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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요리연구실 원장…“재벌들 ‘가난할 때 밥상’ 차려 먹더라”

심영순 요리연구실 원장…“재벌들 ‘가난할 때 밥상’ 차려 먹더라”

심영순 요리연구실 원장.
‘이건희·구본무·정몽구 회장의 저녁 식탁에는 뭐가 오를까?’ 뉴스에 나오는 재벌 회장들을 보며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본다. 거부(巨富)들은 뭔가 특별한 걸 먹지 않을까? 하지만 재벌가를 상대로 30년간 요리를 가르치고 있는 ‘옥수동 선생’ 심영순(65) 요리연구실 원장은 “재벌가의 밥상은 의외로 소박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본 재벌가의 밥상에는 시래기찌개나 된장찌개가 주로 올랐고, 여기에 젓갈이나 가죽나물볶음 같은 밑반찬 정도가 전부였다. 적어도 그가 성북동을 오르내리며 요리를 가르치던 10년, 20년 전까지는 그랬다. “저도 처음엔 많이 놀랐어요. 당시(1970~80년대 초반)만 해도 정원수 있는 집에서 기사 딸린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흔치는 않았거든요. 그렇게 잘 가꿔진 집에서 해 먹는 반찬을 보면 의외로 소박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심 원장이 기억하는 인상 깊은 장면들을 보자. 하루는 삼양식품 회장 집에서 부인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양념을 하기 위해 고추를 써는데 옆에 있던 부인이 고추 부스러기와 가장자리 잘려나간 부분을 따로 챙겼다. ‘버리려고 그러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플라스틱 통을 가져오더니 고추 부스러기를 담는 게 아닌가. 이미 그 그릇에는 고추 부스러기나 자투리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라면 끓일 때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또 다른 기억 하나. 이번에는 국제그룹 회장 집. 70년대 규모를 급속하게 키운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 집은 말 그대로 저택이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양 회장 부인이 설거지가 끝나자 설거지통에 있던 밥알을 따로 모아 그릇에 담더라는 것. 재벌 집에서 설거지 통의 밥알을 왜 모을까? “이거 다 모았다가 풀 만들어서 이불 홑청 할 때도 쓰고, 옷 다릴 때도 써요.” 심 원장은 깜짝 놀랐다. ‘아니 설거지통 밥알이 얼마나 된다고….’ 이 정도 되면 재벌 집 식생활이나 저녁식탁이 어떨지는 눈으로 안 봐도 선하다. 고추 부스러기를 라면에 넣어 먹고, 설거지통에서 밥알을 추려내 풀을 먹일 정도면 식탁에 진귀한 음식이 놓일 리 없다.

정주영 회장 집 밥그릇이 제각각 당대 최고의 재벌이었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청운동 집에서 경험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국내 최고 재벌 집인데 뭐 좀 특별할 줄 알고 기대했죠. 그릇 중에 짝이 맞거나 세트로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그때가 80년대니까 저 같은 사람도 밥그릇, 국그릇으로 백자(白瓷)를 썼는데 그 집에는 모양도 색깔도 다른 그릇이 나오더라고요. 정 회장님도 그 그릇 그대로 먹습디다. 파티도 알루미늄을 덧씌운 나무탁자에 천을 깔고 하는 거예요. 그게 평소에는 회의 탁자로도 쓰인대요.” 왜 그렇게 궁상(?)을 떨었던 걸까? “그분들은 음식 먹는 데 신경을 쓰질 않더군요. 대충 때운다는 게 맞는 표현이죠. 저한테 음식을 배운 부인들도 실제 남편들에게 음식 솜씨를 뽐낼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하소연한 사람도 있죠. 보통 아침은 조찬모임, 점심·저녁은 약속이 있으니까…. 시간이 귀하지 먹는 건 귀한 게 아니더라고요.”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먹는 일은 당시 재벌들에게 관심사가 못 됐다. 먹는 일뿐이 아니다. “하루는 삼양식품 회장 집에 갔더니 내 옷이 너무 예쁘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거 명동에서 1만5000원 주고 샀어요’하니까 그 사모님이 농에서 옷 하나 가지고 나오시면서 ‘나는 이거 동대문에서 5000원 주고 샀는데, 이 옷으로 밤에 파티에도 입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지금의 상식이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상식 밖의 일들을 한 셈이다. 하지만 손님을 치를 때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렇게 검소하게 먹던 집들이 사업상 손님이든 개인적인 손님이든 바깥에서 누가 오면 상이 확 변했다. “최고급 송이버섯이나 고기·생선 등이 상에 가득 차려집니다. 지하나 부엌 뒤편에 가면 큰 냉장고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갖가지 귀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죠. 호텔 요리사들이 동원되기도 하고요.” 아마 일반인들이나 부잣집에 한번 놀러가 본 사람들이 ‘야, 그 집 정말 잘 먹고 살더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경험 때문일 것이다. 평소 밥상을 알 길 없는 손님들은 그 성대한 상을 보고 항상 그렇게 먹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본 재벌가의 특징은 ‘밥상은 검소하게, 접대상은 성대하게’다. “재벌치고 남을 대접하는 데 인색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게 심 원장의 결론.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 부인은 손님 오는 걸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지신을 많이 밟아주면 집안이 잘된다’는 게 그분의 지론이었죠.” 남을 극진히 대접하면서도 특유의 테스트나 기싸움이 녹아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 재벌 그룹 딸을 가르치기 위해 첫 대면을 했을 때다. 딸이 많은 집안이었는데 요리 선생을 처음 모신 자리에 교자상으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놓았다. 고기·해산물을 비롯해 각종 진미들이 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시 부산에 큰 공장이 있던 이 그룹은 싱싱한 해산물을 당일에 비행기로 공수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씩 맛을 보는데 다 맛있는 거예요. 요리마다 다 따로 선생을 붙여서 한 것 같더라고요. ‘당신이 이것보다 잘할 수 있어?’하는 일종의 기 죽이기죠. 순간 긴장이 확 되더라고요.”이때 주춤했거나 두 손 들었으면 재벌가 독선생의 명성은 여기서 끝났을 수도 있다.

현정은·이부진도 가르쳐 한 20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호텔업을 하는 한 기업인의 큰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가 아침에 나가면서 6만원을 주며 오늘 저녁에 올 독일 손님 30명을 위한 파티 준비를 하라고 한 것. “걱정을 엄청해요. 그 돈으로 어떻게 30명이 먹을 음식을 만드느냐고. ‘그래서 6만원으로 왜 못하느냐. 독일 애들은 맥주 한 병 들고도 파티라고 덤비는 사람들이다. 어렵게 할 거 없다. 요모조모 준비하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 4만8000원으로 안주를 다 만들어줬죠. 그랬더니 파티 끝나고 시아버지가 칭찬을 그렇게 했다고 합디다.” 나중에 그 며느리는 “아버님이 날 시험해 보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 원장의 교육을 받은 재벌가는 현대그룹 정 명예회장의 며느리 전부 비롯, 삼성·LG가의 일부 며느리와 딸도 포함된다. 여기에 앞서 말한 국제그룹·삼양식품·농심·삼천리 등 중견 그룹과 70, 80년대 장·차관, 대학총장 및 교수 부인들도 심 원장의 요리교실을 거쳐갔다.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 부인이나 벤처기업 사장 부인, 음식점 주인 등이 배우러 온다. 지난 30년간 가르친 인원만 수천 명이 넘고 지금까지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이 기록돼 있는 사람만도 1500명이 넘는다. 여기에는 최근 현대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현정은 회장도 포함된다. 현 회장은 시집오자마자 심 원장에게 요리 수업을 받기 시작해 10년 이상 요리를 배웠다. 그 인연으로 심 원장이 2000년 발행한 요리책 『최고의 우리 맛:옥수동 선생 심영순의 30년 노하우』 (동아일보사 刊)에 추천사를 쓸 정도였다. 심 선생은 현 회장을 “살림도, 요리도 잘하는 똑똑하고 참한 규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시아버지를 잘 모셔서 고 정 명예회장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현대가의 또 다른 며느리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회장의 부인 김영명씨도 심 원장에게 인상 깊은 인물. 김씨는 심 원장을 항상 차로 모셔오고, 모셔가는 등 깍듯이 대했다. 김씨의 예의도 예의지만 선생에 대한 재벌가의 대접이 더 눈에 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도 심 원장의 제자 중 하나. 결혼하기 전 신부수업을 받았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의 전 부인이었던 탤런트 고현정씨도 결혼하기 전 심 원장에게 음식을 배웠다. LG가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인 고(故) 구자성 LG건설 명예회장의 딸인 구본주씨와 구본희씨가 심 원장에게 요리를 배운 케이스. 이들은 구본무 LG회장과 6촌간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신정화(신명수 신동방 회장 장녀)씨도 심 원장에게 요리를 배웠던 사람 중 하나다. 심 원장이 재벌가에 요리선생으로 이름을 떨친 건 1960년대 말인 20대 때부터. 원래 음식솜씨가 좋았던 친정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았다. “그리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베풀고 살 정도의 살림은 됐던 덕에 어머니는 항상 이웃에게 음식을 나눠줬어요. 된장·고추장도 몇 독씩 담았어요. 한국 전쟁이 막 끝난 뒤라 주변의 군인가족들에게 장도 많이 퍼줬어요. 맛이 있으니 자주 얻어 먹으러도 오고요.” 솜씨 좋은 어머니 밑에서 음식을 배운 심 원장은 20대 초반 결혼하고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녔는데 가끔 목사님이나 부흥사님들이 오시면 대접했죠. 그러면 옆에 있던 권사님들이 깔끔하게 잘한다고 칭찬하셨어요. 그러면서 교회에서 소문이 좀 났죠.” 그렇게 입소문이 번지면서 20대 후반에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어머니 교실에 요리강습 강사로 초빙됐다. 강의가 좋았던지 주변 유치원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렇게 몇 번 하면서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리학원도 몇 군데 다녔다. “웬걸요. 요리학원에서 가르치는 게 겨우 소시지전 정도더라고요. 몇 군데 다니다가 너무 엉터리라서 그만 뒀죠.” ‘차라리 하나하나 잘하는 대가들한테 가서 배우자.’ 생각을 바꾸고 전국에 있는 이름난 대가들을 찾아다녔다. 술이면 술, 떡이면 떡, 고기면 고기… 나름대로 소문난 사람들에게 일 대 일로 배웠다. 대전에 누가 고기 맛있게 굽는다면 거기도 가보고, 아현동에 귀주떡 잘한다면 물어물어 찾아갔다. 시장에도 가고, 산에도 갔다. 그러다가 겨울에는 눈 덮인 산을 미끄럼 타고 내려오기도 몇 번이고 했다. 그렇게 배우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과 솜씨를 더욱 키워나갔다. “어느 순간 눈이 뜨였어요. 하나하나씩 배우다 보니 이제 제가 생각해서 마음먹은 대로 하면 맛이 나더라고요.” 그러던 중 모 사립학교 어머니회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강의를 했는데 한 학부모가 와서 “그룹을 만들 테니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당연히 ‘OK’. 한 팀에 4~6명 정도씩 구성해서 팀당 월 3만원씩 수강료를 받았다. 당시(60년대 말) 공무원이었던 남편 월급은 5만원 남짓이었다. 팀을 구성해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요리 강습을 해 줬는데 그중 재벌가들이 많았고 심 원장의 솜씨에 반한 몇몇 ‘사모님’이 이집저집 소개시켜준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재벌家 인공조미료 싫어해 그럼 재벌가 입맛의 특징은 뭘까? “입맛이야 다 다르죠. 그래도 대체적으로 기름지거나 느끼한 것을 싫어하고, 담백하고 산뜻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양념이나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은 금물입니다. 어린 시절 입맛 때문인지 ‘가난한 스타일’의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죠.” 실제 심 원장의 음식도 양념이 강하지 않고 담백한 편이다. ‘재벌가 독선생’인 심 원장의 레슨비도 재벌 수준일까? 레슨비는 월 25만원 정도. 월 4회 교육을 하고 재료비는 별도다. 재벌 부엌을 ‘꽉 잡고’ 있는 독선생의 레슨비치곤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재벌가의 며느리들이 교육을 받는다고 교육료를 재벌에 맞추면 다른 사람들은 배울 엄두를 내겠어요?” 수강생 중 ‘그냥’ 주부들도 있고 그 사람들을 위해 적당한 가격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대신 개인교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팀 요금(4명 기준)을 한꺼번에 받는다고. 심 원장은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천연 양념을 내놨다. 그동안 심 원장의 수강생들에게 알음알음으로 팔던 향신양념을 기업을 통해 대중화한 것. 건강식품 전문기업인 ㈜이롬을 통해 이번 달부터 ‘생스(生스)’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그는 “우리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조차 일본·미국 제품이 쓰이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나 같은 요리연구가나 식품회사들이 이런 제품을 계속 개발해 우리 맛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하러 찾아간 날, 심 원장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리선생 집에 왔는데 음식맛을 안 보고 갈 수 있느냐’는 것. 사양했지만 음식을 계속 만들었다. 대강 큰 줄기는 잡았는지 부엌에서 나와 의자에 앉았다가 카메라를 보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왔다”며 10분 후에 나타난 심 원장은 “사진까지 찍는데 음식하던 얼굴로 앉을 순 없다”고 했다. 곧바로 요리복에서 한복으로 옷도 갈아입었다. 탁자에 마주앉자마자 유리잔에 내온 음료수가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다기 세트에 담긴 녹차가 나오고서야 인터뷰가 시작됐다. 음식이 그렇듯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완성되지 않으면 남에게 내놓지 않는 성격이다. 인터뷰 말미가 되자 밥상이 차려졌다. “독선생이니, 요리연구가니 하면서 손님을 대접 안 하고 보내면 되나요. 드셔봐야 정확한 평가도 되는 거죠.”

심영순 요리연구실 원장
1968년 제자들의 집에서 단체 강의 시작
1988년 옥수동 극동상가에 ‘심영순 요리연구실’ 개원
KBS·EBS(최고의 요리비결) 및 KBS 라디오 등 방송 다수 출연
저서: 『최고의 우리 맛:옥수동 선생 심영순의 30년 노하우』-동아일보사
『옥수동 심영순 선생의 23가지 양념장으로 만든 203가지 요리』- 웅진닷컴
감수: 『암으로부터 지키는 건강한 밥상 차리기』-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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