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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자시장 빅3]“모자 하면 내가 캡… 60억 세계인이 고객”
- [세계 모자시장 빅3]“모자 하면 내가 캡… 60억 세계인이 고객”
자칭 원조보수 vs 펄펄 뛰는 경영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모자 만들기는 어지간한 의류보다 어렵다. 챙·고리·단추까지 부자재만 70개가 넘는 데다 공정은 최소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산업’이다 보니 인건비 부담이 적은 동남아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추세다. 판촉용으로 수요가 많은 프로모션 모자 시장에서 중국 업체에 밀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 모자업계에서는 프로세스 혁신이 경쟁력이다. ‘생산성 싸움’인 것이다. 80년대 들어 생산기지를 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으로 이전한 영안은 국내에는 제품 개발과 샘플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설비만 남겼다. 대신 본사와 해외 공장은 세계 어디에서 주문이 들어와도 36시간 내에 샘플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다는 올해부터 생산방식을 통째로 바꿨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한 동작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3∼4가지 공정은 물론 검품까지 하도록 하는 ‘린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박부일 회장은 “린 방식 도입을 통해 한사람이 시간당 생산량을 1.5개에서 3.9개로 늘렸다. 앞으로 5개까지 높인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가격 경쟁력에서도 중국 업체를 따돌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회장은 “열심히 일하면 20%는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방법을 바꾸면 2백% 성장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5월20일 베트남 공장 준공식에 다녀온 조병우 회장은 대뜸 화장실 얘기를 꺼냈다. “준공식 행사에 나이키 바이어를 초대했는데 이 사람이 화장실을 둘러보더니 ‘넘버원’을 연발하는데 기분이 좋더라구요. 베트남 공장은 설계 단계부터 최고 품질을 염두에 뒀습니다. 바람의 방향과 사무실 동선까지 계산했으니까요. 그만큼 높은 생산성을 기대합니다.” 품질과 기술을 ‘섬기는’ 것은 세 사람의 공통점이지만 경영 스타일은 사뭇 대조적이다. 백성학 회장은 스스로 “보수에서 인간적 가치를 찾는다”라고 말하듯 영안은 반세기 가까이 ‘엄숙한 경영’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회사는 위계질서가 철저하고 자유복장도 아직 ‘계획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창사 이래 정리해고를 한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을 끝까지 챙긴다. 짠돌이 경영 역시 유명하다. 백회장은 지금도 해외출장 때 이코노미클래스를 탄다. 세계 어느 호텔에 묵든 숙박비가 2백달러가 넘으면 당장 발길을 돌린다. 이에 비하면 유풍은 정반대다. 서울 구로동 본사는 ‘물고기경영’ 포스터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사무실 곳곳이 직원들의 야유회 사진이나 슬로건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소풍을 온 듯한 인상이다. “신바람을 불어넣어 퇴근하기 싫은 직장을 만들겠다”는 조병우 회장의 뜻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해외출장을 갈 때 유풍 직원은 최고급 호텔에 투숙한다. 업무가 끝나면 현지에서 곧바로 1주일의 보너스 휴가를 준다. 직원들이 ‘펄떡이는 물고기’가 되려면 무엇보다 생기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배려에서다. “이제는 다른 길 걷는다” “과거에는 1년 전에 주문을 받았어요. 지금은 1개월이 보통입니다. 10년 전 사업하는 방식이 한강에 나룻배 띄우는 것이라면 지금은 보트를 타고 협곡을 내려오는 격입니다.” 박부일 회장의 말이다. 빅3 업체는 지금 ‘변곡점’을 만났다. 시장은 새로운 트렌드를 요구하고 경쟁업체는 더 강해졌다. ‘모자왕국’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세 사람이 가는 길이 다르다. 백성학 회장은 기계업 진출을 선언했다. 연초 미국의 지게차 생산업체인 클라크 머티어리얼 핸들링 컴퍼니(CMHC)를 1백20억원에 인수했다. CMHC는 세계 지게차업계 5위권 회사로 국내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른다. 인수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4월에는 대우버스(옛 대우자동차 부산공장)를 사들였다. 대우버스 본사뿐만 아니라 중국합작법인 지분 60%까지 포함해 1천4백83억원을 들어가는 대형 규모다. 대우버스는 현재 연간 5천대를 생산해 3천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있는 회사로, 영안의 ‘주력’이 바뀐 것이다. “모자회사인 영안이 어떻게 기계회사를 인수하느냐”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백회장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모자와 버스는 전혀 다른 제품인 것 같지만 모자는 천을, 버스는 쇠를 잘라 만든다는 점에서 생산 원리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97년 코스타리카에서 벤츠 버스를 만드는 회사(마우코)를 인수해 엘살바도르·과테말라 등에 연간 3백대씩 수출하고 있으니 기계업에서는 이미 터를 닦았다”고 말하고 있다. 백회장은 “(모자가 그랬던 것처럼) 70년대 기술로도 충분히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대우버스도 해외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반면 박부일 회장에게 해답은 섬유다. 그는 ‘섬유 왕국’을 꿈꾼다. 30년 동안 잘 해온 분야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미 스포츠 의류와 핸드백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다 관계사인 다다산업을 세계적인 완구 메이커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자체 디자인을 강화해 마진률이 높은 자체개발공급(ODM) 비중을 높이는 것도 주요한 과제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에 근무하는 3백30명 가운데 4분의 1이 디자인 인력이다. 섬유만으로 충분히 회사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공개 계획을 묻자 박회장은 “3억 달러 수출을 달성할 때까지 (기업 공개를) 미루겠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조병우 회장은 ‘모자 한길’을 고집한다. “세계 1등의 모자회사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미국계 KC캡스라는 모자회사에서 플렉스피트를 도용해 유사상품을 만들었다가 미국 법원으로부터 특허권 가처분 신청을 받아낸 ‘사건’에 크게 고무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회사를 상대로 특허권 소송에서 승리한 첫번째 사례다. 그만큼 기술력에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새로운 변신과 영토 확장, 오로지 한길-. 세 명의 ‘모자왕’ 앞에 놓인 화두다. 환갑을 넘은 이들이 새 힘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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