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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 氣싸움에 시장만 혼란

정부-국회 氣싸움에 시장만 혼란

정부는 3월 16일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16일 이후 거래자에 대해서도 법안 통과 시 소급적용하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세제개편안은 양도세 중과 폐지가 아닌 2010년까지 한시 폐지와 강남 3구에는 10%포인트 가산하겠다는 원안에 없던 내용이 포함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국회는 4월 30일 본회의에서 비사업용 토지와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켰다. 단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강남·서초·송파 3구는 가산세율 10%포인트의 탄력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법 개정 취지가 상당 부분 퇴색되고 시장에 혼란을 주면서 일부 다주택자의 경우 피해가 예상된다.

4월 30일 강남지역 중개업소들 사이에서는 3월 16일 이후 거래된 물량 가운데 3주택 이상자의 거래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장진택 ERA코리아 이사는 “강남 3구는 그간 거래 건수 자체가 워낙 적었고 이 지역에 주택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들의 행보가 상당히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정부의 발표만 믿고 거래를 해 피해를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남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대치동 은마가 한때 14억원을 넘었는데 올해 초에 7억5000만원에 팔려나간 물량도 있었다”며 “차익이 남지 않았거나 있어도 양도세 부담금은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한시’ ‘투기지역 10%포인트 가산’ 꼬리표중과세 제도는 참여정부에서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다.

도입 당시부터 조세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등을 하던 시기여서 국회 통과에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현 정부의 경제철학이 규제 철폐에 기울어 있기 때문에 중과세 폐지는 인수위 때부터 논의되던 사항이었다.

지난해 말 정부는 다주택자에게도 일반과세를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통과를 추진했지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주택을 3채 이상 소유한 경우에 한해 일반세율 대신 45% 단일세율로 부과하는 데 그쳤다. 기획재정부가 다시 양도세 중과 폐지를 추진한 건 올 초부터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정부는 중과세 폐지안을 다시 밀어붙였지만 강남 재건축 가격이 뛰면서 불발로 그쳤다. 지난 3월 정부는 ‘소급적용’을 거론하면서까지 재차 밀어붙였고 오히려 국회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그 결과 ‘한시’와 ‘투기지역 10%포인트 가산’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누더기 법안이 탄생했다.

이번 법안은 한 달 동안 당정협의, 의원총회, 재정위 조세소위나 전체회의 등 고비가 올 때마다 내용이 바뀌면서 시장에 혼란만 안겨주게 됐다. 정부가 3월 16일 발표한 원안은 3주택자 이상의 양도세율을 모두 일반세율로 과세하고 한시적이라는 표현도 없는 사실상 폐지였다.

그러나 5일 후인 3월 21일 조세법안 심의에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분위기인데다 투기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시행시기를 3월 16일로 정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국회 입법권을 무시하느냐는 정치 논리도 가세했다. 이에 조세소위는 양도세율을 6~35%인 일반세율로 낮추고 정부가 15%포인트 내에서 탄력세율을 시행토록 수정됐다.

그러나 이 수정안도 일주일을 못 넘겼다. 3월 27일 조세소위는 비투기지역 중과제도는 폐지하고 투기지역에만 일반세율에 탄력세율로 10%포인트 이내에서 가산하도록 조정했다. 2년 한시 적용이라는 일몰조항도 추가됐지만 정부 발표를 믿고 3월 16일 이후 투기지역 내에서 이뤄진 거래에 대해서는 탄력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부칙이 있었다.



강남 투기지역 해제 2010년까지 힘들 듯


그러나 국회는 이를 이틀 만에 뒤집었다. 4월 29일 기획재정위 전체회의는 투기지역 내 일부 거래의 예외를 다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4월 30일 국회 본회의서 확정된 양도세 중과제도는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주택을 몇 채 가졌든 양도차익에 따라서 ▶0~1200만원은 6% ▶1600만~4600만원이면 16% ▶4600만~8800만원은 25% ▶8800만원 초과는 35% 세율을 적용 받는 것으로 결론 났다.

2010년에는 양도세율이 여기서 1~2%포인트 더 내려간다. 투기지역인 서울의 강남·서초·송파구에서는 3주택 이상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 때 10%포인트 탄력세율이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이에 따라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도 2010년까지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부동산업계는 사실상 거래 자체가 거의 없는 강남 3구에서 그것도 3주택자 이상자가 3월 16일 이후 집을 팔았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줄다리기로 누군가 피해를 보았다면 양측은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증현 장관도 4월 20일 “정부가 책임질 건 지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한 담당 공무원은 4월 30일 통화에서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니 국회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그런 대책은 정부가 내놓는 것이니 기획재정부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도세 납부 유예시켜 부동산 활성화
미국에선
정부가 양도세 중과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다. 실제로 미국은 부동산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양도세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부동산 매매로 차익을 얻는 경우 양도세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양도세 납부를 유예받는 사람이 많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미국인이 집을 세 채 보유한 상태에서 3년 전 70만 달러에 구입한 집을 300만 달러에 팔았다면 세금은 얼마나 부과될까. 차익 180만 달러가 과세 대상이다. 연방 양도세 15%와 주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이 9.3%로 세금으로만 30만 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 미국에서도 실거주자에게는 혜택이 있다. 거주용 주택을 팔 경우 차익이 50만 달러를 넘지 않으면 과세하지 않는다.

이 집주인이 실제로 거주했다면 이 액수에서 50만 달러를 공제받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은 24.3%에 달하는 양도세를 내는 경우가 드물다. ‘1031 교환(Exchange)’ 조항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국세법 1031조항(Section 1031 of the Internal Revenue Code)에는 부동산을 처분한 후 45일 이내에 다른 부동산을 사고 180일 이내에 잔금까지 지불하게 되면 일체의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단, 이 부동산은 투자용이어야 하므로 집을 팔기 전에 1년 이상 월세를 내줘 해당 부동산을 투자용으로 바꿔야 한다. 또한 새로 구입한 부동산이 지금 판 부동산의 가격 이상이어야 하는, 즉 차익이 남지 않는 거래여야 한다. 미 정부는 이 조항이 투자용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납세자들도 양도세를 면제 받는 것이 아니라 납세 시기를 유예받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1031 교환’ 조항을 이용해 부동산을 꾸준히 사고팔고 최후에는 건물을 유산으로 남긴다. 이렇게 되면 그간 누적되었던 양도소득세는 일시에 면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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