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 스토리의 허구와 진실
예수 탄생 스토리의 허구와 진실
The Birth of Jesus
약 2천년 전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는 젊은 여인 마리아는 당혹스럽고 두려우며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마리아 앞에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 누가는 그 여인이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처녀”였고 이름은 마리아라 적고 있다.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자 마리아는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하고 무서워한다. 혼란과 경악에 휩싸인 채 아무 대답도 못한 마리아의 얼굴엔 불안과 공포가 가득하다. 그녀의 두려움을 알아차린 가브리엘은 안심시키듯 이렇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가브리엘이 계속 말한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다시 말해 오래 전 선지자 예레미야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전설 속의 인물 메시아가 마리아의 복중에 들었다는 얘기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마리아가 드디어 입을 연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이에 가브리엘은 “성령이 네게 임하셨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들과 2천년 후를 사는 우리들까지도 많은 의문을 품게 됐다. 누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리아는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러운 와중에 아이의 놀라운 혈통과 사명을 받아들여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겼다.” 마태복음은 가브리엘의 현시를 알지 못했던 요셉이 약혼녀의 임신 소식에 창피스런 나머지 비밀리에 파혼하려 했다고 전한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구세주가 어쩌면 마리아와 로마 병정이 간통을 저질러 낳은 사생아일지도 모른다는 비난과 싸워야 했다.
21세기 초인 지금 일부 학자들은 성서의 예수 탄생을 두고, 예수가 메시아라는 근거가 빈약해 보이는 주장을 뒷받침할 목적으로 1세기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기독교 자체만큼이나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억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은 이번 달 구주 탄생을 경축한다. 촛불이 밝혀지고 캐럴과 향료 내음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가브리엘의 방문,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행,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한밤 중에 목자들에게 전해진 영광의 소식, 동녘 하늘의 별, 동방 박사들의 사명 등을 그린 옛날 얘기 보따리가 다시 한번 펼쳐질 것이다.
신앙의 구성 요소가 대부분 그렇듯이 예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는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역사적 정밀성과 신학적 의미에 대한 논쟁뿐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이미지와 언어들 일부가 사도적 계시에 의거하는 것 못지 않게 로마제국의 다신교 문화에도 상당 부분 의존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앙에 대한 역사주의적 관점과 성서 중심적 관점은 극장이나 서점에서도 서로 충돌하고 있다. 올해 대히트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 최후의 날을 두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스릴러 ‘다빈치 코드’는 초기 교회가 기독교 교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예수에 대한 중요 사실들을 은폐했다는 주장에 부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확실한 믿음과 깊은 의심이 혼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때로는 복음주의와 세속주의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 있는 ‘제임스 돕슨 포커스 온 더 패밀리’의 부회장인 H. B. 런던은 “지나친 단순화는 피하고 싶지만 기독교 신앙은 천진한 면이 있다”며 “동정녀의 출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 타당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확실하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미국 성인의 84%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여기며, 예수를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82%에 달한다. 79%가 처녀 잉태설을 믿었으며, 67%는 천사의 현현과 베들레헴의 별 등을 그린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역사적 정확성을 지닌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수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설파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 세미나’다. 이 모임의 회원이자 주니아타대의 종교학 교수인 로버트 J. 밀러는 2003년 저서 ‘타고난 신성: 예수, 그리고 하나님의 다른 아들들’(Born Divine: Jesus and Other Sons of God)에서 예수 탄생설화를, 알렉산더 대왕이나 아우구스투스 황제 같은 이교도 영웅들의 탄생설화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를 신성한 인물로 묘사한 문학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십자군이나 교회의 부정부패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란 하나의 동화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신앙과 이성이 언제나 충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했듯이 신앙과 이성은 인간의 영혼이 진리의 묵상에 다다르는 데 필요한 양 날개와도 같다.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의 영혼은 날 수 없는 새와 같다. 사리분별에 밝은 현대인들이 신앙의 비약을 통해 요한복음이 이른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이 인간화되는 방식을 설명한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세밀히 분석해 보면 예수 탄생은 완전한 허구도 완전한 진실도 아니며, 신학적 교리와 설화가 결합된 혼합물임을 알 수 있다. 4세기에 채택된 니케아 신경(信經)에서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삶과 그 광대무변한 중요성을 설파한 이야기가 그의 탄생이 아니라 수난과 부활 속에서 시작됐다. 예수는 A.D. 30년께 유월절에 선동죄목으로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됐다. 골고다에서 참혹하고 굴욕적인 죽음을 맞은 후 그는 부활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대부분 유대인이었고, 또 스스로 유대인으로 생각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의 기적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예수의 최후와 제자들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결국 예수 탄생에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한 예수가 재림해 언제든 묵시록의 계시를 실현하리라 믿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이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자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 교부들은 자신들이 하늘로 들려올림받는 역사의 목격자가 아니라 이승에서 기록되고 보존돼야 할 계시의 청지기임을 자각하게 됐다. 초기 신자들은 기독교 건설을 위해서는 예수의 일화와 말씀을 보존하고 기쁜 소식, 즉 복음을 구체화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갔다.
그들은 구원을 위해 다른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며, 예수를 달리 해석하는 타 기독교 분파를 제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A.D. 1세기 유대교 내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았던 일개 종교가 커다란 종교적 소요 속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세를 확장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은 그 수많은 노고 중 일부다.
복음서 저자들은 혼돈의 와중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구전을 취합해 예수의 일화를 소개했다. 객관적인 방식을 취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함으로써, 요한이 말했듯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했던 것이다. 예수 탄생 이야기의 기원은 성인 예수를 다룬 대목보다 훨씬 모호하다.
초자연적 수태,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하늘의 별, 밤의 목자들, 여행에 나선 동방박사들과 같은 세부 사항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일까? 분명 예수가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노터데임대의 교수이자 가톨릭 사제인 존 P. 마이어는 기념비적 연작 ‘변방의 유대인: 역사 속의 예수에 대한 재고찰’(A Marginal Jew: Rethinking Historical Jesus)에서, 예수 스스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말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며, 마리아나 요셉도 그에 대한 직접적 출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이어는 “탄생설화의 배경이 된 구전설화는 예수의 사역 과정이나 십자가 처형에 관한 이야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후자의 경우는 직접적인 목격의 산물들이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탄생을 이야기하고 싶어했지만 근거가 없었다. 바로 여기서 설화와 신학적 교리가 개입한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가 궁극적으로 “진실”이지만 마치 언론 기사처럼 엄격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선언했다. 공의회는 성서의 ‘문학적 표현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서들은 일종의 ‘문학 작품’이므로 그 속에 쓰인 예수에 대한 설명을 흔히 말하는 역사나 전기(傳記)의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 전기 작품들은 지금의 것과 사뭇 달랐다.
플루타르크 같은 전기 작가들은 위인들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세부 내용을 창작하거나 미화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이교도 구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적 같은 탄생, 초자연적인 징후들, 최고의 고귀함을 다룬다. 우리가 예수 탄생 이야기를 고전 전기물로 재조명해 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구원의 진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와 사명이 보다 명확해진다.
4대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A. D. 60년께)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건너뛰고 성인이 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또 가장 나중에 나온 요한복음(A. D. 90년께)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선언함으로써 우주가 탄생할 시점에서의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를 밝혀 예수가 이 땅에서 태어난 세부 사항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시사한다.
신약성서의 나머지 부분들은 예수의 탄생에 대해 침묵한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누가복음 두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두 복음서 모두에서 핵심 사건은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와 베들레헴에서의 예수 탄생이다. 그로 인해 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다윗의 자손 메시아라는 특별한 아이를 낳는다.
이런 기적 같은 임신들은 유대교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사라는 90세에 이삭을 낳았고 역시 늦은 나이에 마노아의 아내는 삼손을,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마리아의 순결을 유독 강조한다. 다른 성경 일화에서는 하나님이 나이가 많거나 불임인 여성에게 아이를 주실 때 동정녀가 아니라 남편과 같이 사는 평범한 기혼 여성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마태와 누가는 마리아의 동정을 강조함으로써 성수태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유대교 저술가들보다 훨씬 심도있게 다룬다. 왜 그랬을까? 가장 간단한 설명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바로 그런 방법으로 개입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정녀 수태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사역 기간이나 사도들의 전도 기간, 혹은 신약성서의 나머지 부분 어느 곳에서도 그 사실에 대해 회상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복음서의 한 부분에서는 마리아 자신도 아들 예수의 특별한 탄생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마가복음에서 예수가 기적을 행하며 사도들을 모으고 다닐 때 ‘그의 친구들’(그리스어로는 ‘가족’을 뜻하기도 하므로 그의 모친 마리아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은 “예수가 미쳤다”며 그를 막으려 한다. 마리아가 정말 천사 가브리엘의 음성을 들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미친 게 아니라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만약 동정녀 잉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무조건 믿어야 할 조항 중 하나라고 가정한다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은 다른 식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신학자 디어드리 굿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부활로 정점을 이루는 예수 이야기에서 동정녀 잉태는 논리적인 시작점이라고 초대 교회는 주장했다. 그 두가지 기적은 신학적으로 완벽한 하나를 이룬다. 예수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말하면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신의 개입을 통해서만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인 동시에 인간이었던 존재로 비쳐질 수 있었다.”
비기독교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에게 초기 기독교인들이란 미신에 사로잡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전하는 미개한 변방인들이었다. 예일대 역사학자 자로슬라브 펠리칸에 따르면 열렬한 기독교 비판자였던 플라톤 학파의 켈수스는 하나님이 “유대의 작은 마을”을 통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주장을 비난했으며(A. D. 175∼180), 한 로마 황제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은 “미개한 야만인들의 신일 수밖에 없다”고 무시했다.
그에 대해 최초의 성서학자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겐은 “우리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이 혐오하는 것은 자신들이 반신반인을 숭배하는 신비주의 종파로 비치는 것이었다.
민망한 이야기들도 떠돌았다. 동정녀 수태 이야기는 예수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이 충격적인 가설의 기원은 적어도 A. D. 2세기, 어쩌면 예수 생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켈수스는 A. D. 180년 이렇게 적었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예수 자신이 꾸며낸 것이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방적을 해서 먹고 사는 가난한 시골 여인이었다. 그녀는 판테라라는 이름의 병사와 간통한 사실이 드러나자 목수였던 남편에게 쫓겨났다. 그 후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몰래 예수를 낳았다. 예수는 가난했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그곳에서 마술을 배웠다. 의기양양해진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3세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일부 유대인들도 예수가 사생아였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고 썼다.
신약성서에서 그런 주장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힌트가 될 만한 내용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와 제사장들 사이에 벌어진 날카로운 설전에 있다. 예수가 제사장들에게 왜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살지 않느냐고 비난하자 그들은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답한다. 저명한 학자이자 로마 가톨릭 사제로서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고(故) 레이먼드 E. 브라운은 이 문장을 두고 “그 말은 아마도 ‘우리는 당신처럼 사생아가 아니다’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혼전에 한 인간 남자에 의해 잉태되었다면 초대 교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령의 개입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동정녀 잉태는 수치스런 진실을 감추기 위해 꾸며낸 사실이 아니라 예수의 특별하심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그는 선지자도 신도 아니었고 성공회 공도문(公禱文)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공유하고 인간으로 살다가 죽고 모든 이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수의 개념은 그토록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마태와 누가는 예수를 기존 유대교의 틀과 예언의 맥락 안에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성육신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은 구약 사무엘상에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한나가 드리던 감사 기도(“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와 유사하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이 조상 때부터 기다려왔던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예수와 유대인들의 과거를 연결했다. 또 마태는 이사야서(“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를 인용하며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적는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대목의 문제점은 그것이 오랫동안 잘못 번역되고 잘못 해석돼 왔다는 점이다. 레이먼드 브라운은 ‘메시아의 탄생’(The Birth of the Messiah)에서 이 한 문장이 성경 해석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논란거리였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예언자들이 썼던 히브리어는 ‘동정녀’가 아닌 ‘젊은 여자’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며 히브리어로 된 이사야서의 그 문장은 문맥상 “가까운 미래에 동정녀가 임신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임신으로)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인데 그는 다윗의 자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브라운은 “그리스어적으로 그 말을 해석하면 ‘남편을 맞게 되면 처녀가 임신하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지리학적 위치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복음서들은 예수의 탄생지를 강조한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1세기 초반에는 로마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이스라엘 및 전세계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다스려줄 다윗 왕과 같은 존재로 이해됐다)가 다윗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음서들을 보면 당시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나사렛 사람이라는 이유를 들어 메시아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태는 예수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별을 따라 온 동방 박사들이 그를 찾아와 경배했다는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런 별이 정말 있었을까? 핼리 혜성이 B. C. 12년께 출현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마태는 그로부터 오랜 뒤 그 일을 이야기에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또 신명기의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더 분명한 것은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 시편 72편의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라는 구절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됐다는 점이다. 그들이 실제로 방문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상징적 의미는 확실하다. 세력가들이 그 아기 앞에 경배했다는 것은 예수가 아기 때부터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혁명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마태는 예수를 베들레헴과 나사렛 양쪽 다 연관지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살았으며, 나중에 나사렛 북부로 이동했다고 적는다. 아울러 마태는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낸 기적을 상기시키는 두가지 이야기를 거기에 덧붙인다. 유대왕 헤롯이 동방 박사들로부터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듣고는 그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돌아올 것을 명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의 꿈에 나타나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 것을 지시한 다음 다시 요셉의 꿈에 나타났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박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노하고 질투심에 불탄 헤롯이 베들레헴의 모든 사내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한다.
이 이야기로 마태는 하나님이 애굽왕 바로에 의한 학살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을 구원한 첫 유월절과 예수의 탄생을 연관짓는다(역사에 따르면 헤롯이 잔인한 통치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학살 기록은 없다).
예수가 애굽으로 간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누가복음이나 신약성서의 다른 어떤 대목에서도 그 사건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태는 그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에서 갈릴리로 갔다고 적음으로써 나사렛 문제를 나름대로 말끔히 해결했다.
누가가 봉착한 어려운 문제는 마태와는 정반대로, 나사렛 북부에서 살았다고 한 마리아와 요셉을 남부의 베들레헴으로 어떻게 옮겨놓느냐는 것이었다. 누가는 역사를 동원했다. “그 때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러나 누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항들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 브라운은 그 이야기가 “거의 모든 점에서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가가 예수의 탄생을, 군주들이 완력으로 백성들을 지배한 시기에 맞춘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예수 탄생의 신학적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말을 인용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속세의 제왕이나 총독이 예수 자신이 말한 왕국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 탄생의 메시지는 무력한 아기가 사실은 천국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 메시지가 갖는 힘은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들고, 비천한 자를 유력하게 만드는 일관된 ‘반전’에 있다. 마굿간·구유·아기 예수를 강보에 싼 것이 바로 그런 신학적인 암시다. 마태는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살았다고 추정하기 때문에 그런 세부 사항을 언급하지 않는다. 호적 등록을 위해 길을 떠난 것으로 묘사하고 여관·구유·강보를 추가한 것은 누가다. 구유 속에 있는 아기 예수의 이미지는 구약성서의 세 대목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여관이라는 표현은 예레미아서의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구유의 근원은 이사야서 첫머리에 나오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에 있는 것 같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싼 것은 솔로몬의 지혜서에 나오는 대목 “나도 포대기에 싸여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다. 왕도 태어났을 때는 모두 인생을 똑같이 시작한다”와 유사하다.
물론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다는 누가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도리는 없다. 그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려면 일단 천사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예수 탄생 후 집단이나 개인이 목자와 동방 박사가 목격한 놀라운 탄생을 회상하는 것이 신약성서에 누락되어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도 성서의 표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사야서에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돼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도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대목을 서술할 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런 유일신 사상(‘나 외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유대교 계명을 기독교인들이 그대로 따른 것)은 복음주의자들을 따르는 일부 신자들에게만 자동적인 호소력을 발휘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독교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전도가 필요했다.
예수 탄생 이야기의 기본 요소들은 이교도가 흔히 듣던 이야기였다. A.D. 2세기 수에토니우스가 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 B.C. 27∼A.D. 14)의 전기에는 그가 태어난 날 전후에 나타난 징조들이 언급된다.
아우구스투스의 탄생 자체가 신에 의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 아티아가 잠들어 있었을 때 아폴로신이 뱀으로 변해 그녀를 임신시켰다.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후 아티아는 남편과 자고 난 뒤처럼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었다”는 수에토니우스의 묘사에서 암시된다. 수에토니우스는 “그 아기는 아폴로신의 아들로 간주되었다”고 적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설화와 예수의 탄생 이야기 사이에는 분명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복음서에 묘사된 그리스도처럼 성령에 의한 잉태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자들은 마리아가 성적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고대설화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처녀 잉태와 일치하는 다른 예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독교 복음이 첫 1천년대 초기에 전파되던 시기에 살았던 이교도 가운데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마태와 누가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는 B. C. 40년에 쓴 ‘제4 전원시’에서 꽃의 요람에 뉘인 아이가 지배하는 평화의 시대를 그렸다. “지금 태어날 아기 아래서는 철의 종족(노동과 괴로움으로 차 있어 마침내 화와 자멸의 길을 간다)이 사라지고 위대한 황금의 종족이 세계를 지배하리니… 순결한 루시나(출산의 여신)여, 이 아기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소서.
당신의 아폴로가 이제 왕이시라.” 그 다음 아기의 탄생을 이렇게 맞이한다. “보라, 천지가 경의를 표하며 진동한다… 땅과 대양의 끝까지, 하늘의 끝까지!” 베르길리우스와 복음주의자들은 사실 똑같은 구전 문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제4 전원시’는 그런 출생 이야기가 예수 생애 이전과 당시, 그리고 그 후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예수에 대한 시각이 다른 분파들간 충돌은 예수 추종자들 사이의 내분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기독교인들의 시각은 크게 달랐다. ‘그노시스’(영지주의)로 알려진 종교운동은 기독교에 대한 매력적인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노시스 신자들은 용인된 가르침 외에 하나님의 ‘내면적 지식’을 추구했다. 프린스턴대의 종교학 교수로 그노시스파 전문가인 일레인 페이절스는 “영지란 자기 자신 안에서 창조의 근원인 신성을 찾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런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에 표현된 예수에 대한 시각뿐 아니라 개인적 인지와 변화까지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기독교 그룹들의 눈에는 그노시스파가 지나치게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인간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것으로 비쳤다. 다시 말해 ‘이단’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에 따라 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은 치열한 내분의 근원이 됐다.
그노시스파의 ‘빌립복음서’는 예수가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생물학적으로 태어났지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영적인 거듭남의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함으로써 예수 탄생을 재해석했다. 빌립은 예수를 상징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그의 거듭남이 다른 사람에게도 세례의식을 통해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 견해에 대해 2세기 후반의 교부 이레니우스는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그는 예수가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태어난 뒤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었다. 처녀 잉태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육신의 뜻이나 인간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의해 그의 손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뜬 아담을 다시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단을 규정한 니케아 종교회의에 의해 그의 해석이 승리했다. 정통 신자에게 예수는 마태가 이사야의 말을 재해석한 것처럼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존재”였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인간 아버지가 없었고, 왕이면서 죄수로 처형됐으며, 자신이 만든 세계가 전쟁으로 파멸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을 약속했다. 따라서 기독교는 혼란한 모순의 종교인 셈이다. 신자들은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학자로서 성공회 성직자로 시작해 나중에 가톨릭 추기경이 된 존 헨리 뉴먼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어두운 혼란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앞에는 단 하나의 밝은 빛이 있다. 그 빛은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충분하다.
이 빛이 사라지면 우리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우리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성탄 별은 그런 수많은 빛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출신 배경이나 신앙을 불문하고 우리 중 다수는 어둠을 헤치고 집으로 인도해줄 신앙을 구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 천사가 주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크리스마스 시즌만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가 기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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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천년 전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는 젊은 여인 마리아는 당혹스럽고 두려우며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마리아 앞에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 누가는 그 여인이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처녀”였고 이름은 마리아라 적고 있다.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자 마리아는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하고 무서워한다. 혼란과 경악에 휩싸인 채 아무 대답도 못한 마리아의 얼굴엔 불안과 공포가 가득하다. 그녀의 두려움을 알아차린 가브리엘은 안심시키듯 이렇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가브리엘이 계속 말한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다시 말해 오래 전 선지자 예레미야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전설 속의 인물 메시아가 마리아의 복중에 들었다는 얘기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마리아가 드디어 입을 연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이에 가브리엘은 “성령이 네게 임하셨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들과 2천년 후를 사는 우리들까지도 많은 의문을 품게 됐다. 누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리아는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러운 와중에 아이의 놀라운 혈통과 사명을 받아들여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겼다.” 마태복음은 가브리엘의 현시를 알지 못했던 요셉이 약혼녀의 임신 소식에 창피스런 나머지 비밀리에 파혼하려 했다고 전한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구세주가 어쩌면 마리아와 로마 병정이 간통을 저질러 낳은 사생아일지도 모른다는 비난과 싸워야 했다.
21세기 초인 지금 일부 학자들은 성서의 예수 탄생을 두고, 예수가 메시아라는 근거가 빈약해 보이는 주장을 뒷받침할 목적으로 1세기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기독교 자체만큼이나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억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은 이번 달 구주 탄생을 경축한다. 촛불이 밝혀지고 캐럴과 향료 내음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가브리엘의 방문,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행,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한밤 중에 목자들에게 전해진 영광의 소식, 동녘 하늘의 별, 동방 박사들의 사명 등을 그린 옛날 얘기 보따리가 다시 한번 펼쳐질 것이다.
신앙의 구성 요소가 대부분 그렇듯이 예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는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역사적 정밀성과 신학적 의미에 대한 논쟁뿐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이미지와 언어들 일부가 사도적 계시에 의거하는 것 못지 않게 로마제국의 다신교 문화에도 상당 부분 의존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앙에 대한 역사주의적 관점과 성서 중심적 관점은 극장이나 서점에서도 서로 충돌하고 있다. 올해 대히트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 최후의 날을 두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스릴러 ‘다빈치 코드’는 초기 교회가 기독교 교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예수에 대한 중요 사실들을 은폐했다는 주장에 부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확실한 믿음과 깊은 의심이 혼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때로는 복음주의와 세속주의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 있는 ‘제임스 돕슨 포커스 온 더 패밀리’의 부회장인 H. B. 런던은 “지나친 단순화는 피하고 싶지만 기독교 신앙은 천진한 면이 있다”며 “동정녀의 출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 타당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확실하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미국 성인의 84%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여기며, 예수를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82%에 달한다. 79%가 처녀 잉태설을 믿었으며, 67%는 천사의 현현과 베들레헴의 별 등을 그린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역사적 정확성을 지닌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수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설파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 세미나’다. 이 모임의 회원이자 주니아타대의 종교학 교수인 로버트 J. 밀러는 2003년 저서 ‘타고난 신성: 예수, 그리고 하나님의 다른 아들들’(Born Divine: Jesus and Other Sons of God)에서 예수 탄생설화를, 알렉산더 대왕이나 아우구스투스 황제 같은 이교도 영웅들의 탄생설화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를 신성한 인물로 묘사한 문학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십자군이나 교회의 부정부패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란 하나의 동화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신앙과 이성이 언제나 충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했듯이 신앙과 이성은 인간의 영혼이 진리의 묵상에 다다르는 데 필요한 양 날개와도 같다.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의 영혼은 날 수 없는 새와 같다. 사리분별에 밝은 현대인들이 신앙의 비약을 통해 요한복음이 이른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이 인간화되는 방식을 설명한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세밀히 분석해 보면 예수 탄생은 완전한 허구도 완전한 진실도 아니며, 신학적 교리와 설화가 결합된 혼합물임을 알 수 있다. 4세기에 채택된 니케아 신경(信經)에서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삶과 그 광대무변한 중요성을 설파한 이야기가 그의 탄생이 아니라 수난과 부활 속에서 시작됐다. 예수는 A.D. 30년께 유월절에 선동죄목으로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됐다. 골고다에서 참혹하고 굴욕적인 죽음을 맞은 후 그는 부활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대부분 유대인이었고, 또 스스로 유대인으로 생각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의 기적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예수의 최후와 제자들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결국 예수 탄생에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한 예수가 재림해 언제든 묵시록의 계시를 실현하리라 믿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이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자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 교부들은 자신들이 하늘로 들려올림받는 역사의 목격자가 아니라 이승에서 기록되고 보존돼야 할 계시의 청지기임을 자각하게 됐다. 초기 신자들은 기독교 건설을 위해서는 예수의 일화와 말씀을 보존하고 기쁜 소식, 즉 복음을 구체화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갔다.
그들은 구원을 위해 다른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며, 예수를 달리 해석하는 타 기독교 분파를 제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A.D. 1세기 유대교 내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았던 일개 종교가 커다란 종교적 소요 속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세를 확장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은 그 수많은 노고 중 일부다.
복음서 저자들은 혼돈의 와중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구전을 취합해 예수의 일화를 소개했다. 객관적인 방식을 취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함으로써, 요한이 말했듯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했던 것이다. 예수 탄생 이야기의 기원은 성인 예수를 다룬 대목보다 훨씬 모호하다.
초자연적 수태,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하늘의 별, 밤의 목자들, 여행에 나선 동방박사들과 같은 세부 사항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일까? 분명 예수가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노터데임대의 교수이자 가톨릭 사제인 존 P. 마이어는 기념비적 연작 ‘변방의 유대인: 역사 속의 예수에 대한 재고찰’(A Marginal Jew: Rethinking Historical Jesus)에서, 예수 스스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말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며, 마리아나 요셉도 그에 대한 직접적 출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이어는 “탄생설화의 배경이 된 구전설화는 예수의 사역 과정이나 십자가 처형에 관한 이야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후자의 경우는 직접적인 목격의 산물들이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탄생을 이야기하고 싶어했지만 근거가 없었다. 바로 여기서 설화와 신학적 교리가 개입한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가 궁극적으로 “진실”이지만 마치 언론 기사처럼 엄격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선언했다. 공의회는 성서의 ‘문학적 표현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서들은 일종의 ‘문학 작품’이므로 그 속에 쓰인 예수에 대한 설명을 흔히 말하는 역사나 전기(傳記)의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 전기 작품들은 지금의 것과 사뭇 달랐다.
플루타르크 같은 전기 작가들은 위인들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세부 내용을 창작하거나 미화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이교도 구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적 같은 탄생, 초자연적인 징후들, 최고의 고귀함을 다룬다. 우리가 예수 탄생 이야기를 고전 전기물로 재조명해 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구원의 진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와 사명이 보다 명확해진다.
4대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A. D. 60년께)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건너뛰고 성인이 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또 가장 나중에 나온 요한복음(A. D. 90년께)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선언함으로써 우주가 탄생할 시점에서의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를 밝혀 예수가 이 땅에서 태어난 세부 사항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시사한다.
신약성서의 나머지 부분들은 예수의 탄생에 대해 침묵한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누가복음 두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두 복음서 모두에서 핵심 사건은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와 베들레헴에서의 예수 탄생이다. 그로 인해 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다윗의 자손 메시아라는 특별한 아이를 낳는다.
이런 기적 같은 임신들은 유대교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사라는 90세에 이삭을 낳았고 역시 늦은 나이에 마노아의 아내는 삼손을,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마리아의 순결을 유독 강조한다. 다른 성경 일화에서는 하나님이 나이가 많거나 불임인 여성에게 아이를 주실 때 동정녀가 아니라 남편과 같이 사는 평범한 기혼 여성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마태와 누가는 마리아의 동정을 강조함으로써 성수태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유대교 저술가들보다 훨씬 심도있게 다룬다. 왜 그랬을까? 가장 간단한 설명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바로 그런 방법으로 개입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정녀 수태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사역 기간이나 사도들의 전도 기간, 혹은 신약성서의 나머지 부분 어느 곳에서도 그 사실에 대해 회상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복음서의 한 부분에서는 마리아 자신도 아들 예수의 특별한 탄생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마가복음에서 예수가 기적을 행하며 사도들을 모으고 다닐 때 ‘그의 친구들’(그리스어로는 ‘가족’을 뜻하기도 하므로 그의 모친 마리아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은 “예수가 미쳤다”며 그를 막으려 한다. 마리아가 정말 천사 가브리엘의 음성을 들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미친 게 아니라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만약 동정녀 잉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무조건 믿어야 할 조항 중 하나라고 가정한다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은 다른 식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신학자 디어드리 굿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부활로 정점을 이루는 예수 이야기에서 동정녀 잉태는 논리적인 시작점이라고 초대 교회는 주장했다. 그 두가지 기적은 신학적으로 완벽한 하나를 이룬다. 예수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말하면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신의 개입을 통해서만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인 동시에 인간이었던 존재로 비쳐질 수 있었다.”
비기독교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에게 초기 기독교인들이란 미신에 사로잡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전하는 미개한 변방인들이었다. 예일대 역사학자 자로슬라브 펠리칸에 따르면 열렬한 기독교 비판자였던 플라톤 학파의 켈수스는 하나님이 “유대의 작은 마을”을 통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주장을 비난했으며(A. D. 175∼180), 한 로마 황제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은 “미개한 야만인들의 신일 수밖에 없다”고 무시했다.
그에 대해 최초의 성서학자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겐은 “우리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이 혐오하는 것은 자신들이 반신반인을 숭배하는 신비주의 종파로 비치는 것이었다.
민망한 이야기들도 떠돌았다. 동정녀 수태 이야기는 예수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이 충격적인 가설의 기원은 적어도 A. D. 2세기, 어쩌면 예수 생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켈수스는 A. D. 180년 이렇게 적었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예수 자신이 꾸며낸 것이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방적을 해서 먹고 사는 가난한 시골 여인이었다. 그녀는 판테라라는 이름의 병사와 간통한 사실이 드러나자 목수였던 남편에게 쫓겨났다. 그 후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몰래 예수를 낳았다. 예수는 가난했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그곳에서 마술을 배웠다. 의기양양해진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3세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일부 유대인들도 예수가 사생아였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고 썼다.
신약성서에서 그런 주장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힌트가 될 만한 내용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와 제사장들 사이에 벌어진 날카로운 설전에 있다. 예수가 제사장들에게 왜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살지 않느냐고 비난하자 그들은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답한다. 저명한 학자이자 로마 가톨릭 사제로서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고(故) 레이먼드 E. 브라운은 이 문장을 두고 “그 말은 아마도 ‘우리는 당신처럼 사생아가 아니다’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혼전에 한 인간 남자에 의해 잉태되었다면 초대 교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령의 개입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동정녀 잉태는 수치스런 진실을 감추기 위해 꾸며낸 사실이 아니라 예수의 특별하심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그는 선지자도 신도 아니었고 성공회 공도문(公禱文)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공유하고 인간으로 살다가 죽고 모든 이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수의 개념은 그토록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마태와 누가는 예수를 기존 유대교의 틀과 예언의 맥락 안에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성육신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은 구약 사무엘상에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한나가 드리던 감사 기도(“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와 유사하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이 조상 때부터 기다려왔던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예수와 유대인들의 과거를 연결했다. 또 마태는 이사야서(“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를 인용하며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적는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대목의 문제점은 그것이 오랫동안 잘못 번역되고 잘못 해석돼 왔다는 점이다. 레이먼드 브라운은 ‘메시아의 탄생’(The Birth of the Messiah)에서 이 한 문장이 성경 해석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논란거리였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예언자들이 썼던 히브리어는 ‘동정녀’가 아닌 ‘젊은 여자’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며 히브리어로 된 이사야서의 그 문장은 문맥상 “가까운 미래에 동정녀가 임신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임신으로)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인데 그는 다윗의 자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브라운은 “그리스어적으로 그 말을 해석하면 ‘남편을 맞게 되면 처녀가 임신하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지리학적 위치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복음서들은 예수의 탄생지를 강조한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1세기 초반에는 로마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이스라엘 및 전세계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다스려줄 다윗 왕과 같은 존재로 이해됐다)가 다윗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음서들을 보면 당시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나사렛 사람이라는 이유를 들어 메시아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태는 예수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별을 따라 온 동방 박사들이 그를 찾아와 경배했다는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런 별이 정말 있었을까? 핼리 혜성이 B. C. 12년께 출현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마태는 그로부터 오랜 뒤 그 일을 이야기에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또 신명기의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더 분명한 것은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 시편 72편의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라는 구절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됐다는 점이다. 그들이 실제로 방문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상징적 의미는 확실하다. 세력가들이 그 아기 앞에 경배했다는 것은 예수가 아기 때부터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혁명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마태는 예수를 베들레헴과 나사렛 양쪽 다 연관지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살았으며, 나중에 나사렛 북부로 이동했다고 적는다. 아울러 마태는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낸 기적을 상기시키는 두가지 이야기를 거기에 덧붙인다. 유대왕 헤롯이 동방 박사들로부터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듣고는 그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돌아올 것을 명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의 꿈에 나타나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 것을 지시한 다음 다시 요셉의 꿈에 나타났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박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노하고 질투심에 불탄 헤롯이 베들레헴의 모든 사내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한다.
이 이야기로 마태는 하나님이 애굽왕 바로에 의한 학살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을 구원한 첫 유월절과 예수의 탄생을 연관짓는다(역사에 따르면 헤롯이 잔인한 통치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학살 기록은 없다).
예수가 애굽으로 간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누가복음이나 신약성서의 다른 어떤 대목에서도 그 사건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태는 그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에서 갈릴리로 갔다고 적음으로써 나사렛 문제를 나름대로 말끔히 해결했다.
누가가 봉착한 어려운 문제는 마태와는 정반대로, 나사렛 북부에서 살았다고 한 마리아와 요셉을 남부의 베들레헴으로 어떻게 옮겨놓느냐는 것이었다. 누가는 역사를 동원했다. “그 때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러나 누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항들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 브라운은 그 이야기가 “거의 모든 점에서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가가 예수의 탄생을, 군주들이 완력으로 백성들을 지배한 시기에 맞춘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예수 탄생의 신학적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말을 인용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속세의 제왕이나 총독이 예수 자신이 말한 왕국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 탄생의 메시지는 무력한 아기가 사실은 천국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 메시지가 갖는 힘은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들고, 비천한 자를 유력하게 만드는 일관된 ‘반전’에 있다. 마굿간·구유·아기 예수를 강보에 싼 것이 바로 그런 신학적인 암시다. 마태는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살았다고 추정하기 때문에 그런 세부 사항을 언급하지 않는다. 호적 등록을 위해 길을 떠난 것으로 묘사하고 여관·구유·강보를 추가한 것은 누가다. 구유 속에 있는 아기 예수의 이미지는 구약성서의 세 대목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여관이라는 표현은 예레미아서의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구유의 근원은 이사야서 첫머리에 나오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에 있는 것 같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싼 것은 솔로몬의 지혜서에 나오는 대목 “나도 포대기에 싸여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다. 왕도 태어났을 때는 모두 인생을 똑같이 시작한다”와 유사하다.
물론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다는 누가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도리는 없다. 그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려면 일단 천사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예수 탄생 후 집단이나 개인이 목자와 동방 박사가 목격한 놀라운 탄생을 회상하는 것이 신약성서에 누락되어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도 성서의 표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사야서에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돼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도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대목을 서술할 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런 유일신 사상(‘나 외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유대교 계명을 기독교인들이 그대로 따른 것)은 복음주의자들을 따르는 일부 신자들에게만 자동적인 호소력을 발휘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독교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전도가 필요했다.
예수 탄생 이야기의 기본 요소들은 이교도가 흔히 듣던 이야기였다. A.D. 2세기 수에토니우스가 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 B.C. 27∼A.D. 14)의 전기에는 그가 태어난 날 전후에 나타난 징조들이 언급된다.
아우구스투스의 탄생 자체가 신에 의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 아티아가 잠들어 있었을 때 아폴로신이 뱀으로 변해 그녀를 임신시켰다.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후 아티아는 남편과 자고 난 뒤처럼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었다”는 수에토니우스의 묘사에서 암시된다. 수에토니우스는 “그 아기는 아폴로신의 아들로 간주되었다”고 적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설화와 예수의 탄생 이야기 사이에는 분명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복음서에 묘사된 그리스도처럼 성령에 의한 잉태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자들은 마리아가 성적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고대설화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처녀 잉태와 일치하는 다른 예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독교 복음이 첫 1천년대 초기에 전파되던 시기에 살았던 이교도 가운데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마태와 누가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는 B. C. 40년에 쓴 ‘제4 전원시’에서 꽃의 요람에 뉘인 아이가 지배하는 평화의 시대를 그렸다. “지금 태어날 아기 아래서는 철의 종족(노동과 괴로움으로 차 있어 마침내 화와 자멸의 길을 간다)이 사라지고 위대한 황금의 종족이 세계를 지배하리니… 순결한 루시나(출산의 여신)여, 이 아기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소서.
당신의 아폴로가 이제 왕이시라.” 그 다음 아기의 탄생을 이렇게 맞이한다. “보라, 천지가 경의를 표하며 진동한다… 땅과 대양의 끝까지, 하늘의 끝까지!” 베르길리우스와 복음주의자들은 사실 똑같은 구전 문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제4 전원시’는 그런 출생 이야기가 예수 생애 이전과 당시, 그리고 그 후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예수에 대한 시각이 다른 분파들간 충돌은 예수 추종자들 사이의 내분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기독교인들의 시각은 크게 달랐다. ‘그노시스’(영지주의)로 알려진 종교운동은 기독교에 대한 매력적인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노시스 신자들은 용인된 가르침 외에 하나님의 ‘내면적 지식’을 추구했다. 프린스턴대의 종교학 교수로 그노시스파 전문가인 일레인 페이절스는 “영지란 자기 자신 안에서 창조의 근원인 신성을 찾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런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에 표현된 예수에 대한 시각뿐 아니라 개인적 인지와 변화까지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기독교 그룹들의 눈에는 그노시스파가 지나치게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인간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것으로 비쳤다. 다시 말해 ‘이단’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에 따라 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은 치열한 내분의 근원이 됐다.
그노시스파의 ‘빌립복음서’는 예수가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생물학적으로 태어났지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영적인 거듭남의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함으로써 예수 탄생을 재해석했다. 빌립은 예수를 상징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그의 거듭남이 다른 사람에게도 세례의식을 통해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 견해에 대해 2세기 후반의 교부 이레니우스는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그는 예수가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태어난 뒤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었다. 처녀 잉태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육신의 뜻이나 인간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의해 그의 손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뜬 아담을 다시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단을 규정한 니케아 종교회의에 의해 그의 해석이 승리했다. 정통 신자에게 예수는 마태가 이사야의 말을 재해석한 것처럼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존재”였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인간 아버지가 없었고, 왕이면서 죄수로 처형됐으며, 자신이 만든 세계가 전쟁으로 파멸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을 약속했다. 따라서 기독교는 혼란한 모순의 종교인 셈이다. 신자들은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학자로서 성공회 성직자로 시작해 나중에 가톨릭 추기경이 된 존 헨리 뉴먼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어두운 혼란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앞에는 단 하나의 밝은 빛이 있다. 그 빛은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충분하다.
이 빛이 사라지면 우리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우리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성탄 별은 그런 수많은 빛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출신 배경이나 신앙을 불문하고 우리 중 다수는 어둠을 헤치고 집으로 인도해줄 신앙을 구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 천사가 주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크리스마스 시즌만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가 기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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