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리앗에 맞서 ‘종자주권’ 지키는 다윗
![]() ![]() 농우의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들은 해외시장을 겨냥해 20년 앞을 내다보고 GMO 씨앗을 개발한다. |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꿈같은 일을 ㈜농우바이오가 이룰지 모른다. 국내 채소씨앗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이 회사는 최근 살을 빼는 데 효과가 있는 기능성 고추 종자를 개발 중이다. “이 고추가 우리 식탁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고 연구개발을 담당한 양승균 R&D본부장이 말했다.
고추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여주의 드넓은 부지(7만 평)에 자리 잡은 농우의 육종연구소와 생명공학연구소에서는 이 회사 연구원들이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려고 365일 내내 씨름한다. 육종장 안에는 메케한 시료 냄새가 진동하지만 직원들은 이골이 났는지 분주하게 손길을 놀릴 뿐이다.
이 종자들은 대부분이 15~20년 후를 바라보고 개발되는 고부가가치 상품들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수박과 참외의 70~80%를 차지하는 ‘스피드 꿀수박’과 ‘오복 꿀참외’도 우리 회사가 15년 전부터 개발에 착수해 거둔 결실”이라고 양 본부장이 말했다. 농우는 지난해 고추·무·수박·참외·배추·피망 종자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만 40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전년도에 비해 29% 늘어났다).
국내 종자시장에서 2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 수박·참외 등 신품종이 효자 노릇을 했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해외매출의 무서운 성장세다. 농우는 지난해 76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하면서 전년도에 비해 52.9%가 늘었다(전체 매출액 중 18.6%를 차지한다). 해외매출의 절반 이상은 고추 종자로 미국·인도·인도네시아에서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해 해외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수출 목표액을 98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지금까지 고추와 무에 의존해 왔던 수출 품목도 브로콜리, 토마토, 양배추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수출 거점도 다변화를 꾀한다”고 유영우 해외사업본부장이 말했다. 농우의 해외시장 진출은 10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국내 종자업체들은 전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달러의 위력을 앞세워 주요 토종업체들을 싹쓸이했다. 1997년 서울종묘와 농진종묘가 다국적 업체인 신젠타(스위스계)에 인수합병된 데 이어 이듬해엔 국내 대표적 종묘업체인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마저 멕시코계 세미니스(현재는 미국계 몬산토의 자회사)에 먹히고 말았다.
다국적 기업들은 당시 한국 업체들을 징검다리 삼아 중국시장 공략에 나서려 했다. “한국 업체들이 이미 중국에 진출해 있는 데다 고추와 무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작물의 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유 본부장이 말했다. 그때 국내 주요 업체 5곳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농우였다.
1998년 7월 29일 농우는 회사의 자립을 위해 ‘종자주권 선언’을 했다. “우리 회사마저 매각됐더라면 한국의 종자업체가 모두 다국적 기업의 손에 넘어갈 뻔했다”고 김용희(57) 사장이 말했다. 당시 종자업계는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인수합병이 세계적 추세였다.
외국자본뿐만 아니라 외국의 좋은 유전자원이 함께 들어오기 때문에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던 시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런 개방이 단기적으로만 이익일 뿐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유전자원이 유출되면서 종자의 예속화를 초래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현재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와 과일 종자의 70% 이상이 외국산이다).
거센 외풍으로 종자업계의 연구 인력도 크게 줄었다. 당시 흥농·중앙·서울종묘는 매각된 이후 경영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직원 수의 절반가량을 줄였다. “당시 해당 업체들은 주요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연구기반이 무너졌고 외국 종자를 판매 대행하는 회사로 전락했다”고 김 사장은 말했다.
농우의 ‘홀로서기’는 차츰 열매를 맺었다. 그 경쟁력의 핵심은 연구개발 능력에서 나왔다. 농우는 올해에도 지난해보다 9% 늘어난 77억원을 연구개발비로 배정해 놓았다(전체 매출액의 18%를 차지한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연구 인력이 전체 직원 수(296명)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180명에 이른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농우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품종보호 출원(등록 건수와 심사 중인 건수를 합쳐 50여 건)을 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신품종을 출시하고 있다. 특히 대량으로 형질 전환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국제특허로 출원한 고추 종자가 돋보인다.
인체에 이로운 항산화제인 안토시아닌 함량을 높인 당근, 전립선암에 효과가 있는 항암물질인 라이코펜의 함량을 높인 토마토, 적도 부근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 맛(캡사이신)을 대폭 강화한 고추도 실용화를 눈앞에 두었다. 김평진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농업도 이젠 단위 면적당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에 고기능성 종자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말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논란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해외시장을 노린 GMO 종자 개발을 쉬 포기하기 힘들다. 농우가 10여 년 전 국내 종묘업계에서 처음으로 유전공학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도 발 빠르게 세계시장의 추이를 읽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는 몬산토, 신젠타 같은 다국적 종자업체들은 이미 소나 돼지 등 가축 사료용 GMO 종자를 개발한 데 이어 쌀이나 가지도 개발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지만 옥수수나 콩 등 식량작물의 GMO 연구도 일반화된 지 오래다. “인도에선 올해부터 식용 GMO 가지가 시판되기 시작했고, 중국에선 GMO 쌀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그들을 따라잡기가 어렵다”고 양승균 R&D본부장이 말했다. 그러나 육종기술과 관련한 기초연구 부족은 국내 종자산업의 발목을 잡는다. 몬산토, 신젠타 등 다국적 메이저 업체들은 GMO 종자 개발에만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연구비를 쏟아 붓는다. 기초연구 수준도 한국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높아 토종 업체로서는 벅찬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가 과학기술부, 농림수산부, 농업진흥청, 대학 등과 함께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유도 우리의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양 본부장은 말했다.
“이젠 누가 먼저냐가 중요하다. 글로벌 경쟁에선 선두를 빼앗기면 곤란하다.” 지난해 세계적인 곡물 값 폭등을 계기로 종자전쟁은 이제 단순히 ‘식량의 자원화’를 넘어 ‘식량의 무기화’라고 할 만큼 갈수록 치열해진다. 이런 때 보다 긴 안목에서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농우의 전략이 꿀수박이나 꿀참외처럼 달콤한 열매를 맺을지 주목된다.
“5년 내에 수출이 국내 매출 넘어설 것” Q&A 김용희 사장 “기술기반은 한국에, 비즈니스 기반은 해외에” 올해로 입사 24년째인 김용희(57) 농우바이오 사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6년 동안 현지 법인장을 하고 돌아온 해외시장 전문가다. 수출을 비롯해 그간 영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회사경영에서도 세계시장 확대에 가장 큰 방점을 찍었다. 한국의 고추 종자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비결은 뭔가? 김치 문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고추는 범세계적인 작물이다. 현재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먹는 고추도 대체로 우리 품종이다. 고추와 무는 농우가 세계적인 수준의 육종기술과 자원을 확보했다. 고추 이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종자를 꼽으라면? 현재 우리가 확보한 종자는 600가지로 국내외로 유통되는 종자는 약 320가지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작물은 50가지다. 국내에서는 수박과 참외가 주요 품목이지만 중국에선 무와 당근이 강하고, 남미에선 고추가 큰 인기다. 농우는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보다 4.1% 늘어난 426억원으로 잡았다. 지난해 29% 매출 성장률과 비교되는데 그 이유는?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보수적인 목표치를 잡았다. 하지만 올해 해외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23.1%를 늘려 잡았다. 내수부진을 수출이 메우리라 판단하나? 이미 개방된 국내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양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난해 18.6%를 기록한 해외매출을 앞으로 4~5년 안에 50%까지 늘릴 작정이다. 청양고추마저 거대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로 지적소유권이 넘어갔다. ‘종자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우리도 해외에 진출한 상황에서 토종기업이니 종자주권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관행육성’과 ‘생명공학’ 기술을 접목해 양질의 국내 유전자원을 지키는 동시에 외국의 우수한 유전자원도 중국·미국·인도·인도네시아 등지의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한국으로 들여온 뒤 이를 육성해 3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기술기반은 한국에 두고 비즈니스 기반은 해외에 두는 이원화된 체제를 운영하려 한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종자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어느 정도인가? 몬산토, 신젠타, 사카다(일본계), 다키이(일본계), 루넴(네덜란드계) 등이 진출해 있다. 이 중 상위 4개사가 국내시장과 세계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GMO 종자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우리나라도 이 문제를 매우 민감하게 다루고 있다. 현재로선 규제장벽도 높지만 대세는 GMO 쪽으로 간다고 보고 그에 대비하고 있다. 연구개발 비용이 매출액 대비 20% 수준인데 향후 투자 계획은? R&D 투자가 우리에겐 1순위다. 그 수치를 꾸준히 높이겠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시장 점유율도 24%에서 30% 안팎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토종 종묘기업’으로서 느끼는 자긍심도 있을 듯한데. 다국적 종자기업은 이익이 안 남으면 연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익이 많이 안 나더라도 종자를 계속 공급해 줘야 한다. 국내 종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안이 있다면? 품종보호 등 지적재산권 보호가 중요하다. 국내에도 종자산업법이 있지만 너무 느슨하고, 업계 내부의 자정노력도 미흡한 편이다. 국제기준에 맞는 품종보호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밖에서도 인정 못 받고, 외국 경쟁업체를 따라갈 수도 없다. 종묘산업을 더욱 키우려면 전략적으로 육성할 가치가 충분한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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