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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삐끼 대신 인터넷으로 개인 마케팅

룸살롱, 삐끼 대신 인터넷으로 개인 마케팅

모 대기업의 영업과장 김모씨(33). 내일은 대규모 물품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늘 저녁 바이어와 저녁 약속을 한 후, 김과장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엉뚱하게도’ 컴퓨터다. 이윽고 그는 평소 잘 가던 한 유흥업소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가장 좋은 룸과 가격대·안주 심지어 여자 종업원들의 용모와 서비스 내용 등을 한참이나 확인해 나가다가, 천천히 페이지 아래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를 눌러 나갔다. “손님, 10% 할인 혜택에다 찾으시는 아가씨로 반드시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어디서 출발하실거죠?” 자분거리는 웨이터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친절하게 느껴진다. 출발하는 위치며, 시간대를 알려주고는 김과장은 밀린 서류정리에 다시금 빠져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난 약속 시간.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나와서 그와 바이어를 맞아주었다. 요즘 룸살롱·단란주점·요정 같은 각종 유흥업소들이 인터넷을 이용한 신종 첨단 마케팅 전략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른바 ‘룸살롱 사이트’인 유흥업소 소개전문 사이트를 이용, 인터넷 판촉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판촉방법은 말 그대로 발로 직접 뛰는 것이 전부였다. 거리에서 전단을 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게 아니면 회사들이 밀집한 지역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가 붙은 연예신문을 돌리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라이터나 휴지 등을 나눠주는 고전적인 방법이 모두였다. 조금 바지런한 웨이터라면 용달차에 간판을 씌워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벗삼은 채 회사가 밀집한 지역을 돌곤 했다. 또 시간이 나면 단골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 번 찾아오라고 부탁하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판촉 마케팅 방법이 무척이나 세련되게 바뀌어 버렸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여의도의 룸살롱에 근무하는 ‘김부장’(32)은 하루 일과가 단순해졌다. 그의 업무는, 신규 손님을 끌어오는 마케팅 담당. “점심때쯤 일어나 하루 2시간 정도 룸살롱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문의의 글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여기저기 업소 PR글을 올려두죠. 그리고 그냥 기다립니다. 하루에 3∼4팀 받는 것은 기본이 된지 오래죠. 제가 담당하는 룸 하나로 부족해서, 사장님께 부탁해 룸 하나를 더 얻었어요. 기존에 쓰던 오프라인 방법은 잠시 미뤄도 될 만큼 넉넉합니다.” 이처럼 부장과 상무·실장 등의 이름을 단 소(小)사장, 즉 웨이터들은 매일매일 걸려오는 전화에 귀만 기울이면 그만이다. 때때로 한 시간 정도를 투자해 각종 문의를 해오는 직장인들에게 전화번호를 남기거나 업소PR 페이지에 들어가 한창을 떠들고 나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김부장은 “얼마나 폼이 나는지 몰라요. 원래 인터넷을 잘 몰라서 컴퓨터 앞에 앉는 멋진 장면을 상상만 하고서는 정확히 1년 전에 컴퓨터를 구입했죠. 어찌나 뿌듯하든지. 이렇게 간단하게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네요”라며 마냥 기쁜 표정을 짓는다. 이 같은 ‘트렌드의 변화’는 일단 이같은 유흥업소 정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이 사이트들은 사이버 세계와는 거리가 먼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한껏 유혹하고 있다. 클릭만 하면 ‘혁혁한 성과’를 단박에 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현재 성황을 이루는 유흥업소 정보 사이트만도 8개. 1999년 4월에 오픈해 가장 많은 수의 회원업소 및 회원들을 갖고 있는 VIP24는 물론이거니와 사이버삐끼·선수닷컴·술집닷컴·이밤에·룸가이드·나가요닷컴 등. 가장 역사가 오래된 VIP24의 성황 사례를 들여다보면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얼마나 이 사이버 판촉 마케팅에 혈안이 돼 있는지를 단박에 눈치챌 수 있다. VIP24의 정해춘(38) 이사는 “물론 이들이 먼저 사이버 마케팅에 눈을 뜬 것은 아니다.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 영업직원들을 보내 사이버 판촉 마케팅에 대해 설명하자 대부분은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인터넷에 왜 올리냐, 세무조사 당할 일 있냐?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런 곳을 찾을리 만무하다….’ 뭐 이런 면박을 당하기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페이지 좋은 자리에 업소 사진을 올려달라, 문의자들을 우리 쪽에 좀더 많이 연결시켜 달라 등등의 애교 섞인 청탁을 해오는 경우가 많다. 한 직원은 잘 되면 자동차를 한 대 선물하겠다는 유혹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라고 최근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VIP24의 경우 현재 회원 수는 자그마치 10만명. 모두 유흥업소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국내에서 정기적으로 유흥업소를 ‘이용해야만 하는 이’들이 약 15만명이다. 실로 대단한 숫자이며 대단한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이 한 홈페이지에 들르는 일일 방문객 수는 이미 4만명을 넘어섰고, 페이지뷰 만도 5백만이 넘는다. 웬만한 유명 사이트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다. 또한 지난해 초 회원업소 1백개 미만이던 게 현재 2백10개로 늘어났다. 위치·전화번호 정도를 설명해주는 비회원 업소의 수는 1만개에 육박한다. 정이사는 “지난해 1년 동안 1백개 회원업소를 확보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회원업소가 팽창할 것이다. 회원 확보 현황이 큰 비율로 상승하고 있어서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업체는 2천만∼3천만원이나 드는 서버를 벌써 4번째나 늘릴 예정. 최근에는 재미있는 일이 하나 생겼다. 이 유흥업소 인터넷 사이트의 콘텐츠를 011·016·018·019 등 대부분의 휴대폰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휴대폰만 열어도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어, 일반인들이 무척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실정. 유흥업소 입장에서도 인터넷 사이트가 무척 유용하다. 이른바 ‘아가씨’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업계에서는 이 사이트를 통해 수많은 여성들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또 이런 사이트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쉽게 유흥업소로 몰려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사이트에 들어가면, 인터넷에 익숙한 20대 젊은 여성 수백명이 구직문의를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실제 사이트들은 현재 구직상담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원할 경우 현장에 직접 방문, 불평등한 계약을 막아주고, 신뢰도를 점검해 통보해 주기까지 한다. 그래선가. 젊은 여성들이 ‘안심’하고 구직문의를 쏟아낸다는 것이다. 유흥업소 입정에선, 이 사이트를 통해 고객도 유치하고 여종업원까지 구하는 일석이조를 누리고 있는 셈. 이런 효과 때문인지 사이트와의 계약은 대부분 6개월이 지나 장기계약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란 설명. 궁극적으로 보면, 이런 사이트는 고객들에게도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인 듯 싶다. 접대문화가 필요악으로 여겨지는 국내 정서상 고객들은 항상 보다 믿을 수 있는 업체, 할인 혜택까지도 제공받을 수 있는 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 사이트 정보를 잘 활용하면 속칭 ‘삐끼’에 속거나 바가지를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이 사이트를 통해 한 직장인은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약속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할인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사이트에 글을 올려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이 바람에 그 룸살롱은 졸지에 요주의 업소로 낙인찍혀 거의 문닫을 지경까지 이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유흥업소의 사이버 마케팅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유흥문화와는 거리가 먼 일반인들까지 ‘사이버 홍등가 빛’에 마음 설레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한 20대 직장인은 이 사이트를 통해 유흥업소 문화에 깊숙이 빠져들어 회사 공금을 유용한 일까지 빚어지기도 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사례. 또한 이 사이트를 통해 겁많은(?) 여대생 및 주부들이 손쉽게 유흥업소에 현혹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 글을 통해 이를 ‘담배 자판기의 폐악’으로 설명한 바 있다. “담배 자판기만 아니어도 청소년들이 손쉽게 담배를 구입치는 못할 것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바람에 유흥업소를 들락날락 거릴 수 없고, 정보도 못 얻는 이들을 너무도 떳떳하게 유흥주점의 고객 및 여종업으로 만들어버린다.” 여하간 필요악이라는 유흥문화가 보다 발 빠르고 투명하게 세상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지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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