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ul Serenade] ‘시골 밥상’ 예찬
최근 한 소규모 한식당 체인이 영어교사, 전문직, 군인 등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초청한 ‘포커스 그룹’ 모임 개최를 도왔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이 식당이 외국인들의 입맛을 미리 파악해볼 요량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한국 정부도 한식을 세계화해 2017년까지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희망찬 계획을 세웠다.
우선 그런 순위는 어떻게 매기는지 궁금하다. 또 한국 정부가 말하는 ‘한류’식 접근법이 일반적인 ‘외국인’ 상에 꿰맞춘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외국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일방적인 문화 소통은 설득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는 전국 방방곡곡마다 지방의 색깔이 그대로 살아있는 훌륭한 ‘시골 밥상’이 있다.
현지를 찾은 외국인 방문객들이 저마다 감탄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식의 세계화’ 관계자들은 한식을 자꾸 ‘고급스럽게’만 포장하려 한다. “한식을 일본식으로 바꾸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수십억원을 들여 떡볶이의 영문명(‘Ddokbokki’)을 일본식 발음의 ‘toboki’로 바꾸려 하는 일이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다고 외국인들이 서울 신당동의 떡볶이 거리로 몰려들까? 한식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소박한 한식 밥상을 자랑스러워 하기보다 ‘럭셔리’한 외양을 더 중시하는 듯한 풍조는 얼마 전 열린 ‘한식 세계화 2009’ 심포지엄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 심포지엄에서는 한식을 전파할 때 각국 시장의 수요와 입맛에 맞추는 ‘현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 강조됐다. 하지만 주최 측 의사결정자들은 결국 궁중 요리를 주요 메뉴로 내세우기를 고집했다. 글로벌 불황으로 전 세계 소비자가 지갑을 닫은 요즘, 굳이 값비싼 고급 요리로 한식을 홍보할 필요가 있을까?
2년 전 나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부탁으로 서울의 식도락 세계를 안내한 적이 있다. 그때 찾아갔던 한 식당이 한식을 ‘파인 다이닝(최고급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한 고급 레스토랑)’으로 해석한 곳이었다. 그 식당의 주인은 한식 세계화를 고급 음식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가 차려서 내온 요리는 과연 아름다웠지만 가격이 너무나 비싼 데다가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았다. 기자와 나는 한식 자체보다 ‘파인 다이닝’에 주력한 그 식당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다. 그날 말고도 외국에서 온 주방장, 요리 전문가, 언론인들을 데리고 한식 체험을 여러 차례 해보았지만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고급스럽고 정갈하게 꾸민 한식보다는 시골 어딘가에서 만난 서민 음식을 선호했다.
얼마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음식 여행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앤드루 지먼이 방한했을 때도 그랬다. 산낙지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온갖 한식을 두루 섭렵했던 그가 과연 어디를 최고 식당으로 꼽았을까? 그곳은 서울 마포 거리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허름한 삼겹살 식당이다. 외형은 초라하지만 좋은 품질의 삼겹살과 김치를 숯불에 구운 맛이 일품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내 머리 속에 이런 생각에 머물렀다. ‘프랑스의 시골음식에 비교할 만한 동아시아의 음식이 없는데 한식이 그 공백을 채우게 되지 않을까?’ 투박하지만 푸짐하고 다채로운 맛에다 영양마저 듬뿍 담긴 한국의 서민 음식 말이다. 그게 바로 한식이 세계에서 공략해야 할 틈새 시장이라고 감히 나는 주장한다.
보통 정부 고위 관료나 기업인들의 타깃은 다른 나라의 고위 관료나 기업인들이다. 이런 ‘양반 대 양반’의 접근법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한다면 분명한 한계가 있다. 최근 해외에서 화제가 된 한식의 사례를 봐도 그 대부분은 역시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경우다.
미국 시애틀의 줄리아 양이 운영하는 ‘줄’이라는 식당이나 캘리포니아의 트럭에서 판매하는 갈비 타코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 정부가 한식의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원한다면 외국인들의 의견부터 경청하길 바란다. 또 한식이라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아무런 포장이나 꾸밈이 없어도 ‘아시아의 프로방스(프랑스 남부 지방)’로서 본래의 매력을 발산하게 되리란 사실을 유념하길 바란다.
[필자 조 맥퍼슨은 영어 교사 겸 음식 블로거로서 ‘Zenkimchi’라는 한식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의 블로그는 뉴욕 타임스, 아리랑TV, 미국 트래블 채널의 ‘Bizarre Foods with Andrew Zimmern’ 등에 소개됐다. 영어로 보내온 글을 우리말로 옮겨 실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한국과 협업 기회 찾는다" 하버드 의과대 연계 MGB이노베이션 총괄 첫 내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 김준호♥김지민 '청첩장' 눈길 이유는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대기만 2시간”…점심시간에도 이어진 사전투표 열기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GAIC2025]“성장 원한다면 중동 주식시장으로…상장 적극 고려해야”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美의사들, 韓카티스템 수술 ‘열공’…메디포스트, 3상 준비 착착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