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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학 박사 1호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

독일 경제학 박사 1호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

월드컵 축구로 독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다.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과 같이 한국도 ‘한강의 기적’을 이뤄 이제 11위 경제대국이 됐다. 한국 최초의 독일 유학생이자 경제학 박사 1호인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을 만나 오늘의 우리 경제를 생각해 봤다. 편집자 백 원장은 미국 예일대의 폴 케네디와 막역한 친구 사이다. 그런데 폴 케네디가 한국을 차기 세계의 중심국으로 지목하고 있다고 우선 소개했다. 18세기로부터 20세기까지 300년의 세계 경제는 팍스 브리태니커(영국에 의한 세계평화)와 팍스 아메리카(미국에 의한 세계평화)로 대변된다. 영국과 미국이 경제 중심국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21세기가 아시아·태평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중 한국이야말로 세계 경제 중심국으로서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종교의 뒷받침이다. 이는 국민의 단합심이나 의식체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엔 종교의 의미가 약하다. 그러나 한국은 예부터 종교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있어 가장 큰 바탕이 되어왔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불교, 유교, 또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한국 역사 중심에 있었다. 두 번째로 한국은 ‘혼’의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국민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혼이 있는 국가만이 이해력, 포용성을 지닌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이 제대로 잡혀 있는 국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충돌과 진통을 앓았지만, 현재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나라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공산주의, 일본은 철저한 관료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백 원장은 말했다. “폴 케네디가 한국을 차기 세계 리더로 지목하는 것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민족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니까요. 한국은 분명 지난 몇십 년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마음, 한 뜻을 가질 수 있었기에 ‘경제 기적’을 이뤘죠. 새마을 운동, 금 모으기, 또 월드컵 길거리 응원까지. 이렇게 잘 뭉치는 나라가 세계에 또 어디 있을까요? 지금은 잠시 우리 모두가 약간 느슨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다시 한번 뭉치면 또 한 번의, 더 큰 기적도 가능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백영훈 원장은 1930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55년에 장학생으로 선발돼 독일 유학 길에 올랐다. 58년 서독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해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던 중 1961년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에서 온 전화였어요. 저보고 경제개발계획을 세우라고 하더군요.” 그 일로 61년부터 그는 ‘나랏일’ 을 시작하게 된다. “필리핀 마닐라 대학에 자료를 찾으러 간 적이 있었죠. 그때는 마닐라 대학이 아주 명문대학이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한국의 참담한 현실을 깨닫게 됐죠.” 백 원장이 본 자료는 세계 120개 국가 중 한국의 국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19위였다. 북한은 118위.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 중 최하위였다. “그날 밤 자료를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꿈이 생겼죠. 한국을 세계 최고 순위의 국가로 키우겠다고.” 백 원장은 당시 우리 경제가 절대적으로 외환이 부족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겨우 2300만 달러였다. 이 돈으로는 어떤 계획도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정부는 이른바 ‘혁명정부’로 세계적으로 고립돼 있었다. “당시 한국은 반민주 국가로 낙인 찍혀 그 어떤 국가도 한국을 지원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정부는 서독에 관심이 있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국가인 만큼 우리도 보고 배울 게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서독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백 원장은 정래혁 상공부 장관과 함께 서독으로 갔다. 그는 정 장관의 특별보좌관 직함이었다. 그러나 서독에서도 혁명정부를 보는 시각은 곱지 않았다. 결국 백 원장은 유학 시절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찾아가 사정했다. “밤새도록 교수님 앞에서 울었어요. 감사하게도 다른 교수들을 모아 서독 정부와 교섭해 주신다고 하더군요.” 백 원장의 눈물 덕(?)에 당시 웨스트릭 서독 경제성 차관으로부터 3500만 달러를 빌려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돈을 빌리려면 지급보증이 필요했다. 다시 한번 백 원장 일행은 좌절했다. “사정을 하고 또 사정을 했어요. 그랬더니 마침내 서독 정부에서 제안을 해 오더군요.” 서독의 제안이란 한국에서 5000명의 광부와 2000명의 간호사를 보내준다면 지급보증을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의 임금은 모두 독일은행에 저축하는 계약이었다. “당장 한국에 전보를 쳤죠. 정말 놀라운 건 5000명의 광부 일자리를 위해 5만 명의 인부가 모이고, 2000명의 간호사 일자리를 위해 2만 명이 지원을 한 거죠. 그들이야말로 바로 한국의 숨은 일꾼들이었어요.” 결국 한국 노동자들의 ‘몸뚱아리’를 담보로 백 원장 일행은 돈을 꿔 올 수 있었다. 3500만 달러를 빌려와 처음으로 지원한 게 금성사(현 LG전자)와 지멘스(Siemens)가 공동으로 개발, 생산한 전화기 사업이다. 이어서 시멘트, 비료, 인천기계 등을 지원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외환 확보를 위해서는 한국 상품들을 수출해야 했다. 정부에서는 이른바 ‘세일즈맨’을 소집했다.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제품들을 소개하고 수출계약을 따오는 일이었다. “저에게 단장을 맡기더군요. 아무래도 경제학 박사라는 타이틀은 효과적일 수 있으니까요.”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 아래 백 원장은 수출가능한 ‘Made in Korea’ 상품들을 연구했다. 가장 먼저 시도된 것이 가발 수출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60년대 초반 전국적으로 ‘장발 단속령’을 내렸던 게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당시 머리 깎기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자신들의 잘린 머리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었던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이어서 플라스틱 꽃, 헝겊 인형, 크리스마스 램프 등이 수출품으로 채택됐다. 가장 히트쳤던 상품은 쥐털로 만들었던 ‘코리아 밍크’였다. 이때 쥐잡기 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노력 끝에 300만 달러의 첫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64년 10월 30일엔 꿈만 같던 1억 달러 수출 실적을 냈다. “그날은 한국이란 나라가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지금까지도 10월 30일은 수출의 날로 지정돼 있지 않습니까?” 백 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념을 높게 평가했다.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쥐를 잡게 한 것이나 단발령 등… 과연 그 같은 일들을 지금 정치인들 중 누가 할 수 있을까요?”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평균소득 1000달러 달성에 성공했다.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100년을 따라잡은 순간이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 시작이었다. 1995년에 한국 경제는 1인당 평균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선진국 대열에 마침내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한국의 경제성장은 멈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현재도 1인당 평균소득이 1만1000달러 안팎이니까요. 경제 발전엔 손을 놓은 채 ‘잡담’만 하고 있는 정치계와 언론계가 아쉽군요.”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나는 굴욕’ 1964년 12월 25일. 서독에서는 박 대통령을 국빈초청했다. 최초로 한국의 대통령이 정식으로 다른 국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의 인연도 있고, 독어도 할 수 있던 백 원장이 박 대통령의 통역관으로 임명됐다. 다만 ‘통역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해서 ‘경제고문’이란 타이틀을 더 줬다. “당시 한국에는 서독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조차 없었어요. 서독 측에 부탁을 했죠. 그래서 결국 루프트한자 항공 비행기가 한국에 잠시 들러 대통령을 비롯한 방문단을 태워갔죠. 전용기도 아닌, 일반 승객기였는데 한국에 사람 태우러 잠시 들렀던 거죠.” 서독으로 간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서 ‘굴욕적인’ 부탁을 했다. 지속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이런 부분을 잘 모르죠. 한 나라의 원수이자, 대한민국을 호령하던 박 대통령이 한국을 위해서 다른 나라 원수에게 손을 내밀어 돈을 꿔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경제 지원 조건으로 서독의 에르하르트 총리는 일본과 수교를 맺을 것을 권유했다. “그 말을 들은 박 대통령의 반응은 몹시 시큰둥했죠. 그랬더니 총리가 말했어요. ‘이웃 나라와 싸워선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고. 그러자 박 대통령은 ‘우린 싸운 적이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침입을 당했을 뿐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서독 총리가 ‘우린 평생 원수인 프랑스와도 손을 잡았습니다’라고 답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박 대통령은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했어요.” 일본과의 수교 말고도 서독 측에서는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다섯 가지 제안을 했다. 고속도로, 자동차 산업, 휘발유 공장, 제철 사업, 선박 사업이었다. 실제로 이 다섯 가지 제안을 따라 한국의 경제개발 계획이 수립됐다. 백 원장은 독일에서의 활약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서독에서 일정이 끝난 뒤 귀국하기 전 박 대통령은 백 원장에게 친히 부탁했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곁에서 일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반승낙을 한 채, 백 원장은 일행들을 먼저 귀국시켰다. 서독에 남은 백 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받은 1000달러의 위로금으로 회포도 풀 겸 은사와 동창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은사는 백 원장에게 당부했다. “절대로 공무원은 되지 말라고 그러더군요. 한 나라가 참된 경제 발전을 하기 위해선 학자가 필요하고, 따라서 그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고 했죠.” 이 말을 가슴에 새긴 백 원장은 귀국 후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처음엔 몹시 섭섭해 하더라고요. 솔직히 그렇잖아요. 당시에 그 누가 박 대통령의 말을 거역했겠습니까? 하지만 이해해 주면서 저에게 그러면 경제연구소를 만들어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한 연구를 계속해 달라고 했죠. 그래서 만들어진 연구소가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경제연구원인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입니다.” KID 설립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을 연구한 일이었다. 현재의 구미 등에 위치한 산업단지들도 KID의 주도 하에 구축됐다. 이렇듯 KID는 초기 한국 경제 개발에 있어 중요한 일부분을 담당했다. 원래 KID는 백 원장을 위시해 ‘독일파’들이 많았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한국과 미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설립됐다. 미국파 경제학자들이 참여한 정부 기관이었다. 그 후로 정부산하 경제기관이 계속 설립돼 현재는 52개나 있다. 백 원장은 “경제연구원이란 민간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는 협력과 견제하는 독립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제연구원이란 말 그대로 연구를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권력 행사 등의 목적이 있으면 안 되죠. 정부와 함께 의사소통을 해 가면서 경제 정책들을 논의할 수 있는 경제연구원의 기능을 다 하려면 아무래도 정부 산하기관으로 있는 건 무리죠.”


백영훈 원장이 말하는 ‘한국 경제 문제점 5가지’

1.공직자 모럴 해저드 이젠 국민도 알아야

▶1930년생. 53년생 고려대 졸업. 55년 독일 쾰른대학교 경제학 석사. 58년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학 박사, 9·10대 국회의원, 현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백영훈 원장은 한국 정부의 ‘공직자 모럴 해저드’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그 얘기부터 들어보자. “한국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에 불과하다. 농민은 전체 인구의 7.2%다. 그러나 현재 농민 지원을 위한 국가기관만 14개다. 이들 기관에 근무하는 공직자는 무려 17만 명이다. 대부분 하는 일 없이 국민의 세금을 ‘먹어치우고’ 있다.” 그는 이를 ‘관료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이뿐이 아니다. “정부 투자기관 250여 개의 부채를 합하면 280조원이 넘는다. 특히 한국전력은 부채가 38조원에 이른다. 하루에 이자만 100억원이다. 이런 부채의 원인은 전력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기료는 세계에서 가장 싸다. 왜 이런 일이 그냥 넘어갈까? 가장 큰 이유는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이미지 메이킹’ 때문이라는 게 백 원장의 주장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20년간 전기료 인상을 미뤄왔다고 했다. 더군다나 오후 10시부터는 심야전력요금 할인을 한다. 그 결과 한국의 밤거리는 네온사인으로 도배하고 있다. 값싼 전기료가 유흥문화 발달을 돕고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독일,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밤에는 자자’는 주의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1990년에 30.5%였다. 그런데 현재는 15.2%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1200곳에서 이상한 축제가 벌어졌다는 게 백 원장의 주장이다. 지자체가 재정부족인데도 낭비가 심하다. 이를 실제로 통제하는 곳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와 공직자의 모럴 해저드가 이 정도라는 지적이다.
2. NGO 3800개가 일으키는 갈등 비용 과다
사회 갈등 비용(complex cost)이 너무 크다. 한국에는 현재 시민단체를 뜻하는 NGO가 3800개 이상 있다. 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며 때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심하고 과격하다. 이 단체들과의 분쟁에 정부는 너무 많은 힘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는 이들 단체에 보조금을 준다. 한마디로 더 많은 시위활동을 하란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미국 워싱턴 등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시위를 많이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단체들이 일으키는 사회적 갈등으로 정부 정책의 불이행 등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3.중산층의 몰락…전체 가구 절반이 적자
한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중산층이다. 선진국일수록 이들 계층의 삶이 풍족하고 복지가 잘 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1120만 가구 중 420만 가구가 적자 상태다. 가구당 적자가 4800만원이 넘는다. 보유세, 금리 문제들을 비롯한 정부의 적절치 못한 정책들은 이들 계층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재산 분포도를 보면 역피라미드형이다. 든든한 초석이 돼야 할 서민층이 몰락하기 직전이다. 결국 이 계층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때 우리나라 경제 기반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4. 세대 간 가치관 충돌…10년간 발목 잡은 원인
세대 간 가치관 충돌(Generation Value Shock)이 심각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선 세대 간 갭이 너무 크다. 서로 이해가 부족하고 충돌이 많다. 경제발전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문화의 융합이다. 공통의 문화를 공유해야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문화적 융합은커녕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충돌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5. 국민의 무관심…매년 1000만 명 해외로 나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이 결여된 상태다. 큰 변화를 위해선 국민 각자가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알고 이를 바꾸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한 단합, 협동의 범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모습은 ‘나만 잘살면 된다’ 주의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있건, 기업이 쓰러지건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해외 관광을 나가 돈을 ‘퍼주고’ 온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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