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살인자의 심리학
조승희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기 전에 두뇌영상장치로 그의 피질을 검사해 이상 조짐이 있는지 알아본 신경과학자는 없었다. 그의 DNA를 분석해 충동·공격성·폭력성과 연관된 유전자를 분석한 유전학자도 없었다. 조씨가 여학생 두 명을 스토킹한 뒤 2005년 말 한 정신병원 의사가 “감정 변화가 없고 정서가 우울하다”고 진단했지만 어떤 심리학자도 그와 상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교수가 정신상담을 권할 정도로 조승희가 끔찍하고 사악한 희곡과 에세이를 쓴 이유를 모른다. 23세의 한국계 조씨가 미국에서 거주한 15년 동안 미국 사회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한 사회학자도 없었다. 조씨를 정신병자로 치부하고 끝내고 싶지만 그러면 왜 버지니아 공대 기숙사에서 학생 두 명을 사살한 뒤 불과 두 시간 후 교정 맞은편 강의실 건물을 찾아가 30명을 더 쏘았는지 이유를 영영 모르게 된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답을 찾기 어려우리라. 하지만 이 의문들은 폭력의 원인에 관한 연구가 얼마나 복잡해졌는지를 보여준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66년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 시계탑에서 일어난 찰스 휘트먼의 총기 난동사건, 1991년 텍사스주 킬린의 한 식당에서 조지 헤나드가 23명을 무참히 죽인 사건,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동사건 등의 비극이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유전자나 두뇌 회로, 과잉 행동 또는 부모의 학대나 미국의 ‘총기 문화’ 등을 들어 그런 참사를 설명했다. 그러나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똑같이 갖더라도 반사회적 인간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특정 두뇌 영역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사람 중에서도 일부만 폭력범죄를 저지르고 나머지는 정상적이다. 유혈이 낭자한 비디오 게임을 통해 폭력에 익숙해진 어린이 또는 어렸을 때 부모 간의 가정폭력을 항상 목격하며 살았던(폭력의 위험 요인) 어린이가 모두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다닌다면 이번 같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방송사 앵커들이 대학살 현장에서 보도하겠다고 달려가지는 않았을 듯하다. 폭력범죄(전쟁과 내란 이외의 폭력)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금은 개인의 기질, 타고난 특성과 경험의 상호 작용을 반영하는 심리 상태, 그리고 문화적 환경에 똑같이 그 근원이 있다고 믿는다. 단 하나의 원인으로는 불충분하며 어느 무엇도 결정적 변수가 아니다. “어린이들의 블록 쌓기 놀이와 같다”고 로욜라 대학(시카고)에서 학교 총격 살해범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 제임스 가바리노는 말했다. “블록은 언젠가는 무너진다. 마지막에 얹은 블록을 탓하기 쉽지만 그런 결과는 위험요인이 계속 쌓여 일어난다.” 조씨와 유전적으로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하도록 한다면 미국 사상 최대의 대학살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을 듯하다. 기질이 아무리 꼬였다 해도 심리 상태(기질과 경험 간 상호 작용의 산물)까지 그런 경우는 드물다. 마찬가지로 조씨가 가령 일본에서 성장했다면 아마 분명 증오와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았을 듯하다. 기질과 심리가 살인의 조건을 갖춰도 문화적 환경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일본에서도 물론 극악무도한 범죄가 일어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 하루 뒤 나가사키 시장이 보도를 걷다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다). 이 점만은 명백해진다. 폭력범죄는 개인의 기질, 인생 경험, 문화적 환경, 그리고 냉혹하게 사람을 죽이려는 의지로 이뤄진 마수(魔手)를 반영하고 또 필요로 한다는. 10~20여 년 전 행동유전학의 전성기 때 모두 사람의 폭력성을 결정짓는 유전자를 찾는 데 열중했고 대를 이어 반사회적 인간이 나타난 네덜란드의 대가족이 바로 과학자들이 찾던 대상인 듯했다. 그 집안에는 방화와 강간미수 등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14명이나 됐다. 1993년 과학자들은 14명 모두 X염색체에 동일한 형태의 유전자를 지녔다고 발표했다. 그 유전자는 MAOA라는 효소를 만든다.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두뇌 화학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다. 정상적 유전자는 MAOA를 다량 생성하지만 이상이 있는 경우 만들어내는 양이 적다. 동물 연구결과 효소가 적으면 공격성이 강했다. 아마 MAOA가 적게 공급되면 두뇌의 신경 계통에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 수치가 높게 유지돼 공격성을 유발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폭력 유전자’ 이론은 곧 그 이론적 기반이 취약해졌다. 2002년 뉴질랜드 남성 442명을 생후부터 줄곧 관찰한 과학자들은 네덜란드 연구와 거리가 먼 결과를 내놓았다. MAOA와 폭력성의 직접적 연관성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MAOA 유전자의 활동성이 낮은 남성은 높은 남성보다 지속적인 싸움, 괴롭힘, 잔인한 폭력범죄를 더 많이 저질렀다. 하지만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방임되거나 학대받았을 경우에 국한됐다. 학대받지 않았을 경우 MAOA 활동성이 적은 남성이라도 그렇게 폭력성이 강하지 않았다. 그 유전자만으로 설명이 부족했다. 엄밀하게 사람을 항상 폭력적이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결정 변수라기보다 단순히 ‘허용하는’ 수준이었다. 두 소년이 심하게 학대받으며 자랄 경우 MAOA 유전자의 활동성이 적은 소년은 커서 폭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것도 사회적으로 그런 잡초가 자랄 만한 환경이 제공될 경우에 국한된다. 유전자가 행동을 유발하는 중간과정에 두뇌가 작용한다.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아드리안 레인은 살인자들을 연구하면서 모욕이나 비방(진짜든 상상이든)을 받고 살인하는 반응형, 또는 강도 등의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려 살인하는 자발형으로 분류했다. 자발형 살인자의 두뇌활동 양상은 비폭력적인 정상 자원자와 다르지 않았다고 레인은 1998년 발표했다. 그러나 반응형 살인자의 두뇌는 전전두엽의 활동이 뚜렷하게 줄었다. 전전두엽은 판단, 계획, 추론, 부적절하거나 충동적 행동의 억제, 그리고 자기감시 같은 ‘실행’ 기능을 관장한다. “‘잠깐 행동을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영역”이라고 레인은 설명한다. “억눌린 분노와 울분을 이끌어내는 두뇌 감정영역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전두엽의 활동이 저조하면 “감정 이입 작용도 멈춘다”고 4개 정신병원 체인을 이끄는 신경정신학자 대니얼 에이먼은 말했다. 그는 1998년 15세 때 오리건주 스프링필드에서 부모를 살해한 후 학교 친구 20여 명에게 총질을 가한 키프 킨켈의 두뇌에서 이런 양상을 발견했다. “32명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남의 감정을 공유하겠나”라고 그는 물었다. “전전두엽 활동의 감소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반응형 살인자의 두뇌에서 전전두엽 부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한편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의 활동 증가가 동반된다. “그에 따라 공격성이 유발되고 그 공격성을 제어하는 전전두엽 기능이 약해진다”고 레인은 말했다. “사람들의 공격적 행동을 더 키우는 일종의 이중 공격이다.” 주의 전환을 관장하는 대상회(帶狀回)라는 영역도 아주 활발해진다. “성격이 집요해진다”고 에이먼은 말했다. “폭력적인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스토킹이 한 가지 징후다.” 그러나 무거운 폭력범죄자의 두뇌에 관한 연구가 처음 시작된 이래 신경과학의 이론적 바탕이 뒤바뀌었다. 이젠 인생경험과 더 나아가 자아반성으로 두뇌활동 양상이 바뀌기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강박신경 장애를 가진 사람이 가령 자신의 사고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대상회의 활동을 잠재울 수 있다. 따라서 살인자의 비정상적 두뇌활동 자체가 원래 타고난 소인(素因)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전에는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을 부르며 그것이 많아질수록 공격성도 커진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개인적 차이(정상치의 20~200% 범위 내에 한해)는 공격성의 차이를 유발하지 않으며 남성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시간적 변화가 공격성 변화를 예고하지도 않는다. 스탠퍼드 대학 신경과학자 로버트 사폴스키가 자신의 저서 ‘테스토스테론의 문제점(The Trouble With Testosterone)’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상치의 최소 네 배 수치(‘스테로이드제’ 과다 복용과 같은 경우)가 돼야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경험이 두뇌 회로를 바꾸듯 행동으로 기질이 바뀌기도 한다.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을 높이는 정도보다 공격성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이는 효과가 더 큰 경우도 있다. “폭력성을 유발하고 설명하는 단 하나의 유전자나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또는 두뇌 영역이 있다면 아주 좋겠다”고 사폴스키는 썼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생리학은 그런 행동이 발생하는 사회적 요인과 환경의 맥락을 벗어나면 대체로 무의미하다.” 말하자면 폭력의 근원을 모색하려면 수준을 한 단계 높여 기질과 삶의 상호 작용인 심리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전형적인’ 다중살인자의 보편적 특성을 찾아내려 애써 왔으며 어느 정도 성과도 올렸다. 살인자의 90% 이상, 그리고 더 많은 비율의 다중살인자가 남성이다(하지만 중동에 여성 자폭 테러범이 나오듯 앞으로 바뀔지 모른다). 다중살인자는 대체로 25~35세지만 교내 총기 살인자는 더 어리다. 중범죄 전과기록은 거의 없다. 복수하거나 아니면 유명해지려고 살인을 한다. 폭력이 난무하는 조씨의 글처럼 명백한 경고신호를 보내기도 하지만 아무런 예고없이 일을 벌이기도 한다. 아는 사람을 살해하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죽이기도 한다. 다중살인자는 입담 좋게 남을 조종하는 미치광이라기보다는 고통받고 상처받고 우울 증세를 보이며 사람들에게 따돌림받고 무엇보다 피해망상이 심한 편이라고 뉴욕에 있는 존 제이 형사사법대학의 루이스 슐레진저(범죄심리학) 교수는 말했다. 그것은 특정한 유형의 피해망상이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 모두 남의 탓이라고 여기고 온 세상이 자기를 해치려 하며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믿는 경향이다. “자신의 문제가 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는 하나도 잘못이 없다고 여긴다”고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형사사법을 전공하는 제임스 앨런 폭스 교수는 말했다. “더 이상 삶의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 남과 함께 죽으려 하는 이유다. 다 다른 사람 탓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NBC에 보낸 비디오에서 조씨는 이렇게 큰소리쳤다.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한 가지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 이제 결코 씻지 못할 피를 너희 손에 묻혔다.” 카운슬링을 권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 ‘상담가? 정신치료사? 교내에서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나뿐’이라고 반응한다”고 지난해 버지니아 공대에서 다중살인자를 주제로 강연했던 노스이스턴 대학의 사회학자 잭 레빈은 말했다. “사회와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에 강제로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몇몇 다중살인자는 자신을 무력하게 만든 세상을 상대로 힘을 과시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종종 자신이 아주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세상에 화풀이하려 한다”고 슐레진저는 말했다. “무슨 문제든 살인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키우고 거기에 집착한다. ” 문제는 해고(직장 내 총기난동은 앙심을 품은 전직 근로자가 많이 저지른다), 금전적 손실, 괴로운 파경 등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벼랑 끝으로 밀어낸 원인은 그런 고통이지만 애초부터 모욕, 고난, 대인관계의 실패가 오랫동안 쌓여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단지 D학점을 받았다고 30명에게 총질하지는 않는다”고 레빈은 말했다. “장기간에 걸쳐 잇따른 좌절이 축적된다. 이들은 언제나 우울하고 비참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그런 비참함과 그에 따른 증오, 원한, 그리고 분노가 어디서 나오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어린 시절이 가장 유력하다. 조사결과 17세까지 심각한 폭력범죄를 저지른 남자아이의 45%, 여자아이의 69%까지는 아동기에 다른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는 등 과도한 공격성을 보였다. 20대에 처음으로 폭력성을 드러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그러나 반대로 유순했던 아이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격적인 청소년 대다수는 성인이 되면 성격이 유순해진다. 아마도 판단과 충동억제를 담당하는 등의 회로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 돼야 성숙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아동기 공격성과 성년기 폭력성 간의 연관성은 단순히 공격성이 공격성을 부르는 구조는 아니다. 공격적인 어린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병적으로 수줍어하고 다른 아이의 어조를 읽어내지 못하는 어린이의 경우 또래나 부모가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달라진다. 별난 아이는 친구가 없다. 괴퍅한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멀어진다. 부모의 인내심과 사랑도 시험한다. 이처럼 선천적 성향(유전자 탓이든 두뇌 구조 탓이든)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문제기질이나 행동이 증폭된다. 그렇게 형성된 심리구조는 폭력범죄 쪽으로 발전해 간다. 사춘기 청소년 334명을 대상으로 한 2006년의 조사결과 7세 때 공격 반응을 보인 남자아이는 16세에 충동적, 적대적이며 대인관계가 불안하고 친구가 없었다. 조씨는 너무 고립돼 기숙사 방 친구와 거의 대화하지 않았으며 NBC에 보낸 비디오에서 이렇게 강변했다. “너희는 내 심장을 약탈해 갔으며 내 정신을 강간하고 내 양심을 불태웠다.” 유전자 발현이 환경에 좌우되기도 하며 두뇌 회로가 인생경험을 반영한다는 발견과 마찬가지로 최근에야 다음의 사실이 규명됐다. 어린이의 타고난 기질에 따라 세상이 그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며 그에 따라 그런 기질이 강화되거나 완화된다는 사실이다. 천성적으로 수줍음을 타거나 수줍음과 관련된 유전자를 가진 어린이는 부모가 내성적 측면보다 사교성을 키워주면 자라서 다른 아이처럼 외향적이고 대인관계가 원만해지기도 한다. 조씨처럼 떠들썩한 범죄를 선택하는 살인자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지막 기회를 모색한다. “ ‘내가 대단한 위인은 아니지만 세상에 뭔가 큰 일을 남기고 죽어야겠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이자 성명서’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임상심리학자 재나 마틴은 말했다. “그 결과를 보고 죽지는 못하더라도 마지막 결론은 자신이 내린다는 환상을 갖는다.” 다시 비디오를 인용해 보자. “한 한심한 녀석의 인생을 짓밟는다고 생각했겠지. 너희 덕택에 나는 수많은 약자와 불쌍한 사람에게 영감을 주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을 맞는다.” 예언자 콤플렉스의 냄새가 풍기지만 신앙이 다중살인의 가능성을 더 높이는지, 아니면 낮추는지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 교황 베네딕토는 기독교 전통을 외면한다고 서유럽 국가들을 비판하지만 그래도 그 지역의 살인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면 “도덕적 품성이 함양된다”는 증거도 있다고 잭 레빈은 말했다. 그러나 신의 목소리를 듣고 모습이 보인다는 정도의 극단적 신앙은 종종 정신분열과 연관성을 보인다. 어린 살인자들은 암시에 걸리기가 아주 쉬우며 널리 알려진 범죄를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컬럼바인 총기 난사사건을 모방한 범죄 계획이 여러 건 있었다. 조씨는 비디오에서 컬럼바인 사건 범인들을 가리켜 “에릭과 딜런 같은 순교자”라고 칭했다. 순교자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컬럼바인 사건 이후 미 교육부와 미 정부 검찰국의 의뢰로 교내 총기 난사범에 관해 아주 철저한 연구가 실시됐다. 연구팀은 과거 25년 동안 41명이 총기를 휘두른 사건 37건을 조사했다. “총질할 당시 범인 중 무려 78%가 삶을 포기했다”고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매클리언 병원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폴락은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도 경찰의 총에 죽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들은 고립되고 위협과 괴롭힘을 당한다고 느낀다. 죽음을 원한다.” 하지만 항상 좌절감을 느끼고,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이라고 비난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해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다니지는 않는다.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모두 다중살인자라면 지구상에 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버지니아 대학의 임상심리학자 피터 셰라스는 말했다. 마지막 조각을 블록 조형물 위에 올려놓은 후 모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데는 그럴 만한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 후 불과 24시간 만에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미국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주는 총기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런 여론이 전 세계로 확산됐고 킴 킨켈이 어떻게 그리 쉽게 총을 입수하게 됐는지 떠올리게 했다. “그에게 총을 사줘 부자 간에 함께 할 일을 만들라고 실제로 심리치료사가 아버지에게 권했다”고 로욜라 대학의 가바리노는 말했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기겁을 하고 놀란다.” 버지니아 공대와 컬럼바인 고교의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총기 탓이다. 칼로 다중살인을 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총기 소유와 무관한 미국인의 폭력 성향을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다. 리처드 홉스태터는 1970년의 저서 ‘미국인들의 폭력(American Violence: A Documentary History)’에서 미국 역사에서는 폭력이 “아주 빈번하고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썼다. 스탠퍼드 대학 역사가 로런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분석했다. “분명 미국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온다 … 미국인 삶의 특정 현상들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 … 범죄는 어쩌면 자유의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통계상 살인율은 한 나라의 소득 수준에 얼추 반비례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는 낮아야 한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1998~2000년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1.5명이었다. 일본은 1.1명인 반면 남아공은 54명이었다. 미국은 10만 명당 5.9명으로 터키의 2.5명보다 높았다. 분명 문화가 중요하다. 왜 그럴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뿌리를 떠나 먼 나라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려는 사람들은 “에너지와 모험심이 뛰어나다”고 존스홉킨스 대학의 심리학자 존 가트너는 말했다. 대다수 이민자는 그것을 활력과 추진력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땅에서 성공을 일궈낸다. 그러나 몇몇 경우 모험심에 충동이 겹치면 폭력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고 가트너는 말했다. “호주와 미국 같은 이민 국가에서 폭력이 더 많다.” 이민자 아동이 언어와 문화 장벽을 넘지 못해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면 고립될 뿐 아니라 충분히 자극받을 경우 폭력에 의지하게 될 위험성이 커지기 쉽다. 이동이 잦고 이질적인 사회에서 폭력범죄 발생률이 높다.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이동성이 아주 높은 사회며 따라서 이방인의 나라다. 소득격차가 큰 나라에서도 살인과 폭력이 많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의 측정지표에서 미국은 상위를 차지한다. 아마 조씨의 이런 비난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으리라. “벤츠도 부족했지, 잘난 놈들아. 금 목걸이도 모자랐지, 속물들아. 신탁펀드도 성이 안 찼지.” 오래 전 토크빌 시대의 학자들은 미국인의 성격이 개척지에서 형성됐음을 알았다. 문명과 법이 미치지 않는 오지에서 미국인은 자신의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강건한 인물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한국계 이민자의 총기 난사를 ‘미국인의 성격’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15년을 미국에서 살았으니 미국 문화의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 특성에 물들지 않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미국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승자를 떠받들고 부적응자를 비난한다”고 폭스는 말했다. “다중살인자는 패배자, 실패한 경험을 가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체화된다.” 게다가 미국인은 개인의 운명이 전적으로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산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라고 여긴다.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이 어렵다면 또 다른 길이 있다. 컬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의 범인들은 ‘영화화’되려면 희생자 수가 일정 수준 이상 돼야 한다고 일기에 적었다. 미디어에 점령당한 미국 문화에서는 할리우드(또는 스스로 망가지는 리얼리티 쇼)의 관심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 된다. 개인 숭배는 물론 미국의 총기문화에서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다. “총은 자기만족과 막강한 힘을 얻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셰라스는 말했다. 세상이 그동안 그를 어떻게 대했든 “살인자는 총만 가지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느끼게 된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개인주의 때문에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범죄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일본인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작든 크든 어려움을 참아내야 한다고 배운다. 일본 말에도 그런 의식이 배어 있다. ‘가만시테’는 대략 ‘참으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항상 그 말을 주고 받는다. 분노 또는 좌절을 겪으면 “남을 죽이기보다 그것을 삼키고 자살을 택한다”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도쿄의 신학자이자 교사인 스즈키 마사카즈는 말했다. “공개적인 복수를 하려고 마구 총질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향한 분노가 적힌 유언 정도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극동 지역의 자살률은 살인율의 여섯 배에 가깝다. 유혈이 낭자한 비디오 게임을 빼놓고 미국 문화의 폭력을 논하기 어렵다. 생생한 묘사를 보며 적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점수를 올린 어린이는 더 공격적이 되지만 쇼핑몰에 나가 총질하기보다 여동생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폭력적 게임이 아이를 폭력에 둔감하게 만든다는 증거가 있다. “사람이 다칠 때 끔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위험한 일”이라고 폴락은 말했다. 블록 조각은 하나씩 쌓인다. 다중살인자들이 타고난 기질, 인생의 경험에 따라 설계되는 두뇌 회로, 주변 환경으로부터 흡수하는 메시지가 그 조각들이다. 하나의 경험이나 성격적 특질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원인은 하나뿐이 아니다. 그러나 다중살인자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요인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해도 살인의 구실이나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그중 어딘가에 방아쇠를 당기려는 살인자의 의지, 결심이 도사린다. 그것을 밝혀내는 일이 우리의 가장 큰 과제다. With ANNE UNDERWOOD and MARY CAR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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