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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 넘치지만 앞길 험난하다

의욕 넘치지만 앞길 험난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3월 10일 오전 과천 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 앞서 참석자들과 함께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시작부터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선 초(超)유가에 곡물 가격도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등 대외변수가 고약하다. 대통령이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새 정부 경제정책과 경제팀 컬러가 드러났다. 올봄 벚꽃은 예년보다 나흘 정도 빨리 핀다는데 한국 경제의 봄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
새 정부의 경제운용 계획은 1월 초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것과 상당 부분 다르다. 규제 개혁과 감세(減稅), 정부 혁신 등을 통해 6% 안팎의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1월 9일 참여정부가 제시한 올해 목표는 4.8% 성장에 30만 명의 일자리 창출, 소비자물가 상승률 3.0% 이내 억제, 균형 잡힌 경상수지 등이었다. 두 달 만인 3월 10일 그 목표치는 6% 안팎의 성장에 35만 명 일자리 창출, 소비자물가 상승률 3.3% 안팎 관리, 경상수지 적자 75억 달러 안팎으로 바뀌었다. 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목표는 더 높인 반면 물가 및 경상수지 관리 목표는 현실을 반영해 후퇴한 것이 특징이다. 물가 안정과 경상수지 관리보다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대선 공약 ‘대한민국 747’(연 7%대 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 실현, 세계 7대 경제강국 진입)을 고집하지 않고 수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바꾼 목표도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 혼자 6% 성장 ‘의욕’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6% 안팎으로 내다본 기관이나 연구소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없다. 새 정부가 유일하다. 참여정부 전망(4.8%)과도 1.2%포인트의 차이가 난다. 말이 1.2%포인트지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면 11조원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슨 정책으로 이 간극을 메울까?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해 0.7%포인트, 서민생활 안정과 재정지원 사업으로 0.5%포인트, 법인세 등 감세 효과로 0.2%포인트의 추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하고 세금을 깎아주면 성장률을 6% 안팎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새 정부의 낙관과는 달리 민간경제연구소들은 미국의 경기침체와 글로벌 인플레 등 갈수록 악화되는 대외 여건 때문에 오히려 성장률 전망을 낮춰 잡고 있다. 창업소요 기간을 지금의 17일에서 13일로 단축하는 등 규제 개혁 방향은 옳다. 인건비와 불요불급한 사업비 절감을 통해 올해 예산 2조원, 내년 예산 18조원을 줄이기로 한 것은 임시투자세액 공제 1년 연장과 유류세 인하, 법인세율 인하 등 감세 정책과 맥이 통한다. 세수 감소에 맞춰 정부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재정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다. 결국 규제 개혁과 감세를 통한 기업 투자 및 내수 확대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소득도 높임으로써 체감물가를 낮추겠다는 전략인데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업들이 감세에 따른 여유자금을 투자에 쏟아 붓는다면 다행이지만, 세계적인 경기 후퇴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금고에만 재어둘 가능성도 있다.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정부인 만큼 어떻게든 성장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하지만 무리하게 성장을 촉진하면 물가를 자극하게 마련이다. 6%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않는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
물가 잡기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다섯 달째 참여정부 관리 목표(3% 안팎)를 웃돌았다. 오일 쇼크(Oil-Shock)와 곡물발 그레인 쇼크(Grain Shock)가 한꺼번에 닥친 형국이다. 새 정부도 이를 의식해 물가관리 목표를 참여정부보다 0.3%포인트 높여 잡았다. 무엇보다 월급 빼고 다 오르고 있으며 앞으로 더 오를 거라는 인플레 심리를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5대 서민생활비(기름값·통신비·통행료·전기요금·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새 정부의 방향은 맞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공공요금 동결과 매점매점 단속, 학원 수강료 특별점검 등 과거 1970·80년대부터 해온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 억누르기는 한계가 있고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맞지도 않는다. 이제 물가 관리는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등 시스템으로 대처해야 한다. 1조3000억원의 세수(稅收) 감소를 감내하면서 유류세를 10% 인하했지만 체감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인상 요인이 있다면 올려야 하겠지만 우리는 라면 값부터 올렸다 하면 적어도 100~500원, 1000원 단위다. 원가를 정밀하게 분석해 적어도 10~5원 단위로 조정하도록 이끄는 게 필요하다. 특히 교통카드 사용이 일반화한 데다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하는 시내버스·지하철 요금과 택시요금이 그렇다. 자장면·칼국수 값도 50~10원 단위로 조정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만연한 인플레 심리를 가라앉히고 서랍과 저금통 속에서 잠자는 동전 유통도 부활시킬 수 있다.
일자리 35만 개 창출 어려운 숙제
임기 내 5년 동안 3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므로 연평균 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맞다. 하지만 올 2월 중 신규 취업자는 참여정부가 목표로 잡은 30만 개의 3분의 2 수준인 20만9800개에 그쳤다. 이런 판에 참여정부 목표의 두 배에 이르는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하다. 이를 의식한 새 정부는 35만 개로 목표를 수정했지만 이 또한 참여정부가 1월 초 제시한 올해 경제운용 계획보다 5만 명 많다. 더구나 1월에도 신규 취업자는 23만4600명에 머물렀기 때문에 새 정부 목표 35만 개 일자리 창출을 지키려면 앞으로 10개월 동안 평균 37만5000개의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부 대운하 건설 공약도 공론화해 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결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각에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경부 대운하 건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운하 건설 사업으로 늘어날 일자리는 대부분 토목 관련으로 요즘 젊은 층이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2월 고용통계를 보면 기업체 입사와 공무원시험 등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60만7000명으로 처음으로 60만 명을 넘어섰다. 또 아프지도, 일을 못할 만큼 나이가 든 것도 아닌데 ‘그냥 쉰다’는 사람이 162만8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원화 환율 홀로 급등 … 물가에 독(毒)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불거진 뒤 미국 달러화가 세계 대다수 통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독 원화만 맥을 못 춘다. 그것도 하루 사이 10원도 넘게 올라 현기증이 날 정도다. 올 들어 경상수지 적자 행진이 이어지면서 외환시장에 달러가 부족한 판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 주식을 대거 내다 판 돈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달러로 바꾸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식 배당금을 보내는 주총 시즌이라서 그렇다. 원-달러 환율은 11일 연속 상승하며 3월 14일 997.30원으로 1000원에 바싹 다가섰다. 3년에 걸쳐 내려갔던 환율 폭이 불과 3~4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분명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3월 13일 달러당 100엔 선이 12년 5개월 만에 깨진 데 이어 원-달러 환율 네 자릿수 시대가 임박했는데도 당국은 외환보유액 매도나 구두 개입 등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새 정부로선 우리 상품의 달러화 표시 수출단가를 낮춤으로써 수출에 도움이 되는 환율 상승세가 내심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하지만 지나친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물가에는 독(毒)이다. 원화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다른 물가까지 자극한다. 고유가에 고원자재 값, 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속에서 물가는 더욱 압박을 받고 있다. 자녀 유학 송금을 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의 허리를 더욱 휘게 만든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환율 급등장세는 이른바 ‘강만수·최중경 효과’도 작용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1차관은 적극적인 시장개입론자다. 특히 강 장관은 취임 이후 외환시장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그 발언 뒤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이를 읽은 시장이 환율 상승으로 화답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 배려 더 있어야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가 대기업 위주로 혜택이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이 중소업계에서 나온다. 그 신호가 중소 납품업체의 대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인상 요구다. “원자재 값은 계속 뛰는데 납품가는 그대로”라며 납품 중단을 선언한 주물업계에 이어 레미콘업계, 플라스틱업계, 금속 캔을 만드는 제관업계까지 가세할 태세다. 출자총액 제한제도 폐지(상반기) 및 지주회사 설립 요건 완화,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완화 등 대기업이 주로 혜택을 보는 조치와 함께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도 함께 나와야 한다. ‘국민성공 시대’를 약속했지만 급증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양극화 해소 및 빈곤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정부 목표에 근접한 성장을 하더라도 빈곤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 대통령이 주장하는 따뜻한 시장경제로 나가기 어렵다. 3월 15일 태안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가 100일을 맞았지만 배상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궁직사회는 벌써 피로 현상 보여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살아있는 정책을 만들라”고 주문하지만 공직사회에선 벌써 피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는 오전 7시30분에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인인 국민보다 앞서 일어나는 게 머슴의 할 일이다. 머슴이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선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공직자 머슴론’을 강조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관가에 불어 닥친 조기출근 바람에 야근은 그대로 하고, 토요 휴무와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노 홀리데이’ 장관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사무실 이전과 이삿짐 정리로 부산하다. 시장과 중소기업, 재난현장을 찾는 대통령의 현장주의에 발맞춰 장관들도 경쟁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선다. 하지만 전시효과성 현장 방문도 눈에 띈다. 신도시 건설 현장이나 주유소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데 들인 시간이 겨우 10분이다. 이를 위해 관계자들이 미리 연락 받고 브리핑을 준비하는 등 법석을 떤다. 진정 있는 그대로 현장을 보고 실태를 파악하려면 사전 예고 없이 불시에 찾아가는 것이 맞다. 아울러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말고, 해결 방안이나 대안을 갖고 현장에 가야 한다. 괜히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를 내세우며 카메라 기자를 부르는 등 언론 보도를 의식한 채 가봤자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불편만 끼치거나 왜곡된 현장을 보고 정책 방향마저 그르치게 만들 수 있다.
총선 의식 말고 구조 고쳐 나가야
경제 상황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암초는 대부분 우리가 어쩌기 힘든 대외 변수다. 이런 때일수록 서두르지 말고 우리 내부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차근차근 고치는 기초를 충실히 다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조직 개편에 맞춰 공무원 수를 확실하게 줄이고,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민간과 경쟁하는 업무는 과감하게 민간에 넘겨야 한다. 공공기관의 과감한 정리와 함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기금도 없애거나 통폐합해야 한다. 정책 간 엇박자도 주의할 대목이다. 규제를 없애야 하지만 그렇다고 규제 혁파가 모든 분야에서 만능은 아니다. 서울시의회가 3월 12일 심야 교습시간 제한 철폐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24시간 학원 교습이 가능해지자 벌써부터 사교육비 부담이 더욱 불어나리란 걱정을 낳고 있다. 더구나 한 달도 남지 않은 4·9 총선을 의식해 선심성 정책이나 무리한 경기 부양성 대책을 내놓았다가는 선거도, 경제도 함께 망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초기 ‘신경제 100일 계획’이란 보여주기식 부양책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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