을 해외 현지에서 고용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지난 4월 두바이에 업계 최대 규모의 지사를 설립했다. 또 인도에는 설계법인을 세워 현지 설계인력을 200명까지 채용할 계획이다. 최 팀장은 활황의 해외건설 경기를 피부로 실감한다. GS건설의 플랜트기획관리를 담당하는 윤성근(52) 상무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건설업계가 호황을 구가한다”고 했다. 해외 건설부문은 요즘 한국 경제에서 단연 돋보이는 분야다. 건설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는 해외건설 수주가 최단 기간에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7월 31일 현재 105억 달러로, 종전의 9월 6일(1982년) 기록을 한 달 이상 앞당겼다. 사실 연간 수주액이 100억 달러를 초과한 해는 65년 해외건설 진출 이래 고작 여섯 번이다. 또 역대 최고 수출액을 기록한 97년에도 10월에야 100억 달러를 넘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수주액이 15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설지 모른다고 건교부 해외건설팀 이원규 사무관은 밝혔다. 170억 달러까지도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해외건설 수주의 가장 큰 추진력은 중동의 오일머니에서 왔다. 지난해 7월 31일 중동 수주액은 44억 달러였다. 그러나 올 같은 기간엔 63억 달러로 43%나 증가했다. 증가 속도로만 따지면 아시아(130%, 10억 달러→23억 달러), 아프리카 지역(120%, 5억 달러→11억 달러)이 더 무섭다. 아시아는 토목·건축 분야를 중심으로 수주 경쟁력이 되살아났다. 또 아프리카의 경우는 시장 다변화 차원의 공략이 효과를 본 결과라고 건교부는 설명한다. 건설업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2006년을 뜻깊게 여긴다. 65년 해외건설 첫 진출 이래 총 수주 누계액이 2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93년 1000억 달러 돌파 이후 12년9개월 만에 2000억 달러 고지에 올랐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올해를 ‘제2의 황금기’에 비유했다. 기업들도 즐거운 비명이다. 지난해 14억 달러를 해외에서 벌어들인 대우건설은 올 1월 이미 8억7500만 달러어치를 계약했다. 7월 말 현재 13억2100만 달러를 수주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7월 말까지 14억 달러를 수주해 1위 GS건설과 박빙의 차이를 보였다. 해외시장에서 철수했던 기업도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린다. 올해 창사 60주년을 맞는 금호건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84년 중동 지역 급수탑 공사를 끝으로 철수했던 해외건설에 다시 참여키로 했다. 22년 만의 복귀다. 2006년 최우선 경영방침이 ‘해외사업 역량 강화’다. 국내 건설 경기가 일순간 호전되기 어려운 만큼 신규사업과 새로운 수익 모델을 해외에서 찾자는 구상이다. 사실 금호건설은 2000년부터 중동 지역 공항 건설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해외진출을 모색했다. 올 들어 베트남에 31층 규모인 최고급 주상복합건물 아시아나플라자를 수주했다. 나정수 신규사업팀장은 “해외진출은 상당 기간 준비과정을 거쳐 결정됐으며, 2006년이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했기 때문에 금호건설의 해외사업 부문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나 팀장은 “공사 정보 입수, 입찰 참여, 공사 수행 등 해외사업 전 부문에 걸쳐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플랜트 건설에 강한 대우건설과 공항공사 노하우를 축적한 금호건설이 협력할 경우 막강한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는 말이다. 우림건설도 해외시장 진출 채비를 서두른다. 최근 해외건설 부문과 금융 부문 외부전문가들을 대거 끌어 왔다.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사업 진출을 전제로 한 움직임이다. 우림건설은 중국 상하이 인근 쿤산시의 핵심 구역인 연호산업단지 내에 올 하반기 1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분양할 계획이다. 국내서 활동하던 중소 건설업체들도 해외시장에 속속 도전장을 던졌다. 올 들어 처음 해외에 진출한 업체만 7월 말 현재 32개사에 이른다. 전체 해외시장 진출 업체 수도 8월 10일 현재 10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 90개 업체보다 11개가 늘었다. 해외건설 시장에 거는 기대는 해마다 증가하는 해외건설업 신고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해외건설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엔 신규 해외건설업 신고업체가 연간 130~150개 정도였다. 그러다 해외건설 경기가 고개를 든 2004년부터는 이 수가 급증했다. 2004년 228개 업체에서 2005년 377개 업체, 올 7월 말 240개 업체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여건만 되면 해외시장에 뛰어들 ‘예비군’이 줄을 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해외건설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떨까. 해외건설업 제1의 황금기라던 81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국은 해외건설업에서 137억 달러를 수주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흥수 부원장은 당시 한국 기업의 수주액이 “전체 해외건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10%에 달해,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해외건설 강국으로 군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의 해외건설 시장점유율은 3.5%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점유율은 1~2%선에 머물렀다. 수주액은 증가했지만 해외시장 점유율은 80년대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뒷걸음칠쳤다. 반면 선진국 독과점 구도는 더욱 굳어지는 양상이다. 2001년 선진국 5개 업체의 수주액이 전체 중동 수주액의 63%였다. 이듬해인 2004년엔 77.6%로 증가한다. 한국의 점유율은 바닥권인데 수주액은 증가한다는 얘기는 시장의 절대 규모가 커진 덕을 봤을 뿐이라는 얘기다. 건설전문지 ENR(Engineering News Record) 통계를 보면 해외시장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20% 성장해 왔다. 중동과 아프리카 산유국들이 원유와 가스전 개발을 확대하고, 회복기에 접어든 아시아 경제 덕분이다. 앞으로도 시장은 꾸준하게 성장할 전망이다. 한승헌 연세대 교수는 올해 세계 건설시장 규모가 약 4조6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10년까지는 연평균 약 4%대의 지속 성장이 예상된다. 해외건설 시장은 이렇게 정리된다. 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지만 해외 메이저 업체들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물론 기업과 정부는 지속적인 시장개척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학계나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정부의 자화자찬에 그렇게 공감하는 눈치가 아니다. 2002~2003년 당시만 해도 해외건설이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박해선 한국수출입은행 지식경제실 선임조사역은 지난 4월 발표한 ‘최근 해외 건설·플랜트 시장 구조 및 우리 기업의 경쟁력 비교 분석’에서 “당시 기업들의 적극적인 경쟁력 강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플랜트 호황에 다른 기업들의 실적이 양호한 지금 해외건설 분야의 경쟁력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한다.” 업계는 해외 건설업체들과의 경쟁력 격차를 절감한다. 윤국진 대우건설 해외사업본부장은 얼마전 건교부 주최로 열린 해외건설 관련 토론회에서 국내외 건설업체 간 차이점을 이렇게 비교했다. “한국은 설계공정 관리능력이 부족하다. 파이낸싱 능력도 미흡해 개발도상국 프로젝트 참여가 제한된다. 반면 해외 메이저 기업들은 실적과 기술력을 앞세워 수의계약을 유도한다. 또 저렴한 이자의 프로젝트 자금 조달력도 뛰어나다. 해외 메이저 업체들은 자기네끼리의 담합으로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기도 한다. ” 사실 자금조달 능력은 해외건설협회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는다.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분야라는 얘기다. 해외건설협회는 “개도국의 인프라 개발은 대부분 민자 참여 형태로 이뤄지며, 일부 선진국과 중동 산유국에서도 민자사업이 활발하다”고 밝혔다. 건설업체가 자기 돈으로 현지에 플랜트를 지어 투자비를 회수한 뒤 해당 국가에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발주자가 공사비를 지불하고 건설사는 시공만 하던 종래의 방식과는 다르다. GS건설의 윤성근 상무는 21년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근무하다 2004년 지금의 회사로 옮겼다. GS건설이 해외 부문에 치중키로 하면서 국제금융 전문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에서 플랜트 수출 관련 금융 제공 업무를 담당하던 윤 상무 같은 사람이 적임자다. GS건설 전체매출액에서 해외 플랜트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8%였다. 올해는 20%선으로 증가하리라는 예상이다. 국내외 여유자금을 모아 해외건설 사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그만큼 빈번해졌다고 윤 상무는 말했다. 우수한 인력도 해외건설 경쟁력을 키우는 요체다. 산업연구원 박광순 박사는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 열세를 극복하려면 가장 먼저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부가 올 들어 해외 건설업계를 대상으로 소요 인력을 조사한 결과 500명 이상의 전문 건설인력이 부족했다. 3년 뒤에는 2000명 이상이 더 필요하다. 정부는 해외 건설인력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해외건설 분야에 종사했던 유경험자를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지만 실효성은 의문시된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97년 외환위기에 즈음해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당시 옷을 벗은 고급 기술인력과 연구개발 인력이 같은 업종으로 수평 이동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업종을 전환하거나 자영업 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업무 경험에 10년 가까이 공백이 있는 경우 쉽사리 돌아오기 힘들다. 결국 유경험자를 복귀시킨다 해도 최근 은퇴한 일부 인력에 국한될 뿐이다. 그래서 설계 등 기술인력은 인도·필리핀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채용해 해외 현장에 파견하는 추세다. 기능인력은 현지 인력이나 제3세계 인력을 활용한다. 호황기 이끌 연구 인력 부족 2004년 한국건설기술인협회에 등록된 기술자 수는 48만4000여 명이다. 이 중 39만5000여 명은 취업했지만 18.4%인 8만9000여 명은 잠재적 실업 상태다. 국내 인력은 남아돈다. 그런데도 해외 플랜트 기술인력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해외건설 부문에서 쓰이는 인력은 생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설업체들은 프로젝트 관리나 설계, 사업 금융, 공정 기술관리 등 전문인력을 요구한다. 최소한 단위 사업장 중간관리자급 이상으로 근무하자면 언어 능력과 현지 문화 수용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관리연구실장은 “해외 시장을 제대로 개척하려면 장기적으로 5000명 이상의 고급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 300억 달러를 수주해 세계 5위권에 진입하자면 글로벌 건설 전문가가 최소 이 정도는 구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자체 인력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곳도 많다. 대우건설은 신규로 해외 현장에 파견해야 하는 인력이 200명이다. 이 중 절반을 순환 보직 프로그램으로 충원한다. 본사와 해외 근무를 번갈아 함으로써 언제든지 필요한 현장에 파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이다. GS건설은 사내에 11개월 과정의 중국 전문인력 양성 과정을 운영한다. 개인 교육(3개월), 집합 교육(2개월), 현지 교육(5개월)을 통해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상당수 국내 기업의 인력 충원·양성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관리연구실장은 ‘갈수록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국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사업 현장에서 상급자와 일하면서 전문지식을 배우는 구조다. 강의나 교재보다는 도제 방식을 통해 기술적 노하우가 대물림돼 왔다는 말이다. “이제는 도제 방식의 핵심이 되는 실무학습 교사 진영의 고령화로 맥이 끊어질 위험에 있다. ” 한국플랜트학회 회장인 이재헌 한양대 교수도 해외 플랜트 산업이 금융관리 공학이 융합되는 고급기술 산업으로 변모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플랜트 콘텐트 산업의 육성을 위해 정부 관련 부서가 힘을 합쳐 인재 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 진출에서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궁극적으로 기술력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국내 주요 건설업체들은 건설의 밑그림이라 할 기본설계 분야에서는 아직도 해외 유명업체에 많이 뒤떨어진다고 해외건설협회는 진단한다. 기본설계를 하는 회사가 기자재 구매 경로와 시공사 선정에 입김을 발휘하게 된다. 왜 한국의 해외수주액이 늘고도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거나 정체 국면일까. 선진국들은 고부가가치 플랜트 분야인 LNG 플랜트와 천연가스액화시설(GTL:Gas-To-Liquid) 수주로 중심이동 중이지만 한국 기업은 정유나 석유화학이라는 기존 분야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한양대 정의종 교수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LNG 분야 등 선진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는 해외 플랜트 시장 호황에 편승하지 못할 뿐더러 국가 성장동력의 한 축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일부 국내 기업이 해외 GTL 공사에 참여하지만 첨단기술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따져보면 우리의 해외건설 부문은 아직 외환위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80, 90년대를 잘 달려오던 국내 플랜트 엔지니어링 산업은 IMF 관리체제를 맞아 된서리를 맞았다. 상당수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건설 모기업에 흡수됐다. 엔지니어링 업체들의 R&D 인력은 외환위기를 맞아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으로 업계를 떠났다. 건설 모기업은 당장 돈이 되는 프로젝트 수주와 실행에 중점을 두어야 했다. 호황기를 이끌 연구인력이 절대 부족한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LNG, GTL 플랜트는 발주 금액이 날로 대형화하면서 10억 달러 이상을 넘기는 경우가 예사다. 이 시장은 기술을 독점한 선진국들의 밥상이다. 1억~2억 달러 플랜트 프로젝트는 중소 규모로 취급된다. 다시 말해 한국은 대형사들이 수주를 주저하는 틈새시장에서 지금 제2의 황금기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GS건설의 최문철 팀장도 원래는 LG엔지니어링 소속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건설과 엔지니어링이 합병됐다. 한솥밥을 먹던 동료 200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떠났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 온다. 해외 건설 업계가 지금은 호시절을 구가하지만 언제 또 불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 회사는 수익 모델과 시장을 다변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인력구조를 갖추려 노력한다. IMF 관리체제 같은 위기상황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외환위기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는 말이다. 국내 건설업체들 해외 진출 러시 한국 건설업계가 올 들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 해외 건설 수주액은 사상 최고치인 150억 달러 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조만간 4% 선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은 수주 실적 제고와 거점 확보를 통해 글로벌 경영을 꿈꾼다. >>금호건설 금호건설의 해외시장 복귀 작품인 ‘아시아나 플라자’는 베트남 호찌민시의 알짜 지역인 재래시장 ‘사이공 스퀘어’에 들어선다. 10월 착공하며 공사 기간은 36개월이다. 총 3개 동 31층 규모의 최고급 대형 주상복합 건물로 탄생할 아시아나 플라자는 호찌민의 랜드마크로 우뚝 솟는다. 금호건설은 “아시아나 플라자 프로젝트를 교두보 삼아 베트남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아파트를 위시한 주택사업을 준비 중이며, 하노이 신도시 개발 사업에도 의욕적이다. 공항공사 등 각종 정부 발주 토목공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금호건설은 크게 두 갈래로 해외시장을 개척한다.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방면이 한 축이다. 또 두바이를 거점으로 한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예멘·오만 등의 중동 시장도 중점 공략 대상이다. 동남아 경제시장에서는 BOT(시공사가 일정 기간 시설을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한 뒤 발주처에 넘겨주는 것) 방식의 SOC 사업물량이 급증하리라 예상한다. >>대우건설 대우건설은 올 3월 2006년 해외 수주 목표 1조3000억원에 거의 육박하는 1조2000억원어치의 해외공사를 따냈다. 목표치도 자연히 상향 조정됐다. 이제부터는 수익성 높은 프로젝트 위주로 수주할 계획이다. 정부 주도의 인프라 구축사업과 민간 주도의 부동산 투자사업이 활성화되는 리비아와 중동이 관심 지역이다. 카타르 정부는 도로와 배수시설 등에 향후 5년간 140억 달러를 투자한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카타르에서 총 6500억원 규모의 정유 설비와 석유화학 플랜트를 수주해 추가 수주 전망도 밝다. 나름대로 텃밭으로 여겨온 나이지리아에서도 올 초부터 바란-우비에 석유·가스 생산시설(약 8500억원), 가스 파이프라인 설치공사(약 920억원) 등 초대형 공사를 잇따라 수주했다. 지난 1월에는 하노이 신도시 개발사업의 면허를 획득했다. 하노이 인근 투리엠 지역에 2만 명을 수용하는 신도시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 베트남을 시작으로 필리핀·미국·말레이시아·캐나다 등지로 주택 투자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해외사업이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5~18% 선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GS건설 최근 LG상사와 함께 오만 국영 석유회사 산하 아로마틱스 오만 LLC사가 발주한 12억 달러 규모의 아로마틱스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매년 파라크실렌 80만t, 벤젠 20만t 등을 제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이다. GS건설은 설계, 구매, 시공, 시운전 업무를 수행한다. LG상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파라크실렌과 벤젠의 판매권을 갖게 된다. GS건설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 러시아, CIS 지역으로 영업을 확대한다. 이 회사는 베트남에서 신도시 건설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 중이다. 2004년 호찌민시와 도로 건설, 주택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도로 건설과 주택 개발이 주요 사업 대상이다. 남사이공에 인접한 냐베 지역 개발사업은 예산이 10억 달러를 넘어서며, 호찌민 도로공사도 1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GS건설은 GTL 등 신규시장 참여도 적극 추진 중이다. 전체 매출액에서 해외사업 비중을 20%까지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삼성건설 견실한 재무구조와 삼성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해외시장 개척에 힘을 쏟는다. 삼성건설은 세계 최고층을 자랑하는 버즈 두바이 건설공사에 참여 중이다. 지상 160층 이상, 높이 700m 이상, 연면적 15만 평에 달하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47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8년 11월 준공 예정이다. 세계 최고층인 대만 TFC 101 빌딩 높이(508m)를 200~300m 뛰어넘어 세계 최고 마천루에 등극한다. 두바이 경제개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삼성 건설은 벨기에 베식스(Besix)와 현지 아랍텍(Arabtec)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초고층 실적이 있는 30여 개 세계 유수의 건설사가 참여하는 7개 그룹과 수주 경쟁을 벌여 기술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대만 TFC 101 빌딩(99년 5월~2005년 3월),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452m·공사 기간 94년 3월~97년 2월) 완공에 이어 세계 최고층 버즈 두바이를 수주한 삼성건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3개의 마천루 시공에 모두 참여하게 됐다.

2006.08.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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