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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불법 사업장 사고는 산재 인정 못 받아

[Law] 불법 사업장 사고는 산재 인정 못 받아

김모 사장과 이모 부장 그리고 박모 기사 세 사람이 게임장 사업을 동업하기로 했다. 김 사장이 자금 투자를, 이 부장이 게임장 운영을, 박 기사가 게임기 수리 등 기술적 부분을 각각 맡기로 했다. 100평 규모 지하실을 빌려 정모군과 최모군 등을 종업원으로 채용했다. 게임장에 허가를 받지 않은 바다이야기 등 불법 게임기를 설치해 영업을 시작했다.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게임장 출입문 외부에는 손잡이를 없애고 실외에 CCTV 4대를 설치했다. 밖에서 게임하러 온 손님임을 확인한 후 안에서 리모컨을 이용해 문을 열어 손님을 입장시켰다.

게임장 내부 출입문에는 내부 소리가 외부에서 들리지 않도록 방음천을 설치했다. 손님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게임장에 임의로 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허가 없이 건물을 개조했다. 박 기사가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외부 출입문에 추가로 철제 잠금장치를 설치하기로 하고 용접공장에 출장 용접을 의뢰했다. 출장 나온 용접공이 게임장에서 작업했다. 용접공이 외부 철제 출입문 안쪽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중 불꽃이 철제 출입문 안쪽과 내부 벽면에 부착돼 있던 방음천으로 옮겨 붙었다. 불길은 벽면과 천장을 타고 게임장 내부로 급속히 번져 다량의 유독가스를 발생시켰다. 화재로 게임장 종업원으로 근무하던 정군과 최군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다음날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모두 사망했다.

김 사장과 이 부장은 무허가로 게임장 영업을 하면서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물을 이용하게 했고, 경품 등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사행성을 조장하는 한편 게임장 손님이 획득한 경품을 금전으로 바꿔준 범죄사실(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정군과 최군 가족은 그들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문제의 게임장이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사업장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으로 볼 수 없다며 위 청구를 배척했다. 이에 대해 정군과 최군 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망인 가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왜 그랬을까.



불법 게임장에서 일하다 화재로 사망산재보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산재보험법의 목적, 입법 취지 및 기본 이념, 산재보험법에 따른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의 관장자,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에 드는 일부 비용의 국가 지원,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해진 보험관계의 성립 및 소멸 사유, 보험료의 부담 주체 및 산정방식 등에 관한 여러 규정의 내용과 형식 등을 종합해서다. 관계 법령에 따라 당해 사업이 금지돼 있고 그 금지 규정을 위반한 때 형사처벌이 따르게 되는 경우까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사업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김 사장 등은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허가로 게임장 영업을 하면서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물을 제공하고 경품 등으로 사행성을 조장하는 한편 게임장 손님들이 획득한 경품의 환전을 업으로 했다. 그에 따라 형사처벌까지 받은 데다 김 사장 등은 이 사건 이전에도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다 경찰에 단속된 후 석 달 만에 다시 이 사건 게임장 영업을 재개했다. 처음부터 불법적 게임장 영업을 할 목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한 점, 특히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기존 철제 출입문에 추가로 철제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김 사장 등이 운영한 이 사건 게임장 영업 또는 영업장을 산재보험법에 규정된 사업 내지 사업장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망인들의 가족은 망인이 문제의 게임장에서 위와 같은 범죄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게임장이 산재보험법 적용 제외 사업에 해당하는 이상 망인들은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뿐만 아니라 망인들이 근무하게 된 경위, 게임장의 구조·업태 및 운영방식, 일당으로 받은 금액, 게임장에서 수행한 업무내용과 이 사건의 발생 경위 등에 비춰 보면 망인들은 게임장 운영이 형사상 범죄행위에 해당하거나 김 사장 등이 불법적으로 게임장을 운영하는 걸 충분히 인식했다고 덧붙였다.

산재보험법 제1조는 “이 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 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산재보험법 제6조는 그 적용 범위에 관해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하 ‘사업’이라 한다)에 적용한다. 다만, 위험률·규모 및 장소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산재보험법 제6조 단서의 위임을 받은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2조는 그 적용 제외 사업을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산재보험법 적용 제외 사업으로 ▶공무원연금법 또는 군인연금법에 따라 재해보상이 되는 사업▶선원법,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상보험법 또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따라 재해보상이 되는 사업▶주택법에 따른 주택건설사업자,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건설업자, 전기공사업법에 따른 공사업자, 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른 정보통신공사업자, 소방시설공사업법에 따른 소방시설업자 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수리업자가 아닌 자가 시공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공사▶가구 내 고용활동▶상시근로자 수가 1명 미만인 사업▶농업, 임업(벌목업은 제외한다), 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을 들고 있다.



산재보험법 적용 제외 사례 많아위 시행령에서는 이 사건 사안과 같이 관련 법령에 의해 당해 사업이 금지돼 있고, 그 금지규정을 위반할 때 형사처벌이 따르게 되는 경우를 산재보험 적용 제외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의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해 불법 게임장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행정벌 내지 형사벌로 대처하면 충분하다. 또 불법 게임장을 운영해 불법 수익을 얻은 자는 근로자가 아닌 사업주임에도 단지 종업원에 불과한 피해자의 산재보험법 적용을 부인하는 게 과연 우리나라 사회보장 체계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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